제주에 갔다..배를 타고가긴 처음이다..

큰배라 멀미 걱정없이 편안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두어시간 지나 보이는 큰 섬(추자도) 외각에 외로운 바위섬..사자섬(수덕도)다..

 

 

제주항에 도착하여 인덕면 화순해수욕장에서 하모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올레 10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산방산 아래 자리잡은 해변..항만대 지역의 정경..왼쪽 능선을 타고 걷는 기분..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용머리 해안의 등허리 부근를 걸어 오른다..

다행이 용은 꿈뜰거리지 않았다..

 

 

왼쪽 용머리 방향..

배가 보이는 곳이 하멜이 표류한 지역이다.

효종년간에 표착한 네델란드 배 선원 33명이 육지로 이송되어 살다가 그중 8명이 13년만에 일본으로 탈출하고, 귀국후 하멜표류기를 저술하엿다..그 13년 시작의 장소..

그당시 그 배의 목적지는 일본이었으니 일본은 서양과 교류하고 잇었는데..우리는 쇄국정책 속에 북벌이라는 허상을 쫓던 시절..

아무도 그당시 서세동점의 거대한 급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급류 속에 200년후 우리가 망국선을 타고 36년간 표류한다는 사실을 카산드라처럼 예측한 사람도 없었겟쥐..

지금은 알까? 어떤 급류가 흐르기 시작하는지..

 

수학여행온 아이들이 가득하다..

그 해변을 걸어서 지난다.. 

 

 

산방산..첫인상이 종모양처럼 생겨 아침 저녁으로 큰 종소리를 낼듯한 모습..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종상화산(용암원정구)이다. 화구가 없고 사면경사가 50° 내외이며, 사방이 절벽을 이룬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

 

음..족보있는 화산이다..

산밑에 용한마리까지 기르고 잇으니 살금 살금 걸어서 지난다.. 

 

제주에 귀양온 추사가 이산에 자주 들렀단다.

추사는 9년간의 제주 유배생활 속에  소위 철이 들어 해외유학파 명문귀족손의 독선적인 성격을 탁마하여 명작 세한도와 기름끼 빠진 추사체를 완성시킨다..

그공의 일부는 산방산이 보여주는 둥글고 원만한 품세와 마음속에 울려주는 깨달음의 종소리에도 있을 것 같다...   

 

 

 

사계리 해안에서 내일 위해 걷기를 마치기로 하였다..

차로 잠시 이동하여 제주해안팬션에 짐을 푼다..

산방산이 보이고..종려나무가 울타리로 서잇는 이집..근사하다..

늦은 저녁식사..제주 똥돼지 숯불구이와 쐬주한잔..

그래..노는 것은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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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걷기 두번째..

금강유원지 - 고당리- 합금리 - 청마리 말티 마을회관 부근 까지 8km..

 

아침부터 하늘의 심기가 불편하시다..

그래도 서서히 갠다는 일기예보를 계시삼아 간다..

원래 모임의 모토가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간다.."니  알아서 눈치껏 처신하는 수 밖에 없다..

금강유원지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 진다..

편의점에가서 비닐 우의를 사서 걸치고 우산들고 라버댐을 건너 고당리를 향해 걷는다..

 

고속도로 아래에는 낚시꾼들이 흐르는 강물의 주인공인양 한가롭다..

 

 

 이강은  북으로 흘러 대청호로 들어간다..

발원은 장수 뜬봉생애서 발원하여  진안..무주를 거쳐  영동군 양산면에서 금산 지류와 합류..

심천면에서 민주지산, 삼도봉, 물한계곡의 한천과 합류하여 북서류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다시 합금리 부근에서 속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지류와 합류하여..

장계유원지 부근의 대청호로 들어가고..

대청댐을 나와 신행정수도 부근..부강 합강리에서 합류하여 대동의 물줄기가 되어 대평리를 지나 청벽을 지나면 웅진강..

부소산에 이르면 백마강으로 불리며 서해로 들어간다..

 

금강의 유래에 대해 웅진이 곰에서 유래하였듯이 "곰강"에서 "금강"이 연원하였다는 설이 있다..  

 

합금리 부근에서 강가로 내려선다..

자갈이 가득하다..

오늘 발맛사지는 태국식도..중국식도 아니고..합금리식으로 제대로 한다..

 

합금리의 지명유래도 웃긴다.. 

원래 강가에 놓아 기르는 소가 많아 윗쇠대, 아래쇠대로 불리다가 일본 애들이 지명을 정비할 때  쇠 금(金) 자를 써서 합금리가 되었다나..

우리나라 지명의 연혁은 이렇게 변화무쌍.. 

 

강가에 자갈마당이 5만평도 넘을 것 같다..

강가에서 돌을 골랏다.. 금강걷기 기념으로 간직하려고..

 

 

 점심 먹을 마티 마을부근.. 다리에서..북류하는 강물을 바라본다..

강이 북으로 흐르다 서로 꺽기는 금강의 형상을 활에 비유하고 서울을 겨누는 형상이라하여..

 차현이남의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 했다던 왕건..

 

하지만, 그의 총애하는 부인이 나주 출신 오씨이고 그 사이의 소생이 후계자 혜종인 점이나..견훤이나 그 사위인 순천 호족을 포용하고 후대 한것을 보면, 그의 유서 란 것은 후대 조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좋은 강은 백두대간의  생긴 지세대로 흐를 뿐이다..

그외 인간들의 망상과 집착이야..사바세계 고통의 원인임을 굳이 다시 설파할 필요가 잇으랴..

 

 

이미 점심식사 무렵에 우의를 벗고 우산을 접을 정도로 날씨가 개었다..

강둑길에 점심을 먹다가 지나는 차를 위해 식탁을 거두었다 펴길 3차례..

맛잇는 식사 후에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월..생명의 등불을 밝히었던 돌아온 사월..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이 지나감을 아쉬워함인지..

 

 

 

봄이 깊어지니 푸름도 짙어진다..

떨어지는 것이 있음에 맺혀지는 것도 있듯이

왕벚꽃은 낙화도 예술이고..태어나는 매실은 앙증맞게 귀엽기도하다..

 

 

 

귀가길..

어느집 모퉁이 길가애 선 장승의 한 말씀이 오늘 걷기의 덕담이다..

 

"금강인 어절씨구!!"

 

다만, 금강유원지에 와서 도리뱅뱅이를 못먹고 가는 아쉬움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처음 간 걷기 모임..

금강 따라 걷기 첫번째..

금강유원지 부근에서 충북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를 향해 걷는다..

 

따스한 봄볕이 등을 토닥 토닥 두드리는 것 같은 포근함..

신선한 바람..물오른 신록의 가지들..재잘거리는 강물..

 

강변에 둘러 앉자 도시락을 펴고 각자 비장의 반찬을 돌려먹고..

챙겨온 술도 돌려먹고..조니워커도 뚝딱..매실주도 꿀꺽..인삼주도 쓱싹..

 

이대표님으로 부터 노래 배우기 시간..가사가 너무 좋다..

 

바람은 불어불어 청산을 가고

냇물은 흘러흘러 천리를 가네

냇물따라 가고싶은 나의 마음은

추억의 꽃잎을 따며 가는 내마음
아- - - -

엷은 손수건에 얼룩이지고

찌들은 내 마음을

옷깃에 감추고 가는 삼월

발길마다 밟히는 너의 그림자..(그리운 마음 - 이기철 시)

 

 어찌 이리 오늘의 분위기와 딱맞아 떨어질까?

 

이어 신입회원 노래부르기..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언제나 정다웠던 외나무다리~....."

 

아!! 내고장에 이리 좋은 곳이 있었구나!! 

 

 찌들은 내 마음을 옷깃에 감추고 가는 삼월...

 

잘가거라!! 2009. 3. 28. 다시 오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이여!! 

 

 

 

(백두산 호랑이)

산문 밖 호림호텔에 묵엇다..호림이라는 이름답게 백두산 호랑이 사파리를 운영한단다..

그 호텔 로비에 호골주를 파는 가게가 잇는데..그안에 호랑이가 통채로 소주 속에 들어 잇다..

 

(백두산 가는 길)

아침 산보 길엔 망설임이 없이 백두산 쪽으로 향했다..
길 양옆으로 흰줄기의 나무(백양나무인지, 자작나무인지 모르겟다)들이 줄지어 서있다..
 
예전엔 백두산에 원시림이 가득햇고, 구한말에는 그 벌채권을 둘러싸고 열강이 각축하였다는데..
지금은 원시림이 남아잇기나 하는지..
아직도 벌채목재를 실어나르는 열차가 운행하고는 있다..

 

(일송정 푸른 솔)

 

아침 일찍 백두산을 떠났다..가이드가 오늘은 쇼핑옵션을 채워야하니 양해하란다..

 

용정에 다와갈 무렵 가이드가 외친다..우측 차장에 멀리 보이는 것이 일송정 푸른 솔입니다..

그리고 지나쳤다..허망..

 

용두레 우물가는 용정에  최초로 사람들이 살던 터이고..

일송정은 그 때이후 주민들이 치성을 드리던 곳이란다..

 

차는 묘향산이라는 북한 상점에 도착..무슨 교육하듯..우황청심환 선전을 하는데..

각지에서 모인 일행 중에 아무도 물건 사는 사람이 없다..썰렁하게 모두 나간다..

일행중 어느 분 왈..금강산 피살 사건 이후엔 북한 당국에 흘러들어가는 돈이 되는 물건을 살 생각이 없단다..

 

이어 차는 곰 사육장과 웅담판매 가게에 들렀다..

연변조선족 자치정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곳이라며 한참 선전하니..여러 사람이 사고,, 잠벗도 사겟단다..

반드시 먹겟다는 다짐을 받고 사기로 햇다..

잠벗은 가는 곳마다 못사서 안달이다..싸니까 일단 사놓으면 나중에 다 보탬이 된단다..

난 반대다..당장 필요없는 것을 사는 것은 아무리 싸도 낭비다..

 

 

 

시인 윤동주의 모교 대성중학교..

거기서 놈3 영화의 모티브가되는 사건이라는 15만원 탈취의거를 보다..

 

 

 

(함북 종성군 부근의 두만강)

 

차는 도문을 향해 달린다..시골길을 한참 달리는데, 가이드가 우측 산들이 북한이란다..

두만강은 어디하는데.. 두만강은 동네 냇가로 나에게 다가왓다..

 

6살때 처음본 영화가 "두만강아! 잘잇거라"였다..

마지막 장면..독립군들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서 일본군을 전멸시키는 감동적인(?) 영화 ..

나중에 커서 그영화의 감독이 임권택이었고..임권택의 최초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맺어진 두만강이 이렇게 시골스럽게 다가올 줄 몰랐다..스펙터클하게 다가 올줄 알앗는데..

그러니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지 않는가..

 

(두만강 누런 물에)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도문에는 없다..

 

두만강 누런 물에 운전하는 뱃사공은 잇다..

저멀리 보이는 산 너머 중,소 국경부근에서 두만강이 해란강과 부루허통하와 합류하면서 큰강으로 변모하여 동류하고 동해에 이른단다..

 

여기가 종성,경원,경흥으로 이어지는 세종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 중 하나이다..그야말로 변방..

 

뱃사공 말이 작년에..여기서 대나무 뗏배를 타고 유람하던 한국학생이 배가 파손되며 북한쪽으로 표착..

3시간 동안 억류되었다가 1000만원을 주고 풀려났단다..

 

그런말로 통통배를 타고 유람하는 나를 안심시키고 경쟁자를 제압하는 노련한 뱃사공..

배를 북한 땅 가까이 대는데..북한 군인이 보인다..

걱정말란다..돈달라..과자달라 한단다..

 

두만강은 양쪽이 공동으로 사용한단다..서로 땅만 침범않으면..

하긴 우리동네 강보다 폭이 작은 60미터 정도 되니 가르면 이용가치가 없겠다..

 

선착장 제방에  천막가게에 노래방이 잇고, 금영노래방책이 잇다..한번 눈물젖은 두만강이나 불러봐!!근데..영..분우그가 아니다..

 

 

마지막 쇼핑장소에 갔더니 연변박물관 2층에 잇다..그것도 한국사람이 세내어 라텍스 장사를 한다..

잠벗 혼자 현혹되어 천연고무 베게를 2개 산다..내 눈총은 아랑곳 없이...

 

거기서 등소평이 쓴 장백산을 보앗다..

 

중국으로 온 백두산..천지는 여전히 황홀한데..

산이름은 장백산으로 빼앗기고..호랑이는 술 재료로 전락하고..반달곰은 사육당하며 웅담을 헌납하고 잇다..

 

 

인천에 도착하여 내려오는 고속버스안..

박태환이 금메달을 딴다..이것이야..

우리가 잘해야 남이 알아준다..

(대련에서 발해를 바라보다)

 

휴가에 백두산을 보러 갔다..전부터 가고 싶었다..우여골절 끝에 날자를 정하고..코스를 정하다..

대련-연길-백두산-용정-도문-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햇다..

요즘 불황이라 해외여행도 줄고 하여.. 확실한 출발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대련 공항에 도착하여 연길로 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노호탄..성애광장에 잠시 들럿다..

성애광장 끝 바닷가에 서서 발해를 바라본다..

 

1500년전에 고구려의 비사성이 잇었고..

1200년전에 발해의 바다였으며 근세사에 러일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던 곳..

 

그곳에서 까르프를 보았다..한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퇴출되었던 프랑스계 할인매장이 그곳에서 장사하고 잇었다..  

 

(부르허통하가 무슨 한강 같다..)

 

길림성 연변자치주 연길시 공항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북경올림픽 보안강화되고..비행기도 연착하여..지루하게 시간을 보넷다..백산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날 새벽..나만의 외출이 시작되엇다..

호텔부근이 부르허통하가 흐르는데..무슨 한강처럼 넓다..

나중에 확인해보니..보를 설치하여 물을 가두어 놓아 큰 강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강을 따라 걷는 나의 일상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산책길에 흥미를 끄는 것은 그곳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댄스를 배우는 모습이다..

반주곡은 "홍도야 우지마라.."등 우리 옛뽕작..

연변 지역이 조선족 자지주라 핏줄을 속일 수는 없나 보다..

음주가무는 사기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내력이 아니던가.. 

 

(백두산 북파 산문)

 

아침 7시에 연길을 출발..용정-이도백하-송강을 거쳐 4시간에 걸쳐 백두산 북쪽 등정로 산문에 도착햇다..

백두산 등정로는 3군데..북파..서파..남파..그중 북파는 찝찰로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조망하는 코스다..

연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달리는데 마치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중간에 요금징수소가 여러차례나오는데.. 모두 합치면 통행료가 6-7만원쯤 된단다..

하여..백두산 도로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건설하고 완성시키는 형국이란다..

 

지루한 차안에서 가이드에게 재미잇는 얘기 좀 하랫더니..문맹부부 아야기를 한다..

글을 모르는 여자가 매파가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남자와 결혼하여 길을 가게 되었다..

길가 전봇대에 "불조심"이라는 글씨가 붙어잇었는데..

남편에게 무슨 글자냐고 물었다..그러자 남편이 대답햇다..

"전봇대"

남편도 일자 무식인데..3글자에 맞춰 둘러댄 것이다.

얼마 가니 "불* 조심"이라고 쓴 전봇대가 나왓다..

다시 물엇더니 이번에 4글자에 맞춰 "또 전봇대"라고 둘러댓다..

얼마 갓더니 "언제나 불조심"이라고 쓴 전봇대가 나타났다..여자가 물엇다..

남자가 말햇다 "마지막 전봇대"..

 

썰렁한 유머였다..

 

그러자 가이드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물엇다..백두산 날씨가 변덕스러워 천지를 꼭 본다는 보장이 없다..

백두산 천지를 볼수 잇는 3대 조건이 잇다..

 

첫째는 운이 좋아야 한다..

 

그럼 두번째는 무엇인 줄 아는가?일행 중 한 사람이 답햇다..

" 또 운이 좋아야 한다"

 

3번째는?

"마지막으로 운이 좋아야 한다"

 

모두 한참을 웃었다..  그러는 사이 백두산에 가까이 갈수록 신기하게 날씨는 더욱 화창해지고 잇었다.. 

 

 

 

산문에서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가서 다시 찝차를  탓다..말티고개보다 더 구비 구비 돌아 천문봉에 도착..

500미터를 오르니..

아!!사진에서 그렇게 자주 보앗던 그 호수가 그대로 거기에 있다..

색감..어찌 표현해야하나..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생생함..

 

 

깊고 푸른..코발트 같기도하고 비취같기고 하고..녹색도 섞인 형용하기 어려운 색감..

푸른 하늘이 담긴듯하고..구름의 그림자가 지면 검어지는..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가..바위에 걸터 앉아 한참 천지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다..

 

천지를 바라보며 천지와 하나인 나를 느끼며 천치처럼 웃는다..ㅎㅎ 

 

 

(비룡폭포에서)

 

천문봉에서 내려와 다시 비룡폭포(중국명: 장백폭포)로 향했다..

백두산 북쪽 달문으로 해서 떨어지는 천지의 물이 폭포를 만들고..

 

정말 장관이다..1주일전에 폭포옆으로 달문을 통해 천지물가로 올라가는 길이 낙반사고로 사람이 다치고 폐쇄되어 폭포 가까이 접근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물에 발을 담그고 폭포를 감상하기는 부족이없다..발이 얼어 붙는듯 시리다..

 

바위에 걸터 앉아 폭포를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번뇌가 물이 되어 쏟아져 내리고 시린 물이 되어 저 아래를 향하여 사라져 간다..

 

백두산에서 자유롭게 웃으며 행복을 느낀다..이것이 관광이다..

 

적벽대전을 보러 가는데..길이 엄청 막힌다..
결국 10여분 지나 들어 갔더니..
조자룡이 아두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적벽대전을 보고 나서 좀 실망햇다..
삼국지를 수차례 읽고, 한때는 내가 영화감독이 되어 적벽을 감독 제작하는 꿈을 꿔보기도 했는데
..

그 장대한 소재를 가지고 숱한 중국의 무협영화 수준으로 제작하였으니...
오우삼 감독이 너무 큰 것을 물엇다 할까?

성경에 버금가는 대를 잇는 베스트 셀러이고 게임으로도 빅히트를 쳤으니..
삼국지 스토리야 상식에 속하여 생략하고..


유비..
적벽대전 직전 유비는 50줄에 접어들며 유표와의 회식자리에서 유명한 "비육지탄"을 남기는 나

이..등장인물 캐스팅도 적절하다..

 

제갈량..
27세의 젊은이로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가진 사려 깊은 사나이..금성

무 잘 어울린다..

 

장비..
영화 속에서 주유가 방문햇을 때 글씨를 쓰고 있더라..나는 연의를 읽으면서 장비는 일자 무식으

로 생각햇는데..
장비가 滅曺興漢(멸조흥한)인듯한 글씨를 쓰고 잇었는데..그 글씨체는 예서체였다..
한나라 시대 글씨체다..해서체는 아직 등장하지 않을 때니..고증은 제대로 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장비가 장판교 다리에서 조조군을 저지하는데..영화에서는 웬 반사 방패를 사
용하여 적을 저지한다..
그 시대에 거울 같은 반사판을 방패 뒷면에 붙인다는 발상은 넌센스 같다..
오히려 연의의 묘사가 그럴듯 햇을 것이다..

 

관우..
트레이드 마트인 여포의 애마엿던 적토마를 어디다 두고 두발로 뒤어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특히 80근 언월도도 한번 휙 집어던지고 맨손으로 적의 창을 뺏어 싸우는 좀 무식한 캐릭터로 나

온다..물론 애들 가르치는 장면을 끼워 넣지만..
초반부에는 역사나 연의에도 없는 생포당하기 직전의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아마 서양 관객을

위하여 특히 2부에서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주는 장면과 관련 시키는 복선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관우는 중국에서 신격화 된 캐릭터인데, 오우삼이 좀 격하시켯다할까?

 

손권..
26세의 젊은이..제벌 2세로 곱게 자라 기업을 상속하자마자 큰 사건이 터지자 주전,화전의 상곡선

에서 고민한다..
주유가 사냥을 데리고 나가 호랑이와 대결시키는 장면은 "300"이라는 스파르타 영화를 패러디한

느낌이 난다..

 

주유..
오우삼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캐릭터..
무예와 음악에 공히 조예가 깊은 인물..
연의에서는 제갈량으로 인해 속좁고 성미급한 인물로 천시당햇으나, 이 영화에선 에이급 대접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도 주유는 연의보다는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캐릭터가 더 맞는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여 연회에서 악공이 틀리면 돌아봤다는 주유..미인과 살을 부비고 사는 럭셔리한 사
람이다..
영화 속에서 장병중 소도둑을 색출하는 장면에서 감녕의 부대를 산으로 구보를 시켜 진흙이 묻은

병사를 못찾게 만들어 병사를 단결시키는 장면은 초장왕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조조..
그는 장단점을 6:4으로 가졌다..
실용주의적 성격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유비와 다르다..
사람을 쓸 때도 장점만 취하지..단점없는 사람만을 찾지 않앗다..(요즘 우리나라는 단점 없는 사

람만 찾느라 골머리를 썩는데, 그 대부분은 무능하다는 아이러니 속에 산다..)

적벽대전 전의 그의 장점은 신속..과감이었다..
마치..롬멜의 기갑부대나 알렉산더의 기병대를 연상시키는 전격작전을 구사하였다..
원소와 맞붙은 관도대전에서는 고전속에서 원소의 식량저장소인 오소를 전격 급습하여 불태우며

승기를 잡는 전략가였는데..
형주를 취하고는 잔치를 즐기고 여색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다..
연의에서나 역사에서도 조조가 소교를 취하려 했다는 근거는 없는데..
오우삼이 누명을 씌우는 이유는 주유와 소교의 사랑을 극대화 하기 위함이 아닐까? 

 

죽간과 종이..
영화 속에서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항복 문서는 죽간이었다..
헌데, 주유가 조조에게 보낸 답서은 종이였다..

종이의 발명은 후한 안제 시절 채륜이 발명하엿으니 후한 말이 배경인 영화에 종이가 등장하는 것은 맞는 고증이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
중국 사람이 만드는 무협성 단투극 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째든 사람들이 상상하는 역사적 장면을 구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겟지..
전투장면보다는 스토리와 갈등으로 끌고 가면서 전투 장면은 적당히 그리고 스펙타클하게 가미되
어야 성공한다..
너무 많이 벗는 장면으로 일관하면 포르노처럼 천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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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노래

 

풀잎에 달린 달팽이
무거운 몸짓으로 어찌 여린 줄기에 올랐을까

 

집에 깔려 숨도 쉬기 어려울 것 같지만
풀잎 끝 정자에서 한가함을 즐기는 듯도 하다.

 

세상사람들아! 고오베, 쓰찬을 보지 못했느냐!
땅을 믿지마라..땅에 투자하고 땅땅거리며 살지마라!

그저 심혈을 기울인 조그만 안식처에
풀잎에 맺힌 아슬이면 족하니라.

 

옛 가락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리라"하였으니

비록 대장부도 아니고 엄지공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내 배포는 보이는 하늘을 다 삼키고도
눈 깜짝 않고 입맛도 다시지 않을 정도라네. 

 

세상사 비교적이고 상대적이라.
한 덩어리로 뭉쳐 꿀꺽 삼키고 꿀먹은 벙어린냥
그저 조그만 오두막 끼고 풀잎 이슬로 목이나 축이면서

 

청천 하늘 바라보며
낮에는 구름 구경
밤에는 별빛 세며

 

자유, 자적 노래 부르련다.

 

(2008.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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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도톰보리)

도톰보리(道頓窟) 구경갔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쯤 되나..무척 혼잡하다..

거기서 헤메고  식당을 찾아 갔다.. 무사히.. 

 

  거기서 만난 경찰..

허리에 둘른 소지품이 다양하다..수갑..곤봉..무전기..별에 별것..

 

 신사이바시(心齋橋)

도톰보리와 크로스되는 상가..명동 쯤된다나..

잠벗과 딸래미는 신났다..

 

 도톰보리에 한글이 써잇다..

"사주세요.." 웃기는 일본 상술..

 

(히메지성 해자)

점심요기를 하고..마지막 목적지 히메지 성을 들러 오카야마 공항으로 가기위해 출발한다..

일본 연휴라 고속도로가 막힌다..

5월초에는 일본 여행가지 마시길..

일본 사람들은 국내여행도  패키지로 다닌단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척 비싸단다..

그런데도 5월초의 연휴에는 우리의 명절귀성차량처럼 고속도로가 만원이다..

방송도 아침부터 생중계하고..

우리 가이드도 엄살이다..

하여 결국 히메지성에 당도하여 잠시 해자만 감상하고..성안 관람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멀리서 히메지 성의 머리만 보인다..

아쉬움에 성의 전모가 나오는 입장권을 찍었다..

 

딸래미는 그 사이 성이 새겨진 과자를 사왓다..

아쉬움을 달래며 히메지성을  아삭아삭 씹어 내솜 깊숙이 간직한다..

나는 히메지와 한몸이 되었다..

 

오카야마공항에 잉어 풍선이 떴다..

어린이날 일본 전역에 잉어 깃발이 나부꼈다..

남자 아이 키우는 집에서 내거는 풍속이 잇단다..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관서지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의문이 들엇다..

 

집에 와 검색해보니 이렇다..

 

일본의 원래 수도는 천황이 거하였던 쿄토[京都]였다. 이 일대를 키나이[畿內] 지역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경기와 비슷하다.  수도를 군사적으로 방위하기 위하여  아스카시대에서 나라 시대에 걸쳐서 키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간선도로에 관문을 세운다.

 

그리하여 쿄토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 3개의 관문, 스즈카관[鈴鹿?], 후와관[不破?], 아라치관[愛??]을 세우고  3개 관문을 산노세키라고 불렀는데, 이 관문들의 서쪽인 쿄토 쪽이 관서, 즉 칸사이지역이 되었는데,  행정구역으로 따지자면 쿄토부, 오사카부, 시가현,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이 여기에 속한다.

 

옆에서 잠벗이 묻는다..

그란디, 우리나라 관서지방의 유래는 알어유?..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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