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집에 앉아 사람 기다리다..벽에 걸린 매화시가 눈에 들어오네..
自讀西湖處士詩 年年臨水看幽姿
晴窓畵出橫斜影 絶勝前村夜雪時
자독서호처사시 연연임수간유자
청창화출횡사영 절승전촌야설시
<내 해석은 이렇다>
홀로 서호처사 시를 읊나니
"해마다 물가에 나와 고운 모습 본다."
맑은날 창가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그림같고,
앞마을 밤눈내릴 때 경치는 너무나 아름답다지.
서호처사는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이다. 그는 독학으로 학문을 이룬 뒤 항주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들어 20년간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임포를 일러 ‘서호처사’ ‘고산처사’라 한다. 임포는 동자만 데리고 살았다.
그의 집에 매화나무가 많고 학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일러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했다. 임포가 매화에게 장가들어 학을 낳았다는 뜻으로, 임포의 고상한 생활을 말해 주는 재밌는 표현이다. 임포는 이른바 ‘매학처사’로 살며 시를 지었다. 임포의 은일 행적과 함께 그의 시는 그 시절 최고 미감으로 추구되던 평담(平淡·평이하고 담백함)과 청한(淸閒·맑고 한가로움)의 좋은 예로, 송나라 학자들에게 높이 칭송됐다.
황제 인종은 임포에게 ‘화정(和靖) 선생’이란 시호를 내려, 임포의 평온함을 기렸다. 중국과 조선에서 수백 년에 걸쳐 임포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기에, 임포를 모른다면 매화 혹은 학을 읊은 옛 한시와 옛 그림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가 널리 인용됐다.
임포는 처사(處士)의 대표였다. 아직 시집 안 간 여자를 ‘처녀’라 하고 아직 벼슬 안 한 선비를 ‘처사’라 이를 때, ‘처사’ 칭호의 대표 인물로 임포가 거론되곤 했다.
그의 대표시를 보자..
山園小梅(동산의 작은매화)
衆芳搖落獨暄妍(중방요락독훤연) : 온갖 꽃은 흔들려 떨어져도 홀로 화사하고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 산의 풍정을 독차지하며 작은 동산을 향했구나
疏影橫斜水清淺(소영횡사수청천) : 얕고 맑은 물에 희미한 그림자 드리우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 황혼의 달빛 아래 은은한 향기 떠오르는구나
霜禽欲下先偷眼(상금욕하선투안) : 차가운 날씨의 새는 내려앉으려 먼저 살피고
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 고운 나비도 안다면 넋 잃고 말리라
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 다행히도 조용히 시 읊으며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尊(불수단판공금존) : 노래와 금 술잔이 반드시 필요 하리?
이 시 중 이 중‘소영횡사疎影橫斜’와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는 시어(詩語)는
매화를 음영한 모든 시인들에게 회자된 천하의 명구이며 임포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한 절창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