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베 협곡 도로코 열차 관광을 마치고 도야마 시내에 있는 호텔로 가는 길..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간다..

언젠가 저녁노을을 보며 도야마의 추억을 떠올릴테지..ㅎ

 

 

 

 

우선 저녁을 고기부페집으로 가서 푸짐하게 먹고..

2차로 한잔 하러 간 집

 

문앞에 일기일회(一期一會)..

오늘의 이자리는 평생에 한번 뿐이라는 말..

열심히 이자리를 즐기라는 말..

 

 

 

그래..건배, 건배, 건배..

사후의 만반 진수라도 생전에 일배주만 하겠는가?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 앞 도야마성 구경하러 나왔다..

해자에는 오리가 한가롭다..

 

 

 

 


혹시 일본어 해득 가능한 분 번역을 댓글로 달아 주시길.. 


 

도야마성은 어째 실전용 같지 않은 분위기..

1960년대에 재현한 건물이다..

 

원래는 1543년에 처음 축성했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삿사 나리마사가 도야마 성을 점령하여 대규모로 개축하였다. 

그때는 실전용 요새로 만들기위해 진즈 강 줄기를  끌어들여 해자를 만들어 물에 떠있는 것 같다고 하여《우키조》(浮城)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 사후에 후계분쟁시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도야마 성을 포위 공격해 성이 함락되고 파괴되었다.

 

1639년 가가 번 3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는 차남 마에다 도시쓰구에 10만석을 주어 분가 시켜 도야마 번이 성립되었다.

도시쓰구는 1661년부터 폐성되었던 도야마 성을 다시 지엇다.

마에다 가문의 중시조 마에다 도시이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다가 다시 풍신수길의 부하가 되고, 사후에도 그의 후손들이 영지를 보존하게되는 난세의 한가운데를 슬기롭게 해쳐 나간 사람으로 그의 부인 마츠의 현명한 내조와 함께 여러차례 NHK 대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방영작 "공명의 갈림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한번 보시라..

 https://youtu.be/zqAvIsCVYw4

 

메이지유신으로 페번치현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1870년(메이지 3년) 성은 해체되었고, 성 주위의 해자도 대부분 메워졌다.

1954년(쇼와 29년) 복원된다..

말이 복원이지 콘크리트로 외관만 비슷하게 짓고  내부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대부분의 복원된 성이 그렇다..

 

 

이 문은 지토세 문(千歲御門)이라 하는데..1849년에 지어져 지토세 어전의 정문으로 쓰였으며 10대 번주 마에다 도시야스의 은거처 였다..

2007년(평성 19년) 이자리에 재이축되었다.

 

 

 

시립박물관 앞에 서비스 좋은 단풍이 재빨리 촬영의 모델이 되어준다..

자네는 나중에 단풍계의 ceo가 될거야..ㅎ

 

 

혼마루(本丸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혼마루??

성의 중심을 가르키고 대게는 천수각이 있는 건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혼마루 정자라면..음..공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정자쯤 되나보다..

 

 

 

 

이 동상의 인물은 마에다 마사토시(前田正甫)..도야마 2대 번주(영주)..

그가 참근교대차 에도성에 들어 갔을 때 복통이 난 다른 영주에게 소지하고 있던 '한곤탄(反魂丹:반혼단)을 먹여 쾌유케 했다..

그 바람에 다른 다이묘(영주)들이 이 약을 사기를 원해 졸지에 도야마가 제약과 매약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후 도야마약장수들은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야마산 생약을 팔게 되었고, 당시 도야마현의 수입 15%를 이들 약장수가 벌어들였다 한다.
그 이후 300년 이상 도야마는 가정상비약, 제약 및 매약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추모비에 황기 2600년이라는 표기가 있다..

이들의 황기는 언제를 기준으로 할까?

황기(皇紀)는 진무천황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한다..

그럼 서기 2016년은 황기 2676년이고 단기 4349년이다.

저 추모비는 1940년에 세운 것이다..

 

 

 

보살 동자상이 서있다..

설명으로는 태평양전쟁시 미군의 공습으로 도시가 파괴되어 모금하여 복구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 저 보살이 들고 잇는 것은 돈인가??

 

 

 

도야마 성 옆으로 묵었던 호텔이 보인다..

이제 얼릉 들어가 알펜루트로 떠날 준비를 해야지..

 

 

 

 

왜가리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네..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1787~1856)의 어린시절 동상이란다..

그는 에도시대 말기의 농민 철학자로 농업기술을 개량하는데 힘쓰고, 농촌 생활을 예찬하는 저서를 출간하여 농경부흥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왜 어린  시절 동상이 서있을까?
그는 어릴 적부터 목재를 주워다 팔아서 그 돈을 모아 공부를 했기에 근검절약과 고학의 상징으로 오래된 일본 초등학교에 동상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 등짐을 잔뜩 진 채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에 관하여는 초등학교 노래 '니노미야 긴지로 이야기'도 있다

`“나무베고 새끼꼬고 짚신을 삼아서 부모님 공양하고

 아우를 돌보고 형제 사이좋게 효행을 다하니

우리가 배울 것은 니노미야 긴지로(二宮金次郞)….”


그는 밤마다 짚신을 삼고 아침 일찍 그것을 팔아 푼돈을 모은다.

그렇게 시작해 몰락한 집안을 살리고 물건을 아껴 쓰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개량하여 나중에는 기근으로 죽어가는 마을 전체를 일으켜 세웠다.

 ‘사쿠라마치’를 필두로 수십, 수백의 농촌을 빈곤과 게으름과 기근에서 구해낸 ‘니노미야’는 사무라이가 아니고서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을 걸었다.


 그는 길가에서 다 해진 짚신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 할머니의 짚신 공양(供養)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네 몸을 해질 때까지 나에게 바쳤으니 이제는 네가 나온 곳으로 돌아가거라.

그 논에서 퇴비가 되어 새 볏짚으로 자랐다가 다시 짚신이 되거든 또 함께 살자.”

할머니 기원처럼 짚신은 순환한다. 논에 버린 짚신은 다시 벼가 되어 자라고 그 벼는 짚을 남기고 죽는다.

짚은 새 신발로 태어났다가 닳게 되면 다시 죽어 논바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끝없는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 순환의 이치를 깨닫고 그 소멸와 재생산의 순환에서 부를 얻는 니노미야의 마을 부흥의 정신이 생겨나게 되엇다(이어령).

 

아..그러니 우리 옛 초등학교에 이순신장군, 이승복 어린이를 세워놓듯이 니노미야 어린이의 동상을 세워 정신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다..

 


 차(車)가 3개 겹친 저 자가 무슨 자일까?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모르더라..

검색해보니, 轟 울릴 굉/수레 소리 굉 자로 일본어로는 とどろ(토도로)라고 읽는다..

일본에서만 쓰는 한자다..

논 답(畓)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한자이듯이..


 

 


아이들 그림으로 장식된 보도 불럭이 재미있다..

 

 

 

도야마시 인구 40만의 도시..우리 진주시 정도 되는 규모..


 

어디서나 여자들을 유혹하는 글귀는 똑같다..

화장빨로 자신을 새롭게 하고 강하게 만들라..ㅎ


 

 

 

병신년에 병신 친구들과 계획한 특별한 가을 여행은 일본 도야마의 북알프스로 간다..

여행은 특별했으나 여행지는 우연히 정해졌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갈 수 있는 날..그리고 가장 가까우면서도 대다수가 안 가본 곳에 일본 도야마가 당첨되었다.. 

 

 

단체로 신선이 되어 구름위로 날아 올랐다..

항상 천상 세계를 꿈꾸었지만 천상에는 구름만 가득하다..

단지 스스로 즐길 수 있을 뿐 당신에게 드릴 수는 없다는 경지..

 

 

대붕이 아니고 작은 학을 불러 타고 갔더니

역시..기내에서 튼 영화 "헌츠맨"이 끝나기도 전에 착륙한다고 아우성..

 

 

저 아래 도야마가 보인다..

도야마가 어디냐고??

그래서 준비했지..

 

 

 

우리 동해안 쪽에 있는 도야마현.. 3000미터급 산이 즐비한 일본 알프스 접근성이 좋다..

청주 공항보다 작은 공항에 내리자 마자 점심 먹으로 간다..

 

 

 

 

 

점심은 벤또..

 

식당벽에 너그로울 관(寬)자가 붙어 있다..마치 이번 여행의 계시처럼 다가온다..

그래..너그로우면 여행이 더 재미 있겠지..

 

 

 

오후에 구로베 협곡을 구경할 도로코 열차의 시발역 우나즈키역에 도착..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씨..

 

 

이번 코스는 우나즈키 역에서 가네쓰리 역을 도로코 열차를 타고 왕복하면서 협곡의 풍광을 구경하는 것이다..

도로코 열차란 1500미터 고지에 구로베 댐을 건설할 때 건설자재,인원을 실어 나르던 열차인데, 이제는 관광용으로 쓰인다..

도로코??

어째 도라꾸(트럭)을 연상시키는 말이라 가이드에게 물어봤드니 잘 모르더라..

 이글 쓰면서 검색해보니 역시 도라꾸에서 파생된 말이란다..

 

 

도로코 열차는 협궤열차라 내부가 좁다..

창문이 달린 칸에 앉아 보니 참으로 "분통만 하다"

다행히 창문이 있는 칸을 예약하였기 망정이지, 오늘 처럼 비오는 날에 오픈 형에 탓으면 비 쫄딱 맞고 추워 오돌 오돌 떨었을 것이다..

창문이 잇는 칸이 요금이 비싸다..

우리는 아무거나 평등을 무척 좋아하는데, 선진국일 수록 "동등하지 않은 것"에는 다른 가격이 적용된다..

 

 

 

신아마비코다리가 보인다..

아마비코가 메아리라는 의미..아마 저 다리를 달리는 열차 소리가 메아리져서 온천 마을 까지 들린단다..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가 점심식당에서 "관(寬)"자를 보고 마음을 너그럽게 풀었더니

비가 운무를 데려와 산천을 아름답게 치장하며 화답한다..

 

 

 

 

깍아지른 협곡에 폭포가 흐르고 벼랑길이 이어지니

이런 곳을 트레킹하면 좋겠다..

 

 

 

원숭이 다리가 보인다고 소리친다..

어디??

우측 아래 진짜 원숭이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일본에는 원숭이 학교가 있다더니 원숭이들이 전용다리를 건너는 법을 공부하나 보다..ㅎ

 

 

 

붉은 천으로 감싼 저것은 부처바위..호또게 이시..

 

 

 

저건 사람이 건너는 현수교인가 보다..

 

 

 

 

 

구로나기 역에서 잠시 정차하여 마주오는 열차와 교행하고 다시 떠난다..

앞에 오픈 칸에 탄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잇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단풍철에 인기 좋은 곳이다..

 

 

 

구로베 제2댐이다..

구로베 제1댐은 1500M 고지에 있는데, 내일 보러 간다..

 

 

 

잠시 교행을 위해 정차한 사이 술취한 사람이 흥에 겨워 차에 내려 사진 찍는다..

역무원이 뛰어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저 양반 2번이나 제지 받았다..ㅎ

 

 

 

 

오늘의 목적지 가네쯔리..

 

 

 

역에서 정종 한잔 한다..

 

 

 

만년설 전망대라고 해서 내려 갔더니 아무것도 없다..

금년 눈이 적게 와서 5월에 다 녹았단다..

그럼 만년설이 아니고 1년설이고만..ㅋ

 

 

다시 들어오는 도라꾸를 타고 내려간다..

 

 

 

관서 전력??

구로베 댐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관서 전력 회사 이다..

일본은 대략 나고야를 중심으로 서쪽이 관서, 동쪽이 관동이다..

관서의 중심은 교토, 오사카, 관동은 당근 도쿄..

전기회사도 관서전력과 도쿄전력으로 나뉘는데..후쿠시마 원전으로 폭탄을 맞은 것은 도교전력이다..

 

 

산수화로 바뀐 풍광을 감상하면서 내려온 길..

 

 

 

 

언젠가 단풍철에 이곳을 다시 방문하여 트레킹을 하면 좋겟다는 생각이 든다..

 

 

 

 

 

묵시아에서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와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는 처음 참석해 본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린다..

2주간의 여행 중 처음, 그것도 여행의 마지막 날에 내리는 비..

날씨복은 타고 났다고 자랑한다.. 

그 비를 맞으며 페레그리노들이 속속 도착한다..


 

 

우리는 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숙소를 정했다..


 

 

 

 


숙소는 다인용과 1인실이 있는데.. 우리는 1인실에서 묵었다..


 

짐을 풀고 공용 식당에 내려와 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밖에 나와 비오는 산티아고를 바라본다..


한 수도사의 꿈, 한 왕의 기원이 세상의 흐름을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고 역사를 바꾼다..

산티아고의 깃발, 스페인의 통일, 유대인 추방, 신대륙의 발견, 황금의 시대, 자본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연기(緣起)..

이 시대..

우리는 어떠한 꿈과 기원을 가지고 무슨 깃발을 들고 스토리를 만들어  통일의 비원을 달성할 것인가?


 

 

 

다음날 아침..산티아고 재래시장을 방문..


 

 

산시몬 다 꼬스타 치즈를 샀다..

이 지역 특산이 훈제 치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나름 께닫는 것이 있다..

코엘류는 산티아고 길의 깨달음으로 쓴 "순례자"에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는 명언을 남기고.

스스로 음악프로듀서에서 작가로 변신하였다..

 

서명숙씨는 산티아고 길을 걸은 후 "우리나라에도 같은 길을 만들고 싶다"는 깨달음을 실천하여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고,

그후 전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키고 아웃도어 산업을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올레길에서 영감을 받아 산티아고 길 걷기를 꿈꾸었던 나..

7년간의 꿈을 회갑 기념으로 걸은 산티아고 걷기에서의 깨달음..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오늘보다 더 젊은 날은 없다

오늘이 청춘의 날이니 오늘 이순간을 즐기며 살라"


 

비행기는 완행인지 빌바오 공항에 내려 이스탄불 가는 사람들을 또 태우고 떠나네...

덕분에 대낮에 멋진  빌바오 공항을 다시 본다..


불황과 솨락의 길에서 시민들이 중지를 모으고 적절한 정보를 활용하여 적시에 전심 전력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그에 맞게 도시를 개발하여 부활한 빌바오의 혁신정신을 배우고 싶다.. 

 

 

다시 장자도 부러워 하는 신선이 되어 구만리 장공을 날아 청구땅에 도착하니

한통의 엽서가 기다리고 있다..

1년전 팔공산 갓바위 느린 우체통에 부쳤던 엽서가 이제 막 도착한 것이다..(終)

 

 

 

 

다시 묵시아로 가다가 또다른 임도를 만났다..

운전하는 드림빌더가 또 들어 간다..

 

 

 

임도가 바다를 따라 유장하게 펼쳐진다..

 

 

아...거기서 묵시아가 보인다..

묵시록에서 계시를 받앗을 것 같은 어감을 주는 묵시아..

바다에 반도처럼 돌출한 가는 허리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포세이돈의 자비없이 살아 갈 수 없는 도시 같다..

 

 

 

 

 

 

 

 

 

 

 

묵시아의 조감에 빠져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성인다..

 

 

저 멀리 요트 한 척..

신화의 시대..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는 것 같다..

 

 

반도 끝의 성당과 등대...우리가 나중에 들릴 것이니 기억해두시라..

 

 

 

끼미노에서 노란 갣 표시는 직진만 있었는데, 유턴 표시는 처음보는 센스쟁이다.

 

 

 

길을 돌아나와 쳐다보니 산 중턱 길이었다..

다시 묵시아로 방향을 잡으니 얼마 안가 입구가 나온다..

 

 

 

 

 

 

 

아..여기도 페레그리노가 천천히 걸어간다..

그들의 순례는 어디서 끝나는가?

 

 

 

일단 동네를 방황하면서 수페르메르카도(수퍼마겥)을 찾다가 적당한 곳을 발견..

거기서 약간의 하몽과 햄, 빵을 사서 점심 준비를 한다..

 

 

 

 

 

 

 

반도 끝 성당..그 앞의 바다에 파도가 거세게 부서진다..

파도를 바라보며 햄에 하몽에 지즈를 얹어 빵과 까바 와인으로 점심요기를 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우리의 여행은 끝낫는데..

대서양의 물결에 아쉬운 마음을 띄워 보낸다..

누군가 말했지..

표면에 떠도는 파도에 집착하지말고

저 밑에 흐르는 해류를 감지하라고...


 

 

 

 


파도 앞에 다짐을 새긴 가족도 있다.. 


헤니, 루, 다비드, 카를로스, 그리고 실비아

우리 그리고 가족들은

부서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닥쳐도...



파도여! 춤을 추어라..

우리들이 그 동안 꿈을 꾸고, 추구하고 이룬 그간의 걷기를 축복해다오..

 

 

 

피니스테레 해변을 출발하여 묵시아를 거쳐 산티아고로 돌아간다..

피니스테레에서 묵시아 가는 길은 순례길의 또 다른 버전이다..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 89km, 묵시아에서 피니스테레 가는 길은 31km, 묵시아에서 산티아고 까지 87km가 된다..

걷기로 하면 10일 정도 걸린다.

 

 

 

 

묵시아 카미노 길을 따라 간다..

 

 

포라의 바다 길..길의 끝..

표시를 보고 해변으로 내려간다..

 

 

거친 파도와 텅빈 모래 사장을 통채로 무료 전세를 주겠단다..

 

 

고요함과 기도를 추구하는 드림 체이서는 이런 거친 파도에 광분한다..

사람이란 원래 음양 조화의 산물이니 이률배반적 요소가 항상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 들여다 보면 어느 한쪽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때가 많다..

그래서 둘이 아니라는 이치란 참임을 알겠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게 다뤄도 모래해변은 쓰다 달다 말이 없다..

침묵의 기술을 터득한 해변 만이 거친 파도를 다스린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국의 꽃들도 색색이 아름답다...

 

 

드림체이서가 자운영 꽃밭을 보고 고향온듯이 반긴다..

자운영 핀 해변의 거친 파도...드림체이서의 고향이란다..

 

 

 

 

피레네 산맥부터 쫓아다니던 노랑꽃은 이 해변까지 따라왔다..

그대의 스토킹 실력은 스페인 최강임을 인정한다..

 

 

 

 

 

이 해변은 경찰이 점검하지 않는 위험한 해변이란다..

파도때문인지 강도 때문인지 모르지만..

 

 

다시 묵시아로 가는 길에 멋진 임도를 발견했다..

묵작정 차를 몰고 들어간다..

그런 배짱은 드림빌더의 장점이다..

 

 


이번에 오붓한 해변이다..

친구들과 캠핑 나온 젊은이들이 놀고 있을뿐.. 


 

 

 

또 다른 임도를 찾아 들었다..

묵시아로 가는 도중 바다로 가는 임도를 들어가면 절경이 등장한다..


 

 

 

 

 

 

 

 

 

 

 

 

 

 

 

 

 

 

 

여기가 프라이아 데 리레스 인가 보다..


  

 

 

 

 

 

 

카페 하나 절경을 독차지 하고 있다..

아니다..갈매기와 공유하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프라이아의 바다를 바라본다..

아무 것 바라는 것도 없고

아무 것 구속받지 않는 시간

아무 것 두려움도 없는 이곳에

파도 소리에 행복이 실려 온다..

 

 

그런데 이 해변의 주인공이 따로 있다..

서핑보드를 타고 거센 파도를 향해 헤염을 쳐 간다..


 

 

 

 

거센 파도가 다가올수록  그는 행복하다..

그는 자유인이다..



다시 길을 가노라니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부른다..

뭔가 궁금하여 길을 비집고 찾아가본다..

자유여행의 재미는 바로 이런것 아닌가? 


 

 

 

 

 

 

 

요리 조리 마을을 돌아 가보니 그 곳은 양식장이 었다..

양식장에 웬 갈매기가 많은지는 모르지만 부산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참으로 다양한 오레오를 만난다..

그렇게 많은 오레오를 보았는데도 드림빌더는 오레오 사진을 찍으라고 권한다..

 

 

한적한 이 길을 걷는 외로운 페레그리노..

이 길은 혼자 걷기에 외롭다..

 

 

 

마을의 담장위로  마주 친 시골 할머니..

동양의 이국인이 신기한가 보다.. 

 

 

묵시아..마치 묵시록에 계시된 땅처럼 성스럽게 다가온다..

 

 

산티아고 경찰서에서의 볼 일도 끝나고 이제 피니스테레로 향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땅끝마을..


그런데, 이곳에 오면 피스테라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피니스테레와 피스테라 ?? 같은 곳인가? 다른 곳인가?

스페인이 공식 지명은 피니스테레이고, 갈리시아의 이름은 피스테라 란다..

선듯 납득이 안간다..

우리 제주도의 지역 이름과 대한민국의 공식이름이 따로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땅 끝에는 등대가 있다..

그리고  등대가 보이는 지점에 순례자의 동상이 있다..

 

 

 

 

 

그는 왜 여기까지 오는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여 미사를 올리면 순례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보통 프랑스 길 800km를 30-40일에 걸쳐 산티아고에 도착한 사람은 몸에 일종의 관성이 생기지 않을까?

몸은 계속 걷기를 요구할 지 모른다..

그런 몸에게 이 땅끝 마을까지 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음을 각인시켜야 몸이 승복하지 않을까?

 

 

땅끝마을 십자가 앞에 선다..

정말 땅끝을 실감한다..

 

 

 

 

작은 새..

땅끝이 온 세상인 저 새..

산티아고 걷기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니스테레는 대담하다..

여기가 0.0km 란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표시를 넘어 여기서 시작하라는 대담한 선언이 아닌가?

 

 

 

대서양에서 새로운 미지의 세상을 꿈꾼다..

산티아고 걷기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을 온전히 구현한 세상은 없는가?

 

 

부디 평화가 지구상에서 승리하기를!!

 

 

험한 세상을 항해하는 그대들..

산티아고 걷기 정신으로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그렇게 마무리하고 조개도 버리고, 신발도 버린다..

강을 건넜으니 땟목을 놓고 가야지...

 

 

 

돌아 서는 길에 임도를 발견하고 올랐더니 장쾌한 풍광이 기다린다..

 

 

 

 

 

 

 

그러한 잠시 피니스테레의 요정이 나타나 우리를 축복한다..

 

 

피니스테레 항으로 갔다..

식당에 자리하고 빠에야를 주문한다..

 

 

 

 

요리가 맛있다..맥주한잔 곁들여서..

 

 

숙박공유프로그램에 접속하여 예약한 집..

번지수를 가지고 집을 찾는데 동네 사람도 잘 모를 정도로 지번이 들쭉 날쭉이다..

겨우 겨우 집을 찾았다..

그런데, 집이 일품이다..

집에 바라보는 풍광도 멋지다.. 

 

 

 

 

 

특히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풍광으로는 내가 본 것 중 제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산보를 나선다..

황홀한 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피니스테레의 아침이다..

 

 

 

 

 

 

 

실제의 길은 끝에서 시작된다..

그래..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듯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면 새로운 인생 길이 열린다.. 

 

 

세계 최고의 화장실을 구경하러온 갈매기를 인터뷰하고..

슬슬 피니스테레 해변을 구경하러 간다..

 


스페인 갈리시아 시골의 상징 농작물 창고..오레오

우리나라 지자체 가로등 처럼 각자 독창성이 충만하다..


 

 

 

해변 사구를 걸어간다..

오..페레그리노들이 지나간다..


 

 

 

 

 

이 곳의 해변의 삶도 천국은 아니다..생명은 고단한 법..


 

터벅 터벅 걷는 순레자..자전거를 탄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순례길의 마지막을 위로한다..


 

 

 

그중에 한 순례자와 이야기 했다..

이 사람은 한 달 가량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단다..


 

이 바닷가의 조개들은  바로 순례의 표시로 쓸 수있다...


 

 

 

 

아름다운 피니스테레..

오랫동안 생각이 날거야...


 

 

미사는 놓쳤어도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천년의 순례길을 펼치신 법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엇다..

 

 

성당 한 부분에서 황룡사 9층탑을 본 느낌??

그러고 보면 카톨릭과 불교는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염주와 묵주

참선과 묵상

선원과 수도원

선사와 수사

 

 

711년이후 이슬람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이 정복된 시절..

반도 북서부 한 귀퉁이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의해 기독교가 잔명을 보존하고 잇었다..

813년 갈리시아의 수사 펠라요가 반짝이는 들판 작은 동굴에서 산티아고와 두 제자의 무덤을 발견하였다..

교황 레오 3세가 성지로 선포하고 아스투리아스 왕 알포소 2세가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다..

852년 클라비호 전투에서 흰말의 전사 산티아고가 나타나는 기적이 있어 전투에 승리한다..그 이후 산티아고는 레콩키스타(국토수복운동)의 상징이 된다..

977년 이슬람의 칩입으로 성당은 파괴되고 종은 약탈되엇으나 1078년부터 다시 성당을 지어 그후 증개축이 이루어진다..

1236년 코르도바를 수복한후 빼앗긴 종의 변형물을 회수해와 다시 종을 주조하여 우측 탑에 걸었다..

 

 

 

 

커다란 발조각은 순례자에 대한 위로이라..

 

 

성당 안에 향로 미사에 쓰는 향로가 그대로 달려 있다..

향로는 원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 때 소독의 기능을 담당했는데, 이제는 미사의 권위를 상징한다..

 

 

 

 

 

 

 

 

 

산티아고 성인 뒸쪽으로 올라가 참배하는 길이 있다..

그곳에서 성인을 껴안는 사람도 잇다..

저 사람도 왼 손에 순례인증서를 넣은 통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례자인 것 같은데, 산티아고 성인을 껴안으면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지하에는 산티아고 성인의 무덤이 있다..

 

 

 

야고보..산티아고..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

세상의 끝까지 전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당시 아틀라스의 기둥으로 알려진 지부로올터를 지나 스페인 땅까지 전도를 갔다가 돌아와

유대왕 해롯에게 참수당한 성인..

그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배에 태우고 표류하다 산티아고 근처 피니스테레 바닷가에 표착..

당시 그곳을 지배하던 여왕이 무덤을 세워주엇다..

그후 813년 한 수사에 의해 그의 무덤이 재발견되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고 역사로 구현된다..

말한 대로 된다..

생각이 운명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간절한 생각, 꿈, 말이 있는가?

 

 

성인의 법력이 원만구족하여

산티아고 순례길에 알베르게와 바르가 즐비하니

남녀노소 친친들이 남부여대하고 희희낙낙 걷는

지상천국을 벌여놓았다

그 걷기의 향연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이제 사라다와 뿔뽀로 점심 식사를 하고..급한 현안을 해결하러 간다..

경찰서를 찾아가 스마트폰 도난 신고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찾아간 경찰서..

드림 체이서 영어 실력도 그런데, 스페인 경찰의 영어 실력은 더 그렇고..더구나 요령 부득의 설명..

참다 못한 내가 콩그리시로 문제 해결..

" Her handphone was stolen, She need police report."

Oh yeh..

 

 

하지만 스페인 경찰과 드림체이서의 조서 작성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운동화를 벗고 벤취에 누워 끝나길 기다린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떠났다..

그 이유는 11시까지 도착하여 인증을 받고 오후 1시 성당 미사에 참석하려는 이유였다..

 

 

여명에도 새벽달은 당당하다..

 

 

 

산티아고 공항을 지난다..

 

 

표지판 위에 누군가의 떨어진 신발..

 

 

 

 

 

아침 햇살이 빨리 가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아침 식사라도 해야지..

콘차 바에서 초코우유에 빵 그리고 삶아 온 감자로 아침을 한다..

 

 

 

 

 

 

 

 

고소산으로 올라가면 우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문 기념탑을 만난다..

 

 

 

 

 

 

 

 

 

저멀리 산티아고 시내가 보인다..

 

 

 

 

 

순례자의 동상이 손을 흔드는 곳을 바라보니 산티아고 성당이 보인다..

 

 

 

 

 

 

 

시내에 들어오니 기사 순례자의 동상도 잇다..

 

 

 

 

슬리퍼로 무장한 순례자의 발길도 당당해진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서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본다..

드디어 도착했다!!

11시 이전에..

내 생애 가장 빨리 걸은 날이다..

 

 

 

 

가운데는 산티아고 성인이고,  아래 좌우에 제자 테오도로와 아타나시오의 상이다..

우측 종탑은 보수중이라 가려져 있는데, 거기에만 종이 걸려있다..

산티아고 성당은 977년 이슬람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종은 녹여 코르도바의 촛대가 되었으나

1236년 코르도바를 탈환할 때 촛대를 이슬람 포로들의 등에 지워 다시 이곳으로 옮겨와 종으로 주조하여 달아 놓았단다..

 

 

 

 

 

광장에 누워 대성당을 바라본다..

도착하여 감격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인증 받으로 갔더니..

 

 

 

 

 

글쎄 이렇게 줄을 섰다..

우리 직전에 버스 타고 온 사람들이 가득 몰려 왔단다..

지루한 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인증을 받았으나 오후 성당 미사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산티아고 순례 인증서를 받고 다시 대성당 앞에 서서 크리덴시얄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프랑스 생장 - 산티아고 800km의 길 중 200km를 걸었다..

 

 

 

 

때 맞추어 악대가 환영 퍼레이드를 벌인다..

축하한다..드림 메이커.. 드림 체이서.. 드림빌더..

처음 산티아고 걷기를 입에 담았을 때는 스스로 반신반의하였는데..

그 말을 반복하니 계획은 구체화 되었고..드림빌더 같은 귀인을 만나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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