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을 떠나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가는 길..

벌써 씩씩하게 행군하는 페레그리노들..

 

 

그런데, 운전하던 드림빌더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오란다..??

성당입구를 찍자 종탑을 가보란다..??

어!! 황새들이..

 

 

종탑을 각자 분양받아 살고 있다..황새 아파트..

우리나라에서는 왜가리, 백로 등과의 경쟁에서 도태된 황새가 여기서는 교회에서 조차 칙사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왜??

서양에서는 황새가 아기를 날라 준다고 하니, 박대할 수 없을 터..

특히, 이 곳은 레콩키스타를 달성하려면 인구 증가가 필수..그러기에 순례자들도 오면 특혜를 주어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다고 하니..

황새야 말로 귀한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삼신할미가 아기를 점지해준다고 하지..

하지만, 요즘 삼신할미를 구박하다 못해 상주 나각산에 가니 삼신할미를 마귀할미로 묘사하고 있더라..

 

스토리가 꿈과 에너지를 낳고, 꿈과 에너지가 창조를 낳는다..

스페인에서는 스토리에서 황새가 살아 남았고, 우리는 황새도 죽고, 삼신할미도 죽었다..

 

 

 

 

드림빌더가 점심 먹을 곳을 검색한다..

싸고 질 좋은 순례자의 정식으로..

그런데, 순례자의 정식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인근에 검색되엇다..

"주점 순례자의 정식", 아침식사, 저녁식사 다 된다고 써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하는 식당..

3가지 요리를 시켰는데 제법 맛있다..

1인당 9유로..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정갈하고 맛난 특템 식당..

 

 

 

 

이 집 화장실 표시도 예술작품..ㅎ

페르난도 보테로 스타일..

 

 

오르비고의 다리로 갔다..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로마시대 다리 위에 증축한 것..

 

 

 

 

레온 출신의 기사 돈 수에로가 미인 귀족부인에게 모욕을 당한후 분노하여 이 다리를 막아서서 이 다리를 지나가려는 기사들을 상대로 다리와 명예를 위해 결투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한달 동안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다리를 지켜냈다..

그뒤 그는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 사랑에 대한 분노를 버리고 명예 회복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전에 누가 말했지..

단막증애하면 통연 명백하리라..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번뇌를 버린다면 길(道)는 명백해진다고.. 

 

 

1434년 성년(聖年)을 기념하는 마상창술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를 기념하여 이 다리를 명예의 통로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성년(聖年)??

구약성서에 보면 50년마다 희년을 기념하는데, 이 기회에 채무를 탕감하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잠시 맡기신 소작의 표지로, 매매한 토지를 반환하는 등으로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였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이를 특별한 은총의 해라는 의미로 수용하여, 성년 또는 희년이라는 의미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최초로 1300년을 성년으로 선포하고, 100년마다 성년을 기념하도록 하였다. 교황 클레멘스는 50년으로, 교황 우르바노 6세 (1378~1389년)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와 같은 33년으로 단축시켰는데

이 다리에서 열린 마창대회는 33년마다 돌아오는 성년을 기념하던 행사였다..


 

 

간판에  el passo honrosso 명예의 통로 라고 써있다..

무슨 가게인가 했더니

estanco 전매제품 을 판단다..담배, 우표 등등 ..

 

 

산토 도밍고의 닭이 여기서도 서있다..

저 닭이 울며 날아갈 때 밝혀질 진실이 있을려나?

 

 

다리를 건너면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이다..

오스피탈이란 병원이라 뜻..

예전에 이곳에 성 요한 기사단이 운영하는  순례자를 위한 구호소, 병원 등이 있었나 보다..

이곳에서 요양과 휴식을 취하여 회복한 순레자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곤 했겠지..

 

 

 

마을엔 아구아(물)을 공급해주는 시설이 넉넉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일종의 초인종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길이 좌 우로 갈리는데, 좌측으로 갓더니 차길 옆으로 간다..

자전거는 다 이쪽으로 온다..

 

 

차길 옆이라도 다 보행자 길을 따로 만들어 놓는 것이 산티아고의 정신이다..

아무리 현대화, 도로화되더라도 흙길을 걷는 정신이 사라지면 안된다..

그것이 원시 사피엔스의 정신과 원시 기독교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래를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에서 양떼를 만낫다..

고슬 고슬한 털...

 

양떼가 어린 백성으로 보이는가?

그러면 당신은 목자나 목민관 스타일이다...

 

들풀에서 민중을 느끼면  사회운동가가이 될 것이고

반수(盤水, 쟁반의 물)에서 민중의 특성을 느끼면, 언론인나 정치인이 되리라..

 

 

 

 

성 삼위일체성당 앞 알베르게에는 벌써 한 페레그리노가 일찌감치 휴식을 취하고 잇다..

 

 

 

 

 

아스토르가로 가는 이 길 공사중인데..포장하려고 하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흙길이 보존 되기를..

 

 

 

 

 

저 멀리 설산이 다시 보이니 붉은 황토길에서 기와 위안을 받는다..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아득히 먼 길을 하늘이 반으로 명암을 나눈다...

 

 

무정한 돌도 모으고 디자인하면 따듯한 사랑이 된다는 진실.. 

 

 

 

 

 

세종대왕님 덕분에 쓰는데 강한 한국인은 어디곤 쓴다..

적자생존의 원리대로 언젠가 지구를 석권하리라..

 

 

 

길가에 소망의 집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무인판매대가 있다..

semilla (seed) 씨앗?

사랑의 씨앗을 심어보라?

좀 도네이션하라는 말이겠지?

 

 

 

그래..우리는 위와 아래가 서로 손을 잡아 주고,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워낼 줄 알아야한다..

꽃을 피워내는 능력이 감소하니 자연 출생율도 줄고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사회가 봄물처럼 만물을 키워내지 못하고 가을 낙엽처럼 바스락 거리는 것이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모두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걸어가자

 

 

레온의 숙소에서 바라보면 중앙 광장이 보이고 그너머 레온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도심의 숙소에서 자고 바로 중심가로 가는 기분은 남다르다..

 

 

 

 

레온 대성당의 첨탑의 오돌도돌한 돌기는 마치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의 조상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레온..

로마 시대 로마 군단(레기온)의 주둔지였기에 도시 이름이 레온이 되었다..

로마 멸망후 서고트 족이 점령하여 세운 서고트 왕국이 사라센에 의하여 점령당할 때 이곳도 그 운명을 피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이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고 인접한 이곳을 회복하여 아스투리아스 - 레온 왕국이 되었을 때 수도가 되었고,

이후 기독교도의 국토수복운동(레콩기스타)의 구심축이 되었다..

 

 

문입구에 "눈의 성모상"으로 알려진..원명은 "하얀 성모상"..

 

 

 

 

고딕양식에 스테인글라스 장식..

장엄하고 화려하여 중세 시대 어린 백성을 감동시키고도 남았겠다..

 

 

 

 

 

 

 

 

 

성당을 둘러보다 문득 성모상의 예수님의 손가락을 보고 놀랐다..

어두운 조명과 내 시력을 탓하며 줌렌즈로 자세히 살며보고 한 손가락이 아니라 두손가락임을 알고 기우를 버렸다..

 

 

 

 

 

성당에 걸린 이 사진의 건물은 어디에 있을까?

뭔가 특이한 느낌??

맞다!!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그런데, 정작 레온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카사 데 보티네스를 보지 못했다는..

 

 

출구에서 보내는 인사..

Bon Voyage..여행 잘 다녀가세요..

 

 

 

 

레온을 탐내는 드림체이서에게 다시 레온 공주자리를 가자했다..

그래서 몬하르딘의 영주이자 레온의 공주가 되었다..

 

 

 

 

왕관을 쓴 숫사자...레온 왕국의 문장이다..

문장을 자세히 보니..거시기가 쎄야하고 말빨이 좋은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네..

이해가 안된다고??

자세히 들여다 보시라..ㅎㅎ

 

 

 

 

거시기와 말빨이 센 사자의 문을 지나니 레온 구 성벽이 완연히 보인다..

 

 

요기는 로마시대 성벽이 남아있고..

 

 

 

 

 

 

 

El mundo es una mierda.

세상은 똥이다..

구린내가 난다는 말이겠지..

뭐..똥 냄새 안나는 세상은 먹지도 자지도 않는 천국이겠지..

 

 

요거는 중세시대 성벽이다..

 

 

 

베르네스가 강의 사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르비고의 다리로 향한다..

 


산토 도밍고에서 걷기를 마친 후 차로 부르고스로 이동..산타 마리아 대성당에 내렸다..

참으로 웅장하다..스페인 세비야의 히랄다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르고스는 스페인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당시 구심점인 레온과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였으니 우리로 치면 경주 쯤되는 고도이다.. 

 

  

1035년 몬하르딘의 고성을 정복했던 왕의 후손인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세웠다...

1090년 엘시드가 부르고스에 자리잡고 무어인들의 기세를 꺽기 시작했다..

200년후 카스티야는 페르난도 3세 엘 산토 치세에 레온과 병합되어 카스티야 이 레온 왕국이 된다..

 

 

 

 

 

 

 

 

이 성당 중앙 별모양 등 아래 엘시드 부부의 묘가 있다..

엘시드..찰턴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어릴 적 기억에 성안으로 빵을 쏘아 올리 던 장면과 죽은 엘시드가 해변를 달리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던 영화..

산티아고로 가기 전 다시 그 영화를 보았다..


 

엘시드..그의 본명은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이고, 1040년 부르고스 근처 비바르에서 탸어났다..

그가 죽을 때 불린 이름은 엘 시드 캄페아도르(El Cid Campeador)였다..

 

엘 시드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의 관사인 엘(El), 그리고 아랍 방언으로 시드는 주군, 영주, 경(Lord)'이라는 뜻이고, 

'Campeador'는 중세 라틴어로 개략적인 의미는 투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엘 시드 캄페아도르는 3개국어로 조합된 "투사 영주"라는 뜻이 된다..

 

 

대리석 바닥 밑에 그의 묘가 있다..

엘 시드와 도냐 히메나의 묘라는 안내판이 써있다..


 

그는 페르난도 1세의 궁정에서 큰 아들 산초 왕자와 함께 자랐다.

페르난도 1세 죽으면서 큰아들 산초 2세에게는 카스티야왕국을, 둘째 아들 알폰소 6세에게는 레온을 물려주엇다..

산초 2세는 카스티야 왕위에 오르자 1065년 22세의 엘 시드를 군사령관격인 국왕 기수(armiger regis)로 임명했다.

1067년 그는 산초를 수행하며 무어인의 사라고사 왕국을 공격하여 협상 끝에 카스티야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산초 2세는 동생의 나라 레온을 합병하기 위해 1067년 동생 알폰소 6세와 전쟁을 시작하여 알폰소를 왕위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산초 2세가 1072년 사모라를 공격하다 전사하고(영화에서는 알폰소를 숨겨준 여동생의 성을 공격하다가 위장 항복한  적장에게 암살됨)

오히려 알폰소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자 엘시드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1074년 7월 그는 알폰소 왕의 조이자 오비에도 백작의 딸인 히메나와 결혼했다.

영화에서는 둘 사이의 로맨스가 업치락 뒤치락하다가 이루어진다..

그뒤 엘시드와 알폰소 6세 사이의 협력과 반목의 쌍곡선이 교차하면서 엘시드의 무공이 펼쳐진다..

 

1092년 발렌시아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엘 시드는 이성을 포위해 공격을 퍼부어1094년 5월 발렌시아에 입성했다.(영화에서 성안에 빵을 쏘아 투하하는 장면은 이때이다)

그리하여 발렌시아에서 엘 시드는 아내와 함께 3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으나 1099년 북아프리카의 무어족 무라비트 왕조가 발렌시아를 침공하자, 이를 방어하던 중 그해 7월 10일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영화에서는 죽은 엘시드를 말에 태우고 성밖으로 공격하여 승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으나 실제는 다르다)

그의 죽음으로 발렌시아군은 사기를 잃고 성은 함락당했으며 이후 1102년 2월 5일 탈환될 때까지 125년 동안 이슬람 도시가 되었다.

그의 아내 히메나는 엘 시드의 시체와 함께 부르고스로 달아났고 그후 그곳에 묻혔다.

두 사람은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는데,

아들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북아프리카에서 쳐들어온 이슬람교도 알모라비데인들과 싸우다가 콘수에그라 전투(1097)에서 전사했다.

 




 

 

 

이 성당은 크레덴샬을 발급 받은 순례자에게는 입장료를 싸게 해준다..

 

 

 

 

출구에 현대적 천사가 서잇다..

청바지에 검은 피부, 검은 날개를 가진..

그동안 왜? 우리는 천사가 금발에 흰옷을 입고 하얀 날개를 가졌다고 상상했을까?

왜 우리는 예수님도 둥글 둥글한 아랍 풍의  모습이 아니라 치렁치렁한 머리에 얼굴이 갸름하고 콧날이 선명한 그런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을까?  

 

 

부르고스 성당를 나와 길을 떠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메세타 고원을 지나 카스트로헤리스..


 

카르타 헤리스가 멀리서 보인다..

언덕 위에 고성.. 저 위에 서면 황야 천리가 한눈에 들어오겠지..


 

 

 

동네 어귀에서 고성를 바라보면 카미노를 걸었다..

석양에 물든 고성과 성당..참 고즈녁한 풍경이다..

 

 

 

 

 

 

 

 

 

 

 

 

 

 

  

이런 길을 건너뛰고 저런 길을 달려 프로미스타로 간다..

  

프로미스타 중앙에 산 마르틴 성당..주변에 알베르게가 있다..

거기서 한국인 여자 순례자를 만나 담소하면서 라면 1봉지를 분양..디게 좋아한다.. 

 

 

 

1066년 세워진 산 마르틴 성당...

중세 시대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베리아 반도와 다른 유럽 여러 나라를 이어 주는 길이었다.

그래서 수세기 동안 이 길통해 문화, 종교 정보가 소통되었다..

당시 새로운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전파되어 아름다운 성당이 탄생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으로는 이곳 프로미스타의 산 마르틴 성당, 레온의 산이시도로 성당,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있다.

나바라 왕국의 왕 산초 엘 마요르의 왕비가 성당을 짓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고, 왕비의 기도가 통했는지 유럽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날라온 석재로 이 성당을 지었다 한다..

 

꼭대기를 장식한 것은 수닭이다..

이베리아에서는 소꼬리가 되기보다는 닭대가리가 되기를 원하나 보다..ㅎ

 

 

 

 

 

 

 

 

프로미스타를 떠나 레온으로 향햇다..

레온 대성당 근처의 거택(??) 2층에 여장을 풀었다..

 

 

 

 

사진빨은 끝내준다..

실제는 목조에 좀 낡긴 했어도 왕년 잘나가던 부자집 거택으로 쓰인 면모가 엿보이는 그런 숙소였다..

 

 

 

 

 

 

 

산티아고 걷기 5일째..숙소 밖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아침부터 걸어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 일행은 차량으로 이동..

아소프라에서 부터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까지 16km 구간을 걷는다..

일단 바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세요(스탬프)를 찍고..

 

 

 

 

자..출발..

아소프라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앞서 가는 순례객의 베낭을 눈여겨 본다..

베낭에 덜 마른 빨래가 달려있다..

순례자는 전날 숙소에 도착하면 우선 빨래부터 해서 널어 놓고 목욕하기 마련인데..

다음날도 빨래가 마르지 않으면 걷어서 배낭에 매달고 걸으면 저절로 마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출발할 때 큰 바늘을 30여개 사가지고 갔다..

숙소에서 빨레 널 때도 유용하고, 배낭에 걸어 다닐 때도 유용하다..

 

 

 

표지판에 쓰인 한글...

부엔 까미노..

부엔= good, 까미노 = 길.. 좋은 길..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즐거운 걷기 되세요..

이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한다..

올라!  안녕

부엔 까미노..

 

이길에서는 반대반향의 표시가 없다..

왜냐면 모두 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그들은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일종의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 일행 중 드림빌더는 사정상 매번 코스 역방향으로 걷기에 더 많은 인사를 하고, 질문을 받았단다..

미안하고 고맙다..

 

 

 

 

 

노란 화살 표시..

그 집요한 등장..친절한 가이드이자 어쩌면 화두같기도 하다..

표지가 사라지는 지점까지 말머리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한다..

 

 

 

 

돌 표시도 있네..말은 없어도 무슨 의미인 줄 다안다..

 

트레킹화 안으로 돌맹이가 들어와 괴롭힌다..

멈추고 신발을 벗느라 지체하니

드림체이서가 지청구다..

"걷는 자세가 틀려서 그렇다구..걷는 자세를 고쳐야 돼는겨~"

"아니, 내 생각은 다르네..

하찮은 돌맹이도 내 품으로 뛰어들게 하는 넓은 포용력을 칭찬해야 하는거 아닌감?"

그래 웃자..

세상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로 흘러간다..

 

 

 

조안 빅토르가 2015. 2.4. 이길을 걸었다..

해리는 이길에서 자신을 달랬다..

You can do it!!

할 수 있어..해리..

 

 

 

 

참 유장한 이길..

만주 벌판 가보지 않았어도 이렇게 길고도 긴 길이 있겟지??

 

 

 

 

 

 

 

요즘 카미노에는 사설 알베르게가 많이 생겨 광고도 많다..

샤워..세탁, 전자렌지, 식사, 와이파이가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아님, 저렴한 공공 알베르게로 갈테니..

 

 

여기도 봄날의 대변인은 유채꽃이다...

 

 

 

길가에 좌판이 있다..

그러나, 철학과 당당함이 있다..

스페인 젊은이의 60%가 실업자란다..

그래서 자기도 직업이 없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대로 지불하고 가란다..

도네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자신의 행위를 좌판 행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사회구조적 변화 속의 피해자임을 암시하면서 기부하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수입에 대한 세금납부를 거부하기로 한듯하다..

 

어디, 스페인 뿐이냐, 전세계 상위 2% 안의 선진국만이 청년실업문제에서 자유로울 뿐이다..

아마 스페인 역사상 완전 고용의 시대는 콜럼부스가 열었을 것이다..

통일 스페인의 첫발은 빗투성이..통일 왕국의 여왕 이사벨라는 그 탈출구를 콜럼부스라는 벤처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얻게된다..

콜럼부스 이후 남미대륙을 개척하러 떠난 스페인 젊은이들..대표적인 청년이 32살에 멕시코의 아스텍제국을 멸망 시킨 코르테스..

그 시절 부귀영화를 꿈꾸며 신대륙으로 떠난 젊은이들..원주민의 피와 눈물 위에 자신과 조국은 부자가 되었다. 

 

콜럼부스 이전에도 젊은이들의 위기는 있었다..

좁은 땅, 아버지와 형의 기득권을 넘을 수 없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바이킹..

그들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해 떠났다..

누가 그들에게 고분 고분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겠는가?

그들은 서, 남부 유럽을 휩쓸었고..그 땅의 왕과 제후가 되었고...그 핏줄은 지금까지 영국 왕실에 흐르고 있다..

 

 

우리 젊은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해방이후 우리나라에는 3대 불가능이 있었다..

1. 마이카 시대..

2. 평화적 정권교체..

3. 통일..

 

그런데, 앞 2가지, 마이카 시대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누구도 불가능이라고 체념하는 과제에 도전하라..

누가 하겠는가?

바로 당신..

젊은 그대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날..

스페인의 통일, 독일의 통일을 능가하는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인구 7000만명에 4만불 소득을 꿈꾸는 IT강국의 스마트 대한민국이 아시아 경제연합을 주도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하여 안중근 의사가 꿈꾸던 동양평화론의 주도국이 되리라..

 

 

 

산티아고 길에는 동물도 함께한다..

주인 잘 만난 개들은 함게 걸어가고..

 

 

 

 

아기는 걷기 마니아 엄마 덕에 최연소 산티아고 순례에 도전한다..

엄마와 함께하면 어디서나 언제나 즐거운 모양이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 천진불..

 

 

 

골프장도 순례자에 대한 배려로 식당을 개방한다..

이 식당에서 빠에야를 먹었는데, 직전에 간식을 하였기에 1인분만 시켜 둘이 나누어 먹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1인분씩 먹느라 고생..

 

 

 

 

 

 

 

 

 

 

2015. 11. 6. 스위스 사람 엘리아스가 지나갔다..

그는 순례길을 걸을 운명을 타고 났다..

그의 이름을 준 사람이 구약성서의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엘리아(엘리아스)는 B.C. 9세기경의 이스라엘의 예언자이다..

그는 사레파테의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부활시켰으며, 카루메르 산정에서 제단을 만들어 바알 신의 사제와 싸우고, 회오리 바람과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며, 남은 옷과 함께 제자 엘리사에게 기적의 힘을 주었다 한다.. 

 

 

 

 

 

가늘고 길게..내 인생철학과 같은 이 길에서..떡하니 누워 자유를 만끽하는 그대..

천국이 그대에게 있으라..

 

 

 

왜 배낭과 지팡이만 보일까요?

그 이유를 알면 댓글에 달아주세요..

후사합니다..ㅎ

 

 

 

 

 

 

아득하게 보여도 끊임없이 가다보면

마침내 다가가게 되나니..

어디 길 뿐이랴..

 

 

 

드디어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했다..

 

 

 

이곳 성당에는 전설이 있다..

부모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청년이 이 마을에 이르러, 동네 처녀의 유혹 거절하였다가 앙심을 품은 처녀의 모함에 빠져 절도죄로 교수형을 당하였다..

부모는 참담한 심정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다시 이 마을에 들렀는데, 그 때까지 교수대에 매달려 있던 아들이 살아있었다(물론 도밍고 성인의 가호로).

이 사실을 영주에게 알렸더니 마침 구운 통닭으로 식사를 하려던 영주가 말하기를, "만약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이 식탁의 구운 통닭도 살아 날것이요" 하니  정말 통닭이 살아나 홰를 치며 울었다..

청년은 교수대에서 풀려나 부모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구라같은 전설을 뒷바침하기 위해 15c 부터 교회에 닭장이 세워졌고, 그 속에 키우는 닭의 울음 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단다..

 

 

 

 

 

정말 안에 닭이 들어있다..

 

 

포르투칼에도 수탁(갈로)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성당옆 종탑에 올라갔다..

 

 

 

 

 

 

저 곳은 우리가 걸어 온 길이고..

 

 

저곳은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로스 아르코스를 떠나 나헤라로 이동한다..

 

 

 

나헤라 알레손의 롤랑의 언덕..뽀요 롤단..

프랑스는 로랑(Roland) 이라 하는데 스페인은 롤단(Roldan)라고 표기한다..

롤랑이 프랑스 기사이니 프랑스 표기가 맞겠다..

8c 샤를 마뉴 대제의 기사인 롤랑이 아랍의 거인 페라구트와 싸워 이긴 전설의 장소..

 

 

롤랑과 그의 기사들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서 알레손에 묵게 되었다..아침 일찍 일어나 언덕 전망대로 향했다..

거기서 프랑스 군의 리더는 나헤라의 성을 보앗다..

그성의 영주는 페라구크라고 불리는 시리아 출신의 거인이었다..

9피트의 키에 큰 코, 4사람의 힘을 가진 거인이었다..

그는 프랑스군에게 도전햇고 롤랑은 이를 받아들였다..

싸움은 나헤라 성과 알레손의 전망대 중간 지점 둔치에서 시작되었다..

말을 타고 몇시간을 싸운 후에 두 사람은 휴전했다..

거인은 롤랑의 힘이 좋다고 하면서 싸움을 끝내자고 했으나 롤랑은 거절했다..

싸움은 2일 밤낮 계속되엇다..

거인은 롤랑을 쓰러뜨리고 200키로의 힘으로 덮치려고 했다..

그 때 롤랑은 거인의 약점이 배꼽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렵사리 단도를 뽑아 배꼽을 찔러 거인을 죽였다..

그 결과 아랍군은 나헤라 성에서 철수했고, 롤랑은 기독교 병사중 최고의 전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저 언덕이 롤랑의 언덕인지는 모르겠다..

롤랑의 이야기는 중세 기사 설화로 널리 유포 되엇고, 그 흔적은 산티아고 길에서 피레네 산맥의 롤랑의 샘, 론세바예스, 그리고 이곳 롤랑의 언덕 까지 도처에 널려있다..

 

 

 

이곳에서 나헤라 가는 어디에선가 결투가 잇었다는.. 

 

 

 

사라센의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750년 무렵 북서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남은 유일한 가톨릭교회 국가였다.

812년에서 814년 무렵 알폰소 2세는 갈라시아를 점령하면서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를 명분으로 샤를 마뉴 대제와 교황이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승인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알폰소 2세가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 세워졌다.

그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계속된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성지의 수호라는 명분이 더해졌다.

 

 

라 리오하 지역은 포도밭이 즐비하다..

리오하 와인은 스페인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리오하 주의 주도인 로그로뇨로 갔다..

차를 주차하면서 주차코인 넣는 법을 몰라 쩔쩔메는데 지나가던 여자가 참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여행가면서 고마운 사람을 만나면 선물하려고 준비한 책갈피를 그 여자의 두아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일단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음식이 제법 맛있다..

화장실에 갔다온 드림체이서가 화장실에 웬 남자가 쳐다 본다고 해서 가봤다..

 

 

남자 화장실 입구는 등산화..들어가니 ㅋㅋ 여자가 돋보기 들고 쳐다보네

 

 

 

여자 화장실문은 하이힐 그림..안에는 이넘이 쳐다본단다..

 

 

 

저녁 먹고 리오하 와인 사러 어슬렁 거리다가 무슨 공연이 있어 들어갔더니 초딩들 음악회가 잇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감상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어려서 부터 공부만 강조할 께 아니라 이렇게 부모와 자식이 문화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

 

 

 

 

 

 

드림빌더가 여기 저기 끌고 다니더니 와인가게에 들러 제법 유명하다는 와인을 구매한다..

 

 

 

그리고 나바레테로 이동하여 숙소를 찾았다..

 

 

작은 동네 허름한 외관인데..안으로 들어가니 반전...

 

 

입구가 무슨 궁전계단 같고..식당과 침대..세탁기 까지 깔끔하고 맘에 든다..그것도 저렴한 비용으로..

 

 

 

 

거기서 밥을 하고..미역국 끓어 먹으니 배는 장공을 날아 순식간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우리 일행은 차를 렌트를 했기에 짐도 여유가 잇어 이참에 솥단지와 각종 밑반찬을 들고 갔다..

그래서 하루 중 2끼는 현지식으로, 한끼는 밥이나 라면으로 해결하니 배와는 잘 타협이 되었다.. 

 

 

 

다음날..우리는 아소프라로 이동하여 걷는다..

 

 

몬하르딘에서 로스 아르코스 가는 길..

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길은 밀밭이 펼쳐진다..

 

 

 

 

평탄하면서도 구비 구비 돌아가는 밀밭 구릉길은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는 걷는 기분이랄까?

 

 

또 돌아 보니 몬하르딘이 멀리까지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다..

스페인 걸으며 처음으로 기시감과 진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로스 아르코스 가는 길은 지리산 둘레길과 같으면서 더 넓고 길고 유장하다..

 

 

 

이 순탄한 길에서도 죽음을 맞은 분이 있다..

테아 오세아..63세

2015. 3.24.

날씨로 보면 지금 보다 더 쌀쌀한 기후였을 테고..생장에서 부터 걸었으면 6일을 걸어 왔으리..

그의 심장이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나 보다..

Rest in peace.

 

 

 

 

길 중간에 보카테리아 바가 있다..

스페인에는 ~테리아가 많다..

카페테리아..보카테리아..핀초스테리아...타파스테리아..

잠시 쉬면서 슈모 데 나랑하 (오렌지 주스) 한잔하고 크레덴시알에 세요를 찍고..

 

거기서 서울서 온 2사람을 만났다..친구사이인 그들은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어 이곳까지 7일째 걷고 있다...

참으로 유쾌한 분들이다..

 

 

 

 

 

 

이분들은 프랑스 유학중에 불현듯 산티아고 걷기에 나선..그러나 준비가 덜된 여대생을 케어 하면 걷고 있다..

여대생은 신발을 너무 타이트한 것을 신고..평소 걷기 훈련이 덜되어 물집이 생기고 절룩 거리며 걷는다..

장기간 평지를 걷는 도보에는 한 치수 큰 신발에 깔창을 하나 더 까는 것이 좋다..

드림메이커와 체이서는 그렇게 해서 2주동안 걸어도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

 

 

밀밭사이 외줄기 길로 남쪽로 가는 길에서 박목월의 시 "나그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정말..구름에 달가듯이 걸엇다...

 

 

 

다시 서울 분들을 만났다..

여대생은 뒤처지고..이분은 잠시 기다리고 있다..

 

 

박화목 시 보리밭 노래도 생각나고..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옛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이렇게 유장한 길을 걷다보면

길이란 걸어서 체험하는 것이지 생각이나 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어찌 길뿐이랴~

장자는 말한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

도란 행하여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드디어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

 

 

 

 

 

마을 중앙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아름답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문..포스탈 데 카스티야..

 

거기서 산초 4세를 만난다..

그는 몬하르딘을 점령한 산초 가르세스 1세의 후손이고, 광개토대왕 격인 산초 3세의 손자..재위 1054~1076..

산초 3세에 의해 분할된 왕국의 종손 격인 나바라 왕국의 왕인 아버지가 형제간의 내전으로 전사한 뒤 어린 나이로 등극하였으나, 그는 카스티야의 장군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 즉 엘시드가 이끄는 카스티야의 군대에 라부레바(La Bureba), 알타 리오하(Alta Rioja), 알라바(Álava) 등을 빼앗겼다.

결국에는 동생에게 살해되고, 나바라 왕국은 쇠퇴하게 된다..

 

 

산티아고 걷기 4일째 오늘은 몬하르딘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봐도 고성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삼국지의 유비일행이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하여 흩어진뒤 장비가 숨어들어 산적질하던 망탕산 산채가 저런 곳에 있었음직하다.

 

 

 

고성의 자태에 매료되어 일단 산티아고 길은 제쳐주고 몬하르딘 성을 점령하기로 했다..

 

 

 

 

 

 

 

 

 

 

 

 

성하 마을 입구에 와이너리가 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을 청하고 포도주를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주인이 친절하게 맞아 이것 저것 설명하고 포도주도 판다고 한다..

 

 

 

그날 구매한 와인 카스티요 몬하르딘..레드 와인

 

 

 

몬하르딘에 있는 저 고성의 이름은 산 에스테반 또는 산 에스떼반 데 데요 성(Castillo San Esteban de Deyo)이라고 불린다..
10c 초 나바라 왕조를 연 산초 1세..산초 가르세스가 이슬람으로부터 이곳을 탈환하여 에브로 강 유역의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고,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수레를 가속화 시켰다..그는 이 성에서 묻혔다..

 

 

마을에 보이는 성당은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이다..

산초 1세는 이슬람군과 싸우기 전날 나타난 십자가를 숲 속에 숨겨 놓고(승리를 자신못하여 패배시 뺏기지 않으려고) 이슬람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뒤 다시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후 목동이 발견하였는데 그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산 에스테반 성으로 오르자 넓고 아름다운 땅이 전개 되기 시작한다..

 

 

 

  

 

보리지..꽃말은 용기..

그래서 십자군 전쟁때 심신이 쇠약한 병사를 치료하기 위하여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에 올라 종을 친다..종소리 온 누리에 퍼진다..

그 옛날 몬하르딘의 영주가 종을 치면 성하의 백성들이 다 올라 왔겠지?

 

 

 

 

 

 

오페라 무대 같은 이곳에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성루에 앉아 마치 성의 정복자인양 호연지기를 만끽하는데...

갑자기 드림체이서가 외친다!!

"여기 눈에 보이는 땅이 다 내 땅이닷!"

그래 너 다 가져라..

그대를 몬하르딘의 영주로 임명하노라..ㅎ

 

 

 

잘 키운 요새하나 천만평 영토를 관리한다..ㅎ

 

 

 

 

 

마을 광장에 위치한 흉상이 산초 가르세스 1세..

그의 후손인 산초 3세 때 이슬람으로부터 스페인 북부지역의 상당부분을 탈환하는데, 그의 사후 왕국을 3형제에게 나누어준다..

그리하여 나바라, 카스티야, 아라곤 왕국이 탄생한다..

그러나 정작 종가집인 나바라는 소국으로 전락하고,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레콩키스타의 주도권을 잡는다..

스페인 국기에 그려진  문장에는 위 나바라, 카스티야, 아라곤 왕국의 문장에 레온 왕국의 문장을 더하여 4개국의 문장이 들어 있다..

 

 

이제 이 마을에서 로스 아르코스로 가야한다.. 

 

 

 

아쉬워 다시 돌아본다..

몬하르딘..다시 돌아오마..

 

 

 

 

우테르가에서 이동하여 푸엔테 라 레이나..레이나(왕비)의 다리로 갔다..

원래 이름은 아르강을 따서 아르가 다리.. 산초 3세의 왕비 도냐 마요르가 순례자를 위해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를 만들도록 명령..

이를 기념하여 왕비의 다리로 개명..

 

샤를 마뉴 대제가 팜플로나 인근 시수르에서 사라센을 격파하고 이 마을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 마을을 구경하는데..산티아고 성당이 보인다..

 

 

 

 

 

 

시내 바에 들어가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한다..

9.5유로..

 

 

 

다시 이라체 수도원으로 갔다..

근처의 와인의 샘을 찾았다..

 

 

 

이라체 술도가 집 담벼락에 순례객에게 와인 보시를 한다..

 

 

 

 

나도 한잔...저 양반이 자꾸 권해..

서너잔하니 얼큰하다..

세상에 제일 맛있는 술이다...공술이니까..

 

 

 

 

산티아고에 가고 싶은 그대에게

힘과 활력을 이 위대한 와인이 제공한다..

이라체의 샘..와인의 샘..

 

이라체 술도가는 와인을 마시도록 순례자를 초대한다..

이러한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통은 계속 된다..

와인의 샘은 1991년에 시작되었다..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많은 가이드들이 언급을 해왔다..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되어 세계 여러나라에서 연간 수천명이 방문한다..

일하는 날에는 와인의 샘 사무소에 와인의 샘 스탬프를 요청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박물관에 요청하라..

불행히도 계속적인 도난으로 인해 주전자는 제공할 수 없다..

자판기나 와이너리 사무실, 박물관 사무실에서 1유로를 주고 컵을 살 수 있다..

이라체 술도가는 신의 성실에 입각한 와인 소비를 부탁한다..

하루 와인 제공량은 100리터이다..

08시 - 20시까지 가능한 시간이다..

 

 

 

 

발길을 돌려 에스테야의 숙소로 향했다..

카프치노스 알베르게..

 

 

 

 

 

 

 

 

 

 

 

2인 1실의 방에서 우선 빨래를 해서 걸고..

 

 

 

여기는 휴게실..

 

 

여기는 공동 취사장 겸 식당..

 

 

 

 

 

 

 

 

 

그러나 우리는 시내구경을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바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는데..1인분이 너무 양이 많다..

여기 사람들 대부분 배에 큰 복주머니 차고 다니던데..그게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인 현상이다..

그래서 차후 우리 일행은 3명이 2인분을 시켜 나누어 먹으니 적당했다..

조개를 달고 다니는 한 거지 행각도 용인되는 곳이니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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