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돈 고개의 순례자상>

 

팜플로나 숙소에서 일어나  카스티요 광장으로 갔다..

팜플로나는 나바라 주의 주도..바스크인들이 다수..바스크어와 스페인어가 공용어..

헤밍웨이가 이곳을 무대로 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소설을 써서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와 산세바스티안의 해변, 론세스바에스 등을 묘사하였다..

 

 

 

광장 한쪽에 카페 이루나..

헤밍웨이가 자주 드나들었던 카페..

 

 

 

 

 

헤밍웨이가 자주 머물던 장소에 그 당시 스타일의 장식과 조각상을 세워 그를 기억한다..고 써있다..

 

 

그는 이거리를 배회하고 차를 마시고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긴 경험을 바탕으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소설을 썼다..

그 소설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심리적 충격을 받은 자신과 같은 세대를 성불구자로 묘사하여 "잃어버린 세대"의 정서를 대변하였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면 "성불구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루 20-30km  걸으면 건강한 남자는 아침마다 괴롭기 때문이다..흔히 "객고'라고 하지..ㅎㅎ

 

 

하여간 카페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그가 본 광경을 나도 보려고 한다..

그는 스페인을 자주 여행하였고, 스페이 내전을 소재로 하여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다..

말년에는 쿠바를 좋아하여 그곳에 머물다가 "노인과 바다"를 썼으니..

여행이야 말로 창작의 원천이다..

 

 

산페르민 축제..

투우를 투우장으로 이동시키는 행사를 일종의 축제로 승화시켰다..

참 독창적인 축제다..

 

자기 고장의 독특한 행사를 축제로 발전시키는 창조적 발상..

우리 고장에선 어떻게 창조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각종 창의적인 다양한 한복을 입고 동참하는 축제 형태를 생각해본다..

 

 

 

팜플로나 대성당..

 

 

 

팜플로나 외곽 막달레나 다리로 갔다..

순례객의 발길에 닳은 돌다리를 건너간다..

 

 

 

 

멀리서 보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로 써도 무난하겠다..ㅎ

 

 

 

사리키에기 마을에 도착헸다..

여기서 페르돈 고개를 넘어 우테르가까지 6km를 걷는다..

 

 

일단 마을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하고 세요를 찍는다..

 

 

출발에 앞서 카페의 훈시를 듣는다..

오늘을 환영하라..

다른 날은 또다른 변화를 준다..

자유를 느껴봐! 변화를 위하여!

 

 

 

 

저멀리 페르돈 고개의 능선으로 풍력기가 늘어섰다..

유장하게 구비 구비 에둘러 고개를 올라간다..

 

 

 

 

라만차 구릉의 풍차와는 또다른 분위기..

현대판 동키호테는 무엇으로 풍력기에 도전할까?

 

 

 

 

길가에 한 여인이 무언가 관찰하고 있다..

나도 같이 들여다 보니 파란 이구아나가 있네..

 

 

 

잠시 중턱에 서서 멀리 대평원을 바라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없는 장쾌한 풍경..

 

 

 

 

페르돈 고개에 올랐다..

순례자 상에는 기념 촬영 인파가 가득하다..

아예 관광버스가 차길로 해서 도착하여 관광객을 가득 풀어놓았다..

 

 

페르돈..용서라는 말이다..

페르돈 고개에서

과거, 현재, 미래, 삼생의 인연에게 용서를 빈다..

 

 

 

 

여기 거리 표지에 서울도 있네..9700km..2만4250리..

 

 

저 아래 우테르가 마을을 바라보며 자리를 펴고 누웠다...

참 한가하다..

그런데, 옆에 관광버스 엔진소리에 오래 있질 못하겠다..

 

 

 

 

멀리서 보는 길은 광목깔아 놓은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이렇게 자갈마당이다..

 

 

 

 

유채밭, 눈에는 보약이지만 코에는 쓰다..

 

 

 

 

미루나무 늘어선 길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반추하며 걷는다..

 

 

 

 

여기가 우테르가이다..

 

 

까미노 델 페르돈..알베르게 겸 까페에서 수모 데 나랑하 (오렌지 쥬스) 한잔 시키고 세요(도장)을 받는다..

거기서 한국사람을 만났다..

그는 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인데..2번째 산티아고를 걸으러 왔다..부부가 같이..이번에 여유있게  2달동안 걸을 예정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점심을 먹을려는 시간에 일찌감치 이 알베르게에서 쉬면서 부인은 빨래 중이란다..

그가 처음 산티아고에 왔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산티아고 열풍이 불기 전이란다..

그 당시 일본에서 먼저 산티아고 걷기 열풍이 불었고, 우리나라 일부 메니아가 걷기 시작할 때인데..

그 때 서명숙씨가 걷고나서 제주올레를 구상하여 개설하였고, 제주올레 걷기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걷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고 산티아고 걷기도 확산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나도 제주올레를 걸으며 산티아고 걷기를 계획하였던 것이고..

세상은 이것이 저것에 영향을 주면서 인연법으로 중중무진 연결되는 것이다..

 

 

우테르가에서 차를 회수하여 시직 앱을 작동 시켜 동행을 데리러 간다..

 

 

아침에 일어나 출발한다..

프랑스 생장 - 스페인 론세스바예스 구간은 약26km 이나 피레네 산맥을 넘는 구간이어서 경사 난이도를 감안하면 32km 정도라고 생각해야한다..

그래서 건각이 아닌 사람은 머리를 굴려 오후에 약 10km를 올라 오리송 알베르게에서 자고 다음날 여유있게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우리는 원래 800km를 완주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자신이 없어 렌트카를 이용하여 중간 중간 걷기 좋은 코스를 걸으며 2주간에 산티아고까지 갈 생각이다..

그러니, 순례객이 아니라 도보여행꾼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 블러그를 보시라..  

 

 

생장에서 오리송까지 10km 구간은 포장길에 계속 오르막이다..

지리산 둘레길의 오르막 포장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드디어 피레네의 능선이 보일 무렵 오리송 알베르게가 보인다..

여기는 방2개에 침대 18개..잘 사람은 미리 예약을 하고 올라가야 할듯..

 

 

여기서 커피 한잔 시켜먹고 어제 받급 받은 크리덴시알에 첫 도장을 찍는다..

 

 

 

우리가 갈 길은 위 빨간 길인데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할 때 애용한 길이어서 나폴레옹 루트라고도 불린다..

노란 길은 포장길로 생장까지 차로 갈 수 있는 곳인데, 중간 중간 산길로 걷게된다..

옛날 옛적 프랑크 왕국의  샤를 마뉴대제가 이베리아 정벌에 나섰을 때 진군하고 후퇴한 길은 노란 길 쪽이다..

 

 

자.. 이제 오리송에서 걷는다..

돌아보면 오리송이 아리송하게 보인다..ㅎ

 

 

 

요즘 스페인 전역에 이 노란꽃이 지천이다..

 

 

드디어 산티아고로 가는 노란 표지판에 신경을 쓰며 간다...

이길에는 뒤로 가는 표지는 없다..

노란 화살표는 한 목적지만 가리킨다..그러니 이 표지를 따라가는 사람은 공동의 목적이 있으며 자연히 동지의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피레네의 말은 제주 조랑말을 닮았다..

 

 

이태리에서 온 저 사람들은 느긋하게 슬로우 앤 스테디 스타일이다..

이 산맥에 사람이 많다..어찌보면 통학길 같기도 하다..

게절적으로 순례가 시작되었나 본다..

 

 

 

 

피레네 말들도 가족이 있나 보다..

망아지 뒤가 엄니겠지..

 

 

돌아보면 길 저 아래 프랑스 생장이 보인다..

그만큼 올라왔다..하지만 길은 완만하여 힘들지는 않다..

 

 

 

오리송 봉에는 성모자상이 있다..

 

 

 

옛날에 샤토 피뇽이 있어서 순례자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단다..

 

 

위 사진 왼쪽으로 가야 한다..이쪽으로 오는 것은 성모상에 참배하기 위해서다..

 

 

 

지리산 둘레길보다는 부피도 크고 길도 더 유장하다..

 

 

 

 

중간에 방목하는 말이 많앗는데..

이 암말은 혼자 출산하다 사산한채 탈진하여 쓰러졌다..

착한 페레그리노 한 여자가 옆에 앉아 말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달래고 있다..

생사가 지척이구나..

지나가던 차가 멈춰 전화로 응급차를 부른듯한데 한 동안 소식이 없다..

가다가 돌아보니 암말은 일어나 앉았다..

옳커니 인제 살 수 있겠구나..

 

 

십자가와 신발 하나 이제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인가?

영화 더 웨이에서는 겨울에 피레네를 넘다가 아들이 조난당하여 죽는다..

 

 

고개마루를 지나자 대피소 같은 곳이 나온다..

정말 겨울이 아니라도 3월달에도 눈이 온다니 악천후에는 이런 곳에 대피해야겠다..

이곳 양지쪽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요기를 하고..

 

 

이제 길은 내리막이다..

 

 

 

산티아고 길의 상징으로 왜 조개를 쓸까?

전설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 야고보 유럽의 땅끝 피니스테레까지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유다 마지막 왕 헤롯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당하는 순교를 햇다..

추종자들이 야고보의 시신을 돌 배에 실어 지중해로 떠났는데, 그 배가 산티아고 인근 패드론 곶에 닿았다..

그때 해변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 돌배의 시신을 뭍으로 옮겼는데, 말과 사람의 몸에 조개가 붙어 나왓단다..

그래서 조개가 산티아고(세인트 야고보)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조개의 무늬가 한 방향으로 모이는 것이 마치  여러 군데서 순례를 떠나도 산티아고 한 곳으로 모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

 

 

여기는 롤랑(스페인어로 롤단)의 샘에서 물을 보충한다..

중세 기사 3대 문학이 영국의 아더왕과 원탁기사, 독일의 지그프리트와 니벨룽겐의 반지,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그 롤랑의 노래와 관련이 있는 유적인듯하다..

 

 

 

여기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이다..

도랑에 철망을 걸쳐놓으면 양과 같은 짐승을 건너지 못한단다..

 

 

표지판이 스페인의 나바라 지역임을 알리고 있다..

 

 

나무사이로 안개가 스며들어 신비한 느낌을 주는 지역을 지나고..

 

 

 

1450미터 지점의 콜 데 레푀데르으로 접근하니 아직 눈이 쌓여잇다..

며칠전에 내린 눈이다..

저 멀리 산에는 아직 눈이 그득하다..

 

 

 

뒤를 돌아보면 긴급대피소가 보이고..

 

 

 

 

 

정상 고개를 지나니 급전직하의 내리막이 시작된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 론세스바에스 지역이 보인다..

 

 

너도 밤나무 숲을 지나고...

 

 

 

다시 맞은 신록이 너무 싱그럽다...

 

 

 

 

 

 

그 신록 속에서 외친다..

"나는 자유인이다"

 

 

 

 

브라질 출신의 페레그리노(순례자) 길베르트 하네리를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영화 더 웨이에서 피레네 산맥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조난당해 죽고, 유골을 수습한 아버지가 아들의 배낭을 메고 순례길을 계속 걷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오늘의 종점이 론세스바에스 오레가..가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방황..

이유는 드림빌더가 주차하고 간 차를 찾느라..우왕좌왕..

콩글리쉬는 도움이 안되고..드림빌더의 말을 반추하여 결국 주차된 렌트카를 찾앗다..

다시 드림체이서가 몰고 드림빌더를 데리러 오리송으로 간다..

 

이제 눈치 채셨는가?

우리는 한구간을 서로 교차해서 걷고 차로 다른 일행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걸었다..

 

걷는 방식도 다양하다..

1) 정통파 - 배낭에 짐을 다 넣고 30-40일을 걷는 사람

2) 짐을 택시로 다음 숙소로 보내고,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걷는 사람

3) 여행사 패키지로 와서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고, 엄선된 구간만 가벼운 베낭을 메고 걷는 사람

4) 펠로우 닷컴 처럼 인터넷 싸이트를 이용하여 알베르게예약과 베낭 운반을 맡기고 가벼운 베낭을 메고 걷는 사람

 

 

 

그러면 어떻게 약속된 장소(오리송)으로 차를 운전하여 되돌아 가는가?

구글지도와 시직이라는 앱을 이용하였다..

해외에서 유용한 내비 앱이다..

그런데, 앱도 사람을 테스트하니 조심하라..

우리가 오리송으로 가는데, 내비가 비포장 길로 안내한다..

드림체이서는 고지식하게 내비 시키는 대로 가려고 하기에 내가 제동을 걸엇다..

차에서 내려 내가 직접 어느 정도 걸어가보니 승용차가 갈 길이 아니었다..

만일 그길로 갔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뻔 했다는..(피레네 산맥으로 렉카차를 부른들 언제 오겠는가? ㅎ)

 

 

하여간 그 바쁜 와중에  점심은 생장에서 쇼핑한 치즈와 까바 와인으로 때웠다..

 

 

 

론세스바에스의 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시키고 크리덴시알에 세요(스템프) 하나를 추가했다..

론세스바에스의 조각상을 보니, 이곳이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프랑크왕국의 샤를 마뉴대제와 이베리아 원정, 그리고 기사 롤랑과 12명의 기사단 팔라딘의 설화의 주무대란 사실을 알리고 잇다...

 

778년 여름 샤를 마뉴 대제는 이베리아 반도로 진격해 사라고사를 포위했지만 점령하지 못했다.

그러자 바스크 지방의 제1도시 팜플로나를 파괴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퇴각하게 되었는데, 분노한 바스크 족들이 론세스바에스에서 매복하였다가 프랑크 군대 후미를 공격하여 롤랑의 부대가 전멸하는 참패를 당했다.

 

이제 차를 돌려 팜플로나로 이동한다..

숙소는 파플로나의 주택을 전날 예약했다..물론 내가 아니고 드림빌더가 했다..

공유경제..우리나라도 이제 논의 되기 시작하는데..

유럽은 공유경제가 활성화되고 잇다..

즉 개인들의 노는 집을 숙박공유 온라인 서비스(에어비앤비 등)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인데, 이런 싸이트에 접속하여 값싸게 숙소를 얻었다..

물론 렌트카가 있어서 선택 범위가 넓었기에 가능했지만...

 

 

 

빌바오 구경을 마치고 오후에 프랑스 생장 드 피에드포르로 향한다..

사실 빌바오 부근 산세바스티안의 해변도 노닐고 싶었는데..스케줄상 통과..

유로 시대가 되니 스페인-프랑스 국경은 있는지, 없는지 통과.. 

 

 

 

2시간 걸렸을까 저녁무렵 생장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디서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걷고 싶은대로 걷는거다..

1) 주로 이용하는 방법은 프랑스 길이라 해서 프랑스 생장 드 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걷고 기분이 나면 연장해서 피니스테레 100km를 더 걸을 수 있다.

   도보로 30일-40일에 거쳐 걸어간다..자전거도 인정한다..

2)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팜플로나로 이동하여 거기서 산티아고 까지 걷는 방법도 있겠다..

3) 어떤 사람은 최소 순례요건이 되는 100km 지점인 사리야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4)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 걷기 처럼 구간별로 나누어 걷는 사람도 있다..

 

 

생장에 도착하여 걸어서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간다..

 

 

 

 

 

 

 

이곳에 순례자사무소사무소..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고 조개를 사서 베낭에 단다..

일단 형식은 갖추었다..

 

 

 

 

 

지팡이에 조롱박을 단 페레그리노(순례자)는 아니지만 카미노(길)에 대한 예의는 차려야 할 것 같다..

 

 

 

내일 넘어갈 피레네 산맥 길이다..

우리는 붉은 표시 길을 따라 스페인 론세스바에스 오레가까지 간다..

 

 

등록을 마치고 생장의 성벽을 산책하고 인근의 숙소로 간다..

 

 

 

이곳 날씨는 우리보다 1개월 정도 늦은 것 같다..

이제 봄꽃 들이 요란하게 핀다..

아침은 쌀쌀하지만 낮에는 17도-20도쯤 되니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옷도 두꺼운 잠바도 잇어야 한다..

 

 

 

어스름에 인근 숙소에 도착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농가 별채를 빌렸다..

동행 드림메이커의 능력으로 인터넷 예약을 하였다..

 

 

숙소앞에 선 렌트카  소형 BMW..

 

가만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처음 산티아고 걷기를 생각한 7년전...

2009년 3월 금강걷기를 시작하면서 걷기에 눈을 뜨고..제주 올레를 걸으며, 그 길의 개설자가 영감을 받았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도 걸어봐야겟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막연하고, 과연 걸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지만,

생각을 말하고 떠들고 다니니 생각이 꿈에서 현실로 발전하더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허기가 져 나와 바스크 지방의 핀초스를 먹으러 간다..

빵 위에 절인 문어나 멸치, 고기를 올리고 꼬챙이를 꽂아 놓은 음식을 다른 지역에서는 타파스라고 하는데 바스크 지방에서는 핀초스라고 한다..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라도 보면 된다..

 

 

 

 

 

 

누에바 광장에 도착하니..

유독 한집이 사람이 가득하다..이곳이 인기있는 집인가 보다하고 들어간다..

 

 

 

 

고기를 얹은 조각 빵 핀초스에 맥주 한잔..제법 그럴듯하다..

물론 한 점으로는 배가 안차고 여러 개를 먹어야 ..다양한 것을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핀초스를 먹고 슬슬 걸어 미술관 한 곳을 더 보려고 간다..

위치가 구겐하임 미술관 옆이다..

베야스 아르테스 미술관이다..

 

 

 

 

스페인 근대 그림들이 즐비한데..사진촬영은 금지..

 

 

 

 

여기는 화장실도 예술이다..

시차로 몸이 지치고 다리가 너무 피곤하다..

하여 빨리 대충 보고 나와 프랑스 생장 드 피에드포로로 향한다..

 

 

 

스페인 걷기 여행을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주변 도시를 여행하는 계획이다.. 

그래서 우선 스페인 북부 빌바오를 들러 구경하고 차로 프랑스 생장 드 피드포르로 이동하여 산티아고 걷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대붕을 불러 타고 구만리 장공을 날아가는 신선의 출국을 어찌 아시고

황공하게도 상감마마 양전께서 나와서 환송하니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불손하게 같이 사진찍자고 달려드는 이양인의 행동에 다소 방해를 받았지만...ㅎ

 

 

푸랑크푸르트에서 환승 게이트를 오산하고 있다가 출발 20분을 남기고 38리터의 베낭를 메고 전력질주하느라 고생한 것을 빼곤,

난생 처음 타보는 비지니스 석에서 편안히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밤 11시..

승객이 모두 떠난 공항에 정적만 흐르는데..건물 분위기가 멋지다! 했더니..

역쉬 족보가 있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라는 스페인 건축가의 작품..

음..벌써 산티아고와 인연이 닿았네..ㅎ

 

이날은 보지 못햇지만  돌아오는 날 터키항공 비행기가 빌바오를 들려가는 바람에 다시 재회하면서 미모를 알게 되었다는...

이른바 몸부터 섞고 얼굴을 보았다는 격..ㅎㅎ

 

 

다음 날 아침 8시 부터 렌트카로 빌바오 시내로 향한다..

이번 여행은 3명이 갔다..드림 메이커와 드림 체이서 그리고 드림 빌더..사연은 나중에 말한다..

 

 

일단 메인이벤트 구겐하임 미술관의 위치를 확인..아직 개관시간이 안되어 그참에 비스카야 다리를 구경갔다..

그런데 의외로 멀다..시외곽..

 

 

아무 사전 지식이 없이 갔던 터라..이 다리가 왜 유명한지 몰랐다..

그런데..뭐가 붕 날아 이동하는데..아하..이동식 다리네..ㅋ

 

 

 

가운데는 차가, 가생이에는 사람이 타고..이동..

가생이?  가장자리라는 충청도 말..ㅎ

 

 

 

 

강 위에는 조정경기가 한창이고..

 

 

이바이사발(Ibaizabal) 강 하구에 다리를 건설하는데..

건축가 알베르토 데 팔라시오(Alberto de Palacio)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설계하여 1893년에 완공되었다.

 다리 높이 45m, 총길이 약 160m이며, 19세기의 전통적인 철제 구조물 제작 방법과 함께 당시에는 새로운 경량 기술인 강철 밧줄을 혼합해서 사용했다.

이 다리는 높은 공중에 매달린 곤돌라를 이용해 사람과 짐을 운반한 세계 최초의 다리이다.

 

빌바오는 메사비와 함께 세계적인 철광석 산지로 배웠다..고교시절에..

그 철광석 산지의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건축물인셈이다.. 

 

 

 

 

 

주변 건축물을 보면 빌바오가 스페인 시골이라고 깔볼 수  없게 만든다..

왕년에 잘나가던 도시였던 티가 난다..

 

 

 

다리 상부로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그런데 10시부터 운행한다고 해서, 돈을 내고 곤돌라를 타고 강을 건너고 다시 돈을 내고 엘리베이터을 타고 올라가 걸어서 건너오는 바람에 운임을 2번 냈다..

<팁>..운임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걸어서 건너면 돌아가는 곤돌라는 공짜로 탄다..

우리는 이걸 몰라 몇 유로 낭비했다는..

 

 

다리 상부는 사람이 걸어갈 수 있다..

 

 

 

 

멀리 강하구가 보인다..대서양이다..

 

 

 

이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갔다..

입구에서 맞아주는 꽃강아쥐..

 puppy는 1997 개관기념으로 만든 제프 쿤스의 화분조형물..

그는 앤디 워홀이후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로 평가 받는다..

그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그의 200여명의 조수들이 작품을 만든단다..

이혼하고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긴 그는..아들과 같이 키우던 강아쥐를 조형물로 탄생시켰단다..

 

** 조영남의 화투그림도 엔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처럼 대작작가를 쓴 것이라고 항변한다는데..글쎄..ㅎㅎ

 

 

 

 

중세 성채같이 빛나는 외관...

겉에 얇은 티타늄 3만여장을 붙였다..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O Gehry)가 설계하였으며 메탈 플라워라고도 불린다..

그는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들어서자..조명예술이 발길을 잡는다..

 

창밖엔 제프 쿤즈의 튤립이 유혹하고..

 

 

저 멀리 기괴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가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론 이 조각을 보면서 마치 마음이 거미줄에 걸린 느낌이다..

 

 

 

다음 전시물은 거대하고 두꺼운 철판 예술..

마치 이곳이 철광석 산지라고 자랑하는 듯한 작품..

 

 

 

 

 

거대한 철판 속에서 소인국놀이하다 작가가 궁금해진다..

리차드 세라의 더 매터 오브 타임(The Matter of Time)..

그는 조선소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나고 예일대학생시절 철제공장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던 그에게 철이라는 재료는 가까우면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가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이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위에서 보니 그나마 전체 윤곽이라도 알겠다..

동심원처럼 돌아가는 미로에서는 가슴이 막막해진다..

 

 

 

여기서 가끔은 관광객의 자태가 예술이 된다..

 

 

 

 

 

 

수시로 마음을 붙드는 창밖의 저 거미는 루이스 부루조아의 마망 (maman)...

10년간 함께 살던 친언니 같던 가정교사가 아버지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그런 그녀의 트라우마가 작품에 반영되었다..부르주아의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불륜을 묵인하고 인내하며 살앗는데, 이러한 어머니의 인생에 대한 부르주아의 연민이 들어난 작품이다..

 

 

 

거미외 그의 작품도 기괴하고 혼란스럽다..

 

 

 

 

 

 

 

 

 

 

 

 

 

<마망>은 불어로 엄마라는 뜻인데..모성애가 담긴 가장 거대한 조각으로, 청동으로 엮인 여덟 개의 뾰족한 다리를 가진 거미가 몸통의 중심에 알주머니를 품고 지탱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끝부분으로 내려올수록 가늘게 표현된 다리는 엄마(maman)의 위태롭지만 곧은 의지와 고집을 느끼게 한다는 평이다.

 

 

 

 

 

 

빌바오시는 네르비온강을 낀 인구 60만명의 철광 중심의 산업도시로 한때 재미 좀 보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철광 산업의 쇠퇴로 도시는 빈곤해지고 네르비온강은 오염되고 100년만의 큰 홍수로 도시 재건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자, 바스크 지방 정부와 민간기구의 협력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구하던 중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유럽에 분관을 설치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능동적으로 긴밀하게 유치작접을 벌였다..

그 결과 유럽에서도 시골급에 해당하는 이곳 강변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였고, 구겐하임 재단은 바스크 지역사회가 마련한 1억 달러의 기금을 바탕으로 구겐하임 뮤지엄 프로그래밍과 주요 컬렉션의 수집뿐만 아니 큐레이터 활동까지도 주관했다.

이 미술관이 있던 지역은 조선소와 공장과 산업폐기물이 쌓였던 곳이었으나 빌바오 시의 노력으로 공원, 사무실, 아파트, 상가 등이 새롭게 건설되었다.

이로 인하여 구겐하임미술관은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연간 백만명의 관광객이 모여들고 2007년 기준, 2조1000억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거두는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이면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본점 오너가 철광석으로 돈을 번 사람이라 철광석의 도시 빌바오의 갱생의지를 가상히 여겼다는 말도 있으나.

어찌 되었건 이른바, 차도성사(借刀成事)라..칼을 빌려 뜻을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빌바오의 쾌거를 모든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러 구경하러 가지만,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히 대전의 엑스포 공원 재창조 작업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도심의 귀한 녹지공간을 허무하게 포기하고 기껏 놀이시설이나 유치하려고 안달하다가 안되니 닥치고 유치작전으로 결국 쇼핑센터나 연구소을 짓는다고 하니 개탄, 개탄 그리고 개탄이로다..

 

 

 

저녁에 산티아고로 돌아와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처음 보는 미사 풍경, 알 수없는 강론이지만

장엄함과 페레그리노에 대한 격려는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숙소는 수도원 운영 대형 알베르게에 1인실..

독방에서 생각한다.

우리 존재란 잠시 여관에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는 말 공감한다.

내일이면 방을 비워주고 떠나야하는..

 

피니스테레에서 묵시아로 가는 도중에 만난 해변

너무 아름답다

그곳에도 카미노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 인생 길도 죽음 너머로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산티아고 길을 걸은 사람들이 감동을 정리하러 계속 걸어간다는 곳

걸으면서 생긴 내면의 감성을 정리하기 좋은곳

비유컨대 오도 후 보임이랄까?

더이상 걸을수 없다는 땅끝을 몸에게 보여주어야 승복할것이기에.

거기서 묻는다.

왜 걷는가?

나는 걷는다. 그리고 근본으로 돌아간다.

고로 걷기는 res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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