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현강연서회전에 출품된 현강 선생의 글씨..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제18회 현강연서회전에 출품된 현강선생의 작품

내 눈에는 마치 루오의 야수파적 작품같이 보인다..

 

글의 출전은 삼국사기』백제본기 시조 온조왕조..

온조왕이 건축한 궁궐에 대한 평인데..이는 그대로 백제 예술에 대한 총평이라 할만하다..

 

 

그 전시회 중에 내눈을 확 잡아댕기는 글..

내용이 정갈하고 정겹다..

차한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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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大三合六生七八九運(대삼합육생칠팔구운)
運三四成環五七一(운삼사성환오칠일)
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묘연 만왕만래용변부동본)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본심 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되나 그 하나는 시작이 없고, 하나가 나뉘어 셋이 되지만 그 다함이 없는 근본은 그대로다·셋 중 하늘이 첫번째로 나온 하나고, 땅이 두번째로, 사람이 세번째로 나온 하나다.하나가 모여 열이 되고, 우주의 기틀이 갖추어지되 모두 셋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하늘이 둘을 얻어 셋이 되고, 땅이 둘을 얻어 셋이 되고, 사람이 둘을 얻어 셋이 된다·크게 합하여 여섯이 되고, 여섯이 일곱과 여덟을 만들며, 아홉에서 순환한다·셋과 넷이 어울려 고리를 만들고, 다섯과 일곱이 어울려 일체가 된다·만물이 이와 같은 질서 속에 오묘히 오고 가며 온갖 모양과 쓰임을 지어내지만, 그 근본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본마음은 태양과 같아서 오직 빛을 향하니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어 셋이 일체를 이룬다·모든 것이 하나로 끝나되, 그 하나는 끝이 없다.

 

◆ 천부경은 무엇인가 =‘천부경’은 천제(天帝)의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글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사슴발자국모양문자)으로 기록하였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서(篆書)로 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문서를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천부경과 관련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이다. 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환단고기’를 편집한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탁본해 1917년 단군교당으로 보낸 뒤부터다. 1920년 도교사상가이자 정신철학자인 전병훈(1857~1927)이 저서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해제를 실은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부경 해제다.

그 후 1921년 계명구락부에서 발행한 잡지 ‘계명’4호에 한별(생몰연대 미상)이 천부경을 해제했고, 1922년 유학자 김택영(1850~1927), 1923년 석곡 이준규(1899~1923), 1930년 단암 이용태(1890~1966) 등의 천부경 해제가 잇따라 나왔으며, 일제말 독립운동가 이시영, 홍범도, 여운형 등도 천부경을 소개하거나 천부경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

◆ 진짜인가, 가짜인가 = 천부경의 가치에 대해서는 근거가 불확실한 날조된 문서라는 차가운 견해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대변하는 엄청난 보고라는 주장까지 극에서 극이 공존한다.

강단학을 중심으로 실증을 강조하는 일단의 사학자들은 천부경을 그 출처는 물론, 문장과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는 회의론을 내놓는다.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가 묘향산 바위에서 천부경을 처음 발견했다 하나 그 과정이 석연찮고, 천부경이 실려 있었다는 ‘환단고기’도 많은 부분이 다른 사서(史書)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사상을 연구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환단고기’의 상당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할 뿐 아니라, 내용이 민족의 고유한 성전(聖典)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일식기록이 모두 10번 나오며 13대 단군 홀달 50년(BC1733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5개 별이 한 자리에 모이는 천문현상)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슈퍼 컴퓨터로 확인한 결과 BC 1734년 7월13일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 등이 일렬로 하늘에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는 등 기록의 많은 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 천부경의 가치 = 지금까지 천부경에 대한 학술대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천부경이 기독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불경’, 중국의 ‘사서삼경’이나 ‘도덕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리 민족 정신철학의 정화라고 주장했다.

81자라는 매우 짧은 문장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에서 시작하여 하나로 돌아가되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한사상’, 하나의 원리가 세가지 모습인 하늘·땅·사람으로 작용하여 우주 만물을 생성·변화시킨다는 ‘천지인 사상’ 그리고 이러한 원리에서 나오는 실천적 지침으로 널리 모든 인간,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이 두루 담겨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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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시선(醉是僊)..소암 작

취하면 곧 신선이라..

코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던 소암

어느 요정에서 흥건히 취한 소암이 고은 베로 도배를 한 벽에 휘갈겨 쓴 초서로 글자 한자의 크기가 사람 키와 같다.

도연명의 시에서 따온‘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를 쓴 소암의 작품. ‘이 가운데 참뜻이 있다’는 뜻이다.

도연명의 원시 음주(飮酒)를 볼까?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인가 근처에 초막을 짓고 살아도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수레 소리 시끄럽게 들리지 않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세속에서 멀어지니 사는 땅이 절로 외지게 되네.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아침 저녁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나는 새 짝하지어 돌아오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을 더 하려다 문득 말을 잊었네

 

***

 

  • [리뷰]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췄다”
  •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김양동·계명대교수(서예·전각)
    입력 : 2007.06.19 00:28 / 수정 : 2007.06.19 00:28
    • 필가묵무(筆歌墨舞),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 경지. 소암 현중화(1907-1997)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18일 폐막) 감상하고 느낀 한마디 소감이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일본에서 귀국하여 붓 한자루로 고결한 생애를 마친 묵선(墨仙) 한 분이 계셨다. 길고 긴 흰 수염, 펄럭이는 두루마기 차림의 훤칠한 키, 그 모습에서 이미 탈속의 풍자를 느끼게 했던 분이 바로 소암 선생이다. 선생은 약관에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정경학과 전문부를 마친 엘리트 서예가였다. 재일 한국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소암은 일경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한 피신의 수단으로 일본의 서도대가 마츠모토 호우수이(松本芳翠)의 문하생이 된다. 이것이 결국 그의 예술적 자질을 자극한 계기가 되어 그는 글씨에 대한 흥미 수준을 넘어 본질적 접근과 탐구를 하게 되었다. 육조(六朝) 서체를 비롯한 각체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1955년 49세 때 귀국한 소암은 51세(1957)부터 국전에서 활동을 시작, 당시 한국 서단의 대부격인 손재형으로부터 ‘서단의 이채로운 존재’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는 90평생 소암 예술의 성취 부분 중에서 특히 만년의 미발표작 100여 점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종횡무진한 소암 예술의 진면목과 예술적 가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암의 서예세계는 고전을 철저히 학습 수용하고 재해석하여 걸러낸 다음, 유, 석, 도(儒釋道) 삼가(三家)사상을 혼융한 내용을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재롭게 구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행초서에서 드러나고 있는 질탕하고 표일한 흐름, 미친 듯 분방한 봉망에서 터지는 격정과 묵기 임리(淋?)한 획질, 그 율조와 흥취는 만리를 달려온 진애를 한꺼번에 씻어 내는 소나기의 시원한 바람같은 느낌을 준다.

      그 중에서 백미는 취필(醉筆)이다. 코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던 소암, 그런 풍류와 낭만이 있었기에 취시선(醉是僊·취하면 그것이 곧 신선이다)과 같은 큰 글씨의 광초(狂草) 벽서(壁書)를 남겼다. 취시선은 어느 요정에서 흥건히 취한 소암이 고은 베로 도배를 한 벽에 휘갈겨 쓴 초서로 글자 한자의 크기가 사람 키와 같다. 취시선 앞에선 서예를 모르는 사람도 탄성을 토하며 서예가 바로 이런 멋이었구나 하고 금방 붓을 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다.

      소암은 현실의 명리에 대한 체념을 글씨로써 초탈하여 달관의 경지에 오른 진정한 필묵의 자유인이었다. 세속으로부터 자기해방을 하고자 했던 대서예가 소암의 글씨에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90평생 ‘먹고 잠자고 쓰고’ 했던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취묵신선이었던 소암선생, 그는 이 시대 필묵으로써 자아를 완성했던 보기 드문 거인이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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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선생이 쓴 "진충보국"

    위 글씨를 자세히 보면 획이 톱날처럼 흔들린 것을 볼수 잇다.

    백범선생은 왜경에게 맞은 총알이 몸에 박혀잇어 글씨를 쓸 때 팔의 특정부위가 흔들려 글씨체가 톰날 같이 된다.

    하여 백범은 스스로 농담삼아 "총알체"라고 농담하였다 한다.

    言行筆이 일치하는  정말 볼수록 존경그런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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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심사의 산신각..

    산 자가 정말 산같다..

     

    임진왜란 때 권률장군의 승전지 배티고개를 지나 대둔산입구를 지나서 전라도 무주군 운주면에 다다라 충청도 연산면 양촌리 방향으로 들어가니 안심사라는 절이 나온다.

    경내의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산신각의 글씨를 감상한 뒤 

    등산로를 찾아 허위 허위 가파른 길을 올라 쌍바위와 지장폭포까지 올라서 대둔산 서쪽 경계를 마음껏 감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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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갑산 어느 식당 화장실 입구에 써있는 글씨..

    글씨와  뜻이 직통하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느낌이다..

    글씨보고 들어가니 변비가 싹 해소되는듯한 쾌감 마저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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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태규(李泰圭:1902~1992) 박사 신조를 적은 액자.

    신문에 난 기사.. 보통 사람은 한자로 된 좌우명이나 신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분은 한글로 과학도다운  신조를 가지고 있다.

     

    이 분은 한글전용화 세대가 아니다.

    1960년대 초반 한글전용화를 하다가 1970년대 초반에 한문교육을 부활시켰는데..

    그  시절에 맞춰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친 40,50대..

    그중 이공계 출신, 그 가운데서도 외국 유학파들은 정말 한글세대다..

    전통과는 단절이 되었으나 한글화는 성공하였다..

    공과는 차지하고 한글화는 급진전하였고..

    컴퓨터 시대에 들어오니 한글은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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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취하문(현강 작)

     

    敏而好學하고 不恥下問이라..

    명민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아래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앗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자공(子貢)이 위(衛)나라의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묻자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를 문이라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

    이렇듯 학문을 좋아하여,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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