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의 비결에 대하여 고수들의 한마디를 모아 본다

 

생각을 흐르는 물결에 띄워서 장차 빠르고 느림의 연주를 하려고 한다

-손과정(당 서가)-

 

붓을 마음에 맞겨 물 흐르듯 가면 저절로 묘를 얻을 수 있다.

-소하-

 

절대 경지에 이른 사람(至人)은 법이 없다. 법이 없다는 것은, 법의 공허지대란 뜻과 다르다.

그것은 무법으로서 법을 삼기 때문이다.이에 무법은 그대로 최고의 법이 된다.

-석도(청, 화어론)-

 

서란 졸(拙)을 배우는 길이다. 졸이란 기교가 이룰 수 없는 곳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글씨 쓰기를 여자가 화장하듯 한다.

화장이 너무 짙어서 마침내는 본래의 모습까지 지워 버린다.

-황산곡(송, 예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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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황현..

망국 조선의 성리학자로

구례군 광의면 월곡마을 대월헌(待月軒)..달을 기다리는 집..에서

야사 매천야록을 써서

매국노들에게 만대에 걸쳐 춘추필법의 응징을 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기다리던 달은 뜨지 아니하고 나라가 암흑천지로 바뀌는

강제 합병의 순간..그는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한다..

 

鳥獸哀鳴海岳嚬     온갖 조수 슬피 울고 산과 바다 찌푸리니

槿花世界己沉淪     무궁화 강산이  가라앉아 사라지는구나
秋燈掩卷懷千古     세월의 등잔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글 배운 선비로 사람 구실 어렵구나.

 

曾無支厦半椽功     일찍이 나라를 위해  반조각만한 공도 없고
只是成仁不是忠     단지 인을 이루려했을 뿐  충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止意僅能追尹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죽음으로 의리를 지킨 "윤곡"을 따르를 뿐,
當時愧不攝陣東     마땅히, "진동"처럼 의병을 일으켜 싸우지 못함을  부끄러워 할 뿐이다.

 

***

그가 아들과 동생에게 남긴 말..

 

내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할만한 (공적) 의리는 없다.
다만 이 나라가 5백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한 날 선비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나는 위로 한결같은 마음의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않았고,
아래로 평소 읽은 글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을 뿐이다.
아득히 오랜 잠에서 깨어나 참으로 통쾌함을 깨달으니
너희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

 

***

언행일치 인간의 죽음은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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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서체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송설체이다.

송설체는 원나라 말기의 학자였던 조맹부의 글씨체로

그의 서실(書室) 이름이 송설재(松雪齋)여서 이런 명칭이 생겨났다.

 

조맹부는 송나라에서까지 성행하던 당나라의 안진경체를 배격하고

왕희지의 글씨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안진경체란,

안진경체는 풍만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필법이다.

이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탤런트로 김혜수가 떠오른다. 한마디로 그래머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조맹부가 돌아가자던 왕희지체는?

왕희지는 300년대의 동진 사람으로 그의 서체는 굳건하고 우아하며 마른 느낌을 주는 그런 글씨체였다. 마치 정우성(?)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조맹부는 이러한 왕희지체를 본받아 굳세고, 아름다우며 결구가 정밀한 필법을 구사했고 이 조맹부의 유명한 서체는 고려말 만권당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의 공식필체가 되어 한세대를 풍미하게 된다.

(고려말 충선왕이 만권당을 개설했을 때 이곳에 조맹부를 초빙해 학문적인 교류를 한  바 있다. 이 때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이 만권당에서 최신 유학인 성리학과 더불어 조맹부체를 습득하여 왔다.)

 

이 필체가 특히 조선전기에 유행한 것은 이 서체가 조선전기의 사회 분위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필법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고 새로운 문물을 정비하려는 시점에서

강인하고 건강한 필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조맹부체를 가장 잘 쓴 사람은 역시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다.

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글씨는 몽유도원도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맹부체를 줄여 "촉체"라고 불렀다.

조체라고 부르지 못하고 촉체라고 부른 것은 "조"라는 것이 00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서체도  많은 변화를 보이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우선 송설체의 쇠퇴를 들 수 있다.

송설체의 특징 중 하나인 균정미에만 힘을 쓴 결과,

유약하고 판에 박은 듯한 서법이 계속되어 송설체는 그 매력을 잃고만 것이다.

 

이러한 때에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서풍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문징명, 동기창, 축지산 등의 서풍의 유행 외에도,

명에서 유행하던 복고풍 역시 수입되어 왕희지 서법으로 환원을 부르짖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전하던 왕희지의 서첩은 거의 모두가 가짜였다.

(생각해 보라. 300년대의 글씨가 남아있을리 만무하다.)

가짜를 보고 연습을 하니 그 글씨는 가짜일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유명한 서예가로는 석봉 한호를 꼽을 수 있다.

한석봉은 왕희지의 글씨를 연마하여 능숙한 지경에 이르렀던 사람이다.

잘 알려져 있듯 떡 써는 어머니 밑에서 피나게 연습하여 글씨에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전설은 그에 대한 진실 역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그는 글씨 연습만 했던 것이다.

서예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격조다.

이것은 김정희가 주장했던 바 학문이 밑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이른바 서권기라고 하는 것 .

화원이 그린 능숙한 그림이 문인화가의 그림에 비해 낮게 평가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얼마 만큼의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느냐에 따라 서체는 그 품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석봉체는 서품(書品)이 낮고 격조와 운치가 결여되어 외형의 미만 다듬는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석봉체가 일세를 풍미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그대로 궁궐의 서사정식(書寫程式)을 이루어 이를 본받는 사람의 수가 많았고

일반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유명한 천자문도 석봉의 글자체이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 것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진경문화의 영향에 따라

우리 고유의 필체가 등장한다. 이름하여 "동국진체".

소론 출신의 윤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된 필법이다.

 

그리고 이 시기 또 유행하는 것이 안진경체.

정조는 안진경체를  좋아했다.

정조의 글씨는 비후미라고 하는 두텁고 장중한 느낌의 서체를 보여주고있다.

왕이 쓰니 모두들 따라썼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안진경 글씨를 집자해서 비석을 세우는 것이 유행하였고

측근의 신하들도 이 글씨를 즐겨 썼다.

그리고 그 후,

결국 불세출의 천재가 나오게 된다.

바로 추사 김정희이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며 예술가였다. 

24살의 약관의 나이에 청에 가 옹방강, 완원 등의 대학자를 접견하는 자리에서도 꿀림이 없었던 조선이 나은 천재였다. 

그는 이들의 고증학 뿐만아니라 금석학에도 관심을 보여

이후 우리나라의 학계를 주도하며 금석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희가 가장 뛰어났던 분야는 역시 서예 분야일 것이다.

그의 글씨체인 추사체는 고대의 서예가들의 장점과 전서체 등의 장점을

모두 종합하여 완성한 그만의 독특한 글씨체였다.

 

그의 서체는 강건하고 거칠것 없는 호쾌함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모진 풍파에 시달려 얻어낸 기암괴석과 같은 글씨체이다.

실제로도 그는 오랜 제주도에서의 귀양 생활로 그인고의 세월을 견더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후 그의 글씨를 따라 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망해가는 조선의 공식서체가 되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burynai/10003867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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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부 장강 선생의 글씨

행서체

 

글의 내용 : 無念而無不念(무념이무불념),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무념으로 생각하지 않음이 없고 무위로 하지 않음이 없다.

 

앞귀절은 6조 혜능, 뒤 귀절은 노자의 말씀이나, 역사적 선후로 보아 노자의 말씀을 혜능조사가 패러디해다고나 할까?

즉 중국의 선불교는 중국의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꽃피웠다고 한다.

 

위 글씨를 보면 윗줄  4자는 모두 같은 무(無)를 달리 쓴 것이다.

그것이 행서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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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강 작 독조한강설..

무슨 추상화 같은 글씨..

 

홀로 낚시하는데 추운 강에 눈만 내리네..

 

 

 

유종원 작 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들에는 사람 자취 하나 없다

외로운 배위엔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낚시 하는데

추운 강에 눈만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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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강 박홍준 작 불침야장..

 

不寢夜長 疲倦道長 愚生死長 莫知正法

불침야장 피권도장 우생사장 막지정법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 듯이

바른 법을 알지 못해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學無朋類 不得善友 寧獨守善 不與愚偕 自受大罪
학무붕류 부득선우 영독수선 불여우해 자수대죄

 

진리를 배우는 참된 벗이 없고 바른 길을 함께 갈 어진 친구 없으면

차라리 나 혼자 착함을 지켜 어리석어 죄짓는데 짝되지 말라.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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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한 살 ‘대학생’ 이호순 할머니의 ‘꿈’

말이 대학생이지 그는 동네 성당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다닌다.

 

“뭘 배운다는 거, 그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몰라. 이 나이에 ‘선생님!’하고 부를 수 있는 행복도 맛볼 수 있고. 가방 싸들고 공부하러 가는 재미도 쏠쏠하지.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가 주어질 때는 정작 그 중요함을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많지. 하지만 나이 들어 봐. 젊었을 때는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게 피부에 와 닿지 않은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

일본어와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등 10여개 강좌 중 그가 선택한 학과(?)는 ‘붓글씨반’이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나이가 많아 붓글씨반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60~70대 ‘젊은 언니’들 틈에 끼어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목요일에 학교에 가서 두 시간 남짓 선생님에게 붓글씨를 배워. 늘 그 시간이 기다려지지.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잘 해 낼 수 있을까’하고 지켜보던 며느리가 내 방 가운데 떡 허니 책상을 들여놓지 뭐야. 난생 처음 내 책상이 생긴 거야. 그거 알아? 평생 책상 없이 살다가 내 책상이 생긴 기쁨 말이야.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진 선물이었어.”

그는 대학생이 된 후 매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붓글씨 쓰는 일에 열중한다.

“일단 붓을 잡으면 잡생각이 사라져. 집중을 해서 그런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 친구들은 고스톱이 치매예방에 좋다고들 하는데 붓글씨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치매가 끼어들 틈이 없어.(웃음) 처음부터 하루에 몇 시간씩 붓글씨를 써야겠다고 맘먹지 않았어. 하다 보니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앉아있게 되더라고. 기회가 되면 내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하고 싶은 꿈이 생겼기 때문이야. ‘늙은이가 그것도 대단한 실력을 갖춘 대가도 아니면서 전시회를 하느냐’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겠지만. 글쎄 그건 내 꿈이야. 나이가 들었다고 꿈까지 포기하란 법은 없잖아.”

외아들을 변호사로 키운 그의 침대 위에는 붓글씨를 연습한 ‘흔적’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는 침대를 가리키며 “저것들이 지난 1년 동안 나와 동고동락한 분신”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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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탁 위에 소동파가 쓴 이백의 "촉도난"의 탁본이 걸려 있다..

중국 낙양에 갓다가 용문석물 부근에서 구입하였다..

소동파는 도연명을 사모하여 그가 살던 지명을 따서 호를 동파라고 하였다

소동파는 왕희지의 서체를 배웠으므로

그의 글씨를 보다보니 이백, 도연명, 왕희지와 모여 탁배기 한잔하며 고담 준론을 나누는듯..

 

시 촉도난(蜀 道 難)은 촉 즉 사천성 가는 길의 험난함을 읊은 작품이다..

 

***

              촉도난/이백

 

아, 아, 위태롭기도 위태롭고 높기도 높은지고!

촉도(蜀道)의 어려움-

푸른 저 하늘 오르는 그것보다 더 어려워라.

잠총(蠶叢)과 어부(魚鳧)의

개국(開國)은 또 얼마나 아득함이랴.

그로부터 4만 8천년

진(秦)의 변경관 왕래 없었나니,

서쪽으론 태백산(太白山) 새들만 넘는 길

굽이 굽이 돌고 돌아 아미산(峨眉山) 꼭대기와 겨우 통하고,

땅 무너지고 뫼 부서져 장사 죽으니

그 뒤에야 높다란 하늘사다리

절벽에 걸린 잔도만이 고리처럼 이어졌구나!

위로는 태양 실은 육룡(六龍)의 수레조차 되돌아서는 높은 봉우리,

아래론 부딪히고 꺾이어서 소용돌이치는 골짜기의 물!

황학(黃鶴)도 여기는 지나지 못하고

잔나비도 잡고서 오를 일을 근심하누나.

청니(靑泥) 길은 얼마나 돌고 돎이랴.

백 걸음에 아홉 번은 꺾이어서 바위산 휘돌아라.

삼성(參星) 어루만지고 정성 곁 지나 숨 헐떡이고.

손으로 가슴 쓸며 쓸며 주저앉아 탄식 하놋다.

묻노니 한번 가면 그 언제 돌아오리?

바위투성이의 길 오를 바 없어라.

보이는 것, 고목(古木) 에서 새들도 슬피 울며,

쌍쌍이 숲 사이를 날으는 모습.

그리고 달밤이면 소쩍새 울음, 공산(空山)에서 피를 토해 우는 그 소리.

촉도(蜀道)의 어려움-

푸른 저 하늘 오르는 그것보다 더 어렵거니

소문만 들어도 웬만한 청춘쯤 금시에 시들어 버리리.

봉우리들은 하늘에서 한 자도 떨어지지 않고

절벽에 거꾸로 매달려 시든 소나무!

여울지고 폭포 되어 물 소리 요란하고,

벼랑을 치고 돌을 굴리니 만학(萬壑)의 우레!

이같이 험하거니

아, 먼 타관 사람이여, 어찌 여기에 왔는다?

검각(劍閣)은 험하고 높기도 높아

한 사람 관문 지키면 만 명이 밀려와도  뚫지 못하니

지키는 이 심복 아니면 이리 늑대로 금시 변하리.

아침이면 호랑이 피해야 하고 저녁엔 또 큰 뱀을 피해야 하느니

이 갈고 피를 빨아 사람 죽임이 삼단 같도다.

금성(錦城)이야 즐겁긴 즐겁기로니

일찍 돌아감만 같지 못하리.

촉도(蜀道)의 어려움-

푸른 저 하늘 오르는 그것보다 더 어렵거니.

몸을 펴 서녘 하늘 바라보며

나 여기에 길이 탄식하여라.

 

***

蜀 道 難

 

  - 李 白

 

噫 吁 戲,危 乎 高 哉!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

蠶 叢 及 魚 鳧,開 國 何 茫 然。

爾 來 四 萬 八 千 歲,

始 與 秦 塞 通 人 煙。

西 當 太 白 有 鳥 道,

可 以 橫 絕 峨 眉 巔。

 地 崩 山 摧 壯 士 死,

 然 後 天 梯 石 棧 方 鉤 連。

上 有 六 龍 回 日 之 高 標,

 下 有 衝 波 逆 折 之 迴 川。

 黃 鶴 之 飛 尚 不 得,

 猿 猱 欲 度 愁 攀 援。

青 泥 何 盤 盤,

 百 步 九 折 縈 巖 巒,

 捫 參 歷 井 仰 脅 息,

 以 手 撫 膺 坐 長 歎。

 問 君 西 遊 何 時 還?

 畏 途 巉 巖 不 可 攀。

 但 見 悲 鳥 號 古 木,

 雄 飛 雌 從 繞 林 間;

 又 聞 子 規 啼,夜 月 愁 空 山。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

 使 人 聽 此 凋 朱 顏。

 連 峰 去 天 不 盈 尺,

 枯 松 倒 掛 倚 絕 壁。

 飛 湍 瀑 流 爭 喧 豗,

 砯 崖 轉 石 萬 壑 雷。

 其 險 也 如 此!

 嗟 爾 遠 道 之 人,

 胡 為 乎 來 哉?

 劍 閣 崢 嶸 而 崔 嵬,

 一 夫 當 關,萬 夫 莫 開;

 所 守 或 匪 親,化 為 狼 與 豺,

朝 避 猛 虎,夕 避 長 蛇,

磨 牙 吮 血,殺 人 如 麻。

 錦 城 雖 云 樂,不 如 早 還 家。

 蜀 道 之 難 難 於 上 青 天,

 側 身 西 望 常 咨 嗟。

 

촉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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