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上梅花手自移,(호상매화수자이)
小橋風月最上宜。(소교풍월최상의)
主人歲歲常爲客,(주인세세상위객)
莫怪幽香怨不知。(막괴유향원부지)

 

湖上의 梅花가 저절로 變해 가니,
小橋의 風月(風景)이 정말로 좋도다.
主人이 해마다 나그네 되어 오니
그윽한 香氣 알지 못해 슬퍼(원망)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

 

詩 : 陸游 (방옹)

書 : 곡산 곽용남

 

**

육유(陸游:1125~1210)에 관하여

자는 무관(務觀)이고 호는 방옹(放翁)이며, 송나라 월주(越州)산음(山蔭:오늘날의 절강성 소흥(紹興)시)사람이다. 육유는 금나라에 대한 철저한 저항을 부르짖은 우국충정의 시인으로, 만여 수의 시를 지은 시인으로 역사에 남겨져 있지만, 동시에 한 때 아내였던 당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시로 지어 남긴 탓에 더욱 유명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29세때 진사시 1등하였으나 재상 진회의 농간으로 전시에서는 낙방하였다. 진회가 죽은뒤 34세 관계에 들어갔으나 각지의 지방관을 전전하면서 때로는 중앙의 역사 편집관으로 일하는 등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 65세 때에 향리에 은퇴하여 농촌에 묻혀 지냈다. 32세부터 85세까지의 약 50년간에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사상(詩史上)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킨 점이 최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국토회복의 절규를 담은 비통한 우국의 시를 짓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평화스러운 전원생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적한 시를 짓는 등, 매우 폭넓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에 《검남시고(劍南詩稿)》(85권)가 있다.

 

특히 추사가 예산 고택 뒷산 화암사 병풍바위에 청나라 옹방강이 준 시경(詩竟) 탁본을 받아와 새긴 각석이 있는데, 그 시경 글씨의 주인공이 육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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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각고(刻苦)’, 지본, 164×82cm, 개인 소장. 송시열이 ‘刻苦’를 쓰고 제자인 유명뢰(兪命賚), 권상하(權尙夏), 정호(鄭澔)가 ‘각고’를 주제로 학문과 공부에 대한 자기 생각으로 발문을 달았다.

 

 작품은 제자 유명뢰가 ‘刻苦’라는 두 글자를 공부하는 자로서 제일 먼저 마음에 새기려 글을 청하자 우암이 써준 것이다. ‘글씨는 그 사람이다’라는 도학자들의 글씨에 대한 명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해행으로 구사된 장중한 필획, 확고부동한 안정된 짜임새에 절의에 찬 우암의 성정과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다. 특히 장지바닥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필의(筆意)가 글씨의 생동감을 극대화하는 지점에서는 우암을 생면(生面)하는 감흥까지 자아낸다

더욱이 ‘느긋하게 되는 대로 아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배우는 자의 가장 큰 병통이다. 만약 이러한 병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을 지녔다 해도 결단코 성취할 가망은 없는 것이다. 刻苦라는 두 글자가 어찌 이러한 병통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우암의 제자 권상하의 발문을 보면 글씨 자체가 곧 선생님이 되어 목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글씨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데, 서예가 단순한 기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의 정신이 투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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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암 이곤순의 글씨

 

무법불립(無法不立)..법없이 설 수 없다..

행서를 투박하면서 고졸하게 쓴 대가의 작품..

 

일중 김충현 선생은 서예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대전·충청 출신 서예 거목들을 제자로 길렀다.

그가 가르친 충청 출신 대표적인 서예가는 한별 신두영(보령), 장암 이곤순(보령), 죽림 정웅표(홍성) 등이다.

 

장암의 말씀

“서예는 늘 정법을 추구해왔습니다. 율곡 이이의 유학 사상과 한석봉 선생의 서예를 기호유학파가 계승했지요.

우암 송시열 선생과 동춘당의 뜻이 거기에 맞닿아 있는 것 아니습니까. 근본을 중시하는 글씨로 서예의 위상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대전 충남지역에서는 가장 오랜 보문연서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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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 德 爲 隣 " (서석)

 

덕으로 이웃을 위하라..즉 이웃에게 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옛적부터 사람의 덕행을 강조하여 왔는데..

논어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으니, 德 不 孤 라  必 有 隣이리라..

덕있는 자는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즉. 덕을 베풀면 따르는 이웃(동지)이 생긴다는 뜻이다..

 

더구나, 남 모르게 베푼다고 하면..

전통적으로는 음덕(陰德)..불교적으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기독교에서는 "다른 손이 모르게"라고 하면서 제일의 덕행으로 친다..

 

이러한 덕행은 이웃을 동반한다 하였으니 당연히 천우신조(天祐神助)할 것이고, 산천초목인들 어찌 가만있으랴.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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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서화에 쓰인 글귀..

 

與 善 人 居면 如 入 芝 蘭 之 室하여 久 而 不 聞 其 香이나  卽 與 之 化 矣요..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와 동화되네..


그뒤에 명심보감을 읽다가 그 뒷귀절을 알게되니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착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잇으면 비린내나는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나 또한 더불어 그 냄새와 동화되나니,

붉은 것을 지니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지니고 잇으면 검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함께 잇는 곳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


위 글귀는 공자 말씀이나 한글로 풀이하니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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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방문할 때 글씨체 중에 촉체라고 소개 된 것이 있어 궁금하여 찾아 보았다

 

이유는 촉체란 송설체를 말한다..

송설체는 조맹부의 글씨체로 그의 서실(書室) 이름이 송설재(松雪齋)여서 이런 명칭이 생겨났다.

조맹부는 송나라에서까지 성행하던 당나라의 안진경체를 배격하고 왕희지의 글씨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던 사람이다

 

왜 조맹부의 서법을 촉체라고 하는가?

조맹부의 서법은 동파로부터 온 것인데, 동파가 촉나라 사람이므로 촉체라 한다(화인열전 2권 중에서)

 

***

조귀명이란 분이 말하길. 

“우리나라의 서법은 대략 세 번 변하였다.

국초에 촉체(蜀體:송설체)를 배웠고, 선조 인조 이후로는 석봉체를 배웠으며, 근래에는 진체(晉體:왕희지체)를 배우고 있다”고 한 바 있는데, 이용(안평대군) 한호(석봉) 윤순(백하)이 그 해당인물이 된다.

요컨대 백하는 송설체가 퇴조하고, 석봉체가 관각체(館閣體)로 떨어진 조선후기 새로운 시대서풍을 꽃피운 인물로 자리매김된다.

즉 왕법을 토대로 당 송 명의 여러 명서가, 특히 미불과 동기창을 소화해냄으로서 백하 이후 후기서단을 주도한 이광사 조윤형 강세황 등의 서풍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조맹부의 삼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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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체(楷書體)의 정착에 앞서 예서(隸書)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이룬 서체로 팔분체(八分體)가 등장한다.

한(漢)나라 중기에 채옹(蔡邕)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팔분체는 전서(篆書)의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예서의 틀을 완성시킨 서체인데,

특히 장식미를 더한 양식의 서체로 후한시대에 많이 사용됨으로 해서 예서와 해서의 과도기적 단계의 서체라고 본다

물결치는 필세를 갖춘 서체로, 특히 오른쪽으로 삐친 글자를 길게 늘려 만든 획의 처리가 예술적 특징인 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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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개인사찰에서 보관해왔던 이순신 장군의 친필이 6일 공개됐다.

충주문화원과 일본 구마모토 일.한문화교류연구회 주최로 이날 개최된 제4회 충주.구마모토 국제학술대회에서 구마모토현 혼묘지(本妙寺)의 이케가미 쇼지(46) 부주지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을 공개했다.

혼묘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 장수로 출정, 충주를 통해 서울로 진격해 조선의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 등을 포로로 잡았던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에 있는 개인사찰이다.

이번에 공개된 이순신 장군의 친필은 이 사찰에서 대대로 소중하게 보관돼 왔던 것이다

 

**

萬里江山筆下華.....만리강산이 붓 아래 화려하더니,

空林寂寂鳥無影.....텅 빈 숲엔 새 그림자도 없구나,

桃花依舊年年在.....복숭아 꽃은 여전히 해마다 피는데,

雲不行兮草雨重.....구름이 떠나지 않음이여, 풀엔 비만 겹겹이 내린다

 

***

신문엔 어떤 경위로 위 시가 일본에 전해지는지 설명이 없다..

첫귀절을 봐서는 왜군을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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