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가 그린 소동파
소동파에 빠져 적벽부를 쓴 적이 있다.
그를 다룬 책 "소동파, 선을 말하다"를 읽다가 무릎을 탁쳤다..
"덕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쁘지 않지만, 정의는 너무 지나치나면 잔인해진다.."
이 문장을 읽고 당대의 시인 구양수가 자신의 시대가 지났음을 선언하였다던가..
그는 시, 서, 화, 문장에 두루 능해 천년에 한명 나올 천재란 소리를 들었다..
시인으로는 도연명을 사모하여 도연명이 살았다는 "동파"를 따서 자신이 사는 곳을 동파라고 명명하고 호로 삼있다..
정치적으로는 왕안석의 개혁파에 반대하는 보수파로 귀양살이에 시달렸다..
정신적으로는 선불교에 귀의하여 심오한 정신적 경지을 읊는다..
후에 송설체로 유명한 조맹부가 그를 추모하고 추종하엿단다..
우리나라 조선 전기의 관용서체가 송설체인데..
송설체는 소동파의 글씨를 추종하엿고 소동파가 촉 출신이라 송설체를 촉체라고도 한다.
그 소동파는 왕희지를 추종하였다..
내가 서예를 배우면서 우연히 왕희지의 난정서를 쓰고, 조맹부가 쓴 "조식의 낙신부"를 쓰다가
소동파의 적벽부를 쓰는데..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맺어진 것을 알고는 묘한 인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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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赤壁賦)
임술(壬戌-1082년. 작자 나이 47세) 가을 7월 기망(기望-음력 16일)에 소자(蘇子-소식 자신)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삿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르게 하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조조)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주유)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낙엽같은 작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같은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에 한톨의 좁쌀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신선과 함께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품고 영원히 살고 싶으나 이는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아는지라 여운이 긴 소리를 쓸쓸히 바람에 실었다오”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달이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화라는 점에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불변이라는 점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만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풍광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가 무진장 베푼지라 그대와 내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님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