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도요 옆집은 이소도예..
민화 속에서 나온 도자기 호랑이가 귀엽다..
입구에서 함박미소로 맞아 준다..
호랑이들의 파티 진행중..
호랑이 상대는 까치인 줄 알았더니 닭도 있구나..
원래 연말 연시에 액막이와 경사를 비는 세화(歲畵) 중에는 까치호랑이 그림이 많다..
그러나 가끔은 새벽을 밝혀 귀신을 쫓는다는 닭 그림을 걸기도 한다..
그러니 닭호랑이 그려도 별 이상할 것은 아니다..
대충 도예 순방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광장..
한 인물이 눈길을 끈다..
그는 이삼평이다..
그는 공주 반포면 금강 주변 도공이다..이곳 계룡산 부근이 고향일 것이다..
그의 일본 성이 카네가에(金ヶ江)인 것도 그런 연유로 보인다..
그는 정유재란 때 왜군에 협조하고 일본의 건너가 사가번의 가신 타구 영주의 부하 무사가 된다..
그러나 도공 18명과 함께 아리타로 옮겨가 고령토를 찾아 헤매다가 1605년 아리타 이즈미산(泉山)에서 양질의 백토를 발견하고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열어 아리타 자기의 시조로 불리게 된다..
번주의 지원으로 아리타는 대표적 도자기 생산지가 된다..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가1650년부터 일본 도자기를 수입하는데, 1659년에는 아리타의 도자기가 수출된다.
그는 150명의 도공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되어 75세에 사망한다..
그뒤 그는 도산신사(陶山神社)의 신이 되었다..
일본이 임란 때 끌고간 우리 도공으로 도자기 산업을 일으키고...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한다..
도자기를 포장한 종이..에 그려진 우키요예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고,
도자기를 판 대금은 나중에는 군함, 대포를 수입하는데 쓰여 구한말 운양호 사건을 일으키고, 우리를 식민지화하는데 기여했다는 나비효과를 아시는가?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도공은 천대받고, 도자기 기술은 쇠퇴하여 고려적 청자가 잇었는 줄도 모르고 살앗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도굴을 통해 고려청자를 발굴하자 그제서야 진가를 알게 되엇다는...
지금은 다른가?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가꾸어 세계적으로 빛낼 준비가 되엇는가?
최근에 아마존 싸이트에서 우리의 호미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찻사발의 500년만의 귀향..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탈해간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차사발로 귀한 대접을 받다가 500년만에 귀향한 전시회다..
금의환향이라고 해야하나..
우리나라에 있엇다면, 어느 집 간장종지로 쓰이다가 깨어졌을 신세..
처녀가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되엇다는 기황후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의 아이러니이고 딜레마이자 패러독스이다..
세계 철화분청사기 전시회가 열리고 잇다.
철화분청사기란 검붉은 태토에 귀얄로 막걸리색 분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짙은 먹쑥색의 산화철로 익살스런 민화 고기나 당초문, 추상문을 그린 도자기를 말한다.
이런 기술은 조선 중기 백자의 등장으로 서서히 사라졋다가 1970년대에 부활하기 시작햇다..
도예촌 구경을 마치고..계룡산으로 접근한다..
반포면 청벽산에서 바라본 금강의 노을..
이삼평은 이런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간이 정류장의 황소 그림에도 이중섭의 기개가 들어있다..
구룡사터 당간지주..
크기를 보면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존재했더라도 동학사, 갑사를 능가하지 않았을까?
주변 부잣집 정원의 조각도 구경거리다..
부엉이 우편함도 인상적이다..
이건 뭔 조각인가??
아버지가 아들 볼기치는 장면인가??
도날드 의자는 디즈니에 바로 수출해도 되겠다..
꽃 사이에서 샤워하는 비너스..
니가 부르면 무조건, 무조건이야..
계룡산을 넘어, 금강을 건너서라도..
정신차려라..
소는 누가 키울건데..ㅎ
작은 계곡 틈틈히 글씨가 써있다..
이 작은 계곡의 바위에 이런 글씨를 쓰도록 영감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주희..주자라고 불리는 성리학의 시조다..
그는 자신이 살던 무이산에 무이구곡의 이름을 짓고 풍류를 만끼하였다..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조선의 성리학자 치고 고향 땅 계곡에 구곡을 건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작은 계곡에 까지 구곡이 들어섯으니 주식으로 따지면 상투를 잡은 꼴이다..
그러니 조선을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가 중국 무이산 무이계곡에 가서 크게 혼내주리라..
조선의 선비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물으리라..
ㄱ
성리학의 시대가 지나고 나일론 양말이 주도하는 시대가 되자 여권이 급신장햇다..
후천개벽의 시대..
벗은 여자라고 손 대지 말라..
남자는 서서 기다려라..
그녀의 하명이 떨어질 때까지..
<참고걷기> 상신리 - 큰골삼거리 - 큰배재 - 남매탑 - 금잔디 고개 - 큰골삼거리 - 상신리 약 6KM 3시간 반나절정도 걷기 좋은 코스 ..
어느덧 계룡능선에도 비가 그쳤다,...
돌아오는 길에 피자집 산이정원에 들러 피자를 먹었다..
이태리서 배운 실력이라 그런지 한국식 퓨전 피자 보다는 짜다..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의 서재에 앉아 바하의 아리오소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니
내 집인 것 처럼 편햇다..
비와서 가고 싶은 화순은 못갔어도 그에 못지 않은 스토리와 인연을 만나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