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色水聲演實相 산색수성연실상   산 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曼求東西西來意 만구동서서래의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

若人問我西來意 약인문아서래의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巖前石女抱兒眠 암전석녀포아면   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하겠네.

 

**

내 말없는 그대에게 묻노니
몇번이나 청산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았는가?

봄이 아니면 꽃이 피지 읺는다고?

고개를 들어보게나 천지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네..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0) 2015.03.25
행복(幸福)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0) 2015.01.28
떠나는 말  (0) 2014.10.12
외가 익으면  (0) 2014.08.20
유아독존(唯我獨尊)  (0) 2014.07.25

지나온 나이 예순 일곱

오늘 아침에 이르러 모든 것이 끝났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평탄하고

길머리가 분명하니 실수 없으렷다

수중에는 겨우 지팡이 하나 뿐이지만

도중에 다리 아플 일이 없어 기쁘기만 하구나

 

- 충지선사 -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幸福)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0) 2015.01.28
법전선사 한마디  (0) 2014.12.24
외가 익으면  (0) 2014.08.20
유아독존(唯我獨尊)  (0) 2014.07.25
토굴가  (0) 2014.07.24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마음에서 환한 빛이 나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쳐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

앞일을 알기란 어렵지않다. 마음이 고요하면 앞일을 알수 있다.

보통사람은 잠잘 때만 마음이 잠깐 고요해져 꿈속에서 앞일을 알게 되는데 하믈며 늘 고요한 사람이겠는가?

 

물이 지면 도랑을 이루고 외가 익으면 꼭지가 절로 떨어진다..

 

- 조귀명, 동계집, 정체(靜諦)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전선사 한마디  (0) 2014.12.24
떠나는 말  (0) 2014.10.12
유아독존(唯我獨尊)  (0) 2014.07.25
토굴가  (0) 2014.07.24
일원상서원문  (0) 2014.05.30

 

유아독존(唯我獨尊)

부처님이 태어나자 마자 일곱걸음을 걸으며 했다는 말씀..

이것을 직역하면,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무아사상을 설파하신 무처님이 자신만이 존귀하다고 말햇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럼 무얼까..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호주 원주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앗다..

 

" 우리가 하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 같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이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두개의 나뭇잎 조각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법이 없다. 하나 하나의 조각울 자기 자리에 놓음으로써 나뭇잎이 완성되듯

각자의 영혼도 자신만의 유일한 자리를 갖고 있다. "

 

부처님의 위 말씀은 " 나라는 존재는 이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라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는 말  (0) 2014.10.12
외가 익으면  (0) 2014.08.20
토굴가  (0) 2014.07.24
일원상서원문  (0) 2014.05.30
여몽정의 파요부  (0) 2013.12.13

 

 

 

나옹스님 토굴가(懶翁土窟歌)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 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錄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 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꽃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하니 

        종전에 모르든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에 밝았는데

무명장야 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취산제불회상(靈鷲山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은 묵묵하고 녹수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인가.

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청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이 담박(欲情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업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듯 올라

무공저(無孔)를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無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가 익으면  (0) 2014.08.20
유아독존(唯我獨尊)  (0) 2014.07.25
일원상서원문  (0) 2014.05.30
여몽정의 파요부  (0) 2013.12.13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  (0) 2013.11.26

 

 

원불교 경산 종법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한귀절에 눈이 붙잡혔다..

 

일목(一木) 불구이종과(不求二種果)요,

일인(一人) 불구이종재(不求二種才)라..

 

한 나무에서 2개의 과일을 구하지 말고

한 사람에게 2개의 재주를 구하지 말라..

 

하지만, 더 궁금증을 자아낸건 뒤에 걸린 글씨였다..

그래서 검색해보니..소태산대종사의 서원문이엇다..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바 천지(天地).부모(父母).

  동포(同胞).법률(法律)의 본원이요, 제불(諸佛).조사(諸佛).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 물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헤는 입을 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아독존(唯我獨尊)  (0) 2014.07.25
토굴가  (0) 2014.07.24
여몽정의 파요부  (0) 2013.12.13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  (0) 2013.11.26
소옥아..  (0) 2013.11.09

 

중국의 송나라 때 여몽정(呂蒙正 944~1011)은 하남 낙양인으로 태종, 진종, 때 세번이나

 재상의 지위에 올랐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때 버려진 가마터에서 밥을 얻어 먹다가 끼니를 걸르고 헐벗은 채 살다가

주역 점을 쳤는데, 중화리괘를 얻었다..

그리곤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게 된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뒤 돌아보며 쓴 글이 파요부(버려진 가마터 이야기)다..  

 

 

 파요부(破窯賦)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은 아침, 저녁에 닥칠 화(禍)와 복(福)을 알지 못한다.

지네는 발이 많으나 가는데 뱀을 따르지 못하고, 
닭은 날개가 크나 나는 것은 새(鳥)처럼 날지 못한다. 
말(馬)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으나 
사람이 타지 않으면 스스로는 가지 못하며, 

사람은 구름을 능가하는 높은 뜻(志)이 있어도 
운(運)이 따르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문장(文章)이 세상을 덮었던 공자(孔子)도 
일찍이 진(陳)나라 땅에서 곤욕을 당하였고, 

무략(武略)이 뛰어난 강태공(姜太公)도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80년의 세월을 보냈다. 

 

도척이 장수(長壽)하였으나 선량한 사람이 아니며, 
안회(顔回)는 단명(短命)하였으나 흉악한 사람이 아니다. 

요순(堯舜)은 지극한 성인(聖人)이나 불초한 자식을 낳았으며, 
고수는 우매(愚昧)한 인물이나 도리어 아들로 순임금 같은 성인(聖人)을 낳았다. 

 

장량(張良)도 원래는 한미한 선비였고, 
소하(蕭何)는 일찍이 작은 고을의 현리(縣吏)였다. 

안자(晏子)는 키가 오척(五尺) 미만이나 

제(齊)나라의 수상(首相)이 되었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초려(草廬)에서 은거(隱居)하였으나 

능히 촉한(蜀漢)의 군사(軍師)가 되었으며, 

한신(韓信)은 닭 잡을 힘도 없었으나 

한(漢)나라의 대장(大將)이 되었다. 

풍당(馮唐)은 나라를 편안케 할 경륜이 있었으나 

늙도록 등용되지 못하였고, 

이광(李廣)은 호랑이를 잡을 위력(威力)이 있었으나
종신토록 봉후(封侯)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다.

초왕(楚王)은 비록 영웅이나  오강(烏江)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한왕(漢王)은 비록 약하나  산하만리(山河萬里)를 얻어 황제가 되었다.

 

경륜과 학식이 가득하여도 
백발이 되도록 급제(及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능과 학문이 미약하고 얕아도 소년(少年)에 등과(登科)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먼저는 부유하였으나 뒤에 가난한 사람도 있고, 
먼저는 가난하였으나 뒤에 부유한 사람도 있다. 

 

교룡(蛟龍)이 때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와 새우들이 노는 물속에 몸을 잠기며, 

군자(君子)도 시운(時運)을 잃게 되면 
소인(小人)의 아래에서 몸을 굽힌다. 

하늘도 때를 얻지 못하면 해와 달이 광채가 나지 않으며, 
땅도 때를 얻지 못하면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물도 때를 얻지 못하면 풍랑이 일어 잔잔할 수 없으며, 
사람도 때를 얻지 못하면 유리한 운이라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옛날 내가 낙양(洛陽)에 있을 때  
승원(僧院)의 차가운 방에서 신세지고 살았는데 

홑겹의 베옷으로는 몸을 가릴 수 없었고 
멀건 죽으로는 그 배고픔을 이길 수 없었다. 

이때 윗사람들은 나의 무능함을 미워했고  아랫사람들도 나를 꺼려하였다. 


사람들은 다 나를 천(賤)하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이는 천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잠시 동안의 시운(時運)이며 또한 천명(天命)일 뿐이다.

 

그 뒤 나는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벼슬이 극품(極品)에 이르러 
지위가 삼공(三公)의 반열에 올랐다. 

직분은 만조백관(滿朝百官)을 통솔하고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징벌(懲罰)하는 권한을 잡았으며, 

밖으로 나가면 채찍을 든 장사(壯士)들이 호위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하인들이 시중을 들어 준다. 

입는 것으로 따지면 능라비단이 쌓여 있고, 
먹는 것으로 따지면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하다. 

이때 윗사람은 나를 총애하고 아랫사람은 나를 옹호한다.


사람들은 다 우러러 사모하며 나를 귀(貴)하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이는 귀(貴)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잠시 동안의 시운(時運)이며 또한 천명(天命)일 뿐이다. 

 

대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귀(富貴)만을 떠받는 것은 옳지 않으며, 
빈천함을 업신여기는 것도 또한 옳지 못하다. 

이는 천지(天地)가 순환(循環)하며 
한번 마치면 다시 시작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굴가  (0) 2014.07.24
일원상서원문  (0) 2014.05.30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  (0) 2013.11.26
소옥아..  (0) 2013.11.09
번뇌와 보리는 둘이 아니다..  (0) 2013.11.02

왜 사느냐고요?

“사람은 왜 살아야 합니까?”

젊을 때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 시기가 있습니다. 40대, 50대, 혹은 갱년기에 접어들어 ‘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기 때문이에요.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기 때문이지요.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이미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한국 사람이 됐지?’ 이렇게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 ‘이렇게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서 뭐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왜 사는가’를 계속 묻다보면 자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메뚜기도 살고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구나. 나도 살고, 저 사람도 산다. 모두 살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걸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 괴롭게 사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지?’

풀도 그냥 살고 토끼도 그냥 살고 사람도 그냥 삽니다. 또 때가 되면 죽습니다.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라,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죽는 거예요. 결국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그래서 나에게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도 권리도 있습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삶에 시비를 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변하느냐고요?

모든 것은 변해갑니다. 그런데 예전 생각만 하고 지난 것을 고집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어릴 때 우정으로 뭉쳤던 친구들도 세월이 가면 자기 살기 바빠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예전처럼 모여도 반갑지 못하고 시들합니다. 물론 우정은 있겠지만 어릴 때와 같은 관계는 아닙니다. 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하려 하고, 내 취향에 맞는지 너무 따지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서 병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들과 늘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집니다. 같이 있으면 대화할 수 있어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 좋아야 합니다. 그러면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언제 만나든 편할 수 있어요.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관계가 변하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지 말고, 떠난다고 아쉬워하지 말며, 집착하지도 않아야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도 만날 수 있어요.


나부터 살피세요

20대 때는 서른 되고 마흔 되면 더 너그러워지고 대인관계도 유연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심이 커져서 남도 더 배려할 걸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너그러워졌나요? 30대든 50대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너그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갑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그냥 놓아주면, 상대와 원수질 일 없고 내 인생도 편안해집니다. 부부가 20년, 30년 살다가 이혼하게 되더라도 욕하며 헤어질 게 아니라 서로 절하며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집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기대를 버리세요

결혼하고 1년쯤 지나면 신혼도 끝나고 사랑의 감정도 조금은 식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23년이 되었는데도 남편만 보면 가슴이 뛰고 긴장된다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을 쳐다만 봐도 좋은데,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계속 신경 쓰는 자신이 싫고 괴롭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남편을 더 사랑하는 게 싫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요?

남에게 사랑받으려고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항상 괴로움에 허우적거립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받으려면 먼저 사랑해야 하고 칭찬받으려면 먼저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사랑하고 자기가 먼저 칭찬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칭찬받습니다. 내가 베푼 만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기가 베푼 만큼 받게 되면 괴로움이 적지만, 베풀고도 못 받으면 베풀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미워할 일이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때는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 친했던 친구,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바로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기대 없이 좋아해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단풍처럼 아름답게 늙어가세요

새싹은 여름에 무성해지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결국은 가랑잎이 돼서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흔히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한 거예요.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저 가랑잎처럼 스러져가는구나.’ 하고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봄에 피는 꽃, 새싹만 예쁠까요? 가을에 잘 물든 단풍도 무척 곱고 예쁩니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면 아무도 주워 가지 않지만, 가을에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고이 꽂아서 오래 보관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듯 아름답게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습니다.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것입니다.

나이 들면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잔소리는 거두세요

나이가 들면 어딜 가든 젊은 사람들에게 훈계하느라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반복하면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왜 잔소리와 간섭이 늘까요? 늘 옛날 기준으로 보니까 못마땅한 것이 많이 보여서입니다. 또 살아온 경험이 많으니 젊은 사람의 미숙함이 눈에 많이 띕니다. 그러니까 자꾸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나 보통은 잔소리라고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니 한 번 말하고 안 들으면 입을 꾹 다물어야 합니다. 비가 와서 젖을 걸 뻔히 알아도 한 번 젖고 두 번 젖고 세 번 젖고 그래서 고추농사 망치면 자식들도 그제야 압니다. 이런 경험을 묵묵히 지켜봐줘야 하는데, 어찌될지 알고 있으니까 자꾸 간섭을 하는 거예요. 자식을 생각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잔소리를 한다고 자식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게만 여깁니다. 그러니 입을 다무는 게 좋습니다.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고 잘 안 찾아온다면 부모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좀 잔소리가 많구나.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는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잔소리와 간섭을 안 해야, 자식과 같이 살아도 늘 보살핌을 받습니다.

법륜(法輪)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원상서원문  (0) 2014.05.30
여몽정의 파요부  (0) 2013.12.13
소옥아..  (0) 2013.11.09
번뇌와 보리는 둘이 아니다..  (0) 2013.11.02
겨울이 없으면 꽃도 없다..  (0) 2013.10.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