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부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오?"

그러자 스님은 자신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신부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며 되물었다.

 "그거 휴대전화 아닙니까?"

 "맞습니다. 휴대전화입니다.

바로 그렇게, '이것이 휴대전화이다' 하고 아는 만큼 그렇게

'인간하처래하처거(人間何處來何處去·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것이 부처입니다."

순간 난 깨달았다. 그리고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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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란 책을 읽고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이 책 표지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어 선뜻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10여년 전에 초판이 출간된 책이었다. 그때는 선방(禪房)에 다니던 때여서 못 보았던 것일까? 어쨌든 유럽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자못 궁금했다.

세계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씨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 환자로 넘쳐났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틈에서 어느덧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행복에 관한 교훈을 23가지로 정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통한 웃음을 자주 터뜨리는 중국 노승(老僧)에게서 터득한 행복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건만 대부분 사람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이나 부유함, 과거나 미래의 일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생각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다.

이런 내용을 무릎을 쳐가며 읽으면서 최근에야 발견한 달에 대한 단상(斷想)이 떠올랐다. 우리는 때에 따라 달의 모습을 초승달·반달·보름달·그믐달 등으로 달리 부르지만 사실 달은 한 번도 이지러지지 않았다. 달은 항상 보름달인 것이다.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글다. 우리 눈에 이지러지거나 반쪽짜리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달 자체가 이지러지거나 반쪽 난 것은 아니다. 그림자에 가려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일종의 착시(錯視) 현상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러한 착시 현상 속에서 끊임없이 보름달을 기다린다. 심지어 연초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크고 밝고 둥그런 대보름달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보름달은 일 년에 단 한 번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내년의 대보름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달은 항상 보름달이다. 나날이 보름달이며, 나날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날인 것이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대보름달만 즐기고 초승달 혹은 반달로 보이는 가짜 달에 속을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매일이 보름달인 진짜 달을 즐길 것인가?

행복은 달의 본모습처럼 이미 매일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매일매일을 크고 밝고 둥글게 살아갈 수 있건만 언젠가 크고 밝고 둥글게 살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과 웃음을 유보하고 좀 더 풍족한 생활과 좀 더 원만한 관계와 좀 더 많은 소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날은 마치 대보름달처럼 일 년에 단 한 번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리거나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수많은 착시 현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시간과 공간 자체도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서 볼 뿐이다. 이 땅을 기준으로 보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만 우주 허공에서 보면 오히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이다.

참선(參禪)의 가르침도 결국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라는 해묵은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스님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이 집대성한 한국 최초의 공안집 '선문염송(禪門拈頌)'의 제1칙(則)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셨으며 어머니 태(胎)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

석가세존께서 도솔천에 머무르시다 카필라 왕궁으로 강림하셨으며,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태에서 나와 왕자의 몸으로 계시다 출가하고, 마침내 성도(成道)하신 후 중생을 제도하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화두는 도대체 무슨 소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신 것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 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고? 이것이 과연 무슨 소식일까?

참선은 본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지만 사족(蛇足)으로 한마디 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오시거나 말거나, 사람들을 제도하시거나 말거나,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글다. 우~하하하하하!"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일 년에 한 번 대보름날을 기다려서 소원을 비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웃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행복의 창조자만 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나날이 좋은 날인 것이다.

 

-월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7/20150127041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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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色水聲演實相 산색수성연실상   산 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曼求東西西來意 만구동서서래의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

若人問我西來意 약인문아서래의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巖前石女抱兒眠 암전석녀포아면   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하겠네.

 

**

내 말없는 그대에게 묻노니
몇번이나 청산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았는가?

봄이 아니면 꽃이 피지 읺는다고?

고개를 들어보게나 천지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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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나이 예순 일곱

오늘 아침에 이르러 모든 것이 끝났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평탄하고

길머리가 분명하니 실수 없으렷다

수중에는 겨우 지팡이 하나 뿐이지만

도중에 다리 아플 일이 없어 기쁘기만 하구나

 

- 충지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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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마음에서 환한 빛이 나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쳐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

앞일을 알기란 어렵지않다. 마음이 고요하면 앞일을 알수 있다.

보통사람은 잠잘 때만 마음이 잠깐 고요해져 꿈속에서 앞일을 알게 되는데 하믈며 늘 고요한 사람이겠는가?

 

물이 지면 도랑을 이루고 외가 익으면 꼭지가 절로 떨어진다..

 

- 조귀명, 동계집, 정체(靜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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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唯我獨尊)

부처님이 태어나자 마자 일곱걸음을 걸으며 했다는 말씀..

이것을 직역하면,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무아사상을 설파하신 무처님이 자신만이 존귀하다고 말햇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럼 무얼까..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호주 원주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앗다..

 

" 우리가 하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 같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이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두개의 나뭇잎 조각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법이 없다. 하나 하나의 조각울 자기 자리에 놓음으로써 나뭇잎이 완성되듯

각자의 영혼도 자신만의 유일한 자리를 갖고 있다. "

 

부처님의 위 말씀은 " 나라는 존재는 이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라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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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스님 토굴가(懶翁土窟歌)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 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錄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 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꽃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하니 

        종전에 모르든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에 밝았는데

무명장야 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취산제불회상(靈鷲山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은 묵묵하고 녹수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인가.

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청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이 담박(欲情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업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듯 올라

무공저(無孔)를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無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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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경산 종법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한귀절에 눈이 붙잡혔다..

 

일목(一木) 불구이종과(不求二種果)요,

일인(一人) 불구이종재(不求二種才)라..

 

한 나무에서 2개의 과일을 구하지 말고

한 사람에게 2개의 재주를 구하지 말라..

 

하지만, 더 궁금증을 자아낸건 뒤에 걸린 글씨였다..

그래서 검색해보니..소태산대종사의 서원문이엇다..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바 천지(天地).부모(父母).

  동포(同胞).법률(法律)의 본원이요, 제불(諸佛).조사(諸佛).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 물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헤는 입을 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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