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관광을 마치고 아소산록  아소골프클럽이 잇는 아소고원호텔에서 묵었다..

그 호텔에는 골프코스 옆에 야간에 운영하는 노천탕에 있어, 벌거벗고 탕속에 앉아 숲을 바라보면서 거풍의 기분을 느껴본다..저녁에 축구 한일전을 일본에서 보나 기대했는데,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산보를 나왔다가 인근에 있는 적수(赤水) 사석(蛇石) 신사에 들렀다..

말로만 들었지, 시골에 잇는 평범한 신사는 어떤지 궁금하던차였다..

입구는 신사특유의 일주문이 있고, 안쪽에 신사 본채건물이 잇는데,건물뒤로 머리에 산내끼를 두른 바위가 여럿있다.

흡사 우리의 서낭당분위기와 비슷하다..

적수신사는 아소화산 분화시에 흰뱀이 나타나 영험을 주었다는 사연을 담고 잇어 흰뱀을 모시는 신사 같았다..

 

(신사 본채 뒷면의 풍경)

 

일본은 모든 문화가 고이는 곳이다..다신교인 신불(神佛)을 믿는다..

사람이 나면 신사에 빌고,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장례는 화장을 하여 절에 납골묘형태로 모신단다..

신사의 신앙형태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 형태가 진화한 모습이랄까?불교는 대처승이 주류이고..

기독교인구는 인구의 1% 정도..

가이드가 말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일본 사람은 날 때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마라!"는 교육을 받으며 또한 "충"을 강조하는 교육을  많이 받다보니,

의식의 근저에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하라는대로 살아왔다.."는 의식이 강하단다..

그래서 기독교의 "원죄사상"이 파고 들기 어렵다고 한다..

믿거나말거나..

하지만, 기독교 문화는 즐긴단다..크리스마스 등등..

 

 

(신사앞 납골묘 중 하나)

위 납골묘는 "대정"집안의 납골묘인데, 그 형식이 다른 묘와 달리 풍류가 잇어 보여 찍었다..

망자들이 평소 음풍농월하던 문인풍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멋진 풍류적인 묘비를 마련할까보다..

 

 

 

(다자이후 천만궁 입구)
(천만궁의 본전)

숙소를 떠나 후쿠오카 인근의 다자이후에 잇는 천만궁(덴만구)을 찾았다..

이 신사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라는 고대 학자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데,

전국적으로 같은 신을 모시는 1000여개의 신사 중 본산격으로 도리(烏居-일주문)이 4개나 있는 일급 신궁이다..

스가와라는 중앙의 높은 관직에 있다가 좌천되어 이곳에 내려와서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약용선생 쯤 된다고 할까?

이 신사에서는 학문성취나 시험합격을 비는 사람이 많이 와서 패를 사서 자기의 소원을 써서 쭉 걸어놓는 곳이 있다..

 

본전 옆에 서잇는 나무는 도비우메(비매,飛梅)라고 불리는 매화나무란다..

스가와라가 좌천되어가자 뒤따라 날라와서 자랐다고한다..

좌간 이곳 부근에는 수천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매화꽃이 필 때는 장관을 이룬다고 하고..

우메가에모찌(매화가지떡)는 이곳의 명물인데, 먹을 만하다..

 

 

 

절의 대웅전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잇는데, 신사 본전 중앙에는 무엇이 모셔져 잇을까?

의외로 거울이다..

신사에서는 거울, 곡옥, 검을 3대 신물로 치는데..우리나라 고대의 신물과 같다..

 

(본전 후면의 나무)

 

신도의 에니미즘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 각종 산천초목 만물을 섬기는 대목이다..

본전 뒤의 고목은 남녀의 인연을 잘 맺어주는 신목으로 여겨지고..

부억의 칼도 포정총이라하여 비석을 세워 기리고 있다..

예전에 바늘이 부러지자 "조침문"을 지어 애도하였다는 조선 여인보다 한술 더뜨는 대목이다..

 일본에는 우리의 과거의 흔적..우리가 버린 것들이 보존되고 손질되어 한몫 단단히 하고 있는 느낌이다..   

 

(포정총)

돌아오는 쾌속선은 순풍운항..

배안에서 "미녀는 괴로워"를 보며 웃고 잇는데,

배가 흔들려 밖을 보니

우리나라 해역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번개,천둥이 치고 파도가 흉흉하다..

다행이 남은 거리 얼마 되지않아 무사히 안착..

부산역에서 시간을 메우려고 인터넷 신문을보니

그사이 북한산, 수락산에서 벼락으로 5명이 사상했다는 소식..

세상엔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 어디있으랴!

귀가하는 우리 집 외엔...

<2008.7.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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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뿌를 출발하여 인근 유노하나 (湯の花)에 도착..

유노하나는 온천의 유황증기에서 얻어지는 노란결정체로 입욕제로 쓰인다.

그곳에서 온천에 쌂은 계란과 구슬 사이다(라무네)를 먹었다..그 사이다는 예전의 동네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재벌 사이다에 제패되기전 동네 마다 잇었던 금관사이다..말표사이다..

 

다시 2시간을 달려 아소화산에 다다랗다..

아소화산은  지금도 가스와 수증기를 뿜고있는 활화산으로 가스의 농도와 풍향에 따라 등정관광이 허용된단다.

마침 우리 일행이 산아래에서 점심을 들고 초원에서 승마등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등정허가가 났다고 한다.

운이 좋다..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른다..

 

 

분화구는 긴쪽의 직경 1KM의 타원형이고 깊이는 수백미터라 한다..

들여다 보니 저 밑으로 파란 물이 끊고 있고 수증기가 치솟는다..그리고 유황냄새와 독한 썩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기묘한 풍경에 약간은 오싹한 느낌이랄까?

 

 

활화산이 있고, 수시로 지진이 강타하는 일본에서는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의식이 있는지 모른다. 

늙거나 병들어서야 죽음을 인식하는 우리와는 다른..

하산은 걸어서 했다..시원한 풍광..상쾌한 바람..가벼운 걸음..

 

 

하산후 다시 1시간 30분을 달려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일본 3대 성 중이 하나인 구마모토성을 관람한다..

임진왜란후 귀국한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히데요시 아들편에 서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서서 세키가하라전투에 참여한다.

이 싸움의 승리로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카토는 쿠슈의 지배자가 되어 이 성을 신축하였다 한다.

울산 도산성에서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되어 물부족에 시달리며 죽다가 살아 도망친 그의 경험에 따라 구마모토성을 지을 때 우물을 200여개 팠다고 한다..

그러나, 위 성에서 가토의 자손은 2대밖에 가지못하고,호소가와 집안이 200년간 지배해왔다..

명치유신 과정에서 1877년 일어난 서남전쟁시 위 성은 50여일 버티다 함락당하고 불타버렸다..

톰 크루주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가  서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란다..

1960년대에 들어와 천수각을 콘크리트로 복원..

 

천수각은 지금은 박물관 역할 한다..

일본도 1960년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하였다하니, 유홍준씨가 알면 혼날 일이다..

 

(천수각안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그림)

박물관에서 호랑이 가죽위에 앉은 가토의 그림을 보자, 이승만 대통령 일화가 생각나 사진부터 찍었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수상과 면담시 일 수상이 한국의 호랑이에 대해 묻자,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모두 잡아가서 이제는 없다"고 하였다는..

그런데, 실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당시 주인장(명령서)에 따르면,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12월 14일 조선에 파견된 장수들에게 "조선의 범을 잡아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 다수의 장수들이 경쟁적으로 야생 호랑이를 잡아 도요토미에게 바쳤으며 도요토미는 이를 약으로 썼다고 메이지시대 일본 문서들이 전하고 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사명대사와 가토가 평화회담을 한 적이 있었다.가토가  물었다. " 조선의 보배는 무엇이오 ? "

" 우리 나라의 보배는 바로 당신의 목이오. "

" 조선에서는 이 땅을 짓밟고 있는 당신의 목에 엄청난 상금이 걸려 있소. 당신의 목을 갖게 되면상금도 상금이려니와 이 전쟁도 끝날 터이니 그 아니 보배요 ? " 

 

(천수각에서 본 우토망루)

 


 

구마모토 성 건물중 유일하게 신축당시부터 그대로인 건물이 우토망루이다..

5층의 망루에 올랏다..목조건물이라 신발을 벗어 들고 오르게한다..

5층 망루에 사방의 문이 열린 곳에 앉으니 시원하기 그지없다.잠시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긴다..

망루의 마루 촉감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문득 진주성 촉석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 옛날 촉석루 옆 남강에서 논개가 죽인 적장은 가토의 부장인 케야무라 로쿠스케였다..

가토의 또다른 부하였던 사야가..그는 조선에 투항하여 김충선이란 이름으로 조선을 위해 싸웠다..

이렇게 구마모토는 우리의 역사와도 이어져 잇다..

(우토 망루에서 본 천수각)

사무라이들은 생사에 초탈했을까, 아니면 짐짓 외면했을까?

그들이 다도와 사꾸라의 낙화를 즐기면서 선적인 풍취를 누리려했다는 것은

생사의 절박함에서 오는 한방울의 여유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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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코비호)

 

 배타고 일본가기

 

배를 타고 일본 갔다 온다는 말을 여러번 듣다가 얼마전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라는 책을 읽고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그전부터 왜구..임진왜란..윤심덕..등등의 주제로 한일 사이의 현해탄에 관심이 있던터다..한 일 사이에 가로 놓인 바다가 보고 싶엇다..

 

배는 "코비호"라는 쾌속선..바다위에 2미터 정도 부상하여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린단다..

부산을 떠난 작은 배가 나는 듯이 달려 30여분에 대마도 인근을 지나더니  3시간만에 하카다(후쿠오카)에 도착하였다.

 

장마와 태풍기간임에도 택일이 좋았던게지..그야말로 순풍..잔잔한 바다..

 여몽연합군의 쿠슈상륙 2일 째 몰아닥친 태풍으로 반토막 나고 퇴각한 사건이래 그 바람을 일본은 신풍(가미가제)라 한단다.. 

 

(하카다항)

멀리 하카다항이 보인다.구슈의 제일의 도시 하카다(후쿠오카)..

옛지명이 하카다이고 그뒤 개칭된 이름이 후쿠오카라한다..

과거와 관련된 지명엔 하카다..새로이 개설된 것엔 후쿠오카가 붙는단다.

멀리 바라보이는 인상이 창과 방패라면 나만의 착각일까?

 

너무나 가까운 거리의 저 바다를 우리는 건너지 못하고, 건너오는 저들에게 당하기만 했을까?

 

(금린호)

 

하카타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온천도시 배뿌로 달린다..

온종일 철도와 배 그리고 버스로 7시간을 달려 배뿌시 조금 못미친 유후인의 금린호에 도착하였다.

온천물과 민물이 교차하며 물안개로 유명하다는 호수는 평범한 연못이고, 유후인은 민예품상가가 밀집된 시골 마을이다..하지만, 배뿌로 가는 길목엔 들릴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로 살려 관광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곳..

이정도 관광자원은 우리도 충분하다..영광, 담양과 비교해도 우리가 훨씬 개발가치기 크다..

 

(부엉이 조각)

유후인의 상가의 다양한 물건 중에 딸래미는 개구리 인형과 장식품에 홀딱 반했다..

난 유난히 부엉이 조각과 장식이 많이 눈에 띄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부엉이 우는 소리가 "푸, 푸"하는데, 그 발음이 복(福)자 발음과 비슷하여 복을 비는 장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일본 사람은 고양이도 복의 상징으로 여겨 고양이 장식품도 많았다..

학생들이 시험 전에 돈까스를 많이 먹는데, 승(勝)의 발음이 "가쓰"라 시험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뜻이란다.  

 

7시간의 원정을 마무리하는 숙소가 구슈의 동쪽 끝..배뿌(別府) 시 그 중에서도 동쪽 해변에 있는 세이부(淸風)호텔..

방에 들어서니 망망대해가 벽화처럼 펼쳐진다..경치가 맘에 쏙드는 방..

 

 호텔 저녁도 일본 정식으로 여자종업원이 일일히 서비스해주는 것이 여행중 제일 좋았던 저녁식사였다..

 

(베푸시 청풍호텔 인근의 공산 명월)

식사후 마침 배뿌 시내 여름 축제의 열기를 잠시 구경하고..해변으로 나서자..

 아!!  공산 명월(空山 明月)..

 

"좋구나!"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아사히 맥주 한잔에 다다미에 누워 잠이  들었다.. 

 

 

(호텔방에서 보는 일출)

호텔방에서 눈을 떠서 밖을 보니 마침 동이 트기 시작한다..

어릴적 "동명일기"라는 수필에서 본 것 같은 장엄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자못 감동적이다..

 

하나의 해..하나의 배..하나의 새..

 

그대로 조화로운 선(禪)적 평화..

 

아마.. 저 바다는 태평양으로 주욱 이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대양의 기운을 더 간직한 태양인듯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간사한 마음 때문이겠지..

 

호텔을 떠나면서 엘레베이터 입구에 붙어있는 "일출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탕" 사진을 보곤 아뿔사 하고 무릎을 쳤다..

바로 저것을 해봐야하는데..

배뿌에서 본 것은 달과 해..그리고 뜨거운 물 뿐이었는데..비워지는 한편 채워지는 이 느낌은 과연 무엇인가?

(요크민스터 성당)

8. 요크

비오는 가운데 요크에 도착하였다.

빗속에서 요크 민스터 사원과 성벽 망루 그리고 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요크는 성벽보존운동이 일어나 영국에서 최초로 내셔널 트러스트(문화유산지키기운동쯤 될까?)가 결성되었다 한다.

 

(망루)

 

영국에서 공중화장실도 저녁 6시 반이후엔 문을 잠근다. 망루 앞에 호텔이 있어 급한 용무를 해결하길 망정이지.^^

 

성벽 자체는 중국의 서안성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벽 밖의 해자도 자고 요새라고 하기엔 규모가 적고, 다만 행정 통치의 거성이었던 것 같다.

 

요크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의 요크가와 인근의 랭카스터가가 유명한 장미전쟁으로 왕위계승을 다투다가 양 집안이 결혼하였고, 

그 사이에서 출생한 왕이 헨리 8세다.

 

또한 뉴욕이라는 이름의 뿌리가 되는 곳이고, 요크셔 푸딩, 요크셔 티, 요크셔 테리아 등 지역의 이름을 딴 명물이 있는 개성 있는 도시 같다.  

 

저녁식사는 중국식당으로 갔는데, 웬 요크사람들이 가득차고, 또 왁짜지껄하게 식사를 하고,

홀 중앙 무대에 주로 여자들이 잔뜩 올라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풍경이 너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번에도 식사 주문을 제대로 못해, 4가지 요리를 먹었는데도 나중엔 5가지요리가 한꺼번에 나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지경.. 

 

요크의 숙소는 무서운 분위기가 난다.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 나올 법한 계단을 몇 개나 지나고 문을 서너개를 지나야 들어가는 방..

옆방과 통하는 문이 있어서 옆방에서 누가 튀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잠들기 전엔 제법 떨었는데, 잠은 푹 잘 잤다.

 

 

새벽에 동네 주변을 산보하는데, 풀포드 지역의 주택가에 공동묘지도 같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영국사람들은 버버리보다 멀버리를 선호한다고 하고, 또 영국의 기후에는 바보제품의 자켓이 좋다고 한다.

구수한 요크셔 티를 사겟다고 나선 일행을 한눈 팔다가 놓치고 30여분간 방황한 요크.. 

 

 

(하워드 캐슬 후면, 정면은 역광으로 사진 잘 나오지 않았다)

 

9. 하워드 캐슬

런던으로 향하기 전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장원으로 가는 길 들판엔 유채가 가득피어 아름답다.

들판과 호수를  경계로 대장원을 구성하고 있는 귀족의 저택은 멋이 있다.

 

(정면쪽에서 바라본 장원의 호수, 까페와 어린이 놀이기구 등이 설치됨)  

 

(중앙홀 쯤 되는 곳)
(천장의 돔 내부)

무심코 촬영을 하다가 제지를 당햇지만, 유일하게 실내 사진을 확보한곳..

영국에선 철저히 유적지의 실내 촬영을 금지 시키고 있다.

 



 

영국의 들판에는 항상 구름이 가득하다.

무심히 하늘의 구름을 보다가 천마가 솟아나는 환영에 빠진다.

산이 드믄 영국의 벌판에서 하늘은 거대한 캔버스이고 구름은 장대한 스토리라 할까?

영국에서 헤리포터, 반지의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 환타지 소설이 등장한 것은 들판, 하늘과 구름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본다.


5. 윈더미어 호수와 워즈워드 생가

버밍엄에서 영국 북서부에 위치한 호수를 향해 달린다.

영국의 호수 15-16 중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다는 호수..

버밍엄을 출발하여 4-5시간을 달려 호수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기사와 가이드가 숙소인 Low wood hotel을 찾지 못한고 헤멘다.

네비게이션을 달았다는데, 그 기능이 시원치 않단다.

우리나라 네비게이션은 너무 정밀해 군사기밀까지 누설될까봐 걱정이라던데..

영국에서는 남의 정보를 구하여 입력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하여간, 숙소에 도착하니 별4개의 호텔로 시설도 좋고 바로 호수 앞에 위치하여 경관도 마음에 든다.


저녁식사는 연어와 오리가슴팍살을 골랐는데, 육질 부드럽고 맛도 좋았다.

여기에 2003년산 쎙떼밀리용 레드와인과 메독 레드와인을 곁들여 우아한  디너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추가한 후식이 엄청 양이 많아 모두 태반을 남겼다는 것..

영국사람 기준으로 주문한 음식은 양이 많더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문한 햄버거도 엄청크더만..중년의 사내들이 배에 커다란 햄보따리를 달구 다니는 것이 이해된다.^^

 

 

다음날 호수 주변2-3km를 산보하였다.

주변 농장과 숲속에서 뭇 생명들과 수인사를 나눈다.

 

 

다람쥐, 토끼, 사슴, 양..

사는 사람 닮아 모두 우리나라 것 보다 덩치들이 크다.

 

아침 식사후 숙소를 떠나 그래스미어에 도착..

영국 시인 워즈워드가 살았다는 생가..도브 코티지를 방문하였다.

 

(도브 코티지)

예전에 보았던 나탈리 우드, 워렌 비티 주연의 “초원의 빛”이란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서 읊었던 바로 동명의 시의 쓴 사람..

생가에서 그 시를 감상해본다. 

 

Splendor in the Grass

   from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William Wordsworth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초원의 빛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에서

 

                윌리엄 워즈워드

 

  

 

한때 그처럼 찬란했던 광채가

이제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한들 어떠랴

초원의 빛, 꽃의 영광 어린 시간을

그 어떤 것도 되불러올 수 없다 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이 있을

본원적인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에서

죽음 너머를 보는 신앙에서

그리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 주는 세월에서

   

 

선착장으로 가 유람선을 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뿌려 추워 오돌오돌 떨며 2층의 뱃전에서 호수의 풍광을 감상한다.

내 눈에 소양강호의 풍광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6. 하워쓰와 브론테

 

요크를 향하던 버스가 일정을 바꿔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하워쓰를 향해 달렸다.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제인 에어”를 쓴 샤롯 브론테 등 3자매와 남동생이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는 생가에 들렀다.

 

(브론테 박물관)

 

 중학교 시절 제인 에어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에 호기심이 잔득 발동하였는데,

생가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옛 건물과 도로가 그대로 보전되어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에 끌려 가게에 들어가 목각 오리 인형을 구입하였다.

 

이 자매들은 자라면서 뒷말 잇기 처럼 이야기를 한귀절씩 이어가기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꿈을 수련하여갔다고 한다. 

 

 

생가에서 가이드에게 폭풍의 언덕의 실제 모델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 영국의 언덕은 어디서나 바람이 불면 ”폭풍의 언덕“이 되고, 바람이 잠잠하면 ”텔레토비의 동산“이 된답니다”

 

 

 

(햄튼 코트 후면)


3. 햄튼 코트 궁전

 

영화 “천일의 앤”의 주인공 헨리 8세와 앤 볼린..

그  헨리8세의 아들 낳기 프로젝트에 적극 가담했던 울시 추기경..

그러나, 결국 울시는 헨리 8세에게 팽 당하고 그의 저택이었던 햄튼 코트는 몰수되어 헨리 8세의 궁전이 되었다 한다.

그 후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정원을 조성하였다.

 

(장미정원)


궁전에 있는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정말 절대군주의 자만심을 적나나하게 보여준다.

햄튼 코트 궁전엔 영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테니스 코트가 있다.

지금도 그 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다.

 


후면의 호수 끝에서 바라본 궁전

- 좌측으로는 골프장과 목초지가 끊없이 펼쳐진다. 헴튼 코트 골프장엔 한국교민 회원이 엄청 많단다

 

왜 코트가 많은가?

 

런던 시내에 다녀보니, 주택에는 2층 이내의 양옥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나라 같은 아파트는 서민의 임대용이란다.

그런데, 주택에 이름이 00하우스, 00코트라고 되어있다.

 

코트(court)는 흔히 테니스 코트(경기장) 또는 법원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 주택에도 코트라고 써 있어 궁금하여 물어 보니, 집 구조가 口 자 모양으로 건축되어 사각의 앞마당이 있는 구조를 코트(court)라고 부른다 한다.  

 

***

 

햄튼코트궁전에서 윈저성으로 가는 길에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현장을 보았다.

로빈훗이 살던 시절의 영국의 섭정 존왕..

결국 귀족들에게 밀려 대헌장에 서명하였는데, 그곳이 템즈 강가 어디쯤 한적한 곳이었다.

존왕을 으슥한 곳에 유인하여 서명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겟다.

대헌장은 영국 민주주의의 단초로 자주 인용된다.

대표적인 내용으로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을 꼽는다.

성서시절에도 세리의 폭정이 등장하거니와 미국의 독립도 과다한 세금부과에서 시작되었으니 과도한 세금은 고래로 원성의 대상이었다.


이동 중 점심을 작은 휴게소에서 터키와 비프, 요크셔 푸딩을 곁들여 먹었다. 요크셔 푸딩은 바가지 과자처럼 생겨 특이하거니와 앞으로 가볼 요크지방의 음식이라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4. 윈저성


윈저성은 1070년 “노르만 정복”으로 영국왕이 된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가 런던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템즈강 언덕에 목조의 성채를 구축한 터에 계속 개, 증축이 이루어져서 현재와 같은 규모의 거대한 성이 건축되었다. 

한때는 보불전쟁 패배 후 프랑스에서 망명한 나폴레옹 3세가 거주할 공간을 중축하여 주고 머물게 하였다.  

현재는 여왕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된다 한다.

 

여왕의 산책길(long walk) , 성의 정문 맞은편

 나라의 덩치는 우리와 비슷한데 땅 씀씀이는 대국이다. 우리는 산이라도 개발해 넓게 써야..

 

영국왕은 한 핏줄로 계속 이어지는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정복왕 윌리암 1세 이후 모든 영국왕은 부계로든,  모계로든 모두 월리엄 1세의 자손이란다.

부계가 단절이 되면 왕조의 이름이 바뀌어 튜더, 스튜어트, 하노버(윈저) 왕조로 호칭될 뿐이다.

그러니 왕실의 태동당시의 터에 석조의 성을 구축하고 현재 왕가의 이름을 윈저라고 하는가 싶다.

 

( 윈저성과 이튼스쿨 사이의 다리에서 바라본 템즈강)

 

윈저성 아래 기차역을 지나 이튼스쿨 가는 길에 위치한 템즈강..

영국의 강, 개천엔 항상 물이 가득하고, 배들이 즐비하다.


이곳엔 백조와 거위, 오리도 가득하다. 

관광객의 먹이에 길들여져 백조의 우아함은 없다.

먹이가 동료의 몸에 떨어져도 사정없이 쪼며 먹는다.

 

요즘도 이튼스쿨 학생은 검은색 연미복 교복을 입고 다니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바의 노래에도 나오는 “워털루”

그 곳에서 나폴레옹의 재기를 꺽은 웰링턴 장군은 영국의 영웅이다,

그가 “나의 승리는 이튼학교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한 그 학교..

우리나라의 평준화 교육을 생각해본다.


 

 

영국으로의 짧은 여행, 긴 생각

 

1. 첫날

 

5.6.  1시 15분 인천공항을 이륙하였다.

11시간의 비행 중에 영화를 3편을 보았다.

그중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가 재미있었다.

가난 속에서 일은 꼬이고 마누라는 이혼을 선언하는데, 아들을 지키려는 노력과 자신의 팔자를 바꾸려는 치열한 노력..

그 과정에서도 인간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집세를 밀려 대신 집안 페인트 칠을 해주기로 하고 작업 중에 벌금 미납자로 경찰에 연행되어 유치되었다가 다음날 돈을 내고 풀려나자 주식중개인 인턴 면접을 보려고 죽으라고 뛰어간다. 페인트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내를 바라보던 면접관(오너)이 묻는다.

“페인트 묻은 잠바 차림의 남자를 채용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 사람이 바지는 멋지게 입었겠지요..”

면접관을 한바탕 웃기고 인턴 200명중 하나로 뽑힌다.

우여곡절 끝에 200명 중 단 1명만 뽑는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나중에 화사를 차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한다.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잠이 해결해주고 아픈 엉덩이를 달래 주었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다가 먹다가 다시 자다가 먹다가 내려서 중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투숙하여 술한잔을 하곤 또 6-7시간을 실컷 잤다.

 

나에겐 시차란 없다.

 

착륙 직전에 비행기에서 바라본 런던은 주변에 산이 없는 평야에 천만에 가까운 도회지가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켄싱턴 가든)

(공원 내 동상)



(켄싱턴궁)

 

2. 둘째날

 

 6시 30분 기상하여 켄싱턴 가든을 산책하였다.

다이애나 비가 이혼 위자료로 받았다는 켄싱턴궁이 있는 공원이다.

유명한 하이드 파크 공원에 인접한 곳으로 산책하기 좋았다.

도심에 그렇게 넓은 공원이 있다는 것이 부럽다.

 

(내셔널 겔러리 부근의 트라팔카 광장)

오전에 비가 오락 가락한다.

영국의 전형적인 날씨란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1년에 한두번 틀리는데, 영국 기상청은 정확하여 한번도 틀린적이 없단다.

일기예보는 이렇단다.

“일시 흐리고 비가 내린 뒤 개었다가 다시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겠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주로 실내를 찾아 다녔다.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

 

(웨스트민스터, 빅벤이 보이는 템즈강)

 

 


 오후엔 타워브리지를 보고 인근 영국 PUB에서 맥주 한잔을 마셨다.

저녁엔 시내에 나가 뮤지컬을 감상하였다.

레미제라블

뮤지컬 내용이 그저 그렇고 술기운이 겹쳐 반쯤 졸면서 보는데, 2층 극장이 가파로와 굴러 떨러질까 겁나서 난간를 끌어안고 졸았다.     

나중에 누구 말이 런던에서 “메리 포핀스”나 “마마미아”가 인기가 좋구 “레미제라블”은 이해가 어려워 인기가 별루라는 평을 듣고,

초심자가 너무 어려운 것을 골랐다고 자책하였다. 

 

중학교 때 상업선생님..

말썽피는 녀석만 보면"북망산 귀신 머 먹구 사나..이런 무녀리 조합장들 안잡아 먹구.."하시더니
일찍 북망산에 들어가셨다.

서안을 방문하여 가이드에게 북망산을 물으니 전혀 모르더라.. 

낙양에 갔더니 가이드가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 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하는 성주풀이를 주어리면서 낙양시 북쪽 10여리에 북망산이 있다며 안내한다.

갔더니 고묘박물관이 둥그러니 있다..

한,당이후의 석묘를 10개 이상 옮겨 복원한 박물관..

예전에 북망산에 고관대작의 무덤이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헌데, 산이 없어 물어보니, 가이드 왈  "멀리서 보면 야간 높은 지대가 아닐까요?"한다..
주변에 북위 성무제의 능외엔 밭들이 즐비하다..

 

낙양 고묘박물관 간판

 

박물관 내의 벽화

 

성무제의 능 주변이 북망산의 분위기를 풍긴다.

 

성무제의 능 입구

***

낙양의 백마사..

후한 명제 때 인도승려 4명이 백마에 42장경을 싣고 낙양에 도착했다.

이 때 백마사를 지었는데, 중국 최초의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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