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 밖에서도 나비는 날아온다."

오늘 집결장소로 가다 정비업체 간판에 씌인 글귀가 진한 향기로  다가왔다..

 

 

이번 둘레길은 두계천을 걸어 사계고택에 들렀다가 세동을 지나 성북동 잣디마을까지 가는 길..

삿갓집 식당에서 개울둔덕길을  걸어 공사중인 두계천 제방을 걸어 계용시 두마면 두계리로 간다..

 

 

말이 한가로운 날..구제역이 극성이래도 말에게는 영향이 없나보다..

 

 

 

두계천을 건너면 대전시에서 계룡시로 들어간다...

 

 

두계리에서 "팥거리" 지명을 만난다..

두(豆)자가 콩을 의미하고 팥은 소두, 홍두라고 한다는데..

콩쥐같은 두계리에 팥쥐 같은 팥거리인가?

 

 

두마면사무소 부근에 사계고택이 잇다..

사계 김장생..조선 성리학, 예학의 대가..아들 신독재 김집과 함께 조선 유학 18현으로 선정된 분..

 

 

사계고택의 대문을 들어사면 사랑채 "은농재"가 보인다..

사계고택((沙溪古宅 )은 사계 김장생 선생이 계축옥사(癸丑獄事)(1613) 무렵 이곳에 낙향하여 우암 송시열, 송준길 등 많은 후진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낸 곳..당초에는 초가였다던데..

 

 

이 고택은 사계선생의 여덟째 아들 두계(豆溪)공 김규(1606~1677)과 그 장자로 이어져 사계 16세 손까지 이어왓다..

 

 

사계선생 시절부터 사랑채 이름이 은농재(隱農齋)인지 모르나, "은농(隱農)"은 사계 선생 7세손의 호(號)란다..

 

 

고택 주련중 만변수작 의리일관(萬變酬酌 義理一貫)에 눈이 간다..

만가지로 변하고 수작을 부려도 의리로 일관하겟다..
 

 

안방 마님 거처는 잠소실..정말 잠이 잘오겠다..

 

 

영당에서 사계선생을 알현하니..이 집안 자손인 김대표님 용모와 정말 닮앗다..광산 김문의 유전적 특징은 풍성한 수염이 아닐까?

슬쩍 김대표님에게 물엇다.." 200년전에 태어나셨으면 흰수염에 도포 입은 훌륭한 풍채와 덕망으로 높은 자리 오르셨을텐데.."

"뭐, 할아버지처럼 6부인을 거느릴 수는 있었겟지요..껄껄.."

 

 

 

 

 

고택에서 갈 때마다 탐나는 곳은 풍성한 장독대다..

집안의 장맛이 뼈대를 굵게 해주나 보다..

 

 

여기는 김대표께서 태어나신 곳..

자료에 의하면 원래는 새로 시집온 며느리 적응훈련 주거라던데..

 

 

 

고택 옆 양옥에 종손이 살고 계시고 김대표께서 인사드리는 사이

우리는 집앞 정자, 구로정(九老亭)에 올랏다..

구로정.. 내 생각에 구로는 사계선생의 아들 9형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계선생의 부인 창녕 조씨는 김은, 김집, 김반 3형제를 두셨고, 후실부인은 순천 김씨로 김영, 김경, 김고, 김구, 김규, 김비의 6형제를 두었다한다..(이거 남의 족보를 너무 조사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이제 역사가 되었으니..잘못 쓴 것이 잇으면 지적바랍니다..)

 

큰 아드님은 임진왜란 때 전가족이 돌아가셨고.. 2째가 신독재 김집선생..

셋째는 김반..이분은 병자호란 때 둘째 아들 김익희와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모시고 항전을 하셧고,

이분의 부인 서씨과 셋째 아들 김익겸은 강화도로 피난 갔다가 강화도 함락시에서 순절..

이 때 같이 강화도에 간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는 강화도를 탈출하는데. 이것이 후일 우암과 제자 윤증 간의 감정대립의 한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

한편,  김익겸의 부인은 어린아들 김만기와 태중의 아이 서포 김만중을 임신한 채로 강화도 탈출선에 몸을 실고 가다가 배위에서 유복자 김만중을 낳는다..

순절한 김익겸의 묘는 전민동 체육공원가기 전 왼편 산에 아버지 김반과 같이 묻혀있고, 그 골목에는 아들 서포 김만중의 소설비가 서잇다..

김익희는 광산 김문의 자랑인 9대제학 중의 한 분으로 연구단지 매봉산에 묻혀잇다..

 

한 집안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이고..충청도 양반이 그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반으로 중추세력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지금도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고..대전에서 선비축제도 열리는 이유이다..  

 

 

한가족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구로정 물고기는 그저 창공에 노닌다..

 

무쇠소는 사자후에 놀라지 않는다는데

철붕어가 용트림에 놀라겟는가?

 

 

 

사계고택을 나와 다시 두계천을 건너 세동으로 간다..

 

 

 

세동으로 가는 길은 세동천을 따라간다..세동 상추마을이라 써잇다..

 

 

중세동에서 점심식사를 한다..매실주,백일주로 반주를 하고..

진고개를 넘어 성북동으로 간다..고개 넘기 힘들어 푸닥거리도 하고..

 

 

 

금곡천이 흐르는 성북동에 도착하엿다..

 

계룡산에서 이어지는  백운봉,  금수봉, 빈계산이 감싸주는 참 아득한 터전이다.. 서쪽으로는 백운봉에서 남동쪽의 약사봉까지 산의 능선지대가 이어지는가 하면 동쪽으로는 빈계산에서 남쪽으로 성북동의 동쪽에 길게 늘어진 산장산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로 금곡천은 남동쪽으로 흐른다..

 

 

이동네 이름이 잣뒤마을이다..산성 뒤쪽에 위치해 있어 잣뒤 또는 성북이라 부른다.

무슨 산성이 었을까? 아마도 백제시대 부여를 방어하는 산성이 아니엇을까?

 

이 마을에는 수령이 150-200년하는 느티나무가 7구루가 늘어서있다..

동행 은잠님의 설명으로는 성재고개로 진잠으로 이어지는 길로 옛사람들이 통행하엿다니..

동춘당과 우암이 사계고택으로 선생께 학문을 배울적에 이길을 다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잣디마을에서 봉덕사로 고려 석조보살입상을 보러 간다..

 

 

보살입상을 보러 왔는데, 정작 마주 대하니 할말을 잊고 그저 바라볼뿐..

범소유상은 개시허망이라 약견제상이 비상이면 즉견여래니라..

무릇 모든 형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즉시 여래를 보리라..

 

 

오늘 삿갓집-두계교-팥거리-사계고택-하세동-중세동-진고개-성북동-잣디마을 12km을 걸엇다..

 

사람의 향, 물길의 향, 노거수의 향, 보살의 향을 좇아 백리라도 따라갈 심산으로 나비처럼 즐겁게 걸었다..

 

  

 

전주천을 따라 걷는다..

한벽당 부근 에 전주의 특미 오모가리 매운탕식당들이 즐비하다..잠벗이 싫다하여 이번엔 패스..

 

 

한벽당..월당 최담 선생이 태조 8년(1404)에 별장으로 세운 건물..

한벽’이란 옥처럼 항상 맑은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쳐 흩어지는 광경이 마치 벽옥한류(碧玉寒流)같다하여 붙인 것이다.

 

 

 

 

 

정자 삼면에 걸린 편액에는 행서..해서..예서체로 다양하게 써있다..강암 송석용이 썼다..

 

 

정자에서 전주천을 바라본다..이 강물은 흘러내려 만경강이 되어 흐른다..

 

 

한벽당에 오르니 정자 안에 후손들이 선조의 운을 따 지은 시들이 가득하다..

조손이 시심을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벽당 옆 요월대(邀月臺)..달을 맞이하는 누각..석전 황욱의 글씨다..

 

 

한벽당 절벽에 이어지는 산을 발산이라하는데..일제시대 터널을 뚫고 기차길을 부설햇다..지금은 차길로 바뀌었지만.. 

 

 

 

 

한벽당 주변은 개발로 인해 이제는 "지나친 성형의 부작용에 시달리는 선풍기 아줌마"처럼 되엇지만

절벽아래를 흐르는 물빛에는 옛시절의 흔적이 묻어난다..

 

 

길을 가다 동행이 "저기 미륵부처님이 잇네!"하며 승암산을 가리킨다..

몇시간전 점심 식당을 찾다가 토속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메뉴를 묻다가 계장백반을 개장백반으로 듣고 보신탕을 생각한 나로서는 쓴 웃음이 난다..

개눈에는 개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더니..ㅎㅎ

 

 

승암산아래 전주천을 따라 걷는 길.. 승암산에 후백제 견훤의 왕궁인 동고산성도 잇고 천주교 치명자산 성지가 있다..

 

왜 치명자산이라 하나 했더니..위주치명..주님을 위해 목숨을 받친사람이라는 뜻인게다..

일반 지명인 승암산은 "중바위"산이라는 뜻이니 천주교 입장에서 치명자산으로 부르는 것 같다..  

치명자산 성지에는 전동성당터에에서 처형당하여 순교한 분들의 묘소가 안치되어있다..

 

 

전주천 상류를 향해간다..봄바람이 제법 불 때도 잇지만 무척 화창한 날씨다..

 

 

잠시 각시바위에 앉아 숨을 돌린다..

사랑한 총각이 호랑이에 물려 죽자 각시가 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전설인데..

지금보니 무척 얉다..

 

동네 사람 말이 예전에 이곳에서 다이빙을 할 정도로 깊었단다..

역사다큐에서, 견훤의 왕궁 동고산성에서 가까운 이 부근 전주천에 배를 타면 뱃길로 만경강을 통해 서해로 연결되었으리라고 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애절한 각시바위 길을 서방 죽었다고 따라 죽지는 않을 헌 각시를 데리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서방바위를 지척에 주고 회군하는 길..이길이 전에는 한벽당 뒤 터널과 이어지는 전라선 철로를 걷어내고 이제는 자전거와 보행자의 길이 되었다..

 

 

 

 

승암산 승암사에 들럿다..호남의 선승 진묵대사의 유적지라는 팻말을 보앗기에..

진묵대사는 조선 중기 선승..임진왜란 무렵에는 서산, 사명당 등의병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은 듯..그는 도력높은 선승으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절집의 장독대..장독을 덮은 유리뚜껑이 인상적이다..

 

 

다시 한벽당 터널을 지나 이목대로 간다..

이목대(梨木臺)..

이 태조의 5대조 이안사 등 선대가 살앗던 터전에 세운 비각..

그러나 정작 안내판 등이 부실해 이 목 저 목 개들에게 홀대당하며 돌아다니다가 찾지못하고 나중에 검색해보니 우리가 지나친 비각이었더라는 얘기..

 

 

한옥마을-오목대-한벽당-치명자산성지-각시바위-반환점-철로복원길-승암사-한벽터널-이목대-한옥마을로 이어지는

9km 한목마을 둘레길을 걷고 다시 돌아왔다..

공예전시관에 들러 구경하고..

 

 

경기전 부근 찻집에 들러 홍차를 마신다..

봄날..조선의 시초의 역사와 마주하였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더라..

소리없이 흐르 것은 세월이고 역사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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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걷기에 나섯다..

이번엔 전주한옥마을에서 시작한다..경기전에 도착하여 주차하고..하루 주차요금을 물어보니 6천원이란다..

경기전 옆 대나무가 아름다운 사고건물로 들어간다..

조선실록 보관지 4대사고 중 임진왜란 때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역사를 지켜온 내력..

 

 

 

어느 분이 나에게 홍매화가 피었다고 귀뜸해준다..

정말..남녁 선암사에 가야 봄직한 홈매화를 여기서 보니 더욱 반갑다..

 

 

 

 

경기전 중심에 자리잡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

북로남왜의 정벌과 새 왕조를 연 용안치곤 어찌 넘 단정하다..범생이같은 용모라 꼭 정몽주와 같이 고려조에 계속 충성을 다할 것 같은 인상인데...

가슴의 용이 이빨을 깨물고 위엄을 가득 부리며 꿈틀거리듯 생동한다.. 

 

 

경기전 부속건물을 돌아 나오는데..학생들이 탈춤 배우는라 신명을 낸다..

아직 어설프지만, 반복하다보면 우아함이 배어나오리라..

 

 

1891년 프랑스인이 설계한 아름다운 성당..

조선후기 천주교도 박해때 풍남문 밖에서 처형당한 순교지에 세운 성당..참 아름다운 건물이다..

 

 

성당안에 스테인드그라스가 아름답다..그중에 한 귀절..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풍남문으로 갔더니..보수공사중이다..

하여 시장 골목을 걸어 가노라니 잊었던 옛추억과 만난다..양재기..구들장..바가지.. 

 

 

 

순례길 답게..좁은 지역안에 모든 신앙과 만난다..남문교회, 원불교교당..점집까지..

 

 

 

 

전주천을 지난다..

남천교 위에 청연루를 지었다..

한벽루 절벽에 부딪혀 소용돌이치며 하얀 포말을 이루는 장관을 한벽청연이라 한다..

여기서 바라보는 하얀 포말을 청연이라 하였나보다..

 

 

안내도를 보다 강암서예관이라는 제목을 보고..선뜻 방문지로 정햇다..

강암 송성용.. 전주지역 서예가..많은 글씨와 그림에 흠뻑 젖는 시간..

 

 

그중 한글씨..적덕종선(積德種善)..덕을 쌓고 선을 심는다..

목간의 필의로 일필휘지..

 

 

전에부터 익히들엇던 고택..학인당..

판소리공연할 정도의 넓은 대청이 있다는 곳..그곳을 보러갔더니 방문프로그램에 신청하여 오란다..

이곳에 살던 백낙중은 효자로 소문나서 고종으로부터 벼슬까지 받앗는데..

학인당(學忍堂)은 인내를 배우는 집..

그러니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백낙중(白樂中)이 학인당(學忍堂)이 사는 의미는 "온갓 줄거움 가운데 참음을 배우는 것 만한 것이 없다"는 뜻같기도 하다.. 

 

 

한옥마을을 휘둘러 밥집 찾아 가는 길..

솟대가 창공에 두둥실..

솟대만 보면 내 마음을 날아오른다..자유! 너..영원한 비상이여!!

 

 

 

솟대를 모티브로 한 어여쁜 게스트 하우스가 맘에 든다..

막걸리 3주전자에 무진장의 안주를 먹고 이곳에서 자면 꿈에는 새가되어 비상할 것 같다..

 

  

 

점심에 굴비 정식을 먹었다..전주다운 푸짐한 맛이 떨어져 별루..

한옥 마을 고샅을 요리조리 걷다보니 술도가 길도 나온다..전엔 양조장 도가집이 있었나 보다...

고두밥과 누룩냄새를 상상하면 오목대로 향한다.. 

 

 

오목대(梧木臺)..

이성계가 전라도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하고(금강 걷기 구불길에서 만난 진포대첩비는 그당시 최무선이 화포로 왜구의 배 수백척을 수장시킨 전적을 보여주고, 이에 내륙으로 달아난 왜구가 운봉에 집결하자 이성계 등 고려군이 황산에서 아기발도를 사살하고 적을 전멸시키는 대첩을 거두엇는데,,지리산 둘레길 운봉구간에서 황산대첩비를 볼 수잇다.. 걷기를 통해 역사를 서로 연결시켜보는 기능이 재미잇다..)

개성으로 개선하는 길에 전주에 들렀는데..전주는 이성계의 5대조 이안사 윗대가 살던 곳(이목대)으로  이성계는 오목대에서 친지를 불러보아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는 곳..

 

오목대 정자는 최근에 지은 것인데..그 곳 기둥에 주련이 붙어 있다..

 

淸風明月用不竭  청풍명월용불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써도 다하지 않고

高山流水情相投  고산류수정상투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은 마음이 서로 투합한다.

長生不老神仙府  장생불로신선부    늙지 않고 오래 사니 신선의 저택이요,

如天同壽道人家  여천동수도인가    수명이 하늘과 같으니 도인의 집이로다.

山中人惟知自樂  산중인유지자락    산속 사람 오로지 스스로 즐거움을 알고

天下事不在多言  천하사부재다언    천하의 일이란 많은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이성계는 취흥이 도도하자 일어나 대풍가를 불럿다던가..

대풍가..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패사시키고 고향 풍패에 들러 고향촌로들앞에서 불럿다는 노래..

당연히 불순분자로 볼만한 상황..

종사관으로 배석했던 정몽주가 자리를 박차고 나갓다던가..

 

 

오목대에서 바라보는 전주 한옥마을..

한옥이 즐비..원래 이곳은 양반의 터전이 아닌데..전주성안으로 일본인들이 땅과 집을 짓고 들어오자..뜻잇는 양반, 지주, 부자들이 이곳에 하나둘 한옥을 짓고 살면서 촌락을 이루고..70-80년대 개발시대에 낙후되는긋 여겼으나 이제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였다..

그러니 사람이건 물건이건 함부로 버릴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오목대 현판에서 호남의 대가를 만난다..

"금강산인 석전 황욱 91세에 쓰다"라고 싸인하였다..

석전 황욱..고창 분으로..70세에 수전증이 오자 악필법 즉 붓을 손바닥으로 감아쥐는 방식으로 글씨를 썼다..

 

  

 

오목대를 내려와서 한옥마을을 골목길을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한옥마을 둘레길을 걷기 위해 전주천 청연루로 나간다.. 

 

 

도중에 담장 너머로 만난 송무백열..

소나무가 무성하면 전나무가 기뻐한다..술취하면 가끔 읊조리는 귀절의 뒷부분..반갑다..

앞부분은..혜분난비(蕙焚蘭悲)..

 

산속의 헤란이 불타면 내집의 난초가 슬퍼하고, 들판의 소나무가 무성하면 강가의 전나무가 기뻐하도다..

 

 

한옥마을 끝자락..죽림에 솟대가 섰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는데..

죽림에 우는 새는 무엇 때문에 우는가?

 

 

중리 해변촌에서 감지해변으로 가려면..

바다를 등지고 바로 산으로 오른다..

 

 

지대루된 산길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수건을 꺼내 땀을 연신 닦는다..

 

 

 

중턱에 올라 평탄한 임도가 끝나고 내려가는 길..저멀리 1박2일 여파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감지해변 자갈마당 조개구이집들..

 

 

 

그 포장집 중 이름에 끌려 부산 갈매기 집에 들어간다..

홍합..각종 조개 연탄불에 구워먹고..

요즘 이곳은 방송 덕분에 정신없이 바쁘단다..

 

이승기, 이대호가 같이 먹었다는 독도집은 이날 아침 부근 포장집의 화재로 영업중지상태다..

그야말로 불티나게 잘나가다 정말 불이낫나 보다..

 

 

 

 

점심 식사후에 태종대로 걸어간다..

동백꽃이 눈에 띈다..아름다운 붉음..해볕에 반사되는 이파리는 동백기름을 바른듯 반들반들..한여름의 녹음이다..

붉은 동백꽃..흰갈매기..파란 하늘..흰구름..붉은 등대..푸른 바다..

 

 

태종대 순환도로는 구식이다..

순환열차형 버스가 다닌다..요즘 걷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좀 해야하는 것 아닐까??

 

 

 

예전 자살바위 자리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남해를 바라본다..

녹솔 벽해..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푸르름..

 

 

 

등대..

존재만으로도 지침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의사 가운처럼 흰옷을 입고 푸른 바다를 진찰한다..

 

 

그러한 잠시 두 남녀는 패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푸른 창공을 노저어 간다..

험한 구름넘어 저편 언덕..희망의 나라로..

  

 

 

인어 아가씨..

등대를 도우러 나섰다..몸소 횃불을 들고서..무엇을 밝히려는가? 자유? 정의? 진리?

 

 

신선이 놀고 갔다는 신선바위..

신선놀음에 동참하려는 마음에 부리나케 내려간다..

 

 

 

신선바위에 신선은 없고 푸른 파도와 흰 갈매기만 옛 호시절을 증언하는듯..

 

 

영도 등대에서 선전원 밀에 현혹되어 유람선을 탔다..

태종대를 바다에서 감상하리라..

 

여기는 전망대..직하 삼천척..전에는 자살을 노리던 곳..이제는 살자를 꿈꾸는 전망을 바라보는곳..

 

 

 

 

주변풍광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졌는지 선장이 새우깡을 권유한다..

갈매기가 모여들고..저 녀석은 제데로 묘기를 부려 새우깡을 입에 물엇네..

 

 

감지해변 선착장에 다가가자..

다른 유람선이 떠난다..오빠부대 갈매기를 이끌고..

 

 

남은 시간 자갈치 시장을 걷는다..현대식 빌딩으로 변한 시장 옆에 예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좌판..

그 곳에서 제일횟집에 들어간다..부산소주를 시원하게 마시고..

 

 

오늘의 기분을 묻는다면?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렇게..쐬주한잔에 업된 기분으로 부산오뎅사러 광복동 거리를 헤메다가 부산역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팔더라는 얘기..

자갈마당..자갈치..남포동..광복동..그렇게 부산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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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해안길에서 만난 오늘의 상징)

 

부산 갈맷길 걷기에 나섰다..

이번은 영도 남항대교 부근 테크노고교 - 중리해녀촌 - 감지해변 - 태종대 - 전망대 - 영도 등대 - 유람선- 감지해변 총 13km 거리..

 

 

부산역에서 내려 택시로 영도 동삼동 테크노고교(또는 반도보라아파트) 가자고한다

요즘 영도 대교는 공사중이라 부산대교를 넘어 금방이다..요금은 3500원 정도로 가깝다..

산책로 입구가 뚜렷하여 찾기는 쉽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잠념을 지워주는 끊임없는 파도소리..

가슴이 터지고 속이 시원하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

삼한시대..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말의 목장으로 유명한 곳..말이 빨라 그림자가 안보일 정도라 절영(絶影)도라 했다던가..

타일 벽화에도 절영마의 기개를 그려놓았다..

 

 

 

 

 

부산 갈매기..

넘실대는 파도와 그 위를 넘나드는 자유..

해변에서 갈매기 소리만 들어도 나는 자유를 꿈꾼다..

 

 

 

문득 해변길이 끝나고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길을 넘어야 중리해녀촌으로 갈수 잇다..

그 단순한 계단에 무지개색을 올렸다..이름하여 피아노계단..

 

 

피아노 계단을 올라 가쁜 숨을 돌리며 바라보는 해안..컨테이너 선들이 줄지어 떠서 대기중이다..

 

 

콘크리트 계단에 조약돌을 수 놓아 꽃도만들고 돌고래도 만들고...

 

 

해안 절벽하나를 넘었다..거기서 만나는 오붓한 파도..

 

 

자갈길을 지나면 파도는 더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정말 수다스런 친구...

 

 

길은 정겹게 이어진다..세멘길을 꽃길처럼 즈려밟고 간다..

삼면의 바다길을 연결하여 걷고 또 걸었으면..

 

 

다시 해안이 다하면 돌계단이 나오고..

계단에서 숨소리와 친구하고 해변에선 파도 소리와 동무한다..

 

 

 

계단을 내려와서는 다시 해변을 걷고..

해안길이라 평탄하리라 생각한 내 예상과는 달리 제법 업다운이 있어 운동량도 상당하다..

 

 

거기서 나를 만난다..

바다와 산 그리고 구름 속에 감싸인 신선같은 모습으로..

 

 

출렁다리....몇번 굴려 스릴감을 증폭시켜보고..

평지풍파의 즐거움이라 할까..

 

 

 

 

 

 

그 길에서 물고기..갈매기..돛단배도 만난다..

 

갈매기 바다위에 울지 말아요          

물항라 저고리에 눈물 젖는데

저멀리 수평선에 흰 돛대 하나

오늘도  아 ~  가신님은  아니 오시나

 

 

 

 

중리해녀촌에 도착하니 갈매기가 반겨준다..

해녀촌엔 문어 멍게 해삼 좌판이 즐비하다..제법 걸은터라 허기가 느껴지는 찰나..

 

 

마침 그곳 할매가 마수좀 해달라고 붙잡는다... 잠시 상에 걸터 앉아 푸른 바다 바라보며 멍게.. 해삼 향을 맡아 본다.

이제 감지해변으로 가야지...

 

 

충청 걷기에 나섯다..이번은 화양계곡에서 선유계곡까지 13km..

봄을 시샘하는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

 

 

화양계곡 주차장에서 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우산이나 우의를 챙기며 잠시 전열을 정비..

 

왜 화양계곡이냐? 고 자문하는 설명문을 읽는다..

회양목 즉 황양목이 많은 곳이라 자연스레 화양동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난 토요일 화창한 봄날씨에 피어난 버들강아지는 오늘은 찬 빗방울에 오돌오돌 떨고 있다..

 

 

 

포장길을 걸어 운영담에 다다른다..

20여년 전 쯤에 와본 곳..바위와 물색은 그대로다..

 

 

만동묘..화양서원을 스쳐간다..

우암 송시열..명나라 황제묘소..재조지은의 명분론과 소중화주의..

현실론..북학론 등이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이런 주제는 피해가자..

 

 

존사청(存事廳)..제향을 올리는 곳..

계곡 물이 흐르는 듯한 행서체가 자유롭다..

 

 

여기는 4곡 금사담 위에 위치한 암서재..

우암 송시열의 서재 역할을 한 정자..

이런 곳에서 한 일주일 책이나 읽으며 지내면 머리와 마음이 맑아 지려나..

 

 

암서재 부근의 풍광이 자유롭고 편안함을 준다..

 

왜 우리나라에 구곡이 많은가?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이상향은 교조인 주자가 살던 무이구곡인데..

주자는 스스로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주자를 흠모한 우리 성리학자들이 이를 따라 각종 구곡을 명명하고 풍광을 읊었다..

율곡의 경우에도 황해도 거주지 부근에 고산 구곡을 명명하고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이름이 좋아 들른 절..강가를 따라 올라가다 고라니를 발견했다..

물 먹으로 나왔다가 불이나케 산으로 줄행랑을 친다..

절 사람 말씀에 의하면, 절 텃밭에 상추 뽑으려하면 어찌 알고 전날 와서 뜯어 먹고 간다나..

 

 

 

 

 

여기는 7곡 와룡암이다..전서체를 큼직하게 새겼다..

누운 용..일어나 승천할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나..

 

 

 

호젓한 길을 걷는다..

가끔 덧는 빗방울 소리.. 푸른 빛 더해가는 솔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들으며..

 

 

9곡 파천..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뚫어 놓은 것 같다는 ..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을 읽고..

계곡으로 일삼아 내려가 우리도 여기서 소곡주를 나누어 마신다..

신선 기분을 내보자...

 

 

파천에서 선유동으로 가는 길은 더욱 운치가 있다..

잠시후 길은 왕복 2차선 차도로 이어지고 30-40분을 내쳐 아스팔트 가장자리를 걸어 선유동으로 향한다..

송면 삼거리에서 향 좋은 버섯찌게로 점심을 하면서 남은 소곡주로 얼굴에 단청공양도 올리고..

  

 

송면 삼거리에서 2km를 걸어 선유동에 도착했다..

입구는 작은데 속은 알찬 곳 ..

 

 

입구 바위에 새겨진 선유동문..신선들이 놀았다는 계곡..

화양동 9곡 파천에서 술잔을 나눈 신선들이 2차를 이곳에서 하면서 놀았는지..

 

안내판이 없어 선경만 감상하고 굳이 이름을 밝혀보지 않는다..

꽃처럼 이름몰라도 향기만 좋으면 그뿐..

 

 

선유동의 물소리..

세상을 감쌀 정도는 아니지만 머리의 잡념을 씻을 정도는 되네..

물소리에 청량감을 느낀다..

 

 

계곡의 거리는 짧다..1km 남짓 걸으니 차도가 나온다..

돌아서 나오는 길..다시 선경으로 들어간다..

 

 

봄비에 촉촉히 젖은 이 길..

햇살이 돋을 양이면 새싹이 가득 솟아 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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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수두리 - 호탄리..왕복 14m

양산8경의 관광지인 송호리 솔밭에서 출발한다..

 

 

 

송호리 솔밭에 있는 여의정 정자..

여의봉..여의주..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에 그런 희망을 담은 말들이 생겨났겟지..

그런 희망과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듯이 여의정에는 탑과 부처가 서잇다.. 

 

 

솔밭을 벗어나 잠깐 수다떠는 사이 갈대 들판으로 변신한다..

 

 

함벽정인가..

사대부 대접을 받으려면 문집과 정자가 필수요건이라.. 풍광좋은 곳엔 정자가 즐비한데..

시대를 따라 사대부는 떠나갔고 지친 로시난테처럼 정자만 덩그러니 홀로 남아 백로, 왜가리와 벗하며 지낸다..

혹 주인에게 배운 풍월이라도 읊는지도..

 

 

 

수두리 잠수교를 지난다..

봄날씨에 눈 녹은 옥 같은 물이 제잘 제잘 활기차게 흐르고..

 

 

금강의 아름다움은 전염성이 강하다..

세멘트 노깡 스타일의 구조물도 금강을 가로지르니 명품이된다.. 

 

 

버들강아지가 피었네..

봄이 옴을 알리는 전령..봄이 오네.. 봄이 와..소리 높이 외친다..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 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 꺼나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강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 

 

 

아지랑이 매복한 갈대 우거진 길을 앓는 듯이 걷는다는 호랑이의 보행속도로 어슬렁 덜렁 호탄교를 향해 간다..  

 

 

천렵하기 좋은 호탄교 아래는 호탄천과 금강이 합류하여 우측길로 우회하여 다리를 건너 제방을 따라 호탄리 작두골로 향한다..

 

 

호탄..범여울..같은 지명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곳의 유래는 범이 겨울에 부모를 위해 딸기를 구한 효자를 등에 태우고 건에 준 곳이라 하여 호탄이란다..

요즘에는 딸기 효자되기는 손쉬운 시대인데, 보호해주는 호랑이 씨가 말라서 효자도 드문건지..

 

 

호탄에서 겁도 없이 말이 갈기를 쳐밖고 물을 마신다..

하여 이름도 갈기산..

 

갈기산 바라보며 강변에 앉아 점심을 든다..

점심후에

강건너 봄이 오듯..읊조리는 노래가사에 귀 기울여본다..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 없이 그리움 말 없이 말 없이 흐르는 구나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 꺼나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물 흐르듯 나부끼네..

 

 

돌아오는 길..

강변에..갈대밭에..제방에..매복했던 아지랭이의 습격을 받았다..

어찔 어찔..눈을 현혹하는 봄 기운에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인다..

 

 

 

여강길에 걷기에 나섰다..

다시 찾은 강천마을 앞 풍경이 바뀌엇다..물억새..도꼬마리..강모래 아름다운 강길은 어딜 가고..

 

 

닷둔리 해돋이 산길을 걷는다..

처음 입구 찾느라 헤멨다..그러나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강변을 따라 걷는 벼랑길은 다시 걸어도 좋다..

 

 

이 장면이다..

저 왼편 바위쪽으로 붙어 가야하는데..우측 강변의 논뚜렁으로 가더니 모두 강변으로 내려섰다..

하도 자신잇게 가길래 오랜만에 다시온 나도 여강길에 새로운 코스가 신설된 줄 알앗다..

 

 

어찌되었건 강가를 걷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적어도 나에겐..

 

 

저 흥원창 앞 섬강의 물구비를 보고서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상상력과 투지로 자산 강모퉁이를 넘는다..

이곳에서 좌측의 섬강이 우측의 남한강 본류와 합류한다..이제 우리는 섬강을 따라 섬강교로 향한다.. 

 

 

흥원창 건너편 자산 아래를 지나고..

 

 

그래도 빙판길을 만나니 춤도 덩실 추어보고..

저기 보이는 섬강교를 향해 훠이 훠이 간다..

 

 

부랴 부랴 섬강교로 올라선다..후미는 아직도 섬강에서 룰루라라..

 

 

이 곳을 지나면 흥원창이다..

흥원창..조선시대 세곡을 모아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이른바 물류센타..

 

 

점심을 도리 마을회괸에서 부페식 아니 발우공양식으로 하고..여주 막걸리도 한잔 씩

 

 

도리에서 흔암리 넘어가는 아홉사리 과거길을 걷는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걷다보면

저도 모르게 흥얼 흥얼

아리랑 몇소절이 절로 나오고

어깨춤도 들썩거려지는

아홉사리 읍내 오일장길(임덕연 시인의 "아홉사리길" 중에서..)

 

시인의 예언대로 막걸리 기운에

우리도 노래가락이 절로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시인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강물 허리안고 도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아홉사리길 중에서) 이라 표현한다..

 

어찌보면 

여강 방어사령부에서 설치한 참호 속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아홉사리 길이 끝나는 내리막 길에서 방심하여 미끈덕하고 대자로 넘어졌다..

왕년에 배운 낙법덕분에 무사는 햇지만..

 

 

옆에서 본 장승이 껄껄 웃는다..

아직도 구만리같은 인생이 하초가 그리 부실해서야..

예끼..여보쇼..난 그래도 다리가 하나는 더 되오..

 

 

여기는 흔암리 쯤되는가..

따스한 봄날씨를 만끽하며 걷노라니 도보도 막바지를 향한다..

 

 

 

2월의 봄날을 상징하는 것들..말조개..빙편..십자가..솟데..

 

 

영동고속도로 다리밑을 통과하면 우만리 나루터..

 

다시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강이 되어 흐른다는 것은

작은 것들이 한데 얼려

낮은 곳으로 쭉 밀고 가는 것이다.

메마른 것들을 자꾸 가슴으로 안아 주는 일이다.

마침내 저 더러움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만리 나루터에 도착했다..

시인의 여드름 투성이 열일곱 시절을 안달나게 했던 소녀 같은 강물이 흐르던 그 나루터에..

 

우리도 지친 다리에 싱싱한 마음을 싣고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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