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이 되면 문득 가보게 되는 곳..계룡산 서남쪽 신원사..

초입에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사천왕문 앞에는 단풍이 올 생각이 없다..

언젠가 왔을 때 풍경과 너무 다르다..



그러나 난국에 영웅이 나오는 법..

오늘의 득템은 매석당의 곶감이네..

매석당??

매화와 돌의 집..

우남 이승만..초대 대통령의 글씨다..




천왕봉 아래 자리잡은 중악단..

태조 3년 무학대사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의 명으로 건립된 산신각이었다..

‘중악(中嶽)’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철종 이전에 묘향산을 북악, 지리산을 남악이라 하고  계룡산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고종 16년 민비의 명으로 중악단을 중수하였다..

중악단에서 모시는 산신은 누구일까?
단군왕검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처음에 아사달 또는 평양에 도읍을 하고 나중에 백악산 아사달로 옮긴다.

기자 조선이 성립하자 그는 장당경으로 다시 옮긴다. 나중에 아사달로 숨어들어 산신이된다(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중악단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썼다..

그는 1885년, 1887년 토문감계사가 되어 청나라와 두만강 경계 협상을 한 인물이다..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는 1890년 이조참의가 되어 충청도 암행어사의 임무를 수행했다..

1891년 이 현판을 썼다..

현판에 직지어사란 암행어사의 별칭이다..

그는 1910년 규장각 제학으로 한일합방에 극렬히 반대했다..



萬里白雲靑嶂裡(만리백운청장리)

雲車鶴駕任閒情(운거학가임한정)


만리 흰 구름 속 청산 깊이 자리하며,

구름 수레, 학 가마  몰고 인연따라 정나누네.



중악단 산신령이 흑발이라 이곳 단풍도 늦게 오나?

숲길이 안티에이징, 청춘이다.



한줄기 단풍이 화를 달래주네..




아픈 무릎 끌고 고왕암까지 이 짧은 거리를 멀게도 왔다..


잠못드는 자에게 밤이 길듯이

다리 아픈 자에게는 갈 길이 멀도다..


한 그릇 밥 소화시키고

십리를 걸어갈 수 있는 다리 힘이

진정한 행복이로다..


아프니 알겟다..

아픈 중생의 고통을..

그래서 보살은 늘 아프다..



그래도 염치가 잇는지, 단풍 한줄기 마애불께 공양 올리고 있다..



오늘은 애용 카메라를 놓고 오는 바람에 급히 핸폰으로 풍광을 찍었다..

뽀샵이 안되니 진면목이 나타나는구나..

그동안 단풍 사진이 얼마나 허풍이 심한 것인지를..



중장리 은행나무 숲길은 다음주나 되어야 절정이 되려는지..

늦깍이 은행으로 등극하겠구나..




내비에 박문수 묘라고 치고 갔더니 이상한 좁은 길로 끌고 간다..

연구결과

<내비>에 고령박씨종중재실(북면)을 입력, 선택하던가, 아니면 북면 은지리 은석골경로당을 치고 가야 된다..



가는 길에 만난 거시기..버섯농장 상징이 이쁘다..

승용차는 재실 앞마당에 주차할 수있다...




재실 앞에 어사 박문수의 동상이 있다..

그의 관직 생활중 암행어사 활동 기간은 1년도 안되는데, 그의 이미지가 어사로 굳어진 것은 그 활동 기간 행적이 뛰어 났기 때문이리라..



이곳에 그의 묘가 있는 것은

그가 영조 초기 이인좌의 난 때 종사관으로 종군하여 토벌에 공을 세워 영성군에 봉해지고, 은석산 일대의 땅을 사패지(공신전)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공신이 되면, 땅을 하사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그의 초상화는 천안 박물관으로 이관,보관 중이다..



뽀샵이 금지되고 정밀 실사로 그리는 조선시대 초상화임을 감안하면 그는 참 준수한 용모의 선비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그는 해학, 유머를 자주 했다고 한다..왕 앞에서도..



고령박씨재실..

원래는 후손이 살던 집인데, 서울로 이사가면서 재실로 쓰인단다..



현판에 시서일가(詩書一架)라 써있다..

시서가 한 시렁이라..

즉, 시집이 서가에 가득하다..는 것이니 선비의 청아한 생활을 묘사한 글이다..



길 표시 판은 우측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반대편 재실 옆 오솔길로 걸어가는 것이 좋더라..







재실 옆 오솔길이 이리로 나와 합류한다..



이즈음 어디를 가나 단풍이 이쁜 길들이 요소 요소 가득하다..



어사 마패...위 그림상으로 4마리다..

어사의 마패는 역에서 말을 빌릴 수 있는 마리 수를 표시한다..

4마패는 말 4마리를 빌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어사용 마패와 일반 마패가 달랐다고 하는데, 영조 때는 암행어사에게 주로 3마패를 하사햇다고 한다..



우측 은석사 쪽으로 올라간다..



박문수는  숙종 17년 1671년에 태어나 영조 시대에 벼슬을 한 사람이다..

그는 평택 진위면 외가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왔으나 할아버지·큰아버지·아버지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자 다시 외가에 내려와 자란다..

훗날 외삼촌 이태좌는 좌의정을, 한 살 밑인 외사촌 동생 이종성은 영의정을 지낸다..



그는 1723년(경종3년) 33세에 과거에 급제한다..

합격에 관한 야사가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되었단다..

그가 과거보러가다가 어느 대가 집에 묵는데, 야밤에 월장하는 사람을 목격한다.. 

그 다음날 서울 가는 길에 초립동자를 만났는데 과거시험이 끝났다면서 장원급제자의 시를 읊어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귀절은 기억이 안난다며 풀피리를 불며 가버렸다...

박문수는 낙담하여 서울 집안 어른 집에 도착하였는데, 그 어른이 무슨 소리냐, 과거 시험은 3일 뒤에 벌어진다고 알려준다..

그가 과거장에 가니 초립동자가 알려준 시귀절 첫머리가 시제로 걸렸다..

그는 초립동자가 알려준 시에다가 마지막 귀절을 창작하여 제출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시는 이렇다..


落照吐紅掛碧山 낙 조 토 홍 괘 벽 산       지는 해는 푸른 산에 걸려 붉은 해를 토하고
寒鴉尺盡白雲間 한 아 척 진 백 운 간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問津行客鞭應急 문 진 행 객 편 응 급       나루를 묻는 길손의 채찍질 급하고
尋寺歸僧杖不閑 심 사 귀 승 장 불 한       절 찾아 가는 스님의 지팡이도 바쁘다.
放牧園中牛帶影 방 목 원 중 우 대 영       뒷동산 풀어 놓은 소 그림자 길기만 한데
望夫臺上妾低鬟 망 부 대 상 첩 저 환       망부대 위로 아낙네 쪽머리 그림자 나지막하구나.
蒼煙古木溪南路 창 연 고 목 계 남 로       오랜 고목들이 줄지어 선 남쪽 냇길에
短髮樵童弄笛還 단 발 초 동 농 적 환        짧은 머리 초동이 피리 불며 돌아온다.


과거 급제후 귀향길에 전에 들린 대갓집에서 그날 꼬마신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그날 월장하던 사람을 수소문과 추리 끝에 찾아내어 신부의 정부이고, 꼬마신랑을 살해한 것임을 밝혀낸다..



1728년 영조 즉위 초기 경종 독살설을 제기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 때 병조판서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엇다

천안의 옛이름인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지고, 이때 북면 은지리 일대 많은 땅을 나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후 경상도관찰사로 발탁되면서 승승장구한다.



그는 1727년(36세)에 영남, 1731년(40세) 충청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된다..

영남어사로 나가서는 부정관리를 적발햇으며, 충청어사로 나가서는 기아민 구휼에 힘썼다..


더구나 경상 관찰사 시절 수해를 보고는 구호곡들을 미리 거둬 배로 보내 배로 보내 함경도의 백성들을 구한 것이다

노론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나 영조가 용서하였다 

1741년에는 함경도 진휼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다가 기민을 구제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외에도 당시 삼정문란의 원인인 균역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데, 양반에게도 군포을 부과하는 개혁을 시도하다 좌천되기도 한다..

그의 개혁노력은 대원군 집권시 양반에게 군포를 부과하는 호포제 실시로 완결된다...


그는 1755년 나주괘서 사건에 연루 누명을 쓰자, 사직하고, 이듬해 65세 나이로 사망한다..



계곡 따라 가는 길은 아직 무릎에 무리다..

계곡 건너편 임도를 따라 은석사까지 가볼까 하다가 얼릉 포기하고 벤취에 앉아 물마시고 요기하며 쉰다..



돌아오는 길에 무덤앞 효부 표창패를 보았다..

그 아래 자녀들의 기념시를 읽어본다..



읽다가 보니

송가인의 엄마아리랑이 저절로 나온다..

https://youtu.be/C9dheXI7Dag




재실 오솔길로 들어간다...

황금에 눈이 어두운 나방이 세월가는 줄 모른다..




재실 기와 위에 익어가는 홍시들..

나훈아의 홍시를 불러온다..





박문수의 어사시절, 관료행적이 당시 민중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박힌모양이다...

우리 야사에 박문수의 일화가 97건으로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천안 수신면에 정조 시대 실학자 홍대용이 살던 곳에 그를 기리는 홍대용 과학관이 있다..




입구에 앙부일구(오목해시계), 혼상(별자리 천구의)가 객을 맞는다..







그는 이곳에 농수각을 짓고 천문기구를 들여놓고 천문을 연구하면서 지냈다..



과학관 안의 명품 천문사진들..코로나 현상..




모든 별이 북극성을 돈다..


우주의 진실은 돌고 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남씨가 뮤지컬로 설파했지..

돌고 도는 호박같은 세상..ㅎ




연말에 안나푸르나 가서 저런 풍광을 볼 수 있을까?







내년에 아이슬란드 가서 볼 오로라를 미리 영접한다..







12세부터 35세까지 홍대용이 공부했던 석실서원은 현 남양주시 지금동 석실마을에 있다..

그의 스승 김원행은 척화파 김상헌의 자손으로 노론의 주류였다..

그러나, 그의 서원의 규칙은 "독서에 뜻을 두면 나이나 귀천에 관계없이 입학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실심으로 만인을 위한 공덕 즉 실공을 이루는 선비(실사 實士)가 되라고 가르쳤다..

홍대용의 천문사상에 관한 관심도 이런 교육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35살에 숙부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을 방문하여 그의 안목이 넓어졌다..



44세부터 9년간 관직생활을 한다..



조선 최초의 지동설을 주장하고 천문관측기구 혼천의를 만들어 농수각에 설치한다...




혼천의는 일월 5행성을 관측하는 기구인데, 홍대용은 나경적을 시켜 만들었다..

그의 천문과학 사상과 그 연구를 통해 형성된 그의 철학은 의산문답으로 정리되었다.




그의 천문학에 대한 선구적 지위를 높이 평가하여 후학들이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다..

그는 별이 되었다..



1만원권 뒷면에 혼천의 그림이 있다..

세종때 처음 만들어졌다..



"세손은 한고조 유방을 중국 역대 임금 중 최고로 여겼다. 학문과 사대부의 풍모만 더한다면 이상적 군주인 요순에 필적하리라 생각했다.

한고조는 단점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너그러웠고 신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줄 알았다

천하의 일을 혼자 다 처리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일을 맡기고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윗사람에 있는 사람의 역할인 것이다.

윗사람의 능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주어진 일을 올바로 처리할 사람을 알아보고 그를 등용하여 일을 맡기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주의 나이 138억년

지구의 나이 47억년

생명의 나이 30억년

호모 사피엔스의 나이 20만년

문명의 나이 1만년

나의 존재...


138억년전의 빅뱅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빅뱅이전엔 존재와 의식이 없었는가?

빅뱅이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궁금증의 터널을 빠져 나오면 새 세상이 보인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살던 세상이 궁극의 세상이로구나..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좋은 세상을 다시 만나랴...





주말(11.3) 천안 목천 독립기념관 단풍구경을 갔다..

결론적으로는 아직 30%정도 단풍들었고, 이번 주말(11.9)이 절정일 것 같다..




주차장부터 초입은 노랑안내원들 줄을 지어 안내를 한다..





근데, 정작 단풍나무 숲은 푸른 빛이 압도적이다..

단풍나무도 안티에이징 요법을 받는지, 아니면 온난화로 때가 늦어지는 건지..

단풍율은 30%정도라고 할까?

실망스럽다..

사진 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촬영기법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하시라..





이정도로 80%정도 되어야 절정이라고 한다..




단풍 덜 들은 것이 내 잘못이 아닌데도 자꾸 좋게 찍으려고 애쓰는 것은 또 무슨 심뽀인지..원..ㅎㅎ








다리라도 성하면 뒷산 흑성산에 올라 약을 좀 빼는 건대..ㅠ.ㅠ





그러나 한조각 붉음이라도 찾으면 반가워 벌떼처럼 달려든다..

인기얻으려면 조기출하가 정답이다..




흔한 것 보다 귀한 붉음이 아름답다..

지나친 것보다 모자란 것이 더 신사답다..ㅎ





핏빛 속에 세워진 총독부 대가리는 핓빛 속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구존유금 지재보국(芶存猶今 志在報國)
지금껏 구차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나라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철기 이범석 -


참 간결하고 당당하지 않은가?



한 조각 붉음으로 외친다..

신의용감 무실역행..

신의를 가지고 용감해야 하며 맡은 일에 충실하고 힘써 행한다..

조국이 망한 것도 이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조국이 사는 것도 이것을 하기에 달렸다..


말로만 조국을 찾고, 이름만 조국이라고 불리고

하는 짓은 사리사욕에 용감한 자는 단지 "조국스럽다"고 불릴 뿐이다..




기둥에 송가인이 태극기 들고 서있네!!

이런 날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언젠가 만주에 가서 투쟁을 해서 독립하면 온다 햇는데.."

서울의 달을 만주의 달로 개사해서 부르면 딱 맞겠다..ㅎ




미진한 사람은 이번 주말에 가시라..



아산에서의 미지근한 노랑물감에 실망한 나를 괴산 문광저수지로 이끌었다..

10월 마지막 주에 오면 기대를 어기지 않는 곳..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는데..

노랑으로 변신은 개성인가??

이유가 있다..

구글도사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식물은 잎이 만들어질 때 빛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색소도 함께 만들어지는데

그중 엽록소는 초록색으로

크신토필은 노란색으로

카로틴은 주황색을 띠게 한다.

 

봄과 여름엔 엽록소의 양이 많아 잎이 초록색으로 보이고,

날씨가 추워지면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잎에 함께 있던 다른 색소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은행잎에는 크신토필이 많이 함유되었다는 말씀..



자세한 분석은 걷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노랑에 젖어 걸을 뿐..



금년에 새로 은행나무길이 조성되었다..

저수지 산자락에 테크길을 만들었는데, 분위기 좋다..





새로운 시점으로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양곡정에 올라 잠시 송가인의 노래로 흥을 돋우고..







금년의 벼그림은 하트와 기해년의 상징 황금돼지..

아하..황금돼지의 해라  돼지꿈의 태몽으로 태어나고, 출생날 돼지잡아 동네잔치로 축복받았던 송가인이 금년에 대박을 터트렷나 보구나..ㅎ








노랑이 많을 뿐인데, 얼굴에 웃음이 돋고 안해보던  포즈도 잡아보고..ㅎ





새로 생긴 풍경이 부교 등장이다..




덕분에 저수지도 노랑빛에 물들어 보고..






부교 위에서의 쌍쌍 데이트도 즐겨본다..




이참에 의자도 노랑으로 세팅..



더 늦기전에 말하세요

무얼??



점심 먹으로 탕정면 지중해마을로 간다..

현충사에서 10분거리..


말 그대로 온탕이 나오는 우물.. 백제시대 부터 불러오던 아산의 원지명이란다..

마을 어귀에 차가 밀리고 무슨 축제분위기다..



하얀 건물에 푸른 돔이 있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산토리니의 상징아닌가?

그래서 지중해 마을이라고 하는갑다..


탕정면에 삼성 산업단지가 조성되자 명암마을 원주민 66명이 조합을 결성하여 지중해풍 건물을 신축하여 이주하면서  블루크리스탈 빌리지라 명명했는데, 지금은  지중해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그리스 산토리니, 파르테논, 프랑스 프로방스 3가지 컨셉으로 지어졌다.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뭐지??

아..할로윈데이!!



단오 등 우리의 전통 풍속이나 축제를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것은 없어지고..

서양 풍속이 아이들의 기억에 자리잡으면 우리는 어떤 민족으로 진화할까?



그래..걱정은 내려놓고 이 분위기를 즐겨보자..





마녀 복장으로 코스프레하러 다닐 정도로 흥이 많은 민족인데..

어찌 지도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고 노상 조선 당쟁 모드만 이어지는지..




저 부엉이가 기념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일본 영향이다..

우리는 부엉이를 흉조로 생각하는데,

일본에서는 부엉이를 복을 비는 기념품을 애용한다..

즉, 부엉이는 일본어로 후쿠로우(ふくろう)라고 하는데, "고생 끝"으로 의미로도 들리기에 고생하지말고 잘살라는 의미, 복을 비는 의미로 사용된단다.

그러니 입으로는 반일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친일인 셈이다..

노래방 문화, 벚꽃 축제니 하는 것이 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 중국과 관계에서 무조건 배척하고 살 수는 없다..

문화로 서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살아왔다..

따라서 무조건 추상적으로 반일하지말고, 구체적으로  정치적 노선을 특정하여  아베의 군국화정책, 시진핑의 패권주의적 행태 등 이런식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할로윈데이를 즐기고, 일본의 부엉이 기념품을 선물하고 산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있는 문화행사도 활성화되었면 좋겠다..



하카다라멘 파는 가게..

최근 반일 정서에 눈치가 보이는지 가게입구에 태극기를 걸어놨네..ㅎ



선물용 호두파이를 사러 들어갔다.

여주인이 커피를 한잔 권한다..

물었다

"지나다니며 보니 일부 문닫은 점포도 보이던데, 이곳 상권은 궨찮은가요?"

"우리 가게는 판교있다가 이사 왔는데, 판교보다는 잘되는 것 같아요.."

5천세대의 아파트 단지에 삼성 관련회사가 있어 일반 소비자 뿐 아니라 단체선물용 수요도 많단다..

수년전에 교직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인데, 시장조사를 잘하고 입주한 것 같다..

그래....다 자영업자 어렵다는데, 잘 되는 사람도 잇어야지..




현충사 주차장에 도착..

노랑 은행잎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천지 조화공이 가을 단풍을 그리면서 이곳부터 노랑 색칠을 한 모양이다..




현충사 온지가 34년이나 되었나?

이제 아들이 장가갈 때가 되었네..



이 충무문의 글씨는 박정희의 글씨다..

그는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주도했다..

안티세력들이 이 글씨를 떼라고 하지만, 이런것이 다 역사다..

그렇게 순결을 강조하면, 송파의 삼전도 항복비부터 철거하라고 데모하라..





정려각에 자손의 정려와 충무공의 정려가 같이 있다..

충신 유명 수군도독...의정부 영의정..

충신..이 한마디로 일단 족하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은 자손대대로 이어져 정조가 영의정에 추서했다..

이 정려문은 그것이다..



조선이 명나라 조공국인 바람에 그의 작호가 중무공에 그쳤지..

중국같으면 관우처럼 충왕...나아가서 충제까지 승진햇을 터인데..



그의 마음 때문인지 붉은 단풍만 눈에 들어온다..



변덕스러운 왕 때문에 자신이 육성한 전선과 장졸이 몰사한 후

다시 통제사로 복귀한 뒤에도 매월 왕에게 예배하는 망궐례를 올리지 않았단다..




감도 익고 모과도 익어간다..

사람은 언제 익어갈까?




충무공 고택이다..

그는 서울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곳 아산에 온 것은 아산의 방씨 처녀에게 장가들었기 때문이다..

전 보성군수 방진의 무남독녀와 결혼하여 장인 사망후 그의 재산을 다 물려받았다..

그리고 장인의 코치로 활을 배우고 무과에 응시하게 된다..



집안은 적당한 크기에 정갈한 느낌이다..

조선시대 양반 중산층의 살림..




집안 은행나무는 500년이나 된다..

장군의 활쏘기 연습을 다 목격하였으리라..

무릎 부상이후 취미를 활쏘기로 돌아갈 까 싶었는데 여기서  활쏘기 체험이 있다해서 문득 와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오후 1시 30분 - 오후 4시까지란다..ㅠ.ㅠ

텅빈 사대에서 심궁(心弓)을 날려본다..

관중이요..심쿵..










돌아 나오는 길에 전시관에 들렀다..



장군은 10년의 수련을 거쳐 32살에 무과에 급제한다..

그리고 북로 남왜 전투로 인생을 보낸다..


 


함경도 두만강 부근 녹둔도에 근무할 때 기습침입한 여진족을 추격하여 포로로 잡힌 농민과 군인을 구출한다..




여진족 시전부락을 정벌할 때도 공을 세웟다..





풍신수길의 일본이 조선을 위협하던 시기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영웅적 전투를 펼친다..







그의 후손은 대대로 무관이 되는데, 208명의 통제사 중에 12명이나 배출되었다..

대표적인 해군가문이다...


전시관 뒤켠에 소년 활체험장이 있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단풍이 요즘 뜬다길래 아픈 다리 이끌고 길을 나섰다..

어렵쇼?

다음주(10월말 11월초)가 절정인가벼..

위로하는 건 바닥에 놓인 노란 국화들이다..




담쟁이도 위로한다..

붉은 것은 대충 감이 오는데 노랑 것들은 대중이 없어..ㅎ



그길에서 너를 기다린다고

우리 그 길에서 만나자고

다짐했던 그 때의 모습은 어디갔소!!










하나의 인연이 끊어지면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

노랑 은행의 미련을 끊게 해준 또다른 노랑들..



가을의 절개를 높여주는 국화들이 자태를 폼내고 있다..

봄부터 소쩍새 울리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을 울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옆집 누나..






노랑 말을 타던, 하양 차를 타던 순탄대로 시원하게 한번 달리고 싶은 요즘이다..





국화언니 혼자 힘들까바 동네 처자들 모두 몰려왔나?


코스모스 한들 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같은 마음으로 노래 합니다




드론~

멋진 모습 보여줘..



젊은 시절 언젠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지..

"꽃길 걷게 해줄께"

오늘 그 약속 지켰다..



노랑 물감은 부족했지만, 멋진 파스텔 풍경을 즐기고 간다..




<내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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