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안개가 가득하다..

거미도 아침부터 진주이슬로 치장하고..해는 달처럼 분위기를 잡는다..




다시 봇재로 간다..

이순신 장군도 정유년 추석을 지내고 봇재를 넘어갔다..



봇재 정상에 봇재다원을 치고 갔는데, 보성 명량다원이 기자리고 있다..

다원 안에 이순신길과 방씨부인길을 개설하는 중이다..






명량다원이라 이름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보성에서 식량과 병력을 얻어 봇재를 넘어 진도 명량으로 가는 길이 었기 때문이란다..





저멀리 득량만 율포 앞바다가 보이는 차밭 길이다..





차밭이 은밀한 속살처럼 유혹적이다..




그런데, 차밭을 돌아서자..아!!

호랑이라도 나올듯한 분위기의 숲길이 전개된다..






길지 않은 길 끝에는 밤송이와 양지바른 차밭..




길이 완성되지 않아 되돌아 나와한다..



오후일정을 마치고 귀소하다 잠시 영천 저수지에서 봇재를 바라본다..



그런데 또다른 멋진 차밭과 정자가 눈을 끈다..

궁금해서 찾아가니 명품다원 산책로다..





추석맞춰 익느라 고생한 밤에게 축하를 보낸다..





이 차밭은 작지만 호수와 바다가 함께보이는 멋진 풍광을 품고 있다..



더구나 아무도 없어서 호젓하게 걸으니 좋았다..



감은 추석상에 오르지 않아서인가 아직 여유롭다..




숙소가 대한 다원 근처 녹차리조트다..

5시경에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시간이 남는 것 같아 차밭길을 걷기로 했다..

무료인 줄 알았는데, 입장료가 4000원이고, 오후 6시까지 관람한다..



입구에 메타세쿼이어 길이 이어진다..




멋진 차밭의 사진이 걸려 잇다..



아픈 다리 때문에 산을 올라가는 1시간 짜리는 생략하고 4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가기로 한다..




계단식 차밭..

그 이유가 있을까??

차밭의 모양이 계단식 줄로 조성되어 있는 것은 기계로 찻잎을 따기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란다.

하지만, 이제는 경관농업으로 발전하여 관광객 수입도 솔찮지 않을 것 같다..



보성에 차밭이 많은 이유 가 있을까?

1939년에 다원이 처음 생기고, 1957년에 대한다원이 대단위 차밭을 만들면서 보성에 다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봇재 부근의 차밭은 바다에서 밀려드는 안개가 차밭을 뒤덮고 일교차를 크게 만드는데, 이 같은 기상 조건이 차의 품질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

아까워서 천천히 걷는다..









우리 인생 행하고자 하면 안되는게 없답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대보름달이 훤하다..

저녁식사 후에는 송가인의 "뽕따러 가세"가 기다린다..


 

 

오후에 봇재로 갔다..

봇재..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쉬고 간다는 고개..

1597년 추석을 보성 열선루에서 보낸 충무공은 8월 17일 군사들과 함께 봇재를 넘어 군영구미 수군기지(현 율포 해수욕장 부근 명교 백사장)으로 진군한다..

 

 

 

 

 

저 봇재 건물에 보성역사문화관이 있는데, 추석으로 휴관이었다..

 

 

다향 보성..

언제부터 보성에 다원이 많이 생겼을까?

1939년에 다원이 처음 생기고, 1957년에 대한다원이 대단위 차밭을 만들면서 보성에 다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봇재 정상에서 율포해수욕장 쪽을 바라보면 좌측의 차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다..

영천저수지와 멀리 율포앞 바다까지 보인다..

이길을 따라가면 봇재 - 영천저수지 - 영천마을 - (득음정 - 득음폭포) - 정응민 생가 - 판소리 전시관 - 판소리성지 - 득음문 - 도강마을로 이어진다..

 

 

득음길 4코스는 절반은 포장길이다..

 

 

영천마을과 도강마을 중간에 정응민 생가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송계 정응민(1894-1961)은 판소리 아카데미의 운영자였다..

그의 문하에서 판소리계의 거장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조상현, 성창순, 성우향이 대표적이다.

 

문득 판소리를 배운 송가인은 어느 계열일까 궁금해진다..

결론은 송가인, 친구 서진실, 조유아도 이쪽 보성소리계열에 속한다..

즉 송가인, 서진실의 스승인 박금희는 김상용 명창으로부터 춘향가를 배웠는데
김상용 명창은 보성소리의 송계 정응민으로부터 춘향가를 배웠다..

조유아의 스승인 안애란도 성우향으로 부터 춘향가를 전수받았으니, 조유아도 같은 계열이다.

 

 

정응민의 생가 대문 현판은 보성소리 명가라고 써잇다..

 

 

 

판소리는 신재효 이후 송흥록 스타일의 동편제와 보성출신 박유전 스타일의 서편제, 경기, 충청지역의 중고제로 나뉘는데,

정응민은 백부 정재근으로 부터 서편제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를, 명창 김찬업으로 부터 동편제 스타일의 춘향가를, 그리고 중고제를 가미하여 자신만의 보성소리를 완성시켰다..

 

 

 

생가의 뒷길로 판소리 전시관이 이어진다..

 

 

 

정응민은 아들 정권진을 명창으로 키웟고, 이제 손자 정회석로 이어진다..

또한 명창 조상현, 성창순, 성우향 등 제자들을 키워 판소리계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성우향의 춘향가를 배운 박금희의 제자가 송가인, 서진실이고, 역시 성우향의 춘향가를 전수한 안애란의 제자가 조유아이다..

 

 

지도에 보니 동초 김연수와 명창 임방울의 고택이 이 지역에 있었다...

동초는 송계 정응민으로 부터 심청가를 배웠고, 임방울은 정응민으로 부터 특별히 배우지 않고 독공에 주력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활동했으나 처음에는 소리 좋은 임방울이 쑥대머리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나도 한때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자주 들었다..

https://youtu.be/wGJSZhXYp1g

그러나 그는 일제시대와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대접도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죽었다

 

반면, 동초 김연수는 한학과 신학문을 모두 익혔기에 소리공부를 끈기있게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창극 판소리 스타일의 동초제 판소리를 정리하여 전주 지역에서 후진을 양성하였고, 초대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내고 인간문화재까지 되었다..

 

현재 판소리계는 동초제 계열과 보성소리계열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단다..

 

<참고자료> https://www.yna.co.kr/view/AKR20071029194200005

 

 

어린 나이부터 정응민에게 교육을 받은 조상현은 임방울 명창의 칭찬을 받은 일이 잇단다

 

한 번은 임방울 명창이 정응민 선생 댁에 들렀다가 조상현이 소리하는 것을 듣더니, “목이 좋네 좋네 해도, 이놈 같이 목이 좋은 놈은 첨 봤네. 형님이 성냥깐에서 두들겨만 주쇼. 팔기는 내가 팔께.”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시관에서 왕희지 난정서 첫머리가 쓰인 글씨를 보고 반가웠다..

"시일야 천랑기청 해풍화창 앙관우주지대 부찰품류지성 소이유목빙회 족이극시청지오 신가락야"

 

이날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우주의 광대함을 우러러보고 고개 숙여 만물의 무성함을살펴보라.
자유롭게 눈을 들어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풀어놓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이 참으로 흥겹기만 하구다.

 

이글을 쓴 사람이 소정 성창순 명창이다..

노래와 서예를 겸비한 사람이다..

그녀는 정응민으로 부터 수궁가를 배웠다..

 

 

성창순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판소리할 때 들었다 부채가 묘지석이다..

 

 

 

 

 

전시관 옆으로 가면 판소리전수교육관으로 이어진다..

 

 

 

 

판소리 다섯마당의 주체 형상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보성소리는 서편제(강산제)를 이어받은 심청가, 수궁가, 동편제를 이어받은 춘향가를 가르킨다..

다만 홍보가는 배우지 않는단다..

 

이에 반해 동초제는 흥보가를 포함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다 가르치는데, 창극 판소리로 진화하였다..

 

 

 

득음문..

득음은 판소리 전수자들의 최종목표이지만 그 길은 멀고 험하다..

 

 

판소리 성지..

이 일대 정응민 생가, 박유전기념비, 판소리 전시관, 전수교육관을 포함하여 그렇게 부른다..

 

 

다시 도강마을 거쳐 영천마을로 돌아간다..

멀리 봇재가 보인다..

 

 

 

 

 

영천마을에서 득음정 - 득음폭포(소리폭포) - 한치재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차향소리길이 계속된다..

 

 

 

 

물길을 따라가는 이길

물소리와 판소리는 상관관계가 있을까?

 

 

 

 

가는 길에 칡꽃향이 차향보다 더 진하다..

 

 

 

 

 

해탈교처럼 돌다리를 건너면 득음정이 잇다..

 

 

 

대숲을 끼고 득음정이 자리잡고 있다..

 

 

폭포소리, 대숲소리, 노래소리가 저절로 어우러질 분위기...

 

 

폭포소리가 너무 과하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판소리 성대 단련하기 좋은 장소 같다..

 

판소리 소리꾼의 성대를 분석한 영상이 있다..

https://youtu.be/DqnCIitazvs


이 영상을 보면, 판소리 소리꾼들의 득음과정은 성대결절을 감수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옛날 명창들이 폭포 앞에서 피를 토하며 연습하고 똥물로 치료하면서 얻었다는 득음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있을 것 같다.

 

 

폭포를 바라보며 노래 한소절 들어본다.. 

https://youtu.be/WWEG3z5l8Uc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득음폭포에서 한치재 주차장 가는 길은 별로 다닌 흔적도 없고, 다리상태도 좋지 않아 되돌아간다..

안숙선 명창이 부르는 만고강산을 들으며 쩔룩 쩔룩 길을 돌아간다

 

 

영천마을에서 득음폭포(소리폭포)까지는 왕복 2km

 

 

영천마을에서 수변길을 걷는다..길 군데 군데 개설되고 말앗다..

 

봇재로부터 차밭을 지나고 영천저수지를 지나고 득음폭포를 거처 판소리 성지 가는 길이

훍길과 수변길로 재개설하면 스토리있는 멋진 걷기 코스가 될 것같다..

 

 

 

 

<걷기코스> 봇재 - 영천마을 - 득음정 - 득음폭포 - 한치재 주차장  약 6.9 km  득음길 4코스 차향소리길

<관광코스> 봇재 공원, 정응민생가 - 판소리 전시관 - 판소리 성지 - 득음문,  득음정 - 득음폭포 왕복



추석연휴..긴 시간을 보성에서 보내기로 했다..

추석당일..보성에 도착..

방진관을 찾았다..

보성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알게된 장소..

이순신장군의 처가댁이다..

장인 방진이 보성군수를 지낸 연고로 훗날 장군의 처가 되는 방씨부인이 어릴 적에 이지역에서 살았다..




추석당일에 도착하니, 휴관이다..

해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찾아 왔다..



현판 방진관 글씨는 이순신 장군 초서에서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곳은 예전 보성군수 관사터였단다..



주련에 써있는 내용이 방씨 부인 12살때 유명한 일화다..

"방공진 사적시진 부인응성 왈유유"

방진공이 적을 쏘다 화살이 다하자,  딸이 대답하여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12살 어린 소녀가 아버지가 화살 가져오라고 소리치자, 당황하지 않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베틀의 대나무다발을 마루바닥에 동댕이 치며 "여기 있어요"하고 응대한다..

그러나 도적들은 화살이 많이 남은 것으로 생각하여 도주하였단다..


요즘으로 치면 예능에서 애드립 잘하는 송가인처럼 똘방 똘방한 딸래미였다..



12살 때 일화는 교과서에서도 배운다..

그러나 방진관에서 그녀의 80살 때 일화를 처음 배운다..

장군이 전사하고 종전이 되자 선조는 장군을 선무 1등공신 좌의정으로 추증하고, 그녀는 정경부인 작위를 받았다..

80무렵 장군의 부하였던 이운룡은 후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충무공 사당에 참배하러 왔다가 부인에게 야단을 맞는다..

"전 상관의 사당에 들어오면서 호각을 불면서 폼잡고 들어오는 것은 미안하지 않은가?'

그 남편에 그 부인이다..

이운용이 즉시 사죄를 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순신은 한양에서 문과시험을 공부하다가 방씨부인과 결혼 한후 아산 처가에 살면서 장인 방진의 후원으로 병학을 배우고

무과를 준비하여 1번 낙방을 거쳐 32살에 합격한다..

장인 방진은 무관으로 당대 명궁으로 소문이 났단다..

안내판에는 이순신 장군도 명궁이라고 써있는데, 난중일기에 50발에 43발 명중한 날이 있어 86% 명중율이 되는데, 10중 8,9의 실력이다..

이정도면 현재 궁도 승단 기준으로 치면 9단에 못미치는 8단 정도의 실력이다..



이곳에 역사 스페셜 그날 팀 최태성, 이윤석이 다녀갔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 일 중에 가장 큰 공적은 무얼까?

1. 이순신 장군을 죽이지 않은 것

2. 잡히지 않고 신속히 의주까지 도망친거


나는 1번에 한표를 던진다..

왜냐고?

몇십년뒤 명나라 말기 청나라에 대항하여 산해관을 잘 방어하던 명장 원숭환을 모함으로 투옥하여 명황제가 죽임으로써

명나라는 패망으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하던 무렵 이순신은 백의종군하여 합천에 이르렀다..

1597. 7. 18. 이순신은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8. 3. 진주 수곡면에서 삼군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었다.

그는 8. 9. 보성군 벌교에 들어왔다..

다행히 보성 고내마을의 조양창에서 봉인을 한 채 온전히 남아 있는 군량미 600섬을 발견했다.. 장정 600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지역의 이름이 득량면이 되엇다..



8.15. 추석날 장군은 선조로 부터 수군폐지령을 듣는다...

그는 울분으로 술에 취해 열선루에 앉아 유명한 장계를 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지금 수군을 전폐시키는 일이야말로 적에게 다행한 일입니다.

적은 호남과 충청 연해를 거쳐 한강까지 도달할 것이니 이것이 신이 매우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 수가 적다 해도 미천한 신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저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현 군청 부근에 잇었다는 열선루는 이제 인근 신흥동산에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8월 17일 그는 군사1120명과 군량을 끌고 봇재를 넘어 율포해수욕장 인근 명교백사장에서 자고 다음날 군영구미 수군기지에서 병사들을 사열하였다..

그때 보성 의병 3500여명이 수군으로 자원하였단다..

그리고 의병이 제공한 배 10척을 타고 장흥 회령포로 이동하여 배설과 이억추가 끌고온 판옥선 13척을 인수하였다...

그는 처가 동네에서 식량과 군사, 배를 모두 얻어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명량대첩의 밑거름이 보성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제야 알았다..







마침 방진관 옆에 활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궁은 전투체육이자 사교모임이기도 했다..

그러니 동네마다 활터가 있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특히 남쪽 해변지역은 더하다..

보성 청학정 활터는 시설이 훌륭하다..



나도 한때 국궁 활쏘기를 한 적이 있다..

우측 엄지에 깍지끼고 좌측 손 하삼지를 굳게 밀어 활을 귀까지 만작하여 화살을 날려 145미터 거리의 과녁에 맞춘다..

그러면 "관중이요" 소리가 울려퍼진다..

5발을 1순이라 하는데, 3순을 쏘고 걸어가서 활을 주워온다..

최초로 5발을 연속 명중시키는 것을 몰기라고 하는데, 골프 싱글패처럼 몰기패를 만들어 증정한다..

나는 2년만에 몰기패는 받았는데, 입단할 정도 실력은 되지 못했다..

이제 오른쪽 무릎 연골이 손상되어 잘 걷기도 못하는 지경이 되니 다시 활쏘기로 돌아가야겠다..





추석 당일 점심을 어디서 먹나 걱정했는데..우연히 맛집을 만낫다..

한정식 청광도예원..

남편은 도예가이고, 부인이 한정식 식당을 하는데, 음식이 정갈하다...

추석이라 가족이 서빙하고 2시까지만 한다..

다행이 기다리다 빈자리를 잡았다..






9월 추석이라 때이른데, 고추잠자리가 체면치례를 해준다..





마당은 도예원답게 자기들이 초야에 묻혀있네..

잘 닦아보면 송가인처럼 빛나는 진가를 발휘할지 어찌 알겠는가?





재활걷기 2탄..한밭수목원으로 간다...

요즘 분위기에 매치되게  태극기와 무궁화가 기다리고 있다..




무궁화 속을 좀먹고 잇는 저 나방은 아베스럽다..



태극기 팔랑개비와 무궁화 꽃을 보며 걸으면서 멋진 마리아주가 될 노래를 생각하다보니 bts 의 아리랑이 떠오른다..





8월의 끝에 만나는 연꽃 한송이...

오늘은 위로를 건넨다..




태극기, 무궁화, 소나무의 공통점은???

애국가..

애국가하면 송가인..


https://youtu.be/VTaPfgy3rqg




푸른 하늘에 붉은 배롱꽃..

청천단심(靑天丹心)





지난 번에 다친 오른쪽 무릎이 자꾸 쉬라고 한다...

몇개의 걷기 예약을 취소하고..

잠시 재활의 길을 가기로 한다..

그늘 좋고 편안한 세천 임도를 걷는다..

태풍 한방에 무덥던 여름도 고개를 숙이고 가을이 지척으로 다가오자

보라빛 꽃들이 뛰쳐 나온다..



정성을 들여 다리를 완치해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갈 수 있을 터인데...

걱정만 가득하다..





더운 날이다..

무리를 피하는 와중에 생각난 곳은 대전 세천계곡..



몇년만에 가는데 바뀐 부분이 잇다..

초입에 설치된 무장애 산책로..





그늘이 좋은 이길을 휠체어 타고 일부 돌아볼수 있게 만들었다..

더운날 집이 좋다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물론 에어컨 때문이겠지..

그러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견이다..전기세 때문에 에어컨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소치이다..

마치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했다는 말이나 비슷하다..



물에 잠긴 나무들..그 사이로 불쑥 악어가 튀어나올듯 어수선하다..

그때 눈을 사로잡은 백로..

이순간만은 그 자태가 고니, 백조, 학 보다도 아름답다..




개울을 건너 오랜만에 장고개로 간다..

만일 백제 시절 탄현 부근의 오솔길이 있엇다면 제일 유력한 곳이다..




충주의 신라길 하늘재와 견주어도 좋을 것이다..



호젓한 곳에 더구나 절묘한 물가가 빈자리다..

동행은 하산길에 담그자는데, 반대하고 즉시 자리를 잡았다..

이런 기회는 이런 무더위에는 한번 뿐이다..

보는 즉시 차지해야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열기를 잡는다..

누구 노래냐구??

머..요즘 잘나가는 송가인의 트로트 공장 출하곡..




장고개에서 옥천 이백리 너머가는 길을 잠시 탐사하고 돌아선다...

빈속에 시원한 냉면이 그리워서..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국내 최장이니 하는 뉴스를 본지라 휴가중에 방문코스로 넣었다..

방문 소감은 정말 잘 만들었다..

출렁다리로 해서 빈공간의 활용을 확대하고 풍광에 도움이 되니  참 좋은 아이디어다..



접근성도 좋다..주차장에서 10분 올라가면 바로 출렁다리다..

출렁다리를 건너야 운계폭포와 범륜사 그리고 등산이 시작된다..







출렁다리 아래는 도로..

아름다운 계곡을 가로 질러 풍광을 해치는 구도가 아니라서 좋다..






며칠 내린 비로 운계폭포 제대로 필받았다..

갈수기에는 물을 동력으로 올려 인공폭포처럼 가동하던 것이 오늘은 전기세를 절약하는 효자가 되엇다..










관음보살이 세계평화를 저리 기원하는데, 중국은 시진핑이 원세개 짓을 하고, 일본 아베는 풍신수길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답니까?



주지스님이 가져온 쓰레기 번뇌는 도로 가져가라고 하니..도로 고민 거리 담아가지고 돌아간다...애고..




범륜사에서 전망대로 걸어가서 전망대에서 송가인 노래 들으며 번뇌 다 버린다..



그리고 전망대 옆 들마루에 누워 시원한 바람 맞으며 비몽사몽 피로한 몸을 쉰다...

아..이런게 휴식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