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2일째 파주로 달린다..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넓은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연천 장남면까지 온다..

그리고 임진강을 건넌다..

임진강 북단에 있기에 고구려성이다..

한때 고구려의 남방 국경인 임진강을 방어하던 성지..

당시에는 호로하라고 불렀고, 그곳에 있던 오랜 보루라 해서 "호로고루"다..




내비가 이상한 지역으로 안내하더라도 당황하지마라..

이곳은 좀 외진 강변이니까..

거기서 내리면 분홍메꽃이 인사를 하면서 광개토대왕비를 소개한다..

웅장한 광개토대왕비를 여기서 만나다니..

북한 단체에서 기증한 같은 크기의 복사품이지만 참 당당한 비석이다..










성채에 오르면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도 임진강 주상절리 위에 구축한 성채다..





내려가면서 보니 삼면이 강과 습지로 둘러싸이고 오직 동쪽만 돌로 축성한 천연요새터다..

마치 진주성의 축소형이라고 보면 된다..



성지 끝에 고랑포 지역을 바라보는 곳에 망향단이 있다..

추석 무렵에 북녁 출신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는 모양이다.. 


이 지역은 요충지다..

삼국시대 쟁탈지역이고, 신라- 당의 격전지이며, 1.21 때 124군 공비들이 잡입햇던 지역이다..







8월 말경에 이곳에는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단다..




홍보관 뒷마당에 무슨 문양이 잇어 올라가서 보니 고구려의 문양같다..



임진강에 황포돛배를 운행한다고 해서 두지나루로 갔다..

하루에 6번 정도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가격은 1인당 9000원..






시간 맞춰 나가니 멀리서 돛배가 온다..

이미자의 황포돛배 노래가 들려온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배야


https://youtu.be/8vmMtlo4ZOg 






배안에서는 해설사가 설명이 곁들여진다



임진강에는 어부도 있고 갈매기도 있다..





갈매기는 새우깡 받아 먹으려고 열심히 쫒아오는데, 받아먹는 기술은 부산 갈매기 따라 올라면 한참 멀었다..





임진 주상절리의 모습이 멋지게 다가온다..

조선 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임진적벽은 이런 풍광을 좀 인상파적으로 과장해서 그린 것이렸다..





황포돛배는 호로고루 앞에서 돌아간다..

더 가면 고랑포이고 군사분계선지역이다..



고랑포는 강이 얉아서 예로부터 말타고 건널수 잇는 곳이라 해서 군사 요충지로 관리해온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서해에서 배가 고랑포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금강으로 따지면 바다 배가 강경까지 들어오고 강경에서 강배로 바꾸어 새종시 부강지역까지 들어온 것 처럼..

그 전성기 시절의 고랑포 풍경이 아래 사진이다..




임진강 노래는 없나 검색해보니 -- 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https://youtu.be/Hxvf9P6YtK8


이노래는 월북작가가 고향을 그리며 만든 가사로 만들어진 북한노래인데, 

일본사람에 의해 일본에서 불려지면서 알려진 노래란다..

한때는 남,북, 일본에서 다 금지되었던 노래..





김포 덕포진 걷기를 마치고 강화로 건너가 초지진 - 덕진진 - 광성보를 걸을 예정이엇는데...

강화도- 석모도 간 연육교가 준공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계획을 바꾸었다..

김포 대명항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건너가 다시 연육교로 석모도로 가서 유명한 보문사로 향한다.. 



직방..보문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월요일인데도 관광객이 넘친다..



비탈길을 올라가면 대웅전이 자리한다..




와불전 옆에 영산회상..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비구 1250인에게 법화경을 설법하자, 칠보로 장식된 다보탑이 솟아 올랐다는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극락보전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서해가 눈에 가득하다..





보문사는 우라나라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그래서 이 계단을 올라가 관세음보살을 알현해야 한다..

요즘 절은 상업성이 발달햇다..계단 옆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홍보한다..



그래서 써붙인 소원들..

영주권획득??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영주권 획득을 기원하나 했더니 주소를 보니 미국 영주권을 소원하는 것 같다..

요즘 경제 침체가 심해지니 부자는 외국 이민 가려고 하고, 사업가는 베트남에 투자하려 하고,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비틀댄다..

최근 문정부의 경제 처방을 보면 체온이 떨어지는 환자에게 열 올리는 약재를 쓰지 않고 반대로 해열제만 투약하는 형국이다..


"일일이퍼"라는 소원은 무얼까?





계단 끝에는 눈썹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 관세음보살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어디를 보시나?

서해 바다를 보시는 줄 알앗는데..자세히 보니 사람들을 보고 계시다..

손에는 복 주머니를 들고..



시간 여유가 잇으면 보문사 - 민머루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강화 나들길 11코스 (석모도 바람길)를 걸어볼만 할텐데..

오늘은 관광모드로 바로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직행..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해변..

썰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갯벌을 맨발로 걸어본다..






서해 끝자락에 와서 곧 사라질 발자국만 남기고 돌아선다.

세상 어디에 가도 끝은 없더라..

항상 새로운 시작만 기다린다..







여름 휴가는 평소 가기 어려운 김포,강화, 파주 지역으로 간다..

첫날..김포 대곶면 덕포진으로 갔다..차를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댔다

무궁화가 반겨준다..




오늘 일정은 덕포진 교육박물관 - 덕포진 유적지 - 대명항으로 걸어간다..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먼저 들린 이유는 신문기사로 이곳 부부의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사고 탓에 시력을 잃은 아내를 위해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오랫동안 수집해 온 자료들을 모아 3층짜리 건물에 마련한 박물관이다.



입구에 노랑냥이는 비킬 줄 모른다..

날 죽이시요..

뭐..내가 티어스 부르라고 할 것도 아닌데..ㅎㅎ





갑자기 50년전으로 돌아간 기분..



도시락 아래 놓으려고 눈치싸움 치열했지..

아예 김치를 미리 넣고 흔들어 비빔밥을 만들어 구웟지..ㅎ



아! 조개탄도 그대로 있구나..

연기 때문에 창문열고 있자니 추워..

"차라리 불끄고 창문 닫자"고 했다가 디지게 지청구 먹었지..



ㅎㅎ 금거놓고 옆자리 못생긴 여자동무 매일 금넘어 온다고 괴롭히고..ㅎㅎ



내가 괴롭히던 여자애들 다 할매 되었을텐데..아니 살아있기는 한지..ㅎㅎ



욕보지덕 호천망극이라...

부모님의 은혜

다 갚으려하면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학도호국단..교련..주황색 마후라..



추억 속의 만화책도 보인다..

원래 나는 박기당, 김종래 세대인데..중학교 입학 시험 공부하면서 끊었고..

이상무의 독고탁은 대학 무렵에 보던 기억이 난다..



주산학원이 한때는 영재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어머니들에게 세계문학전집, 백과사전 판매가 세일맨들의 노다지였던 시절도 있었다..




미싱..

미싱이 혼수의 상징이었다..

발로 굴르던 것이 전동으로 진화한다..



인두..ㅎㅎ

어떤 정치인이 상대방의 쓴소리에 "인두로 지질수도 없고"햇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 이제는 유머로 들린다..

숯불 다리미..

어릴 적 할머니가 쓰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젊은 세대는 우리가 원래 잘사는 나라였다고 생각하는데..

60년전에는 저런 물건을 사용하며 살던 아프리카 수준이엇다고 생각하면 된다..

갖은 노력과 고생으로 이처럼 성장한 것을 잊고 과거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한 때의 영광이 빛나던 이곳도..관람객 감소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안타갑다..



근처에 두개의 비석이 있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매국이다..

이것은 병인양요 후에 대원군이 세우게 한 것이다..

무조건 척화..이것이야말로 망국의 길임을 그 때는 몰랐다..

지금도 이런 식 논법이 횡행하고 잇다..


두번째는

해문방수 타국선 신물과..

바다의 관문을 지켜라

타국의 배는 절대 통과시키지 말라..


하지만, 힘이 있어야 지킨다..

우리는 힘이 있엇는가?

의병과 죽창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잇는가??



덕포진 수군 첨절제사 김상운의 기적비를 후손들이 세웠다..

고종 때는 무과시험에 조총 사격도 잇었나보다..

그는 무과시험에 조총 3발을 명중시키며 합격했다..



1893년 5월 이곳에 수군 첨제절사로 발령을 받았다..

고종이 그에게 권총을 하사했다..

요즘은 장군 승진하면 검을 하사한다는데..ㅎ

1893년이면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이었다..

그는 이 곳에 근무한뒤 1895년 일본의 민비 습격사건 때 궁궐을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덕포진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 염하강를 지키는 전초 요새다..

프랑스 함대, 미국함대와 싸운 전적지다..





이런 포가지고 프랑스, 미국과 싸울려고 했다면 당랑거철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도해나가는 선각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초가집 포대를 보니 동키호테가 생각난다..

철지난 중세기사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행각..




1871년 미국함대가 왓다..

덕포진의 포격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미군은 강화도에 상륙..초지진, 덕진진을 제압하고 광성보에서 어재연이끄는 조선군과 격전,,

조선군이 한명도 항복하지 않고 결사항전 끝에 전사하자, 질렷는지 미군은 철수한다..

어차피, 4년뒤..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하느니, 이 때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엇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대원군이 실각하기 전이라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우리의 국운은 참 안풀리던 시절이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하면서 1875년 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한다..

이것이 두고 두고 족쇄가 되었다..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다..

이런 구녕에 대고 어찌 포를 쏘고 적선을 맞춘단 말인가??




덕포진 북쪽 끝에 손돌의 묘가 잇다..

사공의 충정을 몰라주고 성급히 죽인 왕의 후회..

이런 일은 선조가 많이 저질렀다..

다행히 이순신은 죽이지 않길 망정이지..




정말 손돌목 물살에는 자국이 생긴다..



건너편 강화에는 광성보와 덕진진이 보인다..

양쪽에 최신포를 설치해 놓으면 절대 통과하지 못할 지형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처들어 왔다..

강화읍성을 점령하고 한강 입구 문수산성을 유린햇다..

대원군은 양헌수 장군을 파견했다..

양헌수는 550명의 군대를 끌고 덕포진에 도착..이곳 손돌목에서 강화도를 쳐다보다가 문득 정족산성을 생각햇다..

급히 염하강 수로를 건너 정족산성에 입성..

강화도 읍성을 점령해서 느긋하던 프랑스 군이 퇴로를 끊길까 놀라 정족산성을 공격..전사자 수십명을 남기고 후퇴..








신미양요 때 미군에게 빼앗긴 장수기..136년만에 귀향했다..자랑할 일 아니다..

지금도 국방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잇는가?

국군포로 귀환에 무관심한 정부가 어찌 나라를 잘 지켜내겟는가?




이길도 2가지 임무를 띄고 잇다..

1. 덕포진둘레길 6.8KM

2. 평화누리길 16.6KM





말뚝박기에 뛰어들었다..

내가 보를 내서 이겼더니 저넘 표정이 안좋다..





민들레 불어 날린다..

아빠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

조용히 나만 혼자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않아요 민들레처럼..




이 넘이 연주하는 노래는?

길은 끝이 없어라..




염하강 끝에 정박한 철선..

100년전에 서양배를 보고 저런 모습을 느꼈을까?

우물안 개구리처럼 우리가 적들을 영원히 격퇴했다고 생각했을까?

지금도 중국, 일본을 마음대로 격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잇는가??


그때 격퇴한 미국을 그뒤에 계속 러브콜을 했지만, 일본은 미국과 테프트 - 카스라 협약으로 우리의 목줄을 검어 쥐었다..

그리고 이승만의 노력으로 한미동맹을 체결햇는데, 이제 제손으로 한미동맹에서 빠져 나가려한다..

일본 아베는 그 틈새를 노리고, 한국을 제2의 에치슨라인 밖으로 밀어내고, 트러프와 미-일 협약을 맺으려고 한다..

그들은 안다..

우리의 일부 세력이 삼성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그리고 삼성을 쓰러뜨리면 한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다는 것을..

그래서 삼성 반도체의 아킬레스 건인 불화수소 수출금지로 삼성 붕괴를 시도한다..

중국은 사드 설치 금지 조칙을 내리고 제2의 원세개가 되려 한다..

이른바, 제2의 청일전쟁, 제3의 임진왜란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안전한가?"

덕포진에서 묻고싶어요..





대명항에서 눈이 마주치자 인사하는 식당 주인을 보고 들어가

요즘 잘나가는 삼식이 탕을 4만원에 시켜먹는다..

주인장에게 차를 회수하러 콜택시 불러달랬더니, 자기가 한가하면 태워준단다..

이리 고마울때가..



<오늘 걷기> 덕포진 교육박물관 - 덕포진 일주 - 손돌묘 -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대명항 약 2KM



한동안 지리산 계곡을 찾아 다녔더랬다..

이제는 팔공산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여름에는 계곡걷기가 최고다...그래서 고른 팔공산 치산계곡..

오늘 걷기는 치산계곡을 끼고 수도사에서 팔공산 동봉 아래 진불암까지 가는 길이다..



치산 계곡에 들어서자 아침부터 계곡은 콩나무 시루처럼 사람이 차기 시작한다..

물과 물사이에 차일치고 자리잡은 저 사람들이 부럽다..

송가인 노래 들으며 막걸리라도 한잔 하는지...ㅎ



원래 수도사 주차장까지 차가 들어가는데, 성수기 한달동안안 1km 전 다리에서 부터 차량을 통제해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내비> 영천시 신녕면 수도사를 치고 오면 된다..



오늘 대략 왕복 11km 정도 걷는다..



더우니 치산저수지도 물로 그림 그리며 시간보내고 있다..




며칠 내린 비로 가득한 물로 신난 계곡을 따라 1km쯤 올라가면 수도사가 나온다..



굳이 도딱는 절이라고 강조 않해도 도 딲을 일 밖에 없는 장소 자리잡고 있다..



절 옆 동봉, 진불암 표지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1km 가면 공산폭포 갈림길이 나온다..

폭포 쪽으로 들어가면 망폭정..폭포 바라보는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아서 폭포를 바라보면 저절로 시한수가 나온다...

시도 짓고 고을 태수 칭찬도 하고 일타2피하는 한시를 보고..

참 처세 잘하는 구나..

우리나라 외교도 저정도는 해야하는데..

북로남왜 오랜 구도 속에서 오늘도 헤매는 우리 외교를 생각한다..



공산폭포 참 매끄럽게 잘 흐른다..

입안의 혀와 같고, 용입의 여의주같은데

우리의 처세는  왜 이리 거칠만 할까?





한 떨기 참나리가 말한다..

이순신 장군은 정신력으로 싸운게 아니네

그는 준비하고 대비되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네

죽창과 의병가로 싸우라고 백성들에게 말하지 않았네

군인인 내가 싸울테니 그대들은 피난가라 했다네..



공산폭포의 머리 맡에 앉아  입속으로 들어가는 참외에게 말한다..

능력없이 소리만 높으면 백성들은 깡통처럼 고단하다고...





참나리는 안다...

붉은 마음(丹心)은 걸맞는 실력이 없이는 얼라의 마음이(赤心)라는 것을...




폭포를 돌아 오는 포장길은 끝나는 자리에 최신 지게가 대기한다..

진불암 가는 물건은 이 지게가 담당한다..


문득 혁신을 생각한다..

진정한 혁신은 지게를 나무에서 철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지게 대신 드론으로 배달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 다리가 진불암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계곡과 잠시 이별하고 산길을 따라 간다..





참 고즈녁한 산길이다..




은수교..이름도 정겹다..



할 일없이 세월은 흘러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참 가슴을 치는 싯귀다..


`

보통 사람들의 심정은 이런 덩걸같은 것이 아닐까?

다 드러나 밟히고 쓰라린 심정들..

그래서 요즘 매미도 목청이 커지고, 사람들 고함소리도 커지는가?



그런 마음을 달래주려고 산 길에는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져있다..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글씨는 희미해 지지 않을터인데..

이제 간절한 마음들은 모두 "나무부자되세요"로 향하고 있다..





희미해지다 못해 깨져버린 "나무아미타불".. 





거친 숨 몰아치며 진불암에 다가가는데 어디서 굉음소리가??

어라?/ 포크레인에 어떻게 올라왔을까?

다른 비밀의 길이 잇을까? 지게로 부품 옮겨서 조립햇나?

보살에게 물엇다..

"헬리콥터로 가져왔어요.."



진불..진정한 부처..

그 이유는 적멸보궁이라는 글씨에 있다...

삼국유사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정골사리를 안장하고 진불암이라 했다고 한다..





진불암이 들려주는 설법..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구름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같은 삶과 죽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

어제를 고민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쉬지 못하는 마음..



돌아 오는 길에 계곡물에 다 떠내 보내고..

시원해진 다리만 거두었다..




<오늘 걷기> 영천시 신영면 치산계곡 주차장 - 수도사 - 공산폭포 - 출렁다리 - 은수교 - 진불암  왕복 11km



화악산 걷기를 마치고 간 곳은 곡운구곡 3곡 신녀협이다..



흰돌 위에 나는 여울 귀절이 멋지다..



정자 이름은 청은대..

글씨는 여초가 썼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에게나 보이는 건 똑같다..

"흰돌 위에 나는 여울 "





300년전에 이곳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김수증이 기획하고 숙종 때 평양 화사 조세걸이 그린 곡운구곡도 중 3곡 신녀협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구곡(九曲)이 왜 이리 많을까?

화양구곡, 선유구곡, 갈론구곡 등등..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처럼 한때 구곡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구곡의 유래는 성리학의 시조 주자가 은거하던 무이산에 구곡(아홉 구비)의 절경을 명명하고 무이구곡가를 지은데서 시작한다..

당연히 성리학을 섬기던 우리나라에서 추종하는데, 율곡이 황해도에서 고산구곡을 명명한다..

그의 학파인 송시열이 괴산에서 화양구곡을 명명한다..

송시열과 동시대를 살고 같은 당파였던 김수증은 화천에 곡운구곡을 명명하고, 한수 더떠 실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그후 추종자들이 전국에 자신만의 구곡을 찾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계룡산 상신리 개울가에도 용산구곡이 있다..


위 곡운구곡도의 곡운은 김수증의 호다..

그가  기획하고 숙종 때 평양화가 조세걸을 시켜 실경 그대로 그리게 했다..

우리가 그 곳에서 카메라로 사진 찍은 것 처럼..

김수증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 김상헌의 손자로 서인의 중추집안..훗날 그 집안이 순조이후 60년 세도정치를 한 장동 김씨라 불린다..

김수증이 시작한 우리 땅 그림그리기는 영조 때 겸재 정선의 인왕산 그림, 정조때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의 시대의 문을 열엇다...

그래서 위 곡운구곡도는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잇다..


그때 우리 땅을 돌아보고 그림 그리기가 1차 걷기 열풍이엇다면,

그뒤 2007년 제주 올레를 기점으로 시작된 것이 2차 걷기 열풍이다..

이번 걷기 열풍에서는 그림대신 인증샷으로 대체되었고,

그때는 직접 바위에 글씨를 썼는데, 지금은 불러그나 카페에 글씨를 쓴다..



조선시대에 우리 산수화는 원래 중국의 산천을 그렸다. 그렇게 사대주의가 심했다

그런데, 왜 숙종 때 김수증은 곡운계곡의 실경을 그리게 했을까?


병자호란 이후 척화파 계열들은 명나라의 재조지은(나라를 구해준 은혜)를 강조하여 명나라를 아버지 나라처럼 섬겼다..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명나라의 정신 문화를 조선이 계승하였다고 생각한 성리학자들이 많았다...

조선이 명나라의 상속자라는 개념이 소중화주의 정신이다

그런 정신이라면 자연히 우리나라 산수 실경을 그릴 수 밖에 없다...

또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명나라 마지막 연호를 사용하여 "숭정후 몇년"이런 식으로 표시했다..

업어치나 메치나 어쨌던 우리 땅을 제대로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계곡에 내려가 저마다의 포즈로 휴식을 즐긴다..







이곳에도 3곡과 4곡 사이에 왕복 4km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나 저 거시기스러운 작품??을 만났다..ㅎ




하늘, 빈공간에 글씨를 쓰고 싶었지요 그림도 그리고 싶었어요

멋진 글로 소원도 빌어보고, 사람하는 이에게 편지도 쓰고 말이예요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생각도하고 낯선 사람들과 둥그렇게 둘러 앉아

웃음꽃도 피우고, 수건돌리기 놀이도 하고 쉴 수 있는....




오른 무릎 치료를 위해 화악산 트레킹은 취소해야 옳았다..

원점회귀 코스라 여의치 않으면 중도에 내려오면 되지 하고 따라간다..

그리고 화천은 처음이라 맘이 가자고 졸랐기 때문이다..

화천 걷기는 내 오른 다리 팔아 얻은 귀중한 글이다..ㅎ  



화천은 멀다..거의 4시간 가까이 달려 화악터널에 하차한다..

바로 터널옆 급경사를  오른다..



날은 흐리고 차안에서 보니 화악산 중턱에 먹구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마치 매복 적군이 있는 줄 알고도 우리는 오른다..

예보상은 하산 시간에 비가 올거라 한다..




힘들여 오르면 만나는 곳은 군사 작전도로다..

우리는 이길을 따라 중봉으로 간다..



흐리길 망정이지 땡볕에는 비추할 길이다..



게속 이 포장길 4KM를 올라가야 한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도 있는 모양인데, 군 작전지역이라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는단다..



기어코 비가 내린다..

우비와 우산을 들고 다리를 절며 절며 올라간다..

미아리 고개도 아닌네..ㅎ




일단 중봉 200미터 전방에 도착하니 비속에 불편한 다리로 계속 갈길은 아니라 싶어 여기서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에 비가 그치니 마치 불을 끈거처럼 안개가 피오른다..

그 동안 땡볕에 산이 달궈졌나보다..





화악터널로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와 다른 완만한 임도로 내려온다,,

터널 부근 정자에 앉아 와인 한잔하다보니 신기하게 주차한 차가 보인다..

저렇게 수평을 맞춰놓고 잠을 자나보다..헐..



<오늘 걷기> 화천 화악터널 - 중봉 200미터 전, 왕복 약 9KM




해마다 7월이 되면 들르는 대전 동구 주산동 연꽃마을..

금년엔 연꽃무상을 느낀다..



마을 표식은 점점 연륜이 쌓여가는데, 금년엔 연꽃 농사를 포기했나 보다..

연광에 연꽃이 몇송이 없다..

한 때  찬란했던 솔로몬의 영화 같던 연화세상은 사라지고, 추종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벌이야 몇송이 연꽃을 탐닉하면 그뿐이지만

해마다 제사날처럼 찾아오던 객의 마음에 쓸쓸함이 스친다..



의기소침한 마음을 워즈워드의 시로 달래본다..


한때 그처럼 찬란했던 광채가

이제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한들 어떠랴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다시 안 돌려 진다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하지만, 어찌 루드베키아가 그 빈자리를 대신하리요..



전통시대 불교와 유교, 선사와 선비가 모두 좋아하던  배롱나무의 붉음이 대신하는 것은 가능할까?





공룡알 자리는 여전히 어수선한데

멀리 식장산은 언제 오냐고 연신 손짓해댄다..





황새바위 근처에는 사라진 황새자리를 왜가리가 완벽히 채우고 있다..






호미고개를 지나 호반의 빈배를 보고

쓸쓸함에 못이겨 돌아선다..




왜가리가 위로한다..

제행은 무상하나니, 변화 속에 진리가 있나리라..

황새바위에 황새가 사라져도 왜가리가 대신하듯이..




삶이란 생각한 만큼 살아가는 것..

연륜을 능소화가 장식한다..




영원은 항상 고독하다...

변화는 새롭고 신비하다..

우리는 항상 새 것을 추종하면서

어이없이 무상함에 상처받는다...


<부록> 연꽃마을 변천사


2011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48718

2013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49370

2014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49741

2015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50030

2016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50286

2017년도 : http://blog.daum.net/servan/6350562





안성 걷기는 금광호  박두진 문학길을 찾아간다...

내비로는 현곡보건진료소를 치고 가다가 대문교 다리 직전에서 우회전하면 수석정이 나오고, 그 앞에 주차장이 있다.



금광저수지에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시를 테마로 한 길을 만들었다..

그는 호가 혜산이고 안성출신이다..그의 집필실이 호수 건너편에 있다..

박목월, 조지훈과 청록파 시인으로 불렸다..



여기 수석정이 출발점이다..



6월의 여왕 개망초가 입구를 장식하고..



지금은 갈수기..모심느라 저수지 비우고 장마에 대비한다..






나무 그늘이 어우러진 데크와 오솔길로 걷기 좋은 길이다..





호수 건너편에 선착장..

예전에 티비 프로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안성편"에 등장한 적이 있다..

호수 건너 매운탕집으로 모시고 가는 빼리..




그러나 그 매운탕집은 현재 휴업중이다..





누가 나를 부른다..

금방 채취한 망버섯을 사란다..

라면에 넣어 끓여 먹으면 맛있다...

모습은 좀 괴기하다..


검색해보니 노랑망태버섯이라고 하는데, 건조시킨 것을 죽손이라고 하여 고급요리 재료로 쓴다고 한다..,



어느 순간 길은 산길로 연결된다..




산길 넘어 내려가면 혜산정..

박두진의 호가 혜산이다..




혜산정에 앉아 바람과 밀당하기 좋다..

앉은 김에 수박꺼내 먹고...




7월 태양이 사자새끼란다..

발톱이 제법 날카롭지..



은근히 몰려드는 구경객들에게 자리양보하고 가다가 다시 발견한 낮잠자기 좋은 장소..




교과서에서 보던 그의 시..

`


청록뜰에 그의 좌상이 잇다...

그의 옆은 빈자리다..




돌아오는 길..

길이 짧다는 생각에 벤취에 앉아 막연히 시간을 보낸다..

뭐 걷기라는 것이 정해진 양이 있는 거는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인생도 빈손으로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지 않던가?

물론 그날은 많이 걸어도 다리는 아프지 않겠지..



<오늘 걷기> 이길은 왕복 5K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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