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째주 홍성 죽도로 간다..

버스가 남당항에 10시10분에 도착..10시 30분 배로 들어간다..



작은 배로 10분 거리..남당항에서 빤히 보이는 섬이다..




리아카 리무진은 사양하고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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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이라 반시계반향으로 돌기로 햇다..

섬이름 담게 철제 기둥도 대나무 처리를 했다..





웃음 준 첫 사랑은 누굴까? 엄마??

두번째 사랑은 첫사랑 여인??

세번째 사랑은 오 마이 갓??



죽도 섬에 분양받는 펜다들..댓잎만 먹으면 되나??

그 옆에 홍성 출신 위인..만해 한용운..

그가 만년에 살던 곳은 서울 성북동 심우장이다..< http://blog.daum.net/servan/6350650 참조>



예전 홍성에 근무할 때..

홍성사람들이 홍성출신의 위인들을 자랑했다..

1. 황금을 돌 보듯하던 최영장군

2. 일백번 고쳐 죽을 기개의 사육신의 리더 성삼문

3. 청산리 대첩으로 빛나는 김좌진 장군

4. 만해 한용운


그 말을 듣다가 불쑥 한마디 했다..

"제 명대로 산사람은 없군요"


그들이 목숨의 돌보지 않는 대쪽같은 기개가 죽도에서 더 빛나보인다..





유료 바다 낚시터는 인기 잇을 거 같다..

도시어부 여파로 낚시 인구가 골프인구를 추월했다고 하니..



조도도 있다..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천국...





천연 양어장 독살 체험장은 대형 스펀지로 만들었다..







고달파도 행복한 섬생활이 있었겠지?




배곯다가도 가끔 잡는 괴기 덕에 끼니를 잇고 살앗겠지..



참외서리, 수박서리가 용서 받던 시대는 끝났다..

이젠 법대로 살아야 한다..




들마루에 수줍게 조개젖과 고개말랭이를 진열한 집에서 잠시 떠들다가 친구가 조개말랭이 3봉지를 사서 1개씩 나누어 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귀절을 나는 이렇게 바꾸어 읽는다..

어디서 무엇을 보며 다시 걸으랴?



청산리 대첩의 장군 김좌진..

장군의 아들의 아버지..탈렌트의 할아버지..

그가 없었다면 만주의 투쟁은 허전했을 것이다..



저 멀리 안면도가 보인다..




이곳의 단점은 땡볕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점심 먹으려다 천장위 도보객 먼지로 포기하고 고민하다가 길을 더가니

마침 3명이 점심 먹기 좋은 그늘을 만났다..







이 죽도 쉼터에 파라솔 그늘이 잇어 빈자리에 누워 잠시 낮잠을 즐긴다..

옆에 족구하는 함성소리를 미스트롯 진 송가인의 메들리로 상쇄 노래에 취해 나도 잠든다..

새가 깨울 때까지..




낚지 마르기 좋게 더운 날이다..

개양귀비도 더 붉게 박자를 맞춘다..







3시 반 배를 기다리기에는 햇살이 너무 뜨겁다...

그늘에 숨었다가 나왔는데 배는 오지 않고..



만사 뜻대로 하는 여의주가 없으니

마음을 뜻대로 조절하는 여의심을 배우려고 한다...




드디어 도착한 배를 타고 10분 나가니 남당항에 역마차가 마중나왔다..

자유시간 1시간 30분 동안 베트남 며느리 인상이 좋은 식당에서 광어회와 갑오징어회로 바다의 향을 만끽한다..




<오늘 걷기> 죽도 둘레길 약 8km 



곤지암 화담숲 걷기를 마치고, 점심 식사후에 곤지암 도자공원을 간다..

이곳에서 광주 왕실 도자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광주에는 왕실에 도자기를 공급하던 사옹원 광주분원이 있던 곳이다..


이곳을 걷는 순서는

곤지암 도자공원 - 왕실 도자기 축제 구경 - 경기 도자 박물관 - 도자기 엑스포 조각공원 - 스페인 조각공원 - 자연생태원 을 돌아 본다..






분청사기와 백자는 조선 시대를 대표한다..

조선 개국에 기여한 성리학자들의 검소, 담박한 취향이 도자기에도 반영된다..




달항아리가 조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 김상옥, 백자부-








하얀 다구로 녹차를 시음하는  다도 행사는 시간상 건너 띄고..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

조선 시대에는 잊혀졌다가 일제에 일본 넘들이 도굴하는 바람에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백자 투각 자기의 가격을 물어보니 1800만원이란다..






도자기로 본 역사를 말해볼까?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국보급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이 땅을 침략하여 도공들을 납치해 갔다..

그 도공의 후예들이 만든 도자기가 19세기에 유럽으로 수출되엇다..

도자기 뿐 아니라 포장지 그림(우끼요에)도 칙사 대접을 받았다

우끼요에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도자기 수출 대금은 신식 총과 군함을 사는데 쓰였다..

그리고 그 총과 군함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결국에는 집어 삼켰다..




다문화 축제도 열리고 잇었다..

역사를 보면, 김수로, 석탈해 등이 다문화의 시초 아닌가? 

화산 이씨는 베트남계, 우록 김씨는 일본계, 명나라 진린 등 중국계는 부지기 수니 원래부터 다문화는 내재하고 있었다..




도자기 솟대가 인상적이다..



흙을 가공하고 열을 가하면 빛나는 자기가 되듯이

사람도 내공이 쌓고 삼매를  거듭하면 도통하겠지..





스페인 조각공원으로 들어간다..






철쭉이 만발하고 조팝이 어우러지는 이 계절이 정말 좋다..

멈추어라..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로..




자연생태원을 지나서 다시 빨간 우체통 앞으로 돌아왓다..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는 늙은 도자기

물이라도 담았으면 좋겠는데

바다를 건너온 유리그릇한테 밀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육자배기나 부른다

애초 투가리로 태어났으면

된장찌게 끓이는 법이나 배웠으련만 

논리적 사고도 없이 열을 올리다가 주둥이만 헐었다

예절이 무슨 소용 있으랴

의례적인 인사 뒤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을 뿐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가마니 속에서 꿈꾸던 기억이 달빛에 바래지면

늙은 도자기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잎들이 부끄러워

눈을 가린 채 세상을 본다


- 박건호, 늙은 도자기의 노래 -






경기도 광주 곤지암 화담숲으로 간다..

전부터 꽃과 단풍이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셔클버스 타고가다 중간에 내려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데, 술 반입금지로 가방조사 한다..



숲 산책코스 1,8km + 숲길 트레킹 2 km + 숲테마원 코스 3.4km 로 구성되어 있으니 잘 계획을 짜서 걸어야 모두 즐길 수 있다..


이러면 다 돌수 있을까?

1) 입구에서 모노레일  1번을 타고 2번 승강장으로 가서 숲길 트레킹 코스를 돌고

2) 소나무정원를 걸어 3번 모노레일을 타고 2번 승강장에 가서 새이야기길을 걸어서 분재정원을 거쳐 내려와 다시 1번 승강장으로 가서

3) 숲속 산책길을 걸어 2번 승강장 까지 올라가서 모노레일 타고 1번 승강장에서 하차..




초입에 민물박물관도 있고..



개미와 베짱이는 놀고..

다람쥐는 챗바퀴 돌고..






하트 뿅뿅 날라가는 다리에서 사진찍느라 정체가 심하고..




이제 철쭉은 봉오리 가득하다..

곧 폭발지경이다..




어제 시들었던 홍도화 여기는 피크다..





수선화와 자작나무의 마리아주가 좋다..





금낭화는 주섬 주섬 금화를 꺼내 애기들에게 주려고 준비하고..



모노레일 2번 정류장에서 신중하게 숲길 트레킹 코스로 가야하는데..놓치고 새이야기길로 간다..




이넘은 직박구리던가?/



황조롱이도 있고..





박새는 박제가 되어 앉아있고..




소나무의 원래 이름이 수리나무였다구??

진시황 때 벼슬이 하사된 나무라 송(松)이라고 한다는 말도 새롭다..

중국에서는 오대부..우리나라에서는 정이품..

벼슬도 높다..






소나무 정원의 자태 좋은 나무들 옮겨심는데 엄청난 돈이 들었겠다..

소나무 이식하여 살리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데..







산에 소나무에 혹처럼 달린 것의 이름이 "부엉이 방구통"이라는 사실..

더구나 행운의 상징이라니..ㅎ







상남 구자경의 인생철학..

사업할만치 하고 남에게 실인심하지 않는 것..



이곳에도 개복숭아가 제철을 만났다..

이 숲은 외래종이 아닌 우리 산천의 꽃과 나무를 심어 좋다..











거북이 아들을 남생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남생이와 거북이, 자라가 다 다르구나..ㅎ



튤립..한 때 투기의 대상이었다는 귀하신 몸..












사돈의 유래도 처음 알았다..

참 유익한 숲이다..ㅎ






운수휴당 뒤 연못에 원앙이 사이좋게 서잇다..





여기와서 느끼는 것은 재벌이 돈을 제대로 썼다는 것..

재벌이 명품 건물을 만들고, 숲을 만들어 후대의 관광지로 이어가야 후손들도 혜택을 본다..





전북 장수군 봉화산 철쭉길로 나섰다..



중간에 인삼랜드에 들렀다..

옆에 정차한 절집 산악회 버스는 설법을 붙이고 다닌다..



모든 형상은 항상 변한다..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다..

나고 죽는 것이 모두 없어진다면 이것이 즐거운 "적멸"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에스컬레이터가 있음직한 계단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장수와 남원을 가르는 백두대간 중의 봉화산이고, 전북 장수군 번암면 동화리로 접근한다..




입구의 산 사면이 철쭉군락지라 1주일 뒤에 왔더라면 장관이었을터인데, 오늘은 꽃봉오리만 가득하다..







계단 길 끝 치재에는 봉수정이 있다..




남쪽 저멀리 푸른 능선은 지리산이다..

우측 노고단에서 좌측 천왕봉까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피지 않은 철쭉 길을 심드렁하게 지나니 반겨주는 것은 진달래다..

요즘 진달래 전성기다..

진짜로 달래면 다 줄듯하다..




정말..금년 꽃구경은 장사로 치면 대박이다..

노래로 표현하자면 "정말 좋았네"


"꽃구경!! 꽃구경이 정말 좋았네..

세월, 그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네"


https://youtu.be/zvItIb8Xxf4






백두대간 답게 능선길이 이쁘게 펼쳐진다..

억새 필때 와도 좋으리...






봉화정에서 진달래 노래 부르며 잠시 논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로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봉화정 옆에 서서 멀리 지리산 능선을 바라본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줄기가 한 눈에 쏘옥 들어온다..


그 백두대간의 줄기가 여기로 연결되는 것이다..



봉화점을 기점으로 후반전은 임도길을 걷는다..

구비 도는 길에서 듣기 좋은 노래..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 설고 낯 설은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 있구나"





신록..그것은 매직..

기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매직..



문열이 다음으로 일찍 태어나니 남보다 먼저 가야한다..

벚꽃의 낙화유수는 동백의 낙화투신과 쌍벽을 이루는 유종의 미학이 있다..







철쭉은 꽃봉오리

진달래는 잇몸 만개

벚꽃은 낙화유수

꽃의 운명은 제 각각

길 걷는 사람의 팔자도 제 각각

흐르는 세월만 한결같으니

부디 단디 동여매시라..




며칠 뒤에 오시라..

붉게 타오르리니..




<오늘 걷기> 장수 봉화산 주차장 - 치재(봉수정) - 봉화산 정상 - 봉화정 - 임도길 - 치재 - 주차장   약 11.5 km

 

 

대구 달성군 비슬산에 참꽃(진달래) 구경갓다..

버스는 유가사 입구 주차장에 섰다..

 

 

 

오늘 코스는 천왕봉은 생략하고 유가사 - 용천사 4거리 - 능선 - 대견사 - 팔각정 - 소나무쉼터 - 유가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코스..

 

 

비슬산  유가사..

이름이 특이하다..

비슬산 ??

1설) 산위 바위 모습이 신선들이 비파나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고

2설)  닭 비슬(벼슬)처럼 높이 솟앗다 하여 비슬산이 되었다는 설

3설) 산 위 바위의 형상이 비둘기처럼 생겨 ‘비들산’으로 불리다가 ‘비슬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4설) 비슬(琵瑟)이라는 한자 속에 임금 왕(王) 자가 네 개가 있어 네 임금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라는 설 등 여러 소수설이 있다..

 

 

유가사??

절의 안내문에는 신라 때 유가종의 총본산 격으로 지어졌다 하여 유가종에서 따온 것 처럼 되어 잇기도 하고,

바로 아래 줄에는 산의 모양이 구슬(瑜)같고 부처의 형상(伽)과 비슷하여 유가사라고 지었다하여 서로 모순되는 설명을 한다..

 

유가종도 유가유식(법상종)과 삼밀유가(밀교) 등 전혀 성격이 내포되어 있어 이 절이 어느 계통으로 출발 한 것인지는 알수 없다..

현재는 조계종 소속이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의 시비가 있다..

그는 고려 승과에 합격한 뒤 산위 대견사에서 22년간 수도하였고, 삼국유사를 구상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 삼국유사 집필은 은퇴후 고향 군위에 가서 집필하엿다..

 

 

시는 포산(비슬산의 옛이름)의 두 성인 도성과 관기를 찬양하는 시다..

 

 

삼국유사에 "포산이성"이라는 설화로 실려있다

 

관기는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짓고, 도성은 북쪽 바위 속에 자리를 잡고 수도하는데, 거리는 10리 정도였다..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서로 자주 찾아다녓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자하면, 산중의 수목이 모두 남쪽을 향해 누워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아 관기는 이 모습을 보고 도성을 찾아갔고

관기가 도성을 부르고자하면 수목들이 북쪽을 향해 누우므로 이 모습을 보고 도성이 관기에게 갔다..

이렇게 살면서 도성은 뒷산 높은 바위에 고요히 앉아 수도를 하였다. 하루는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했다.

관기도 곧 그를 따라 사라졋다..

 

 

 

 

 

소원지 중에 변호사 시험 합격을 비는 것도 있다..

변호사 되기 어렵고, 변호사 되면 사건 수임하기 어렵고..ㅜ.ㅜ

 

 

 

 

 

 

 

 

 

빈 것만이 다가 아니다..차는 것도 포함한다..

그래서 대원을 세우라고 한다..

빈 마음(虛心)과 찬 마음(實心)이 자유자재해야 도인이다..

빈 마음이 없으면 세상 일이 보이지 아니하고

찬 마음이 없으면 세상 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不虛心不知事 不實心不成事)

 

 

여기서는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이라 부른다..

왜?

먹느냐, 못먹느냐가 기준이다..

 

 

 

 

 

동행은 진달래 따먹으며 간다..

그러다 진달래 다 없어지겠다..ㅎ

 

 

용천사 4거리 (마령재)에 올라서 능선을 따라가자, 멀리 참꽃군락지 전개된다..

 

 

 

천주산, 고려산과는 또다른 풍광으로 다가온다..

 

 

 

 

 

일단 능선 한갓진 곳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동행의 머리에 달라붙은 참꽃 한 송이..

밥풀이라도 먹여 보낼 것을..

 

 

 

 

 

 

 

 

조화봉은 달을 며느리로 삼은 것 같나 햇더니 강우 레이더 관측소란다..

 

 

븕은 능선 건너에 천왕봉이 시원한 머리를 내밀고 잇다...

 

 

 

 

 

 

더 멋진 풍광은 대견사다..

일연이 22년간 수도한 절이다..

 

 

 

 

 

 

 

 

이절은 일제가 강제로 페사 시켰으나 다시 중창되어 이제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되었다..

 

 

 

 

 

 

 

팔각정의 원 이름은 망월정이다..

그냥 조화봉을 쳐다보면 달을 붉은 쟁반에 받쳐든 모습이다..

 

 

 

 

 

하산 길 내내 진달래가 배웅한다..

비슬산 진달래는 예절교육 제대루 받앗다..

매너 좋고, 실력(풍광 + 스토리텔링) 좋으니 매년 전국 관광객 만땅 되시겠다..

 

 

소나무 쉼터를 지나 한참 내려오니 처음 알바했던 계곡에 도착..

금년 처음 계곡물에 발을 담가본다..

발이 시리다..허벅지 쥐를 달래기 좋을 만큼..

 

 

 

 

 

<오늘 걷기> 유가사 주차장 - 용천사 4거리 (마령재) - 대견사 - 팔각정(망월정) - 소나무쉼터 - 유가사 주차장  약 11m



아침 식사후 몇분 늦게 나와보니 일행이 모두 사라졌다..

일부는 영국군 묘지 보러 갔고, 일부는 오전 뱃시간에 맞추기 위해 대형택시를 타고 거문도 등대를 보러 갔다..

가이드에게 전화햇더니, 삼호교 넘어 산보 갓다 오라고 심드렁하게 이야기 한다..

그의 말대로, 뱃시간에 맞추어 8시부터 9시까지 거문도 등대를 향해 걷다가 9시가 되면 미련없이 돌아서 오면 10시 30분 뱃시간에 맞출 수 잇을 것 같았다..



고도와 서도를 잇는 삼호교를 건너간다..



멀리 전수월산과 후수월산 사이로 묘한 바위가 보인다..

내 눈엔 꼭 거시기처럼 보인다..

선바위..노인암으로  불린다..




유림해변을 따라 걷다보니 구한말 의병장 임병찬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임병찬...

그의 유적을 정읍 옥정호 부근 대장금길을 걷다가 만난 적이 있다.. (http://blog.daum.net/servan/6350802 )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어머니 묘소 이장을 핑계로 정읍에서 의병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면암 최익현과 연합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체포되어 최익현과 함께 대마도에 유배되었다가 최익현은 단식투쟁으로 죽고 그는 귀국한다..

1910년 한일합방후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 순무총장에 임명한다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전국적인 조직을 구성하다가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되고, 단식투쟁끝에 사망한다..


<임병찬- 최익현 - 이항로> 와  <김유- 기정진> 으로 이어지는 인맥은 구한말 외세에 개항해서는 안된다는 위정척사 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한 사람들이고 의병운동의 구심점들이었다..

임병찬이 이곳 거문도에 유배왔을 때 위정척사파의 한 계열인 김유의 제자들이 있었으니 정신적으로 외롭지는 않앗을 것이다..


걷기를 통해 그의 투쟁지와 순절지 모두를 만났다..

걷기란 길위의 인문학을 연마하는 대학이다.




3도를 잇는 2개의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벽이 될 수는 없다..





고개마루에서 서니 거문도 등대가 고개를 내밀고 유혹한다..

발길이 급해진다.. 



택시를 타면 이 표지판 직전 공터에 내려준다..

여기서는 누구든 모두 걸어가야 한다..




목너머..전 후 수월산을 연결하는 통로..







목너머를 지나면 동백숲 길이 이어진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3월에 오면 장관이겠다..







선바위..

풍광이 멋지다..

수월산 부근 바다에 문필암이라는 30미터 높이의 바위가 잇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문필암은 보이지 않는다..대부분 글에는 등대 앞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 속 바위는 암초이지, 바위 암자를 붙일리 없다..

그래서 난 생각한다..

저 선바위가 문필암이라고..

과거 선비들은 집앞의 삼각형의 봉우리를 문필봉이라 명명하고, 그 아래 대 선비가 나온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거나 자녀들을 세뇌했다..

그러니 보이지 않은 바닷속 바위를 문필암이라고 했을리 없다..




거문도 등대에 도착하니..9시가 되었다..

서둘러 구경을 마치고 돌아야가야 한다..



1905년 거문도 등대가 우리나라 최초로 불을 밝혔다.

물론 일제가 필요에 의해서 했겟지..

그들은 사세보 - 거문도 - 대련으로 이어지는 해저 케이블도 깔았으니..




정자 이름이 관백정(觀白亭)이라 

흰 것을 바라보는 정자??

바로 백도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이다..



백도도 못보고 급히 돌아선다...



환상적인 목너머 포인트를 바라보며 느려지는 발길을 동백이 재촉한다..

뱃시간에 맞춰가야혀..




강풍 예보 속에서도 소정의 걷기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에 동박새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 즐겁기 그지 없다.. 



그 때 급한 눈에 멀리 백도가 나타나 환송의 손짓을 보낸다..

거문도, 백도.. 이름 그 자체가  운율도 좋고 중의적 의미를 담은 환상의 조합이다..

거문도, 백도 방문 소감을  그림을 표현하라면, 아래 그림으로 하겠다..




<오늘 걷기> 고도 선착장- 삼호교 - 유림해변 - 목넘어 - 동백숲길 - 거문도 등대 ... 왕복..약 5km 



거문도 1박 다음날 오후 강풍이 예상되어 10시 30분 배로 나가기로 확정..

결국 불탄봉 트레킹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오전 6시에 고도에 있는 영국군 묘지를 트레킹 하기로 햇다.




거문도에 왜 영국군 묘지가 있을까?

열강 각축의 시대..영국함대가 1885년(고종22년) - 1887(고종 27년)까지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적이 있다..

그 때 주둔햇던 병사의 무덤이다..


그런데, 왜 영국함대는 거문도를 점거했던 것일까?

그무렵 영국은 지금의 미국 처럼 세계 제1의 강국이었다..

그 당시 영국 외교의 주안점은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저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국과 러시아는 흑해, 발칸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립하고 있었고, 극동에서는 조선을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러시아가 조선의 영흥만, 또는 제주도에 부동항을 조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점거 3년전인 1882년 영국함대 베르체 제독이 거문도를 탐사하고 "포트 해밀턴"이라고 명명했엇다

점거 1년전인 1884년에 러시아 군함 4척이 거문도를 방문하엿다..

그 때 거문도의 유학자 귤은 김유와 만회 김양록이 러시아 군함에 올라 중국 통역과 필담을 나누었다..

그때 대화는 "해상기문"이라는 기록으로 전한다..

그 당시 러시아 제독 푸차틴은 김유 등에게 러시아 황제의 국서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단다.. 


그리고 다음해 1885년 영국함대가 거문도를 점거햇다..

영국군은 상해에서 이 섬까지 해저 케이블을 깔아 통신망을 확보하고, 이곳을 포트 해밀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청나라의 조정으로 러시아의 조선에서의 부동항 확보 포기 의사를 확인하자, 거문도에서 철수 한다..



영국 점거시 설치한 테니스장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최초의 테니스장이다..

당구장도 그무렵 최초로 소개 되었단다..

그러고 보니 백도 선착장 가는 길가에 당구장이 보이길래, 속으로 섬사람들이 당구도 즐기는가 ? 했는데..

역사적 사연이 있었구나??




내해 건너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과 우측 끝에 문필암도 보인다..




묘지 가는 길을 유채꽃이 안내한다..

금년에는 처음 만나는 사이..

벚꽃, 진달래만 쫓아 다닌다고 타박도 않하니, 내비양처럼 상냥하기 그지 없다..



바다에는 밖노루섬이 파도에 세수하고 잇고...




돌계단을 오르면 영국군 묘지다..





그 당시 영국군과 찍은 사진 중에 갓을 쓴 양반들은 귤은 김유의 제자일지 모른다...

그들이 중국 통역과 필담을 나누었을까?

전하는 말로는 서울의 영국대사관에서 조선말 할 줄하는 사람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특히 영국인들은 당시 무인도였던 고도를 점거하였고, 또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고, 거문도 주민에게 제값을 치르고 노역을 시켰기에 서로 마찰이 없었다..

나아가 주민들은 영국군이 대포를 쏘아 고기가 다 도망갔다고 주장하여 배상금까지 받아냇다고 한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363100006)



당시 영국인 수병..이 중 누가 죽어 여기에 묻혔을지도...




많을 때는 9기 였으나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그런데 나무십자가 무덤은 1903년에 사망한 군인이란다..

1887년 철수햇는데, 어떻게 1903년 죽은 사람 무덤이 있을까?

1903년 거문도를 지나던 영국 알비온 전함에서 사망한 군인을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열강 각축 시대에 러시아와 영국이 우리의 바다에서 주인행세를 하였고, 그뒤에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사세보 -거문도 - 대련으로 이어지는 해저케이블을 설치하고..고도를 개발하여 일본인 거주지로 삼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온전히 우리의 땅을 잘 지키고 있는가?

G2 사이에서 갈팡질팡..우리 땅에 싸드 설치도 못하고 중국 눈치나 보는 상황이니, 100년전에 새는 바가지가 100년 후에 안샌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묘지를 지나 회양봉 전망대로 올라간다..




동백이 처연히 널렸다..

여기는 2월에 동백이 절정이란다..





회양봉 전망대에서 보니 동도와 서도가 연결되어 이제 3섬은 육지로 오갈 수 있다.. 






유채꽃의 안내를 받으며 내려가는 길에 만난 테니스장..

우리나라 최초로 소개된 테니스장의 명맥을 잇고 잇다..

거문도 갈 때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가라..한 게임 가능하겠다..ㅎ





새로운 국제정세 전환기에 오락가락, 갈팡질팡 믿음직하지 못한 현실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나서서 남해를 둘러본다..ㅎ



거문도 작은 섬에서 국제정세를 둘러보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거문도 등대길로 나선다..



거문도에 내리자 마자 4시경 바로 백도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간다..

1시간 정도 거리에 백도가 있다..




유람선 선장이 가이드역할도 한다..

백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 말한다..

1) 하얀 섬이라는 뜻이라는 설,

2) 수면위 섬이 39개, 수면아래 암초가 60개 합 99개라 일백 백(百)자애서 하나(一)를 빼서 백(白)도가 되었다는 설..

장황하면 그럴듯하게 여기는 것이 뇌의 속성이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유람선은 2층 개방형인데..우리 유람선은 단층 실내형이다..




드디어 저멀리 수평선으로 희끄무레 백도 제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이 상백도, 우측이 하백도..




상백도 정상에 무인등대가 보인다..





하백도 정상은 금강처럼 우람하다..



가마우지가 거문도에서 1시간이나 날라와 하백도로 간다..

지들 딴에도 지도가 있나보다..





백도는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7호로 지정되어 유람선 외에는 200미터 이내로 접근금지하고 있고, 상륙불가..

선상 유람으로 즐긴다..











선상유람은  바위의 모양을 설명하고 전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위 사진 좌하에 보이는 두마리 물개 바위..





시루떡 바위..





좌측에 볏단 쌓아 노적섬..






원숭이 바위



석불바위



거문도에서 날아온 가마우지들의 별장인가 보다..





당당한 서방바위

거시기스럽다..ㅎ





섬을 만들 때 돛자리로 싸매두었던 흔적인가?? ㅎㅎ










거북바위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



지나가는 배에서 두 절벽 틈사이로 잠시 보이는 각시 바위..






진도개 바위..



여기와서 알게되었다..

이곳 삼산면의 상징 사진이 백도의 매바위 사진이라는 것을..


`

40분정도 돌면 유람은 끝난다..

돌아가는 길..



대한민국의 동남단..외로운 백도..

독도 10에 백도 1정도 가끔 기억해 두자...





상백도에서 바라본 하백도 조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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