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춘천 삼악산 걷기후 오른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뼈는 이상이 없고, 무릎에 물이 조금 찼다고 한다..

며칠 주사맞고 고주파치료로 물 말리는 작업을 해서 통증은 사라졌다..

그러나 승천하던 기가 꺽여 이번 주는 관광 모드로 바꿔본다..

그동안 미뤄놨던 관광 리스트를 점검하다가 2곳을 결정했다..

보령 죽도의 상화원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부여 내산면 미암사를 들리기로..



이곳 보령 죽도의 상화원을 어찌 알게 되었느냐고??

미투사건으로 회자되던 전 충남지사 안희정 사건에서 이곳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10시 30분경 도착했더니 만차란다..차를 돌리려는데 나오는 차가 있으니 들어가란다...

이렇게 인기 좋은지 몰랐다..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회랑이 시작되는데, 이름이 신선로다..

나무 마루에 지붕을 얹은 회랑은 비오는 날에도 걷기 좋겠다..





이곳을 지은 사람이 누구일까??

홍상화..본명은 홍국태..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유학을 다녀온뒤 1973년 한국컴퓨터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킨뒤 1987년 사업일선에서 물러나 소설을 쓰기시작한다..

이 섬 부근에서 쓴 소설이 "거품시대"였다..

그리고 이섬을 정원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도원결의의 주인공들도 이 숲에 한자리 차지했다..





방문객 센터에 들려 입장권을 제시하면 커피와 떡 한조각을 제공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반가사유상이 잇다..

해조음을 들으며 해인삼매를 즐기시는지..





바다를 보며 회랑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며칠 다리가 불편하여 근신하는 것도 힘든데..

두 다리를 건강하게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어디 다리 뿐이겠는가?

가수 송가인이 교통사고로 척추에 실금이 가서 무대에 서기 어렵다는데..

건강하게 산다는 거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연못에 연잎이 탐스럽다..

7월이 오면 연꽃구경 갈 일부터 챙겨야 겠다..





고려말 지어진 화성 관아의 정자 건물을 이곳으로 이곳으로 이전했단다..

의곡당 대청에 누워 잠시 한숨자려는데 편액하나 눈에 들어온다..

상화원..

화(和)를 숭상하는 정원,..

 인간, 하늘, 땅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곳을 꿈꾸는 정원이라는 뜻이리라..





<오늘 걷기> 보령시 남포면 죽도 상화원 우측으로 해서 섬 한바퀴 약 2km



원래는 화순 적벽을 가고 싶었는데..지난번에 비때문에 취소되고, 이번에는 인원부족으로 취소...

꿩대신 닭을 찾았는데, 닭 중에서 싸나운 쌈닭같은 길을 골라부렀네(송가인 버전..ㅎ)



버스도 퉁명스럽게 의암댐 부근 길가에 세워 놓고가버린다..

연락부절의 차들이 연신 빵빵거리며 달리는데서 대충 채비를 정리하니 입장표를 사란다..

잉? 입장료라 고라??

2000원을 받는데, 지역상품권 2000원짜리를 준다..

사실은 춘천시 상가에서 2000원씩 쓰고 가란 말씀이다..




오늘 코스는 의암댐 부근 매표소 - 상원사 - 깔닥고개 - 정상- 흥국사 - 등선폭포로 이어지는 코스..

안내에 의하면, 3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그리고 한 귀절이 마음에 걸렸다..악자 들어가는 산 답게 쉽지만은 않다는..

그러나 거리나 시간에 비추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시작부터 분위기 각이 다르다..

바로 돌 너덜길을 오르기 시작한다..준비운동 구간도 없다..헐..




헥헥거리며 좀 오르면 숨돌리는 구간이 있다..

북한강과 의암댐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위안삼기로 한다...

미인을 좋아하면 호위무사의 고통을 감내해야하듯이..



북한강이 예언을 한다..

갱제가 조까 안좋으니 딸라를 많이 챙겨놔라잉~




다시 오르막을 올라간다...

앞으로 닥칠 구간에 비하면 아주 양반길이다..



상원사 대웅전에 가볍게 목례를 올리고 물을 마시고 숨을 돌린다..

수건을 꺼내 배낭에 단다..

단디 준비한다..


문득 대웅전 주련이 퀴즈를  낸다..


覓他不可見 멱타불가견

出入無門戶 출입무문호

促之在方寸 촉지재방촌

延之一切處 연지일체처


찾아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고

창이나 문 없어도 드나드는 것


작게는 사방 한치도 않되는데

커지면 이 세상을 채우고도 남는 것


??

무엇일까??


힌트.. 여기가 절이라는 거..

또 힌트 달라고??


아예 원문을 제시하마..


可貴天然物 가귀천연물

獨一無伴侶 독일무반려

覓他不可見 멱타불가견

出入無門戶 출입무문호

促之在方寸 촉지재방촌

延之一切處 연지일체처

你若不信受 니약불신수

相逢不相遇 상봉불상우

 

본디 생긴 그대로 소중하고 귀한 것

이 세상에 아무것도 짝할 수 없는 것


찾아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고

창이나 문 없어도 드나드는 것


작게는 사방 한치도 않되는데

커지면 이 세상을 채우고도 남는 것


그대 만약 안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만났어도 보지 못하는 것


**

그래도 모른다고라??

삼악산 넘어가면서 "이 뭐꼬" 하면서 가시라..



그게 무슨 힌트냐고??

이사람아!!

이강인처럼 소화제를 씹어서 먹여주는 식의 힌트는 줄 수 없다네..


물을 마셔보면 알지..

찬지 따스한지.. 



그러나, 대웅전 뒤로 나서면 가파른 돌길에 "이뭐꼬" 할 틈이 없다..

내가 장담컨대, 대웅전 뒤에서 정상까지 구간에서 '이뭐꼬" 화두가 흔들리지 않으면 도통한다..ㅎ




정말 숨찬다..

깔딱고개 표지판 앞에서 쉬며 참외를 깍아 먹는다..

그러다 동행과 논쟁이 붙었다..

동행은 표지판을 대충보더니 깔딱고개까지 얼마 남았냐고 묻는다..

내가 여기가 깔딱고개니 잘 보라고 퉁을 놓았다...

그러나, 뒤늦게 알았다..

그 표지판부터 깔딱고개가 시작된다는 것을



바위에 붙은 발판...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에 반갑다..

비금도 선왕산에 본 그 모습 그대로..ㅎㅎ



앞에는 악마같은 암릉이, 뒤에는 천사같은 풍광이..

인생이란 이런 양면의 길을 가는 존재들..

두 가지가 균형이 잡히면 살만하지만, 균형이 깨지면 지옥이 따로 없는 세상이다..





힘들면 돌아보라..

그리고 위로를 받으라..


우리의 인생길에서 위로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트레킹 길에서

트롯을 좋아하는 사람은 송가인의 노래에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은 BTS의 춤과 노래에서




마지막까지 많은 땀과 거친 호흡, 안쓰던 근육과 자세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이 코스는 팜프파탈적이다..

틀림없이 내게 무언가를 요구할 것 같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 아래 붕어섬은 유행에 맞춰 태양광 섬이 되었구나..

정권이 바뀌면 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북한강과 서울가도 사이에서 삼악산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하는 사람들...

무탈하게 즐기는 사람은 산꾼이고, 머리에 쥐나는 사람은 걷기꾼이다..



드디어 삼악산 정상 용화봉에 도착..

여기도 인증샷찍느라 나래비를 선다..


삼악산의 유래..찾아 볼 것없다..

내 생각에는 올라오면서 세번 악 소리 친다 해서 삼악산이라 했을 거라고 본다..



정상 바로 밑 바위에서 점심을 먹고...몇백미터 내려오는 길 다운 길이 보인다..

이름하여 큰 초원..



큰 초원을 지나면 작은 초원이 나온다..

시간 여유도 있어서 벤취에 누워 처음으로 호사스럽게 오수를 청해본다..

자장가로는 송가인의 노래...

정말 좋았네...노래 재목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노래는..

"술잔을 마주 잡고 행복만을 빌었소
그 누가 불러주나 추억의 노래"


그리고

"미련 없다 그 말이 진정인가요
냉정했던 그 마음이 진정인가요"


그래..삼악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벤취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길은 점점 성숙해진다..

흥국사를 지나자 광고인지 하소연인지 대자보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산속에서 자연인처럼 살던 사람도 막내리고 종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아..좋다..

이런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인데..고생 끝에 이런 길을 만난다...

8년의 무명가수로 고생하다가 이제사 때를 만난 송가인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작은 계곡이 성의껏 내려주는 개울에서 삼삼오오 모여 발을 닦고 지난 고생을 씻어낸다...

그리곤 다 잊는다..그 때를 노려 세상 시름도 씻겨나간다..

그것이 길이 주는 매력이다...




등선폭포로 다가갈 수록 점입가경..

이구간은 주왕산의 주왕계곡의 느낌을 풍긴다..



갈수기라 고양이 오줌같은 물줄기지만 폭포의 사열이 이어진다..

여그는 주렴폭포...장마때 오면..ㅎ



비룡폭포는 지금 오줌소태 치료중이다..



옥녀담에 앉아 남은 참외 깍아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 한다..

"선녀와 옥녀의 차이가 뭔지 아나?"

"몰러"

"선녀는 남자를 모르는 여자고, 옥녀는 남자를 잘 아는 여자지"


그럼 선녀과 나뭇꾼을 만나 결혼하면 옥녀가 되는건가?



승학폭포하고 별거 없다..

물들어 올 때까자 꾸사리 참고 살아야 한다..



마침 매표소에서 받은 지역상품권 찬스가 왔다..

2000원쩌리 1장을 아이스께끼 2개와 바꾸었다...

그러나 아이스께끼 즐길 틈도 없다..

바로 메인요리가 등장했다..

께끼와 사진기 사이에서 손이 당황스럽다..



저 아래 계곡 사이로 내려가 들여다 보면 승선제2폭포가 보인다..

갱년기 여인의 모습이다..ㅎ




어떻게 보면 미국 케년에서 만난 엔틸로프의 편린이 보이기도 한다..





승선 제1폭포 위에서 바라보면, 요르단 비경 페드라 계곡의 편린이 살짝 보인다..ㅎ

(나도 홈쇼핑 호스트할만 하겟지 ㅎㅎ)




25억전에 형성된 차돌(규암)이 만든 소품..




금강굴을 지나면 입구..



돼지는 "좋은 날"이라고 덕담하고, 소년은 대금을 불어 축하해준다..,




마누라 도토리 줍던 날 ..혼자 만든 등잔엔 언제 불을 켜나?

입구에서 남은 지역 상품권으로 군밤을 바꾸어 먹는다..



그렇게 외견상 나름 좋은 걷기로 결말이 나는 듯 했는데..ㅠ.ㅠ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여 일어서는데 오른 쪽 무릎이 아프다...

아이고..웬일이랴~



<오늘 걷기> 춘천 의암댐 부근 등산매표소  - 상원사 - 깔딱고개 - 정상 - 흥국사 - 등선고개 - 주차장 약 5KM



통영 앞바다 연화도에 간다..

수국이 만개하였다고 유혹한다..



통영으로부터 1시간 거리..

피곤한 몸 잠재우기 적당한 거리..




멀리 연화도가 보인다..

요즘 섬들의 유행은 다리 잇기..

벽을 쌓는 것보다야 낫겠지..




선착장에 도착..A코스 연화봉 등산코스 팀을 안내해야할 깃발은 단체로 회를 시켜 점심식사하고 간다고 횟집에 앉았다..

그냥 가는 멤버인 내가 등산코스 출발점이 어디냐고 물으니 무성의하게 대답한 것이 반대방향이다..C8

연화사 쪽으로 가다가 동네 분에게 묻고서 되돌아와 횟집거리 끝 팔각정 앞에서 입구를 찾았다..



초입은 시원한 그늘길이다..




선착장 뒤로 반하도, 우도와 최근에 개통된 다리가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니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 신난다..

저기 보이는 섬이 욕지도일껄??




입구서 부터 연화봉 정상까지 1.2kM 정도 거리..

정상에 부처님이 계시다..




아미타대불..

아미타불이 게시는 곳이 서방 정토이니, 여기가 그곳일진저..




정자이름은 운상정..구름위의 정자..

점심 먹는 사람으로 가득찼다..




정상석 뒤로 용머리 바위가 보인다..



배는 고프지만 그늘이 만원인 정상을 벗어난 곳에서 점심식사하러 하산한다..





연화도인의 토굴에 웬 좌상인가?

원래 연화도인의 토굴은 연산군 때 억불정책을 피해온 도인이 세운 이 토굴에서 연화사가 유래한다..

그뒤 이곳에 사명당이 찾아와 수행을 했단다..



마침 이 전망 좋은 그늘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

풍광으로 치면 1급 레스토랑이다..





수국으로 치장한 용머리 바위를 바라본다..

보덕암으로 갈까하다..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섬 도착 시간 12시인데 3시 30분까지 선착으로 오란다..3시간이면 충분히 트레킹할거라는데,

실제 해보니 보덕암들리고 휴식시간 포함하면 4시간을 잡아할듯하다..



출렁다리를 향해 직진한다..

이 섬에 올 때는 목적을 정해야한다..참배냐 트레킹니냐..

아니면 시간을 5시간 정도 확보하던지..







여기서 보니 보덕암 자리가 절경이다..



출렁다리가는 트레킹 코스는 포장길로 왕복하지 않을려면  중간에 전망대 표지판으로 따라 숲길로 가야한다..

멋진 암릉길과 만난다...




막바지에 멋진 용머리바위와 만난다..





용머리 바위를 이어주는 출렁다리를 보려고 모두 기를 쓰고 온다..

다리심이 약하면 선착장에서 출렁다리 투어 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





꼭 출렁다리 걸을 때 심하게 흔드는 사람이 잇다...

제법 어지럽다..

다 국민세금으로 낸 다리 오래 써야지 일부러 흔들 필요가 있나?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촉박해도 수국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갈림길에서 잘 몰라 연화사 밖의 길로 걸었다..

그 바람에 연화사 수국들과 인사도 못했다..





이 섬에 학생 5명이 다니는 큰 학교가 잇다..






<오늘 걷기> 연화도 선착장 - 팔가정 - 연화봉 - 연화도인토굴 - 석탑- 전망대 - 대바위 - 출렁다리 - 용머리 - 연화사 - 선착장 8KM 3시간..



옥천 걷기는 옥천군 안내면 화학리 화인산림욕장으로 간다..

진입로가 좁고 주차장이 작다해서 큰 길가에 주차하고 걸어 들어간다..



복숭아 씨알이 커져간다..

옛날 같으면 솎아 내서 당원물에 담가 팔아도 될 만하다..ㅎ



오..이젠 주차장도 제법 크고, 화장실도 준비되었구나..

입구에서 걷기를 마치고 쉬던 여성이 좌측으로 올라가 우측으로 내려오라고 조언한다..



매실이 익어간다..

동행은 매실을 살 수 없나 궁금해 한다..




접시꽃 당신은 여전히 안녕하시고..

꽃과 나비..덩실 덩실 춤을 추고




멋진 메타쉐콰이어 숲길을 만났다...

시원하고 멋진 길..이 길의 하일라이트..




우린 좌측으로 정상으로 가는데,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반환점에서 정상이 150미터 표지가 있어 더 진행해본다..



요기 조망이 터진 곳이 어설프지만 정상인가 보다..

오솔길은 더 이어진다..

궁금하면 못참는다..더 가본다..



그러나 길은 어디론가 자꾸 이끄는데, 좀 보이스피싱같은 느낌이 난다..

표지판을 좀 해놓으면 좋을텐데..

아니, 좀 길을 연장해 놓으면 어떨까?





돌아오는 길..

엉겅퀴에 집착하는 까도벌..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꽃말에도 불구하고 너 밖에 없다듯한 대쉬..



6월의 여왕 개망초가 등장했다..

망국 시절에 등장해서 영원히 이름이 남은 꽃..

이제 제2의 망국은 없어야 할터인데...




커튼이 드리워진듯한 오솔길을 걷는 기분..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단지 아쉬움이란 가끔 벤취가 있다면 이 고요한 숲에서 오수를 즐기다 가련만..ㅎ







<오늘 걷기> 화인산림욕장 내 숲길 4km + 진입로 왕복 1.4kM + 정상 탐험 1,5km 약 7km

 

 

이 길 이름을 일연테마로드(효행의 길)이라고 한다..

효행의 길이라??

일연은 9살에 출가했다..

고려 시대에 동진출가(어린 미성년 출가)는 어떤 의미였을까?

9살에 구도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출가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식 부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지, 아니면 자질이 잇어 고승 대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기 유학 시키는 뜻으로 출가시켰던지..

둘 중 하나이리라..

 

 

위천 둑방으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꾼들의 발길이 뜸하여 다시 잡초의 세상으로 복귀중이다..

 

 

 

 

일연..

그는 고려 무신정권 시절 22세 때 승과에 수석합격한다.

그는 54세에 대선사가 되고, 78세에 국사에 책봉되었으나, 충렬왕의 재가를 받아 95세의 노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인각사에 머물며 노모를 봉양한다..

 

 

9살에 출가할 때..그의 어머니는 28살쯤 되었을터..

부자, 모자의 관계를 보면..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면 그 사모의 정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공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3년상을 주장했듯이..

요즘처럼 부모가 80이 넘도록 살며 치매로 간병까지 하면 사모의 정은 얉어질 밖에..

 

 

호남의 전설적인 진묵선사는 모친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모친의 묘소에 향화가 그칠 것을 염려하여 묘터를 잡았는데

지금은 성모암이 위치하여 묘소를 돌보는 곳이 되었다.

 

 

 

 

9살에 광주 무량사로 출가한 소년은 양양의 진전사를 거쳐  대구 달성 비슬산 대견사 ( http://blog.daum.net/servan/6351234 )에서 22년간 수도하면서

삼국유사를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였고, 말년에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게 된다..

 

 

그의 삼국유사에는 효도에 관한 설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개인적인 정서에 기인하는 바가 컸으리라..

 

삼국유사 진정사 효선쌍미 이야기는 일연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용 같다..

http://www.jikjimuseum.org/wind/content.asp?pWID=06&pID=17

 

 

 

엉겅퀴에 나비..

까칠해도 친구는 있다..ㅎ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내 논은 군기가 잡힌 신병들의 행진처럼 당당하다..

 

 

절앞 위천 건너 학소대는 천고의 학을 품고 있음직하다..

한암이 말햇지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기 보다는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되리라"

일연이 삼국유사를 남긴 뜻은 말 잘하는 앵무새를 벗어나려 함이라.. 

 

 

 

 

오라..화산 기슭 인각사로 오라..

하늘 아래 두갈래 세갈래로 찢긴 겨례가 아니라 한겨례임을, 옛 조선의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한나라엿음을

우리 자손 만대에 소식 전한 그이 보각국사 일연선사를 만나뵈로 인각사로 오라..

 

 

시대에 따라 표현하는 그의 모습 달라도 그의 정신이야 변함이 있으랴..

 

 

 

기념관에 글씨 한폭...

삼국유사 혜통강룡(惠通降龍)에 나오는 찬시다..

 

山桃溪杏映籬斜(산도계행영리사) : 산도(山桃)와 계곡의 살구가 울타리에 비쳤는데
一經春深兩岸花(일경춘심양안화) : 한 줄기 길에 봄은 깊어 두 언덕에 꽃이 피었도다
賴得郞君閑捕獺(뢰득랑군한포달) : 다행히도 낭군의 힘으로 한가히 수달을 잡아
盡敎魔外遠京華(진교마외원경화) : 마귀와 외도(外道)를 모두 서울에서 멀리했도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들고 경주에 가면, 지금도 그시절의 지명과 설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신라의 기이한 향가를 알게 되엇으니 그의 은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왜 삼국유사를 썼는가??

늙은 70대 후반 인생의 말미에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태어낫을 때 무인정권 시대였다..정변과 내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몽고의 30년 침략이 이어졌고, 무신정권을 몰아내고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였으나 나라는 몽고의 부마국이 된 시절이었다..

그 때 그는 나라와 민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햇을 것이다..

한겨례, 한 나라 시절의 종교적 기적과 미풍양속을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 걷기> 인각사 - 전망대 - 정상 - 일연공원 - 위천둑방길 - 학소대 - 인각사 약 7KM 



군위 걷기에 나섰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마지막 거처..

그는 왜 이 곳을 열반지로 삼았는가??



경부 - 당포 -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동군위 IC로 나가서 도착한 곳...인각사..

인각..기린의 뿔...

절 부근 화산의 형상이 기린을 닮았고, 절터가 기린 뿔의 위치란다..

이 절의 기린 같은 존재가 일연이다..




신라시대 부터 뿌릴 두고 있는 이 절은 고려시대 그 위상은 구산 선문의 앞자리에 위치했다..

극락전 주련 시..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 (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 (염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 (육문상방자금광)


아미타불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마음 머리에 붙여(화두삼아) 간절하게 잊지마라.

생각이  다하고 다하여 무념처에 이르면

육문에서 항상 금빛 광채가 나리라..


일연..

그는 삼국사기와 쌍벽을 이루는 삼국유사를 써서 고조선의 단군과 신라의 향가를 우리에게 전해준 고마운 분이다.



국사전의 주련시..


청백가풍직사형  淸白家風直似衡   청백 가풍은 저울과 같으니

기수고하낙인정  豈隨高下落人情   어찌 높고 낮음을 따라 인정에 떨어지겠는가?

칭두불허창승좌  秤頭不許蒼蠅坐   저울엔 날파리가 앉는 것도 허락치 않으니

사자경시실정평  些子傾時失正平   조금만 기울어도 평정함을 잃는다네


0.001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자세로 수행해야 도를 깨닫는다는 말일테지..



일연국사의 부도탑은 원래 자리에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비각은 파편만 남았다...

원래는 서성이라고 불리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귀한 것이라, 중국의 사신도 탁본을 얻어 가곤 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비석을 자빠뜨려 탁본을 떠가면서 파괴되기 시작해서 현재는 이런 몰골이 되었다..



둘레길의 입구는 이 비각 뒤편에서 시작된다..



산길을 800미터 쯤 올라가야한다..



초반을 제법 잘 단장된 길이 전망대  정자까지 이어진다..




정자에 앉아 난자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ㅎ

잠시 쉬면서 군위호바라본다..

위천을 막아 만든 댐..

댐 아래는 일연공원이다..




위 마을이 우리가 지나갈 곳이다..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계단세례가 시작된다..



별 볼일을 없는 정상을 위해 이런 계단을 만들었을까 싶지만

이 계단이 없으면 길을 내기 어려웟겠지..

정상 지나서 시작되는 내리막을 보면 안다..



연결 고리로서의 내리막을 참고 가면 원 부도탑지에 도착한다..

원래 여기 있던 부도탑을 현재 자리로 옮겨놓고 여기는 복사품을 세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던 그 마을을 지나간다..

외양간 소들이 신기한듯 바라본다..




위천을 건너면 일연공원과 효행길 2코스(묘소길)가 이어진다..

위천 다리 밑에는 평상을 설치해놓고 대여하는 곳이 있어 사람들이 몰려든다..

위천 점용허가는 받고 사업을 하시는지?? ㅎ






일연 국사의 모친 묘소 가는 길 입구에는 "효"자가 크게 써있다..

그는 국사로 책봉된 78세에 95세의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온다..

봉양기간은 1년 남짓 모친은 9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연공원이라는 한자 중 앞 3자는 왕희지의 글씨로, 마지막 원 자는 왕희지 글씨를 구하지 못해 송나라 명필 황진경의 글씨로 집자해서 만들었단다..





올갱이 잡는 모녀의 뒷모습이 정겹다..



5월의 열정 장미터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작동않는 인공폭포와 에스로드..




그네 다리로 건너보고..

더위를 피하려고 정자로 갔으나 지저분하던지, 지붕이 플라스틱이라 열 차단이 안되어 그냥 지나오려니 6월의 더위가 어깨를 누른다..

위천 다리 밑 유료 평상이 유혹한다..




이제 위천의 둑방길을 따라가면 인각사가 나온다...<계속>



전남 신안 앞바다 섬 비금도로 간다..

우리나라 섬이 3000개인데, 신안군에는 그 중 1004개의 섬이 있단다..




요즘 신안군에는 9개의 섬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연결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인데, 그 중심이 되는 다리가 천사대교이다..

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10.8KM의 다리인데, 이 다리가 완공되면서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자라도, 추포도, 박지도, 반월도 등 7개섬이 육지로 연결되었다..

우리는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 선착장에서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탔다..





암태도에서 비금도까지는 배로 35분 거리..

배전에서 송가인의 노래를 듣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세월, 그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맹금조가  날아오르는 섬 비금도..




오늘 우리는 비금도 그림산 - 선왕산 - 다누넘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약 5KM를 걷는다..




길 초입에 이쁜 분홍꽃이 가득하다.

분홍낮달맞이꽃이란다..멕시코 원산의 귀화식물..






길을 가다가 돌아보면 바다는 웃는데, 고개를 들면 산은 심각한 표정이다..





그림산 가는 길은 슬슬 스릴의 시동을 건다..






그림산 아래 그림 같은 경치를 구경하며 잠시 목을 축인다..






투구봉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그림을 연출한다..



신경써서 올라갈 계단이 많다..







그림산 정상직전에 두가지 코스가 기다린다..

좁은 문과 우회로..

좁은 문으로 도전한다..배낭멘 남자는 통과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는 것처럼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도중에 내려와 우회로로 올라간다..




2백미터 급인데..무슨 금강산 오르는 것 같다..

여자로 치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급이다..작지만 속이 알찬 여자..ㅎㅎ



그래서 그런지..굳이 좁은 문을 비집고 정상으로 오르는 시도가 집요하게 이어진다..ㅎㅎ



잠시 바람이 자는 틈을 이용해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아름다운 목교로 치장한 투구봉으로 향한다..










투구봉 스스로도 멋있고, 투구봉에서 보는 풍광도 시원하다..




이제 우리는 능선을 따라 선왕산 정상으로 향한다..




섬의 산의 모습이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닮앗다고 하여 섬이름이 비금도가 되엇다..

선왕산은 원래 서낭당이 잇는 산이라는 서낭산으로 불리다가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단다.. 





정상으로 가는 암릉에는 이럼 철근 발판이 많이 잇어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선왕산에 올랐다...

작은 여자에게 밤새 시달린 느낌이랄까? ㅎㅎ



또다시 암릉길을 걸어내려가면 하누넘해수욕장이 보인다..




하트모양의 해수욕장이라는데, 내눈에는 별로 하트같지 않다..




하누넘??

"하늬바람이 넘어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고, "하누와 너미의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던가??




하트 해변에 하트를 그려놓고, 발을 씻는다..

참 좋은 길이다..



뒤돌아 서서 불러본다..

"선왕산아..선왕산아...너만은 변치 말자"'

송가인류의 창법으로... 




<오늘 걷기> 상암주차장 - 그림산 - 투구봉 - 선왕산 - 하누넘 해수욕장 약 5KM 



해수욕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가면서 원평해수욕장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달린다..

차가 달릴 정도로 단단한 모래사장..




그래도 달랑게는 구멍을 뚫고 모래알갱이를 만들고..바람은 날라가서 모래사구를 만들는 역사는 태고이래로 진행되고 있다..



장승들이 모처럼 활짝 웃는다..

"좋앗어?  잘 걸은겨?"  

"그럼, 널리 알려줘.."





대관령 옛길 걷기에 나섰다..

차는 대관령 하행휴게소에 도착..

이곳은 선자령 둘레길, 대관령 옛길의 출발점이다..



장식용 풍력기가 맞아준다..

돌지 않는 풍차..

풍력 발전, 태양열 발전..말은 그럴 듯하지만, 태반이 국고 손실만 끼치고 산림훼손의 피해만 주는 현실이다..

정말 적지에 효율적인 시설을 해야한다..

국민 세금을 피를 수혈하듯 해야지 아버지 돈 축내듯이 하면 안된다..이넘들아..




작은 시내 봄물에 가마우지가 목욕하던 길..

등나무 한가지 꺽어 비스듬이 메고 가네...




대관령 양떼 목장을 지난다..

양떼도, 사람떼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다 때가 있나보자..




순이같은 철쭉이 피엇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하고 고운 우리 순이처럼..



붉은 병꽃도 환영대열에 나선다..




대관령 국사 성황당에 사람이 몰려들고, 방송국 기자도 보인다..

오늘이 강릉 단오제 행사가 있는가?




산신당에 주석한 대관령 산신은 누구신고?

의외로 김유신 장군이다..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난 허균이 쓰기를,

"‘신라 장군 김유신은 어려서 명주(강릉의 옛 지명)에 유학하여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다.

그는 강릉 남쪽에 있는 선지사에서 명검을 만들었고, 그 신통한 검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사후에 대관령산신이 되어 이 지방을 보호해 주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대관령과 송정의 모든 소나무를 군사와 노적가리로 보익하여 왜군이 근접치 못하게 했다."


화부산사에 있는 ‘순충장렬흥무대왕화산재기공비’에,

‘말갈이 신라의 북변을 침입하여 괴롭히므로 문무왕은 원년(661년)에 김유신에게 명하여 말갈을 정벌케 했다.

이에 김유신은 하슬라주(강릉)에 출병하여 화부산 아래에 주둔하고, 오대산에서 무기를 만들고, 군대의 훈련을 팔송(송정동)에서 시키는 등 무력을 크게 과시했다.

이에 말갈이 두려워 도망치고 말았다. 김유신을 보자마자 말갈이 도망갔으므로 현지 주민들은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김유신의 공덕을 잊지 않았다.’



그럼 옆에 행사를 진행하는 성황사 안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

신라 하대의 고승 범일 선사다..


그는 강릉 학산리 출신으로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경주에서 구족계를 받고 흥덕왕 6년(831)에 당나라로 건너가

마조선사의 제자인 염관 제안선사로부터 “도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부처나 보상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이 바로 도”라는 말에 깨우침을 얻는다.

6년간 염관의 밑에 수행하다가 그 문하를 떠나 석두 희천의 제자인 약산 유엄(751~834년)을 만나 선문답을 나누기도 했다.

845년 무종의 법난(회창파불)이 일어나자, 범일은 섬서성 상산의 산속에 숨어 지내다가 광동성 소관으로 가서 혜능대사 진신상에 참배하고, 847년에 귀국했다.

16년만이었다.

그는 충남 대덕 백달산에서 수행하던 중, 명주(현 강릉) 도독 김공의 요청으로 강릉 사굴산에 산문을 열었다. 이때가 문성왕 12년(851년)의 일이다.

그는 굴산사에서 40여 년을 보냈으며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의 부름을 받았지만, 왕실에 나아가지 않았다.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가 됐으며, 동해 삼화사와 강릉 신복사를 창건하고 양양 낙산사를 중창하여 영동 지방 선종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이 지역을 교화하는데 힘써 영동지방의 정신적 지주가 됐으며, 진성여왕 3년(889) 굴산사에서 입적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범일선사를 범일국사로 부르고 대관령 국사성황신으로 추앙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강릉단오제의 개막을 고하는 국사성황신에 대한 제의가 11시경에 시작되어 끝나고 준다는 떡을 기다릴 새가 없어 그냥 길건너 옛길로 올라선다..



중턱에 오르면 선자령둘레길과 대관령 옛길로 갈라진다..



대관령..

영동과 영서를 구분하는 분수령..

후삼국 시절 궁예는 원주 양길의 부하로 일군을 이끌고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은 점령하고 북상하여 강릉 지역 당시 명주의 김순식의 항복을 받는다..

그리고 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태백산맥을 넘어 화천, 금화, 쇠둘레(철원)지역을 점령하여 자신의 근거지로 삼는다..

그뒤 궁예가 퇴출되고 왕건이 왕으로 추대되자, 명주 장군 순식은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왕건측의 설득으로 고려에 귀순하여 왕씨 성을 하사받는다..

그가 궁예나 왕건을 돕기 위해 출병한 길이 이 길이다..

그 도중 대관령에서 제단을 만들고 승전을 기원하였다..

이것이 국사성황당의 시초였을 것이다.. 




대관령 구름이 처음 걷히니

꼭대기의 눈이 아직도 남았있네

양 내장 같이 구불 구불한 산길이 험난한데

새길같은 역정은 멀기도 하네

늙은 나무 신당을 에워싸고

맑은 안개 바다 산에 접했어라

높이 올라 글을 지으니

풍경이 사람의 흥을 돋우네..


- 김시습-



김시습의 시가 거짓이 없구나

구불 구불하고 새길 처럼 좁고 험한 길이 이어진다..




새가 다닐 험한 길은 하늘에 걸렸으니

이길 가고 잇는 나도 반공중을 걷는 형국이다

연이은 산들은 눈이 내려 흰 빛이고

물은 붉은 해에 씻기어 붉게 비친다

훤히 트인 바다는 아득히 천리에 뻗었고

구름은 한눈에 시원히 트였구나

평생에 품엇던 온갖 뜻이

오늘에야 긴 바람을 타는구나..


- 한원진 -


한원진은 누구인가??

남당 한원진(1682- 1751)은 송시열- 권상하를 잇는 주자학자이다..

그는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주인장 외암 이간과 '인물동성론" 논쟁을 하였다..

즉 그는 사람과 동물은 서로 본성이 서로 같은가, 다른가? 하는 논쟁(호락논쟁)에서

그는 다르다는 인물성이론을 주장했고,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팀을 호론(충청도)이라 했다..

이런 입장은 후일 조선과 금수와 같은 일본은 근본이 다르다는 위정척사론으로 이어지고, 홍주(홍성) 의병 봉기의 토양으로 인식된다..




반정주막터..

영동고속도로 뚤리기 전의 국도가 지나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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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인다..




반정..길 절반이라는 의미..

강릉 쪽 초입인 구산역에서 고개의 횡계역까지 절반 지점인 이곳에 주막이 있었다..



단원 김홍도가 대관령의 그림을 그렸고

율곡의 어머니 신 사임당이 이곳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 


`

장가온 이원수와 19세에 결혼하여 주로 친정에 살다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다녔고 33살에 율곡을 출산하러 친정으로 가서 오죽헌에서 율곡을 출산한다

38살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려 고향을 떠나는데, 이곳에서 이르러 "<유대관령 망친정> 대관령에서 친정을 바라보다"라는 7언절구의 시를 지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이따금 머리를 들어 북촌을 바라보니

 흰구름 떠있는 곳에 저녁 산만 푸르네


신사임당은 33살 때 낳은 율곡 이이가 15살 때 병들어 48세에 죽는다..

율곡은 3년상을 마치고 방황하다 19세 무렵에 금강산에 들어가 중이 되엇다가 1년만에 환속한다..

그리고 자경문을 집필하고, 퇴계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성리학자를 매진하여 대가가 된다..


***

대관령 옛길은 몇 구비일까?

예전에 율곡이 강릉 외가에서 한양갈 때 곶감 100개를 챙겨 1굽이 돌 때마다 빼먹엇더니 대관령을 다 넘고 보니 곶감이 1개 남았단다..

그래서 아흔 아홉구비라고 한다..



예전엔 시인묵객들의 영감을 주던 길
이제는 시시덕 거리며 걷는다
시인의 시대는 가고
예능의 시대가 되었으니
한 귀절 절창을 찾는 것은
올드트롯을 부르는 것과 같구나
그러나 누가 알랴
마지막 날에 가인이 부르듯
심금을 울리는 절귀 한소절 남길지도..




국사성황당 > 강릉 쪽으로 진행하면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걷기 어렵지 않다..

일행이 말한다..

"거꾸러 걸어야 운동이 되겟네.."





물 좋은 계곡을 만나니 너 나 할 것 없이 신 벗고 발을 물에 담근다..





조선왕조 500년 tv 드라마 작가 신봉승의 시에도 대관령 아흔 아홉구비가 나온다..



주막이 나온다..

주모!! 하고 부르고 방을 들여다 보니 주모가 방안에 앉아있네..



평민들은 앉아서 술먹고 수다떨고, 칸막이 옆에 양반은 책을 읽고 잇네..

실제 그랬을까?






길은 개울 옆으로 이어진다..

맑은 물, 흰 돌, 빛나는 해...500년전에도 그랫으리..






오..반가운 표지판..전에 대관령 자연휴양림에서 잘 때 아침 산책 나왔던 길이 보인다..

http://blog.daum.net/servan/6351033 참조..



산길이 끝나는 곳에 막걸리 집 유혹이 강렬하다..

아이스 께끼 선착순..이라는 말에 얼릉 하나 집어든다..

세상에 제일 맛있는 것은 뭐든 공짜로 먹는 거다..




길은 차도로 이어진다..

이 코스의 종착점은 보광리로 되어 있다..



5월 장미가 매혹적이다..

스스로 이쁜 걸 안다는 듯이..

미스트롯의 두리공주와 겨루어도 될 것같다..






장미의 망상을 부숴주는 작약의 황홀함..



소나무 위에 달린 엄청큰 벌집..목청이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향기가 풍기는 아까시..

벌들의 일터도 이젠 슬슬 문닫을 시간이 되어간다..

아까시, 장미가 스러지면 6월의 여왕 개망초가 등장하겠지..ㅎ



보광리에서 대관령을 바라보니 풍력기는 아직도 해찰하고 있다..






<오늘 걷기> 바우길 2구간( = 아리바우길 6구간) 중 대관령 옛길 1코스 - 14.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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