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2일째..아침 10시 30분 장승포항에서 지심도 가는 배시간 전에 공곶이 길을 걷기로 했다..

7시 쯤 나갈려고 했는데, 동행이 노는 것이 고되다며 툇짜를 놓네..

타협 끝에 8시10분에 출발..



8시 30분경에 예구마을에 도착..

공곶이 길을 찾아 허둥지중 올라간다..








공곶이로 가는 해안길..

속닥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배시간 때문에 노부부가 사는 수선화 농장에는 들리지 못햇다..

어차피 동백도 피지 못했고, 수선화는 3월에나 볼 수 있으니..

손쉽게 마음을 달래고 돌아선다..



전망이 터진 곳에서 바라보는 해금강이 아름답다..




공곶이 남녁에 내도가 가깝다..

내도 뒤에 있는 것이 외도..




언제 다시 오마..

동백과 수선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날...


***

추신: 3월 17일에 다시 와서 수선화를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후기 http://blog.daum.net/servan/6350822 참조



9시 서둘러 장승포로 출발한다..






이 곳은 천주교순례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차홍포해안길을 걷고 4시쯤 도장포에 도착했다..

언덕의 풍차..바람의 언덕이다..




그냥, 감사해요...

응주소주 이생기심...머무는바 없이 내는 그 마음이다..



바람의 언덕 앞 바다산책로를 걷다가 건너편 산을 보다가

얼굴을 발견했다..

부처님 얼굴?? 그럼 와불산??

숙소인 거제 휴양림을 떠나는 날 그 얼굴의 정체를 알게 되엇다..



이 얼굴은 부처님이 아니고. 노자님이다..

왜냐고..이산이 노자산이니까..

코부분이 마늘바위다..ㅎ




바람의 언덕에 바람이 없다..

풍차가 놀구잇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상쾡이가 비웃는다..

"느그 중에 풍차 돌아가는거 본 적있나?"




바람의 언덕 뒷편으로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잇다..



제법 가파르게 올라간다



지난 겨울 워낙 추워 동백이 아직 피지 않아 산길은 쓸쓸하다..


***

추신 : 3월 17일 다시 와서 동백꽃과 함께했다..

동백꽃구경이 궁금하면 http://blog.daum.net/servan/6350823 참조





숲사이로 해금강이 보이는데, 다리힘이 달려 더이상 가기를 멈춘다..



다시 돌아온 바람의 언덕..





초보차를 뒤로하고 신선대로 간다..

멀리 여차홍포 해안길과 대병도가 보인다..




신선대에는 사람이 북적인다..



해금강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

해금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서로 말을 잊엇다..









요즘 만개했어야할 동백이 귀하게 하나 피었다...

피곤한 다리 피로를 풀어줄 진미를 먹으로 갔다..




봄도다리쑥국..시원한 진국이다..



저녁을 먹고 숙소인 거제자연휴양림에 갔다..

관리인이 금년 처음 채취한 고로쇠를 2병 선물한다..

방을 뜨겁게 데우고 고로쇠를 물을 마시다 자다가 깨면 다시 마시고...

예상못한 즐거움에 동행도 흐뭇해한다..




여차해변으로 가던 중 학동 몽돌해변 부근 식당에 들렀다..

점심메뉴는 겨울 특미 물메기탕..참 시원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 입맛을 다셨다..

거제여행 앱을 깔았는데, 거기서 할인구폰 업소가 바로 옆에 있다는 메시지가 떠잇는 것을 뒤늦게 보았기 때문이다..

5% 절약의 기회를 놓쳤다..ㅎ



든든하게 먹고 여차해변으로 간다..

언덕에서 풍광에 반해 차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문득..스페인의 묵시아가 생각났다..




저 섬들이 병대도다..




여차해변으로 내려가 몽돌의 속사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이렇다..

'잘 될거야, 할수있어!"




참 아담한 포구다..

몽돌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홍포마을로 가는 길이 해변따라 이어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무지개길은 1018번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일부는 포장, 일부는 비포장이다..



가다보니, 산길도 보인다..

체력을 생각해서 그냥 도로를 걷기로 했다..



문제는 비포장길을 달리는 차량이 많고 먼지가 날린다는 거...



고개마루에서 바라보는 여차해변은 멋지다..



1차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병대도..밑에는 소병대도..




섬들을 바라보며 걷는 이 길이 오늘의 하일라이트...



어떠한 사진기로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이다..





이 해안에서 상쾡이를 볼수 있단다..

상쾡이??

쇠돌고래과의 고래...




홍포전망대로 가는 길...병대도와 숨바꼭질하며 유유자적 걷는다..




눈 푸르게 바다를 바라본다..

저 작은 섬에도 낚시꾼이 서있다..

누구에게는 다정한 친구가 되는 섬이 있다..



<이번 걷기> 거제 여차해변 - 홍포전망대  왕복 약6km


 

 

원래 계획은 첫날 거제 칠천량해전기념관 - 김영삼생가 - 옥포해전기념공원 순으로 거제 동부지역을 돌려고 했는데,

설날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해서 거제 서부지역을 돌아 여차해변길과 바람의 언덕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 바람에 지도로 거제 서부지역을 살피다가 청마생가와 문재인생가 표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두곳을 먼저 방문하고 점심후에 본격적인 걷기를 할 계획을 세웠다..

 

 

청마 유치환...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 중 몇편은 암기할 정도다..

 

 

 

이 시는 부인에 대한 시가 아니고

청상과부가 된  시조 시인 이영도에 대한 사랑시란다..

그는 이영도에게 5천통의 연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청마 사후 200통의 편지를 골라 1967년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펴냈다.

 

 

 

그가  부인 권재순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쓴 시가 있다..

 

병처(病妻)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

한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 가다

이 앞에서는 전 宇宙를 다 하야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

이영도 시인이 서간집을 내자, 유족들이 들고 일어났으나, 부인은 청마를 위해 소송을 절대 허용하지 않아서 결국 유족들이 참고

그 책의 출간을 묵인해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왕고모집 제삿밥을 먹고 시인를 낳았다..

아버지는 유학을 공부한 한의사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돌메...

아마 뒷산 산방산을 보고 지었겠지??

산방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리..

 

 

 

생가에서 산방산이 우뚝하게 보인다..

생가 지붕에 웬 고무신??

영구가 왔다 갔나??

 

 

 

시간있으면 산방산을 거쳐 산방산비원을 구경하고 내려오면 좋겟다..

 

 

역시 예상대로 청마기념관을 잠겨있어 그대로 떠났다..

다음 장소는 문재인 생가..

 

 

그의 아버지는 6.25 직전 흥남시청에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1950년 12월 23일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가족과 함께 남쪽 거제도로 피난내려왔다.

구체적인 장면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된다..

현재 그의 이모가족은 북한에 살고있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때 어머니를 모시고 상봉한 적이 있다고 한다.

 

 

1953년 1월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오래 살지 않고 부산으로 이사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산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그의 출생지 주변은 어수선하고 어디가 생가터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다..

대충 이 부근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대통령으로 그의 임무가 끝나고 평가가 나와야 정비를 시작할 모양이다..

어찌보면 그게 맞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저 안쪽의 초록색 지붕이 생가란다..

당시 산파의 집이고 지금도 자녀들 소유인데, 관광객의 접근을 원하지 않는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는 경희대에 진학하여 1975년 유신반대 집회를 주도하다가 구속되고 집행유예 선고 받고 학교에서 제적된다..

군입대하여  특전사에 근무하다  제대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에서 노무현의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시국사건의 변호를 자주하엿다

그러나 노무현이 김영삼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할 때 그는 거절한다..

하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비서실장으로 도왔고, 그의 죽음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논두렁의 지령이라도 타고나야 면장이 된다는 우리의 옛인식에 따르면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산의 정기를 타고 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출생지 뒤에는 선자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그의 업적의 평가는 임기 뒤로 미루자

그가 대한민국의 중흥시조가 될지, 제2의 노무현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

<2022.3. 16. 추가>

드디어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고 문통의 임기가 끝나간다.

이제 평가의 시간이 돌아왔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홍준표에게 어느 대학생이 문통 칭찬을 하나 해달라고 요청했다.

" 쇼는 참 잘 해요.."

짧지만 명쾌한 분석이었다.

문통은 입으로는 소통을 강조했지만, 실제는 "쇼통"으로 일관했다

 

같은 당 소속인 김두관의 평가를 보자

" 노무현의 원수를 갚는다는 미명 아래 '증오의 대오'를 '정의의 대오'로 착각하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증오를 정의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 진영논리에 집착하다보니 내로남불, 조로남불이 되더니 아무말 대잔치로 끝났다.

- 미워하는 김학의는 수사하라고 지시하고, 추종 검사들은 불법출금하고 기소했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 총애하는 조국을 수사하자, 마음의 빚을 졌다며 노골적으로 편을 든다.

 

-탈원전정책의 손바닥 뒤집기 

영화 판도라 탓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데, 어째든 집권하자마자 탈원전을 선언하고, 불법절차로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등 무리하게 원전생태계를 붕괴시키더니, 대선직전에 갑자기 60년이상 사용할 에너지라면서 지연된 원전을 조속 건설해달라고 지시한다.

뭐임??

초기의 탈원전을 정책을 폐기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오류와 오도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의 말이 없다.

 

https://youtu.be/HnNlQpnm9Mc

 

-- 갈라치기 외교

북한, 중국에 대해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군사훈련도 눈치보느라 제대로 못하면서

"삶은 소대가리 같은 소리"한다고 면박만 받았다.

대일외교는 갈라치기 수법으로 반일만 조장하고, 반일장사로 뒷돈 챙기는 사람만 득세했다. 

 

- 지시경제의 파탄

소득주도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설정하고 밀어부친다.

가격을 정부가 책정하는 지시경제 정책은 알묘조장처럼 성공할 수가 없다.

 

-대북정책의 실상

 문통 집권기간내 한미훈련을 중단하고, 유엔대북결의안에 모두 기권했다.

  중국 송나라가 금나라 모시듯 햇는데, 임기말 북한은 몰래 업그레이드한 ICBM을 발사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송나라가 금나라에게 뒤통수 맞은 것과 똑 같은 구조다..

  문통의 라이벌 홍준표가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속지마라 일갈하자, 문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문통은 홍준표가 한 이말에 대답해야 한다.

 "두번 속으면 바보, 세번 속으면 공범"

자, 이제 스스로 바보인지, 공범인지 대답해야 할 시간이다. (2022. 3. 25. 추가분)

https://blog.daum.net/servan/6351630

 

- 대북인권결의안 제안국에 4년째 불참

  변호사 시절 인권변호사인양 포장했지만, 실상 북한 인민에 대한 인권에는 냉담하게 반응햇다.

  탈북인들을 강제북송한 사안은 두고 두고 기억될 것이다.

 결국 그의 인권관념도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고, 편면적, 정파적임이 드러났다.

 

- 대통령 가족 비리를 감시할 특별검찰관을 임명하지 않다.

   박통2도 임명했는데..

   임기말에 부인의 옷값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

그는 취임초 80%의 지지율과 총선이후 170석의 거대여당을 이끌면서

탕평정치는 커녕 노론을 위한 세도정치, 진영논리, 갈라치기 정치를 일삼다가 몰락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새 당선자에서 통합의 정치를 요청한다.

얼굴이 두꺼운건지, 기억력이 부족한건지..

 

그는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지만

노무현의 국익 우선적 정치(한미FTA, 제주 강정항 해군기지 건설, 이라크 파병)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철저히 촛불혁명의 공신 취급을 원하는 민노총, 운동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도정치의 구현자로 전락했다.

노문현의 말기에 그의 지지세력이 이탈했지만, 문재인의 지지세력은 여전히 탈레반처럼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셀프로 1억짜리 훈장을 부부가 같이 받기로 한다..

"관례대로"

관례대로 한 전임자들을 횡령, 배임으로 처벌했으면서..ㅎ

 

결국 무수오지심에서 시작하여 후안무치의 내로남불, 조로남불이 되더니 아무말 대잔치로 끝났다.

 

문(moon)이 밤새도록 비추었지만, 사람들은 따사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달에게 해가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 열을 낸적이 없소, 그저 남의 빛만 반사했기 때문이요"

 

그의 임기말에 "문폴(moon fall)"이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문폴..달의 추락..

참 절묘한 우연의 일치다..

 

***

(2022. 5. 30. 추가)

그의 임기 말기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위장탈당, 회기쪼개기 등 꼼수와 편법으로 적법절차를 어기고 통과시키는 입법독재를 강행하여 송부해온 법률을 51개 부처에 고작 48분간 검토의견을 내라고한뒤 기다렸다는듯이 국무회를 열고 통과 시키고 공포했다.

그가 위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마지막에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대반전을 기록했을 터인데, 역시나 그러지 못하고, 입법독재의 공모자요, 자기 수사의 회피자로 영원히 낙인 찍히게 되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은 너덜거리는 넝마상태로 만들고..

 

 

 

 

설 연휴 걷기 여행을 위해 거제시에 관광책자를 신청했더니

이렇게 많은 자료를 보냈다

관광 마인드가 부산시청과 선두를 다투어도 되겠다

요즘 거제 조선업 불황 으로 지역 경제도 어렵다는데

시청이 관광 붐 조성을 위해 애쓰는 마음이 와 닿는다.

거제가서 잘 걷고 보고 먹고 와야지 ㅎ



대전 걷기, 적오산- 금병산을 걷기로 한다..

적오산으로 오르는 길은 전자디자인고나 아주미술관에서 시작하는데, 오늘은 전자디자인고 방향에서 시작한다..



정식 출발지는 에덴 정류장이다..

호모 데우스 책에 의하면, 인간이 에덴에 살 때는 짐승들과 소통을 하엿다..

그래서 뱀이 이브를 유혹할 수 잇었다..

그러나,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인간은 시비, 염치를 알게 되고, 결국은 낙원을 떠나는데, 자신의 힘으로 농사를 하던, 목축을 하여 먹고 살게된다..

이 장면은 인류의 농업혁명을 상징한다..

농업혁명의 결과 인간과 신의 독점계약이 체결되고..

짐승들은 말문이 막히고 인간과의 소통도 단절되고, 오직 인간의 정복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과를 많이 먹게 되어 지식이 늘고 과학혁명이 이루어지자, 신도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제 인간들의 모노드라마시대가 되었고,

머지않아 생명의 나무에 접근하여 생명과를 따먹게 되면 인간이 신으로 등극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호모데우스의 미래상이다.. 



적오산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그런데, 사람과 개가 무리지어 내려오다가 개들이 분리되어 새끼들은 위로 달아나고, 어미는 밑으로 달아낫다가,

다시 서로 만나려고 앞뒤에서 다가오니..엄칭이 신경이 쓰인다..




능선에 오르자 저멀리 적오산성이 보인다..

백제시대 산성이란다...

백제 시대에 대전 부근에 40여개의 산성이 있어 신라와의 요충 탄현을 철벽방어 하였단다..

그러니. 백제 멸망시 신라가 탄현을 무사 통과하였다는 것은 미스테리다..

오히려 탄현을 우회하여 황산벌로 진출하였다는 설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이제 용바위로 향한다..

전에 다리 부실할 때 이 지점에서 회군하였는데, 이제는 건각이 되어 용바위로 진군한다..




원자력 연구소가 보인다...

원전..

요즘 탈원전 운운하는데, 원자력은 현대에 개발한 불이다..

원시인이 불을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발전시켜 이제는 불을 라이터 크기도 통제할 수 잇게되엇다..

물론 가끔 대형화재가 나고 인명피해도 크지만, 우리는 불을 포기하지 않앗다..

원시인류가 불을 무서워 포기하였다면 지금의 인류 문명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기술의 진보에 따라 불처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 

미리 두려워 원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원시인보다 무지한 현대인이 되어서은 안된다..



적오산을 힘들게 오른만큼 다시 가파르게 내려간다..

그리고 만나는 자운대와 금병산 줄기..

적오산과 금병산이 갈라지는 대목이다..





금병산 용바위를 오르는 길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숨찬 오르막 끝에 만나는 금병산 제1봉 옥련봉 비석..

옥련..옥수레..

수운교는 동학의 일파로, 1923년 서울에서 개교하였다가 1925년 이곳 금병산 아래 추목동 숯골로이전하여 후천 5만년을 다스릴 도량으로 천단 도솔천궁을 건립하였다.. 





전망대에서 자운대를 바라보며 호령해본다..

"전체 차려어엇!"



또다시 오르막이다..이번에 친절한 줄까지..

오르막 끝이 용바위 고개이자 제2봉 일광봉이다...





이 용바위 고개에서 우(보덕봉)- 좌(금병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대전둘레산길 7구간이다..



이곳 내리막은 친절한 계단이다..





3봉 공덕봉 표지는 보지 못하고 4봉 표지를 만났다..도덕봉..




아래 도솔천의 기운을 받았는지, 소나무가 울울청청하다..



6봉은 연화봉이다..





금병산 정상석이 잇는 곳이 제7봉 운수봉이다..




앞쪽으로 구봉산과 장태산, 멀리 대둔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금수봉, 갑하산, 우산봉 뒤로 계룡능선이 인다..




표지판 노루봉이 12봉 창덕봉이다..



8봉을 지나치고 9봉가기 전에 수운교 방향으로 하산한다..

12봉을 다 걷기에는 체력이 부친다..









석종..

천단에서 이것을 보기전에  석종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삼국유사 손순매아 편에 석종이야기가 나온다..

경주 모량리에 사는 손순이 노모를 봉양하는데, 어린아이가 밥을 뺏아 먹으므로, 자식을 땅에 묻고 노모을 봉양하려고 하엿다..

아이를 데리고 취산 북쪽 들판에가서 땅을 파니, 석종이 나왔다..

부부는 기이하게 여겨 아이를 데리고 돌아와 석종을 들보에 달고 두두리니, 그 소리가 임금(흥덕왕) 귀에 들렸다..

왕이 사연을 듣고 효자라고 표창하고 집 한채와 메벼 50석을 하사하였다


나는 위 이야기를 듣고, 석종의 모양이 종 모습일거라는 형상에 집착하여 믿지 않았는데, 여기 석종처럼 소리나는 현상에 맞춰보니

비로소 위 설화가 거짓이 아님을 알겟다..





이 천단에는 종이 있는데, 6.25때 탄피를 녹여 만들엇다고 한다..

이 종소리 울려 전쟁없이 평화통일이 되었으면...








<오늘 걷기> 대전전자디자인고등학교 옆 골목길 - 에덴정류장 - 적오산성 - 금병산 제1봉 - 용바위고개 - 수운교  약 8km



섬 걷기, 이번엔 통영 비진도..

다도해 한려수도에 수많은 섬들...이들이 빛나는 시기는 2,3월이라고 생각한다..

육지엔 무채색의 추위가 가득할 때 이 섬에선 푸른 햇살과 붉은 동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25분에 출발..9시 뱃시간에 맞춘다고 아침은 김밥 한줄로 해결한다..

다행히 잠을 잘자는 편이라 졸다보니 통영이다..



통영에서 배로 40분 거리..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은 갈매기 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통영시 당국에서 갈매기를 굶겨 놓은 것처럼 이넘들은 새우깡 맛보자고 묘기 대행진을 벌인다..



이 넘은 순식간에 손가락에 든 새우깡을 낚아채 날아간다..2번씩이나..

옆에 처자는 어설프게 들고 있다가 부리로 3번이나 손등을 쪼이고도 희희낙낙이다..



모두에게 미소를 선사하는 갈매기 쑈가 끝날 무렵 비진도가 보인다..



여기는 비진도 내항이다..

트레킹 후에는 비진도 외항에서 떠난다..



오늘 걸을 길을 미리 지도가 알려준다...





인구 300여명의 섬에 교회도 있고, 절도 있다..






나무 사이로 충복도가 아름답다..



이 작은 섬에도 효열비가 있다..

전국에 효자비가 많을까? 효부비가 많을까?

아마 조사해보면 효부비가 많지 않을까?

내 추측이 맞다면, 그 이유는 강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충복도는 여기서 보니 고래섬 같다..

고뤠~



이 고개에서 바라보는 비진도의 유명한 모래톱 풍경이 아름답다..





폭 70여미터의 모래톱..






선유봉을 향해 오른다..

선 자 이름에서 제법 빡센 길임을 예감햇다..

신선이 놀 정도의 봉우리니 제법 올라간다...숨차게..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타이틀을 보니

"육지 걸을 곳이 떨어져가니 이제는 섬 걷기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드디어 능선에 올라섰다..

망부석 전망대..

섬이니 고기잡으로 간 서방님들 기다던 여심들이 많았겠지..






전망바위에서 비진도의 호리낭창한 허리를 바라본다..

내려가면 저 가는 허리를 한번 안아줘야지..ㅎㅎ



전망대에서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이런 멋진 레스토랑이 어디 있을까?




선유봉 정상을 지나 내려가는 길에 비닐을 치고 라면끓여 먹는 팀이 잇다..

정분나겟다..



멀리 소지도가 보인다..




외항으로 내려가는 길, 저멀리로 슬핑이치가 보인다..





용감히 벼랑으로 나서는 여인..절벽에 핀 동백같다..






소지도 사이 푸른 바다를 오가는 배들이 연락부절이다..



섬 바람타고 날고 싶은겨~~ㅎ







태풍이 불 때 갈치가 날려와 걸리는 갈치바위..참 웃기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다..





작은 섬에 작은 암자..

비우기 좋겠다..




이 곳에 앉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스비리도프의 눈보라를 듣는다..

비진도의 가는 허리는 오랫동안 노래와 함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섬은 외롭지 않더라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갈매기가 있고

섬과 섬을 이어주는 모래톱이 있고

섬을 걸어주는 우리가 있으니..




2시 50분에 떠나는 배를 외항에서 기다린다..

바람도 그치고 음악도 다할 즈음 여객선이 도착한다..



<오늘 걷기> 비진도 내항 - 까꾸막 고개 - 산호빛 해변 모래톱 - 망부석 전망대 - 미인전망대 - 선유봉 - 노루여전망대 - 슬핑이치 - 비진암 - 외항  약 8.5km





날이 워낙 춥다..중학교 다니던 그때 처럼 춥다..

안성에 가려다가 가까운 근교를 걷기로 한다..

계족산으로 간다..


산디마을 오토캠핑장에 주차한다..

이리 추운데 오토캠핑장에 텐트피고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추위를 견디는 비결은??

설비가 좋아졌겠지..난로 굴뚝이 보인다..



빙설사이로 물이 흐른다..

아무리 추워도 세월은 가고 봄은 오는 것이다..




이 길도 소문이 났나..

개천정비 공사 공고가 붙었다..

제발, 그냥 환경을 살리고 원형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정비되었으면..



길은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고요하지만

산성은 푸른 하늘을 이고 날아갈듯하다..




산실제길이 하얀 분칠을 하고 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심한 님은 언성을 높이며 세상푸념을 늘어 놓는다..



임도삼거리 오뎅집도 무시하고 내쳐 봉황정으로 오른다..

다리가 부실하던 시절 가보고 무시하고 다니길 6-7년이 지난 것같다..

오늘 날도 춥고 기분도 추우니 험한 길을 오르리라..





갑천 산책길에 올려다보던 작은 모자를 이제사 오랜만에 마주하네..



봉황정 전서 글씨는 정향 조병호 선생글씨..

그는 "처음처럼"글씨로 유명한 신영복의 글씨 사부..

신영복이 대전교도소에 수감중일 때 만나서 죄명을 듣고는.."유배온 것이군"했단다.. 

그리고 교도소의 수감자들을 위해 서예선생노릇을 한 사람이다..

나도 그의 그의 글씨 한점을 가지고 잇다..

"도심일명월(道心一明月)"

도 닦는 마음은 밝은 달과 같다..


스스로 그 글귀의 댓귀를 달앗다..


그 달빛 천강에 아니 비췬데 없지만

급류 따라 흐르지 아니하고

그저 인연따라 즐길뿐이라네..


月印在千江(월인재천강)

水急不流月(수급불유월)

但隨緣樂命(단수연낙명)




봉황정기는 장암 이곤순선생의 글씨다..

현강선생의 사부니 나에겐 조사부쯤 되는 분이다..ㅎ



한때 봉황산으로 불리던 기개를 겸손하게 수행자 모드로 바꿔 계족산으로 부른다는 말이다.

그때의 기개를 정자에 담아 봉황정이라 부른다..

봉황정에서 바라보는 동,남녁으로는 좌측에 식장산이 중앙에 보문산이 보,만,식, 계를 이루고 있다..

이어 서쪽을 바라보면 계룡이 날아든다..

그리고 남서쪽의 대둔산을 줄기를 타고 흐르는 갑천과 유등천이 기각지세를 이루며 한밭이 펼쳐진다..

그 옛날 어느 도인이 이곳에 이르러 멀리 계룡을 바라보며 문득 이에 호응하여 의형제를 맺었거니 이에 이름을 계족이라 하였을지도...ㅎ

굳이 가섭이 도를 닦던 천축국의 계족산에서 따왔으리요..ㅎ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갑천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들판이 아주 넓고 사방 산이 맑고 화려하다.
세가닥 큰 냇물이 들 복판에서 합류하여 관개할 수가 있다.
땅은 모두 1묘에 소출이 1종이나 되며, 목화를 가꾸기에도 알맞다.
또한 강경이 멀지 않고, 앞에 큰 시장이 있어 해협의 이로운 점이 잇으니 영원히 대를 이어 살만한 곳이다."



계룡과 계족 사이에 대둔산 줄기에 발원하여 둔산벌을 적시는 갑천이야 말로 말그대로 갑(甲)이다.. 





봉황정에서 내려와 장동방향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대전의 지세가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죽림정사 - 임도삼거리> 구간의 중간 분기점에서 대전둘레산길 장동방향으로 직진한다..




가장 추운 날 추운 기분에 분기탱천하여 계족산 정상 봉황정을 주파하고 노곤한 몸을 뉘이고 푹 자고나니 추위와 기분은 간데가 없더라..


<오늘 걷기> 계족산 장동산림욕장 오토캠핑장 - 산신제길 - 임도삼거리 - 계족산 정상 - 봉황정 - 전망대 - 임도 갈림길 - 산디마을 진입구 - 오토캠핑장 약 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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