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간다..대장금 마실길..

일기예보상으로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불어 어제보다는 살쌀하다..

그래서 봄옷이 아니라 겨울 옷 그대로 준비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하늘이 자꾸 아니라고 한다..

뭐가 아니라는 거여..

문자라도 보내시지..ㅎ




도착지는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 구 장금교 앞이다...

대장금 마실길 3코스 시작점이다..



장금리..장금산..대장금??

대장금 드라마의 주인공 장금이의 고향이란다..

장금리에 태어나서 그냥 장금으로 불렸나?

아니면 장금이 유명해져서 장금리로 바뀌었나??

정읍 산내면 홈피에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장검산(長劍山) 아래 여러 지역을 병합하여 산이름을 따서 장금(長錦)리라고 지었단다..

드라마 대장금(長今)과는 표기부터 다르다..

그러니, 대장금 운운하는 것은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발상 같기도 한데..

어떤 설에 의하면, 예종-중종 당시 권신 유자광이 정읍으로 시집간 고모의 고향 정읍 옹동면 산성리을 왕래 한 적이 잇고, 동네 아이를 가르친적도 있었는데.

그런 연고로 알게된 홍침과 장금을 궁중에 불러 들여 내의원 일을 맡겼다는 주장을 한다..




오전에는 3코스를 걷는다..



인적 없던 임도가 어느 날 유명 브랜드를 달고 출세가도로 변하는 격..




옛다리는 새다리에게 이름도 물려주었다..

이거이 장금교..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있던 다리는 구 장금교가 되었다..



산세가 장검모양이라고 장검산으로 불리던 이름도 장금산으로 바꾸었다...

바꾼지 얼마 안되는지 네이버 지도에는 장검산으로 나온다..





옥정호...

섬진강을 막은 댐..

임실군 쪽은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붕어섬이 멋진 관광거리..




난국정..춘난(春蘭) 추국(秋菊)의 정자..





누가 비석의 글씨를 물었다..

나중에 내 블러그에 와서 확인하라고 했다..

우측..난국정 중수 의연비..난국정을 수리할 때 의연금을 낸 사람 기념비..

좌측..명단..








3코스 : 구장금교 - 바람재 - 난국정 - 황토마을 - 신흥리재 - 장금터널 - 구 장금교   약 9km를 걸었다..

그리고 바람이 자는 산자락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 5코스를 걷는다..

날씨가 초여름 기온 20도 가량된다..

옷이 너무 두꺼워 땀이 날 지경이다..

오는 길에 하늘이 왜 아니라는 싸인을 했는지 알겠다.

일기예보와 실제 날씨가 다르다는 것을..




그런데 북쪽 산비탈엔 눈과 얼음이 그대로...

몸은 4계절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허덕이고..

머리는 3계의 번뇌가 오락가락..






길을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살며 길을 생각한다..

누군가 말했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임병찬 의병장..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가 어머니 묘소 이장을 핑계로 이 곳에서 의병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면암 최익현과 연합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체포되어 최익현과 함께 대마도에 유배되었다가 최익현은 죽고 그는 귀국한다..

1910년 한일합방후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 순무총장에 임명한다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전국적인 조직을 구성하다가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되고, 단식투쟁끝에 사망한다..






<오후 걷기> 5코스  구 장금교 - 금곡 - 사실제 - 물넘이재 - 장군봉 임도- 임병찬 유적지  약 10km



창원에 속하게된 마산의 저도로 간다..

그새 모처럼 맹위를 떨치던 추위도 사라졌다..



겨울의 끝, 봄이 보이는 시점에 남으로 가랴, 북으로 가랴..

단연 남쪽 섬을 추천한다..


그동안 고생하다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에 권하는 것이 있다..

"BMW를 타고 MIT를 다녀라"

무슨 돈으로?? 하겟지만 경제적이고 건강해지는 일이다..

BMW는 버스, 메트로(지하철), 워킹(걷기)를 뜻하고,

MIT는 마운틴(산), 아일랜드(섬), 트레킹 코스를 의미한다..


걷기란 움직이는 명상(行禪행선)이고, 약보다 좋은 보약(行補행보)다..






저도로 가는 길에 영미 컬링팀의 결승전이 중계된다..

"야를 막고 쟈를 치자"

경상도 의성가스나들의 도전은 아깝게 은빛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신들린 선전에 경의를 표한다..



저도..

섬 모양이 돼지 모습이라고 해서 돼지 저자 저도다..

신라 말기 최치원이 마산 합포지역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소요할 때 저도의 괴이한 불빛과 괴수소리를 퇴치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연육교 앞에 콰이강의 다리라는 이름이 다리가 있다..

엣날 다리를 리모델링해서 투명유리로 바다가 보이게 만들었다..

안전함을 아는데도 은근히 떨린다..






섬 일주는 다리 건너 우측 용두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루터기도 누군가 관심을 주면 웃음이 피어난다..






남해 바다가에서 시산제를 지낸다..

지난해에도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구례 화개에서 돌 굴러내려올 때 모두 무사했었는데..

금년도 무탈하기를!!


제수를 구워먹고 볶아먹고 음복하고..복에 취한다..





이길의 비치로드답게 해안 돌길을 걸어간다..

술기운에 비칠 비칠한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완성된다..

그래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하고

후세의 표지가 되니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도 했다..


원래 인간이 직립보행 시작할 때 길이 없었다..

인간이 가고 가고 가다가 길이 되었겟지..

항상 처음엔 길이 없다..





고생스러울무렵 전망대가 구제해준다..




이제 부터 데크길로 편히간다..




물 좋은 마산에서  파란 물 실컷 구경하고

물가에 앉아 센 술 한잔 들어가니

이도 저도 다 좋다..



<오늘 걷기> 3코스 역방향 약 6.5KM



세종 부강약수터를 찾아갔다..

부강약수터 뒷산에 고구려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적에 엄마따라 기차타고 약수마시러 온 기억이 잇다..

지금은 음용금지되어 약수터 기능은 사라졌다..



입구는 계단으로 정비되어있는데, 계단이 끝나면 걷기 좋은 오르막 산길이 이어진다..





시비를 보다가 산아님이 생각난다..

지금 어디에서 잘 걸으며 지내시는지..





표지석에 노고산성이 고구려성이라는 고고학적 근거 제시는 없다..

하지만, 지세나 강의 위치로 보아 금강을 경계로 설치된 노고산성은 고구려나 신라 쪽 산성일 가능성이 크다..

인근 부용면 남성골산성에서는 고구려 목책성 흔적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부용면 유래에 연개소문이 언급된 것은 역사와 맞지 않는 스토리텔링같다..

연개소문 당시 고구려 국경은 한강이북이고, 당시 당나라와 겨루는 때라  이곳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과장이다..

그럼 언제일까?

장수왕때가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성왕이 529년 황해도 서흥에서 고구려군에 대패한 직후 고구려군이 예성강-임진강 도하(연천 호로고루 여울)-양주-아단성-한성-아차산-용인-안성-진천-미호천 서쪽-강외면 상봉리-부강면 남성골까지 진군하여 일시적으로 부강일대에 산성을 설피하여 점거하였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http://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401878


이후 성왕은 절치부심 국력을 모아 신라의 진흥왕과 연합하여 한강고토 유역을 회복한다..

그러나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고토를 빼앗기자 피비린내나는 복수전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봉화대 부근에 이르면 산성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상에서는 시산제가 지내고 음복하고 음식을 나눈다..

뜨네기인 나에게도 막걸리와 머리고기와 떡을 나누어 준다..





<오늘 걷기> 부강약수 주차장 - 봉수대 - 노고산성 - 애기바위 - 원점 하산  약 4.4km



거제 3일 째 거제자연휴양림에서 아침 7시에 뒷산 노자산을 오른다..

휴양림에서 올라가는 등산코스는 2개..

1코스는 구비구비 올라간다..약 2km

2코스는 직진 코스 0.7km

1코스로 올라간다..




전날 무료제공된 고로쇠물을 채취하는 숲길을 지난다..



노자산(老子山)??

늙지않고 오래 사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산..

올라가는 등뒤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8부능선에 오르니 전날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던 노자의 콧등 격인 마늘바위가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니 찬 바람 속에 비박족 텐트가 가득하다..




그때 다도해의 섬들이 두둥실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광..






저 멀리 바람의 언덕과 해금강이 바다로 잠수할 듯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학동몽돌해변..내도와 외도가 보인다..




노자산 정상은 아직 저멀리 험상궂은 표정이다..









정상을 향하다가 돌아보면 어김없이 푸르고 아름다운 풍광잉 거기 있었다..






바람의 언덕의 풍차는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이다..








저아래 자연휴양림이 보인다..

1코스로 바로 내려간다..




거제도에는 섬인데 높은 산이 즐비하고 지기를 받은 대통령 생가가 2군데나 된다..

이순신장군의 승전행진 시작처와 조선수군의 최악의 패전처가 공존한다..

조선업은 시들어도 관광업은 활기를 띌 여건이 충분하다..

거제시청의 관광 마인드와 홍보 능력도 좋은 것 같다..

축원 한마디한다..

"잘 될거야, 할수있어!"






<오늘 걷기> 거제자연휴양림 - 1코스 - 벼늘바위 - 전망대 - 정상 - 2코스로 하산  약 3.5km



거제 2일째 마지막 방문장소는 칠천량해전기념관이다..

이순신이 공들여 쌓아올린 조선수군 전력이 한번의 패배로 전부 붕괴되었다..

배설이 지휘한 12척외의 판옥선 수십척, 이억기, 최호등 유능한 지휘관,1만이상의 병사들이 전사했다..

그야말로 맨붕..





문제적 인간..선조..

그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순신을 싫어한다..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등용한다..

히딩크를 쫒아내고 슈틸리케를 선임한 격이다..



원균이 저평가되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칠천량에서의 원균의 활동을 보면, 그는 무능한 장수였다..





너무 안타까워 사진으로라도 도와주려고 불을 집어 들었다는..ㅎㅎ



칠천량의 바다는 오늘은 고요하다..

그 밤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칠천량 패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기세등등한 왜군은 수륙병진으로 남해안과 호남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이때 죽인 사람의 코와 귀를 토요토미에게 보내 지금도 일본 교토에 이총과 비총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았는가?

이는 이순신을 파직한 선조의 책임이 70%이상이다..



그럼에도 선조는 자신의 실책을 감추려고

원균의 패전을 하늘탓으로 돌리고, 원균을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으로 봉한다..



기념관을 나서서 잠시 해안데크길을 걷다가 길건너 옥녀봉으로 해서 칠천량해전길을 좀 걸어 볼까하다가

날은 기울고 허기는 지고 배는 고프고..후일을 기약한다..

**

추신: 3월 17일 다시와서 옥녀봉에 올랏다..

후기 : http://blog.daum.net/servan/6350820 참조





 

 

"충무공 이순신을 만나러 가는 길"(약칭 이순신 승전의 길)은 원래 옥포항 - 옥포대첩기념관 - 김영삼 생가 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과 체력 안배상..차로 김영삼 생가를 방문한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뒷산 대금산의 정기와 거제 동녁의 새벽을 알리는 닭의 정기를 타고 났다..

유신시대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친 그의 말은 어릴 적 체험으로 나온 말이라 하겠다.. 

 

 

 

 

그동안 여러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지만, 그의 생가가 제일 당당하다..

아버지가 멸치어장과 어선 10여척을 소유한 갑부였기 때문이다..

 

 

 

호연지기..

호연이란 강물이 말이 달리는 듯 거세게 흐르는 기세를 말한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5세에 자유당 후보로 거제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1969년 11월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면서 1971년 대통령출마를 선언하며 급부상한다..

김대중, 이철승이 40대 기수론에 동조하여 대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엇으나, 결선투표에서 김대중에게 역전당한다..

 

 

그의 인생 역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신시대 말기를 장식한 1978년의 YH여공 사건과 1979년 신민당 총재직 정지 가처분 사건이다..

79년 9월 법원에서 그에 대한 총재직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고, 얼마후 그의 지지 지역에서 부마항쟁이 발생한다..

그해 10. 26.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의 정적이었던 박정희 빈소에 조문할 정도로 담대했다. 

그의 삶의 절정은 민주화 투쟁과정에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의 집안은 사육신과 운명을 같이한 김문기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 대에 어업을 하여 부자되기 시작하여 그의 아버지는 멸치어장과 어선을 보유한 갑부였다..

그는 외아들로써 물질적인 지원을 충분히 받아 정치적 기반을 착실히 쌓을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1960년 거제도에 칩입한 무장공비의 총에 살해당한다..

생가에는 그당시 총탄자국이 있다..

과연 총탄자국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

 

 

79년 10.26. 이후 80년 서울의 봄에 3김이 정치 전면에 나섰을 때 미국에서 보는 3김 평가가 언론에 회자되엇다..

YS는 어리고, DJ는 의심스럽고, JP는 때가 묻었다...

5.18로 80년 서울의 봄은 저물었다..

1985년 국회의원 선거유세의 바람을 목격하였다.. 열기와 바람이 가득한 유세현장이었다..

그 결과 그가 주도하는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이 되었고, 정치투쟁 끝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진다..

 

 

그가 좋아하는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도는 문이 없다..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단어 뒤에 千差有路(천차유로)..천 갈래의 길이 있다는 말을 알았을까?

 

87년 직선제 쟁취후 1노 3김의 대선경쟁시 YS와 DJ의 단일화 열망을 두사람은 외면한다..

결국 노태우의 당선..

선거 발표 직후 그의 표정을 기억한다..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국민 저항을 주장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햇다..

얼마후, 그는 표변하여 노태우,JP와 3당 합당을 선언한다..

그리고 여당 후보가 되어 대통령이 된다..

그의 집권초기의 행보는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부동산거래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조선충독부 건물해체 등 마치 바둑황제 조훈현의 포석처럼 매끄럽고 빠르게 진행되어 인기가 높았다..

그 당시 총독부 건물 해체를 둘러싸고 건물 존치를 주장하던 후배와 논쟁하다가 서로 감정이 상해 한동안 말도 안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세계화를 주제로 시작된 경제정책은 나라를 수렁으로 몰고 가기 시작햇다..

우선 로스쿨을 도입하려다 반대여론에 몰려 포기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되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OECD에 가입하고 경제운용에 실책이 겹쳐 제2의 국치라고 불리는 IMF 사태를 초래했다..

마치 백제 의자왕이 초기에 신라의 40여성을 빼앗고 우쭐하여 흥청망청 지내다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것과 같은 형국이 되었다..

그의 치세 말기 그의 아들의 빽을 빙자한 사기꾼들이 횡행하여 내 주변사람도 사기당한 적이 있었다

 

 

그의 생가 글씨대로 젊어서 호연지기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여 대권을 장악했으나

정작 그 대권으로 민생을 그르치고 말았으니..큰 길(대도)의 문을 잘못 열어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그의 초기 인기는 80%였으나 그의 말기 인기는 8%도 되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던 칼국수를 나는 한동안 먹지 않았다..

 

 



지심도에서 나와 옥포중앙공원으로 향한다...

내비에는 옥포공원으로 나온다..

옥포공원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이순신승판재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승판재(勝判岾)..

조선 수군이 옥포해전후 이곳에 상륙한 왜군 잔당을 격멸한 승전지...



당시 해전 상황을 볼 때 위 글에 "5만의 왜구"는 좀 과장된 듯하다..



옥포 해전..

임진왜란 반발후 연속되는 패전..

드디어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가 출동한다..

1592. 5. 7. 이곳 옥포에 정박중인 적선 50여척을 발견..공격..26척을 격침시키고, 잔당을 추격하여 승판재에서 대승을 거둠..

임진란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후 23전 23승의 무패의 행진이 시작된 역사적인 곳이다..



이곳에는"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긴 이름으로 걷기 길이 조성되어있다..

난  그냥 "이순신 승전의 길"이라고 짧게 부를란다..

시간 관계상 옥포항에서 출발하지 않고, 이곳 옥포중앙공원- 옥포대첩기념관을 왕복하기로 한다..




팔랑포를 거쳐 가는 해안 벼랑길을 걷기 좋은 코스다..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정운장군..

이순신 휘하의 녹도만호..

임란개전 초기 관할권 문제로 출정을 망설이는 이순신에게 단독출전을 강력진언하여  성사시킨 강경파..

그후 부산포해전시 전사하였는데, 그가 전사한 날이 부산시민의 날이다..

그의 순절비는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 있다..




팔랑포 마을이 보인다..






마을 지나가다 오랜만에 가위 표시를 보고 둘이 한참을  웃었다..





옥포의 연기법을 이야기 해보자..

한가한 시골 포구였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왜선 50척이 들이 닥쳐 분탕질한다..

이순신 장군 함대가 출동하여 격멸한다.이후  연승을 거듭한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500원짜리 지폐에 거북선 그림으로 삽입되고..

정주영이 이 돈을 보여주고 영국 은행의 대출을 받아 울산에 현대 조선소를 건립한다..

당시 최신설비와 저임으로 세계 조선업에 두각을 나타낸다.

옥포에도 대우조선이 들어선다..

우리 조선업이 일본을 능가하여 세계1위 조선국이 되자 영국,독일 등 노후한 유럽의 조선업을 몰락한다..

이제 20년 잘나가다 이제는 중국 조선업의 저가공세에 밀려 우리 조선업은 폐업의 위기를 맞았다..


한 승리의 연기법이 마치 구름처럼 일어났다가 구름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인생도,역사도 일장춘몽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하면 꿈에서 깨는가??

자각하라..

우리의 실상을 보라..그리고 강약을 분석하고, 강점에 집중하라..






이순신 장군은 알았다..우리의 강약을..

우리는 백병전에 약한 민족이다..

권투로 말하면 인파이터가 아니고 아웃복싱 스타일이다..

그래서 활을 좋아하고 잘 쏘고 연습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이 장점을 해전에 도입한다..

각종 총통과 포를 개발하여 이를 적절히 사용하여 연전 연승을 한 것이다..



임진란후에라도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육전에도  총통과 신기전, 조총 등으로 육군을 개편하였다면..

병자호란 시기에 청의 기마부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명, 청, 조선의 삼국 병립이 가능하여 이른바 고려 초기 요, 송 3국 정립 시기와 같은 평화와 세력균형이 도래하였을 것인데..

어찌 그때 뿐이겠는가?

지금도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을 학수고대한다..




그의 글..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옥포해전에 거북선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북선만 보면 통쾌하다..

우리 역사상에 이처럼 독창적인 무기가 어디 있었던가??

거제 조선업도 독창성을 찾아라..

거기에 활로가 있다..



<이번 걷기> 거제 옥포중앙공원 - 팔랑포마을 - 옥포대첩기념관 왕복 약 5km



장승포항 지심도 터미날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만원이다..

주차장 옆 파출소 입구에서 차를 돌리다가 무심코 경찰에게 물었다..

혹시 파출소안 빈공간에 주차해도 되는지..

흔쾌히 승락한다..이렇게 고마울데가..

감사합니다..ㅎ



인터넷 예약을 해둔터라 여유있게 승선준비를 마친다..

승객이 몰리면 수시 증편하기에 오늘도 정시보다 일찍 승선할 사람을 태우고 출발한다..




15분거리에 지심도에 도착..

하늘에서 보면 마음 심자 같다는 섬...

그 마음 속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면 벽에 쓰인 시를 읽어보시라..




승객을 내리고 부리나케 배는 떠난다..




선착장에서 올라와 동백하우스 앞에서 좌우로 길이 갈리는데, 왼쪽으로 간다..





동백섬이라는데..어째 동백이 귀하다..

노래라도 불러주면 활짝 피어나려나..ㅎ








민박집 주인에게 물었다..

언제가 동백꽃 절정인지?

원래 요즘이 절정인데, 금년은 날씨가 추워 덜 피었단다..







섬끝 전망대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데, 수평선에 희미한 큰 섬의 흔적이???

대마도란다..

우리나라에서 대마도를 육안으로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저리 가까운 섬이 어찌 일본 소유가 되엇단 말인가?




거제도와 가거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보인다..



섬에 300살 넘은 골솔할배도 있다..






동백나무 터널에 동백이 없다..

동백의 붉음에 현혹되지 않으니 비너스의 나신이 눈에 들어온다..




추상화 같은 푸름도..





활주로..

이곳은 일제가 군사기지화 햇던 곳이라..

활주로도 있고, 포대도 있고 탄약고도 있다..

그 흔적을 무시하고 그저 푸른 바다만 바라본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솔숲을 지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일제의 케논포대..

여기에 왜 포대를 설치했을까?

대한해협을 지나가는 함선이나 잠수함을 겨냥했을 것이다..









위 2자는 지심(只心)의 전서체이고 아래 글자는 쇄(惢)의  전서체이다...


나무 목이 3개면 삼(森)..빽빽할 삼이 되고..

수레 차가 3개면 굉(轟)..수레모는 소리 굉이 되고..

마음 심이 3개면 쇄(惢)..의심, 꽃술 쇄(예)가 된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겟다..

지심쇄??

지심도의 꽃술?? 동백을 뜻하는가??



여기서 보니 부산 오륙도도 보인다..

배를 기다리면서 점심을 겸해 파전을 시켜 먹는다..

동백이 이제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2주 뒤에 만개하겠다..



섬 일주에 2시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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