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후 주왕산 계곡으로 간다..

입구에 미니 사과를 써비스로 주네..

사과에 질린 나지만 이쁜 미니 사과를 보니 입맛이 돌아 한입 베어문다..

사과향이 가득 번진다..


 

 

기암이 우람하다..모양은 손바닥같다..

서유기에 부처님과 내기하던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수만리를 날앗는데도 부처님 손바닥이었다는 설화에 나올 법한 모습..


 

 

 

 

일행중 산으로 갈 사람은 가고, 계곡길 걸을 사람만 따로 간다..


 

 

 

길가에 주왕굴 표지를 보고 주왕산의 정체성을 보고 싶어 주왕굴로 향한다..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주왕암이 나타난다..

왕 자 들어가는 암자로는 계룡산 신원사의 고왕암도 있다..

그 왕은 부여 융이다..백제 멸망당시 피신했던 곳..


 

 

주왕이라는 인물이 누굴까?

1) 1설 : 당나라때 반란군 주도라는 설 : 그는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켯다가 곽자의장군에게 패하여, 물건너 신라 땅 이곳에 와서 성을 짓고 주둔하다가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 조정이 파견한 마장군에게 피살되엇다고 한다..

2) 2설 : 신라 후기의 경주 김씨 주원이라는 설 : 신라 선덕왕이 승하하였다..

서열 1위 김주원이 즉위식을  위해 나선 날 비가 쏫아져 경주 북천이 넘실거려 건너지 못하는 사이 김경신이 "하늘의 뜻'을 내세워 왕위에 오르니 원성왕이 된다..

김경신은 전에 한 꿈을 꾸었다..

꿈에 그가 복두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 줄 가야금을 든 채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똑똑한 해몽가를 만나 장차 왕이 될 선몽이라는 해몽을 듣고 야심을 키우다 북천 범람사건으로 절호의 기회를 잡아 왕이 되었다..

김주원은 이에  승복하고 명주군왕으로 대접받으며 명주로 떠난다..

당시 청송과 주왕산은 신라 9주 중 명주군에 속하였으며, 주원왕으로 불리는 그는 주왕산에 은거하며 명주군왕으로 군림하였단다..


 

 

 

폭포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곳에 굴이 잇다..


 

 

굴안에 모셔진 산신은 주왕아닐까?


 

 

주왕굴에 나와서 자연관찰로를 따라 걷는다..

그길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좌측이 병풍바위, 우측이 급수대..


 

 

 

길에서 만난 다람쥐..관광객이 주는 선물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이제 길은 학소대에서 합류하여 주왕계곡으로 향한다..


 

 

언제보아도 절묘하고 우람한 모습..


 

 

 

용연폭포에 도착했다...

멋진 숲길이라 힘든지도 모르겟다..


 

 

 

 

 

절구폭포로 향한다..



 

 

 

여름의 시원함은 가을의 그윽함으로 바뀌었다..

그윽함에 장식할 단풍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시루봉..처음에는 거시기 같더만 조금 지나니 킹콩의 모습으로 변한다..

오!! 이넘도 트랜스포머네??

차가 아니라 봉우리들이 로봇으로 바뀌는 우리나라판 트랜스포머를 만들면 어떨까? ㅎ

 

 

 

 

갑시데이!!

환송을 받으며 돌아나오는데, 백련암 앞에 사과밭이 짠하고 눈에 들어온다..

사과가 단풍을 대신해준다..ㅎ

 

 

 

 

담에 더오면 그때는 산성길을 걸어봐야겠다..

 

다시 돌아온 대전사..

기암 위 가을 구름에 눈이 자꾸가는 것은 아름다운 번뇌에 자주 마음을 뺏기는 버릇때문은 아닐지..

 

 

웅장하거나 그윽한 풍광속에

가을이 깊어가더라

다리는 헐거워지더라

그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 또 한편 무언가 닳는 대가로

우리는 즐거웠다.

무언가 비우고 무언가 채우는 인생 속에

우리는 충만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걷기> 주차장 - 대전사 - 주왕굴 - 자연관찰로 - 학소대 - 용추폭포 - 용연폭포 - 절구폭포 - 학소대 - 원점회귀  약 9km

 

 

 

청송, 영양을 1박 2일로 걷는다..

차창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에 가을마음(愁)이 가득하다..


 

 

청송은 사과 산지인가 보다..

초입에 1바구니 만원이라며 맛보기 써비스 하는 아주머니들 덕분에 아침부터 요기 단디하고 간다..


 

 

 

 

 

가을 알리는 일등 손님은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가 아닐까?


 

 

 

경종 때 완공한 저수지..연조가 오래되신다..


 

올 단풍 늦다고 하는데, 군데 군데 붉은 깃발을 흔들어 주니 기분 좋다..


 

 

 

주산지 못에 가을 하늘이 다 들어 잇다..

어디가 하늘인지 헷갈린다..


 

 

 

 

 

 

 

왕복 2km의 짧은 길을 걷고도 사과막걸리에 칼국수을 해치운다..

오후 주왕계곡에서 힘을 써야 하니..


 

1인당 3천원짜리 나귀마차를 탄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한 모습이다..

주산지 물 처럼 맑으니 좋구나..


 

 

홍도에서 1박한 다음날 새벽 산보 나갔다..

아침 식사 일찍한다고 해서 일출보러 가지는 못하고 근처 해변을 걷는다..


 

8월 기망을 갓지난 달이 밝기 그지 없다..


 

 

아침 식사후 나오니 그새 달을 시샘하는 햇살이 환하다..


 

 

명절 대목이라 유람선 관광 시간도 미뤄지고, 그사이 섬 이곳 저곳을 구경한다..

그 덕에 풍란도 만나고..

풍란은 7월에 꽃이 피는데 향기가 바다 멀리까지 풍겨 폭풍우 속의 어선들이 향기를 쫓아 피신하엿다고 한다..


 

사당을 지나 해안 절벽에 서니 멀리 남문바위가 보인다..


 

 

남문 바위에 줄을 선 저 배들..왜 그럴까요??


 

어차피, 유람선을 타고 가면 알리라..

유람선이 출발하여 선 곳이 바로 남문바위 직전이다..

왜 섰는가했더니..승객들을 모두 사진촬영해준다..

그 사이 옆에 한 사람이 DSLR들고 서서 같이 찍더니 나중에 모니터 화면에 뛰워놓고 원하는 사람에게 출력하여 액자에 넣어서 판다..

시간 때우고 돈도 벌고 주최측은 좋겟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공연한 시간 낭비가 많다..


 

남문바위..뭐라고 사연을 말하는데 기억에 남지 않는다..


 

 

 

 

병풍바위는 생각난다..


 

 

 

 

 

저 바위는 떨어질까 걱정이라는데 정말 그럴꺼 같다..ㅎ


 

 

 

 

 

여기는 홍도1구 마을이다..

원래 여기가 첫 마을이란다..

하지만, 이제는 후발주자인 홍도 2구가 더 번성하다..


 

 

독립문 바위..독립문을 닮앗나??


 

홍도 등대와 깃대봉이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종점이 가까워지자..수상시장을 벌린다..

선상횟집..

동행이 회를 좋아하지 않아 구경만 하자니 참으로 고약스럽다..


파리를 보고나서 프라하를 가지 말라고 했던가??

울릉도와 백령도를 보고나서 홍도에 오니 좀 밋밋하다..

하여간, 선상유람보다 깃대봉 등반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왕이면 여유잇게 홍도 2구 - 깃대봉 - 홍도 등대 - 홍도 1구 - 선상 복귀..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 내려온 다음날 1박 2일 홍도, 흑산도로 떠났다..

목포 연안부두에 도착..점심식사를 하고 홍도로 직행하는 남해 스타호를 탔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가득한 바다를 지나 2시간 20분만에 홍도에 도착..

섬의 상부는 오리무중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홍도 깃대봉으로 오른다..

 

 

 

항구 뒷편 몽돌해변이 보이고..

 

 

항구 건너편으로 내일 유람할 남문바위가 보인다..

바위 앞에 배가 왜 오랫동안 서있다..뭐 좋은 구경이 있나??

 

 

해발 0m 에서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점점 안개가 짙어지고 어느 곳은 어듭기까지 하다..

 

 

 

전망대에 올랐다..

홍도 전망대에 바라본 오늘의 세상..안갯속이올씨다..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 이런게 아닐까?

 

 

 

고생끝에 깃대봉에 올랐다..

365m인데, 제법 빡시다..

역시 안개속이다..앉아서 요기를 하고 힘을 보충하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간다..

어느 사람은 등대쪽으로 내려가면 순환코스가 있는 줄 알고 갔다가 다시 올라오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고 투덜거린다..

 

 

 

깃대봉에서 내려와 몽돌해변으로 간다..

몽돌이 감자에서 호박까지 다양하다..

누군가 오카니라를 부는데, 해변풍경과 어우러지니 멋지다..

 

 

 

저녁을 먹고 밤바다로 나왔다..

어느 가족이 일본에서 사왔다는 풍등을 가족별로 소원써서 뜨우고 있다..

 

 

 

홍도와 붉은 풍등의 멋진 마리아주..

아예 단체 행사로 하면 멋진 관광상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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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걷기를 마치고 성북동으로 내려간다..

북정마을..


 

심우장을 찾아가다 만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느낌..


 

 

표지판이 있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미로다..

한참 헤메다가 찾았다..


 

 

소를 찾는 집..심우장..


 

 

이 글씨는 일창 유치웅(1901-1998)의 글씨다..

"초서는 동글동글, 한군데도 모나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가진 서예가..


 

심우장의 거처에는 만해의 글씨가 걸려있다..


 

兩岸寥寥萬事稀 (양안요요만사희)
幽人自賞未輕歸 (유인자상미경귀)
院裏微風日欲煮 (원리미풍일욕자)
秋香無數撲禪衣1 (추향무수박선의)


두 언덕 고요하매 아무 일 없어

은자는 그윽함을 즐겨 돌아가지 못한다

절 안에는 실바람이 불고 햇볕은 따가운데

갖가지 가을 향기가 옷깃을 스친다


 

 

南國黃花早未開

江湖薄夢入樓臺
雁影山河人似楚

無邊秋樹月初來


남국의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고
강호에 노는 꿈은 누대에 머무르네
기러기 그림자가 산하에 사람 형상처럼 비치고
끝없는 가을 나무 사이로 달이 솟아 오른다.


 

 

큰 법륜을 굴리다..


 

 

 

1917.12.3. 밤 오세암에서 좌선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는 마음이 씻은듯이 풀렸다..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雪裏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장부 이르는 곳마다 고향이거늘

그 누가 오랫동안 객수에 젖었던가

한 소리 큰 할에 삼천세계를 타파하니

눈 속에 복사꽃이 편편히 날리는구나


 

 

 

26세에 출가 참선 10년만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53세 무렵에 심우장을 지었다..


 

 

 

 

 

 

심우장을 나와 간송미술관으로 간다..

그런데, 이곳은 내부 수리중이라 휴관이다..


 

 

 

성북동 골목길을 따라 길상사로 간다..

골목길과 정갈한 집들이 있어 심심치 않은 길이다..


 

 

 

 

 

담넘어 유자도 , 감도 익어가는 가을이다..


 

 

 

 

 

 

길상사..

요정 대원각을 보시받아 법정스님이 불사를 한 절이다..


 

 

길상사에 들어서니 성모마리아 닮은 관세음 보살이 먼저 눈에 띈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가 만들었단다.김수한 추기경이 개원법회에 와서 축하를 해주고..

법정의 무소유란 결국은 무집착을 뜻한다..그것은 열린 마음이다..


 

벌개미취가 향공양을 올리고 잇다..


 

 

 

 

 

 

 

법정스님의 소지품을 보니 수행의 자세가 드러나는것 같다..


 

 

편지..

산의 겨울을 염려하고 보내준 모자와 쉐타 참으로 감사히 받앗습니다..


 

 

맞상좌 덕조에 대한 훈계..

무소유를 설파했고, 무소유를 행하였다고 하였는데, 큰 보시를 받고 그때문에 불사를 벌여야 하는 과정에서 무소유와 상충하는 일이 생겼던가??


<추가 2020. 2. 5>

길상사의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기사를 참고하시라..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10301/35224913/1


그리고 유언 중에 신문배달 소년에게 주라는 책은 무엇이었을까?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선시’(禪詩·석지현 편역),

 ‘선학(禪學)의 황금시대’(오경태),

‘생텍쥐페리’(르네 젤러),

‘벽암록’(안동림 역주),

‘예언자’(칼릴 지브란)이다.


그중에 4권은 나도 읽어봤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00401/27271803/1


 

그의 뜻은 이런 소박한 의자와 같은 것인데..

하지만, 그 의도와는 달리 불사는 점점 커져가고 유소유로 가게 되지나 않는지..


 

방명록에는 벌써 소원비는 사람이 가득하다..

무소유는 무구(無求)..구함이 없고 바라는게 없는 경지인데..

모두 여기와서 구하고, 바라고, 커지기를 빈다..


 

무소유의 정신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기스다..

그의 묘비명이 바로 오도송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서울에 갔다..간 김에 한양도성길 남은 곳 북악산 구간을 걷기로 햇다..

서울역에 내려 서부역에서 택시를 탓다..운전사는 60대 후반..

"창의문 갑시다"

"창의문? 모르겟는데 어떻게 가요??"

"모르면 내비 찍어요! 윤동주 문학관을 찍던지"

"내비 찍을 줄 모르는데"

"창의문도 모르고 내비도 찍을 줄 모르고,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가는 방법을 묻는 택시 기사가 어딨어요?'

"모를 수도 있지. 왜 그리 시비쪼요"

"아니, 이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태도요?"

"뭐, 나 영업 안해, 내려.."

"못 내려. 다음 택시 승강장에 내려줘야. 다른 택시 탈거 아니요"

" 내려"

" 어..이러면 승차거부 되는거 알아요"

" 승차거부 신고해, 겁 안나"


막나가는 기사에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금부터 녹음할테니 정식으로 대화해봅시다"

그러자, 택시 기사 기세가 수그러 진다..


결국 다른 택시 승강장에서 내렸다..

정차한 택시를 타려고 보니 여자 운전사가 화장하느라 바쁘다..

기다리니 다른 택시가 왔다..60대후반 기사

"창의문 갑시다..윤동주 문학관앞인데."

"몰라요" 그리고 가버린다..


3번째 택시..역시 60대 후반 기사..

"창의문 갑시다. 윤동주문학관 앞인데"

"모르는데요"

"내비 찍어요" 이 기사는 내비를 찍을 줄 안다..

광화문 7차로에서 내비는 좌회전 하라는데 자꾸 우측으로 간다..

" 좌회전 해야지요"

" 혹시 몰라서 우측에 서서 확인하고 가려고요"

헐..


이것이 2017년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택시 운전사의 실상이다..

택시 기사 자격시험을 치르던지, 택시기사 정년제를 하던지 해야지...원

우리나라가 관광으로 먹고 살 생각은 까마득하다..

다른 사람에게 말햇더니, 요금 거리가 짧은 승객을 태우기 싫어서 모르는체 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만.. 


 

하여간 북악산 구간 시작점인 창의문( 윤동주문학관 건너편)에 도착했다..

인조반정때 반정군이 세검정에 모여 창의문으로 돌격햇다..

일명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성벽길은 북악산 등산로처럼 오르막 계단이다.. 


 

 

지나가면서 볼 때 웅장한 모습때문에 상당히 높으리라 생각했는데, 높이는 참 소박한 342m..


 

 

 

 

 

정상에서 경복궁과 남산. 관악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본전은 충분히 뽑앗다..

북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집을 보라고 외치던 그 시절로부터 40년이나 지나 북악산 정상에 서본다..


 

 

 

 

 

 

 

수도 이전 논란이 나올 때마다 생각한다..

수도란 편의 주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성벽의 성주괴공을 메꾸는 노력이 멋진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혜화문까지 갈까하다..지도에서 성북동 지역의 심우당, 간송미술관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동행은 길상사를 추가한다..

하여 성북동으로 내려간다..


 

하여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양도성 4대 구간을 모두 돌았다..

 

<오늘 걷기> 창의문 - 북악산 정상 - 청운대 - 백악곡성 - 숙정문 - 말바위 - 암문  약 5km 

 

 

 

 

추석날 오후 걷기..길 안막히고 적당한 거리를 갖춘 코스를 찾다가 수통골로 향했다..


 

이곳은 야유회 행사로 몇번이고 왔는데, 주로 빈계산으로 올라 성북동 삼거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이용했던 터라..

이번엔 입구 - 성북동 삼거리 - 금수봉 - 금수봉 삼거리 - 화산계곡 - 수통폭포 코스로 걷기로 한다..


 

 

 

입구 계곡길은 데크로 잘 단장되었다..


 

 

 

 

 

 

수통못을 지나 금수봉 삼거리로 오르는 임도도 걷기 좋은 곳이다..


 

 

삼거리 마지막에 놓인 계단..

이것이 예고편인 줄 그때는 몰랐다..


 

삼거리 안부에서 잠시 쉬고 금수봉으로 오르는 길..

계단의 연속이다..

연휴에 계속 걷는 중이라 오늘은 가볍게 걸을려고 잡은 길이 제데로 코가 꿰어 버렸다..


 

 

도덕봉과 옥녀봉의 뒷통수를 보고..

 

 

 

오르고 오르면 넓은 전망대..거기서 한밭이 아닌 아파트밭을 만나다..

 

 

 

아침산보하던 갑천이 실개천으로 휘돌아 나간다..

뒤에 병풍처럼 선 산이 계족산이고..

 

 

 

식장산은 뾰족침으로 금방 들통이 나는데

보문산은 두리뭉실하니 긴가 민가하고..

 

 

 

산장산을 사이로 진잠과 성북동이 팽팽히 맞서네..

 

 

 

 

멀리 계룡산 천왕봉이 보이니 이곳이 계룡산 국립공원 범주에 들어가는 이유를 알겠다...

 

 

고생끝에 금수봉에 도착...

정자에다 궁시렁 보따리 다 풀어놓고 떠난다..

 

 

 

금수봉 삼거리 까지 내리받이는 워밍업이었고..

 

 

 

그 이후 내리받이는 급경사..지도에 힘든 구간 표시를 한 이유를 알겠다..

 

 

화산계곡에 다다라야 계단이 끝난다..

사실 화산 계곡을 보려고 온 것인데..쓸데없이 아까운 무릎만 혹사시켰다..

 

 

수통폭포에서 여름의 미련 다 떨치고 간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오늘 걷기> 대전 유성구 봉명동 수통골 입구 - 수통못 - 성북동 삼거리 - 금수봉 - 금수봉 삼거리 - 화산계곡 - 수통폭포 - 입구  약 6km

 

 

내비에 명량..울돌목을 치고 갔더니 찾을 수 없었다..

우수영관광지라고 된 곳으로 갔더니 거기서 명량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곳에 고뇌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울돌목 위로 진도 대교가 지나간다..

그 아래 거센 물결은 여전히 흐르고 잇다...

 

 

 

 

 

 

 

왕이 사령관을 해임하고 고문하는 사이 그가 구축한 막강 함대는 격침되고 용장들은 전사하엿다..

겨우 수습한 배 12척..소량의 무기, 군사..

어찌 할 것인가??

왕은 수군을 폐지할 것이니 육군으로 싸우란다..

 

 

 

명량의 거센 물소리를 들으며 몇날 며칠을 고뇌하엿다..

 

 

 

 

 

 

1597년(선조 30) 9월 16일..

그는 서진하는 133척의 일본 함대를 여기서 13척의 배로 막아 섰다..

그나마 대장선 1척외에 다른 배는 뒤에 주춤거리고 있다..

 

 

 

단기필마 신세로 그는 분전한다..

그리고 부하들을 독려한다..

 

 

 

 

 

 

 

천행(天幸)..그의 표현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천명을 받드는 자가 할 수 있는 겸손한 표현이다...

그러나 어찌 천행 뿐이랴..

그의 고뇌가 없었다면 천행이 어찌 있었겠는가??

 

 

 

 

명량에서 고뇌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허기가 져서 들어간 식당에서 헤초 비빕밤을 맛있게 먹는다..

주인장이 명량에서 숭어를 뜰채로 잡는 사람인가 보다..

저런 실력이 명량해전의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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