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휴가를 계획하면서 숙소를 어디에 정할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팔영산 자연휴양림에 접속해보니 빈 방이 있더라..

기막힌 우연..더구나 팔영산 중턱에 위치에 시원하고 등산에도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엇다..

 

 

첫날 봉래산 신선들이 내려와 팔영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광은 참 아름다웠다..

노자가 말하는 현빈(玄牝)이란 이런 곳을 추상화한 것이 아닐까? 

 

 

 

 

숙소에는 에어컨도 있고 화장실 물도 잘나온다..

아쉬운 점은 침구 소독을 잘 했으면 좋겠다..뭐가 자꾸 굼실거려 자주 긁었다는..ㅎ

 

 

팔영산 등산은 마지막 날 아침에 오를 예정으로  2일째 일정을 시작한다..

거금도로 가는 도중에 들판에서 바라본 팔영산의 실루엣은 참 멋졌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 5시 30분에 팔영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 날 비예보가 있어 정상에만 다녀오기로..

 

 

 

 

길은 신작로로 처럼 잘 나잇고 1.2km만 올라가면 안부...

 

 

 

안부에서 깃대봉가는 능선길에는 다도해의 풍광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툭터진 풍광을 바라보는 기분은 날아 갈듯하다..

 

 

 

 

 

 

 

 

깃대봉에 앉아 붉은 해와 연무 속에 잠긴 섬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마음속 번뇌마저 씻어준다..

 

 

번민하는 자, 삶에 지친 이여..

깃대봉 정상으로 오라..

 

 

 

저그가 적취봉인갑다..

 

 

 

 

좀더 열심히 발품을 팔면 이런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잇다...

 

 

거금대교로 가는 길에 보는 팔영산의 북쪽 모습..너무도 사랑스럽다..

 

 

 

 

 

 

아직 저에게는 1곳의 관광지가 남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표현을 패러디하며 스스로를 달랜다..

그래..발포로 가자..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서 첫 근무지인데 어찌 안 볼쏘냐..


 

발포는 참 작은 포구다..

35세에 한양 훈련원 봉사로 8개월 근무하다가 충청도 해미의 병마절도사 군관으로 부임..9개월후 이곳 발포의 만호(종4품)로 부임한다..

1년 8개월후 무기검열 과정에서 모함보고로 파직되었다가, 4개월후 훈련원 봉사(종8품)으로 강등 복직된다...


 

 

이곳 발포진에 주둔 병력은 얼마였을까?

이순신 장군은 임진전란이 일어나기 1년 전(1591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주로 고흥지역에 있는 1관 4포를 순회하며, 군비확충 및 판옥선을 개조해서 거북선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1관 4포의 전력은 판옥선 11척과 거북선 1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수군 병력은 1100∼1400여 명이었단다..

그중 발포에는 판옥선 2척과 거북선 1척이 있었다..

대략 판옥선 1척당 정원은 130명 정도 된다..


 

 

 

 

충무사의 사당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보지 못햇다..

평소 참배객이 들어 갈 수 있게 관라해주기 바란다..

 

 

충청도 해미병영에서 모범적으로 군관생활을 하던 이순신은 충청병사의 추천으로 발포만호(종4품)으로 발탁 승진한다..

이를 시기하여 모함이 끊이지 않았다..

전라감사 손식이 순시하다가 흥양현에 이르자 발만만호 이순신을 불러 진서를 강론하라 명한다..

일종의 실력 테스트..

이순신이 진서를 강론하고 진도를 그려가며  설명하는 것을 보고 소문과 다르다고 오히려 칭찬..

직속상관인 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하여 발포진 안마당의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명하자, 공물임을 들어 명을 거부..

후임 좌수사 이용에게도 찍히고..

무기 검열을 나온 서익은 훈련원 근무시절의 악감정으로 모함하는 보고를 올려 이순신을 파직에 이르게 한다..

 

 

충무사의 공중수도가 거북선이다..

왕년에 발포에 주둔하던 거북선을 추모하는 것인지...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순신의 전라 좌수영 함대가 출진한다..

1592년 5. 7. 첫 전투인 옥포 해전에 흥양현감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사도첨사 김완, 여도권관 김인영, 발포만호 황정록 장군 등 1관 4포 장수들이 참전하여 승전에 일조한다.. 그중 경장(조방장)으로 출전한 정걸은 고흥군(흥양현) 포두면 출신으로 전공을 많이 세우고 이미 수군 수사까지 역임한 사람이었다..그는 이후에 충청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행주대첩시 한강으로 진입하여 권율장군에게 화살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는 1585년 고령으로 관직에서 사임하고 귀향하였으나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에 83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순절한다..

그의 아들 정연은 고흥 의병을 이끌고 고창 흥덕 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하고, 손자 정홍록도 1년후 흥덕 전투에서 전사하였단다..

 

 

 

 

공과 사가 엄격한 이순신..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우리나라에서 벤치마킹할 사람이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총 6차례 흥양(고흥)을 다녀간다..

 

 

 

 

 

발포진성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에 백로가 가득하다..

청렴한 이순신 장군의 깨끗함을 흠모하여 모여들엇나?

 

 

한 남자가 있었다..

남들은 태평성대인양 흥청망청 놀고 지낼때 그는 원칙대로 근무하고 실력을 닦았다..

실력으로 시비,질시, 모함을 넘어서고 나라를 구했다..

 

 

 

 

연홍도 구경을 마치고 12시 30분 배로 나와 금산면 소재지에 김일기념체육관을 찾았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인기 절정을 달리던 프로 레슬링..그 정점에 김일이 있었다..


 

 

 

당시 레슬링 선수들은 장기가 있었는데, 천규덕은 당수춉, 장영철은 드롭킥..김일은 박치기로 유명했다..

상대방에게 몰리다 마지막 순간 박치기로 승리하는 김일의 레슬링은 인기 절정이었다..

그러다, 국내파, 해외파의 갈등이 폭발한다..

장영철 대 오쿠마의 경기에서 오쿠마의 공격에 당하자 장영철의 제자들이 오쿠마를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장영철의 "레슬링은 쇼"라는 발언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레슬링의 쇠퇴를 자초한다..

원래 프로레슬링은 사전 합의에 의해 승부를 하는 방식이 주류인데, 가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합의가 파기되고 실전이 벌어지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를 시멘트 매치라고 한다..

 장영철은 이를 김일이 사주한 것으로 생각하여 두 사람은 불화한다.. 


 

김일..그는 거문도 금산면에서 1928년에 태어났다.

1m 80의 건장한 체구에 씨름하여 상으로 소를 타는 재미로 살던 그는 어느 날 역도산이 실린 잡지를 보고...레슬링을 배우기 위해 1956년 일본으로 밀입국한다..

불법체류자로 유치장에 갇힌 그는 역도산에게 편지를 보냈고, 불쌍히 여긴 역도산이 신원보증해주어 풀려나 그의 제자가 된다..

역도산이 박치기를 특기로 개발하라고 권유하자 그는 맹렬히 단련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63년 WWA(세계프로레슬링협회) 태그챔피언에 올랐다. 그해 역도산이 의문의 사망을 한다..

그이후 그는 귀국하여 장영철, 천규덕과 함께 프로레슬링의 붐을 조성한다..

노래는 남진과 나훈아, 레슬링은 장영철과 김일..바둑은 서봉수와 조훈현 이런 식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장영철의 쇼 발언 파동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선수로 활동한다..

그리고 1985년 은퇴한다..경제적으로는 사업 실패로 말년에 곤궁하게 살았다..

박치기 후유증으로 투병생활 하던 그는 죽기 직전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영철이 91세 노모와 함께 김해의 한 병원에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지금 만나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며 휠체어에 의지해 김해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화해했다..

"장영철은 '내가 철이 없었다'고 후회했고, 김일은 '사실 후배가 한 번도 찾지 않았는데 내가 왜 먼저 찾아야 하나란 생각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55782


6개월후 장영철은 사망하고, 같은 해에 김일도 사망하였다..


 

거문도 둘레길 구간 중 연소해수욕장 - 옥룡마을 - 익금해수욕장 - 금장해수욕장을 걸어 볼려고 했다..


 

우선 점심을 해결하려고 식당을 찾아 보니 연소 해수욕장 부근에 횟집이  검색되어 갔더니, 영업하지 않는다..

부근에 아무런 식당이 없다...대략 난감..

해수욕장 구조대 분들이 중식당 배달된다고 추천..사천짜장 시키고 구조대 천막에서 점심해결하도록 배려해주니..

구조대분들 너무 고맙다..

물에 빠진 사람뿐 아니라 인생사 어려운 사람도 구조해주는 구조대도 필요하다..ㅎㅎ 


 

식사후에 걸으러 나섰다..

뜨거운 햇살은 화살 처럼 쏟아져 꽃히고 땀은 비오듯하는데, 어렵쑈, 길은 그늘도 없이 그저 포장길의 연속이다..

 

 

 

 

 

더구나 큰 찻길로 이어지기에 거문도둘레길 걷기는 포기했다..


 

 

 

그러나 아쉬워 차로 거금도를 일주한다..

익금 해수욕장을 걷고, 몰디브 까페에서 옛날 팥빙수를 먹고..


 

 

 

 

 

 

거금생태숲 공원으로 갔다..

숲에서도 더위는 피할 수가 없었다..

동행을 거부한 사람은 차안에서 자고, 홀로 하이에나 처럼 그늘과 시원함을 찾아 헤멘다..

그러나 킬리만자로의 표범 처럼 높은 곳(적대봉)으로 오르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았다..ㅎ


 

 

 

 

 

 

 

거문도에서의 마지막 희망을 거금대교에서 자전거 타기에 걸었다..


 

 

 

거문대교는 2층으로 상층은 자동차도로, 하층은 보행 및 자전거 도로라고 한다..

소문듣고 찾아와 자전거를 빌려 거문대교 왕복 4KM를 자전거로 즐기고 망고 팥빙수 제대로 먹으려고 했는데..

거문대교 휴게소에 도착하니, 월요일은 자전거 대여 쉰단다..

** 월요일 주의보** 많은 시설이 휴관한다는 거..ㅎ

띵..

더위가 솟구친다..


 

 

전날 외나로도에서 팔영산 자연휴양림 숙소로 가는 도중 해창만 오토캠피장 부근에서 장어탕으로 저녁식사..

9시부터 자고 일어나 어슬렁 거리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 다시 같은 곳에 가서 생선구이로 아침식사..

그리곤 거금도 신양선착장에서 연홍도로 가는 배를 타려고 출발..

휴가 전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하다 알게 된 미술관여행 코스의 섬 중의 섬..

 

 

 

그런데, 자세히 보지 못한 탓에 10시쯤 도착하니 12시 30분까지는 배가 없단다..

엉? 이런 황당한 일이..ㅜ.ㅜ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압맛만 다시고 돌아가려다가 밑지야 본전이지 하는 심정으로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기다리란다..바로 오겠다고 한다..

 

 

정말 저쪽에서 배가 오고 있었다..ㅎ

 

 

 

 

알고 보니, 아침 일찍 들어간 팀 6명이 특별 요금을 주고 나오려는 참에 우리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우연득작이라..특별 배편을 얻어탔는데, 더구나 배삯도 할인 해준다.. ㅋ 날씨복과 여행복은 못말려..ㅎ

 

 

 

 

고흥 유명인사 중에 축구의 박지성이 있다..

 

 

 

 

 

 

박치기왕 김일도 고흥 거금도 출신이다..

이 연홍도에는 김일에게 예금을 유치하러 찾아갓다가 그의 제자가 되어  레슬링 선수가 된 사람이 있다..그 사람 백종호은행지점장까지 승진하는데, 영화 반칙왕의 모델이다..전에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각종 설치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잇다..

 

 

 

 

이정도 매미 몇마리가 몰려 들면 봉래산 용송도 쓰러질 법하다..ㅎ

 

 

 

 

 

 

그대에게 보내는 백만송이 장미 중 1차 선적분..ㅎ

 

 

여기서 감곡의 봄을 만난다..

감곡면 사곡마을에서 만났던 복사꽃을 그리던 화가 아닐까?

 

 

 

 

삼복더위에 만나는 코스모스..음양의 조화 속을 어이 막으리..

 

 

 

 

 

 

이 붉은 양철의자에 앉다가 궁딩이 델뻔했다는..ㅎ

 

 

 

잡초와 덩쿨을 헤치고 찾아간 곳의 허망한 결말..

 

 

 

 

 

 

산티아고 노인이 잡앗다가 상어에게 띁긴 참치가 태평양을 건너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나 보다?

 

 

 

 

사랑..행복..꿈...이런 것이 사람의 동물에서 신성으로 나가게 하는  도구이다..

 

 

 

 

 

고양이도 행복하게 웃는 그런 세상이 될 때까지..

 

 

때론 생활도 설치 작품처럼 보일 때가 있다..

 

 

동백의 열매는 무엇에 쓰나?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알겟다..

여기야 말로 별천지 용궁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12시 반배에 맞춰 환송하러 나온 갈매기..

 

 

 

 

사랑..행복..소원..꿈..이런 것이 그리워질 때 너를 생각할께..

연홍아!!

 

 

 

신선 자격으로 외나로도 봉래산을 방문하러 가는 길..

목적지를 지척에 두고 신선도 배가 고프다..이슬만 먹고 사는 자는 극소수 중독자뿐..

하여 고흥읍으로 내려서다가 초입에서 만난 식후경..이름도 내마음을 알고 있네..

냅따 들어갔더니 아니나 달러, 정갈한 밑반찬이 눈을 당기더니 메인 음식은 노란 카레 영양 돌솥밥..추천한다..들려보시라..

 

 

금강산(=봉래산)도 식후경이란 말..틀림없다..식후경에서 밥먹고 봉래산으로 간다..

 

 

운전하다 중간에 후진하긴 처음이다..

나로대교에 운무가 걸쳐 신선세계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신선자격증을 받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광경일까? 다른 차들은 그냥 지나가버리네...ㅎ

 

 

외나로도 무선국 (내비-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산212- 14)앞에 주차..

 

 

 

 

산길을 가파르지만 그늘 속이라 좋다..

 

 

 

틈틈히 선사하는 툭터진 풍광에 비오듯하는 땀도 저절로 식는다..

 

 

저 아래 우주과학관이 보인다..

 

 

 

 

또다시 시야가 터지더니 구름 위의 신선세계로 올라왔다..

신선이 되어 신선세계로 올라오니 알겠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사바 세계가 아름답다는 걸..

그래서 환웅도 지상으로 내려왔고, 하느님도 지상으로 아들을 보낸 것이라고..

 

 

 

누구는 백두 설산을 그리워하여 고산준령에서 헤메고 다닌다지만, 나는 이런 운수행각이 더 좋다..

 

 

 

저 아래 편백나무 숲이 폴리스 장창부대처럼 정열하여잇다..

 

 

 

 

 

신선급 봉래산의 정상은 마치 덴마크 의회처럼 단촐하다..

국력에 비해 호화 대우를 받는 청구의 의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용송이 있었다는 이 곳..

우주센터가 들어선 후 기력이 쇠진하더니 매미에게 쓰러졌단다..

얼마나 무서운 매미였는지 알겠쥐..ㅎㅎ

 

 

 

 

편백의 숲에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편백의 숲은 짧게 스치고 무선국으로 가는 숲길로 가야한다..

 

 

<오늘 걷기> 무선국 - 봉래산 정상 - 시름재 - 편백숲 - 무선국 약 6km

 

 

 걷기를 마치니 5시 10분 문닫기전에 우주과학관으로 향한다..

 

 

 

신선 자격을 얻어 봉래산도 올랐으니 달나라 광한 청허부로 가서 옥황상제를 알현하기로 했다..

하여 우주복을 입고 로켓을 타고 달나라에 무사히 착륙..

어?? 아무도 없네..

옥황상제께서 어디로 이사가셨나?? 화성인가?

 

 

 

장마비의 예보..

전날 새벽에 천둥 번개 속에 비가 주룩 주룩 내렸다..

이부자리 속에서 오전 도리깨질은 못하거니 생각하고 모임 장소로 갔다..그런데 비가 그치고 동행들의 권유에 어떨결에 도리깨질에 나섰다..

그런데 비 한방울 안맞고 시원하게 잘쳤다..


오늘..어디로 가나?? 궁리 끝에 괴산의 계곡과 완주의 수목원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일기예보를 분석하니 괴산은 오전에 비가 오고, 완주는 흐린 날씨..완주로 결정..

신의 한수 였다..

그날 청주, 괴산, 천안 지역은 물폭탄이 떨어졌다..

완주는 빗방울 한두방울 흩날리다 말았다는...

날씨복은 관찰과 분석에서 출발한다..

예부터 위인은 "위로는 천문에 정통하고, 아래로는 지리에 통달해야"한다는 말이 있지..ㅎㅎ 


 

완주 대아수목원..그러고 보니 비올 때 자주 온 기억이 난다..


 

 

저 멀리 대둔산의 줄기를 감상하며 임도를 오르다 보니  금낭화 군락지에 이르렀다..

여기서 수목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다가 다 지고 난 금낭화 군락지에 숨어 잇던 모기, 벌레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등산로로 접근해 내려가다 보니 금낭화 군락지 입구와 이어지는 사거리에서 수목원으로 가는 나무데크를 만났다..


 

 

오랜만에 옛기억만 가지고 오니, 임도와 산책로로 혼동하였다..순환임도를 따라 계속가다 보니 인파가 많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확인하니 산책로로 올라가지 않은 탓이다..

산책로는 순환임도보다 고도가 높은 중턱에 난 오솔길이다..


 

 

그래서 다시 산책로로 오른다..제법 한참간다..

가다가 산딸기 따느라 모기에게 뜯기고..ㅎ


 

저기 제1전망대가 보인다..


 

 

배배꼬인 나무를 러브송이라 명명했다..

요즘 사람들 관음증이 있어서 얽히기만 하고 야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나무들이 서로 멱살 잡고 시비하는 "시비송" 같은데..ㅎㅎ


전망대 600미터 전 탁자에 앉아 우아한 음악을 들으며 점심을 먹고..전망대에 오른다..


 

한 가족이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북쪽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한 걸 보니 청주, 괴산에 물폭탄 투하중이었나 보다..ㅎ


 

 

전망대에서 동상저수지로 흐르는 물길을 보다가 돌아가는 길에 저 강물에 다리를 담그리라 맘 벅었는데..


 

 

아니 웬걸..수목원안에 오묘한 곳에 흐르는 물길에 자리 잡고 얼굴 씻고, 발을 담그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시원한 마음에 꽃들이 피어난다..


 

 

 

 

 

 

 

이름도 이쁜 꽃기린..

몸체는 무시한 가시...

초등생 살해한 소녀를 보는 듯하다...ㅎ


 

 

 

 

이렇게 사랑으로 키워야할 아이들을..성적과 등수..결과..성취해야할 과제로만 키운 탓이 아닐까?

그녀들이 자신들의 적성을 찾아 좋아하는 일을 하였다면 그렇게 가시가 돋지는 않았으리..


 

인간을 생각한다..

일단 고생할 땐 삼시 세끼만 먹어도 족하다고 하였지..

이단 고생을 면하면 옆집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삼단 말을 사서 타게 되면, 경마잡히고 싶어한다..

비교심을 버려라..

그러면, 일류 대학병이 사라지고, 성형 중독에서 벗어나고, 브랜드 사대주의에서 해방된다..

자식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게되고, 그러면 엉뚱하면서도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런 중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기업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다른 사람과 하모니를 이루면 세상은 더 밝아지리니

헬조선, 흙수저 같은 자기 비하에 빠지지 마라..


 


<오늘 걷기> 탐방안내소 - 우측 청색 임도 길 - 12번 - 10번(현위치)- 분홍색 순환 임도 -  22번에서 산책로로 오름 - 노란색 7번 - 1번(전망대) - 하늘 색 임도로 하산 - 정문 약 10km

 

 

 

 

동네 민박집에 남자만 10여명이 뒤엉켜 잤다..

혼자 자면 모기에 몇방 물렸을텐데, 여럿이 자니 모기에게 뷔페식이었나 보다..

핏줄 나쁜 사람은 거들떠 보지않는 모기의 편식 습관인지, 암모기라 총각만 좋아하는 취향 때문인지 하여간 모기 한방 안물리고 잘잣다..

 

 

식전에 일어나 출출하여 옥수수 1개, 천도복숭아 1개를 먹고..

다시 탐방안내소에서 북어국으로 아침식사를 주는데로 다 먹었더니 과식이 되엇다..

 

 

 

 

 

버스를 타고 출발장소인 동수곡 삼거리까지 이동..

 

 

 

오늘 걷는 금단비길은 숲 해설사가 안내하기로 했다..

 

 

 

 

넓고 평탄한 길과 좁은 오솔길 중에 선택하란다..

우리는 좁은 길로 가라고 배웟다..

흐뭇한 미소를 짓으며 말한다..

오솔길은 담비가 다니는 길이라고..

 

 

 

족제비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다..

황갈색이라 금담비 + 길..이렇게 작명했단다..

 

 

이 넘은 여기 저기 굴을 파놓는 습성이 있단다..

 

 

해설사의 유머가 일품이다..

남편이 자기 부인은 남에게 소개햇다..

"나의 로또입니다"

"아니, 그렇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까?"

"아니요, 한번이라도 맞아 본 일이 없습니다" ㅎㅎ

 

그래도 직설화법으로

"우리 사이?"

"평생 웬수"보다는 낫다..ㅎ

 

 

손에 들고 잇는 것은 멧돼지 턱뼈다..

멧돼지는 잡식성이라 산에서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사람도 공격하여 잡아 먹을 수도 잇는데, 뼈도 한조각 남기지 않는단다..

 

멧돼지는 영리하다..

참나무 중에는 굴참나무와 상수리는 꽃이 2년마다 핀다. 즉 꽃이 피고 다음해에 열매를 맺는다..

멧돼지가 가다가 상수리 나무 꽃이 가득 핀 것을 보면 그 수확량을 예측하여 새끼 낳는 숫자를 조절한단다..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존에 있어서는 사람보다 더 우수한 두뇌 아닌가?

 

참나무의 종류는 6가지

1)묵을 만들면 맛이 좋아 꿀밤이라 불리는 상수리 나무,

2) 와인 코르크, 굴피집의 재료가 되는 굴참나무

3) 짚신 밑창에 깔았다는 신갈나무

4) 떡찌는데 깔았다는 떡갈나무

5) 단풍 잎이 오래간다는 갈참나무

6) 잎과 열매가 가장 작은 졸병이라는 졸참나무..

우리나라 수종의 60%가 이런 참나무란다..

 

 

참나무도 암에 걸린단다..

가지 수관에 무슨 덩어리가 생겨 말라 죽는다..

 

 

 

소나무의 상처..

일제시대..석유금수에 시달리던 일제가 석유대체품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 송진 공출 노역을 시켰단다..

물론 해방후에 일부 사람들이 배운 도적질을 계속하기도 했고..

 

 

 

 

참나무와 소나무의 우정..밑둥 공존..

 

 

환경보호 체험시간..

사진을 찢어 다시 붙이기...그리고 그 의미를 물어본다..

해설사의 설명은 이렇다..

환경은 훼손하기 쉬워도 복구는 오래 걸린다.. 임시 복구하더라도 완전 회복이 어렵다..

 

 

걷는 중간에 일행들이 지고온 간식을 강제할당한다..

왈  "먹을 의무가 있다"ㅎ

하여 몇첨 먹었다가 목에 까지 찬 느낌..생미도 오르고..헐

점심시간에는 탐방안내소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지 않고 혼자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숲과 대화를 나눈다.,

 

트레킹이나 등산에 왜 그리들 음식을 가득 가지고 다니는지..

아마 60-70년대 배고품이 몸속에 지문처럼 새겨져서 그렇지 않을까?

요즘 풍요 속에서 자란 요즘 20-30대 들은 그렇지 않겟지??

 

 

 

소나무..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나무..애국가에도 나오고..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끼우고, 죽을 때는 널과 칠성판을 만드는데 쓴다..한국 사람의 생사에 함께하는 나무..

옛사람들이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이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이런 소나무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우리 소나무의 명칭이 영어명으로는 "재패니즈 레드 트리"란다..

일제 강점기에 그 넘들이 세계 학게에 그렇게 등록해 놔서..

적송(赤松)이란 말도 일제의 잔재라고 싫어한다..

그래서 금강송이라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중 소나무에 관한 시조를 노래로 부른다..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은 그로하여 아노라..


참 미성이다..

 

 

이제 숲길은 급경사로 내리꽃는다..그곳에 왕피천이 흐른다..

 

 

 

 

 

한농교육관 앞 다리 아래에서 다리를 식히며 휴식을 취한다...

 

 

 

 

 

땀을 식히고 이어지는 후반전..

왕피리의 전설이 이어지는 길이다..

거리고..

실직국 안일왕이 강릉 지역 동예국에 쫓겨 이 지역으로 피난 왔을 때 군량창고가 있던 지역이란다..


 

 

왕피분교에서 옛추억을 떠올린다..

수도가에서 "검사와 여선생" 영화를 이야기 하는 동행이 있었다..

나야말로 장동휘,김지미, 최무룡 주연의 그 영화를 보고 인생의 진로를 설계했던 사람이다..ㅎㅎ


 

신발장엔 왕피분교 어린이 실내화가 정갈하게 정리되어있다...

선생님 1분에 학생 9분?? 그 정도의 신발..


 

 

 

 

 

벼랑으로 이어지는 이길이 참 마음에 든다..

걷기꾼이 좋아하는 벼랑길이 이어지는데, 과거에는 수로엿다가 용도폐기된 것을 매립하여 길을 내엇다..


 

 

 

 

길의 마지막 실둑마을 직전 붉은 금강송 숲에 누워 잠시 심신을 비운다....

우리의 소나무..우리의 인생..우리 나라의 미래..

애국가에 소나무와 나라의 미래를 연결해 놓앗으니 우리 소나무 잘 가꾸어야 한다..


 

 

울진 왕피천 걷기 1박 2일

지옥과 천당을 오간 주말..

지옥은 짧고 천당은 길었다...

왕피천에서 깨달았다...

모든 것은 양면이 있다는 것을..

우환 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우환이 있다(憂中有樂, 樂中有憂).

책에서 읽은 한 귀절을  실감한 걷기 였다...



 

 


<오늘 걷기> 동수골 삼거리 - 숲길 - 한농교육관 - 거리고마을 - 실둑마을  약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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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왕피천 걷기..출발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가서 몸을 촬영했다..

포기하고 몸상태를 보기로 햇는데, 당일 새벽 4시 눈을 떳는데 몸이 견딜만하다..

무더위에 집에서 골부리고 지내는 것 보다 자연속을 걷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출발장소로 갔다..

 

 

대전에서 6시 15분에 출발하여 영덕 삼사공원 구경하고 울진 굴구지 마을에 도착하니 점심시간..

 

 

굴구지??

아홉번 산길을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굴구지 마을이라 부른단다..

 

 

송엽국이 한창인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들다 보니 예서체 글씨에 눈길이 간다..

군빈운집(君賓雲集)..

뭇 손님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전기줄의 제비..어린 시절의 풍경 참 오랜만에 본다..

 

 

 

오늘 걷는 길은 굴구지 -용소 - 속사마을 구간 중간에 회귀하여 물길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왕피천

 

왕이 피난 온 곳이란다..

무슨 왕??

안일왕이란다..

어디 왕인데??

삼한 시대  삼척 부근에 실직국이 있었고, 울진에는  파조국(波朝國)이 있었단다..

실직국이 파초국 을 합병한후 안일왕 시절에 강릉 지역 예국의 침락을 받자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애미랑재를 넘어 수하계곡을 지나

왕피천 지역으로 피난한후 산성을 축성했단다..그래서 왕피천이다.. 

 

 

산양, 삵, 담비, 멧돼지가 사는 곳..

 

 

 

 

 

 

 

 

 

 

물길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 잇다..

아예 구명복 까지 챙겨 입었다..

 

 

 

 

용소..출입을 막았다..

 

 

 

왕피천은 예술감각이 있다..

멋드러지게 물결을 그렸다..

 

 

 

 

 

 

 

 

용머리 바위..

왕년에 이곳에 오면 기가 눌려 지나지 못했다는 말이 거짓을 아닌 것 같다..

 

 

 

 

 

 

 

이 지점에서 회군하여 물길을 즐기며 내려 가기로 했다..

 

 

 

 

이렇게 물장난하며 놀 줄아는 이는 젊은 고양이다..

늙은 고양이는 눈동자만 굴리고 앉아잇다는..ㅋ

 

 

 

물길을 간다.

시원한 물이 빤스도 살짝 적시게 만든다..

조금만 구부리면 그냥 화장실이 될 수 잇다..ㅎㅎ

 

 

 

 

 

 

 

 

 

물길을 걷는 기분은 꽃 만난 나비 마음이라고 할까?

 

 

바위에 웬 십자가??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대한 계시인 줄 몰랐다..

 

 

 

 

이 곳 도강지점이 깊고 미끄러웟다..

절경을 찍으려다 미끄러지며 가슴을 다치고 카메라는 실종..물 속에 잠겨 잇었다..

다행히 카메라는 기억을 회복했으나 시력은 회복 여부가 불투명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주군을 종사하다 중상을 입은 카메라의 회복을 기원한다..

 

 

 

 

<오늘 걷기> 굴구지 마을 - 용소 - 상천 제2초소 - 용소 - 물길 - 굴구지 마을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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