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1. 추가 - 안나푸르나 트레킹 다녀와서 알게된 지식에 의하면, 비아그라는 고산증과 관련이 없음, 전용 고산증약이 있음>
모현으로 가는 길에 올 적에 들렀던 휴게소에 도착..
잠시 몸 좀 풀고..
이곳의 입춘방은 우리와 달리 칼러풀하고도 요란하다..
사업흥왕연연호(事業興旺年年好)..사업이 잘되어 해마다 좋아지길!!
그리고 안에는 모란꽃 그림으로 부귀를 기원하는 도장을 찍었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니..소심(小心)이라는 글씨가 많아서 궁금했다..
소심이라 작은 마음..글씨로 봐서는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뜻인데..
이 애들은 조심이라는 말을 소심..이라고 표현하는구나..
마음을 작게 가져 매사 주의하라..
중국이 소심(小心)이면 우리는 조심(調心)이다..
마음을 잘 조절하여 매사 주의하라..
그러면 일본 애들은 뭐라고 할까?
용심(用心)하란다..즉 마음을 잘써서 매사 주의하라..
동양 3국의 마음씀이 이렇게 다르니 국민성도 다 다르리라..
모현에서 푹 자고..다음날 대불(大佛)을 알현하러 5시간에 걸쳐 낙산으로 간다..
낙산에 다가 갈수록 농가들이 단정하다..
그런데 집마다 태극권하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저거이 무얼까?
한참후에 의문이 풀렸다..
팽조..壽(수)라는 글씨에 무릎을 탁쳤다..
아! 왕희지의 난정서에 나오는 팽조로구나..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觴爲妄作. 하여 생사가 하나라는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장수와 요절이 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겠다 .
여기서 "팽"이란 장수의 대명사 팽조를 의미한다..
팽조(彭祖)는 일찍이 요, 순, 우임금과 하(夏)나라, 상(商)나라를 거쳐 은(殷)나라 말기 주왕(紂王)때 이미 767세였으며 800여 세를 살았다는 중국에서 장수(長壽)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팽조는 평생을 살면서 49차례나 상처(喪妻)하였고, 54명의 자식들이 먼저 죽었다고 한다.
팽조는 양생법(養生之道)를 매우 중요시 여겨 마음을 맑게 비워두고 무위를 즐겼으며 의복에 치장하지 않고 멀리 유람할때 수레나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여행하였다고 한다, 일상생활 중에 말수가 적었으며 자신의 도술(道術)에 대하여 자랑한 적이 없었으며 항상 빙그레 웃는 모습이었다 한다. 늘 단정히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숨을 가늘게 하며 기공을 연마하였다고 한다.
기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무후사에서 악비장군이 쓴 출사표의 탁본을 구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드디어 무후사 입구다..
입구의 이름은 한소열묘..
살아 생전에 수어지교(水漁之交) ..물과 고기와 같은 사이라던 두 사람..
죽어서는 같은 장소에 추모가 된다..
중문을 지나니 악비가 쓴 출사표가 벽에 길게 서각되어 잇다..
악비의 서명이 선명하다..
악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송나라 수도 변경이 함락되는 정강의 변을 당하여 송나라가 남쪽으로 천도한 이후 중원을 회복하기위하여 전선을 전전하던 장수..
한 때 금군을 대파하여 중원회복을 눈앞에 두었으나 화친파 진회의 농간에 빠져 옥사하는 비운의 충신..
촉의 승상으로 국궁진췌하던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한 후에 받은 시호는 충무후였는데...
악비가 죽은후에 받는 시호도 충무왕..우리나라 충무공 이순신과 같이 3명의 "충무"자 충신들..만세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그 악비가 금군을 대파하고 중원에 진출하여 남양을 지날때 무후사에 들렀다가 밤새 제갈량의 출사표를 베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단다..
여진의 후예인 청나라 이전엔 중국 화하족의 영웅으로 존경 받아 악비가 진회를 발로 밟은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청나라의 제국주의 영토를 물려받아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현 중국에서는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단다..
가이드가 강조하는 2명의 장군..
첫째, 황충..백발의 노장..70여세의 나이에 유비의 한중 공략전에 참전.. 정군산에서 위나라 대장 하후연의 목을 베는 노익장을 과시..
활의 명수..그러나 유비의 관우 복수전에 출전하여 이릉전투에서 오나라 장수 마충의 활에 맞아 전사..
둘째, 조운..조자룡이다..
조자룡 헌칼 쓰듯한다는 속담의 주인공..무패의 상승장군..
사적에 비해 조상이 좀 약해보인다..당양전투에서 어린 아두(유선)을 구출하고..익주공략전에 공을 세우고..한중전투에서 위군을 대파하고..관우복수전을 반대하며 후방을 지키다가 유비를 구하려 진군하였고..제갈량의 1차북벌전에 70세의 노장으로 참전하여 철군시 후군을 맡아 추격하는 위군을 격파하고 군수물자까지 보전하여 철군작전을 완료..그후 병사한다..
그는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누구에게든 예를 갖춰 대했기 때문에 유비에게도, 제갈량에게도 인정받았다.
성관금석..정성이 금석을 뚫음이라..
업소고광(業紹高光)..대업을 이은 높은 빛..제갈량의 대를 이어 바친 충성을 말함이라..
한 소열제로 불리는 유비..
의동생 관우는 관성대제라는 신격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황제다..
유비의 조상 옆에 모신 상은 아들 황제 유선이 아니다..
유선의 5째 아들 북지왕 유심이다..
그는 위나라 등애가 성도로 진격해오매 항전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선 항복하기 직전 유비의 혜릉에서 자결한다..
의박운천(義薄雲天)
의리가 하늘의 구름처럼 두텁고 변하지 않는다..
후주 유선의 조상은 여기에 없다..
그는 항복하여 위나라 안락공으로 봉해져 편안히 여생을 마쳣기에 그에게는 의리가 없다..
좌측은 무장들,우측은 문신들의 조상이 안치되엇다..
이 곳에 올 때 비행기에서 본 영화 "철의 여인"의 대사가 생각난다..
생각을 조심하라..생각이 말에 영향을 미친다..
말을 조심하라..말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행동을 조심하라..행동이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
습관을 조심하라..습관이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늘어선 많은 인물들..그들의 생각..행동..습관..성격이 그들의 운명이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방통..봉추..
익주 공략전에 전사한 박복한 사람..
그가 생존하여 익주 공략에 성공하고 제갈량과 관우가 형주를 지키며 조조의 허창을 노렷다면 통일의 주도권은 유비가 잡앗을 것인데..
무후사..제갈양의 사당이다..
입구 주련..호위양보음(好爲梁甫吟)..
양보음 부르는 것을 즐겼다..언제? 벼슬전 백수 시절 18번..
남양에 밭을 갈던 백수 제갈량은 스스로를 연나라 악의와 제나라의 안영에 견주었다..
그런 그가 즐겨부르던 고향 제나라의 노래가 양보음이다..
보출제성문(步出齊城門) 제나라 성문을 걸어 나와 요망탕음리(遙望蕩陰里) 멀리 탕음리를 바라 보네. 이중유삼묘(里中有三墓) 마을 안에 무덤 세 개가 있어 누루정상사(累累正相似) 서로서로 꼭 닮았구나.
문시수가총(問是誰家塚) 이것이 누구의 무덤인가 물으니 전강고야자(田疆古冶子) 전강과 고야자라고 하네. 역능배남산(力能排南山)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내고 문능절지리(文能絶地理) 글은 능히 땅을 덮을 정도였지만,
일조피참언(一朝被讒言) 하루 아침에 헐뜯음을 당하였으니 이도살삼사(二桃殺參士) 두 개의 복숭아가 세 사람을 죽였네. 수능위차모(誰能爲此謀) 누가 그런 꾀를 냈는가? 국상제안자(國相齊晏子) 제나라 정승 안자로다.
전각에 명수우주(名垂宇宙)..이름이 우주에 드리웠다...
지붕위에는 포대화상이 웃음잔치 한마당이다..
제갈량 사후 500년뒤 당나라의 두보가 이곳을 찾아서 시한수 지었다..
촉상(蜀相)
丞相祠堂何處尋 (승상사당하처심) 승상의 사당을 어디에서 찾으리오 錦官城外柏森森 (금관성외백삼삼)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라네 映階碧草自春色 (영계벽초자춘색) 섬돌에 비친 푸른 풀 절로 봄빛이요 隔葉黃?空好音 (격엽황리공호음) 나뭇잎 사이의 꾀꼬리 무심히 노래한다 三顧頻煩天下計 (삼고빈번천하계) 삼고초려의 번거로움은 천하 위한 계책이요 兩朝開濟老臣心 (량조개제로신심) 두 임금 섬겨 나랏일 해나감은 노신의 충성심이라네 出師未捷身先死 (출사미첩신선사) 출사하였으나 이기기도 전에 몸 먼저 죽으니 長使英雄淚滿襟 (장사영웅루만금) 길이 후대의 영웅들 옷깃에 눈물 가득 적시게 하네
제갈량의 부인은 못생겼으나 현숙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 당시로서는 이레적으로 제갈량만이 첩을 두지 않고 살앗다고 한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죽을 때 제갈량에 이르기를, 유선이 재능이 있다면 보필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 천하를 잡으라고 유언하지만,
제갈량은 진심으로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한다..
이 사당에 아들 제갈첨(좌)..손자 제갈상(우)의 조상이 있다..
왜 이들이 자리할까? 족벌정치?
아니다.. 이들은 위나라의 등애가 검각에 주둔한 강유의 군대를 피해 마천령을 넘어 성도로 직공하자, 제갈첨, 제갈상 부자가 방어군 사령관이 되어 면죽성에서 위군을 방어한다..
선제께서 왕업을 시작하신 지 아직 반도 미치지 못한채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이제 천하가 셋으로 나뉘었는데 익주는 피폐해 있으니,
진실로 흥하느냐 망하느냐 위급한 때입니다. 그러나 모시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지사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 대개 선제의 두터웠던 대우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갚고자 함입니다. 진실로 마땅히 성스러운 폐하의 귀를 넓게 열어,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함으로써 지사의 의기를 넓히고, 스스로 덕이 없다고 여겨 의기를 잃고 충간의 길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중략)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전한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이 기울어지고 쇠한 까닭입니다.
(중략)
신이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갈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구하지 않았더니, 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힘써 일할 것을 허락하였더니 국운이 기울어짐을 만나 패군의 때에 임무를 받고 명령을 위급한 때에 받은 것이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임종하시매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신이 명을 받은 이래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탄식하며 부탁하신 일에 효과가 없어 선제의 밝으심을 해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들어가 이번에 남쪽을 평정하고 무기와 갑옷이 풍족하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버리고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인 것이요 손해와 이익을 짐작하고 나아가 충성스러운 말을 다하는 것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임무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도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키는데 실효를 거둘 일을 맡기시어 효과가 없으면 곧 신의 죄를 물어 선제의 영앞에 고하시고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 태만을 밝히시옵소서.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신이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지라, 지금 멀리 떠나기에 앞서 표를 올림에 눈물이 앞을 가려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