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란 "아름다운 말"을 뜻한다.

그곳 레저의 중심지..괴뢰메에 도착했다..

 

 

 

 

 

 

절묘한 버섯 같은 바위들이 즐비하고..

 

 

자유시간을 이용해 주변을 트래킹하고..

 

 

 

카파도키아 일대는 화산지대였다.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제일 높은 에르지예스산과 하산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쌓였다. 화산재는 응회암으로 굳었고,그 위에 용암이 흘렀다.

그뒤 기나긴 새월 속에 빗물에 바위층의 부드러운 부분이 씻겨 내려갔다. 바람은 흙부스러기를 날리며 지형을 바꾼다..

이런 기묘한 바위기둥 지형은 화산과 빗물 바람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물론 비와 바람이 계속되는 지금도 지형이 변하는 중일 것이다.. 

 

 

바위 들 사이 사이 사람이 살았던 동굴이 많다..

데린구유 지하 도시에 살던 사람이 자유를 맞이하자 이곳으로 이동하여 동굴을 파고 살았단다.. 

 

 

 

 

 

 

 

 

 

 

 

 

 

 

 

 마치 거대한 뱀 아나콘다가 산을 기어가는 모습.. 

 

 

개..토끼..낙타..모습을 한 기묘한 바위들..

 

 

양탄자 판매장에 들럿다..

 

 

 

 

누에 고치에서 실을 빼는 장면..

 

비단 양탄자 뿐 아니라 면,모를 섞어 짜는 양탄자도 있다..

요즘 만드는 양탄자에는 나르는 기능이 없어 대신 열기구를 타야하나..ㅎㅎ

 

 

 

저녁에 벨리댄스를 보러 갔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에서 유래한 수피댄스로 시작한다..  

 

 

이윽고..벨리 댄스.. 멀리서 봐서 그런지 뭐 야한 느낌은 전혀 없고..그저 민속 공연 같은 ..

 

그러나, 고단한 일정 때문에 맥주 한잔 마셨더니 졸려서 거의 졸았다는..

어떤 사람은 졸다가 옆 사람과 부딛치기도..

 

 

 

 카파도키아 지역에 와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지하 동굴도시로 유명한 데린구유다..

 

 

 

 

동네 한가운데 요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동굴 도시가 시작된다..

 

 

데린규유..란 말은 깊은 우물의 의미..

고대 철기문명의 여명기를 연 힛타이트족이 지하1층의 창고를 건설했다..

철기구로 석회암, 사암을 파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뒤 로마시대 기독교 박해을 피해온 사람들이 지하 8층의 동굴도시를 만들엇다..

그 안에 학교까지 있으니..

 

 

최대 3만명의 인구가 300년간을 거주하였단다..

이들은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에도 소식도 늦고 두려움도 겹쳐 상당기간 거주하다가 카파도키아 괴레메 지역으로 이동하여

지상 동굴생활을 하였단다..

 

 

 

점심은 항아리 케밥으로 먹엇는데..상당히 맛있다..

 

 

 

그리곤 터키석매장으로 가 아이쇼핑..

 

 

다시 비둘기집이 가득한 비둘기 계곡의 우치사르로 간다..

 

 

 

 

 

 

 

 

 

 

 

이지역은 작은 그랜드 캐년처럼 묘한 지형을 이룬다..

 

 

 

 

 

 

 

 

 

 

 

 

다음날 괴뢰메에서 즐길 열기구 모형을 보자..벌써 마음이 설렌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가는 길.. 

 

 

중간 휴게소에 들렀더니..열매와 향초가 가득한 가게..

 

 

 

 

해는 뉘엿 뉘엿..

 

 

길은 꼬불 꼬불 산길을 지나.. 

 

 

7시쯤 도착..식사를 하고..밤거리 걷기에 나선다..

 

 

밤중에 좌판이 벌어지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다녀봐도 인구 400만의 수도 치곤 좀 한산하다..

 

 

다음날 한국공원을 찾았다..

6.25 참전 터키용사 기념공원에 다보탑이 보인다..

 

 

 

 

기념탑을 둘러 6.25 참전당시 또는 그 이후 사망한 773명의 명단이 새겨져잇다..

지금도 462명의 전사자가 부산 유엔묘지에 묻혀있고, 그곳에서 흙을 가져다가 이 기념탑에 안치했단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피를 나눈 형제라고 지칭하고..여전히 우호감을 표시한다..

참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우리도 잠시 고개 숙여 묵념을 올리고 나온다..

 

 

 

저기 보이는 아타 튀르크 기념관을 들려야 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틀니를 숙소에 두고 왔다고 해서 되돌아 가는 바람에 들리지 못했다..

 

아타 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는 성을 가진 남자..

그는 무스타파 케말이다..

1차대전 당시 4개국 연합군이 침공한 갈리폴리 전투를 승리를 이끈 장군..

1차대전 후 오스만제국은 붕괴되고 영국, 그리스 등이 국토를 분점하자, 삼순시에서 거병..독립전쟁을 개시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 군을 격파하고 세브르 조약으로 열강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

술탄제를 페지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벗어나 정교분리와 세속주의를 채택..

여성교육을 강화하고 참정권을 부여..

공무원은 여성도 히잡착용을 금지..

터키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국민에게 성씨를 창립하도록 한다..

국회는 그에게 "아타 튀르크"을 헌정한다..

이혼후 독신으로 지내다가 전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귀천..

 

지금 터키에서 벌어지는 시위도 결국엔 이슬람원리주의와 아타 튀르크가 제시한 세속주의의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차를 타고 카파도키아를 향해간다..

 

 

한참을 가니 소금호수가 나온다..

 

 

 

 

 

 

 

 

 

소금호수에서 만난 싸이..

터키 장사꾼들 우리를 보면 말춤흉내를 낸다.. 

 

 

다시 길을 떠난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이제 지하 동굴 도시 데린구유가 얼마남지 않았다..

 

 

 

톱카프 궁전의 맞은편이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다..

동로마 부흥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건립한 성당으로 정식이름은 하기야 소피아 성당..

오스만 제국이 접수하여 약간 개조하여 성스럽다는 수식어만 터키어 아야로 바꾸어 아야 소피아 자미가 되었는데..

1935년이후에는 박물관이 되엇다.

 

 

사원의 첨탑은 미나레라 하는데..1개만 있는 곳은 개인이 세운것이고..2개 짜리는 장군이, 3개짜리는 국가가, 4개짜리는 술탄이 세운것으로 구별이 된다..

아야 소피아는 4개의 미나레가 서있어 술탄의 명에 의해 세운 것이 드러난다..

 

 

실내 바닥 대리석의 반들거리는 자국이 연륜을 말한다..

 

 

 

안에 들어가 넓은 돔아래서 명성이란 헛되이 붙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성모자의 황금 모자이크..

 

 

 

오스만은 이 성당을 완전 개조하려다 포기하고 이슬람적 요소를 가미하는 차원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여기는 손가락을 넣고 한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곳으로 사람들 길게 늘어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의 박석이 반들거리며 역사를 속삭인다..

 

 

2층에서는 여자들이 기도를 한다..

2층 정중앙은 노예출신으로 최초의 황후가 된 휴렘이후 황후들의 기도자리가 되었다..

 

 

우측은 세례자 요한이란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신을 믿는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또한 결정적인 차이는 삼위일체를 이슬람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에서 예수님은 예언자 중의 한 분이고, 마지막 예언자가 마호메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야 소파아 성당의 성화들이 보존될 있었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오스만이 벽화를 벗겨내려다 포기한 자국..

 

 

 

 

 

 

 

 

 

아야 소피아 맞은편엔 이를 모방한 블루 모스크가 서있다..  

 

 

 

아야 소피아의 관람을 마치고 보스포러스대교를 건너 앙카라로 간다..

이 대교는 평소 사람들이 걷는 것을 금지하는데..

우리일행이 떠난뒤 터키에서 시위가 벌어져 수만명의 시위대가 이곳을 걸어서 건너갔다고 한다.

 

 

 

이스탄불..

다시 돌아오는 날 또보자..

 

 

8박 9일간 터키, 그리스를 간다..이스탄불을 기점으로 터키를 중부를 관통하여 에게해에 이르고,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에 착륙 아테네를 거쳐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로드 투어..

 

 

 

일년에 한번 신선이 되어 대붕을 타고 구만리 장천을 날아 소요유를 즐기는 것..장자가 권하는 바 아니던가.. 

 

 

10시간을 날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말마라해를 만난다..

보스포러스해협과 다다넬스 해협 사이의 바다..말마라海..

 

 

참 평온한 곳이다..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낚시하는 사람..가족끼리 노는 모습..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이 정이 흐른다..

 

 

해변따라가는 길에 콘스탄티노풀의 삼중성벽의 유적을 만난다..

이 성벽은 동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축성한 성벽으로 훈족의 아틸라 침공에 대비하여 삼중 성벽으로 보수하여 난공불락의 성이 되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인 5.29. 그러니까 1453. 5.29. 콘스탄티노풀은 오스만제국군에게 함락되고 그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도시로’를 뜻하는 ‘이스틴폴린’에서 유래한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하긴 원래는 BC 6c 그리스 비자스 장군이 세워 비잔티움이라 불리었다니 이름도 세월과 권력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1453년 오스만제국 술탄 메흐매드 2세는 근위대 예니체리를 포함 15만대군을 동원하여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1세는 1만병력으로 삼중성벽에 의지하여 농성전을 전개..

오스만군은 헝가리 기술자가 제조한 신형 대포로 포격하고 땅꿀작전도 전개하여도 뚫지 못하자, 금각만 입구를 가로질러 설치한 동로마 군의 쇠줄을 피해 육지에 레일을 깔아 배를 이동시켜 금각만 안으로 함대를 진입시켜 포격하고, 일부는 서쪽 성벽에서 포격을 개시하자, 결국은 성은 무너지고, 난전 중에 동로마 황제도 전사하며 함락되고 로마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스케줄상 삼중성벽의 전모를 보지는 못햇다..자료상으로나마 보자.. 

 

 

 

 

 

인구 1200만에 서울시 2배의 넓이라는 이스탄불에도 로쉬아워는 피할 수 없다..

깨빵을 파는 모습에서 상습정체를 알수 있다.  

 

 

골든혼(금각) 식당에서 되네르 캐밥으로 식사를 하고..도시외곽 일단 숙소로 간다..

아침에 바라본 숙소 주변의 풍경..넓은 평원이 부럽다..

 

 

 

 

다음날 보스포러스해협 뱃놀이를 하러 간다..

골든혼(금각만) 건너편의 갈라타 탑이 보인다..갈라타탑은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풀을 침략하기 위해 세운 요새..

 

 

골든혼의 유래..

저녁 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든 해협의 모습이 소뿔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좌측으로 부터 보이는 사원은 예니 자미, 쉴레이마니예 자미, 셰흐자데 마흐메 자미.

자미..란 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명칭..

 

 

갈라타탑.. 

 

 

아파트 2-3채를 탑재한 크루즈..저런 배가 볓척 들어오면 관광지마다 북새통이 된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대교로 향한다..

 

 

제국의 쇠퇴기에 건축한 돌마바흐체 궁전..

 

 

 

 

 

저 멀리 보스포러스 해협을 열결해주는 2번째 다리도 보인다..

저멀리 가면 흑해..

 

 

  

   

 

뱃놀이를 마치고 돌마바흐체 궁전에 왔다..

제국의 쇠퇴기에 술탄은 막대한 돈을 호화 궁전을 짓는데 낭비하였다는..

 

 

 

 

 

 궁전 옆 돌마바흐체 자미..

 

 

 

 

한 그룹의 아이들..따라가는 어머니의 열정은 한국이나 똑같다..

 

 

이제 톱카프 궁전으로 간다..

 

 

톱카프 궁전 매표소..

톰카프 궁전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매흐매트 2세가 건설하여 400년간 제국의 왕궁이었다..

 

 

 

 

 

 

 

 

여기는 제1정원을 지나 중문에 해당하는 곳...

 

 

 돈 내고 촬영하라고 꼬시는 중

 

 

 

 

궁전의 전모는 이렇다..

 

 

 

 

 회랑에 걸린 역대 술탄들의 인장들..

 

 

 

저 사진은 오스만제국의 영토 확장도..

저 얼굴은? 시니컬하면서도 제법 웃기는 현지 가이드..

 

 

유물전시관은 입구부터 장사진이다..

 

 

 

 

 

요것의 용도는?

왕이 외부인사와 대담할 때 틀어 놓는 수도꼭지..

이유는 대화소리가 밖에 리지 않도록 대비한다는..

 

 

 

 

성에서 바라본 삼중 성벽의 편린..

 

 

 

 

중국의 청화백자는 푸른 문양의 도자기를 좋아하는 오스만제국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개발되었다는 주장도 잇다..

 

 

 

 

터키의 참새도 부산하기는 마찬가지..

 

 

 

 

 

 

궁전의 정문이 허접하다 생각했는데, 가는 길에 이곳이 정문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그렇지..

 

 

궁전을 나와 맞은편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로 간다..

 

 

라텍스 가게에서 흥정을 기다리는 동안  지도로 다녀 온길을 보앗다..

성도 - 도강언 - 문천 - 무현 - 송번 - 구체구 - 황룡(지도상은 어딘지 모름)..거리로는 2000km뛰었다는 이야기..

 

다음 기회 가능하다면, 서안 - 잔도 - 검각 - 정군산 (제갈량 무덤) - 미산(소동파 고향) - 아미산 - 성도-

 백제성 - 장강삼협 - 강릉(충칭) - 적벽 -남경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당시(唐詩)를 낭송할 수 있는 가이드를 대동하여 답사하고 싶다..

 

 

 

구채구에서 산 기념품..

복여동해(福如東海) 상이다.. 복을 동해바다처럼 많이 주는 신선이다...

 福如東海 長流水    壽如南山 不老松..

복은 동해로 흐르는 장강 처럼  많이 받고, 수명은 남산 소나무처럼 늙지 않고 오래 오래 살으라.. 

 

중국에 와서 느끼는 소감..

 

1. 올 때 마다 발전한다..

 화장실이 그 척도인데, 이제 관광지는 우리나라 수준에 근접햇다..

시골 변두리는 아직 60년대 수준인데,  그래서 아직은 하고 안심하고 돌아간다..

 

2. 가이드가 중국의 문화를 설명하는데, 군인 우대, 제대자 직업보장 이야기를 듣다보니 중국은 아직 사회적으로  우리의 70년대 수준이라 느낀다..

그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박통시절을 연상햇기에..군출신 낙하산 인사, 유신사무관, 군필자 가산점 제도 등 이런 제도들은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개선되거나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되었다..

중국에게도 빈부격차, 노사갈등, 민주화의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3. 우리나라는 김춘추같은 인물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중국을 설득해야 가능하고, 실제 중국과의 외교혁명은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5천년 동안 중국의 압제를 벗어난 때는 역사상 몇번일까?

광개토대왕시절, 고려 전기, 그리고 현재 50년..

이런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하여 나라를 통일하고 동양3국의 통합시장의 주도권을 잡아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되는 강소국으로 거듭나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사천성의 성도..

이백의 촉도난이란 글에 보면..잠총과 어부가 나라를 열었다고 한다..그때가 중원의 은,주 시대란다..

진나라 이후 성도는 사천성의 수도였다..

사천성의 인구 8700만명..성도의 인구만 1천만이 넘는다..

 

 

 

 

 중국 4번째인데..올 때마다 발전하고 물가가 오름을 느낀다..

이제는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가 주류다..

앞으로는 자동차 홍수가 나겟지??

 

 

 

삼륜오토바이..손님을 태우기도 하고..미니스커트 입고 삼륜 오토바이도 이색적이네..

 

 

 세련된 샤오지에가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빈부차이가 심해지는 중국..

우리가 겪었던 노사갈등..민주화 열풍..을 지나가야 할터인데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다...ㅎㅎ

 

 

중국 개도 대륙적 기질이 있나보다..

주인을 충의와 기량으로 모시는 풍도가 협견같다..

 

 

저녁식사는 샤부샤브로 배터지게 먹고..

천극을 구경하러간다..

 

 

여기가 극장입구인데...공원의 일부 구간을 막아 공연장을 만들었다..

 

 

촉풍아언(蜀風雅韻)..초나라 스타일의 멋진 노래라는 의미의 간판이 달리고..

 

 

 

공연을 기다리며 전시물을 보는데, 도자기에 멋진 글귀..

죽약회허(竹若懷虛)..텅빔을 품은 대나무처럼.. 

 

 

천극 공연 준비 중인 배우들이 관객과 미리 사진 촬영 해주네..

 

 

 

음악이 연주되고..

 

 

경극과는 다른 천극이 공연되고..무슨 내용인줄은 모르고..

 

 

인형춤으로 하고..

 

 

어..포청천도 나오네..

 

 

 

 

 

 

즐거움을 선사한 손그림자 공연..

 

 

마지막으로 유명한 변검이 시작된다..

나중에 객석으로 나와 가면을 바꾸는데 재주는 알수가 없다..

 

 

우리나라 장날의 떠들석한 분위기를 업구레이드 한 느낌이지만...자기 것을 잘 보존하다는 것..부러운 일이다..

 

이렇게 성도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간다..

바쁜 대붕을 불러 타고 북망산과 태산을 넘어 서해를 건너 동방의 아침의 나라로 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배에 올랐다..

민강, 청의강, 대도하 3강의 합류 지점 절벽을 깍아 만든 대불..

 

 

안개가 자욱하다...

 

 

아! 대불이다..높이 71m 폭 28m..엄청나게 보인다..

 

 

당나라 713년(개원 원년) 당시 3강 합류지점에 홍수 및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해통(海通)선사가 능운사에 인접한 절벽에 대불 조성 시작..대불 완성되기 전에 해통이 입적하자,절도사 위고가 건설을 이어받아 803년 (정원 19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부처의 가피인지 공사로 인해 떨어져 나간 대량의 토사 때문인지 대불 조성이후 수해나 배 침몰이  대폭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 낙산은 유명한 도시가 되고 관광으로 먹고 살만한 도시가 되었다..

 

 

 

해통선사는 보시 받은 공사비용을 목숨처럼 지켰다..

"자목가완 불재난득(自目可剜佛財難得)"

내 눈은 뽑아 줄 수 있지만 부처님 모시는 재물은 얻어 갈 수 없다..

 

 

 

손과 사람을 비교해보라..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논다는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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