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자키에 갔다...도리깨질이 주목적..
일본 규슈 동남단..미야자키공항에 내려 버스로 1시간 거리 니치난(日南) 산속의 리조트..
따뜻한 날씨와 푸른 잔디를 기대하고 갔는데..이건 우리나라와 같은 풍경..
비행기로 1시간 10분 거리..시차도 없고..기대 부풀었는데...
설상가상..아니 누런 잔디위에 우후 진창이라...도리깨질은 뒤땅만 푹푹 파느라 고생만...
그나마 나를 위로하는 건 홍매..
오후에 도착하여 후반 나인에 접어들자 흐린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 추운데..해는 기울고..
그 어둠 속에 빛나는 멋진 매화 나무..밝은 다음날의 만남을 기약한다..
니치난리조트는 산속에 고립무원의 성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예 "붉은 후지산"의 그림으로 일본을 느껴본다..
19C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림...요즘 한류 처럼 일류(日流)가 불던 시절도 있었단다..
맘에 드는 것은 노천온천..
훌러덩 벗고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산천을 바라보며 앉았노라니 아래는 따뜻하고 머리는 서늘하여 코구녕이 뻥 뚫린듯 상쾌하다..
외국에서의 아침 산보는 내가 즐기는 메뉴..
이곳 새벽에서 바라보는 안개와 산의 로망스는 환상적..
산보를 마치고 다시 게다와 유까다차림으로 노천탕으로..
따뜻한 물속에서 앉아 바라보는 산 풍광에 감탄사만 연발..
벚꽃필때 달마저 찾아오거든 탕속에서 미인에게 등을 맡끼고 사케를 한잔하면서 시한 수 읊는다면...카~!~
다음날은 다시 길을 떠나 고바야시로 원정..
맑은 날 한국이 보였다는 뻥의 전설을 간직한 한국악이 보이는 도리깨 터전에 삼나무의 기상이 멋지다.
날씨가 좋았다..비 소식이 전날 밤으로 당겨져 햇빛도 감상할 정도로 3일 중 제일 나았다..
3일째..다시 첫날 도리깨터에서 티오프..
역시나 진창에 데꾸보꾸에 짜쯩나는 도리깨질은 뒷전이고..눈은 매화를 찾는다..
지난번에 어둠 속에서 헤어진 백매..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최백호가 부르는 노래속에 나오는 마담처럼..
살짝 전성기가 지났으나 기품과 향기는 그대로인 미시족..
누가 물었다..사꾸라의 뜻은?
벚꽃..아니다..
그럼?? 사이비..
벚꽃은 한일간에 신경전의 대상이지만..매화는 한중일 삼국이 다 사랑하는 꽃이다..
나막신을 신고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을 쫒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앉아 일어 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치고 달 그림자 옷에 닿네 - 퇴계-
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담 모퉁이의 매화 몇 가지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나니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누나. - 왕안석-
오신다 약속한 님 왜 이리 늦으실까
뜰에 핀 매화는 다 지려 하는데
문득 나뭇가지에 까치 소리 들리기에
행여 님이 올까 거울보고 화장하네 -이옥봉-
홍매가 벽산을 향해 팔을 벌린다..
저를 안아주세요..
free hug..
안아주어 상처를 치유받을 사람은 나라네..
정말 탄스런 홍매다..
東風吹かば
匂ひを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동풍이 불어오면,
향기가 전해오네.
매화야! 주인이 없어도
봄을 잊지 말거라.
901년 일본 헤이안 시대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가 좌천되어 지방으로 떠날때
자신이 키우던 홍매에게 들려주었다던 시..
동풍이 부는 봄이 오면 향기를 실어 보내다오
주인이 떠나잇더라도 봄날을 잊지 말라..
애뜻한 심정을 읊은 시..
홍매에 취한 라운딩.
공도 잊고 사람도 잊었다..
다음 홀엔 동백아가씨가 가득..
오동도의 동백..선운사의 동백..동백섬의 동백..니치난의 동백..
붉음이 뚝뚝 떨어진다..
붉음은 정열이다..노랑은 순정이다..초록은 순리다..
동백의 속삭임을 들어본다..
바람불어 설운 날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저 동백꼿을 주워 티옆에 놓고 백구를 날린다..
장쾌하게 나는 백구..내 마음도 시원하다..
그렇게 니치난의 꽃에 취해 하루를 보낸다..
도리깨질은 핑계일뿐..
솔직히 말하면 겨울골프여행이라면 일본은 비추다..
잔디 푸르고 날씨 따뜻한 태국, 베트남, 필리핀이 더 낫다..
하지만, 미야자키엔 한국 도리깨쟁이로 넘처난다..
나중에 공항에서 도리깨의 무게로 비행기가 뜰까 걱정이 될 정도로..
도리깨질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밥을 먹는데..멀리 니치난 해안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코스라는 말은 맞기는 한데...너무 멀다...ㅋ
더 가까이에는 계류가 흐르고..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삼림테라피로 유명한 계곡을 걸었으면 좋앗을텐데..
최근에 일본 전국시대 배경 드라마를 보느라..친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벽화..
사무라이의 삶..선적 명상.. 꽃의 감상..어느 정도 공통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떨어져 사라지는 꽃인가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노라니
꽃피는 때가 귀한 줄 알겠구나
꽃을 바라보고 꽃의 마음을 느끼고 스스로 꽃처럼 피어나는 것..
그것이 삶과 죽음을 즐기는 인생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