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조치원 복사꽃을 보려고 아침 일찍 나선 길이었다.

그동안 도시화로 제대로 된 도원 경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누가 도원 성당 뒷편이 지난주 멋지다 해서 

급한 마음에 달려갔는데..ㅜ.

복사꽃, 배꽃은 다 떨어지고 없었다..

조치원 복사꽃 보려면 4월 2주에 와야한다는 사실..

어쨋거나, 무심히 오봉산을 걷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차를 오봉산 주차장에 대면, 강화 최씨 숭모단과 마주친다..

강화 최씨의 시조를 모신 곳이다..

코메디언 최양락이 이 집안 후손이다..

 

입구엔 산철쭉이 만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어디선가 딱 딱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구멍 속에서 꼬랑지만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잠시후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녀석..

크낙샌가? 딱다구린가??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나중에 고복저수지를 거쳐 이 곳으로 올라올 예정이다.

 

 

화려한 산철쭉과 달리 은은한 참철쭉을 만났다.

 

철쭉..

한자어 척촉(제자리 걸음)에서 유래한다..꽃에 독성이 잇어 양이 이 꽃앞에서 머뭇거린다하여 척촉이라 하다가 철쭉으로 발음이 변했단다..

선홍색 철쭉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가 참철쭉이다.

전에 가부장 시절에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요즘 처가중시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친할아버지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연달래..

진달래와 비교해서 부르는 토속말..이말을 더 자주 써야겠다.

 

개꽃..

먹을 수 있는 진달래는 참꽃, 못먹는 철쭉은 개꽃으로 불렀다..ㅎ

 

이 꽃은 근세 서양으로 반출되어 영국왕립원예학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꽃이다.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참 곱다, 참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제 음성 사곡2리에서 스쳤던 인연이 오늘 오봉산에서 찐하게 이어진다.

전에 오봉산에서 보긴 했어도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날 줄은 몰랐다..

 

득템..

생각지도 못한 철쭉, 참철쭉, 연달래의 천국을 보게 될줄이야..

앞으로 4월 3주는 오봉산 걷기로 픽스한다..ㅎ

 

이런 이쁜 곳에 설화가 없을 수 없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명주(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도중 수로부인이 절벽에 핀 철쭉을 보고 꺽어 달라고 했다.

이 때 한 사람이 용감하게 절벽을 올라 꽃을 꺽어 바치며 헌화가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자주빛 바윗가, 암소잡은 손 놓게 하셨으니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철쭉꽃의 전설..이런 노래를 누가 만들어 불렀으면 좋겠다.

송가인이 부르는 노래처럼..부드럽고 달콤하게..

https://youtu.be/Ioz5JyVN0bY

 

오늘 오봉산에도 백만송이 연달래가 피엇다.

 

오봉산 정상에 올랐다.

참철쭉에 빠져 시간이 순삭이다..

 

정상 전망대에 새먹이통이 잇다.

새들이 연신 들락거린다..저넘들 배터지겟다..

 

전망대 북녁에 운주산이 언제 한번 오시요하고 초청한다.

하긴, 가본지 오래되엇다..

 

고복저수지로 가는 길에도 참철쭉이 이어진다.

황홀함에 젖어 젖어 구름에 달가듯이 발걸음이 이어진다..

 

표지판 제작자에게..

용암저수지 = 고복저수지 라고 알려주기 바라오..ㅎ

 

 

이런 아름다이 호젓한 길에는 그녀의 3집 신곡 연가(戀歌)가 딱이여~

https://youtu.be/ajzHkntBJMI

 

그녀의 노래를 듣더니 연달래가 핫핑크로 바뀌었네..

기적인기라~~ ㅎㅎ

 

 

노래가 다할무렵 하산 길도 끝나간다..

 

카페 그대잇음에..옆으로 나온다..

한 여름에 오면 카페에서 눈꽃빙수라도 먹으면 좋겠다..

 

바로 고복저수지 데크길로 이어진다..

 

거기서 아침에 못본 복사꽃을 만났다..

 

이길은 벚나무가 많으니 벚꽃 필때와도 장관이겠다..

고복저수지..출세햇다.

왕년에 저수지 생기기전에 어머니와 걸어갔던 개천길..

이제 그길은 물속에 잠겼어라..

잠시서서 기도를 올린다..ㅎ

저수지를 지나면 차도를 따라 몇백미터 가야 불일선원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갈림길에서 1.5km가면 불일선원이다.. 

문제는 포장길에 땡볕이라는 거다..

아직은 4월 날씨라 견딜만 하다..

 

길가의 흰꽃..배꽃일까??

다음에게 물었더니 산사나무꽃 확률이 90%란다..

아가위라고도 하는데..

밤꽃향기가 남자의 거시기 냄새라면, 산사나무꽃 냄새는 여자의 거시기 냄새란다..ㅎㅎ

이 열매로 담근 술이 산사춘이라는 것 처음 알았다..ㅎ

 

불일선원에 가까워올 무렵  복사꽃이 마라톤의 승전을 알리러 온 병사처럼 지난주 화려하게 피어낫음을 증언하고 숨을 거두려 하고 있다..

그대 잘가라..

 

불일선원을 지나면 시원한 그늘 임도다..

정상이 아니라 하산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 까지는 1km도 안된다..

 

좋은 벤취를 만나 자리펴고 그녀의 연가를 들으며 점심을 먹는다..

https://youtu.be/Ioz5JyVN0bY

 

 

다 내려와서 솔숲 들마루에 누워 한숨 청해본다..

꽃과 노래 그리고 행복한 걷기..

 

<오늘 걷기> 오봉산 주차장 - 정상 - 고복저수지 - 조각공원-  불일선원 - 등산로 하산길 - 주차장  약 10km

어릴 적 기억을 좇아서 백금정에서 읍내 가는 길을 복원해보기로 한다.

일단 백금정에서 서평교까지 몇백미터 다시 걸어 나와 다시 읍내방향인 서쪽으로 수로를 따라 걸어간다..

 

맞아..이런 길을 가다가 잠자리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부근에 반압이라 불리던 둠벙도 잇었던 것 같다.

 

 

밤도 익어가고..

 

소가 궁금한가보다

뭘 그리 찾는대유~

요 근방에 반압이 어디 있는지 아는감??

지는 몇살 안돼서 몰류~

 

 

수로의 끝은 경부선 철길과 만난다. 철길 건너편이 조천 연꽃공원이다.

길은 철길을 따라 좌우로 갈린다. 

좌측은 스물두강다리로 가고, 우측은 읍내로 간다.

어릴 적에 이길을 따라 스물두강다리로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길을 걷다가 철로에서 튄 돌이 머리를 때렸다.

어찌나 아프던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왓다.

그 사이 눈물은 말랐는데, 엄마를 보자 억울함을 알리려고 우는 소리만 내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이 길을 달려갔을 것이다.

분홍 메꽃이 모정처럼 피었다.

 

길은 네강다리 아래로 이어진다.

징검다리 없던 예전엔 어찌 건넜을까??

건기에는 냇가로, 우기에는 철교로 건넜을까? 

철교로 건넌 기억은 없다.. 

 

조천 뚝방도 세종시 경계둘레길 9구간, 10구간으로 정비되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읍내에서 쌀전거리- 남리를 거쳐 이쯤에서 조천을 건너고 경부선 철길을 따라 가다가 서평리 들판 수로를 따라 동평리 백금정까지 갔을 것이다.

애간장이 다 녹으면서..

우리 아들은??

다행히 아들은 살아잇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서  살려놓고 떠났단다..

 

 

어머니의 불심 덕이었을까? 아니면 이일로 불심이 깊어진 것일까?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는 연기설..

모든 인연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내비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조천 연꽃공원에 홍련이 만개하였다.

수렁에서도 물들지 않고 피는 꽃..

 

그래서 부처는 연꽃을 들어 제자들에게 보였다.

어디 부처뿐인가?

자연은 해마다 봄부터 꽃을 들어 우리에게 보인다..

그대 꽃 보면 웃는가?

 

경상도 골짝에서 올라온 어머니는 작은 집에 시모와 수두룩한 자식을 보살피며 틈나는 대로 비로봉 관음암(관음사)에 기도하러 다녔다.

아들이 우환에 시달릴 때는 계룡산 삼불봉에 쌀을 이고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어릴 적에 엄마따라 이 절에 처음 왔던 기억이 난다.

60년전이 아니었을까?

그 때 법당에 들어갔는데, 깜깜한데 눈이 부리 부리한 무서운 장군이 쳐다보고 잇어 

겁이 나서 시키는대로 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법당에 들어가 3배를 올렸다.

고개를 돌리자, 60년전에 나를 겁나게 했던 신장님이 칼을 들고 여전히 부리한 눈으로 쳐다보고 계신다.

 

 

주련이 설법하시길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
푸른 파도 깊은 곳에 그 자태 나투신다네..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 위태로운 배안에 있더라도

일심 삼매로 구한다면 얻는 것이 있으리라..

 

좌측의 이 주련은 무슨 말씀인지 알아 들을 수 없다

오직 모를뿐..

누군가 법보시를 바랍니다..

 

 

그때 요사채에서 스님이 차공양하자고 부르는데, 나는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비로봉가는 산길로 올라간다.

그러나, 얼마가니 산길은 무슨 시설로 개발되어 막혀있엇다.

다시 돌아와 스님과 커피를 나누며 환담한다.

스님이 오방염주를 선물하신다..

어머니 돌아가신후 이절에서 49재를 지냈고, 이절이 생사 기로에 섰을 때 또  맺어진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인연은 중중무진 이어지고, 사라진다.

인연이 있는한 덧 없는 것은 없다.

그러니 깨어있고, 정진하라는 말씀..

 

돌아오는 길에 조치원 복숭아 한 박스 사와서 금년 첫맛을 나눈다..

 

 

<오늘 걷기>

조천연꽃공원 - 번암 - 비로봉 정자 - 스물두강다리 - 동평리 백금정 - 서평리 수로길 - 네강다리 - 연꽃공원 약 9km

 

"그때 내 애간장이 다 탔어.."

언젠가 어머니는 말했다.

그때??

50몇년전..

냇가로 놀러간 형제 중에 동생이 헐레벌떡 와서 하는 말이 형이 백금정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쌀전거리, 남리를 지나 조천 제방에 올라섰다.

서평리 들판 저멀리  백금정 까지는 아직도 오리 넘게 더 가야하는데..

그 사이에 물에 빠진 아들은 살아있을까???

 

****

 

1주전 조천연꽃공원을 방문하여 지척거리의 스물두강다리를 보자, 추억 속의  백금정 이야기가 또 떠올랐다.

백금정의 위치는 네이버와 구글 지도에 나오지 않아 가는 길을 몰랐는데, 다음지도를 검색하다 단서를 얻게 되었다.

 

장마전선이 올라 올라와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는 날..

오전 일찍 조천연꽃공원으로 향햇다.

계획은 조천 - 번암바위 - 비로봉 - 관음암 - 스물두강다리 - 백금정, 이런 순으로 탐방하기로 했다.

 

조천 우안길로 출발한다.

 

조천이 미호천과 합류하자, 길도 미호천 자전거 길과 합류한다.

 

저곳이 번암(磻岩)인가??

번암은 강바위라는 뜻이다.

조천과 미호천 합수 지점부근의 넓고 펀펀한 바위에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곳이라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 지류 반계(磻溪, "반" 또는 "번"으로 읽음)에서 따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고개길을 오르면 저멀리 스물두강다리가 보이고..

조천을 포용한 미호천은 금강과 합류하기 위해 합강리로 향한다..

 

비로봉 앞 정자..

산세가 마치 백로가 하늘로 나르려는 듯한 형상이라 해서 비로(飛鷺)봉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번암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미꾸지 마을 쪽으로 더 가서 관음암가는 길을 찾았으나 시간상 찾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관음암은 걷기 종료후에 차로 이동하기로 한다.

 

복숭아는 익어가고

기차는 달려가고

강물은 흘러가고 

나는 걸어간다..

 

미호천 자전거길로 걸어 조천연꽃공원으로 간다.

 

연꽃공원의 백련은 이제 피기 시작한다..

 

 

이 미호천 길을 400리 달리면 금강을 거쳐 하구둑까지 이른다.

스물두강다리..

경부선 철교 교각이 22개라 붙은 이름..

 

여름철 갈수기도 이 교각 아래는 물이 고였다..

해마다 1-2명이 익사한다는 이곳은 읍내 아이들의 수영장이었다.

51년전인가? 나도 친구따라 이곳에 물놀이하러 왔다.

수영은 맥주병급이라 그냥 친구가 건네준 매트리스형 튜브를 타고 놀앗다.

그러다가 누군가 장난치는 바람에 강물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내 두눈에 파란 하늘과 푸른 강물이 동시에 들어왔다.

두번이나 들락 거리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강가로 나왔다.

한참을 물을 토해내면서 교각을 바라보았다.

그후 나는 물놀이 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1순위가 '강에 물놀이 가지말라"였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교각을 바라보았다

내가 직면한 죽음의 순간에 보인 파란 하늘..

그래서 내가 하늘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백금정으로 가기로 한다.

지도 앱으로 위치 지정해서 검토해보니 여기서 1.5km는 걸어가야 한다.

청주시 강외면 서평리, 동평리 찻길과 들판을 지난다.

 

가는 길에는 무궁화도 피었고, 능소화도 피었다.

능소화..

요즘 젊은이는 능소화를 보면 휴가시즌이 가까워 졌다고 반가워하지만,

예전 늙은이는 장마가 온다고 걱정하기 시작한다던가??

 

복숭아 붉게 익어간다..

 

여기 서평교에서 우측으로 수로길로 접어든다..

어릴 적 기억에 수로를 따라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압이라고 부르던 둠벙을 거쳐서 갔던 것 같은데..

 

백금정..

서평리, 동평리 들판의 젖줄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이 곳에서는 꽃도 벌도 잠자리도 행복하다.

 

 

그때 한 떼의 오리들이 우측 논에서 좌측 백금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두둥실 건너간다.

 

엄마 오리와 새끼들..

그런데 도대체 몇마리야??

17마리??

 

갑천변을 수년간 걸어다니면서 관찰해본 결과 

어미 오리들은 장마 직전에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며 훈련시키더라.

장마가 오면  먹거리가 풍성해지기 때문에 새끼를 키우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위기가 바로 기회인셈이다..

 

어미 오리와 새끼를 보다가 문득 형제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는 평생 8명을 낳은 거지??"
"아니, 12을 낳았대"

"그럼 반타작하거야??"
" 경상도 고향에서 자식 6명을 낳앗는데, 5을 잃고 1명만 남아서, 하나라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대. 그런데, 여기서 아들 5명을 2년 터울로 내리낳고 40이 넘어서 또 애가 들어섰대나.."

 

오리 가족 중에 막둥이를 찾아본다..

한꺼번에 부화했으니 저넘들에겐 그런 개념이 없겠구나..ㅎ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자식을 그렇게 많이 낳았어요?"

"그때는 피임이라는 말도, 방법도 몰랐어"

 

박통시절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외쳤는데, 이제는 출생률이 세계 최하위다.. 

그 만큼 우리 젊은이들의 생각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다..

 

가을날 감이 주렁 주렁 열린 작은 감나무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났다.
나훈아 노래 홍시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졌다.

오늘 오리 가족을 보니 또 어머니 생각이 나고 눈가가 젖는다..

오늘 엄마를 만났다..

추억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한다.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인생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할 수도 있고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 살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뭐라고??

그런데 백금정에 빠진 아들은 어찌되었냐고??

아참!!

오리 가족 보다가 까먹었네..

<다음편에 계속>

 

성묘를 마치고, 조천 연꽃공원으로 간다.

이제 연꽃시즌이다.

 

수렁에서 피는 꽃..

번뇌에서 발현하는 보리..

시름 속에서 발견하는 지혜..

연향을 찾아 10리 밖에서 찾아온 벌..

 

꽃을 보는 이유는

꽃다이 살면서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 때문아닐까?

 

식물이 꽃피우는 것을 보고

중생은 부처를 꿈꾸었다..

 

맑고 밝고 지혜롭게...꽃피우려면

그저 고요하고 고요하라..

 

조천 제방의 벚꽃길이 여름에는 그늘길이네..ㅎ

 

 

담주 홀로가는 날 새벽 일찍 이 길을 걸으리.

22강다리 - 비로봉을 돌고, 백금정을 찾아 추억의 길을 완성하리..

부모님 제사를 모신 날 형제들이 조천 연꽃공원으로 나들이 했다.

우리는 제사를 개혁햇다

우리는 유교도가 아니다. 굳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고수할 생각이 없다.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개혁하기로 했다. 

영남의 종가집도 제사를 개혁한다고 들었다.

이런 사례를 검토하고, 형제와 형수들의 의사를 모아 모두 원하는 바를 종합한 결과다. 

첫째)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둘째) 제사를 모아서 한번만 묘소에서 지낸다.

 

제사때문에 자손들끼리 분쟁하는 것은 조상이 원치 않는 바이다.

신이 되면 제사 시간이나 장소는 언제 어디든 "신답게" 알고서 온단다.

그래서 예전부터 "귀신같이 알고 온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조천(鳥川)..새가 가득한 냇가라 해서 새내라고 불리던 한자 이름이 조천이다.

조치원 지명 유래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최치원 관련설, 기관사의 고함 유래설(유머) 등이 있으나, 조천(鳥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세종 시대에 허만석 현감이 새들만 가득한 냇가라하여 새내라 불리던 조천에 제방을 쌓았는데 그 제방의 이름이 저치제언(띠풀 둑방)으로 추정된다.

이 제방으로 인해 생긴 넓은 경작지를 바탕으로 원과 시장이 생겨낫는데, 조천 + 저치제언이 윈윈하여 조치원이 되었을거라는 추정이 그럴듯하고 유력하다.

이미 영조, 순조 때 기록에도 조치원의 지명이 등장한다.

 

이 조천은 비암사 부근에서 발원하여 전의, 전동, 조치원을 지나 미호천과 합류하여 세종시 남단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어릴적 미역이나 감고 고기나 잡던 공간이 산업화 시절 오염되어 허접한 공간으로 한동안 방치되었다

이제 연꽃 공원으로 조성된 모습을 보니 마치 코흘리개 소녀가 미인이 되어 나타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릴적 남동 연꽝에서 말잠자리 잡을 때는 연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이제 나이드니 잠자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연꽃만 눈에 들어온다.

문화적 성장이란 이런 모습이다.

연꽃보다 보면 문득 잘익은 복숭아가 떠오르기도 한다.

조치원은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다.

그 이유가 1908년 과수시험포를 조치원 봉산동에 설치하고 복숭아를 재배했기에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연꽃 정자에 소요하는 사람들은 연화세상에 사는 모습이다.

너어? 연꽃 맞아??

 

홍백련이라고 불러야하나?

연꽃공원 끝에서 바라보니 미호천 철교가 보인다.

어릴 적에 스물두강다리(교각이 22개)라고 불렀다.

가물때에도 교각 주변에는 물이 가득했다.

교각 주변에서 물놀이 하다 익사할 뻔한 추억이 떠올랐다.

눈에 물과 하늘이 교차하는 순간 누군가 나를 끄집어 내엇다.

그이후 물가에 가지를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다보니 형제들이 다 물에서 죽을 뻔한 기억이 잇다.

이곳에서 가까운 백금정이라는 연못에 어린 형제들이 갔다가 그중 동생이 물에 빠졌다

건져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어린 형은 집으로 뛰어가서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십리나 떨어진 집에서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정신없이 뛰어갔단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단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들은 물가에 꺼내졌더란다.

익사 직전에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 놓고 갔다는 소설같은 이야기기다.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생사의 기로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이곳이 조천과 미호천이 합류하는 비로봉(飛鷺峰) 지역이다.

물가에 번암이라는 바위가 있어 이 지역 이름이 번암리다.

예전에는 이 바위 부근까지 새우젖배가 드나들었단다.

아마 100석 규모의 바닷배가 강경까지 들어올 때 강경에서 세종시 남단 부강까지는 50석 규모의 강배로 옮겨 실고 들어와 다시 이곳까지 드나들었나 보다.

 

이 번암과 월하천이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지점 사이를 동진(東津)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서 고기잡는 풍경이 아름다워 동진어화(東津漁火)라고 하여 연기8경의 하나로 꼽았단다.

중형은 이곳 번암바위에 고기를 많이 잡아 아버지 보신 시켜드렸다고 추억한다.

우연치 않게 조천 연꽃공원에서 추억을 만났다.

그 추억은 이제와 돌이키니 연꽃 색깔을 닮았다.

지난 것은 다 그리워지느니라.

삶이 그대를 속였을지라도.

이제 귀천에 한발씩 가까워지자, 병고 속에서 만난 저승사자 모습도 이야기 한다.

형들에게 물어본다. 목격한 저승사자는 어떤 모습이냐고.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검은 갓과 검은 도포를 입은 모습이란다.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에게 들은 저승사자 모습은 달랐다.

그분은 키가 8척 장신에 검은 점퍼입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엇다는..

각자 기억 속에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저승사자를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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