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걷기코스를 찾아라..

무슨 미션 같은 일을 주말마다 한다..

그넘의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위 자리를 이태리가 차지하면서 세계는 펜데믹 상태가 되었다.

 

 

근신하기도 쉽지 않다..

주말에 인적 드믄 곳이라도 잠시 걸어야 소화가 되리니..

가까운 완주 봉서사로 간다..

왕년에 다녀온 곳이기에 뇌리를 스친다..

두억마을 경로당을 내비에 치고 가다가 봉서사 표지를 보고 좌회전하여 저수지 직전 공터에 차를 세운다..

 

 

 

간중제(용진저수지)를 끼고 가는 길은 여전하다..

 

 

 

 

그길에서 금년 첫 매화를 만났다..

예년같으면 남도로 매화구경 한창 다녔을 터인데..

시절에 어수하니 코로나 사태이후로 머리도 길어졌고, 고혈압 약도 간당간당한다..

 

 

촛점을 잡느라 부산한데, 매화 속 벌은 꼼작도 않는다..

얼어죽었나, 말라죽었나??

 

기다리다 지쳤어요

혼자서는 이밤이 너무 너무 추워요

땡벌올림

 

 

 

봉서사 근방의 바위에 웬 사람 이름이??

박기순??

개선불망비..

언젠가 절을 수리할 때 큰 시주를 한 모양인가?

 

 

 

범패시조 진감국사비가 있다..

진감국사는 신라 흥덕왕때 당나라로 구법여행을 떠나 마조선사의 문하 창주 신감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도의국사와 동시대 인물인바, 귀국하여 지리산 쌍계사에 자리잡았다..

그는 우리나라에 범패를 처음 도입했고, 차나무를 들여와 다도문화에 기여했다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 중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그에 관한 것이다.

그의 비가 이곳에 선 이유는?

진감국사는 쌍계사에 주석할때  고향인 익산군 금마를 방문하면서 봉서사에 들러 범패를 가르쳤다고 한다

 

 

 

납골묘지는 관리가 되지 않고 잡초가 무성하고..

 

 

진묵대사의 부도탑엔 여전히 곡차가 가득하다..

 

 

응??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그간 이절을 중창한 호산스님의 아들과 태고종이 송사를 하고, 태고종이 승소한후에는 주지 자리를 두고 분쟁이 발생해서 잘 관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범종각에는 진묵대사의 시귀가 여전하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삼고 구름을 병풍삼고 바다를 술통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어허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겠구나!

 

진묵대사는 무애행으로 걸림없이 살았다는데, 후인들은 유애행에 걸림들이 많구나.


 

 

작은 조사전에 진묵 모자의 영정이 같이 있다..

효자인 진묵은 자신의 출가로 어머니의 제사가 끊길까 염려하여  무자손 천년향화지지에 어머니 무덤을 썼다..

과연 그 곳에 성모암이라는 절(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이 생겨 지금껏 제사를 모시고 있단다

 

진묵대사는 서산대사와 동시대를 살았다..

(자세한 비교는  http://blog.daum.net/servan/6349482  참조)

 

진묵대사는 만경읍 화포리에서 태어나 이곳 봉서사에서 출가했고, 오도한 후에는  김제 망해사에 보임을 했다고 한다..

http://blog.daum.net/servan/6349575 참조

 

그는 호남지역의 전설적인 도인으로 숭상되었고,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도 봉서사를 가보고 싶은 곳 3군데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진묵의 행각은 민간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와 유학자 봉곡선생과의 일화도 많이 전해진다..

봉곡 김동준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성리학자였다

진묵이 봉곡으로부터 책 한질을 빌려 가면서 보다가 절에 도착하엿을 때 다 보고 다 외웠다던가 뭔가..ㅎ

 

 

이 그림은 진묵과 봉곡 여종의 이야기를 형상화 한 것인가??

http://blog.daum.net/wboss/4270047 참조 

 

 

이 산에 진묵이 머물 때가 명산이엇다.

 

그래서 누실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이 높지 않더라도 그 안에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요 (山不在高 有仙則名 )

물이 깊지 않더라도 용이 살면 신령함이 있다(水不在深 有龍則靈) 

 

 

 

 

 

 

김제 걷기는 전북 김제군 진봉면 새만금바람길을 걷는다..

10km 짧다고 벽골제를 들려 가기로 했다..

 

 

 

 

백제 시대의 저수지 벽골제..말로 외우기만 한 역사의 현장에 처음 와본다..

벽골이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벼가 많이나는 고을 볏고을을 소리대로 한자를 빌려 적은 것..

그러니 벽골제는 볏고을의 저수지라는 의미..

 

 

 

 

벽골제는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고..이제는 일부 제방만 남아 지평선 축제의 마당이 되고 있다..

그 공원 부지에 이중섭의 소만큼 멋드러진 소가 있다..

그 덕에 점심엔 한우 갈비탕을 먹었지만..

 

 

 

정자 이름이 단야루??

뭔가햇더니 단야처녀의 착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데..

 

 

요건 아리..공중 닭장이다..족제비 등으로 부터 보호하는 시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그 뒤웅박...

부잣집 용도와 가난한 집 용도가 다르다나..

걷기 마다 족발과 막걸리 지참하는 동행 말씀이

요즘은 남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라더만..ㅎㅎ

 

 

요거이 신주단지 모시듯한다는 신주단지..

집안을 지켜주는 신령을 모시는 단지..

 

 

겨울철 백성들의 풍경..인터넷과 카톡이 없는 시절에 어쩌겠는가??

 

 

벽골제에 물이 찼을 때의 모습..

저지대로 모이는 물을 담수하는 기능이라 저수지 깊이 6미터 제방길이 3-4Km 정도이나 용수 면적은 넓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수로의 제방기능을 할뿐..

 

 

엄청난 크기의 농기..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

 

 

남아 있는 벽골제의 제방이다..

 

 

멀리 거대 괴수를 보고 흠짓 놀란다...

 

 

용의 해에 기념으로 조성한 쌍룡..

대나무 기술자가 제작한 작품..저수지였던 이 곳에 용신을 조성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겠지..

 

 

 

 

 

전망대에서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의 만경평야를 바라본다..

 

조정래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 문학마을을 들러 구경후

진봉면 사무소에 도착하여 새만금바람길을 걷는다.. 

 

 

 

면사무소에 주차하고 우측으로 개천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개천 따라 걸으면 교회옆에 시작점이 나타난다..

 

 

 

 

 

 

진봉방조제 길을 걸으면 갈대의 들판이 아스라하고..

 

 

 

그길이 끝나면 산기슭 비렁길이 전개된다..

 

 

 

 

왕년의 해안철책길이 이젠 걷기 코스로 재단장된다..

 

요 바위에 앉아 잠시 요기를 하고 불소주로 가슴에 불을 지피고..

 

 

 

 

 

빈배..빈들..빈 가슴..

그대! 빈 가슴에 불을 붙여라..

 

 

 

 

철새가 날아 오는 이런 곳을

철 따라 찾아가는 우리는 철인인가?

 

 

 

망해사에 도착햇다..

호남의 도인의 비조..진묵대사가 도통후 보임을 위해 머물렀다는 절..

서산대사와 비슷한 시기에 살면서 재조와 재야로 서로 다른 노선을 걸었던 사람..

그의 사연은 "완주 걷기 -봉서사 가는길" http://blog.daum.net/servan/6349482 을 참조하시라..

 

 

그가 창건햇다는 낙서전..서쪽을 즐기다..서쪽은 아미타불이 계신곳..

건물 주련에 그의 유명한 시가 적혀있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삼고 구름을 병풍삼고 바다를 술통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어허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겠구나!

 

곡차를 즐겼다던 그의 호연지기..

저두 할께요..느낌 아니까.. 

나의 불소주 덕에..

 

 

 

진묵대사가 심었다는 팽나무는 오늘도 서쪽을 바라보며 설법을 하신다..

 

 

멈추란다.."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지지불태 지족불욕(知止不殆 知足不辱)이라..

멈출줄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고, 족한줄 알면 욕보지 않는다..

 

 

 

유명하다는 낙서전의 일몰..날씨관계로 보지 못하지만..내마음에 붉은 해가 걸리었다..

 

 

잠시 걸어 보세요..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차량출입금지 표지판도 몇십년 도를 닦으니 설법을 할 줄 아는구나.. 

 

 

망해사 전망대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을 동시에 바라본다..

 

 

 

 

 

 

 

보도불럭으로 포장만 않했으면 일품이었을 솔숲길을 걷가보니 심포항이 보인다..

10km라고 깐보고, 벽골제,아리랑학마을 등에서 해찰하다보니 동지라 해는 짧고 완주는 어려워보여

일부는 심포항에서 종료하고 나머지는 차량회수 차원에서 남은 3km를 완주하기로 한다..

 

 

 

 

완주팀을 기다리며 심포항 낙씨꾼이 무얼 잡나 봤더니 망둥어가 가득..

 

 

횟집 마당에 말리는 고기도 망둥어..

그 중 4마리를 얻어 연탄불에 구워 먹어본다..

 

 

노가리 맛이다..쥐포처럼 조미하면 잘 팔리겠다..

 

 

심포항의 특산물은 백합..

1Kg 보통 15,000원, 상품 17,000원

우리는 신선횟집에서 4인 대자 생합탕 4만원짜리(백합 2kg)로 저녁을 한다..

시원한 국물 맛..불소주 한잔..

음~~

 

 

수산복해(壽山福海)..

수명은 산처럼 복은 바다처럼 가득..

걷고 걷고 또 걸으면 그리될려나..

 

 

돌아오는 길..휴게소에서 만난 덕담..당신 멋져!

그래 오늘은 확실히..

 

 

<오늘 걷기> 진봉면사무소 - 진봉방조제길 - 전선포 - 망해사 - 전망대 - 심포항 약 7km  

 

 

완주 걷기에 나섰다..

선조시대 서산대사와 동시대 선승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진묵대사가 출가한 절..봉서사로 간다.. 

 

 

완주군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말을 듣고 갔는데..

안내된 봉서마을은 내비에도 나오지 않고 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단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에 갔다가 도계마을에 주차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두억마을 경로당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결론 내비에 두억마을을 찍고 가시라..

 

 

간중제(용진저수지)까지는 포장길에 땡볕인데 이젠 해도 기운이 떨어져 걸어갈만하다.. 

 

 

간중제길로 접어 들면 그늘도 잇어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다목적 체험장 수변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한참 쉬며 요기하기 좋다...

 

 

잠시 걷다보면 똥의 꿈이라는 웃기는 건물이 나온다..

안내도에는 똥박물관이라고 나오던데..

 

 

똥의 꿈은 거름이 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인가?

 

 

봉이 사는 봉서사라는 말에 맞게 비각을 쌍봉으로 장식했다..

 

 

포장길이지만 가다가 계곡에 내려가 숨을 돌리고 가니 땀을 식히며 갈만하다..

 

 

 

삼존불과 남골묘가 인상적이다..

 

 

 

조선 중기 진묵대사가 처음 출가한 이절에 그의 부도탑이 있다..

곡차를 좋아했다던 그에게 누군가 곡차를 공양하고 갔다..

 

 

그런데..봉이 산다는 이곳에 왠 용이 이렇게 많은지...

 

 

대웅전의 현판은 일붕선사의 글씨다..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아담한 대웅전...

 

 

범종각 기둥엔 진묵대사의 시가 써있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삼고 구름을 병풍삼고 바다를 술통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어허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겠구나!

 

곡차를 좋아했던 그의 무애행이 눈에 보이는듯.. 

 

 

아담한 진묵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무슨 이유에선지 서산대사의 시비가 서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와 동시대인인 진묵대사는 상당히 대조적인 사람이다..

 

서산은 아명은 운학..21살에 지리산에서 출가하여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하였고(1520-1604),

진묵은 아명은 일옥..이곳 봉서사에서 7살에 사미승으로 출가하여 봉서사에서 입적하였다(1562~1633)..

 

서산은 조실부모하고 남의 집 양자를 갔다가 과거 실패후 승려가 되었고

진묵은 승려가 된 후에도 어머니를 모셨고, 돌아가신 후에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는 명당에 묘소를 썼는데, 지금도 그자리에 성모암이 있어 묘소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산은 명종때 부활한 승과에 장원을 하엿고

진묵은 이른바 재야의 승려로 일생을 마쳤다..

 

산은 정여립사건(기축옥사)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선조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진묵은 자신이 살던 완주군 일대가 정여립 사건의 현장이어서 그당시의 글줄 읽는다는 선비만 1000여명이 처형된 무자비한 옥사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하엿다..

 

서산은 임진왜란시 의주로 피난한 선조의 요청으로 승의병을 일으켜 총지휘자가 되었다..

진묵은 임진왜란 내내 승병에 가담하지 않고 은거하여 수도하였다..전주지역을 방어한 임진왜란 전기에는 전주지역에서 그대로 지낼수 있었겠으나 정유재란으로 호남이 짓밟힐 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서산의 제자들로 현 불교의 법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진묵의 일화는 전북 일대에서는 도인의 경지로 승화되어 초의, 강증산의 언급으로 지금도 살아숨쉰다..

 

 

 

그의 영정이 기골이 장대하니 마치 경허선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두사람 다 비슷한 무애행으로 회자되기에..

 

 

내려오다 계곡에 발을 씻는다..

 

 

내려오는 길에 봉서농원 옆 길로 밀양 박씨네 제실 옆 길로 이어진 산길을 20여분 올라  

올라 갈 때 지나친 밀양 박씨 정경부인묘를 찾아갔다..

남편은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두문동에 들어가 불타 죽은 72현의 하나인 규정공 박침..

 

천하의 명당이라는데..

덕산 남연군 묘와는 다른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주산이 문필봉이고 좌 청용 우백호가 뚜렷한 명당이다..

이름하여 비봉포란(飛鳳抱卵)형 명당..주산인 봉황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는 형국에다가 봉이 사는 절까정 있으니..

그러니 고려적부터 지금까지 이터를 자손들이 유지하고 살지않겠는가..

 

이곳 명당은 충성과 의리의 정신으로 이어진 흥부의 묘자리 같은데..

덕산의 남연군 묘는 발복을 원해 절을 불지르고 이장을 감행한 것이 꼭 놀부의 묘자리 같아 대비된다..

 

 

내려올 때는 임도를 따라 내려온다..

내려와서 보니 명당터밟기 코스다.. 

 

 

잘난 후손들의 비석이 즐비하다..

 

 

 

 

제실의 현판은 정상문이다..

祥瑞(상서)로움을 드러내는 문..

 

 

 

 

다시 간중제를 지나 간다..

 

물빛이 고즈녁한 이곳 길은 포장길린 것이 아쉽다..

그러나 어쪄랴..세상 변화에 따를뿐..

 

 

아침에 헤멜 때 본 하우스 속 조롱박이 가득...

 

 

간중초등학교를 지키는 이순신장군..

한 넘이라도 자신을 닮은 후손이 나와 일본 애들 버릇을 고쳐주기를 기도하신다..

 

 

명절 앞두고 대추도 분주하다..

얼릉 자라 제상에 올라야지..

 

 

 

차를 타고 봉동읍  시장 3대 할머니 국수집에 가서 국수 중짜리 4000원에 뚝닥..배터진다..반찬은 김치 한가지..

 

 

 

 

 

 

<오늘 걷기> 두억마을 경로당-간중제 - 다목적체험장 - 봉서농원 - 봉서사 - 봉서농원 - 정경부인묘소 - 박씨제각 - 원점회귀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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