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에게 복이 있고..
걷는 자에게 힘이 생기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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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걷기에 나섰다..일단 공주 정지산에서 곰나루을 들러 공주보까지..
정지산에서 금강을 바라본다..웅진강이라 불리는..
백제의 상징탑..금동향로..금관식..무령왕릉..
곰나루 공원에는 소나무 각선미가 경주 남산 못지 않다..
나무꾼을 사랑한 곰의 슬픈 전설..
신을 사랑한 곰은 단군의 어머니가 되었는데..
인간을 사랑한 곰은 슬픈 전설을 낳았다..
솔숲의 끝에 웅신당이 있다..
사당안을 들여다 보니 오래된 곰의 조각이 최첨단 상징주의 조형물처럼 앉아있다..
곰나루 강변 수신단 건너편 연미산 중턱에 곰이 살았단다..
길 잃은 나무꾼과 미저리처럼 시작된 사랑..자식을 둘을 낳고 안심하고 굴문을 열어놓았더니 나무꾼이 도망갔다..
바로 이 강물을 건너서..
저 멀리 공주보가 보인다..
버스로 청양-부여 백제보에 도착..
저 보를 건너 좌측으로 강변을 걸어 천정대로 향한다..
어도 옆를 걸어간다..
길은 생태계가 어우러져야 멋지다..
억새 갈대 무성한 길도 걷고..
저멀리 천정대가 보이고..
여기서 청양에서 내려오는 지천과 합류한다..
大河不讓小流(대하불양소류)
큰 강은 작은 물줄기도 사양하지 않는다..
지천은 아름다운 시골색시 같다..
이다리를 건너면 부여..천정대로 오른다..
천정대에서 바라본 금강..
백제 시절..재상 후보를 명단을 함에 넣어 이 곳에 놓아 낙점을 받았다하여 정사암으로도 불린다..
점심을 부여시내애서 된장찌개로 먹고..
오후 일정은 변경하여 오늘 최종 목적지인 수북정에서 출발 거꾸러 백제보까지 간다..
부산..홍수에 상류에서 떠내려왔다는 귀여운 이름..오르는 길은 귀엽지 않네..
하여 중턱에서 대재각으로 내려가 공사중인 계단을 통해 강변으로 내려선다..
대재각에는 효종때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있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 백강 이경여가 현직에서 물러나 백마강변의 백강마을로 낙향하면서 후일을 우암 송시열에게 부탁한다.
이후 백강 이경여가 효종에게 북벌계획 추진에 관한 상소를 올리자, 효종임금이 필생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답한 내용,
“至痛在心 日暮途遠”(지통재심 일모도원)
비통함이 그대로 마음에 남았는데 해는 지고 갈 길은 멀구나..
훗날 우암 송시열이 쓰고 이이명이 백마강변 대재각내 바위에 새겨 놓았다
강변에 성같은 저 건물은 알고 보니 하수도관련 시설...강변시설은 한옥으로 지어 외관을 관리한다..
이제 낙화암이 보인다..낙화암 건너편 강길을 걷는다..
강변에 백마강..낙화암을 읊은 시비가 즐비하다..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그대로라는 두보와는 다른 시각도 보이고..
낙화암에 지던 꽃은 갈대로 환생했나..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낙화암만 바라보네..
낙화암 아래 유람선에는 배호의 꿈꾸는 백마강도 같이 타고 가겠지..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보자던...
해 기울자 강바람이 차갑다..동동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나 다리는 진흙으로 무겁다..
허위 허위 강변을 에둘러 간다..언제 다시 오리오..
진하게 스킨쉽을 나누어 보자..
인간보다 더 진하게 스킨쉽은 나누는 것이 있다..
왼쪽은 백로나 왜가리 같고..오른쪽은 오리가 분명하렸다..
강변에 오리발 내미는 넘이 너무 많네..
하루 해도 지고 한 해도 저물어 간다..길은 우리에게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가르쳐 준다..
백마강이 황혼 빛에 물들어 가고..
종착지에 다와서 강변의 마지막 시비를 보다가 일행이 모두 따라 부른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속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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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걷기에 나섰다..
추부 ic를 나와 37번 국도를 따라 옥천군 군서면 쪽으로 가면 성왕로 표시가 나온다..
성왕로..백제 성왕을 말한다..
저 앞에 보이는 산이 관산성이 있었다는 산이다..
그 산 기슭에는 지금 관성 국궁장이 잇다..
산을 끼고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이 흐른다..
영하의 날씨에 강이 얼었다..
관산성이 있는 삼성산은 해발 300미터의 높이지만 바로 서화천을 해자처럼 두루고 있어 가히 백제를 방어하는 천혜의 성지다..
이곳이 구진벼루..
성왕이 밤중에 기병 50기만 대동하고 고리산, 백골산에 주둔하는 백제의 주력부대를 이끄는 태자 여창에게 가다가 우측 산중에 매복하고 있던 신라 감무력 휘하의 부대에게 붙잡혀 도도에게 목을 잘리운 현장이다..
그의 목은 신라의 왕궁 계단에 묻혔다던가..
그는 왜 50여기만 대동하고 이곳을 지나갔을까?
여러 견해가 다 SF이지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정황은 이렇다..
성왕이 신라를 응징하려고 3만의 병력을 몰아 탄현을 넘어 옥천을 들이치고 초반 승세를 타고 영동까지 진출하였다가
전력을 정비한 신라의 반격을 받아 후퇴하게 되는데..
태자 여창의 주력 보병은 이 서화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소옥천, 추소리 부근의 고리산과 그 뒤 백골산성에 포진..
성왕이 이끄는 기병은 금산 마전 부근에 포진하였는데, 태자 진영의 귀족, 왜, 가야 연합 군사이에 불화가 야기되고, 태자마저 병고가 생기자, 급히 밤중에 지름길로 이동하다가 신라군의 매복에 걸렸다는 설이 그럴 듯하다.
구진벼루에서 관산성을 바라본다..
성왕은 왜 신라를 응징하려고 하였나?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고 한성을 빼앗긴 백제..성왕대 국력을 회복하고 사비로 천도한다..
당시 고구려는 돌궐에게 시달리느라 남쪽을 돌볼 여유가 없을 즈음
백제는 북진하여 한성을 되찾고 한강하류를 점령, 신라는 이에 편승하여 죽령이북 10현을 접수한다..
백제가 평양으로 진군하자고 신라에게 제의하나, 진흥왕은 이를 거절..
그런데..신라가 보은의 삼년산성에 병력을 집결하니..아연 백제는 사비가 공격당할까 두려워 평양공격을 중단하고.
한성과 한강하류에서 철수하고..이에 신라가 이 곳을 접수하여 신주를 설치하고 김무력을 파견한다..
성왕으로서는 와신상담..딸을 진흥왕에게 시집보내며 방심을 노려..3만군대로 총공격..
옥천과 보은의 삼년산성까지 장악하여야 후환을 없애고 한성의 구토를 회복할 수 있기에..
서화천이 흘러가는 곳에 고리산..대청호가 있다..
세상사 어찌 뜻대로 되는가...
성왕의 맞수..진흥왕에게는 이사부, 거칠부, 김무력 같은 쟁쟁한 신하가 있었으니..
구진벼루에서 성왕을 참수한 자가 김무력의 부하인 도도..
김무력은 김유신의 할아버지로 망국 금관가야의 왕손..그는 신주의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선발대는 성왕을 참수하고..
본진은 백골산에 포진한 여창태자의 본진을 급습하니..
왕의 전사로 기가 꺽인 군대는 앞뒤의 협공에 참살을 당하니 4좌평, 2만 천의 군사가 몰사하고..태자는 겨우 탈출한다..(그가 위덕왕이다)
그이후 산이름이 백골산이 되었고.. 부근 동네 이름에 핏골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다시 관산성을 바라본다..
할아버지 성왕이 신라에 참수되고..아버지 위덕왕는 절치부심하며 무력하게 지내다가 다른 아들마저 전사하는 상황에서..
무왕이 신라의 선화 공주와 결혼하였다는 서동설화는 시대적 상황과도 맞지 않는다는 설이 잇다..
최근 미륵사지에서 무왕의 왕비가 사택씨라는 유물이 나왔듯이..
서화천으로 더 올라가면 염장들이다..전사자들을 묻엇다는 곳..
월전리 마을로 가면서 관산성을 바라본다..
머리 없는 성왕..
위덕왕은 아버지 성왕의 얼굴을 조각한 불상을 만들어 일본에 보낸다..
호류지 몽전의 구세관세음이 그것이다..
오른쪽 다리는 70년대 다리..그 위 고개가 말무덤 고개..
성왕을 구출하기 위한 백제 기병의 최후를 장식한 곳..
월전리 마을의 비..
앞산의 관산성, 뒷산의 노고성..서화천과 구진벼루..그리고 성왕의 죽음을 고증하고 잇다..
역사는 흐른다..쉬지 않고..
옥천읍에서 생선국수로 점심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현이 어딘지 생각해본다..
이곳 마달령이 가장 유력하다..
식장산 장고개도 탄현이라고 하기에 답사하여보앗는데..느낌이 아니다..
예전에 요해지는 지금도 요해지다..
마달령 부근에는 기차도 다니고 차길도 고속도로도 달린다..이것이 요해지라는 증거다..
백강입구 기벌포도 그때이후 요해지로 계속 쓰이듯이..
하지만, 장고개나 마달령이나 서로 인접한 식장산 자락이다..그저 탄현을 식장산 부근이라 해두자..
지도로 표시해본다..
무중(武中)골..
마리들..군사들이 말먹인 들판..
마달령..백골산..고리산..구진벼루..관산성을 죽 표시보니..
서화천이 휴전선처럼 느껴진다..
그 옛날의 역사는 장소만 바뀌어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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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대전 유성구 둔곡동 둔곡마을 - 오봉산 - 구즉 뒷바구니 - 불무교 - 신탄진 - 용호교에 이르는 11km
어제 바람불어 추운날..오늘 겁먹고 단단이 무장..
숨이 거세지고 상의 지퍼를 내릴 정도의 오르막을 오르니..
오봉산 8부능선..
잠시 쉬며 불소주 한잔 돌리고..
봉산동으로 내려서면...불무교가는 길이다..
불무교에서 바라본 송강마을..
급시우 송강이 108 두령을 대동하고 뛰어나올 양산박 같은 기분..
이쪽은 갑천이 금강 본류에 합류하기 직전..
시집가기전의 딸래미처럼 섭섭하면서도 이쁘지 아니하랴..
잘풀리는 집도 보이고...너는 언제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고 외치는 십구공탄.. 맹꽁이도 살 권리가 있다고 외친다..
3.4공단을 끼고 제방을 따라 간다..푸른 봄날을 기약하면서..
여기가 좌측의 갑천과 우측의 금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오늘 추위를 걱정하였는데, 푹한 날씨다..
신나게 걷다가 홀가분하게 둘러앉아 도시락을 편다..
마침 햇님이 방끗 웃으니 얼마나 좋던지..
새여울..신탄을 지난다..노산리 숲이 보이네..
청한정..
강물이 흘러가는
풍광이 맑고
구름을 이고 있는
청산이 여류롭다.
마음을 씻어 주는
바람이 맑아지면
천사만려千思萬慮
다 잊어버리고
발을 닦고
귀를 씻어
고요하고 한가히
청한정淸閑亭에 오른다
뿌리가 나무에게 무어라 말했을까?
뿌리없는 나무 없고 부모없는 자식 없다..
청한정에서 용호교를 바라보니..정말..
고요하고 한가롭다...
죽림정...죽자가 살아있네..ㅎㅎ
멀리 대청댐을 바라보며 오늘 걷기를 마무리한다..
대덕구 로하스 해피로드가 내년 봄에는 대청댐에서 원촌동까지 이어진다..
그때 엑스포에서 대청댐까지 걸어 보리라...
귀가길에 바위솔 전시회에 들럿다..(전시회 후기는 불러그 쓰기도/바위솔 전시회 참조)
테미고개 파전집에 갔다..
계란판으로 도배한 천장 아래 입구에서 주백약지장이 환영하네..
막걸리 한순배로 마음을 씻고..
사방 벽의 낙서를 감상한다..
개도 테미에서 한잔하면 시인이 된다..
12월이 한마디 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의 외로움으로 사랑을 만들고..
나의 쓸쓸함으로 평화를 만들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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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걷기, 오늘은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백범명상길이다..
무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데..길가의 돌비석에 희미한 글자가..
마치 아름답기 그지없는 저 꽃이
빛깔은 고우나 향기가 없듯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말도
행하지 않으면 얻는 것 없느니라.
법구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절에 이르는 계곡길..
절은 이런 계곡을 끼고 자리잡는다..
절입구에서 좌측으로 천연송림 등산로 표시를 따라 들어간다..
번뇌가 다한 고요한 마음은 이런 모습일까?
정갈한 흙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땀을 비오듯 흘린뒤 활인봉에 올랐다..
사람을 살린다는 이름 때문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활인봉에서 급경사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나발봉 가기 전에 생골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활기봉에서 숨통이 틔여으니 생골을 거쳐가야 확실히 생기를 얻으리라..
구비 구비 도는 길이 아담하고 아름답다..
생골에서 만나는 겨울을 위한 까치밥들..은행..감..밤..
백련암에 들렀다..
백범이 이곳에서 일시 수도했다는..
절마당에 베낭을 내려놓으니 불순이가 슬그머니 앞에와 앉는다..
과자 몇조각 주었더니 덮석 잘도 받아먹는다..
약수를 마시고 내려가다 정자에서 점심 요기로 떡을 먹는데, 멀리서 눈치를 보고 있었나 따라 내려와 빤히 쳐다본다..
세상에 남 먹는 것 쳐다 보는 놈이 제일 거시기 하더만...
하여 불순이랑 떡을 나눠먹고..서로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마곡사로 내려와 삭발바위-군왕대로 향한다..
계곡 징검다리를 건너면..
백범 명상길을 탄생시킨 백범의 삭발바위다..
이곳에서 무명초를 깍았다..법명은 원종..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자체다...
젊어서는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에 응시하였고..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여 마의상서를 공부하기도 한 백수시절..
약관의 나이에는 동학에 입도하여 황해도 동학군의 두령이 되기도 하였으며
치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범을 척살하고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수형생활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통된 전화기 덕에 고종으로부터 특별 감형을 받아 복역중 탈옥하여 이곳에 숨어 들어 수계를 받았다..
그러나 1년만에 환속..
그후에는 기독교를 거쳐 천주교에 귀의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니..
그의 정신세계는 유 불 선 기가 한덩이로 뭉쳐 조국의 광복의 일념으로 나타났던가..
군왕대로 오른 초입에 서있는 글..
그의 일생은 벼랑에서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그런 심정으로 살아왔으리..
군왕대에 오르는 송림 길이 일품이다..
저푸른 솔 숲에서 푸른 향기에 취하니..청송선인이라도 된듯하다..
미끈한 각선미는 경주 남산 삼릉의 소나무처럼 귀티가 난다..
군왕대..뭔가했더니..풍수와 관련 된 곳...
좌청룡..우백호를 낀 명당터로 왕기가 서려 아무도 묘자릴 못쓰게 방비 해놓은 곳..
영산전으로 내려와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대웅보전으로 간다..
법당앞 동자승은 조느라 머리에 돌이 얹힌 줄도 모르고..
대광보전 옆 심검당에 해강이 쓴 멋진 "마곡사"의 글씨..
심검당..칼을 찾는 방..
마음의 칼은 제 하기에 따라 활인검(活人劍)이 되기도 하고, 살인검(殺人劍)이 되기도 하나니..
지혜의 칼을 찾으라..
대광보전 옆에 백범이 머물던 방에 그의 친필 글씨가 있다..
답설야중거..서산대사의 시다..
아마 백범이 마곡사에서 수행할 때..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공부했으리라..
자연 서산대사의 시를 애송하였으리니..
해방후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귀국한 백범은 50여년 만에 마곡사를 방문한다..
자신의 은사 보경, 하은 스님은 이미 돌아 가시고..
대광보전 앞 주련.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다시 돌아와서 세간을 살펴보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아라.
라는 귀절이 자신의 인생사를 말하는 것 같은 감회가 어려 향나무 한그루를 식수하였다..
몇년뒤 그는 흉탄에 서거하였으니..
주련의 글귀처럼
인생사가 구운몽에 성진의 꿈이요..조신의 꿈이라..일장춘몽이요..남가일몽이라...
오늘 코스 : 천년송림 등산로 - 활인봉 - 생골마을 - 백련암 - 징검다리 - 삭발터 - 영은교 - 군왕대 - 영산전 - 대광보전
약 9Km
주차장에 내려와 태화식당에서 청국장 정식으로 마무리..
오늘 존경하는 백범의 흔적을 더듬으며 걸은 이 길이 나에게 덕담을 건넨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충청 걷기 - 서화천 구진벼루 (0) | 2011.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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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겨울비가 솔찮히 내린다..
하여 도래깨질을 포기하고..점심식사후에 동네 걷기에 나섰다..
입소문이 무성한 대전 현충원 산책길..
입구에 해태가 길을 정화하고 있다..
입구부터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촉감을 느끼며 걷는다..
갈대..초로의 백수를 휘날리며 돌아보네..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나..
길가에 적힌 시가 묵언으로 답한다..
묵언으로 답할 것이 어디 천안함 뿐이랴.. 울진 삼척..1.21..아웅산..KAL기..8.18 도끼..금강산 관광객..
징검다리를 건넌다..
돌다리도 두둘겨 보고 건너라지 않더냐..
어느 돌은 디딤돌이고 어느 돌은 걸림돌이라니..
다양한 길이 전개된다..고개마루를 넘어 계단을 내려오니 자그락 거리는 오솔길이다..
그러는 일방...대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어디까지더라..
새소리도 제법 들린다..식별하느니 까치소리 밖에 없지만..
가을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이젠 가거라..내 겨울 잘 보내마..
비록 첫추위에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였다만..
그렇게 지내온 세월 아니더냐..
군인들의 묘역..죽어서라도 햇볕이 따뜻한 양지에서 지내기를..
여기에도 민간의 묘역이 잇네..
판충추부사겸 의금부 당상을 지낸 양반이 선점한 명당자리..
연안 이씨 종중 땅이었는데, 국가에서 이 땅을 수용할 당시 이 묘역의 주인공들도 나라의 유공자들이라 그대로 두기로 했단다..
공식적인 코스는 끝나고 개설예정이라는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덜 다듬은 길이 더 좋다..
어제 오늘 내린 비로 개울도 흐르고..
하지만, 임도는 갑하산 언저리를 맴돌다 막혀있다..
돌아오는 길..물가 벤취에 앉아 잠시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숨을 돌린다..
벤취 옆 편지에 눈길이 갔다..
1950. 8. 11. 전사한 17살 학도병의 편지..가슴이 찡하다..
<위 편지는 다부동전투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다부동은 경북 칠곡이고...위 편지는 아래서 보듯 포항여중에서 발견된것
대전 현충원 관계자가 이글을 보면 정정하길 바람>
집에서 떠날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절하고 헤어졌겠지..
이우근 학생은 당시 서울동성중학교 3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71명의 학도병으로 참전..
1950. 8. 11. 포항여중학교에서 60여명의 군인과 함께 북한군 공격에 맞서 11시간의 사투를 벌인다.
71명 학도병 중 48명이 전사..
그날 전사한 이우근학도병의 주머니 속에서 피로 얼룩진 메모지에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글이 발견됐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十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二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七一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
그럼 ....이따가 또 ...........
집에 돌아와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포화속으로"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영화에 이 편지가 나온다..
누란의 위기에서 몸바쳐 지킨 나라..세계 최빈국에서 G20 수준으로 성장햇다..
그당시 천막교실 땅바닥에서 공부한 사람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엇다..
저 수렁같은 밑바닥을 헤치고 올라선 사람들..
광우병..FTA 정도는 그때의 고난과 비교되겠나? 두려워하지마라..
자신을 믿어라..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믿어라..
걱정을 현실화 시키는 하수처럼 살지 않고, 상상하는대로 이루어 나가는 고수처럼 살게되리니..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는 거야
미래를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이루어 질 일은 이루어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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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세종시 금남면 금강교- 세종보 - 불티교 - 청벽 - 석장리 구석기 주거지 - 공주대교- 공산성에 이르는 길 20km...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가 보인다..
공사로 어수선한 강길이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다..새로운 도시 건설..새로운 강의 건설..세계경제의 변화까지..
4대강 사업의 쟁점..보냐..댐이냐..
이것이 세종보의 현장..
계룡산 학봉리에서 내려오는 용수천이 금강과 만나는 지점..
손안댄 자연미인의 모습..
하지만..성형미인에 중독된 이 시대에 사람이 그러하니 강만 자연미인으로 남기는 어렵지 않을까..
태초의 자연이 남아 있을까?
길도 변하고..오솔길에서 신작로, 그리고 포장길로..
금강을 가로지르는 또다른 다리 밑을 통과하면 평산신씨 세거지 비석과 한림정 정자가 잇다..
한림정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다..
불소주로 찬기운을 쫓아 보고..
예전엔 멋진 풍광이었을 이곳에서 다리사이로 옛모습의 편린을 본다..
해방후 처음이라는 준설공사로 강이 깊어지자 강기슭의 비탈도 가파라 걷기가 쉽지 않다..
자갈에 기우뚱 지우뚱 하면서 발맛사지 받는 셈치고 걷는다..
저 높이 솟은 제방은 마치 대관령 목장의 능선을 연상시키고..
저멀리 불티교가 보인다..
그옛날 부강까지 배가 드나들던 시절..
저 다리 밑 나루에 소금을 하역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가 불티나루라 햇다던 곳..그래서 다리이름도 불티교..
금강가에는 예의 바르게 신발을 벗어놓고 낚시하는 분도 있고..
저멀리 청벽이 보인다..
금강이 여기에 이르면 대틀의 면모를 띈다..
금강의 공사로 물이 줄어 맨바닥이 들어나 청벽아래를 걸어서 지난다..
세월이 지나면 추억이 되겠지만..
청벽아래 발견한 말조개..다리 옆 옹기점..골라잡아 봉달이 사과..
오늘 점심은 메기매운탕..
청벽 아래서 잡는 민물고기는 먹지 못한다..양식 메기란다..
판관의 불망비가 선 벼랑에서 공주로 흐르는 금강을 바라본다..
점심후에 청벽다리를 건너 금강 우안에 건설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는다..
이 자전거 도로는 금강 하구까지 건설할 모양이다..
작금에 분 열풍 중에 자전거 도로 건설의 열풍에 이의가 있다..
자전거 정책이 에너지 정책의 일환이라면, 레저용이 아니라 출퇴근용 자전거 도로를 건설해야한다..
단순히 주말 레저용 자전거 도로를 건설하다면 이는 예산 낭비이다..
주말에 자전거 타는 인구가 몇명이기에 거액의 건설비로 전국을 도배하는가..
곰나루의 전설..
곰과 신의 사랑은 해피앤딩인데..곰과 인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나는 곰강이 금강으로 바뀌고..곰나루(웅진)에서 웅주..곰주..공주로 바뀌었다는데 한표를 던진다..
공주 석장리에 구석기 시대 유적지가 있다..
곰과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곳이니 만년전에도 사람이 살만하던 곳일터..
바람이 분다..
초겨울이 되었음을 알리는 중이다..
오늘 원없이 발맛사지 한다..
아니..코스모스가 피었네..
몇주전 봄처럼 따뜻하더니 꽃들도 치매에 걸렸나보다..
음양의 부조화..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조심 조심 개울도 건너고..
저멀리 공주대교가 보인다..
슬슬 콘크리트 걷는데 꾀가 나고 발바닥도 불편해질 즈음..
공산성이 마주보이는 강가에서 쉰다
막걸리와 오이..묵을 먹는데..몸이 더 추워진다..
겨울엔 막걸리도 데워 먹어야겠다..
일행이 챙겨온 쭈꾸미 샤브샤부가 인기 최고..
금년 첫추위에 모두 떨었지만 곰강을 걷는 기분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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