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텐부르크 성이 보인다..

수년전 로만틱가도를 여행할 때 들렀던 곳인데, 다시 보니 옛친구 처럼 반갑다..

로만틱가도..처음엔 낭만적인 사랑과 관련된 줄 알았는데, 그저 "로마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이길은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에 이르는 300Km의 옛길인데, 그 중간 쯤에 로텐부르크가 있다..

 

 

 

독일어로 "부르크"하면 성을 뜻하고, "도르프"하면 마을을 뜻한다..

 

 

 

중세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

 

 

 

 

 

 

 

 

 

 

 

 

 

간판들이 예술이다..

 

 

 

 

 

 

이곳의 전통 과자 슈니발렌..

 

 

 

시청사 광장..

 

 

 

 

 

 

 

시청사 옆의 시의회 연회관은 마이스터 트룽크(위대한 들이킴) 시계로 유명하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 시각마다 시계의 양쪽 창문에서 인형이 나와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교도와 구교도의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1년. 당시 신교 측이었던 로텐부르크는 요한 체르클라에스 틸리 장군이 이끄는 구교도에 의해 점령당한다.

장군은 장난 삼아 로텐부르크 시장인 누쉬에게  3.25리터짜리 잔에 담긴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키면 도시를 파괴하지 않겠다고 제안한다..그러자 시장이 이를 마시고 도시를 구했다고 한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마이스터 투룽크 역사축제와 9월 둘째 주말에 열리는 제국자유도시 축제는 이를 기념하여 열린다.

그 당시 마신 포도주 잔은 제국도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단다.

술로 도시와 사람을 구한다..술꾼들의 로망아닌가?

 

 

 

 

 

시청사 뒤편에 성 야콥 교회는 15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 리멘슈나이더의 작품인 ‘성혈의 제단’과 5500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오르간이 있다.

 

 

 

 

 

 

 

 

 

 

 

 

풀꽃과 조화로운 골목길을 걸어 간다..

 

 

 

 

 

 

 

예전에도 들럿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거기서 말대가리 모양의 오프너를 샀다..

 

 

 

 

 

 

 

지나가는 사람의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를 걸으면..

 

 

 

깨북쟁이 꼬마 천사들의 천진스런 웃음소리가 들리는둣 하다..

 

 

 

 

 

이 도시의 매력은 언제나 와도 한결같다는 거...

 

 

 

그사이 붉은 장미, 백장미 피고 지고 피고 지었겠지만..

 

 

 

 

 

이제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프랑트푸르트로 간다..

 

<플젠 ibis 호텔>

체스키크롬로프를 떠나 플젠을 향하여 간다..

 

 

 

HOCH..란 젊은이란 뜻인데..젊지 않은 저 사람이 들고 있는 HOCH는 무슨 의미인지..

 

 

플젠에 도착하여 IBIS호텔에 짐을 풀고 쉬고..다음날(여행 8일째)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선다..

여기도 토끼풀은 지천이다.. 

 

 

호텔 처마에 제비집이 있네..

우리나라 제비 다 어디 갔나햇더니..멀리 이국 땅까지 흘러왔나 보다..

 

 

걷다보니 주변이 공장지대..

 

 

 

어! 공장건물 벽에 낯익은 상표가 보이네..

LG 냉방기인가 보다..

하긴 대장금이 휩슬던 테헤란에서는 아파트 마다 엘지 에어컨이 붙어 잇다더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국 깃발도 선명히 나붓긴다..

플젠 지역은 전통적으로 기계산업의 기반이 있고 독일과 가까워 가장 인기 있는 투자지역 중 하나란다..

두산도, 넥센도 체코에 투자하고 있다하고..

독일이 유럽의 기관차 역할을 하니 이곳이 독일 진출의 교두보가 될터..

 

 

 

전기 버스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이길을 어깨 으쓱하여 되돌아온다..

 

 

아침 식사후 출발하여 독일로 들어간다..

뉘른베르크를 지나 로만틱 가도에 자리한 로텐부르크로 간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도 정체가 심하다..

동유럽과의 물류 소통이 엄청나다..

 

 

휴게소에 들렀다..

우리와 유럽의 차이점 중 하나는 담배와 술의 판매 방법..

술과 담배는 카운터 직원 뒤편에 진열하여 함부로 만지지도 못한다..

도수와 상표를 확인하려고 술병을 만졌다가 여직원에게 혼났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 겨울나그네,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를 듣는 동안 차는 로텐부르크에 다닿랐다..

 

https://youtu.be/zN4tm--TeQE

 

 

 

보헤미아의 진주..체스키크롬로프로 간다..

 

 

체코의 들판을 지나고

 

 

 

블타바의 강이 다시 다가오면 강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륙의 나라 체코에서는 강에서 비키니를 즐길 수밖에 없다..

 

 

블타바의 상류에 위치한 체스키크롬로프는 마치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이 굽이 도는 지형.. 

블타바 강은 이곳 상류에서 흘러내려 프라하를 관통하면서 카를교와 놀다가 엘베강과 합류하여 독일로 흘러간다..

 

 

 

18c 건물만 가득한 고풍의 도시..

 

 

 

 

 

 

 

 

 

 

감물에서는 레프팅과 카약을 즐긴다..

 

 

 

 

체스키크롬로프 성당의 색감이 참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느냐 하면...

 

 

성안 해자에 곰이 사네..

예전 성의 영주들이 모반자나 죄수들을 여기에 던져 곰에게 죽임을 당하게 만들어 겁을 주기위한 공포정치의 유산이란다..

 

 

 

 

 

 

이발사의 다리에서 전통빵 트르델릭을 먹어 본다..설탕뿌린 공갈빵이랄까?

 

 

 

 

 

 

 

 

에곤 쉴레..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개성을 발산한 화가..

어머니 고향인 이곳에 19살 애인과 동거하며 거침없이 누드 그림을 그리는 그를 이곳 보수적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3개월만에 쫓겨나듯 이곳을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미술관에서 영원히 그림과 함께 산다..

에곤 쉴레를 사랑한 레이첼스가 연주하는 "에곤 쉴레를 위한 음악"을 들어보면 좋겠지..

 

https://youtu.be/4NFgtBxU7iU

 

 

 

 

 

망토다리를 아래를 지나간다..

사람들이 다니는 다리 아래 쪽 길은 처음에 해자였으며 다리는 서쪽 성(城)을 연결하는 부분이다.

이 다리의 이름은 서쪽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요새화 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이 체스키크롬로프의 성벽..붉은 지붕..중세풍의 고도에서 느꼈던 기분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바츨라프광장의 바츨라프 왕>

아침에 다시 프라하 시내로 간다..

빨간 작은 전차가 구엽다.. 조런 전차가 다녀야 역사와 전통의 도시 같다..

 

 

 

 

 

 

 

 

요리조리 골목길을 헤집고 찾아간 곳은 체코 역사의 현장..바츨라프 광장이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국립박물관이고 그앞에 바츨라프 왕의 동상이 있어서 바츨라프 광장이라 부른다..

 

 

 

뒤를 돌아보면 라벤더 뒤로 시가지가 늘어섰다...

 

 

 

바츨라프 왕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왕국 체코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1306년 바츨라프 3세가 죽음으로써 왕권은 룩셈부르크가(家)로 넘어갔다.
1346년 2대왕 카렐 1세가 왕위에 올라 1355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카를 4세)가 되었다.
그는 프라하를 행정중심지로 삼아 보헤미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1526년 카톨릭교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의 왕권을 차지한뒤  1618년 종교개혁가 얀 후스파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30년 종교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 보헤미아(체코)는 가혹한 보복을 당하고 오스트리아의 한주로 격하되엇다..

그러다가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체코슬로바키아로 탄생되었다..

 

체코와 우리나라의 인연..

1차세계대전 당시 체코인는 오스트리아의 속국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그러나 영,프,러에 포로가 된 체코인들을 규합하여 체코여단을 구성하여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전투를 하게된다..

특히 러시아 지역 체코여단은 러시아의 혁명에 휩쓸려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일본, 미국으로 탈출하여 유럽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체코 여단의 무기를 매수하게 되고..

이때 구입한 최신 무기로 김좌진, 홍범도 부대가 청산리 대첩을 거두게 되었다는 사실...

 

 

체코의 초대 왕인 바츨라프를 기리는 노래가 있다..

 

선한 왕 바츨라프가 성 스테판 축일날에 바깥을 내다보았네
눈 깊게 굳게 쌓이고 또 쌓일 때
달밤은 밝게 빛나는데 눈보라는 거칠게 몰아치고
한 가난한 남자가 장작을 줍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네
"이리 오라, 시동이여, 내 옆에 서서 안다면 말해다오
저기 있는 농민은 누구인가?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며 사는가?"
"전하, 저 사람은 여기서 1리그나 떨어진 산 기슭
바로 숲 울타리에 맞닿은 곳, 성 아그네스 샘 옆에 삽니다."
"내게 고기와 와인을 가져다 주고, 소나무 장작도 가져다 주게
그대와 내가 이걸 날라서,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네."

시동과 군주는 길을 갔네, 함께 길을 갔네

무도한 바람의 탄식을 뚫고 험한 날씨를 뚫고

"전하, 밤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바람은 더 세게 붑니다

심장이 떨려 어떻게 더 가야 할지 모르겠군요."

"내 발자국을 따르게나, 내 좋은 시동이여. 대담하게 그것을 딛으면

겨울의 얼어붙는 분노도 그대 피를 한결 덜 차갑게 식히리."

주인의 움푹 패인 발자국 위로 딛자

성자가 남긴 발자국 위엔 온기가 넘치고 있었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모두 알지라, 부자든 높은 자든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하는 사람은, 곧 자기 자신도 축복을 얻으리라

 

 

5.16. 직후의 풍경을 기억하는 나에게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잊을 수 없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프라하 방송국이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아나운서의 마지막 외침.."탱크가 들어오고 있다.."

 

체코 슬로바키아는 제2차세계대전후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그러나 꾸준히 벗어나려는 운동이 있었고, 드디어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두브체크의 개혁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유럽 위성국의 이탈을 막기위해 소련이 20여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체코를 침공한다..

두브체크는 쫒겨나고..시위대는 무자비하게 진압된다..

 

그 6개월 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체코의 민주화를 외치며 약 100 미터를 걸어 내려와 숨진 Jan Palach 라는 21세 청년과

그 한달 후 다시 그 자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또 다시 분신한 Jan Zajic 이라는 19세 청년..

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그들이 숨진 바로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영화 프라하의 봄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하면서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시대상황으로 배경에 깔고 있다..

 

그때 채 피지 못한 봄이 드디어 이제 만개할 때가 왔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흔들린 동유럽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치로 대분화를 일으킬 때..

안으로 농축된 체코의 자유화 운동이 전개되엇다..

1989년 11. 17. 시작된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이 바츨라프 광장에 50만명의 시민이 집결하여 시위하며 절정을 이루었고,

12.10. 체코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후사크 대통령이 물러나고, 1968년 쫒겨낫던 두브체크가 연방의회 의장으로 복귀하고, 다음날 "바츨라프"라는 이름을 가진 하벨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의 혁명이 비폭력으로 완성되어 "벨벳혁명"이라 부른다..

 

 

매년 5월 프라하에서는 음악제가 열린다..

이 음악제는 전통적으로 체코의 민족음악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되고, 마지막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으로 끝난다.

벨벳혁명 직후인 1990년 5월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는 망명했던 지휘자 쿠벨리크가 돌아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지휘하였는데. 그날 지휘자도 울고, 하벨대통령도 울고, 참석한 전 시민도 함께 울면서 감격했단다.. 

 

 

유럽의 시내를 다니다 보면 뱀을 형상화한 간판은 다 약국이나 병원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뱀 한 마리가 있는 지팡이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의미한다..

그런데, 뱀 두 마리가 그려진 지팡이는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뜻한다..

 

 

다시 화약탑과 시민회관을 지난다..

이 시민회관에서 매년 5월 12일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이 연주되면서 체코의 음악제 '프라하의 봄'이 개최된다..

 

 

이 시민회관은 아르누보 양식으로 장식되엇다..

아르누보 양식이란..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0~1910년 사이 유럽 각지와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이다. 흔히 아르누보하면 덩굴식물 모티프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긴 실루엣의 여인 이미지 등을 떠올린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이었다.

체코 출신 무하도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회관 2층에서 촬영이 진행중이다..

 

 

 

 

걸이냐 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르누보 예술의 톱클래스 무하를 적극 후원한 사라 베르나르의 이름과 얼굴을 딴 레스토랑도 있고..

 

 

 

구 시청사 천문시계탑 광장에 다시와서 시계쇼를 또 보고..

 

 

얀 후스와 정식으로 인사하고..

 

 

 

 

 

 

 

 

 

 

 

 

일본풍의 그림도 눈에 띄고..

 

 

 

점심은 시내 한국식당 코바에 갔다..

 

 

 

 

법정 스님의 글씨도 만나고..

 

 

 

내 눈을 사로 잡은 시 한수..

 

심춘막수향동거(尋春莫須向東去)

서원한매이파설(西園寒梅已破雪)

봄을 찾겠다고 동쪽으로 가지마라..

서쪽 정원에 찬 매화가 이미 눈을 뚫고 피어 있으니..

 

 

 

 

 

 

 

거리의 악사와 한 가족이 서로 행복을 공유하고..

 

 

 

 

 

 

다리를 건설한 카를 4세의 동상..

 

 

 

 

블타바 강 건너 프라하성이 또렷하다..

 

 

 

지난밤 찾자 못한 순교자 네포무크 성인 동상..

 

 

 

 

 

쌍독수리는 로마의 문장에서 유래된 것..

 

 

국립 오페라극장..

 

 

블타바 강을 따라 걸어가는데..강변의 잔디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사람들이 자유롭다..

그런데, 쓰쓰가무시 같은 걱정은 없는지 물어보니..

여기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의례 맞는다고 한다..

 

 

 

 

마네스프 다리를 건너간다..

 

 

이런때 스메타나의 "블타바강"을 듣기 적격이다..

 

 

스메타나, 드보르작, 야나체크의 음악이 있고..

밀란 쿤데라, 카프카의 글이 있고..

알폰소 무하의 그림이 있는 프라하...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체스키크롬로프로 간다..

 

 

 

<호텔 로비에 걸린 프라하 가을 풍경>

 

프라하 외곽 탑 호텔에 묵었다..

아침 일찍 나만의 걷기를 시작한다..

 

 

 

저멀리 프라하 시내가 보인다..

 

 

여기가 어딘가 보니 블라지미스카라는 곳이다..

 

 

 

 

 

꽃들이 화사하게 핀 도로를 걷다가 문득 오솔길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들어간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체코사람과 인사도 나누고..

 

 

 

시간관계상 돌어오는데..살아잇는 생테환경의 상징..달팽이가 보인다..

이동네 달팽이도 주택사정이 어려운지 집을 지고 다닌다..

 

 

 

토끼풀 가득한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 들어가 쉬다가 주변 그림에 눈이 간다..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그는 1860년 헝가리 지배를 받는 체코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나 그림에 소질이 있어 파리유학을 가게 되었다..

 

 

가난 속에서 화가생활을 하던 그에게 대타의 기회가 왔다..

당시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포스터를 아르누보 양식으로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 그림이 사라의 마음에 쏙 들어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고, 파리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성공한 그는 고향 체코로 돌아온다. 귀국한 무하는 첫 작업으로 프라하 시민회관 벽화를 그린다. 또한 보헤미아 서부에 위치한 즈비로흐 성(城)에 머물며 그곳 작업실에서 세기의 역작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연작 (1912~1932)을 그린다..

그리하여 체코의 민족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치가 체코 점령 후 민족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무하를 체포 구금했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한 고문을 당하고, 결국 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얻은 폐렴으로 석방된지 며칠 뒤 1939. 7.14. 사망했다..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을 그린 풍경 그림이 아름랍다..

 

 

천문시계와 틴교회를 그린 그림..

 

 

화약탑과 아르누보 스타일의 문예회관

 

 

카를교의 풍

 

 

 

그림으로 눈이 즐거운 아침이다..

<카를교의 야경>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떠난 오후에 체코의 프라하에 도착햇다.. 

 

 

 

시내를 이리 저리 걸어 식당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한뒤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를 구경하기 위해 또 부지런히 간다..

이유는 정각에 1분동안 하기 때문..

 

 

 

화약탑..구시가로 이어지는 13개의 출입문 중 하나..신 구시가의 경계점

체코 왕들의 대관식 행사로인 '왕의 길'  첼레트나 거리의 시작점이다.

 

 

그 옆엔 아르누보 양식의 문화회관 

 

 

 

 

 

 

 

 

 

드디어 천문시계에 도착...정각 몇분전..

 

 

 

 

정각이 되면 우측의 모래시계를 든 해골이 줄을 당기고..

정복 욕망을 상징하는 투르크 군인, 부귀 영화를 상징하는 유대인, 허영심 망상을 상징하는 거울 든 인형들이 고개를 자로 젓는다..

종이 시각을 알리면 위 창문이 열리고 예수 12제자가 지나가고 마지막에 베드로를 상징하는 닭이 울면 쇼는 끝난다..

 

 

 

광장 건너편엔 틴교회...백탑의 도시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틴교회의 탑은 돋보인다.. 

 

 

공연이 벌어지는 광장은 자유의 열기가 넘친다..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

프라하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마르틴 루터 보다 1세기에 앞서 면죄부 판매등 카톨릭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청빈한 교회를 주장하엿다..

그러다가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고, 1415년 화형을 당했다..

그의 사후 프라하에서 그를 지지하는 신교파와 카톨릭간의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유럽 종교전쟁의 시발이 되었다..

 

 

 

 

성 미쿨라셰 성당 앞에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

 

 

 

 

 

어둠이 깃들자 슬슬 카를쿄쪽으로 걸어간다..

 

 

 

카를교는 카를 4세의 명으로 건축된 500미터 길의 석교로서 그의 이름을 땄다..

 

 

 

블타바(몰다우)강 건너편에는 왕성이 이었던 프라하 성이 우뚝하다..

그 성안에 현재 대통령궁도 있다..

 

 

 

 

 

잠시 블타바강을 바라보며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의 "불타바(몰다우)강"을 듣는다..

 

https://youtu.be/l6kqu2mk-Kw

 

  

 

성인의 손가락 위에 달이 걸렸네..

 

 

다리에 얀 네포무크 성인의 동상이 있으니 찾아보라 해서 달밤에 헤메다가 여기에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이곳인줄 알았다는..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로 부터 왕비의 간통 고해성사 내용을 발설하라는 강요에 굴하지 않다가 강물에 던져져 순교한 주교..그는 고행성사의 비밀유지를 지키려다 순교하여 성인이 되었다..

 

 

 

 

다리 건설자 카를4세의 동상이 우뚝하다..

 

 

다리를 되돌아 나와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

 

 

가는 길에 다시 돌아본다..황금빛의 프라하도 꿈나라로 가겟지..

 

 

 

폴란드 오쉬비엔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점심식사를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한가로운 시골풍경이다..

 

 

폴란드 전통가옥은 여타 국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양식..

 

 

 

 

한가로운 시골길이다..

 

 

 

 

고속도로를 올라타서 달리다 보면

 

 

크라쿠푸로부터 따지면 체코의 프라하까지 7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2번 정도 쉰다...

 

 

 

 

체코로 들어오자 교통량이 많아지고..

 

 

 

정체도 심해진다..그만큼 체코와 독일간의 물동량이 많다는 이야기..

 

 

두번째 휴게소에 들러 kfc 화장실에 갔더니 비밀번호를 입력해야하는데, 그 번호는 영수증에 있단다..

결국 사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써비스가 없다는..우리나라 kfc도 그러는가??

 

 

휴계시간을 이용하여 주변을 살피다가 제법 멋진 오솔길을 발견했다..

 

 

 

 

샤스타 데이지가 만발한 멋진 숲길에서 지친 마음에 충전을 한다..

 

 

 

6일째 폴란드 오쉬비엥침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간다..

워낙 유명한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장소..

 

 

투어버스의 기사가 폴란드 사람이다..가이드가 폴란드 말로 인사하란다..

안녕하세요..찐또부레..

감사합니다..진꾸에..

 

 

가는 길에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여준다..

유태인인 피아니스트가 독일군의 광기의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의 요구에 따라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

마치 "굿모닝 베트남" 영화 속에서 포연 속에서 연주되는 "what a wonderful world "처럼 참으로 절묘한 반어법이다..

 

https://youtu.be/mxx_WcjV5U8

 

 

 

오쉬비엥침은 철도역이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유태인 수용소를 설치하여 유럽의 유태인을 끌어 모앗다..

 

 

그 당시 건물이 그대로 있다..

유럽인들은 "용서는 하되 잊지 않는다"

한국인은 "용서는 죽어도 못하나 쉽게 잊는다"

세월호 이후 제도나 시스템이 얼마나 바뀌나 잊지 말고 살펴보라..

 

 

 

나치의 하인리히 히믈러 명에 의해 세워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여기서 유태인 100만-400만이 학살되엇다..

 

 

 

 

 

수용소 입구.."노동이 자유케하리라"는 구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를 패러디 했나보지..

 

 

 

이중 철조망과 고압전기로 둘러싼 수용소..

 

 

고통의 장소에도 버드나무는 청청하다..

 

 

 

수용소에서 본 그림과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장면이 어찌나 그리 똑 같던지..

그림속 왼쪽 해골표지 잘 기억하시라..뒤에 가면 실제 장소가 있다..

 

 

 

 

 

 

 

이런 음식을 주엇단다..

 

 

 

일하러 나간다..

 

 

칼잠보다 더한 면도날 잠이랄까?

 

 

 

비쩍 마른 아이들..

 

 

 

그때도 여름엔 이땅에 생명의 꽃들이 피고 있었겠지..

 

 

 

차마 눈뜨고 볼 수없는 광경..

수용소에 들어올 때 의족들도 압수당했단다..산더미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혀왓는지 상상이 간다..

 

 

그당시 압수된 가죽구두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다시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가 얼마나 유럽의 교통의 요지에 있는지 보여준다..

 

 

아우슈비츠에 최소한 130만명이 이 수용소에 갇혔다..

그중 110만명이 유태인

14-15만명이 폴란드인

23,000명의 루마니아 집시

15,000명의 소련군 포로

23,000명의 기타 포로..

 

그중 110만명이 살해되었는데, 90%는 유태인이다..그들은 가스실에서 학살당하였다..

 

 

사람이 만원이다..무슨 일인가??

 

 

 

 

 

 

아..죽음의 길이다..

 

 

 

 

기차로 도착한 사람들..독일인 의사가 사람들의 상태를 대충보고 분류한다..

노약자는 살(殺), 건강자는 생(生)..살생부도 없이 저넘이 생사여탈을 쥐고 잇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보면 실감난다..

 

 

 

 

이것이 독가스 싸이글론B이다..

 

 

 

사용하고 남은 빈깡통이 이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는가? 

 

 

 

 

 

앞 그림속에 나왔다 해골표지의 실제 장소다..

 

 

이곳은 해방된 후 수용소 소장을 교수형시킨 장소이다..

 

 

여기가 가스학살장이다..

 

 

 

천장위 구멍으로 싸이글론 B 가스를 살포한다..

 

 

시체는 바로 옆 화장장에서 태운다..

 

 

소금광산은 지하에 설치한 천국인데..

아우슈비츠는 지상에 건설한 지옥이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바이런)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잊지 않기위해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엇다..

 

이곳에서 119104 번호로 불리다가 살아난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썼다..

그는 말한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이우슈비츠에서 삶의 의미를 포기한 사람은 며칠 못가 죽음에 이르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끝없이 추구한 사람은 그 속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한다..

 

 

수용소를 나오면서 한마디 터져 나왔다..

오! 하늘이시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