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백사장항

원래는 여서도가려고 했는데, 3.1. 예보가 강우와 강풍이라 포기하고..

1박2일로 안면도와 연륙된 원산도를 가볍게 다녀오려고 출발했다..

일단 안면도 백사장항 수산시장에 들려 찬거리를 산다.

 

제법 싸다.

우럭 2마리와 잡어 3마리 포함 1만 5천원에 낙찰..

 

원산대교를 지나가서 원산도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넓은 백사장이 네플릭스에 시달린 눈을 씻어준다.

 

입구에 유료 캠핑장은 다 찼고..

잠시 걸으며 캠핑장소를 물색한다.

 

해변 끝에 캠핑카 전용싸이트가 잇는데, 코로나로 휴장중이다.

원산도 관리사무소에 전화해보니, 원산도 캠핑장은 빈자리가 없단다.

 

하여, 안면도로 갈까? 대천으로 나갈까?? 고민하다가

동행이 갑자기 효자도로 가잔다..으잉??

 

차를 선촌선착장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들어오는 배가 있었다..

바로 건너편 효자도로 간단다.. 도선비용 3만원..

 

우연인지, 인연인지 예상밖의 효자도로 이끌었다.

신라 대효를 중시조로 둔 조상 음덕으로 생각하자..ㅎ

 

 

선착장 뒷편 효자도 해수욕장에 캠핑장소가 있단다.

좌측 도로를 따라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간다.

 

교회 우측으로 넘어가면 해수욕장이다..

대충 길 끝까지 갔지만, 캠핑장소는 썩 들어오지 않는다.

 

돌아오면서 잘 살피니 해수욕장 입구..

송림좌측에 한채정도 펼칠 공간이 있었다.

화장실이 가까이 있으나 문 닫혔고, 물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일단 쳐 놓고 해결하기로 한다.

동네분을 만났더니, 화장실 문을 열어준다고 하고, 식수는 줄 수 있다고 한다..

참 인심 좋은 분들이다.

 

쉘터를 다 설치하고 난로를 피고 피자먹으며 한숨 돌리는 사이 

마을 분이 와서 화장실 문을 열어주고, 또 기연이 작용하여 가까이 수도물을 받을 수 있었다.

빨강머리 앤처럼 아무도 받아주는데 없는 외톨이 신세에서 갑자기 화장실과 수도를 갖춘 저택에 입양된 기분이다..ㅎ

천국에 들어온 기분처럼 홀가분하게 주변 산책에 나선다..

 

선착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효자도에 걸맞는 효자묘 방향 야산으로 올라간다..

 

행학무위원..

학무위원을 지내신 분의 묘소..

 

산속에서 매화를 만난다.

 

겨울강을 건너온 매화꽃잎 한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선

백옥의 여인이다.

 

- 박종영,매화풍경-

 

 

이 작은 섬에서 고라니를 4번이나 보고, 더구나 사체도 보인다..ㅎ

육지에서 바다를 건너왔나?

고라니가 바다를 건넌다면, 인류가 대양을 건너 대륙으로 퍼진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요기 이집을 사서 가끔 와서 한적과 침묵을 친구 삼아도 좋으리..

 

만조시간이다. 바닷물이 가득하다.

저멀리 숙소가 보이는데 갈 수있나 살펴본다.

불가 판정..

간조시에 다시 오리..

 

 

돌아와 우럭매운탕으로 저녁을 마치니 달이 구름에 쌓여 근심어린 얼굴로 나타났다.

 

와인 몇잔 들고 나오니 달이 휘영청 떴다.

 

그림자와 나, 달 셋이 되었다.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나는 이미 마셨으니

무엇으로 셋이 즐길거나??

 

달 위로차 단소를 들었다.

다소 성미급한 곡조지만 쓴약삼아 들으라고..

 

검은 물결 춤추고 갈매기떼 넘나드는 곳

내 고향 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가네..

....

그리워라, 그리워라

검은 물결 춤추는 그곳~

영춘화..라는 꽃이 있다.

봄을 환영하는 꽃..

내게는 복수초가 영춘화다..

매화 보다도 더 빨리 봄을 환영하는 노랑꽃..

복수초 보고 걷는 행사가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

완주군 화암사 주차장에 서자, 갑자기 왼쪽 포장 임도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표시는 없고, 단지 차량출입금지 표지만 있다.

이 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ㅎ

 

정식 표지대로 화암사로 걸어간다..

 

 

누가 나무에 대고 사진을 찍길래 나도 따라대충 찍고 물어보니

"길마가지"란다..

처음 듣는 단어라 메모했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나는 엉뚱한 것을 찍었다는..ㅎ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내 맘에는 봄이 멀었나??

 

드디어 복수초와 만낫다..

고져스 앤 큐티..

 

복수초의 꽃말이 "영원한 행복'이면서 '슬픈 추억"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다.

그러자, 여기에 딱맞는 노래가 생각났다. 

송가인의 "금지된 사랑"

"사랑이란 그런거죠, 늘 아픈거죠..

...

내 인생에 화려했던 어느 멋진 날"

 

스러져가는 낙엽 속에서 황금색으로 피어나 봄날을 노래하는 멋진 꽃..

먼훗날

내 인생의 화려했던 어느 멋진 봄날을 추억해주겠지..ㅎ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꽃밭, 

벌과 사랑 싸움에 날 가는 줄도 모른다.

 

 

벌만 정신 못차리는 것이 아니다.ㅎㅎ

 

벌침 보다 더큰 대포를 들이대고 사랑을 탐한다.

꽃 밭의 수호신은 큰 화살을 들고도 어쩔 줄 모른다.ㅎ

 

조선시대에는 노련한 사냥꾼도 찾아오기 힘들었다는 이 길을 철마를 타고 와서 유유자적 신선처럼 걸어간다.

 

아이롱 버드를 타고, 아이롱 호스을 부리고 살아도 기후변화만은 어쩌지 못하는 현대의 올림프스 신들..

요즘 일교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중이다.

 

절 입구에 나무다리로 철다리로 교체되었지만..

그 옆으로 노약자는 오르지 말라는 옛길이 있다..

 

 

옛길의 위엄을 갖추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드물다.

시청율, 구독율이 더 중요해진 요즘에 와서는 한물간 늙은이 대접을 받는다.

 

 

세번째 보는 우화루는 더이상 동행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연신 불명산을 오르자고 재촉이다. 

 

세번을 사양하다가 삼고초려 신세로 오르는 불명산..

산죽 가득한 길이다..

 

제법 급경사라 연신 쉬면서 숨조절이 필수..

 

능선에 오르면 정상은 100미터..

 

정상에 조망은 별루..

찬 바람 속에서 점심요기..

 

내려오면서 보니 절 뒤로 포장임도가 보인다..

저것이 주차장과 연결되는 임도인가??

 

하산하여 절 기념비 쪽으로 올라 절입구를 바라보니

그 옛날 엄중했던 풍세를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다.

 

 

이제 궁금증을 해소하러 절 후문으로 가니..

누가 차에서 내린다..

그의 말은 "여기서 주차장까지 임도로 이어지고 도보로 30분정도 걸린다"

 

여기 임도서 보는 풍광은 또 새롭다..

 

절 후문에서 150미터 지점에 불명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 연결된다.

약 1.3Km

절에서 정상을 한바퀴 돌면 대략 2km 소요된다. 

 

요런 포장임도를 30분 걸으면 도착하는 주차장..

이렇게 오늘 새로운 길을 만나고,  영원한 행복을 주는 복수초와 즐긴 멋진 걷기 였다..

 

<지도 설명>

1. 파란선 : 주차장 → 화암사 , 약 1km

2. 주황선 : 절 → 불명산 정상,  0.8km

3. 노란선 : 불명산 정상 → 절 후문, 약 1.4km 

4. 하얀선 ; 주차장 → 절 (포장임도), 도보로 30분 

MB 생가를 가기 전에 카풀하려고 흥해향교 앞에 차를 댔다.

정문 문루 이름이 태화루..

모든 사람이 크게 화평하기를 기원하는 문..

울산 태화루와 같네??

 

 

흥해읍 덕실마을..

그는 일제 시대 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되자 그 부모와 함께 귀국했다. 그의 나이 4살이었다.

그의 부모는 거의 빈손으로 귀국하였는지 본가에 들어와 조부모 밑에서 2년간 살다가 6살 때 포항시내 판자집으로 이사갔다.

그러다가 6.25가 터지자 다시 고향집으로 피난을 온다.

 

부모와 살았던 이 집터에는 현재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데, 마당에 MB 생가 모형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 기념관과 복원 생가가 있다.

 

일본 거주 당시 부친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나 귀국후에는 목장 근로자로 일했다고 한다.

 6.25때 고향집으로 돌아와 살던 중, 안채가 비행기 폭격을 받아 불탔는데, 그때 누나와 동생이 사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시절 아이스 께끼장사, 과일장사 알바를 했단다.

시장경제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터득했을 것이다.

 

안채에 걸린 현판 '청계유룡"

푸른 개울에 노는 용..아니 청계천에 노는 용..

서울 시장 당시 청계천 살리기 사업으로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호를 일송(一松)에서 청계로 바꾼다.

 

고려대 상과대학에 진학하고,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을 반대하는 6.3항쟁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구금되었다가 집행유예선고를 받았다.

6.3항쟁시 이재오, 손학규와 알게 되었고, 그중 이재오는 평생 친구이자 동지가 되었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관여하고 중동건설에 참여하는 등 열심히 일하여 37살에 사장 자리에 올라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1992년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자, 그와의 동행을 거부하고, YS의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서울시장 시절이 그의 리즈시절이다.

청계천 살리기 살리기 사업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의 성공으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청계천 사업은 수많은 이해관계인을 설득하고 보상을 마무리하였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여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청계천에서는 매년 등축제가 열린다.

 

대중교통체계는 버스중앙차로제와 환승제도로 요약된다. 현재까지 잘 운용되고 있어 역대 시장 중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있다.

 

행정능력으로 인기를 얻어 박근혜와의 경선을 이기고 대선에 출마하여 정동영을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성공이 너무나 빛난 나머지 그에 대한 그림자도 진했다.

 

1. 광우병 프레임과 촛불시위

한미 FTA는 노무현이 주도하였다. 그러자 그의 지지자들이 노통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든 화풀이를 MB에게 돌렸다.

2008. 2월 MB 취임 이후 광우병 괴담으로 촛불시위를 벌리며 괴롭혔다.

10년뒤  한미FTA는 한국에게 유리한 협상이었음이 밝혀졌고, 이 때문에 트럼프는 한미FTA의 개정을 압박했다.

그리고 광우병 환자는 1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언론사는 광우병 보도시 허위 보도를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러나 촛불시위 주도자들 중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2. 노통의 자살

2008년 5월 범죄수사를 받던 노통이 자살하자, 그에게 다시 동정심이 쏠리고, 노통지지자들의 MB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 올랐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시장경제를 완벽히 이해한 경세가였다.

 

1. 2008년 리먼브러더스 발 금융위기

우리는 IMF 충격만 기억하지만, 국제경제에 있어서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발 금융위기가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불황이라고 하였으나, 그나마 우리 경제는 선방하였다.

 

2. 아파트 가격의 안정

노통 시절 불었던 부동산 광풍을 진정시키고 임기내내 안정시켰다.

그는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써서 아파트 폭등 심리를 억제 시켰다.

반면, 현 문정부는  규제와 지시 일변의 정책으로 일관하다 아파트 폭등 심리를 부추겼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벼락거지가 양산되었다는 풍자가 떠돌고, 주식으로 대박쳐서 아파트 사야겠다며 자조하는 상황이 되었다.

반면, MB시절 아파트 산 사람들은 배로 올라 감사하게 생각한다는데,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란다.

 

3. 교육평준화의 불평등과 교육의 다양화

교육 평준화가 이론적으로는 옳을지 모르나, 학부모로서 겪어본 바로는 모순과 오류가 많다.

- 지적수준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없는 모순 :  머리 좋은 학생은 지루해서 자고, 머리 나쁜 학생은 몰라서 잔다는 말이 있었다.

- 강남8학군 같은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켜주고, 위장전입을 일상적으로 만들었다.

고위급 후보자 중에 위장전입 않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순된 제도..

- 대안은 지역에 관계없는 자사고와 대안학교도 적절히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4. 4대강 사업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몰고오는 현상은 기온의 편차가 갈수록 커지고, 그에 따라 강수량의 편차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에 맞게 강의 물그릇을 키워 놓아야 하는 것이 치산치수의 당면 목표였다.

환경문제에만 집착한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치수사업이라는 본래의 목표에서 보면 4대강 사업이후 심각한 가뭄이나 홍수 피해에 적절히 대처할 능력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작년 섬진강 유역이 심한 홍수피해를 입은 것은 이를 반증한다.

 

5. 원자력 사업

박통이 무역입국을 모토로 내세운 이래 우리가 잘 살길은 무역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무엇을 팔아먹을 것인지도 분명하다. 그것은 기술력이다.

반도체 사업의 성공이 그것을 말해준다.

MB는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했다. 엄청난 국부를 창출할 수있었다.

안전성??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안정성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모든 투자는 불안(리스크)를 안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기후문제 측면에서 원자력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적인 추세이다.

(빌 게이츠는 에너지 사상가 바츨라프 스밀의 영향을 받아, 2010년 신형원자로 개발회사 테라파워를 설립하고 신형원자로를 보급할 구상을 하고 있다)

급격한 탈원전으로 기술력을 죽이면 안된다는 이유이다.

 

더구나, 원자력 서류를 거짓으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탈원전 정책을 감행한 것은 사기이자 배임행위인바 뿌리와 몸통까지 찾아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의 임기내내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취임 초기인 2008. 7.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 총에 맞아 죽었다.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엇다.

그리고 2010. 3. 천안함이 피격되어 군인 46명이 사망하였다.

2010. 11. 연평도가 폭격을 당했다.

이런 도발에 적극 대응 못하고 인내로 일관 했다.

하지만, 2011. 1.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선박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청해함을 작전에 투입하여 해적 8명을 사살하고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무력도 쓸수 있음을 보여주엇다.

 

그의 집터 풍수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풍수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오래 산 것은 아니다.

 

현재 그는 정적들의 복수심으로 감옥에 잇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저평가는 언젠가 바뀔 것으로 본다.

이것이 주식이라면, 이 주식을 사겠다.

10년 이상 기다리면 대박칠 날이 올 것이다.

 

**

그에게 책 한권을 선물한다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다.

보에티우스는 최고권력의 자리에서 급전직하 반역죄로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당한다.

그는 사형직전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 역경은 부, 명예 그리고 쾌락이 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가르쳐준다.

  역경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가르쳐 준다.

- 그때 진정한 행복은 내면(철학)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된다.

- 일견 악한 사람들이 번성하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 같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을 행하고 덕을 베푸는 자가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다.

-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보고 아는 심판자가 그의 삶을 보고 있기에  덕을 행하고 살 가치가 있다. 

  

죽도시장에 들러 왕문어 숙회를 사고..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로 간다.

<삼국유사>

신라 아달라왕 시절 영일만에 살던 연오가 왜로 건너가서 동네 왕이 된다. 

그리고 뒤따라 세오가 건너와 왕비가 된다.

그러자 신라의 하늘에 해와 달이 사라졌다.

수소문해서 왜로가서 다시  부부를 다시 데려오려 했으나 거부하고, 세오가 짠 비단을 받아온다. 

동해 도기야 해변에서 이 비단을 놓고 제사를 지내지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났다.

그 이후 영일(迎日)만의 지명이 생겨났다.

 

이 설화가 실린 삼국유사는 신라 아달라왕 4년 157년의 일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이 설화 이야기가 없지만, 158년에 일본 사신이 방문한 기록이 있단다.

또 173년(아달라왕 19년)에는 야마태국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낸 기록이 있다. 

단순 설화가 아니라 무슨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도 보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전이나 요즘이나 국내에서는 대접을 못받던 사람이 외국에 가서 유명해지면 그때서야 호들갑을 떠는 습속은 여전한 것 같다. 

 

이 설화는 해의 정기가 왜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우리 땅의 보물이 푸대접을 받고 왜로 넘어가 빛을 보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원지에 적힌 히트작..

"주식 대박나서 집을 사자"

문정부의 멍청한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벼락거지가 속출했다.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절망의 표현이자, 복권을 사면서 위로받는 것과 비슷하다..

 

도기야..

사람이름이 아니고 "달이 돋기를 기원한 들"이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테마파크 귀비고 조형건물 앞에 바위는 연오랑을 태우고 간 바위를 형상화 한 것인지...ㅎ

 

 

해변에 연오랑을 태우고 갔음직한 바위들이 보인다..ㅎ

일월대에 올라 동쪽을 바라본다.

애증의 세월..

이곳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피가 이어지는데, 왜 아직도 견원지간으로 살아야 하는지..ㅎ

이럴 때는 DJ의 일본정책을 불러오기 하고 싶다.

 

풀리지 않는 고대사의 미스테리의 궁금한 것은 궁금한대로 묻어두고..

관심을 호미반도 둘레길로 돌린다.

 

호미반도 둘레길 1코스의 출발점인 도구해수욕장이 영일설화 장소 도기야 현장이다..

연오랑테마파크는 1코스 종점인데..2코스 선바위길을 잠시 걸어본다..

 

푸른 바다와 오랜 설화로 수다떨며 걷기 좋은 길..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여기서 돌아가지만, 다시 좋은 날 잡아 돌아오기로 기약한다..ㅎ

 

경주 캠핑여행 1일차..포항을 걷고 저녁에 캠핑장으로 간다.

일행이 포항에 큰 산이 있는데, 최근에 뜨는 사진 명소란다.

얼마나 큰 산인데??

곤륜산??

중국 전설 속의 산으로 황허의 발원지로 비정하고, 정상에는 생명의 열매 선도(복숭아)가 열린다는 산..

지금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곤륜산맥으로 알려진 곳..

 

그러고 보니 경북에는 큰 산이 많다.

경주에 백두산과 금강산이 있다.

그중에 곤륜산이 제일 압권이다. 

 

용을 타야 올라간다는 곤륜산을 잘 포장된 길을 걸어 천천히 올라간다.

 

오! 멋진 풍광이 기다린다.

카메라가 바쁜 곳이다.

 

시원한 풍광이 인생샷을 부른다.

 

곤륜산은 좌로는 칠포항, 우로는 칠포해수욕장을 끼고 좌정하였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느꼈다지만

나는 곤륜산에 올라 천하가 크다는 것을 느낀다. ㅎ

 

황하수가 서쪽으로 흘러 곤륜산 정상에 이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꺼지는도다

黃河西流崑崙頂 (황하서류곤륜정)
日月無光大地沈(일월무광대지침)

 

성철선사의 오도송 처럼 곤륜산 정상에 올랐으나 서쪽으로 흐르는 황하가 없구나..

설사 일월무광(日月無光)이라도 내 곧 영일(迎日)로 가리니 무엇이 걱정이리요..

 

***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겠구나!

 

진묵대사의 노파심은 공연한 짓이로구나..

긴 소매 걸친 사람이 없는 세상에..ㅎ

3일째 아침 왕의 길로 출두한다.

출발점 모차골로 갈려면 

1) 버스 : 추령터널 입구에서 하차하여 2km 정도 걸어가던가

2) 승용차: 네비에 "인자암"을 치고 간다.

도중에 왕의 길 주차장이 나오면 주차하고 걸어가던지, 인자암까지 계속 가면 그곳에도 몇대 주차할 공간이 있다.

다만 길이 좁아 교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인자암 앞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출발준비를 한다.

 

이곳 모차골 지명도 마차가 다니는 마차골에서 유래되었단다..

 

예전에는 길이 더 좋았을까?

수레가 다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자 중에도 천생 여자라는 느낌이 나는 사람이 있듯이 

이 길은 천생 길이라는 느낌이 난다.

그 만큼 고색창연하게 오래된 길이라 그런가보다.

반월성에서 감포에 이르는 길..

문무왕의 충정..아들 신문왕의 효성, 손자 효소왕의 순정이 어우러져 팍스 신라의 평화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길이다.

 

석탈해가 동해 바닷가에 표착하여 이 길을 통해 경주로 들어갔고,

그뒤에 지모로 반월성 터를 차지하고 혁거세 말년 반란 와중에 유리왕을 옹립하고 대권을 장악하고 나중에 왕이 되어 반월성을 짓고 왕성으로 삼는다.

 

문문왕이 반월성에서 동해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 유골을 운구하여 이길을 지나 

감포 대왕암에 수중안치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모하기위해 감은사를 짓고 때에 맞춰 왕래하고, 이견대에서 대왕암을 알현한다.

그러다가 보물 만파식적을 얻게 되는 이야기..

이야기가 열리는 길이다.

 

수레가 넘었다는 수랫재에 도착..

 

이 길은 무장봉, 함월산과 토함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옛길이라도 만파식적같은 보물처럼 고이 보전하기를 바란다..

 

가득 쌓인 낙엽사이에 무언가 스치는데..흠칫놀란다.

뱀인가??

아니고, 도마뱀이다.. 아직 추운데 벌써 나와 고생이냐??

 

수렛재를 내려오다 불령봉표를 만난다.

순조와 효명세자의 사연..

정조의 이른 승하로 제대로 왕 노릇 못하는 아버지의 위신을 세우고, 할아버지의 위업을 이으려던 젊은 효명세자의 죽음..

그의 죽음으로 9년 귀양살이를 하게된 추사 김정희..

그의 죽음이후 조선은 급속히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길에서 만나 그와 그녀의 빛과 그림자..

 

이 폭포애서 휴식중 어린 왕자가 호기심에 신물 검은 옥대의 용 장식을 똑 떼어내서 계곡물에 담갔다는 말..

신문왕은 어린왕자가 신물을 훼손해도 혼내지 않고 허허 웃으며 좋게 달랬던 모양이다..

따뜻한 부자간의 정이 느껴지는 설화아니던가??

 

봄이 오고 있다.

길위에 비추는 따스한 햇살 사이로..

까치 집 둥지 위 푸른 창공 사이로..

볏집 사이 두손 모으는 동자승 머리 위로..

 

한번 절로 삼천불께 예배하니 가성비 최고로다..

 

요즘 만파식적이 절실하다..

한번 불어 코로나 사라지고, 세상의 개소리를 모두 잠재울 수  있다면..ㅎ

 

 

 

<오늘 걷기> 모차골 인자암- 수렛재 - 불령봉표 - 용연폭포 - 기림사  약 5KM 

                 ,추령터널 버스정류장까지 연장하면 7KM

2일차 오전에 송대말 등대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무장봉 억새길을 걷는다.

무장사지 주차장에 차를 대면, 무장봉 억새밭까지 6.5km 표지판이 정찰제 가격처럼 붙었다.

에누리 없는 걷기..

 

 

이 동네는 미나리가 특산이다..

한번 짤라낸 미나리가 출하대기 중이다..

영화가 되어 미국까지 휩쓰느라 열일하는 미나리..

 

암곡..등산로 입구..

몇년만에 왔는데, 그 사이에 데크도 생기고 길도 넓히고..

뭔가 성형을 했는데..

전과 같은 은근하고 고요한 숲길 분위기는 사라졌다..

 

많은 비로 계곡이 무너져 복구차원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길을 너무 넓히고 파헤친 후유증같다..

 

3번째 방문이라도 무장사지 삼층석탑은 알현해야지..

무장봉이라는 지명은 삼국 통일전쟁후 잉여 무기를 모아 묻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다.

무장사는 통일신라 8세기 원성왕 때 건립되었고,

아미타전과 삼층석탑은 소성왕비 계화왕후가 남편을 추몰하기 위해 세웠단다..

 

천년 석탑이 천년 솔숲에서 천년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소성왕비 계화왕후가 조성한 아미타부처..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조성한 이유는 남편의 극락왕생이라..

생전에 부인에게 엄청 잘한 모양이다..ㅎ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들고 섰다..

 

계곡엔 얼음이 남아있다.

 

드디어 두번이나 회군했던 억새지역에 도착했다.

걷기 좋은 완만한 오르막길이 싫증나지 않는다.

 

위 안내지도 앞에 도착..

점선부분으로 직진해야 억새길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우측으로 올라갔다.

 

정상직전에서 앞서 본 직진 길이 조망된다.

 

오! 드디어 정상부 억새평원이 보인다..

한때 목장으로 운영되던 곳인데, 보문호수가 조성되자 상수원 보호차원에서 목장이 폐쇄되었고, 그 빈터를 억새가 전세내고 입주했단다..ㅎ

 

이산의 정식 명칭이 동대봉산 무장봉이다..

 

행복하자, 우리..

다짐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복함으로 채워지는 곳이다..

 

내려갈 때는 미련없이 뒤도 안보고 간다.

점심 준비를 부실하게 해서 간식을 모조리 털어 먹었어도 허전한 마음을 기다리는 문어라면으로 달래본다.. 

 

내려가는 길이 더 자연산에 가까운데, 비탈구간이 제법있어서 이곳으로 올라오면 좀 고생할 수도 있다.

성미 급한 동행은 다음엔 이곳으로 올라오는게 좋겠단다.

 

우리는 까마위와 까치 같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결론은 마음대로 하세요..ㅎㅎ

 

<오늘 걷기> 무장사지 주차장 - 암곡 등산로 입구 - 무장사지 석탑 - 억새평원 - 정상 - 능선코스 하산 - 암곡입구

                  - 주차장 약 12Km

2일차 아침..송대말 등대 구경하러 간다.

감포항에 주차하고 슬슬 걸어간다.

가자미가 많이 잡히나 보다..

 

감포항 등대는 감은사지 탑을 품고. 문무대왕호를 보유하고 있다.

 

항구에서 만난 할배..

포겟에 이쁜 강쥐를 넣고 다닌다..

우리 강아쥐 보다 작아도 성깔은 대단하다..\

우리 강쥐는 인성도 좋고 개념도 분명한디..ㅎㅎ

아래 신라 얼굴이 우리 강쥐를 닮았다는..ㅎ

 

해파랑길이 시작되는 구간에서 송대말 등대가 보이는데, 

아니 저것이 무어랴~~

냥냥이가 갯바위에 앉아어라~~

 

게다가 웃는 표정으로 ㅎㅎ

기가 막힌 사진을 득템했다는..ㅎ

 

저곳이 송대말 등대..

송대말??

소나무가 무성한 마을이란 뜻이겠지..

 

묘하게  1층이 한옥인 등대다..

경주에는 한옥이나 한옥을 테마로 한 건물이 많아 보기 좋다..

 

등대 끝에 길이 있다?

일제 시대 수족관이 있던 곳이 개인 사유지가 되어 관리하고 있단다.

"미역 따지마"가 선명하다.. 

 

수족관에서 바라본 송대말 등대..

 

돌아가는 길에 만난 이 분 장대낫을 들고 있다..

미역을 채취하는가 보다.

이 지역은 어촌계 소유아니고 개인 소유라고 단디 밝힌다..

 

송대말 등대 수족관길 짧지만 임팩트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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