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등대에서 내려와 이제 본격적으로 여호산으로 오른다.

 

둘레길이 편안하다.. 소가 댕겨도 될만큼..

 

동백꽃은 세번 핀단다.

나무에서 피고

땅에서 피고

마음에서 핀다.

 

동행이 묻는다..

마음에서 어떻게 피나요??

안피면 노래를 불러요..ㅎ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그렸던가 동백아가씨~~

 

동백꽃 즈려밟고 여호산으로 가시옵소서!!

 

 

공사??

장비들고 가는 섬 사람에게 물으니 둘레길과 방목 소를 막는 공사란다..

 

절벽 바위 조망처에 오르니 항구가 한눈에 들어 온다. 

 

4형제 바위를 오른다.

등뒤로 동백이 가득하다..

 

 

좌우로 바다가 푸르다..

바다 틈틈히 낚시배가 박혀있다.

 

동백은 어찌그리 무심하게 툭툭떨어지는가?

목련의 마지막 모습과 대조적이다.  

 

 

정상 부근 돌탑을 지나면 평퍼짐한 정상부분이 나오고 소똥이 여기저기 널렸다.

소똥 사진을 찍으니 여기 저기서 좋은 똥이 있다고 추천한다..ㅎㅎ

 

 

 

나중에 알아보니, 주민들이 봄철에 소를 정상 부근에 방목하다가 겨울이 되면 돌담 집으로 하산하는 모양이다.

개중에는 하산하지 않고 자생하는 소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좁은 지형과 풀밭 상태로 판단하건대, 소가 자생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정상부근 연화좌에 앉아 점심을 먹고..건너편 요망대를 향해 간다..

다행히 길은 완만한 능선 길이라 맘편히 간다.

 

그 길에서 올 봄 첫 진달래와 만났다..

동백과는 다른 또다른 강렬함이 있다.

모든 꽃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동백이 살짝 삐쳤나 고개를 번쩍 들고 외친다.

나 이뻐??

요망대의 표지판에 봉화대라고 잘못 표시했다..

요망대는 조선 말기 이양선 감시하러 세워진 망루인데, 일제가 이어받아 서양선박을 감시하는 파수대 역할을 하였단다.

 

이 섬의 주산은 여호산이지만, 제일 높은 정상은 요망대 352미터로 여호산 정상보다 7미터가 높단다..

 

현호색도 보랏빛으로 바다, 하늘과 경쟁한다.

 

많은 색으로 바라보는 세상 아름답지 않으랴~~

여서도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바쁘다..낚시하느라..

 

2일째 여서도 둘레길을 걷는다..

무인등대 - 여호산- 정상 요망대를 거쳐 내려온다..

 

 

청산도와 여서도를 비교하는 말이 있다.

청산도는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세 말을 못 먹는 곳이고,

여서도는 평생을 살아도 쌀 한 가마니를 못 먹는단다..

그래서인지 인구가 줄어 한때 900명이 살던 곳이 이제는 90명이 산단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치때문인지 예산은 많이 나오는가 보다. 

둘레길 조성사업으로 40억원을 지원받았단다..

 

섬 안내문에 

고려 목종 10년 1007년에 제주 인근 해상에 화산폭발로 생긴 섬을 서산이라 하였는데, 고려조에 생겼다하여 여서도라고 명명했다는 말이 있고,

이어 2004년 목포대에서 선사시대 패총을 발굴했다는 말도 나온다.

 

앞, 뒤가 모순인데, 선사시대 패총이 있다면 고려때 제주인근에 화산폭발로 생긴 섬은 여기가 아니다.

어디일까??

제주도 서쪽 비양도라고 한다.

 

여서도로 유혹했던 방목하는 소..

외지에서 3월초에 사 들여와 봄철에 산에 풀어 방목을 하면 겨울에 소가 제집으로 돌아온단다.

20여 가구 주민이 소를 키우고 있는데 산에서 방목한 여서도 소는 육질이 발달해 육회용으로 좋단다..

과연, 둘레길에서 소를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축하를 받으며 둘레길을 가면서 여호산 이름이 혹시 교회와 관련이 있나? 

아니다. 그냥 여호산(余湖山)이다..

 

초입부터 높은 돌담이 무슨 성벽같다.

마침 어느 집 주인장과 눈이 마주치길래 물었다.

"왜 성벽처럼 담이 높은가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정말 바람뿐 아니고 왜구라도 막아 낼수 있을 것 같다.

 

곁다리 작은 돌담으로 걸어들어갔다.

세상에 노랑 고양이들이 회의 중이었다.

죄송함다하고 나왔다..ㅎ

 

돌담에 자라는 다육이가 꽃처럼 매혹적이다..

 

테스형의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동백꽃 삼총사가 길을 막는다.

나를 밟고 가라..

그리는 못한다..

 

우측으로 무인등대를 다녀온다..

베낭은 벗어놓고 간다..

 

제비꽃을 지나고 바위를 오른다..

 

 

하트바위..

문리버표 작명..

 

전망대에 서니 속이 탁 터진다..

 

거기에는 미소짓는 고래가 있었다..

작은 배를 압도할 백경같은..ㅎ

 

무인등대에 서니 여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베이스캠프도 보인다..

 

이제 사형제바위로 간다..<계속>

배타고 3시간 이상 멀리 가는 섬..가거도와 여서도..

둘다 날씨복이 있어야 가는 곳..

그중에서 여서도를 간다. 첫번시도는 날씨로 취소하고 두번째 시도..

출발지인 완도 여객선 터미널로 간다..

 

차가 월출산 경치에 취하고 봉황 춤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완도대교를 넘어간다..

 

장장군이 직접 환영을 진두 지휘하니 몸둘바를 모르겟다.

 

문제는 여서도에 차를 싣고가는 배편이다..

1) 여서도 가는 배는 하루 1편(2시 50분발)인데 예매가 없다.

토요일 오후 1시부터 현장판매하는데, 현지인 차 4대가 우선이고 외지인 차는 2대만 선적할 수 있단다.

12시 쯤 도착하니 다행이 외지인은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편도 도선 표를 끊고 대기한다.

 

2) 왕복표를 끊어 주지 않는다.

나오는 배도 현지에서 선착순이란다. 순서를 놓치면 못나가는 수가 있다.

물론 날씨가 좋지않으면 배가 뜨지않아 못나간다..

여러모로 고려 상황이 많다.

 

3) 물론 베낭만 지고가서 민박할 사람은 날씨만 고려하면 되겠다.

 

섬사랑 7호가 왕복하는데, 2시 20분부터 차량을 선적한다.

2시 50분 정시에 출발한다.

 

완도에서 3시간 거리..

배 뒷편에 앉아 바다 풍광을 바라보자니 아직 바다바람이 차가워 선실에 들어가 마스크 잘 눌러쓰고 누워서 간다.

눈감으면 해먹에 메달린 기분이다.

 

 

청산도를 거치고도 한참을 가야 여서도가 나타난다..

 

드림빌더가 아름다운 돌담과 방목한 소가 있는 신비의 섬처럼 소개했다.

11월 - 3월 사이가 아니면 거머리와 뱀이 많아 방문이 곤란한 곳이라고도 햇다. 

그러나 날씨와 배편 때문에 방문하기 어려운 곳..

 

지금 보이는 해변 송신탑 부근에서 텐트를 쳤다..

 

항구는 여호산 아래 북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야 북상하는 태풍피해를 막는데 보탬이 되겠지..

제주와 육지 사이 중간에 자리잡은 해상 요충지 격이라 700억원을 들여 방파제를 만들고 항구를 만들었단다.. 

 

하선한 차를 몰고 좌측 방파제로 갔으나 끝에는 쓰레기 소각장이 있고 마땅한 공터가 없다. 

 

엄청 당황스러운 상황..

드림빌더가 제안하는 장소는 가시덩쿨에 자갈이 널린 곳..

주섬 주섬 가시덩쿨 잘라내고 큰돌 골라내고 텐트를 친다.

 

왜가리가 한심한듯 쳐다본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니 별천지가 되었다..

 

 

난로를 피고 앉으니 온기가 가득퍼지고..

신입동행이 보이차를 끓여 주니 천국처럼 평화로워졌다.

 

파도소리 자장가가 숙면에는 최고다.. 

다음날 붉은 해가 잠을 깨웠다.

화장실은 선착장 옆이라 몇백미터 걸어가야 한다..

물도 받을 수 있으니 불평할 거리가 안된다.

 

 

 

 

캠핑의 즐거움의 반은 먹는 거..

아침에 소세지와 에그 스크램블, 저녁엔 새우구이와 참돔구이..그리고 와인.. 

 

 

입가심은 새로 등장한 보이차..

차마시다 밖을 내다보니 배 한척 지나간다.

 

 

2일째 낮에는 여호산 둘레길을 걸으며 소일한다. 

 

3일째 아침에는 더 맑고 투명한 해가 떴다..

바닷물이 맑은가 보다.

 

섬에 먹거리는 다 바다에 있다.

왜가리도 고양이도 바닷가에 서성인다.

 

가마우지가 고기를 기다리는데..

숭어가 놀리듯 펄쩍 펄쩍 뛰며 지나간다. 

 

 

 

떠나기 전날 선원에게 들으니, 여서도에서는 차량 대기순서대로 차를 승선시킨단다.

해서 전날에 차를 승선가능한 4번째에 세웠다.

이런 사실을 몰랐으면 우리는 다음날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짐을 실을려고 차를 이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차를 뺐다가 다른 차량이 들어 와버리면 순서를 뺏앗긴단다. 

이 섬의 철칙이고, 섬사람끼리도 다툼이 생긴단다.

 

그래서 장비를 옮길 리어카를 빌려야 하는데..

내가 나서서 근처 매점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가 쌀쌀맞게 거절당했다..(쌀쌀맞게 구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중에 여성 동행이 나서서 또다른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을 했더니, 다행히 친절하게 빌려주었다..

하여간, 여서도 법에 따라서 리어커로 몇차례 짐을 날라 차에 실었다..

 

이섬에 들어왔다가 날씨 안좋고 배 놓치면 애 생겨서 나간다는데, 우리는 무사히 애 안만들고 나갈 수 있었다.ㅎㅎ

 

배를 기다리는데, 옆 낚시꾼이 의기양양해 하길래 가보니, 월척 감생이, 돌돔이 몇마리 들어있다.

여서도는 낚시꾼의 천국이다.

캠핑 특히 차량을 이용한 캠핑은 불모지다..

 

섬사랑 7호가 아침 7시에 청산도에 갔다가 들어온다.

10시에 배를 타고 완도로 간다. 

여서도의 풍광은 다음편에 연재된다..<계속>

대청호 걷기, 원점회귀 시리즈..꽃봉 방아실 구간이다.

이 구간은 대청호 오백리 6,7구간이 겹쳐지는 곳이다.

와정삼거리 - 꽃봉 - 서탄리 유턴 - 방아실 - 와정으로 회귀할 예정이다.

전에는 수생식물학습원에서 올라가려다가 진입로를 찾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와정삼거리서 출발한다.

<내비> 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산 27-1 

 

표지판 입구에 있는 강아쥐는 담요를 흔들며 격렬히 환영하는군..묶여있어서 다행이지만..ㅎ

 

대청호 5백리 6,7구간을 같이 하는 길..

초입 묘소 삼거리에서 헷갈리지만, 묘소로 직진하는게 정답이다.

 

꽃봉 갈림길, 좌측은 6코스 국사봉 구간이고, 우측이 7코스 꽃봉-방아실 구간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갑자기 옛노래가 떠오른다. 요즘에 유튜브가 다 만나게 해준다.

youtu.be/Fc4IHx90Mcg

 

다행히 지난 10년간 정처없이 트레킹하면서 지나온 자국에는 땀과 웃음 뿐만 고였다. ㅎ

 

이제 슬슬 방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꽃봉이지만 한때는 전선의 산성이었던 적도 있었다.

 

꽃봉에 딱맞는 계절에 오니 생강나무꽃을 만난다..

 

노랑들이 마음을 놓고 가란다.

이 넘들 강도 아녀??

내 마음을 뺏으려고 하네..ㅎㅎ

 

정상을 지나니 대청호가 눈에 들어오고..

저 집은 뭐더라??

맞다. 수생식물학습원이다..

언젠가 겨울에 갔던 기억이 난다..

blog.daum.net/servan/6350718

 

내려가는 길에 길막아지를 만났다.

지난번 화암사에 복수초 만나러 갔다가 들었던 그 꽃..

생전 처음 실물을 만난다.

이름이야 열매모양이 길마(말안장)을 닮아서인지, 길을 막는 가지 때문인지 몰라도 

꽃이 귀한 초봄에 하양 분홍 노랑의 삼색기를 흔드는 존재만으로도 반가울 뿐이다.

 

다시 꽃봉삼거리(서탄 삼거리가 낫을 것 같다)에서 서탄으로 향한다.

잘록한 능선길이 인상적이다.

더구나 호수를 낀 벼루길이 뉴질랜드 트레킹 코스를 연상시킨다..

 

나목 사이로 수생식물학습원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보면 아래 사진 처럼..

 

 

평평한 곳을 골라 점심 요기를 하고 다시 돌아간다.

 

이 길이 수생식물학습원 후문으로 연결되어 하산길에 수생식물학습원 구경을 하면 좋을텐데..

왜 저곳은 개인 소유가 되었을까??

2003년부터 5가구 10명의 주민들이 6만여㎡의 땅에 공동으로 수생식물을 재배·보급하고 있단다..

 

제비꽃을 만났다..

노래는 졸린데, 실물은 활기에 넘친다.

youtu.be/SAK_LuLpf8s

 

서탄갈림길에서 방아실로 내려간다..

푸른 솔이 새봄에 페인트칠 한 것처럼 선명하다.

 

일요일엔 수생식물학습원이 쉬는 날이라고 하여 메칼없이 방아실 차도를 걸어 회귀한다..

 

오늘 걷기 소감을 대변하는 그림..

precious moment.. 아주 귀중한 순간..

 

 

이 순간을 박제해놓고 향긋한 커피 한잔 나누고 싶다..

 

 

이길 방화정에서 방아실의 정체를 확인한다..

원래는 꽃피는 동네 방화실(芳花室)인데 발음 편한 방아실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부터 살던 동네라는 마을 자랑비를 지나니 

덕담하나를 슬쩍 밀어놓는다.

 

일근천하??

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 無難事)

일단 부지런하면 세상 어려운 일은 없다..

엡!!

이번주도 맡은 바 걷기를 해냈습니다..ㅎ

 

<오늘 걷기> 와정3거리 - 꽃봉 - 서탄삼거리 - 서탄리 유턴 - 방아실 - 와정3거리 약 6km

 

<팁> 이길은 3월 중순에 걷기를 추천한다. 이름과 꽃의 멋진 하모니(마리아주)를 함께한다.

        주말이라면 토요일을 추천한다..그래야 수생식물학습원 구경까지 할 수 있으니..

현판글씨가 사비루인줄 았았더니 사자루란다.

원래 사자루라는 건물보다 사자수라는 말이 먼저 있었다.

사자수는 금강, 백마강의 옛이름으로서 사비강, 사비하, 백강, 백촌강 등으로도 불렸단다.

 

조선시대 임천관아 건물을 1919년에 옮겨짓고 사자루라고 명명햇단다.

글씨는 비운의 왕자,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이 썼다.

조선 개국을 알리는 숭례문 현판을  풍운의 세자, 세종의 아들 양녕대군이 썼다는 설이 있는데,

백제 땅 사자루 현판은 망국 왕자 이강이 썼다는 아이러니..

 

또다른 현판 백마장강..이 일품이다.

장짜가 긴 강이 흐르는 듯하다. ㅎ

글쓴이는 해강 김규진으로, 고종 때의 서예가...최초의 어전 사진사..였다

 

半千基業作荒丘   작천기업작황구
滿木山河摠是愁   만목산하총시수
孤巖春寂寂   화락고암춘적적
龍亡大洋水悠悠   용망대양수유유
管絃當日繁華地   당현당일번화지
漁逐斜陽慘憺秋   어축사양참담추 
白髮那堪今古淚   백발나감금고루
滄浪一曲更回舟   창랑일곡경회주 

 

5백 년 터전이 황량한 언덕이 되니
눈에 가득한 산하가 모두 근심이네.
꽃 지는 외로운 바위 적적한 봄날에 
용은 죽고 큰물만 유유히 흐르는구나.

한때는 풍류가 번화하던 땅이었으나
석양에 고기 잡는 쓸쓸한 가을이 되니
백발이 된 지금 눈물견디기 어려워
창랑가 한 곡조 부르며 배를 다시 돌리네.

 

<송용재 (宋龍在)>  

 

송용재는 대전 이사동 사람으로 자는 이견(而見), 호는 용암(龍庵)으로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아편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다. 그의 아들 송진백이 말미에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부여회고>

 

백제도성총고구  百濟都城摠古
상전벽해사인수  桑田碧海使人愁
천정무형산역역  天政無形山歷曆
군창여몽수유유  軍倉如夢水悠悠
화락고암천재루  花落高巖千載淚                       
탄백마일조추  龍呑白馬一朝秋
삼충의백금래조  三忠義魄今來
홀억라강경도주  忽憶羅江競渡舟

 

백제도성은 옛언덕 되었으니
뽕밭이 바다로 바뀐듯 사람을 슬프게 하네
천정대는 형체도 없이 산만 뚜렷하고
군창터도 꿈속의 물처럼 유유히  흐르네
낙화암 높은바위는 천년동안 눈물짓고
백마 삼킨 용도 하루아침에 쓸쓸해졋네
삼충신의 의로운 혼백을 지금 조문하려니
문득 다투어 강 건너던 배가 생각나네

 

<전남 나주 반남면 금운 정순규>

정순규는 반남면장을 지낸 지역 학자란다.

 

고란사로 내려간다. 구비진 오솔길이 정겹다.

 

고란사 글씨도 해강 김규진이 썼다.

전국을 다녀보면 의외로 그의 글씨가 많다..

 

진공묘유(眞空妙有)..

비어있는 듯하나 묘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것..오온의 집적체 속을 들락날락하는 그것..

불교의 공사상과 중도사상을 대변하는 한 마디..

 

18세 동자 신동호가 썼단다..

18세면 동자라고 하기엔 다 컸는데.. 겸손의 표시겠지..ㅎㅎ

그는 1946년생으로 부여출신 서예가 인전(仁田), 동호(東浩) 신덕선(申德善)이다..

그는 YS 장례때 명정 글씨를 쓰기도 했단다..

 

518년에 일본 여인 3명이 백제로 불교 구법여행을 왔다.

그때는 무령왕 18년이다.

무령왕도 일본에서 귀국하여 즉위하였으니 왜와 백제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이다.

한편, 일본에 정식으로 불교를 전해 준 것은 무령왕의 아들 성왕 30년인 552년이다.

성왕은  왜왕 긴메이에게 달솔 노리사치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 불법도 전해지기 전에 일본 여인들이 구법여행을 온단 말은 모순이 아닐까??

 

일본 기록에 의하면, 588년(위덕왕 35년)에 선신, 선장, 혜선 등 일본 비구니 3명을 백제에 보내 유학을 시켰고 이들은 백제에서 계를 받아 정식 비구니가 되어 2년 후인 590년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들의 설화가 고란사 벽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란사 벽화의 518년은 588년의 오기가 아닐까??

 

백마강 위로 돛배만 유유하다.

참고로 부소산 구경을 다하고 고란사 선착장으로 내려와 돛배를 타고 구드래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고란사 앞마당 고양이만 관광객과 밀당을 즐기며 살만 두룩두룩쪘다.

 

낙화암으로 간다.

정상엔 백화정이 있다.

 

낙화암 전망대에 서서 금강을 바라보는데,

문득 백마강 노래 한귀절이 터져 나온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풍이 그리웁구나.

youtu.be/OZcM_5ibl5I

 

의자왕과 그 자손들은 어찌되었을까??

 

660년 음력 7월 9일 나당 연합군이 침입하였다.

1. 백강구 방어진이 무너지고, 5일만에 사비성 30리 밖에 당군이 밀려들고 백제군 1만명이 전사하는 상황에 이르자 의자왕은 왕자 부여효와 함께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한다.

2. 사비성은 태자 부여융, 부여효 등이 방어하지만, 3남 부여효가 왕을 참칭하면서 내분, 부여융은 탈출한다.

  전설에 의하면 부여융은 계룡산 고왕암(현 신원사 암자)으로 피신햇다가 체포되었다고 함..

3. 웅진성의 의자왕은 피신 5일만(침공 10일째)인 7. 18일 성주 예식진 일행에게 감금되어 항복하게되었다는 것이 최근 유력설..

4. 의자왕, 부여융, 귀족 등이 당나라로 끌려가자 왜국에 있던 왕자 부여풍이 귀국하여 부흥운동에 참여

   부여풍은 660년부터 663년 백촌강 전투때까지 백제부흥운동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백촌강전투 패배후 백제는 소멸되었다.

5. 부여융은 당나라 앞잡이가 되어 임존성에 항쟁하는 흑지상지 등의 투항을 권유하여 부흥운동을 와해시키고,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웅진도독이 되어 당나라군의 얼굴마담을하다가 신라의 대당항쟁이 심해지자 676년 당나라로 복귀..

6. 당나라는 부여융 등 백제유민을 요동의 건안성으로 이주시켰는데, 후손들은 웅진도독 대방군왕() 칭호로 발해에게 멸망할 때까지 150년간 존속햇다고 한다.

7. 부여융은 낙양에서 사망하여 의자왕과 함께 북망산에 묻혔다..

8. 부여융의 아들 부여덕장의 2녀(훗날 부여태비)는  711년 당나라 황족 이옹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고 5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아들 이옹이 719년 괵왕(함곡관 부근)으로 책봉되면서 부여태비도 괵왕비로 책봉되었다.

727년 아들 이거(李巨)가 괵왕이 되면서 731년 태비(왕의 어머니)에 책봉되었다. 
7년 뒤인 738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9. 당에 항복한 후손들은 당의 귀족이 되었고, 일본에 남아있던 왕자 부여용, 부여선광 등은 일본의 귀족이 되었다.

   나라는 거덜내놓고 백성은 고통받았는데, 그들은 잘살았다는 이야기..

 

 

낙화암을 나와 부소산을 한바퀴 돌아나가로 한다.

 

삼충사에 도착했다.

벡제 말기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사당이다.

 

성충..

656년 (의자왕 16년) 3월 왕의 정치에 대해 간언을 하다가 미운 털이 박혀 투옥된다.

28일 단식하면서 상소를 올린다.

국제정세를 보건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 예견됩니다.

그럴 경우 백강입구 기벌포을 막고, 탄현을 지켜십시오.

 

그가 죽고 4년뒤 나당연합군이 침입했다.

그 당시 고위관리들은 나당연합을 감지했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후의 상황을 보면, 의자왕은 대비 못한 것으로 보인다.

 

흥수..

전쟁발발당시 고마지지현(전남 장흥)에 유배중이었으나, 의자왕에게 성충과 같은 계책을 건의하였다.

전쟁 와중에 그의 생사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앗다.

 

계백장군..

워낙 유명해서 재론하지 않는다.

자세한 사연은 blog.daum.net/servan/6349927 참조

 

그런데, 세분이 형제같은 느낌이 든다. 한 화가가 그려서 그런가??

 

의자왕은 왜 충신들을 멀리했을까?

의자왕은 40세에 태자가 되고, 641년 50세에 즉위한다.

의자왕 즉위 초기 성충, 윤충 등 명장의 보좌를 받아 신라에게 뺏앗겼던 40여성을 공취하고, 특히 신라의 관문격인 대야성(합천)까지 함락시키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까지 죽인다.

(이때 차라리 인질로 잡아두지..아마 성왕의 복수심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위 15년이 지나자, 나이도 들고 총명함이 사라져 방탕과 독단에 빠져 충신을 멀리한다.

백제가 10일만에 항복한 것도 귀족들과 사이 나빠서 귀족들의 초기 협조가 없었기에 벌어진 것이고, 그뒤 의자왕 일족이 당으로 압송되자 그제서야 귀족들이 궐기하여 3년간 부흥운동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자골을 걸어가니 경주 삼릉처럼 멋진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영고성쇠, 성주괴공..

백제의 최후나 신라의 몰락이나 멸망의 순간은 비슷하다.

선후만 다를뿐..

 

 

 

다시 돌아온 백마강길..

경비행기가 날고 보트는 달린다.

백제문만 묵묵히 관조할뿐..

 

친구들 모시고 부소산둘레길 걷고 수륙양용버스 타고 ATV 달리고 맛있는 식사하면 멋진 여행이 될 곳이다..

 

 

봄이 오건만 코로나는 기세등등하니 

불보살은 힘들다..중생이 힘드니..

 

 

<오늘 걷기> 부여 금강문화관 주차장 - 백마강길 - 부소산 - 고란사- 낙화암 - 백마강길 - 금강문화관 약 7KM

부여 백제보 금강문화관에 주차하였다.

여기서 출발하여 백마강길을 걸어 부소산을 돌아 다시 올 예정이다.

 

백제보 전망대는 진도개를 닮았다.

금강의 파수견 노릇 단디해라.

가뭄도 막고, 홍수도 막아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1960년대의 강 풍경이 이상향일까?

유럽이건 중국이건 강은 치산 치수 사업의 대상으로 시대에 따라 기후에 따라 변화해왔을 뿐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마치 어느 책 한귀절에 집착하여 전체의 흐름을 놓치고 마는 것과 같다.

원자력 발전도 그렇다.

탄소배출과 기후문제가 닥치자,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외국의 유명인 나서야 그제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얼마전 미국 텍사스에 폭설 한파가 닥치자, 소위 신재생에너지라는 풍력과 천연가스는 얼어 붙고, 원자력 발전소 4기중 3기가 가동하여 불랙아웃을 면했다는 기사가 났다.

그런데도, 어느 외눈박이는 원전 4기중 1기가 얼어 가동중단된 것만 부각하여 원전의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칼럼을 쓰고 있었다.

치산 치수, 탄소배출, 기후변화, 원자력 등은 이데올로기 측면이 아니라 더 큰 시야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아니면, 판도라 영화 한편에 놀란 아이들과 뭐가 다르냐??

 

불보살이 아니라도 관음문향(觀音聞香)의 자세로 생각해야한다.

소리를 귀로 듣되 소리의 근원을 생각하고,

향기를 코로 맡되 향기의 나눔을 고려하라.

 

금강문화관은 코로나로 휴업중이라 지나쳐 백마길로 접어든다.

 

이 길을 10월 억새 피고 코스모스 가득할 때 오려다 이제사 왔다.

금년 10월에 다시 오련다.

 

강건너 천정대가 보인다.

강변에 호암사와 정사암 바위가 잇었단다.

백제시절 정사암에서 재상을 선출했단다.

그러나, 한때의 승리에 취한 의자왕이 성충, 흥수 등 유능한 재상급들을 쫓아내고 독주하다가 백제는 망했다.

 

들판에는 ATV, 강에는 카약과 보트..

백마강은 레저의 왕국이 되어간다.

 

부소산을 바라보며 걷는 유장한 이 길..

마치 송가인이 부르는  "한많은 대동강아~" 한소절처럼 임패트가 있다.

 

경주처럼 부여도 한옥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서 좋다.

 

강건너 백제문은 사비시절의 전성기처럼 웅장하다.

 

추억의 백마강..

한때 나의 17번 쯤 되는 노래였는데..ㅎ

저음의 배호가 부르는 백마강은 송가인이 부르는 대동강과 쌍벽이다. 

youtu.be/CGB1StFVtmA

 

골프연습장 공사가 한창이다.

부디 백마강길과 잘 공존하기를..

 

이제는 친일파의 대명사가 되어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춘원 이광수도 부여를 방문하였나 보다.

 

부소산 올라서서

금강을 굽어보니

천정대 내린 물이

낙화암을 씻어 돈다.

 

 

 

오늘 이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옛노래..백제야화

 

목메어 우는 새야  말좀 하여라

대왕포 사자수에 궁녀 넋이 울드냐..

 

youtu.be/-WHnxcJwT7s

 

송가인의 간택을 받아 불려져야 새생명을 얻을터인데..ㅎ

 

저멀리 낙화암 아래로 돛배가 간다.

백마강 길은 차도변으로 가라고 아우성이다.  

싫다고 실랑이하다가 다다른 곳..다행히 물이 적은 때라 건너 차길로 올라선다.

 

 

이제 길은 부소산으로 안내한다.

 

높이 106미터의 산 자락에 쌓은 왕성에서 10만의 나당연합군을 대적하려면  적어도 30미터 높이 석성을 쌓아야 하지 않았을까?

수당과 싸웠던 고구려의 요동성은 30미터 높이의 석성이었다는 설이 잇다.ㅎ

 

그때 백마강에 버스가 떠내려간다.

홍수가 났나??

세계테마여행 캐나다 오타와편에서 보았던 수륙양용 버스를 여기서 본다..신기!! ㅎ

 

사자루 직전 전망대서 한숨을 돌린다.

저 아래로 걸어온 백마강 길이 보인다.

 

부소산에서 만나 소나무 투병중이다.

소나무의 코로나격인 재선충 예방을 위한 백신을 맞는 중이다..ㅎ

나무나 사람이나 병충해 때문에 몸살이다 (계속)

아침 식사후에 밥값하러 나선다.

요즘 언택트 확찐자 펜데믹 속에서 그나마 2kg 증가로 선방하고 있는 것은 캠핑여행 덕분이다.

 

섬에서는 바닷물을 담수화하여 쓰고 있다.

보건진료소도 있고, 갯벌에서 나오는 연금도 쏠쏠하니 섬에서 살만하겟다.

 

 

효자도는 특별히 등산로도 없어 그냥 야산과 찻길을 이리저리 걷는다.

그 와중에 놀란 고라니가 정신없이 도망간다.

 

산위에서 바라보니 갯벌에 해루질이 한창이다.

경운기까지 끌고 들어갔다.

 

우리도 해루질 구경하고 갯가를 돌아 텐트로 가기로 한다.

 

따뜻한 햇살에 동네분들이 텃밭이나 마당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다.

속으로 "뭣하러 다니는 사람인지" 궁금하겠지??

 

 이 작은 섬에도 참을 일이 많나 보다.

참을 인자 10번 쓰면 살인도 면하고, 100번 쓰면 대종중 종손 노릇할 수있단다..ㅎ

 

바위마다 비밀 그림이 그려져있다.

세계지도도 있고..ㅎㅎ

 

이섬을 우리가 전세 냈나했더니 또 한팀이 있다.

해루질, 낚시 준비를 하고 왔는데, 민박이 휴업이라 물도 안나오는 이곳에 텐트치고 점심을 먹었단다.

다음날 비예보인데도 계속 묵는다고 하여, 동행이 슬그머니 우리 캠핑장소 정보를 알려주고 떠났다는..ㅎㅎ

 

 

갯벌에 굴이 지천이다.

벌써 경운기에 가득 싣고 갔는데, 또 한 보따리씩 장만하는 중이다.

 

물들오기 전에 갯가를 통과해야 한다.

성미 급한 사람만 종종 걸음치고, 동행들은 희희낙낙이다.

비관적인 자세로 적극적으로 대처해온 인생살이를 어찌 바꾸나?? 

 

드디어 안전지대가 보이는데, 동행들은 또랑섬에 올라간다고 간다.

또 정상증후군..

 

그러나, 고집부려봐야 밀물이 들이치는데, 어쩔것이여~~

 

그렇게 때맞춘 간조를 만나 섬 일주 제대로 했다..

 

마지막 배 기다리며 동행이 갯벌에 오늘 채취한 굴을 샀다.

돌아와 떡국에 넣어 먹으니 탱글 탱글한 맛이 일품이다.

 

우연히 만나서 필연이 된 효자도를 떠난다.

기대없이 만나서 아낌없이 받은 느낌으로 섬을 떠난다.

 

가는 길에 멀리 원산도 뒤에 펼쳐친 삽시도에게 구두 예약을 날린다.

2주뒤에 봅시다..ㅎ

 

메아리 대신에 갈매기가 답신을 들고 왔다.

오케이여라!!

2일차 아침..일어나 화장실 가다 만난 푸른 세상..

호젓한 섬 캠핑이 주는 선물..

 

바다건너 반짝이는 것은 보령 화력 발전소..

 

7시 무렵 다시 나가니 해가 오른다.

 

송림 사이로 보는 일출..

태평양에서 솟아오르는 일출 못지 않다..

 

잠시 눈을 돌리니 간조시간이라 어제 가지 못한 바위섬이 뭍으로 드러났다.

아침 먹기전 산보 타임..

 

 

 

높은 곳을 놔두지 못하는 성미들은 오르고 본다.

그리고 다 오르면 자동으로 손이 올라간다.

정상증후군으로 판정한다..

 

 

썰물과 밀물..

인생도 그런 흐름이 있다.

때를 잘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여기서 바라보니 우리 텐트가 명당이다..

 

 

아침 식사후 최대 간조때 갯벌을 걸어 저 또랑섬을 돌아서 올 것이다.

 

 

죽은 뒤에 차려진 진수성찬 보다 더 맛있다는 오늘 아침밥..

맛있게 먹고 섬 일주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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