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울라기리 산>



12.24. 트레킹 3일차

고레파니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추일레를 향해 출발한다..



포니 서비스한다고 광고한다..

평지라면 탈만 하겟지만 내리막에서는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



응달은 눈길이다..

아이젠은 필수품이다..







헐떡거리며 푼힐 능선에 올리서니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휘일출리 연봉이 다 보인다..



우측이 푼힐로 이어어진 능선길이다..

멀리 푼힐 전망대가 보인다..





아이젠을 차고 눈길을 걷는다..








설산은 멀리 떨어질수록 더 커지는 느낌이다..



 지리산 능선같은 익숙한풍경도 펼쳐진다..








데우랄리에 도착하여 신라면을 시켜먹는다..

abc 코스에서 신라면은 정식메뉴로 들어있다..

이곳에는 데우랄리라는 지명이 많은데, 우리식으로 하면 윗골 정도 된단다..





반탄티에 도착..

해가 많이 기울었다..





소수력발전소도 있다..

여기는 전기 사정이 열악하여 롯지마다 밧데리 충전비용을 받는다..



소들이 귀가하면서 우리를 추월한다..

익숙한 몸짓으로 지나간다..




길은 아직 멀엇는데, 마차푸차레가 황금색으로 변한다..

잉어가 승천하는 용이 되는 장면같다..



해드랜턴을 끼고 내려가는 길..쉽지 않네..



드디어 츄일레 디스커버리 롯지에 도착..

하루 종일 걸엇더니 연골 부상인 다리가 아프다..

이곳에서 마지막 핫샤워 기회가 있었다..

비용을 내고, 단체 샤워를 하는데, 물 조절도 안되고, 시설도 엉망으로 옷 걸데도 없고,,얼릉 대충 닦고 나온다..ㅎ

***

이제 제2대안을 쓸 때가 되었다..

내일 총롬에 도착하면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죽치고 "송가인시대" 책이나 쓰면서 일행의 복귀를 기다려야겠다..



<고레파니에서 바라본 다울라기리봉의 일몰>




포카라 비행기..

날씨로 수시로 취소, 연착한다..

우리 비행기도 안개로 1시간인가 지연된후 출발했다..

그런데, 요 조그만 비행기가 건망증도 잇다..

우리 일행 짐을 싫고 오지 않아서, 다음 비행기로 짐이 올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렸다..

참 촌스로운 공항이다..


하여간 짐을 찾은 후 우리는 트레킹을 위해 승합차 3대에 분승했다..

트레킹 시작점 울렐리까지 이동한다..

그런데 차편을 수배해준 사람이 KBS 방송에서 본 사람이다..

KBS 다큐공감에서 포카라의 코라아 보스로 소개된 신홍철씨다..

차량수배 댓가로 소주 몇병 받아간다..ㅎ



12.22. 트레킹 첫날 일정은 차로 울렐리로 이동하여 반산티까지 걷는 것이다..




물론 이 길을 걸어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하게 할 필요가 없다..체력을 아끼는 것이 좋다..



비레산티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먹는다..

우리 맞은편에 혜초여행사팀도 점심을 먹는다..

거기는 푼힐팀과 ABC팀으로 나뉜단다...

우리는 푼힐 + ABC + 말디히말 3곳을 간다..




여기가 월광 레스토랑이구나...

종씨라 반가웠다..



다리를 건너고 고개를 이리 저리 올라 한참을 가니 울렐리에 도착..




차에서 내려 짐을 정비..포터와 나누어 지고 간다..

일행 9명+ 포터 9명+ 가이드 1명 총 19명의 대부대다..

포터는 15-20kg을 지고, 우리는 4-5kg 지고 간다..



울렐리..오르막길이라는 뜻이란다..

딱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ㅎ





돌아보면 산은 첩첩..길은 구부 구부..

집은 산비얄을 꼭 붙잡고 산다..








고레파니 가는 길 틈틈히 마차푸차레 안내를 맡는다..

마차푸차레..생선 꼬리라는 뚯이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처녀봉이다..

그 이유는 네팔정부에서 등정을 금지하기때문이다..

힌두교 시바신에게 바친 산이기에..





반탄티의 마차푸차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반탄티라는 지명이 몇군데 나오는데, 숲이라는 뜻이란다..

난로에 몸을 데운다..

이날 책 집필한다고 사온 갤럭시 탭을 잃어버렸다고 한바탕 쇼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낭 제일 안전한 곳에 있더라..

잃으게 아니고 잊은 거라는..ㅎㅎ

내 기억을 믿지마라..

<이부분도 잠벗의 지적을 받고 추가함 ㅎㅎ>




다음날 12. 23. 트레킹 2일차 일정을 시작한다..

고레파니까지 걸어간다..






산길의 운송수단은 당나귀와 노새다..

자세히 보면 이넘들도 틈틈히 해찰하면서 풀도 뜯고 순위 경쟁도 치열하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었던것 같다..




아직도 고래파니는 1시간 30분을 더가야한다..

이곳 산길은 거리가 중요하지 않다..난이도를 고려해 걸리는 시간을 정해놨는데..

나에게는 30분은 정도 더 보태야 한다..





고생끝에 드디어 고레파니에 도착..





이곳에 1주일전에 눈이 내려서 응달에는 아직 눈이 쌓엿다..



오늘의 숙소 마운틴 뷰 롯지에 도착..

이름처럼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휘운출리가 다 보인다..






다울라기리 8201m가 네팔 최고봉이란다..

짐을 숙소에 놓고 빈 몸으로 푼힐 전망대로 향한다..

그런데, 길이 곳곳이 빙판이고 가팔라 내려올때 어두워져 미그러질까 염려되고, 부실한 무릎 연골을 보호하기 위하여 등정을 포기했다..




닐 좋은 날 푼힐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이렇다..

하지만, 이날 저녁은 흐려서 전망이 좋지 않았다.




일정을 마친 후 난로가에 쉬며 저녁을 먹엇다..

abc 구간에서는 이 난로가 츄일레를 지나면 없다는거..명심하시라..



저녁 식사후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지면서 히말라야의 그믐달이 떳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다아알이 뜨으은다...영암아리랑..

히말라야 달 바라보면서..서울의 달..






휘운출리..유화로 그린듯하다..




장엄한 일몰이다..



다음날 새벽 5시 푼힐 일출보러 가는 일행이 잇었지만, 난 숙소에서 조용히 일출을 맞았다..



다울라기리봉이 불타기 시작한다..

참 멋진 일출이다..






설산을 즐기는 까마귀..산수화가 되었네..



아침 조식을 들고 2일차 트레킹에 나선다..

목표는 추일레..



<비행기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트레킹..

어느 영화 한편 때문에 시작되었다..

롱기스트 라이드..매우 통속적인 영화 속 대사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라는 말에 소신을 바꾸었다..

자세한 사연은 http://blog.daum.net/servan/6351138 참조..


<소신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다>


나의 소신은 고산 트레킹을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잠벗은 고산 트레킹을 좋아한다..

이미 네팔 ABC트레킹, 랑탕 트레킹을 아들을 데리고 다녀온 잠벗의 목표는 EBC 트레킹이다..

내가 저 영화로 헷까닥 해서 EBC트레킹을 같이 간다고 선언하니..드림메이커가 놀란 모양이다.. 

나에게 제의한다..

일단 ABC를 가보고 나서 결정하라고..

그래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기획되었다..

하지만, 체력훈련한다고 등산 다니다 6월에 연골파열의 부상을 당하엿다..

재활은 커녕 부상 악화로 출발 직전 3개월을 거의 쉬다 시피했다..

트레킹에 자신감을 잃었다..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양의사 2명, 동양의사 1명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면 무릎이 망가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잠벗은 그 정도의 부상으로 좌절할 수 없다,  자신이 업고라고 가겠다고 부추긴다..

많은 고민 끝에 일단 신의와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이미 9명의 팀이 조직된 상황이기에..

하지만, 내 스스로 대안을 준비하기로 했다..



12월 20일 인천공항을 출발, 중국 사천성 성도공항에 도착..

거기서 카투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환승한다..

이 코스를 택한 이유는 1) 가격이 저렴하고, 2) 에베레스트를 보며 갈 수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도 공항에 밤에 도착..호텔 부근 식당에 가서 훠꺼로 저녁을 한다..

벽에 이백의 시 한수가 붙었다..

장진주(將進酒)..술을 권하노라..


장도에 오르는 오늘 딱 맞는 시가 아니던가?

마치 이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잇었던 것처럼..



인생에 뜻을 얻었을 때  즐기기를 다할지니 

금 술통 헛되이 달빛 아래 두지 말게

하늘이 나를 이 땅에 보냇을 때는 다 쓰일 데가 잇을터이고

돈이야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니

염소 삶고 소 잡아 맘껏 즐겨 보세나!

한번 마시기로 작정하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부자여! 단구생아!  

술을 권하노니 부디 잔들기를 멈추지 말게나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丹丘生(잠부자단구생)           

將進酒杯莫停(장진주배막정)            



다음날 가덕만도..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공항 라운지 와이파이 빵빵할 때 그녀의 애수의 소야곡을 다시 들으며 노래 속의 교시를 마음에 새긴다..

미련을 버리고...무유정법(無有定法)..정함이 없는 법 따라 물흐르듯 가리라..



카트만두행 중국비행기가 티벳고원을 거쳐 히말라야 산록을 따라 간다...



저 아래 티벳 수도 라싸가 보이고..

포탈라궁도 보인다..






티벳고원의 강물이 윙크한다..

강끼리는 통하는 바가 있어 문리버를 환영해주다니..ㅎㅎ




히말리야의 준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우측에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옆에 로체봉을 거느리고..




카투만투가 가까워졌다..

인구 2900만명이니 작은 나라가 아니다..

카트만두의 인구 350만명이 분지에 모여 사니 매연이 심하단다..






공항에서 부터 반기는 안나푸르나 산군..



네팔 종교는 힌두교 80%, 불교 10%란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숙소 루자호텔로 간다..






참 인상적인 거리의 전기줄..엉키고 설키고..

이 나라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르디우스 매듭을 제거한 알렉산더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 전에는 발전은 요원해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환전을 위해 한식당 축제를 찾아간다..

주말에 현금동원 능력은 거기 밖에 없단다..





저녁은 미리 보신차원에서 야크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1인분이 보통 한국인 3인분정도 된다..

좌간 배터지게 먹었다..



밤에 도심을 산책한다..

각종 사원들이 즐비하다..



진리의 눈...

눈 가운데 코 모양은 네팔 숫자 1이란다..

이 눈은 미국 1달러 짜리에 나오는 눈과 비교된다...



이 진리의 눈을 바라보며

잘못한 일이 많은 사람은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고 말했더니..

누군가..마주보니 진리의 눈이 흔들린다고 큰소리친다..

다른 이가 한마디 보탠다..

"안과에 가봐야겠군" ㅎㅎ




힌두사원은 내용을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기괴한 모습이다..





개들과 함께 도를 닦는지, 적선을 구하는지..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데비를 모신 쿠마리 가르란다..

초경이전의 여아를 데려다 여신으로 모시다 초경이 되면 교체하는 특이한 풍속..





다음날 우리는 포카라로 이동한다..

부다항공..참 작은 비행기다..




매연속의 카트만두에서 떠오른 비행기가 200km 남짓 포카라에 접근하자





벌써 공기가 다르다..




당당한 마차푸차레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설산을 머리에 진 포카라 첫인상이 좋다..





원래 내 제1 대안은 포카라 페와호수 부근에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을 얻어 1주일 동안 혼자 머물며 "송가인 시대" 전자책을 집필하면서 일행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드림메이커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

그렇다면 제2 대안으로 가야한다..

<계속>





나치대사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해서 간사이공항으로 간다..

전에 혹시 고야산 곤고부지를 둘러갈까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포기하엿다..대신 중도에 하시구이 바위를 구경한다..






교항암..하시구이..

다리 말뚝이라는 뜻이다..

코보(홍법)대사와 아마노자쿠라는 도깨비의 내기 설화가 전한다..

어느날 코보대사가 도깨비와 내기를 한다..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나..

그런데, 코보대사가 바위을 던지기 시작하자, 다리가 완성되어 내기에 질것을 두려워 한 도깨비가 닭울음소리를 내어 코보대사가 하룻밤이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상판 올리는 일을 중단했다는 이야기...



코보대사는 오늘 가보려다 포기한 고야산의 곤고부지(금강봉사)와 관련된 고승이다..

코보대사 구카이(空海, 774-835)는 당나라에서 밀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사가천황으로부터 고야산의 땅을 하사 받아 진언종을 개창한 사람이다..

신라의 의상대사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참 특이한 바위들이다..

이 장면은 주인과 개..



요거는 부부 모습






인근 건물 철거현장을 보니 건물에 철근이 많이 들어 있다..

지진이 많으니 집을 튼튼하게 짓나보다..



마지막 점심에는 사케 한잔을 곁들였다..

따뜻한 정종 한잔에 왕년의 백화 수복 추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사라진 정종의 입맛...




다음날 아침 일출무렵 새벽잠이 없는 일행 3은 다시 나치대사로 갔다..

어제 일몰로 제대로 보지 못한 절과 신사를 보려고..



삼중탑과 폭포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천년을 흘러도 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은 어디서 오는가?



서국일번찰소..

서국 33 관음영장 중 제1번 후다쇼(찰소)..


일본의 역사란 서쪽에서 동쪽을 정벌하여 국토를 넓히는 개척의 역사였다..

그 주체가 일본 신화의 주인공...천조대신의 후손인 천황의 세력이 쿠슈지역에서 나라지역을 정복하여 야마토 왕국을 세운다..

이 야마토의 표기가 왜(倭) 또는 화(和)로 한다..와로 읽던가 야마토로 읽는다..

그 세력은 이즈모의 세력(신라의 영일 설화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세력)을 흡수 통합한다..

그리고 백제와 혈연적으로 연계된다..

무령왕이 일본의 섬에서 태어나 사마왕이라고 불리는 경위나 백제 부흥을 위해 2만의 병력과 수백척의 함선을 보내고,

백촌강전투에서 패배한 후 조상의 땅에 갈수 없다고 한탄한 대목이 기록된 일본서기의 기록 등이 그 반증으로 보인다..

백제 부흥전쟁이 실패하자, 일본 천지천황은 당나라의 침략이 두려워 수도를 나라에서 내륙 오우미의 대진궁(현 오츠시- 교토의 인근)로 천도 한다..

그후 일본의 수도가 교토에 자리잡게된 단초가 되었다..

그뒤 교토지역의 집권세력이 동북 지역의 에미시, 에조세력을 토벌하며 정복활동을 이어간다.

이때 설치된 쇼군이 세력을 얻어 막부정치로 연결된다..

현 나고야를 기준으로 서쪽(교토, 오사카, 와카야마 등)을 관서, 그 동쪽을 관동이라 불렀다..
그러니 서국은 관서 지역을 가르킨다..





칠복신에게 비는 대흑천당이라는 곳이 있다..



칠복신??


재복, 상업 ,음악, 어업, 장수, 복덕 등을 관장하는  다이코쿠텐, 에비스, 벤텐, 비샤몽텐, 호테이, 후쿠로쿠쥬, 킷쇼텐(또는 쥬로진)의 일곱 신령을 일컫는 말이다.

 칠복신에게 숭배하게 된 것은 사람들에게 축재의 개념이 생긴 에도시대 이후라고 하며,

칠복신은 흩어져 있어 참배자들은 일곱 개의 신사를 돌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여기는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세이간토지(청안도사)의 본당..



불교가 백제에서 전래되기 이전인 인덕천황시절(313~399)에 인도출신 나형상인(裸形上人)이  구마노의 포구에 표착하여 나치 폭포 아래서 수행중  폭포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을 보고 여의륜(如意輪)관음을 조성하여 초당을 짓고 모셨다는 것이 청안도사의 창건설화이다.





이 절의 본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단다..





절 기둥에 뭔 이름 스티커가 많이 붙었는지..

이렇게 하면 액땜이 되고 복이 붙는가??



아침에 본당안에 들어가서 흠칫 놀랐다..

물품 진열대에 기념품등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장면이 생경하다..

부적을 써서 파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 사야되는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ㅎ


일본 절이나 신사에는 종사자가 많다...

절 스님도 결혼해서 생활하니 수입을 많이 올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불교도 해방후 비구종단으로의 개혁이 없었으면 이런 일본 절 같은 분위기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비추는대로 주변사람이 빛난다..

한 모퉁이를 비추라..







718년에 장곡사의 덕도상인이 병들어 염라대왕에 가서 33 관음영장을 순례하여야 한다는 계시와 보인을 받아왔단다..

이런 설화가 순례문화의 확산에 기여햇으리..



청안도사에서 문 하나를 지나면 나치대사 신사가 있다..

몇백년 지속된 신불습합의 문화는 메이지 유신시대에 신불 분리정책 실시로 신사와 절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는 막부정치를 타도하고 천황친정시대가 시작되자, 천황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신화와 역사를 손보고 신사를 정비하기 시작하면서 절과 신사를 분리하는 정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일본에는 각종 신을 모시는 신사가 8만개가 넘는단다..

그런 신사 중 천황관련 신사를 관폐대사(官幣大社) 등 6등급으로 나누어 국가에서 관리하고(일부 예외인정), 천황관련이 아닌 신사 중에는 별격관폐사(別格官幣社)를 지정한 것만 국가에서 관리하게 했습니다.


특히 막부타도와 천황친정제 구축 투쟁시기에 전사한 자를 위한 신사로 야스쿠니 신사가 세웠지고, 별격관폐사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한다..

그런데, 이 야스쿠니에 일제 국국주의 침략전쟁 주모자, 전사자를 합사하고, 일본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참배함으로써 한, 중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구마노 나치대사는 전에 신의 성격이 무엇이었던지 이제는 12신격을 뭉뚱그려 구마노 곤겐이라는 새로운 신격으로 모신다..

구마노(熊野)는 글자 뜻으로는 곰의 들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구마는 "깊숙히 깃들다. 은밀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구마는 가미(신)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구마노는 신들이 머무는 땅이라는 의미란다..


특히 일본 신화의 주연 아마테라스의 신궁은 해가 뜨는 이세 신궁이지만, 신의 무덤은 구마노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은 영들이 신이 잇는 구마노로 모여든다고 믿는다..

결국, 구마노는 황천, 정토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순례 초기에는 은퇴한 상황들이 조상신(아마테라스, 진무천황 등)의 머무는 이 곳을 순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수령 800년의 구스(樟)나무..

녹나무, 캄포나무라고도 한다..

왕실, 귀족의 가구, 불상을  만드는 나무란다..




태내 쿠구리..

자궁 통과하기..

일본 사람들 구멍만 보면 쿠구리 좋아한다..

공짜도 아니다.. 300엔 받는다..

공짜는 구마노고도 타키지리 오지 구간에 있다..ㅎ 








신사의 정문은 이쪽이다..

신사에 술을 올려 감응을 받는가??

기린 맥주, 아사히 맥주도 보이네..

요즘 한일 냉각사태로 일본 맥주 수입이 0가 되었단다..




지금의 모습과 과거 나치대사의 그림을 비교해본다..








신사에는 기부자 비석에  금액을 적어 도열해 놓았네..




이 곳에서 멀리 바다도 보인다...



구마노에 귀한 단풍 한그루 진하게 피었다..



돌아가면서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 보고 또본다..




우리나라에서는 귀해진 금줄이 여기서는 살아 숨쉰다..

신들의 영역이 엄존한다..










편안하게

인간은 인간

편안하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나 화두처럼 다가온다..





옅은 단풍이 진

신의 나치

폭포의 나치...


나는 떠난다..



신궁구경을 마치고 얼릉 나치대사를 향한다..

해가 질세라 서두른다..


창밖으로 폭포가 보이자 마음이 더 서두른다..




오늘의 미션..

관광사진에서 본 이 장면을 나도 그대로 찍어야 한다..


너ㅏ


나치폭포로 가는 입구..

히로(飛瀧, 비롱) 신사라고 써있다..

비롱??

날리는 비..라는 뜻이다..



거목 사이로 내려가는 길도 장엄하다..




높이 133미터..

내리꽂는 힘이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그림을 연상케한다..

이 폭포의 힘이 이곳에 절과 신사가 들어서게 했을 것이다..







일본의 신도는 만물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는 에니미즘이 기본 베이스에 깔려있다..

그러니 이런 장대한 폭포에는 그에 걸맞는 신령이 잇다고 믿었으리..



세계 제일의 이과수, 뉴질랜드의 서덜랜드 폭포를 보았기에 놀랄 규모는 아니지만

거목 숲길을 지나 만나는 웅자는 무시 못할 기품이 있다..




우리네 출산한 집, 성황당에서 볼 금줄이 여기서는 신사에 즐비하다...

그러고도 일제가 우리의 무속을 미신이라고 핍박한 것을 보면 웃기는 넘들이다..



이런 장관에 시한 수 없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서 비석을 발견했다..


山中三日不知暑    산중삼일부지서

三瀑眞成天下奇    삼폭진성천하기


산중에 3일을 지내도 더위를 모르니

3단의 물줄기를 이루니 천하의 장관이로다



폭포구경하다 지체하니 나치대사 삼중탑을 찾아가는 시간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조바심 치고 삼중탑앞에 섰으나 이 그림이 아니다..

이리 저리 살피며 올라가다 어느 건물 앞마담 모서리에 서니

아!!

 이장면이다..

관광 사진 속의 장면..오늘의 미션 끝..




차를 몰고 기이우라역 앞 식당 보다이로 갔다..




우라항의 참치 맛도 보고..이 곳의 별미..고등어 초밥도 먹어본다..




식사후엔 동네 온천 기몬탕에 들렀다..



시원하게 온천을 마치고 나왔는데..

한일 야구 3:2로 이기고 있다가 투런 홈런을 맞고 역전당하는 장면을 보고 말앗다..

에잇!!





구마노 본궁 구경을 마치고 신궁 구경을 위해 이동한다..

신궁 부근에서 식당을 찾으니 브레이크 타임이라 영업하는 집이 없는데, 마침 어느 노부부가 운영하는 우동집이 문을 열었기에 들어갔다..




상이 8개 정도의 작은 집인데, 글씨는 엄청 많이 붙었다..

그중에 인상적인 묵마인(墨磨人)..

먹이 사람을 간다??

스맛폰으로 검색 돌입..

참..이번 여행은 로밍하지 않고, 인천공항에서 유심칩을 2000원에 렌탈해 왔다..

스맛폰의 유심만 바꾸면 인터넷 와이파이가 자유롭게...가격도 싸고..오...많이 발전했다...


검색결과는 소통파의 싯귀다..

非人磨墨 墨磨人 비인마묵 묵마인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간다..

먹을 갈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니 저절로 수양이 되겠다..



"행복은 항상 자신의 마음이 정한다"

이 집에 아이다 미츠오의 시를 만났다...

불교와 단가를 공부하고 서예를 배운 그의 글씨와 시에서는 선과 재즈의 분위기가 난다..

자신의 독창적인 서체와 시를 갈고 닦으며 40년의 무명생활을 견디다 60세에 이르러 빛을 보았다..

67세로 귀천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진, 정진하여 아르테를 갖추면 언젠가는 빛을 보고 감동을 준다..

송가인도 그렇다..



일생 연소

일생 감동

일생 불오


일생 불꽃처럼 살고

일생 감동하고 살아도

일생 깨닫지 못한다..


작가는 말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어떠랴.

평생을 불꽃처럼 살고,

평생 감동받으며 살면 족한 것을..




이집 오늘의 추천우동  나베우동을 시켯다..

양이 많은듯했으나 맛있었다..



왜 일본에는 부엉이 기념품이 많을까??
부엉이는 일본어로 후쿠로우(ふくろう)라고 하는데, "고생 끝"으로 의미로도 들리기에 고생하지말고 잘살라는 의미, 복을 비는 의미로 사용된단다.



식당에 아베 글씨가 있다..

이 집 주인은 아베 지지파인가 보다..

부동심..흔들리지 않는 마음..

음..그래서 계속 버티는 모양이군..ㅎ

한일 관계의 해결은 아베 퇴진에서 시작된다..



구마노 하야타마 타이샤를 신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는 1.7km 거리의 카미쿠라신사[神倉神社]에서 모셔지던 신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가미쿠라신사를 구궁, 현재의 신사를 신궁이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794년 - 1185년까지)에 들어오면서 신도와 불교가 서로 콜라보하는 습합사상이 유행할 때

‘하야타마 신은 중생의 고통과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로, 부인인 ‘후스비 신은 현세 이익을 가져다주는 천수관음보살로 불리게 된다..



이곳 신사의 컬러가 주황색으로 현란한 이유는 귀신을 쫓는 색이란다..






여기서는 하야타마 신이 이자나기 신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일본 국토를 만들었다는 이자나미, 이자나기 신을 1,2 전에 모시고, 딸인 태양신인 천조대신(아마테라스)를 4전에 모시고 있다..

일본 신화는 신사마다 설명이 들쭉 날쭉이다..

이처럼 복잡해서 머리가 아플정도가 되어야 관련 신관, 궁사들 일자리도 유지 될 터이다..

결국 자기들도 족보가 복잡하고, 신도와 불교가 습합하자, 구마노 곤겐(권현)이라 뭉뚱그려 섬기고 있나보다..









수령 1000년의 나기(죽백나무)..

꽃말은 소원성취..

이 나무의 묘묙을 오키나와에 심어서 키우고 잇단다..





신궁을 나선다..

일본이란 나라..묘하다..

모든 문화가 시루떡처럼 쌓이기도 하고 영양밥처럼 뒤섞이기도 한다..




절 앞 상가는 쇠퇴하고 있는데, 미깡 맛은 좋다..값도 싸고..

50년전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인근 부잣집에서 처음 맛본 미깡 맛 그대로..



전날 나카헤치 걷기 후 본궁을 관람하고 왔으면 시간 절약이 되었을텐데..

날이 어두워 온천후 그냥 왔기에 다시 본궁 관람하러 길을 또 간다..

시간을 잘 사용했으면 마지막날 고야산 곤고부지 구경도 가능했을터인데..




구마노강 풍경은 언제봐도 시원하다..

그런데 강 백사장에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트레커들이다...

강으로 길은 없을 터인데...상상력과 도전이 가상하다..




본궁 입구에 도착..




입구에 지도가 있어 살펴보니..구마노고도의 시작점, 종착지 대제원 표시가 되어있다...

예습이 없어 무슨 얘기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구 본궁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구 본궁은 현위치가 아니라 몇백미터 아래 강으로 둘러쌓인 지역에 위치했는데,130년전 대홍수로 침수되었다..

그이후 고지대로 다시 지어 이전한 것이다...

그래서 2011년에 닥친 대홍수에는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원래 신사는 높은 곳에 짓는 줄 알았는데, 여기와서 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돼지해를 축복하는 글을 붙여놨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구마노"



고신례(古神禮)는 일년동안 사용한 부적 등 신사에 반납하여 신관이 태우는 행사를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고신례(告神禮)..고시레는 아닌 것 같다..ㅎ



본궁 입구..좌측에 덕담..

신을 아버지로, 부처를 어머니로 섬기면서 구마노처럼 흥하는  출발을 하는 때..



현판에는 기해년 돼지해에 돼지꿈을 꾸라는 말인가??



본전 앞에 남녀노소가 모두 경건히 기도를 한다..

자세히 보니, 일단 돈(?)을 넣고,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기도를 하더니 손벽을 2번 치고 마무리 한다..



본전 중 4관은 일본의 천황계의 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곳이다..

젊은이들도 엄숙함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일본에서는 태양신(천조대신) 아마테라스를 제우스처럼 모신다..

다만, 아마테라스는 여신으로 보는 듯하다..

일본 천황도 이 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본궁의 주재신은 누구인가??

아마테라스가 아니다..

곤겐(権現 권현)이라고 부른다..

그럼 구마노 곤겐은 누구인가?

곤겐은 일본에 불교가 들어와 전통 신도와 습합(콜라보??)하면서 생긴 개념이다..

즉 천태종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의 권(權)은 임시로 라는 뜻으로 즉 부처가 신도의 신의 모습을 빌려 임시로 몸을 드러냈다는 의미다..

이는 헤이안 시대 중엽에 크게 유행하여, 원래 본궁의 신이 누구인든 아미타여래의 화신으로, 신궁의 신(하야타마)은 약사여래의 화신으로, 나치 대사의 신은 천수관음의 화신으로 여겨 섬기고, 이들을 합쳐서 구마노 산쇼 곤겐 (구마노 삼소 권현)으로 숭배하다가 5개소 오지(왕자)와 4개소 묘진(明神,명신)을 합쳐 모시면서 구마노 쥬니쇼 곤겐(12소 권현)으로 호칭한단다..



우편함에 앉아잇는 새는 까마귀다..

까마귀는 일본신화에 초대천황인 진무천황과 관련이 있다..

그가  쿠슈 히무카(日向)의 다카치호궁(高天穗宮)에서 출발하여 세토내해를 거쳐 가와치에 상륙하여 야마토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이코마산의 토족의 저항을 받고 기이반도 남쪽으로 남하하여 구마노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세발 달린 까마귀(야타가라스)가 나타나 요시노강 상류까지 인도했다고 한다.

그덕에 그는 요시노 산을 넘어 야마토로 진군하여 정복하여 초대 천황에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마노고도의 휘장에서 삼족오가 등장한다..



원래 고구려의 경우 주몽이 일월지자요 하백지손이라고 했다..

태양의 아들이라는 것인바, 고구려 벽화에 삼족오가 등장한다..

삼족오는 태양의 흑점에서 나오는 신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일본 신화도 이런 전승을 차용한 것으로 본다..




저 전각 좌측에 쓰인 글씨를 본다..


우리는 화합할 협자로 읽는데, 일본에서는 가나우(かなう)라고 읽고

그 뜻은 "(소원대로) 이루어지다"라고 한다...




건물 벽에 각(刻) 자가 써져있다..

해마다 신년 휘호를 신관이 1자씩 발표하는 모양인데, 기해년에 돼지 해(亥)자를 이용하여 각자를 쓴 모양이다..

하루 하루를 매우 간절하게, 저마다의 시간에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해를 평온하게 보내기를 기원하면서 썼단다..



이 글씨를 보자,

기, 체험하여 느끼자..

갱생, 다시 산다는 것은 현재를 산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부적을 팔고, 년말에는 반환받아 고신례를 하고..

신사의 수입원이 되겠다..ㅎ



나오다 보니 "발호대신"이라는 비석이 잇다..

그 신은 재액을 없애주고 신명을 넣어 주는 신이란다..

저런 신이 제대로 활동했으면 일본이 한때 자살율 1위 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요즘은 분발하여 열심히 활동하시는지, 1위 자리를 한국에 넘겨주었네..



일본의 정신적 엑기스 본궁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동양 삼국을 비교해보면

중국은 자신의 전통신앙사상을 도교로, 일본은 신도로 전승하여 수천년을 이어온다..

우리는 신라시대 이차돈의 순교이후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전통신앙은 산신각의 단군, 칠성각의 삼신할미 정도 뒷방으로 밀려나고, 무녀의 굿소리에 남앗을 뿐이다..

그이후 세계조류를 잘타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습속이 발휘되어

불교 - 성리학 - 공산주의 - 기독교 -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잘 갈아타고, 한 번 갈아타면 교조주의자가 되어 타 사상을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한다..

장점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그때마다 갈아 엎으니 신선도를 유지하기는 좋겠다..

단점은 그러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지고, 정통성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해 자꾸 외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종자 사상을 가지고 제 숙명의 사상인양 원조보다 더 지독하게 배타적인 행태로 나간다..


한편, 일본에서 느끼는 그들의 장점은 자신의 전통사상을 이어가는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래종교, 사상이 들어오면 받아들이지만, 그저 요리의 한 재료처럼 섞일 뿐이다.. 요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의 단하나의 예외는 기술의 도입은 진취적이다..

100년전의 그들의 신의 한수가 우리를 지금껏 핍박한다..

하지만, 앞으로 제4차혁명의 시대에서는 새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장점이 빛을 보게되고, 일본을 능가할 수있지도 모른다..

의심스러우면 읽어보시라

http://blog.daum.net/servan/6351273




신사와 신궁

일본 천황과 관련된 곳은 신궁이라 부르고(일부 예외있음), 그외는 신사라고 한다.. 

천황의 조상인 천조대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최초의 신궁이 미에현의 이세신궁이다..



에도시대 이전에는 왕과 귀족들은 교토 - 오사카 - 와카야마 - 타나베 - 중변로를 통해 순례를 했고,

에도(현 도쿄)가 수도기능을 담당한 이후에는 에도 사람들이 이세신궁을 참배하고 구마노고도를 순례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엇다..




메이지 시대 대홍수 이전의 구 본궁의 모습..





순례자의 복장..



천황이나 상황의 순례시에는 씨름대회 등 행사도 개최되었다..



넓은 백사장이 130년전의 대홍수를 상상 가능하게 만든다..

구경나온 한 가족의 오붓한 점심장소로는 넉넉하다..




오도리이..일본 최대의 도리이..높이 34미터






평성 12년(2000년)에 이 도리이를 세웟단다..




올때는 몰랐는데..이 대제원이 구 본궁의 터다..





3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빈터에 일편상인 신칙명호비와 부도탑이 눈에 띈다...

일편상인?? 그는 누구인가?

그는 1239년 이예지역 토호 하야칠랑통광의 2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출가할 당시 집안은 영지가 몰수되고 풍비박산난 상태였다..

1271년 그는 산속 암자에서 칭명염불을 3년 동안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후 고야산을 참배하고 구마노 본궁(구 본궁터) 아미타불을 모시는 증성전에서 다시 깨달음을 얻었다.

유행(만행)+부산('나무아무타불결정왕생16만인'이라고 쓴 종이부적을 나누어 주는 행위) + 용약염불(기뻐하며 염불하는 행위)를 통해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원효처럼 '나무아미타불'염불만 정성껏하면 극락왕생한다는 간단한 교리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정성껏 귀명한 일념의 후에는 나도 나가 아니어서, 마음도 아미타불의 마음, 몸의 움직임도 아미타불의 거동, 말도 아미타불의 말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목숨도 아미타불의 목숨"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있는 상테에서 성불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의 사후 시종이라는 종단으로 발전하였는데, 그당시 "몇백명이 춤을 추며 돌면서 염불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마루청이 부서질 정도이고 장날 같앗다고 묘사한다..


그런 그의 종파가 아직도 명맥이 이어져 오나보다.

그의 후인들이 소화46년(1971년)에 비석을 세웟다..



이제는 빈터과 가을 단풍과 어울린다..





이곳에서 몇백미터 가면 이전한 본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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