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차 1.12. 토요일

오전 6시경에 멕시코시티 공항에 내렸다..



낮에 멕시코 관광을 하고 오후 밤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라

렌트카 회사에 가서 차를 2대 빌렸다..

그런데 차 1대는 기름이 2눈금 밖에 안된다..주유소 가서 넣으면 되겠지 가볍게 생각했다.




일단 아침 식사할 곳을 물색하다가 길거리 포차 비슷한 곳에서 타코  파는 곳을 발견..

고기 볶음을 또띠야에 싸서 먹는다..



요기후 주유소에 들렀더니 차가 장사진이다..헐

다른 곳도 마찬가지...무슨 일이지??

차의 현재 보유 기름의 주행거리를 확인해보니 98km 정도..근처 테우티우아칸 정도는 겨우 왕복할 수 있을 정도..



멕시코시티에서 테오티우아칸 가는 길이 상당이 복잡한데 잘들 운전해서 도착..





거대한 피라미드에 눈를 뗄 수 없다..


이 거대한 신전은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BC 3세기 경에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등장한다..피라미드 등 신전이 건축된다..

그러나 7세기 경 갑자기 쇠퇴한다.

그후 톨텍 문명이 등장하여 공백을 메우다가 14세기경 아즈텍 문명이 등장하고, 동남부 저지대에서는 후기 마야문명이 등장한다..




아즈텍인들은 이 곳을 보고 '신들의 도시"..테오티우아칸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자의 길 끝에 달의 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46미터..



태양의 피라미드..높이 66미터..

전세계 3번째로 큰 피라미드..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무덤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은 종교의식을 위하여 만들었다..

달의 피라미드에서는 인신공양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죽은 자의 거리..

원래 이길은 폭이 40-100m에 길이 5.5km나 되는데, 복원구간만 2.5km 된다..




일단 밤 비행기 타고오느라 피곤한 몸을 쉬기위해 조용한 나무 그늘을 찾아 비닐을 펴고 간식을 먹은 낮잠을 자기로 한다...




누워 하늘을 보며 지난 23일간의 여행을 생각해보다 잠이 들었다..


깨달음

1) 무엇이든 끝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여행도, 걷기도, 인생도...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에서>

2) 우리가 남미꼴이 난다고 해도, 아르헨티아 처럼 될수 없다.. 그 이하다..<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3) 생각을 바꾸면 나도 세상의 중심이 될 수있다..<푼타 아레나스 마젤란 해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피라미드에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올라야겠다..






제법 가파르다..쉬고 또 쉬고..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보면 달의 피라미드가 내려다 보인다..

인신공양의 현장..



태양의 피리미드 정상에서 외쳐봅니다..

빌리브 미

프라이드 미

프리덤 미





어린이들도 씩씩하게 잘 올라온다..









여기가 달의 피라미드 인신공양 공간이다..

아즈텍인 들도 사람의 심장을 칼로 꺼내 바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1년에 5만명을 희생시켰단다..

후일이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정복하면서 이 행사를 금지시키고 제물 대상이 된 사람들을 석방시키면서 생색을 내고, 원주민 동조세력을 규합했다..



그때 하늘에 빛이 떠올랐다..

태양이면서 달 같은 백일(白日)..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에게 딱맞는 빛이다..

그것이 명(明)..밝음이다..



멀리 태양의 피라미드에 헬기 출현...

저기 오르다가 심장마비 일으킨 사람이 있나??



돌아오는 길..다시 주유소에 들렀는데, 장사진이 더 길어지던지..아예 주유소 문 닫은 곳이 많았다..

기름 경고등이 들어온 차를 몰고 오면서 생각했다..

차가 서면 모두 밀고 가야되나??


렌트카를 반납하면서 직원들에게 항의조로 물어도 대답이 없다..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헐,,

멕시코에서는 석유 절도범들이 국영 석유 기업 페멕스의 송유관에 구멍을 내거나 유통센터 저유소에서 몰래 빼돌려지는 석유 규모가 연간 30억 달러(한화 약 3조35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석유 절도범들이 송유관에 낸 구멍이 작년에만 1만 4천여개..

 멕시코 신임정부는 송유관 운영을 중단하고 유조차로 운송을 대체하고, 군대를 동원..송유관을 지키고 송유관 구멍을 수리할 예정이란다..


뭔 이런 나라가 다있지??

멕시코하면 중남미 상위권 국가인데, 나라질서가 이정도면 남미 정세가 알만하지 않은가??




랜트카 기름 건으로 심란햇던 가슴 진정시키고..

공항 라운지에서 목욕도 하고 간식도 먹고 쉬는데 방송이 흘러나온다..

멕시코 항공 인천행 승객 속히 탑승하라고...

가방들고 뛴다..


"이건 트라바호가 아니여~~, 이건 아벤투라여~~"

(이건 여행이 아니여~~, 이건 어드벤추어여~~)



이번 여행에 한-멕시코 간에 멕시코 항공을 이용하였는데, 참 편리했다..

우선, 가격 저렴, 미국처럼 보안 검색 심하지 않고, 영화는 한국어 더빙된 것이 많이 있고, 중간에 신라면 타임이 있다는거..

출출할 때 비행기에서 라면 한숫가락은 최고의 이벤트..

절반의 승객이 비행기 후미로 몰리는 바람에 비행기 추락할까 걱정이 될 정도..ㅎ



여행에 돌아와 밀린 모임을 여러차례했다..

어떤 후배가 묻는다..

"어떻게 장기간 여행을 할 수있나요? 사무실은 어떻하고??"

" 오늘 밤, 하느님이 너에게 오라고 부르면, 너는 어떻하겠니?

돈과 가족, 명예, 권력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 놓고 맨 몸으로 가야겠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여행이다."

<끝>



한사람이 네루다의 발파라이소 생가를 구경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발파라이소의 명물 아쎈소르(ascensor)를 구경하러 갔다.. 



맵스미에 좌표를 찍고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엇다.

그저 벽화만 잔뜩 구경했다..








그러다가 몇진 계단 길을 발견했다..모델 고양이도 구하고..







산 쪽 동네는 모두 벽화로 치장되었다.

왜 이렇게 벽화가 많은 걸까?

이 세상 벽화마을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나름대로 명작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잇다..




차와 집 칼러까지 어울리고..



명상하는 사람도 많은가 보다..



컨테이너 박스로 고층 아파트를 짓고..





나팔꽃도 예술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머니 머니 해도 이거리에서 손꼽을 작품은 이것??

"키를 든 여인"



뒤늦게 우리는 깨달았다..

이 곳의 유명한 벽화거리는 항구근처 콘셉시온 언덕이라는 것을..










벽화골목을 벗어나 시장으로 갔다..

와인샵을 찾아갔다..

우리나라보다 1/3이 싼 와인 쇼핑하려고..





가게에서 푸른색이 눈에 들어 왔다..

타라파카 에치케타 아줄 2014년 와인이다..

이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시라 등을 블랜딩한 와인이다..

포도나무 1그루 당 약 1병만 생산하는 한정 와인으로 연간 20,000병 정도 생산되는데, 

약 14개월 동안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단다..

2만 900페소..우리돈으로 4만원 정도..

이 와인을 나중에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18만원에 판매된단다..

그러니 봐라...와인 값이 1/3 내지 1/4 가격이다..





이제 우리는 해운대 비슷한 비냐 델 마르에 갔다..

비냐 델 마르..바다의 포도밭..

원래는 해물 뷔페를 찾아 간 것인데, 못들어 가고..이유는 기억이 안남..

근처의 식당을 찾아 다닌다..




여기도 박포장기 비슷한 것이 있다..




이 건물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스테이크로..



이 나라도 신호대기 중에는 묘기꾼들이 등장한다..



오후 비행기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산티아고 공항으로 간다..

주말이라 맞은편은 차량이 줄줄이..

다행이 시간 맞춰 공항에 도착..

밤비행기로 맥시코 시티로 간다..





22일차 1.11 금요일

전날 마신 와인 파티로 오늘은 늦으감치 일어나 아점을 하고 발파라이소로 출발한다..




발파라이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쯤 된다..

그런데 발파라이소 거의 다와서 차는 이상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드림메이커가 지름길로 간다고 안내한 것이다..




보이는 풍경이 압권이다..

발파라이소 전경이 다보인다..




문제는 길이다..

더이상 가기 어려운 길이 나온다..

운전자들이 당황한다..경사가 심해 차를 돌리기도 어렵다.. 







걸어가서 확인해봐도 이길은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니다..

모두 내려 함께 밀고 하여 겨우 차를 돌려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삼거리서 이번엔 좌측 길로 간다..

드림메이커의 배짱이 좋다..




가파른 길이지만 차가 다니는 길이다..

탑승자는 내려서 걸어가기로 한다..






아...달동네와 도심이 바로 대비되는 풍경..

빈부의 양극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경계지점에 파블로 네루다의 발파라이소의 집이 있다..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라고 불리는 이집은 경계선 부근에 있지만 "가진 자" 쪽에 속한다..

네루다..그는 강남 좌파였다..



그는 산티아고 집을 떠나 1961년 이곳으로 주거를 옮겼다..

그리고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그의 집에서 보는 풍광이 멋지다는 것은 소문난 사실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된 파블로 네루다..

그의 이야기를 귀국후 영화로 보게되었다.."일 포스티노" (하늘 우체부)


영화 속에서 네루다는 말한다..

"시는 은유이고,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의지가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http://blog.daum.net/servan/6351139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 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끓어 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 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21일차 1.10. 목요일

숙소를 출발하여 안데스 트레킹을 하려고 아콩카구아 산으로 간다..




운전사 옆에 항법사가 앉아 구글지도로 열심히 안내한다..





원래 오늘은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알아보니 1인당 3만원(와인 5잔 테이스팅)을 요구하고 예약도 매진되어 포기하였다

일단 아콩카구아 계곡으로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와이너리가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길가에 포도밭과 와인 광고판을 보니 가능할 것같은 예감이다..



산에스테반에서 빠져나와 시골길을 달린다..



길가에 보데가(양조장) 표시가 보인다..

일단 내려 대쉬한다..

와이너리 이름이 인 시투..바로 여기..

참 적절한 순간에 만난 인연..





멀리 아공카구아 산이 흰머리를 날리며 인사한다..





이분이 1인당 1만7000원에 안내해주고 와인 3잔 테이스팅할 기회를 주겠단다..



이곳 포도밭은 안데스 산에서 시작되어 태평양을 향해 흐르는 아콩카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900미터의 파이다흔 산(Mt. Paidahuén)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아콩카과 밸리에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포도밭이기 때문에 일교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포도의 향과 산도를 지켜준단다.






그늘에 앉아 와인 세종류를 시음한다..

샤르도네 화이트와인

카르미네르 레드와인

쉬라 레드와인


원두막에서 수박따서 직접 잘라먹는 것처럼 신선한 와인향에 취한다..

멀리 아콩카구아산으로 눈요기 하면서.. 




와이너리에서는 와인을 25% 할인해주고 10병당 1병 써비스 제공..

각 2병씩 사고, 별도로 14900페소 짜리 카베르네 쇼비뇽 와인을 샀다..

이름이 좋아서 "잉카의 호수 (laguna del inca)"




얼큰한 기분에 차를 타고 60번 도로를 따라 간다..



산길을 올라가다 훈칼리요(Juncalillo) 강가에 차를 세웠다..

바람 속에서도 시원함을 느낀다..






차는 28구비 도로를 구비구비 올라 간다..

말티고개..구절양장..







지도에는 이렇게 표시된다..Panorama Rio Juncalillo 파노라마 리오 훈칼리요..





길위에

만나는 포르티요(Portillo) 스키장..

지금은 한가하고 푸른 호수와 함께한다..

이 호수가 "잉카의 호수(laguna del inca)다..

인 시투 와인에 표시된 호수를 만났다..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하는 물빛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겨울에 이런 스키장으로 변신한다..

https://iwy99.blog.me/20190214185




차가 더 가면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이 나온다..



저기다..국경선이..

저곳을 지나 계속가면 아르헨티나 멘도사가 나온다..

나폴레옹 시대 남미에 독립의 바람이 불 때 아르헨티나 장군 산마르틴은 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1817년 멘도사를 출발했다

그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진군할 때 이길을 지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페루지역의 스페인 군대를 격파하여 칠레를 독립시켰다..



산크리토발 산에서 내려가면서 들린 화장실..

최첨단 예술이라고 해도 되겠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보다 나아 보인다..ㅎ





산을 내려와서 시간관계상 팀을 2로 나눈다..

께페거리 구경팀과 네루다 생가 방문팀..

나는 네루다 생가로 간다...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시인..노벨상 수상자..

나와 관련된다면..파블로..정도??

내가 스페인어 배울 때 스페인 이름으로 파블로를 선택했다는..

그리고 네루다보다는 네루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도 원래 이름은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였는데, 체코 시인 얀 네루다의 시를 좋아해서 필명을 파블로 네루다라고 지었단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사랑과 서정시를 썼는데,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고는 사회참여시을 쓰고 칠레 공산당원으로 정치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생가는 3곳에 있다..

1)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라 차스코나(La Chascona)’

2)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3) 발파라이소에 있는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




이집은 산티아고 도심에 있는  ‘라 차스코나’로, ‘머리를 산발한 여자’라는 뜻인데, 애인 마틸데 우루티아(Matilde Urrutia)를 가리킨다.

네루다가 아내인 델리아 델 카릴(Delia del Carri) 몰래 마틸데와 함께 살림을 차렸던 곳이란다.

시인은 여성관계가 복잡한가??  아니면 좌파라서 그런가? ㅎ

하긴 파블로라는 이름 탓일수도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여자 7명과 사귀면서 화풍도 바꾸었다지 않는가?


내부는 네루다가 살던 때와 같이 보존되어 있는데, 실내 바도 만들어져 있어 사교생활을 즐겼던 그의 호사 취미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 촬영은 금지다..





정원에 앉아 스캇폰으로 그의 시를 검색하여 읽어보는데 난삽하고 이해가 쉽지 않다..

옆에 잠벗은 쏙쏙 이해된다나??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플레이보이를 좋아하나??







입장료 7000페소..13000원 정도..







오늘은 오늘

어제는 어제

의심하지마라..





생가를 나와 카페 거리를 구경하고




차를 타고 시장을 들러 야채를 사고..





도심의 아르마스공원을 지나 숙소로 간다..



이 동상은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동상이다.

1541년 그는 산티아고를 건설했다..



여기도 개팔자가 상팔자..





물론 오늘도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포식한다..



오후에 푼타 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칠레 수도 산티아고로 간다..

밤에 도착..렌트카 빌려 에어비앤비로 얻은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이 문을 열어 주고 간다..



20일차  1. 9. 수요일..

아침 늦게 일어났다..숙소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저택이다..




인생의 최악의 머피의 법칙..

돈을 벌려고 건강을 해치며 인생의 전반을 보내고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그 동안 번 돈을 모두 쓰면서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는거..



오전에 산크리스토발의 성모상을 보러갔다..

렌트카로 어지간히 간후 걸어간다..








참 개들의 천국이다..

아니..여기 신은 천국에 온 사람의 휴가를 이런 견생으로 보내 주는지도 모른다..




여기 오면 모태차를 한잔 마시고 가야한다..

마태차와 다르다..

모태차는 수정과 맛이 난다..내용물은 말린 복숭아와 옥수수가 들어있다..우리의 수정과라고 보면 된다..






서울 남산처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게 실으면 여기도 케이불카가 있고..줄도 길게 선다..




성모상이 보인다..




원래 이 자리에는 10미터 높이의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1646년 지진으로 붕괴되었다

3세기후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 교리 5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에 성모상을 세우기로 한다.

높이 22미터, 무게 36톤..프랑스에서 제작되어 칠레로 이송되어 1908년 봄에 세워졌다.




성모상아래 늘어지게 자는 팔자 좋은 개..



성모상 아래 작은 교회..

신의 손..




성모상 아래에 앉아 아베 마리아를 듣는다..

1. 카치니

2. 슈베르트

3. 구노


당신은 어느 버전을 좋아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버전을 들어보시라.

https://youtu.be/QvEQ8pw84mg






그리고  또 다른 많은 버전의 마리아들을 본다..





여기 와서 십자가에도 다양한 버전이 있다는 것을 알앗다..



파타고니아 남단에 와서 개와 사연이 많다..

엘찰텐에서는 일행이 개에게 물리기도 했고..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해변에서 만난 개는 한참을 우리와 동행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는 사교성 좋은 개와 친구가 될 정도..


펭귄섬 유람이 취소된후 놀러간 공원에서 만난 검둥이..

그림자 놀이..사진찍기 놀이도 같이했다..

답례로 견과류를 주니 먹지 않는다..





개출입금지 표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들랑 거리는 배짱은 기본이다..



해변에서의 멋진 포즈는 프로급이다..











사람에게는 친절한데..

차에게는 난폭하다..

전에 차에게 당한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푼타 아레나스가 도시로 발전하고 번영한 것은 마젤란 해협 때문이다..




시내 공원에는 마젤란 해협의 개척자의 동상이 서있다..

마젤란(1480~1521)..

포루투갈에서 태어나 원래 이름은  페르낭 드 마갈량이스이다.

인생 유전하여 스페인으로 귀화하여  에르난도 데 마가야네스로 불리던 그는 스페인 함선을 이끌고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1519년,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스페인을 출발한 마젤란의 함대는 이 곳 파타고니아 남단의 복잡한 지형을 만나 고전한다..

해상 반란을 진압하고 그 다음해 봄(1520년) 운 좋게 그와 3척의 배는 이곳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했다..



태평양..

넓고 고요해서 "퍼시픽"이라고 명명했다던가?

그 넓은 바다의 수많은 섬을 하나도 만나지 못하고 바람도 만나지 못해 80일을 헤메다가 괌에 상륙하고, 이어 필리핀에 도착한다..

그러나, 선교와 무리한 내정 간섭으로 싸움에 개입하다가 전사한다.. 

그의 부하들이 2척을 배를 끌고 탈출..우여 곡절 끝에 빅토리아호 1척만 향료를 가득 실고 1522년 스페인으로 귀환에 성공한다..

그 배 1척에 실린 향료 값으로 그 동안 항해비용이 모두 충당되었다니..

그 당시 서유럽의 동방 향료에 대한 수요는 엄청났고, 그것이 서세동점의 추진제였다..



마젤란의 충복 엔리케인가??

그의 발을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온다는 속설이 있어 그의 발은 반질 반질하다..




세계일주를 가로 막은 파타고니아 남단의 복잡한 지형..

이 곳을 돌파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수차례 실패하다가 마젤란이 운좋게 통과하는데, 이 곳을 마젤란 해협이라 부른다..

1616년 네델란드 탐험대가 남쪽으로 돌아가는 드레이크 해협을 발견하고, 그 뒤 1832년에 다윈이 딴 비글호가 통과한 중간 지역의 비글해협이 개척되었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후 지구는 둥굴다는 사실..즉 바다 멀리 가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생기자, 이 해협은 배들이 몰려든다..

그러자 자연히 푼타 아레나스는 중개항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땅의 역사에서 박종인은 말한다..

마젤란의 이 해협의 통과는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이라는 나비효과를 몰고 왓다..

즉, 그가 이곳을 통과하자  이에 고무된 수많은 유럽 배들이 아시아로 밀어닥친다.

그렇게 23년이 흐른후 1543년 일본 타네가시마의 영주는 포르투갈 상인으로 부터 조총을 입수하여 개발한다..

조총을 처음 본 오다 노부나가는 대량생산으로 조총병 3천명을 양성하고 연속사격 전략을 개발해 다케다 신켄의 기병을 몰살하고

일본 통일의 발판을 구축한다..

그후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조선을 유린했다..마젤란이 이 해협을 통과한지 73년후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로부터 45년 뒤에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청나라 기병에게 대패했다는 것이다..

`







서세동점..서양의 세력이 이양선을 타고 아시아로 몰려들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당쟁과 세도정치로 정신이 혼미해진 조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부서진 부교에 앉아 다가오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갈매기 같은 신세..

지금은 다른가?  우리나라 신세??

G2의 힘겨루기라는 거대한 너울.. 당쟁과 세도정치 비슷한 상황..






그렇게 잘나가던 이곳도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자, 개털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곳에 개들이 많은가?? ㅎ




세상의 끝..

바람 거센 곳..

아무도 찾는 이 없던 이곳이 갑자기 세상의 중심이 되어 각광을 받다가

어느날 인기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이제 다시 바람만 가득한 세상의 끝이 되었네..

영고성쇠란 어찌 인간만의 일이겠는가?




잘 나가던 그시절이 벽화로 남앗다..



 마누엘 부르네스  (Manuel Bulnes)..1841년-1851년까지 칠레 대통령 역임..

그는 이곳 해협의 주권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관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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