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걷기..비예보에 우산,우비 준비하고 나선다..
그러나 걷는 동안 약간의 빗방울과 바람이 오히려 맛깔스런 걷기 양념이 되었다..
공산성 동쪽은 금강이 흐르니 주통로가 서문이다..
길가에 관찰사, 목사 영세불망비가 즐비하다..
저렇게 영세불망의 목민관이 많앗는데 조선이 망한 것은 가식의 비석이라는 반증이다..
금서루에서 북쪽으로 성곽을 돈다..
매표소 노인장에게 어느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으냐 물었더니 북쪽 방향을 추천한다..
북쪽 성곽에 춤추는 그림이 잇다..
고려시절 안렴사가 공주에 내려와 성 건너편 정지산 정자에서 금강의 풍광을 보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단다..
그래서 정자 이름이 안무정이라나..
경치를 보고 춤을 추는 사람이 행정을 하면 인정사정을 좀 봐줄라나..
일제시대 도청을 대전으로 빼앗기는 댓가로 받은 금강철교..
그러나 매년 9월 대백제전 축제때 배다리를 경험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servan/6349817
공북루가 보인다..
아름다운 문루 날아갈 듯 강변에 솟았는데
강 건너 뭇 산들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노라
같은 빛 뜬 구름 천리 밖까지 퍼져 있는데
어느 곳이 서울인지 알지 못하겠구나
麗譙飛出大江干
江北群山倚檻看
一色浮雲千里外
不知何處是長安
- 신유, 공북루 -
공북루는 고려시대 처음 신축되었는데 현재 모습은 조선 선조 36년에 엣 망북루터에 건축한 조선의 건축물이다..
공북루 편액의 시를 보니..
어느 임술년 7월 기망( 旣望,16일)에 소동파의 적벽부를 모방하여 금강에서 뱃놀이한 이야기를 시로 적었다..
강을 낀 천혜의 요새..
장수왕을 피해 남하한 무주왕이 웅거하여 백제의 수도가 되었다..
통일 신라 때는 김헌창이 국호를 장안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킬 때 수도 였다..
조선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하였다..
그 때 지역민들이 급히 떡을 만들어 대접하였더니 '절미로다"라고 칭찬받아서 "인절미"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만하루와 연지..
한조각 무너진 성 머리를 누이고
긴강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 없이 흐르네
흥하고 망한 일을 더불어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
오직 풀밭 가득 동풍 부는 것만 바라보네
一片荒城枕渡頭
長江不斷古今流
無人說與興亡事
唯見東風草滿洲
- 신유, 웅진도 -
백제의 공산성은 토성이나 조선시대에 그위에 석축을 쌓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남문 진남루를 지나 금서루로 향한다..
걷기 마치기 전 잠시 화살 2순을 날려 심사를 정돈한다..
<오늘 걷기> 금서루 - 공산정 - 공북루 - 연지 - 진남루 - 금서루 약 2.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