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폭염경보가 울려댄다..

야외활동을 자제하란다..그럼 집에서 더위와 싸우라는 건가?

앞으로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면 그 비싼 전기값은 어찌 감당하려고...

이럴 때 계곡이 최고다..



원래는 괴산 쪽 계곡에 갈 생각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집 근처에서 그늘 좋은 계곡을 궁리한다..

답은 원래 정해져 있었다..

식장산 세천계곡이다..



입구 생태공원에는 7월 중순인데 아직도 연꽃이 피지 않았다..




역시 그늘 길은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

물가에 앉아 잠시 쉬면서 이곳 단점은 여전하다는 것도 느낀다..

물가에 모기가 많다는거..ㅎ





오늘은 계속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간다..

그늘이 50%라면 물소리가 주는 청량감은 30% 정도 하는거 같다..





독수리봉 직전 그늘 좋은 곳에서 늘어지게 한숨자고...



독수리봉에 오르니 서대산이 땡볕에 고생이다..

열사병이라도 걸리지 않을지..ㅎ



오랜만에 구절사까지 왔다...

하지만, 매번 구절사를 구경한 적은 없다..




조선초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이절은 산신각이 인상적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 세천공원으로 내려간다..

중간에 물 좋은 곳에서 산모기에게 보시하고..




모기에게 보시하는 보살들이 많다..ㅎ



이 더운 날 살 안찌는 커피보다는 시원한 냉면을 먹으러 간다..

원미면옥에 가니 왼쪽 식당은 대기표 81번을 주는데, 오른쪽 식당은 빈자리가 많네..

어쨋거나, 착한 가격에 냉면 한그릇하고 돌아선다..



<오늘 걷기> 식장산 세천공원 주차장 - 독수리봉 - 구절사  - 세천공원 주차장  약 10km



석남사 둘레길을 걷고 시간 여유가 있어 길목에 있는 배티성지로 간다...

여기에 순례길과 둘레길이 잇다..

순례길은 3.5km, 둘레길은 7.5km






쉼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잠시 쉬고 출발..







도포 차림의 이분이 최양업 신부..

최초의 신학생이고, 두번째 신부..

열심히 포교하다가 과로로 선종..





그저 고요하라..

온전히 홀로 머물러라...







순교자의 묘로 가는 길은 상처받은 몸처럼 나무등걸이 드러났다..



몇백미터 올라 가쁜 숨을 정돈하면 평탄한 그늘길이 이어진다..

그때 왼편으로 보이는 길..

저 길이 둘레길인가 보다..





오늘은 체력을 위해 순례길, 둘레길 완주를 사양하고, 돌아선다..

언젠가 가을 쯤 선선할 때 다시와 완주해보리라..





돌아오는 길에 최양업 신부 박물관에 들렀다..







박해의 시대..신앙은 오히려 굳어져갔다..

자유의 시대..사람들은 돈에 집착해 간다.




그는 1821년 철종 년간 홍주 다락골 (현 청양군 화성군 농암리)에서 태어났다..

모방 신부에게 김대건(金大建)·최방제(崔方濟)와 함께 조선인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뒤 최초의 조선인 신부인 김대건은 입국에 성공하여 활약하다가 1846년에 순교하였다.

이 무렵 최양업은 고군산도, 백령도 등에서 수차례 입국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1849년 4월 상해의 마레스카(Maresca) 주교에 의하여 사제품을 받고, 두번째 조선인 신부가 되어 그 해 12월 조선입국에 성공하였다.

유일한 조선인 신부였던 그는 천주교가 다소 묵인되던 철종연간에 매우 적극적으로 전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861년 그는 과로로 쓰러졌고 1861년 6월에 사망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충주 박달재 부근  배론신학교에서 거행되었다.




어화 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本鄕)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복지(福地)로나 가자하니 모세성인(聖人) 못들었고

지당(地堂)으로 가자하니 아담원조(原祖) 내쳤구나

부귀영화 얻었은들 몇해까지 즐기오며

빈궁재화(貧窮災禍) 많다한들 몇해까지 근심하랴

이렇듯한 풍진(風塵)세계 안거(安居)할곳 아니로세

인간영복(榮福) 다얻어도 죽어지면 허사되고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그만이라

우주간에 비껴서서 조화묘리(造化妙理) 살펴보니

체읍지곡(涕泣之谷) 그아니며 찬류지소(竄流之所) 이아니냐

아마도 우리낙토(樂土) 천당밖에 다시없네

복락(福樂)이 순전(純全)하고 길경(吉慶)이 충만하다

무궁세를 지내도록 영원상생(常生) 이곳이라

우리인생 바랄것이 이곳밖에 다시없네

세상만복 다받은들 천당복에 비길소냐


***

경허 선사의 참선곡과 비슷한 곡조다..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를 살았으니 귀에 익은 곡조는 비슷하겟지..

우리 세대가 비틀즈, 아바 곡조에 익숙하고

요즘 세대는 BTS, GOT7 곡조에 열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피, 땀, 눈물 없이 얻어지는 것은 귀한 것이 아니다..

김대건 신부는 피의 순교자, 최양업신부는 땀의 순교자로 추앙받는다..



어느 목사님이 말했다..

"여러분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모두 "예!!"

"그럼, 지금 즉시 갈 사람은요?"

....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인생,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인생..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안성 걷기에 나섰다..

그동안 청룡사, 칠장사, 죽주산성 등 여러 곳을 다녔는데, 곶감 빼먹듯 갈곳이 많은 동네다..



석남사 가는 초입부터 길이 좁아 주차장 사정을 알 수 없어서

일단 차를 큰 길가에 있는 서운산 자연휴양림에 주차하고 걸어간다..



몇백미터 올라가니 화장실과 차량 15대 주차할 장소가 있다..

그리고 석남사에도 주차장이 잇은데, 요즘같은 성수기에는 밑에 차를 두고 1km 정도 걸어 올라가는 것이 운신하기 좋은 것 같다.. 



석남사가는 길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늘도 있어 걸을 만하다.. 



그런데, 개울가 텐트를 바라보며 농담하다 보니 길 복판에 뱀이 스르르~~

으~~~




석남사 입구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라고 크게 써붙였다..

일본에서는 스님들이 술집을 열어 전도한다더니, 우리는 한류에 편승하여 절을 홍보한다..



서운산 석남사..

상서로운 구름이 낀 산 미륵바위아래 절..




터 좁아서인지 대웅전이 맨 위에 있다..







그런데, 아래에도 대웅전이 잇어 서로 마주보고 잇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원 대웅전이 해체 복원공사를 하기때문에 부처님을 아래로 모셨단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영산전이다..

1562년에 건립되어 임진왜란때에도 살아남았다..




영산..영취산..부처님이 설법하던 시절 인도 라자그라하(왕사성) 부근의 산인데, 그 산 정상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햇다고 한다..





드라마 도깨비

영원한 삶을 살기 싫은 도깨비는 인간의 신부를 얻어야 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판타지 드라마..

현대판 금오신화쯤되나??

그 드라마에서 눈 덮인 이절에서 풍등을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여파로  6. 23 풍등날리기 행사가 열렷다..

약 500여명이 모였단다..

풍등의 붙인 불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 ?

led 등을 써서 안전한다..ㅎ



사람들이 이 칼에 남자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데,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나???




절 옆으로 서운산 등산길이 그늘로 유혹한다..




마애석불을 다녀와서 다시 여기서 정상표시대로 올라가야 한다..



통일신라 시대 마애석불..




이 길 물 소리 들으며 올라가는 시원한 그늘 길이다..

한 여름에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요 물고랑에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어제 과식한 배를 잘 달랜다..

걷기 후에 다시 이곳에서 와서 물놀이 하기로 다짐하고 올라간다..




분위기를 봐서는 목 말라 죽을 정도로 간절한 사람만 먹으라는 뜻인 거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피나 눈물 또는 땀 없이 얻는 것은 귀한 줄 모른다..

몇 백미터의 오르막이 기다리고 잇다..

계단 길에서 만난 2사람..

땀 흘릴 줄 모르는 1인과  추사를 좋아하는 1인과 동행한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서운산 자연양림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잇다..

언제가 서운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해보아야겟다..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은 시원한 그늘길..



몇년전 겨울에 만났던 정상은 여전히 신수가 좋고, 인간관계도 원만한듯 사람들이 북적인다..



멀리 요즘 서울처럼 행세하는 동탄이 보인다..

정상에서 아사히 흑맥주와 감자전을 두고, 여행과 서예, 추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려가는 길도 그늘이다..

이정도면 여름 걷기에 소핑목록에 넣어 두어야 한다..








다시 온 석남사에서 7월의 연을 보자, 갑자기 연꽃마을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가는 행사인데, 금년은 놓치고 잇엇다..



다시 만나기로 한 물고랑에 갓다..

자리 깔고 참외 깍고 자리에 누워 대금 소리를 듣는다..

무소유.. 

https://youtu.be/9F1dreSuURY




시원함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오늘 걷기> 서운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 석남사 - 마애석불 - 계곡길 등산로 - 정산 - 지도상 우측 임도길 - 석남사  약 8km

<참고 걷기>

1. 석남사 - 우측 임도길 - 정상 - 배티고개 - 배티성지 순레길 또는 둘레길

2. 서운산 자연휴양림 - 석남사 - 우측 임도길 - 정상 - 서운산 자연휴양림



소백산 자락길을 걸으러 나섰다..

버스가 영주로 가다가 충주 천등산 휴게소에 잠시 섰다..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와 개마무사가 기다리고 있다..

충주는 장수왕 시절, 국원성이 있었고 고구려비가 서있는 고장이다..




버스는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삼가야영장 초입에 도착했다..





소백산 둘레길은 12자락으로 구성되는데, 오늘은 1자락을 거꾸러 걷는다(삼가- 소수서원)




잠시 계곡길을 걷다 보면 비로사가 나온다..





월명루..

달 밝은 루각...

불교에서 달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진다..

고요하고 맑은 마음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는 거..




五蘊山頭古佛堂     오온산두고불당

 毘盧盡夜放毫光     비로진야방호광


오온산정 고불당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밤새 백호광명을 비추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을 말한다..사람의 심신의 작동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 시스템 위에 있는 고불당..옛부처의 집이란 결국 중생의 마음을 말한다..



고려 태조 시절의 고승의 탑비가 남아 있으니 오랜 절이다..



비로사를 지나면 달밭골이다..

월전..

달밭이 있으니 달이 밝아 월명루가 있는겨..ㅎ

십승지 중 하나로 친다니 심심산골에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소나무 울창한 이 숲속에서 간식 먹으며 한참을 쉬었다 간다..







수도중..입산금지..

조만간 도인이 나올듯..ㅎ



길은 점입가경..

계곡이 유혹하는데, 리더는 더 가야한다고 채근한다..







초암사를 지난다..




초암사 입구의 화장실에 들렀더니 참 깨끗한데, 한쪽에 파리 잡이 통이 걸려 잇네..

삶과 죽음..극락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에서 깨끗함에 끌리는 것은 웬 심뽀란 말인가??





구곡이 있다는 것은 근방에 성리학자가 있다는 말이다..

왜??

구곡의 효시는 주자의 무이구곡이기 때문이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숨을 돌린다..

시원한 물소리 실리는 웃음소리..


옛날 누군가 물었다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책으로 읽고 생각으로 따지면 미궁에 빠진다..

그러나 길을 걸어보면 안다..

그러한 때의 진면목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을 몸의 때를 씻는 것을 귀하게 여기나

마음을 씻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나는 사랑하네..




참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길은 자연 속에 잠드는 것이다..



일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더덕이다..

누군가 30년 묵은 더덕을 씻고 있다..

덕담을 건네니 문득 한 쪽을 떼어 주네

쌉쌀함이 입에 가득한데 코는 향기로 막힌다.






푸른 사과 한알 들어 올리는 일도

절 한채 세우는 일이다..




죽계구곡 입구를 나서자 동네 나무에 살구가 가득하다..








초암사에서 소수서원가는 길은 땡볕이다..

발바닥도 불이 난다..

뒤를 돌아보니 소백산은 의연하다..





백산계?

순흥 부근의 선비들이 모여 만든 계로 1923년에 조직하여 후손으로 이어져 90년 내려오는 모임이란다..





문으로 백복을 영접한다..



소수서원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학창시절에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은 곳..





입구 선비촌에 당나귀 마차도 잇는데, 시간이 없어 타보지 못하네..ㅎ




무외심..

두려움이 없는 마음..

그럴려면 지킬 것 지키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성리학자들은 그것을 도 닦는 일이라 했고, 자신들의 학문을 도학이라고 했다..




<오늘 걷기>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삼가탐방지원센터 - 삼가야영장 - 비로사 - 달밭골 - 초암사 - 죽계구곡 - 순흥저수지 - 순흥향교 - 소수서원   12km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홍천 수타사에 들렀다..



수타사 뒤산이 공작산이다..

자작을 알현하고 공작을 배알하는 것은 당연지사라..ㅎ






덕치천를 건너가면 수타사가 있다..




수타사둘레길 이름이 산소길이다..






흥회루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추사의 난을 새겼다..


山中覓覓復尋尋(산중멱멱복심심)   산 속을 찾고 또 찾아서

覓得紅心與素心(멱득홍심여소심)   홍심란 과 소심란을  얻었네.

欲奇一枝嗟遠道(욕기일지차원도)   한 줄기 보내려니 길(道)이 멀지만

露寒香冷到如今(로한향냉도여금)   찬 이슬 맑은 향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처염상정

더러운 곳에 처해있어도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지킨다..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네..

그럼 어디에 있을까?



수정독..

고요함을 지키기를 독실하게 하라..



전대법륜

대법륜을 굴리다...

만해 한용운의 글씨..




보화각이란 현판 붙은 성보박물관에 들렀다..




보물 월인석보 18권이 보관되어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합본한 세조때 편찬한 원본이다..




청허대화상 진영이 있어 문화해설사에게 서산대산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왜 조선 후기사람으로 되어있나??

혹시 동명이인인가??




서곡당 대선사는 홍천출신이란다..







초롱꽃이 가득하다..







귕소에서 반환점을 찍는다..

아름들이 나무를 파서 만든 소나 말의 여물통이 "귕"이다..

귕같은 못이라 해서 귕소..




수타계곡 따라 내려가는 길은 시원한 그늘이다..



수타교에서 우측 오솔길을 따라 돌아가니 길이 그윽하고 덕치천 풍광도 멋지게 보인다...









공작산 산소길은 주차장에서 출방하여 돌아오는데 약4.5km 정도 된다..




인제 걷기에 나섰다..

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걸은 적이 있었데, 그 때 원대리 자작나무 숲 이야기도 들었다..

이제 인연이 닿아 오게 되었다..





가이드는 임도 양갈래 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가는 것이 수월하다고 한다..

걷고나니, 절대적으로 왼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겠다...




여기서 왼쪽 임도로 간다..



참 오붓하고 정겨운 길이다..




40-50분간 걷고 나면 계곡과 만난다..

계곡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20-30분 올라가면 매점이 나온다..

산신이 앉아 계신다..








나무다리를 건너 자작나무숲에 이르자..

아!! 탄성이 절로난다..

미끈 각선미를 자랑하는 물랭루즈 무희들의 캉캉춤을 보는 것처럼 황홀하다...



















자작나무..

정이품송보다 벼슬이 높은 것일까?

귀족티가 난다..





좋은 것도 다 두고 내려가야 한다..

인생도 그렇다..

우리도 언제든 좋은 것 다 버리고 갈 준비를 해야한다..





내려가는 임도는 그늘도 없고, 공사중이다..

그러니 출발시 왼쪽 임도로 올라와야 기분이 좋다..




약 9km의 걷기 였지만,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즐거운 길이다..



<계속>

나중에 검색해보니 말목재에서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성급히 말목재 생태통로에서 되돌아 말목재 삼거리로 돌아가

농산교 1.3km 표지를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길은 갈수록 희미해지더니 맘 심란하게 길 같지 않은 길을 걸어 내려온다..

아직 오후 해가 길기 망정이지..곤혹 스럽다..



엉뚱하게 철조망이 쳐진 논으로 내려왔다..헐..

그래도 멧돼지보다는 좋은 머리가 있어 철조망을 넘고 논뚝길을 걸어 차도로 나왔다..




이길 반대쪽이 말목재 터널이다..

차도변을 따라 가다보면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이 나온다..




통일신라때 불상이란다..



부처님 등뒤에서 점심용 간식을 들었다..



강선대로 가는 길에 태양광발전의 현장을 본다...

우리나라 큰 일이다..

원자력 1기면 될 걸..수십만평의 산과 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정책을 쓰고 있다..

마치 늑대만 죽이면 초원이 살 것같지만..

늑대가 다 죽으면 사슴이 너무 팽창하여 초원이 황폐해져서 결국 모두 죽는다는 생태계의 현실을 모른단 말인가??



강선대 앞 개울에서 발을 씻는다..

동행은 옆지기가 알프스 여행중이라 실시간으로 카톡으로 풍광사진을 보내는데 우리나라 풍광과 비교가 안되어 사진을 못 올리겠단다..

내가 말했다..

"발씻는 장면을 올리세요..알프스가 좋다고 해도 발씻을 데는 없을 것인디...

양귀비가 아무리 대접을 잘받았기로 아이스께끼는 못 먹고 죽었을 것인게로.."





강선대 앞 정자 이름은 모암정이다..

모암정 부근은 민들래울이라는 까페인데, 매우 조경이 아름답다..




여그가 달나라여~ 저그 토깽이들은 뭐라구 있댜~





우리 모두 저 들판의 꽃 처럼 남김 없이 피어나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행복하여라..보다 더 아름다운 찬사다..





강선대에서 만월재로 가는 길에 접시꽃이 탐스럽다..

저 꽃만 보면 어릴적 생각이 난다..

`


용수막???

1) 마을뒷산이 용의 귀모양을 하고있고 효자가 많이 났다는 설

2)  수(水)자가 들어가 월성계곡물과 덕유산 소정계곡물이 합쳐지는곳의 지명이라는 설

3) 이 길을 따라  월성 과 서상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예전에 마을앞에 주막이 있었다는 설

내가 보기엔 주막설이 그럴듯해 보인다..


만월당...

달빛이 가득한 집..아니면 둥근 달같은 집..

만월당 정종주를 기리는 집이다..

빈 배에 달빛 가득 싣고 가는 심정으로 살고자 했겠지..

그는 선조 무렵 직장벼슬을 한 사람인데, 정작 유명한 것은 그의 삼촌 정용의 유적비다..

정용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의병장 김면의 휘하에서 활약..

그후 최경회 휘하로 2차 진주성 방어전에 참전..분투 끝에 성이 함락되자, 두 조카와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갈계숲에 도착했다..

조선 명종 때 석천 임득번과 아들 갈천 임훈 등 3형제가 노닐던 곳이다.. 





가선정...

갈천 임훈이 노닐던 정자..1936년에 중창..

 주련에 "인생안득여거수"

"사람이 나서 어찌 저리 오래 살수 있나"

갈천의 시 한귀절이다..

원시는 이렇다..

"한줄기가 만 그루의 가지가 되어

봄바람과 좋은 비에 조용히 날로 불어낫네

인생은 어찌해야 저리 오래 살수 있을까?

해마다 오래 보살피고 고이 길러야지..





도계정..

갈천의 동생..도계 임영을 기려 세운 것..



갈계숲을 나와 행기숲을 찾아가는데, 표지판이 여전히 부실해 땡볕에 고생..

막상 와보니 너저분한 강변..




아직 물을 맑고 좋다...

사람들은 올갱이 잡기 삼매경..



행기 숲에서 용암정 가는 길은 안내도 그림과 달리 도로를 따라 가야하는데, 안내도는 장래의 길을 그린 것인지 전혀 다르다..

역시 표지판도 부실하고..

어째거나 고생 끝에 용암정 가는 길을 찾았다..







용암정 올라가는 계단이 친환경적이고 토속적이면서 예술적이다..

오래된 미래의 작품..



청원문..전서체..



용암정..행서체..



반선헌..예서체..



정자주인이 용암8경을 명명했단다..



용암정부터 요수정으로 가는 길은 계곡 따라가는 멋진 길이다..





멀리 구연교와 거북바위가 보인다..





요수 신권..중종 때 사람..

지자요수 현자요산 (知者樂水仁者樂山)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현자는 산을 좋아 한다고 했으니, 신권은 지자인 모양이다..



요수정이 있는 이 일대를 수승대라 부른다..




巖龜送客愁   (암구송객수)   시름 달래기엔  거북바위가 안성맞춤

登臨惟自適   (등임유자적)  이곳에 노닐며  자신에 만족할 뿐

聞達不須求   (문달불수구)  헛된 이름을 좇지 않으리




구연교를 지나 거북바위(암구대)로 향한다..

각종 글씨가 가득하다..




퇴계이황의 권유로 수승대가 개칭한 사연이 적혀있다..

삼국시대때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서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낼때 이곳에서 송별 하여 수송대라 하였다.

그후 퇴계 이황이 산자수려함을 격찬하며 수승대로 고칠것을 권하는 시 한수를 보내자 바위에 수승대라 새김으로 오늘날 수승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사연..

1543년 이른 봄날  안의 삼동을  유람차 왔던 퇴계 이황이  마침  처가가 있는  영송마을에 머물면서

요수정으로 신권을 예방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자  신권이 주안상을 마련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황이 급한  왕명으로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시 한수 적어 신권에게 보냈다..


                           搜勝名新換   (수승명신환)  -  수승(搜勝)이라  이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봉춘경익가)  -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다

                           遠林花欲動   (원림화욕동)  -  먼 숲 꽃망울은 터져 오르는데

                           陰壑雪猶埋   (음학설유매)  -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未寓搜尋眼   (미우수심안)  -  좋은 경치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惟增想像懷   (유증상상회)  -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他年一樽酒   (타년일준주)  -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巨筆寫雲崖   (거필사운애)  -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다


황당한 신권이 한 수 읊었다..


                           掃臺邊路  (위소대변로)  -  구연대 옆길을  쓸은 건

                           庶望華駕臨  (서망화가임)  -  손님이 오기를 바란 까닭인데

                           詩來人不至  (시래인불지)  -  시(詩)만 오고 사람은 아니오니

                           無意獨登臨  (무의독등임)  -  무심히 홀로 대에 오르네


그리고 그뒤부터 이곳 이름이 수승대가 되었다..



이 바위에 왜 이리 글씨가 많은가??

원래 갈천 임훈 가문이  요수 신권 가문보다  백년 앞서  수송대 주변의  황산마을에  입향하여 살면서  서로 사돈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런 연유로 이황의 보내 준 시와 이에 화답한 요수 신권의 시,  처남 갈천 임훈의 시가 함께 거북바위에 새겨졋다..

그러나 이들의 시가 탐승객 사이에 화제가 되자, 후손인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문중은 서로 수승대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다툼이 생겼다.

임씨 문중이 "갈천 선생이 지팡이 짚고 나막신 끌고 노닐던 곳[葛川杖屨之所]"이라는 명문을 근거로 새기고,

신씨 문중은 "요수 선생이 몸을 감추고 마음을 닦은 곳[樂水愼先生藏修洞]"이라는 글을 새겨 대응하였다.

16세기 중엽 다툼이 시작된 이래 1866년 송사에서 안의 현감이 신씨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두 문중의 분쟁은 목숨을 버리고 재산을 탕진하면서도 구한말까지 그치지 않았다.

1929년 4월 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 지원에 임씨 문중이 수승대 소유권확인 소송을 다시 제기하였다..

2년 후인 1931년 3월 판결 결과  임씨 문중의 청구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됨으로써 신씨 문중이 수승대를 계속 관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400년에 걸친 수승대 소유권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요 동그란 바위 구멍은 막걸리 한 말을 넣어두고 스승에게서 합격판정을 받으면 한 사발씩 마셨다고 해서 장주갑(藏酒岬)이라 불렸다. 



빨간 글씨는 세필짐.. 붓을 씻던 자리란 의미다.



다시 신을 벗고 다리를 씻는다..

허망한 소유권 다툼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즐기는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번뇌 잡상을 계류에 흘려보내고 출렁다리 건너 돌아오는 길..

세익스피어가 한마디한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사람은 배우다..





<오늘 걷기> 수승대 제1주차장 - 척수대 - 위천교 - 동계 고택 - 정씨문중 분묘길 - 전망대 - 정상 - 말목재 - 차도 - 농산리 석조여래살입상 - 강선대 - 갈계숲 - 용암정 - 요수정 - 수승대 - 출렁다리 - 제1주차장..약 10km


<참고 걷기> 위 지도 참조,.

                 수승대 제2주차장  - 관수루 - 거북바위 - 요수정 - 잠수교 - 제1주차장 정문 - 척수대 - 위천교 - 동계고택 - 정씨 문중 분묘길 - 전망대 - 정상 - 용암정(수승대) 방향 하산 - 용암정 - 요수정 - 제2주차장  약 8km   < 흙길 위주로 엣기스만 걷는 장점>




거창 걷기에 나섰다..

며칠전 옥녀봉에서 도리깨질을 하는데, 전반에 37타를 치고,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짱짱한 거리로 나가는 것을 본 동반자가

자신을 걷기로 인도해달라고 부탁한다..ㅎㅎ

그래서 걷기 전도사 자격으로 원래 안동 순례길을 가려고 하였는데 취소되는 바람에 대타로 간택한 곳이 이곳이다.. 


처음 가는 곳은 자세히 연구해야 하는데, 이곳은 자료가 부족하다..

그 만큼 덜 알려진 곳이겠지..

일단 수승대 제2주차장에 세우려다가 찾지 못하고 정문을 지나 제1주차장에 세웟다...



마침 주차장에 안내도이 있는데, 트레킹 코스가 매우 심플하게 그려져 있어 무난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표지판이었다..



코스는 동반자가 처음 장거리 트레킹에 도전하는 사람이라 10km 정도 되는 2코스를 택하되, 흙길이 많은  1코스와 절충하는 코스로 가기로 계획하였다..



정문 밖으로 나와 2코스가 시작되는데, 시작점의 표지도 안보이고, 어디로 가라는 표지판도 없다..

대략 동네사람에게 척수대 방향을 물어 걷기 시작한다..






건너편에서 본 척수대의 모습이다..

소설 속 허준의 스승의 유의태의 모델이 되는 유이태의 설화가 있는 곳이고, 신라, 백제 사신들의 애환이 서린 곳..




척수대를 지나면 솔밭이 나오고..




솔밭을 지나 우측으로 위천의 다리를 지나 동계 정온의 고택으로 간다..



위천의 개울에 참 오랜전의 풍광을 본다..

60년대는 전국의 개울이 다 저런 풍광이었는데..



참 귀한 표지판을 오랜 만에 본다..

만약 걸어본 사람(공무원이든 누구든)이 표지판을 세웟다면 이렇게 부실하게 "처가집 벌초하듯" 대충 세우지 않앗을 것이다..

주차장 안내도에 트레킹 코스를 표시했다면, 군청 당국은 성의를 가지고 길 표지판을 세워야 한다..

제주 올레처럼 말이다..










동계 정온..

남명 조식 - 내암 정인홍 - 동계 정온으로 이어지는 학맥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노선에서는 스승인 정인홍과 다른 길을 걷는다..

특히 영창대군의 사사를 둘러싸고 스승과 의절하고, 반대 상소를 올려 제주도에 10년간 유배생활을 한다..

그가 제주에서 지은 시..

저것이 가득찼다고 부러워 말고

이것이 혹 기울었다고 탄식하지 말게

일찍이 들으니 하늘과 귀신은

가득찬 것을 항상 해친다더군 

달을 보고 나를 돌이켜보면

같은 이치임을 그대는 알게 되리라.


인조반정 직후 스승이 처형되자, 옛 의리를 지켜 스승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아버지 정유명을 따라 의병장 김면의 막하에서 종군하엿고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파로서 청에 항복하자 할복을 시도하였다..

참 당당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의 사랑채에 글씨를 보면 그의 정신을 알수 잇다..

충신당..

충성과 믿음..그의 정신을 대변하는 말이다..



모와..

모처의 토굴집..

후손 중 통정대부행비서감승 벼슬을 지낸 사람이 '모와'라는 호를 쓰고 있었다..



학암..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던 한암 선사의 기개와 비슷하지 않은까? 



그의 현손 정희량이 영조 초기에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다..

그는 안음, 거창, 함양, 합천을 점령하였으나 경상관찰사가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당하고 집안은 멸문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훗날 조정에서는 동계 정온의 제사는 부활시켜준다..



그런 집안을 다시 일으킨 사람이 반구헌의 주인 야옹 정기필이다..




반구헌에 초등학생 답사팀이 나와 재잘거리는 소리가 새소리 보다 더 좋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도상 1코스와 2코스가 갈라지는 분기점의 표지판을 찾기 어려웟다..

동네 사람도 모른다..

길을 되돌아가며 유심히 살펴보니 표지판을 무슨 보물찾기하듯 세워놨다..

참..한심한 관리자들..

제주 올레의 표지판 좀 벤치마팅해라..으이구..



이렇게 숨어 있으니 어찌 알겠나???



2코스를 따라가면 아스팔트 길로 이어질것 같아 동계 정온 고댁 구경후에는  1코스의 산길로 올라가는 것이다..



정씨 집안 묘 길을 지나간다..

거기에서 동계 후손 중 '모와' 호를 쓰던 사람의 묘도 만난다..








전망대에 오르니 수승대 유원지가 다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수승대 계곡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으로 향햇다..



헬기장에서 정상표시판이 보이지 않는데..감각적으로 우측 소로로 조금가니 정상석이 보인다..

성령산..






정상에서 말목재 방향으로 가다가  말목봉 직전 삼거리에서

망설이다가

코스대로 말목재로 가면 2코스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목재 방향으로 간다..




말목재에 오니

생태통로 양쪽에 철망이고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표지판도 없고...

잠시 망설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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