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각고(刻苦)’, 지본, 164×82cm, 개인 소장. 송시열이 ‘刻苦’를 쓰고 제자인 유명뢰(兪命賚), 권상하(權尙夏), 정호(鄭澔)가 ‘각고’를 주제로 학문과 공부에 대한 자기 생각으로 발문을 달았다.

 

 작품은 제자 유명뢰가 ‘刻苦’라는 두 글자를 공부하는 자로서 제일 먼저 마음에 새기려 글을 청하자 우암이 써준 것이다. ‘글씨는 그 사람이다’라는 도학자들의 글씨에 대한 명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해행으로 구사된 장중한 필획, 확고부동한 안정된 짜임새에 절의에 찬 우암의 성정과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다. 특히 장지바닥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필의(筆意)가 글씨의 생동감을 극대화하는 지점에서는 우암을 생면(生面)하는 감흥까지 자아낸다

더욱이 ‘느긋하게 되는 대로 아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배우는 자의 가장 큰 병통이다. 만약 이러한 병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을 지녔다 해도 결단코 성취할 가망은 없는 것이다. 刻苦라는 두 글자가 어찌 이러한 병통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우암의 제자 권상하의 발문을 보면 글씨 자체가 곧 선생님이 되어 목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글씨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데, 서예가 단순한 기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의 정신이 투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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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암 이곤순의 글씨

 

무법불립(無法不立)..법없이 설 수 없다..

행서를 투박하면서 고졸하게 쓴 대가의 작품..

 

일중 김충현 선생은 서예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대전·충청 출신 서예 거목들을 제자로 길렀다.

그가 가르친 충청 출신 대표적인 서예가는 한별 신두영(보령), 장암 이곤순(보령), 죽림 정웅표(홍성) 등이다.

 

장암의 말씀

“서예는 늘 정법을 추구해왔습니다. 율곡 이이의 유학 사상과 한석봉 선생의 서예를 기호유학파가 계승했지요.

우암 송시열 선생과 동춘당의 뜻이 거기에 맞닿아 있는 것 아니습니까. 근본을 중시하는 글씨로 서예의 위상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대전 충남지역에서는 가장 오랜 보문연서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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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 德 爲 隣 " (서석)

 

덕으로 이웃을 위하라..즉 이웃에게 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옛적부터 사람의 덕행을 강조하여 왔는데..

논어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으니, 德 不 孤 라  必 有 隣이리라..

덕있는 자는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즉. 덕을 베풀면 따르는 이웃(동지)이 생긴다는 뜻이다..

 

더구나, 남 모르게 베푼다고 하면..

전통적으로는 음덕(陰德)..불교적으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기독교에서는 "다른 손이 모르게"라고 하면서 제일의 덕행으로 친다..

 

이러한 덕행은 이웃을 동반한다 하였으니 당연히 천우신조(天祐神助)할 것이고, 산천초목인들 어찌 가만있으랴.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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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서화에 쓰인 글귀..

 

與 善 人 居면 如 入 芝 蘭 之 室하여 久 而 不 聞 其 香이나  卽 與 之 化 矣요..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와 동화되네..


그뒤에 명심보감을 읽다가 그 뒷귀절을 알게되니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착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잇으면 비린내나는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나 또한 더불어 그 냄새와 동화되나니,

붉은 것을 지니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지니고 잇으면 검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함께 잇는 곳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


위 글귀는 공자 말씀이나 한글로 풀이하니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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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방문할 때 글씨체 중에 촉체라고 소개 된 것이 있어 궁금하여 찾아 보았다

 

이유는 촉체란 송설체를 말한다..

송설체는 조맹부의 글씨체로 그의 서실(書室) 이름이 송설재(松雪齋)여서 이런 명칭이 생겨났다.

조맹부는 송나라에서까지 성행하던 당나라의 안진경체를 배격하고 왕희지의 글씨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던 사람이다

 

왜 조맹부의 서법을 촉체라고 하는가?

조맹부의 서법은 동파로부터 온 것인데, 동파가 촉나라 사람이므로 촉체라 한다(화인열전 2권 중에서)

 

***

조귀명이란 분이 말하길. 

“우리나라의 서법은 대략 세 번 변하였다.

국초에 촉체(蜀體:송설체)를 배웠고, 선조 인조 이후로는 석봉체를 배웠으며, 근래에는 진체(晉體:왕희지체)를 배우고 있다”고 한 바 있는데, 이용(안평대군) 한호(석봉) 윤순(백하)이 그 해당인물이 된다.

요컨대 백하는 송설체가 퇴조하고, 석봉체가 관각체(館閣體)로 떨어진 조선후기 새로운 시대서풍을 꽃피운 인물로 자리매김된다.

즉 왕법을 토대로 당 송 명의 여러 명서가, 특히 미불과 동기창을 소화해냄으로서 백하 이후 후기서단을 주도한 이광사 조윤형 강세황 등의 서풍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조맹부의 삼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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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체(楷書體)의 정착에 앞서 예서(隸書)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이룬 서체로 팔분체(八分體)가 등장한다.

한(漢)나라 중기에 채옹(蔡邕)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팔분체는 전서(篆書)의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예서의 틀을 완성시킨 서체인데,

특히 장식미를 더한 양식의 서체로 후한시대에 많이 사용됨으로 해서 예서와 해서의 과도기적 단계의 서체라고 본다

물결치는 필세를 갖춘 서체로, 특히 오른쪽으로 삐친 글자를 길게 늘려 만든 획의 처리가 예술적 특징인 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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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기부 나선 밥장
완주 도서관·어린이대공원역, 아파트 벽 동네 아이들 얼굴… 난 업자가 아니라 작가, 차비만 받고도 그려줘
기부받는 사람도 준비가 돼야… 막무가내 공짜 요청은 사절

"딩동딩동~" 아파트 초인종이 줄기차게 울렸다. 놀라 문을 열자 동네 꼬마 수십 명이 시위하듯 버티고 섰다. "아저씨! 내 얼굴도 벽에 그려달라고요." "저도요, 저도요!"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그도 몰랐다.

그래픽 디자이너 밥장(본명 장석원·41)이 올 초 자신이 살던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한 아파트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을 때 일이다. 그는 아파트 주민대표인 어머니를 도와 뭔가 동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아이들이 즐겨 찾는 삭막한 아파트 구석 벽에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별 생각 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재혁이라는 동네 꼬마가 다가왔다. "아저씨, 내 얼굴 그려줘요." 장난삼아 녀석 얼굴을 그리고 옆에 이름을 썼다. 그걸 본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그의 집에 몰려온 것이었다. 결국 아파트 벽면은 동네 어린이 45명의 얼굴로 채워졌다.

‘디자인 기부’를 하고 있는 밥장. 뒤로 보이는 공사판 그림은 서울 해성여고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공사장 가림막이다. /이덕훈 기자 dhlee@chosun.com

"'스타 작가'가 되는 것보다 '동네 스타'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지난주 서울 전농동 해성여고 앞에서 만난 밥장은 "인생 역전을 안겨준 디자인을 이제 이웃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가득하고 온몸은 페인트투성이였다. 한창 해성여고 학생들과 함께 학교 주변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이 역시 '디자인 기부'의 일환이었다.

밥장은 만 10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미술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채 2005년 일러스트 디자이너가 돼 화제를 모은 인물. 펜으로 꼬물꼬물 탱화처럼 그린 듯한 그림 스타일이 소프트한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3~4년 만에 일약 스타 작가가 됐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영등포점, 할리스 커피, KB국민카드 등 기업과 일하며 매장 벽화와 광고 일러스트를 작업했다.

삭막한 아파트 벽면에 웃음이 하나둘 피어올랐다. 밥장이 자신의 아파트에 사는 동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리고 이름을 써서 완성한 벽화. 아이들이 자기 얼굴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최근 가속도가 붙어 질주하는 자신의 인생에 제동을 걸었다. "고객과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들이 나를 '디자인을 파는 기계'로 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작가가 아니라 업자(業者)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겼어요." 삭막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진짜 의미있는 디자인'을 찾아 나선 길이 '디자인 봉사'였다.

먼저 찾은 곳은 지방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한 달에 스무권은 꼭 읽는 '책 벌레'로서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농어촌이나 저소득층 지역에 들어서는 작은 도서관에 일단 기부 참여를 신청했다. 2009년 처음으로 전북 완주 지역의 작은 도서관 2군데에 벽화를 그렸다. 어린이들이 책 읽는 공간에 호기심을 갖도록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계단 밑에 나비를 그리고 화장실엔 도마뱀이 뛰어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완주 지역에 사는 이주 여성들이 운영하는 다문화 카페 벽화도 그렸다. 이주 여성들이 사연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밥장이 마무리 붓질로 완성했다.

얼마 전 완공된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한 벽면은 로봇과 천사로 장식했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고비는 차비 명목으로 서울시 쪽에서 준 5만원이 전부. 그마저도 아직 입금이 안 됐다고.

이주 여성들이 운영하는 완주 다문화 카페 벽면을 장식한 밥장의 그림. 아기자기한 천사와 로봇 캐릭터들이 이주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녹여줄 것만 같다.

때로 그의 그림은 사회의 폐부를 에둘러 건드린다. 어린이재단 성폭력예방 캠페인 일러스트가 대표적이다. 로봇이 꼬마 조종사를 지키는 듯한 모습으로 어린이 성폭행 예방을 표현했다. 밥장은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만 다루면 사람들이 외면하게 된다"며 "어른들의 책임감을 직설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부드럽게 호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디자인 기부는 곧 네팔로 뻗어갈 예정이다. 이달 중순 한 NGO와 함께 네팔에 가서 학교 벽화를 그릴 예정이다.

선행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주위의 격려도 늘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선의의 색안경은 거둬달라"며 "내 이야기가 미화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꽤 현실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디자인 기부가 꼭 '남을 위한 일'만은 아니에요. 내 그림의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결국 '나를 위한 길'이 돼요. 기부가 마케팅이 되기도 하지요."

디자인 봉사를 하면서 그는 "간혹 기부받는 이들이 준비가 안 된 경우를 보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부의 전제 조건은 내 그림을 존중해주느냐와 프로젝트가 가치를 지니냐는 것"이라며 "막무가내 공짜 기부 요청은 절대 사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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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개인사찰에서 보관해왔던 이순신 장군의 친필이 6일 공개됐다.

충주문화원과 일본 구마모토 일.한문화교류연구회 주최로 이날 개최된 제4회 충주.구마모토 국제학술대회에서 구마모토현 혼묘지(本妙寺)의 이케가미 쇼지(46) 부주지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을 공개했다.

혼묘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 장수로 출정, 충주를 통해 서울로 진격해 조선의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 등을 포로로 잡았던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에 있는 개인사찰이다.

이번에 공개된 이순신 장군의 친필은 이 사찰에서 대대로 소중하게 보관돼 왔던 것이다

 

**

萬里江山筆下華.....만리강산이 붓 아래 화려하더니,

空林寂寂鳥無影.....텅 빈 숲엔 새 그림자도 없구나,

桃花依舊年年在.....복숭아 꽃은 여전히 해마다 피는데,

雲不行兮草雨重.....구름이 떠나지 않음이여, 풀엔 비만 겹겹이 내린다

 

***

신문엔 어떤 경위로 위 시가 일본에 전해지는지 설명이 없다..

첫귀절을 봐서는 왜군을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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