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을 보러 가는데..길이 엄청 막힌다.. 결국 10여분 지나 들어 갔더니.. 조자룡이 아두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적벽대전을 보고 나서 좀 실망햇다.. 삼국지를 수차례 읽고, 한때는 내가 영화감독이 되어 적벽을 감독 제작하는 꿈을 꿔보기도 했는데..
그 장대한 소재를 가지고 숱한 중국의 무협영화 수준으로 제작하였으니... 오우삼 감독이 너무 큰 것을 물엇다 할까?
성경에 버금가는 대를 잇는 베스트 셀러이고 게임으로도 빅히트를 쳤으니.. 삼국지 스토리야 상식에 속하여 생략하고..
유비.. 적벽대전 직전 유비는 50줄에 접어들며 유표와의 회식자리에서 유명한 "비육지탄"을 남기는 나
이..등장인물 캐스팅도 적절하다..
제갈량.. 27세의 젊은이로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가진 사려 깊은 사나이..금성
무 잘 어울린다..
장비.. 영화 속에서 주유가 방문햇을 때 글씨를 쓰고 있더라..나는 연의를 읽으면서 장비는 일자 무식으
로 생각햇는데.. 장비가 滅曺興漢(멸조흥한)인듯한 글씨를 쓰고 잇었는데..그 글씨체는 예서체였다.. 한나라 시대 글씨체다..해서체는 아직 등장하지 않을 때니..고증은 제대로 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장비가 장판교 다리에서 조조군을 저지하는데..영화에서는 웬 반사 방패를 사용하여 적을 저지한다.. 그 시대에 거울 같은 반사판을 방패 뒷면에 붙인다는 발상은 넌센스 같다.. 오히려 연의의 묘사가 그럴듯 햇을 것이다..
관우.. 트레이드 마트인 여포의 애마엿던 적토마를 어디다 두고 두발로 뒤어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특히 80근 언월도도 한번 휙 집어던지고 맨손으로 적의 창을 뺏어 싸우는 좀 무식한 캐릭터로 나
온다..물론 애들 가르치는 장면을 끼워 넣지만.. 초반부에는 역사나 연의에도 없는 생포당하기 직전의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아마 서양 관객을
위하여 특히 2부에서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주는 장면과 관련 시키는 복선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관우는 중국에서 신격화 된 캐릭터인데, 오우삼이 좀 격하시켯다할까?
손권.. 26세의 젊은이..제벌 2세로 곱게 자라 기업을 상속하자마자 큰 사건이 터지자 주전,화전의 상곡선
에서 고민한다.. 주유가 사냥을 데리고 나가 호랑이와 대결시키는 장면은 "300"이라는 스파르타 영화를 패러디한
느낌이 난다..
주유.. 오우삼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캐릭터.. 무예와 음악에 공히 조예가 깊은 인물.. 연의에서는 제갈량으로 인해 속좁고 성미급한 인물로 천시당햇으나, 이 영화에선 에이급 대접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도 주유는 연의보다는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캐릭터가 더 맞는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여 연회에서 악공이 틀리면 돌아봤다는 주유..미인과 살을 부비고 사는 럭셔리한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장병중 소도둑을 색출하는 장면에서 감녕의 부대를 산으로 구보를 시켜 진흙이 묻은
병사를 못찾게 만들어 병사를 단결시키는 장면은 초장왕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조조.. 그는 장단점을 6:4으로 가졌다.. 실용주의적 성격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유비와 다르다.. 사람을 쓸 때도 장점만 취하지..단점없는 사람만을 찾지 않앗다..(요즘 우리나라는 단점 없는 사
람만 찾느라 골머리를 썩는데, 그 대부분은 무능하다는 아이러니 속에 산다..)
적벽대전 전의 그의 장점은 신속..과감이었다.. 마치..롬멜의 기갑부대나 알렉산더의 기병대를 연상시키는 전격작전을 구사하였다.. 원소와 맞붙은 관도대전에서는 고전속에서 원소의 식량저장소인 오소를 전격 급습하여 불태우며
승기를 잡는 전략가였는데.. 형주를 취하고는 잔치를 즐기고 여색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다.. 연의에서나 역사에서도 조조가 소교를 취하려 했다는 근거는 없는데.. 오우삼이 누명을 씌우는 이유는 주유와 소교의 사랑을 극대화 하기 위함이 아닐까?
죽간과 종이.. 영화 속에서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항복 문서는 죽간이었다.. 헌데, 주유가 조조에게 보낸 답서은 종이였다..
종이의 발명은 후한 안제 시절 채륜이 발명하엿으니 후한 말이 배경인 영화에 종이가 등장하는 것은 맞는 고증이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 중국 사람이 만드는 무협성 단투극 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째든 사람들이 상상하는 역사적 장면을 구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겟지.. 전투장면보다는 스토리와 갈등으로 끌고 가면서 전투 장면은 적당히 그리고 스펙타클하게 가미되어야 성공한다.. 너무 많이 벗는 장면으로 일관하면 포르노처럼 천박해진다..
일본의 원래 수도는 천황이 거하였던 쿄토[京都]였다. 이 일대를 키나이[畿內] 지역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경기와 비슷하다. 수도를 군사적으로 방위하기 위하여 아스카시대에서 나라 시대에 걸쳐서 키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간선도로에 관문을 세운다.
그리하여 쿄토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 3개의 관문, 스즈카관[鈴鹿?], 후와관[不破?], 아라치관[愛??]을 세우고 3개 관문을 산노세키라고 불렀는데, 이 관문들의 서쪽인 쿄토 쪽이 관서, 즉 칸사이지역이 되었는데, 행정구역으로 따지자면 쿄토부, 오사카부, 시가현,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이 여기에 속한다.
나라의 도따이지를 관람한 후 길을 달려 오사카현 사카이시에 도착하엿다.. 대망이란 소설이 생각 낫다.. 사카이항구의 상인들이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등을 지원하면서 무역상권을 확보하는 이야기도 곁다리로 나온다.. 그 사카이에 온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카이의 상인들을 통하여 조총을 구입하고 곧 그 효능을 알아 채고 조총병 3000명을 양성한다.. 후일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이 양성한 기마병과 맞붙을 때.. 조총병 3천명을 3열 횡대로 배치하고 1열 쏘고 앉아 장전하는 동안 2열, 3열이 번갈아 쏘는 소위 "연속사 격"의 개념을 세계최초로 구상하여 실전에 적용하여 대승을 거두고 전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는다..
당시 조총의 유효거리라 해야 100미터 남짓.. 기마대가 100미타를 질주하여 접근하는 시간 10초이내.. 그사이에 접근막으려면 연속사격에 의한 집중포화 밖에 없다.. 이 연속사격의 개념은 영국이 소총으로 줄루족과 싸웠던 19세기에나 생긴 개념이고.. 기관총의 발명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오다는 그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전국을 통일하였다.. 이를 뒷받침한 통일의 기수들은 사카이의 상인들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 조총의 총구가 그후엔 토요토미에 의하여 우리에게 겨누어졌다는 역사도 곁들여 생각한다. 전국통일을 앞두고 부하의 배신으로 오다가 사망한후 정권을 잡은 토요토미는 사카이 부근에 오사카성을 짓고 근거지로 삼는다.. 그 이후 오사카는 일본의 핵심도시가 되었다..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부페로 하였다.. 음식 맛으로 따지면.. 중국은 불맛이고.. 일본은 칼맛이고.. 한국은 손맛이라는데..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제대로 회맛을 보지 못하였다.. 일본은 회의 천국이라는데.. 하지만, 일본에는 회떠주는 집은 없다.. 기후도 습하고 위생관념이 철저하여 요리집에서만 회를 먹을 수 잇단다.. 또한 음식낭비도 없다.. 조금씩 주고..추가시에는 꼭 요금을 받는다..
일본에서 회, 스시가 유명해진 이유..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675년 천무천왕이 육식금지령을 내렸다..소, 돼지, 닭까지..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생선을 먹게 되었다는... 육식금지는 메이지 유신때 풀렸다..
다음날 창밖을 보니 항만과 동상이보여 산책길에 찾아 나섰다.. 방황끝에 해변에 도착하였다.. 무슨 상인지..알지 못하고...막연히 일본 천황이나 귀족의 동상인줄 알앗는데..
호텔에 돌아와 관광책자를 보다보니 그 동상이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용녀신상이란다.. 그리고 그곳이 사카이 구항이라는 것도 알앗다.. 처음 동상은 수족관 앞에 세웠다가 평성12년에 다시 이곳에 복원하였단다.. 우리는 용왕을 섬기는데 여기는 용녀신을 섬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