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마을가는 길목..동네를 우회하도록 표시되어 있다..

포장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금계 쪽에서 쓸데없이 빙둘러 왔다며 우리더러 지름길로 창원마을로 가란다..

길을 만들는데도 개설자의 의도가 있기마련이므로 코스표시대로 걷기로했다..

이것이 오늘의 관전포인트였다..

 

 

이제 서서히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휴게소에 각양각색의 소원지들이 붙었다..

 

 

그중 가작...귀여운 것들..

 

 

 

매달린 자장구나 팔베게한 동자승이나 오늘 길처럼 여유롭다..

 

 

드디어 오늘의 하일라이트..

앞전에 만난 사람들 금계-창원을 거쳐 오느라 이풍광을 등에 지고 오느라 힘들었겠다..

이코스는 매동-금계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천왕산 바라기를 해야 제맛이 난다..

 

 

저멀리 지리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의 근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원한 길이다..

 

 

천섬들어가는 큰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그러나, 어찌 두류산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음만 하리오..

 

원두막에 앉아 천왕봉을 바라보다..문득 남명선생의 시한수가 생각났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이라..지리산 천왕봉의 소리를 어찌 중생들이 알아 듣겠는가..

 

 

천왕봉 1915m..원두막에 앉아 말없이 천왕봉과 독대한다..

도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바라보다가 천왕봉과 하나가 되었다..

 

 

동행인은 천왕봉을 올라야겠다고 다짐하건만, 천왕봉과 하나된 지금 굳이 오름을 기약할 필요가 없네..

 

 

지리산..어머니같이 넉넉한 품안의 길로 나그네가 간다..

마치 탯줄을 따라가듯..

 

 

남녁의 빛살도 봄빛을 띄엇다..

파릇함이 피어오른다..

 

 

이제 창원마을 윗당산을 지나 금계마을로 간다..

 

 

 

길인지 논뚝인지 가는 사람이 없으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 속의 길 끝에 지리산이 있다..

 

 

봄날 어디엔들 방초가 없으리요마는  

옥황상제가 사는 곳(帝居) 가까이 있는 천왕봉만을 사랑했네   (남명 조식)


 

 

 

 

 

 

금계마을 파전 간판을 보다 식욕이 동한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 마을 초입에 대기하던 마천콜택시를 타고 (1만원) 차 세워둔 곳으로 간다..

인월면 소재지로 가서 두부전골을 시켰는데 밑반찬들을 보니 산골 인심을 보여준다..

 

오늘 천왕봉을 바라보며 걷다가 하나된 즐거운 날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10시 30분경 인월면 장항마을 입구 장항교 부근에 차를 세운다..

둘레길 걷기 지도를 보며 오늘 코스를 확인한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 - 금계마을) 19km 중 인월 - 장항마을 7km를 제외한 장항교- 금계마을까지 12km걷는다..

 

 

지리산 둘레길은 포장길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한참을 포장길을 걸어서야 산길의 흙을 밟는다..

 

 

매동마을을 지나 전망좋은 팬션 앞마당에 앉아 주인이 건네주는 오징어를 입에 물고 천왕봉을 바라본다..

 

 

앞산 어깨너머로 천왕봉이 보인다..

 

 

 

햇살이 따가워 다운페딩을 벗어부치고..아이스께끼를 핥으며 룰루랄라 길을 간다..

 

 

유장한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절기엔 출입을 자제시켰다가 3월부터 출입을 재개하였단다..

 

 

이런 풍광에선 포장길이라도 용서된다..

 

 

 

요즘 3코스 구간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물만 들고가서 막걸리나 파전..식사는 사서 먹는게 좋을 것 같다..

상황소류지 부근의 이 집에서 지리산 고로쇠물을 샀다..

 

 

 

 

맥주캔은 바람개비로 재탄생하여 바람따라 소리높여 노래한다..

 

 

다랑이 논은 빈 들판으로도 멋잇다..

 

 

상황마을을 뒤로 하고 등구재로 오른다..

 

 

등구재..중턱에 간판..등구재 오도사..한의과 시험보느라 열공중..면회사절이란다..

 

 

 

등구재까지 오르막 길이라면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

 

 

이 계단을 지나면 창원마을이다..

천왕봉은 아직 알현을 허락하지 않으시네..

 

 

스페인 여행시 받앗던 그림..

우연히 책장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대서양의 바람 속의 등대..파티마의 노을..노란 해바라기 들판..론다의 계곡..카사블랑카..말라가의 해변..

그라나다의 궁전..툴레도의 미로..사라고사의 성당..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등이 향수 냄새 처럼 스쳐가고..

주마등이 되어 영사된다..

아..아름다운 한 때였지..

터키 가자던 약속은 어찌 될런지..

 

 

마지막날 니치난 해안도로로 구경하며 미야자키공항으로 간다..

니치난 해변은 일본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마치 울릉도 일주도로를 달리는 느낌..

 

 

전망 휴계소에서 내려 해안을 조망한다..

해안 바위가 빨래판의 결같다..

그래서 지명이 도깨비 빨래판이다..

 

 

500만년 전 신생대 3기 때 만들어진 것..
바닷속 깊은 곳의 압력과 지열로 불어난 진흙과 모래가 바위처럼 굳었다.. 이후 오랜 융기 작용 끝에 해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 바위가 파도에 다듬어지면서 마치 빨래판처럼 일정한 간격과 결을 이뤘단다.

 

그곳에도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시간만 있으면 온종일 걸으면 좋겠구만..

 

 

이곳이 일본의 길 100선에 들어있다는 표지..

 

 

그렇게 태평양을 바라본다..

구름걷히고 동양3국이 유럽연합처럼 오손도손 살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공항 식당에서 간단한 초밥 주문..

식당에 손님 글씨거는 것도 비슷..

 

미야자키의 축제행렬..

걷기 여행으로 방문하여 요기 조기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지만, 일본의 길은 소로도 거의 포장길이라는 사실..명심하시라..

 

 

 

일본 미야자키에 갔다...도리깨질이 주목적..

일본 규슈 동남단..미야자키공항에 내려 버스로 1시간 거리 니치난(日南) 산속의 리조트..

따뜻한 날씨와 푸른 잔디를 기대하고 갔는데..이건 우리나라와 같은 풍경..

 

 

 

비행기로 1시간 10분 거리..시차도 없고..기대 부풀었는데...

설상가상..아니 누런 잔디위에 우후 진창이라...도리깨질은 뒤땅만 푹푹 파느라 고생만...

 

 

 

그나마 나를 위로하는 건 홍매..

 

 

 

오후에 도착하여 후반 나인에 접어들자 흐린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 추운데..해는 기울고..

그 어둠 속에 빛나는 멋진 매화 나무..밝은 다음날의 만남을 기약한다..

 

 

 

니치난리조트는 산속에  고립무원의 성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예 "붉은 후지산"의 그림으로 일본을 느껴본다..

19C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림...요즘 한류 처럼 일류(日流)가 불던 시절도 있었단다..

 

맘에 드는 것은 노천온천..

훌러덩 벗고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산천을 바라보며 앉았노라니 아래는 따뜻하고 머리는 서늘하여 코구녕이 뻥 뚫린듯 상쾌하다..

 

 

 

외국에서의 아침 산보는 내가 즐기는 메뉴..

이곳 새벽에서 바라보는 안개와 산의 로망스는 환상적..

 

 

 

 

 

산보를 마치고 다시 게다와 유까다차림으로 노천탕으로..

따뜻한 물속에서 앉아 바라보는 산 풍광에 감탄사만 연발..

벚꽃필때 달마저 찾아오거든 탕속에서 미인에게 등을 맡끼고  사케를 한잔하면서 시한 수 읊는다면...카~!~

 

 

다음날은 다시 길을 떠나 고바야시로 원정..

맑은 날 한국이 보였다는 뻥의 전설을 간직한 한국악이 보이는 도리깨 터전에 삼나무의 기상이 멋지다.

 

 

 

날씨가 좋았다..비 소식이 전날 밤으로 당겨져 햇빛도 감상할 정도로 3일 중 제일 나았다..

 

 

 

3일째..다시 첫날 도리깨터에서 티오프..

역시나 진창에 데꾸보꾸에 짜쯩나는 도리깨질은 뒷전이고..눈은 매화를 찾는다..

 

 

 

지난번에 어둠 속에서 헤어진 백매..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최백호가 부르는 노래속에 나오는 마담처럼..

살짝 전성기가 지났으나 기품과 향기는 그대로인 미시족..

 

 

 

누가 물었다..사꾸라의 뜻은?

벚꽃..아니다..

그럼??  사이비..

 

벚꽃은 한일간에 신경전의 대상이지만..매화는 한중일 삼국이 다 사랑하는 꽃이다..

 

 

 

            나막신을 신고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을 쫒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앉아 일어 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치고 달 그림자 옷에 닿네                         - 퇴계-

 

 

 

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담 모퉁이의 매화 몇 가지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나니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누나.               - 왕안석-

 

 

 

 

오신다 약속한 님 왜 이리 늦으실까

뜰에 핀 매화는 다 지려 하는데

문득 나뭇가지에 까치 소리 들리기에

행여 님이 올까 거울보고 화장하네              -이옥봉-

 

 

                                                                

 

 

홍매가 벽산을 향해 팔을 벌린다..

저를 안아주세요..

free hug..

안아주어 상처를 치유받을 사람은 나라네..

 

 

 

정말 탄스런 홍매다..

 

東風吹かば

匂ひを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동풍이 불어오면,

향기가 전해오네.

매화야! 주인이 없어도

봄을 잊지 말거라.

 

 

 

901년 일본 헤이안 시대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가 좌천되어 지방으로 떠날때

자신이 키우던 홍매에게 들려주었다던 시..

 

동풍이 부는 봄이 오면 향기를 실어 보내다오

주인이 떠나잇더라도 봄날을 잊지 말라..

애뜻한 심정을 읊은 시..

 

 

 

   홍매에 취한 라운딩.

   공도 잊고  사람도 잊었다..

 

 

 

 

 

 

다음 홀엔 동백아가씨가 가득..

 

 

 

오동도의 동백..선운사의 동백..동백섬의 동백..니치난의 동백..

붉음이 뚝뚝 떨어진다..

 

 

 

 

붉음은 정열이다..노랑은 순정이다..초록은 순리다..

동백의 속삭임을 들어본다..

 

 

 

 

바람불어 설운 날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저 동백꼿을 주워 티옆에 놓고 백구를 날린다..

장쾌하게 나는 백구..내 마음도 시원하다..

 

 

 

 

그렇게 니치난의 꽃에 취해 하루를 보낸다..

도리깨질은 핑계일뿐..

 

 

 

솔직히 말하면 겨울골프여행이라면 일본은 비추다..

잔디 푸르고 날씨 따뜻한 태국, 베트남, 필리핀이 더 낫다..

하지만, 미야자키엔 한국 도리깨쟁이로 넘처난다..

나중에 공항에서 도리깨의 무게로 비행기가 뜰까 걱정이 될 정도로..

 

 

 

도리깨질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밥을 먹는데..멀리 니치난 해안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코스라는 말은 맞기는 한데...너무 멀다...ㅋ

 

 

 

더 가까이에는 계류가 흐르고..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삼림테라피로 유명한 계곡을 걸었으면 좋앗을텐데..

 

 

 

최근에 일본 전국시대 배경 드라마를 보느라..친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벽화..

사무라이의 삶..선적 명상.. 꽃의 감상..어느 정도 공통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떨어져 사라지는 꽃인가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노라니
꽃피는 때가 귀한 줄 알겠구나

 

꽃을 바라보고 꽃의 마음을 느끼고 스스로 꽃처럼 피어나는 것..

그것이 삶과 죽음을 즐기는 인생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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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의 대웅보전의 글씨는 통일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는 설이 잇다..

일설에는 공민왕의 글씨라기도 한다..

 

 

 

그 아래 대광보전의 글씨는 표암 강세황이 76세에 쓴 글씨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40도 못되던 시대에 61세에 첫 벼슬을 시작한 대기만만성의 인물..

그 이전 몇십년을 가난 속에서 뒷바라지하던 부인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죽은뒤에야 벼슬길이 고속도로처럼 뜷렸다는 아이러니..

한성판윤의 벼슬까지 거치고 81세에 사망한 시, 서, 화 삼절의 인물...김홍도의 스승..

프랑스의 늙깍이 화가 앙리 루소도 따라오지 못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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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심은 밀양密陽 출신 기생이다.

서울로 뽑혀서 왔는데 검무 솜씨가 당세에 으뜸이었다.

 

동국진체로 유명한 白下 윤순尹淳이 운심에게 마음을 두었는데, 백하는 글씨를 잘 썼던지라 운심에게 장난삼아 말하였다.


“너의 칼춤이 나에게 초서(草書)의 원리를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


운심도 평소에 공의 글씨를 사모하던 터라 한 점 얻어 가보로 간직하기를 원하니, 공은 써 주겠다고 허락은 하였지만 바로 써 주지는 않았다.


어느 가을비 내리는 날 뜰 가득히 떨어진 낙엽들을 바라보면서 백하는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운심이 홀연히 술을 가지고 와서 권주가를 불러 공에게 권하였다.

백하는 흔쾌히 마시고 약간 취하자 자꾸만 붓과 벼루를 힐끗거렸다.

운심은 재빨리 비단 치마를 벗어 앞에 펼쳐 놓으며 말했다.

“공께서는 지난날의 허락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백하는 단숨에 붓을 휘둘러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쓰고 나서 스스로도 만족해하였다.

 
백하는 운심에게 깊이 간직하고 꺼내서 남에게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뒤 자신이 취하여 우연히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에게 이 일을 발설하였다.


풍원군이 운심을 불러 물으니, 운심은 감히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고 글씨는 마침내 풍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운심은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한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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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내성 대동문 부근 대동강변 연광정

위 정자에 천하제일강산이란 편액이 붙엇다..

 

일설에는 미불의 석각서 탁본을 집자하여 만들었다가 강(江)자를 못 구해 마침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부탁하여 "강"자를 쓰게하였으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견해는  명나라의 주지번 (朱之蕃) 이 조선에 사신으로 와 연광정에 올랐는데 그 풍광에 놀라 무릎을 치며 '천하제일강산' 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는 스스로 현판을 썼서 붙였는데, 그뒤 병자호란때 조선을 쳐들어와 인조에게 항복을 받고 돌아가던 청나라황제가 여기에 들렀다가 중국에도 명승이 있는데 어찌 여기가 천하제일일 수 있느냐고 그 현판을 부숴버리라고 명했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 풍광도 아름답거니와 글씨 또한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지라 청 황제는 '천하' 두 글자만 톱질해 없애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천하" 두자를 다시 써서 붙였기에 천하와 제일강산이 부자연스럽다고 평하기도 한다..

 

어느 설이 옳든 사연이 있는 글씨는 매력이 잇다..

연애담 없는 미인이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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