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구불길 걷기에 나섰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전주-군산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니 1시간 만에 옥산면사무소에 당도..

차를 파킹해놓고 저수지를 향해 걷는데 한줄기 애기 해바라기가 환영하네..

 

 

옥산 저수지  등산로 안내도 앞에 커피봉사하는 미모의 등산점 주인에게 커피를 한잔 얻어 먹으니 컨디션 충전 완료..

 

 

제방 입구에 등나무 물소들이 풀을 뜯고..

 

 

거북이와 토끼가 즐거워하는 것은

경쟁없이 자신의 속도로 코스를 즐기라는 계시런가..

 

 

오늘의 코스는 저수지를 일주하는 것인데..우선 제방길을 따라 우측으로 간다..

 

 

일단 그늘이 맘에 든다..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

반쯤 입고 벗어 섹시한 여인의 모습같고..

 

 

아니 가끔은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머리는 수건으로 감아 올리고 와인 한잔이라도 기울이는 뇌쇄적인 모습으로도 보이고,,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천석고황의 고질병은 치료약이 죽림인가? 대나무숲을 만나니 내눈에서 빛이 난다..

 

 

오..이것은 맥문동..보랏빛 매혹의 자태..

 

그대 모습은 보라빛처럼
살며시 다가오네
예쁜 두눈엔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네

 

 

이 길은 질문을 좋아 한다..

가파른 길이냐 평탄한 길이냐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그것을 이름하여 인연이라 한다..

 

 

가파른 길을 선택했다..

그 인연은 청암산 정상에서 호수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멋진 인연이 고마울뿐..

 

 

뒤를 돌아서니 서해 바다가 윙크를 보내네..

 

 

 

 

청암산에서 내려오니 길이 또 질문한다

수변을 따라 가늘고 길게 갈래.. 산길을 따라 굻고 짧게 갈래...

평소의 지론대로 가늘고 긴 물가 길을 선택햇다..

 

 

습지체험데크에 달개비가 쪽빛을 뽐내고..

 

 

호수는 허공으로 승천하였네..

 

 

호수 중간 쯤 인적 드믄 이 자리에 누워 토막잠을 청한다..

물론 모기에게 자릿세를 좀 바쳤지만..

 

 

큰나무의 얼굴..

이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이 나라를 화목하게 만들어 준다는..그런 전설은 없지만..

 

 

갑자기 분위기는 와호장룡의 무대로 바뀐다..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련하기 좋은 곳이로다..

 

 

참 좋은 길이다..아득한 숲길도 가고..

 

 

방심을 경계하듯 대쪽 같은 기개로 걷어야 할 것 같은 길이 틈틈히 나타나고..

 

 

연륜이 묻어나는 텅빔 속에 느껴지는 충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길의 마지막 질문은 다소 극단적이다..

하지만 이미 중독되었는데 독배라도 마실 참이다..

그러나 독배를 내릴 산신령은 없다..

마치 둔주봉의 피실 길을 연상시키듯 물가 벼랑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걷지 않앗다면 후회하였을 것이다..

참 아름다운 수변길..

짧고 빠른 길..지난 40년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 가늘고 긴 이 수변길에서 위로를 받았다..

 

 

배롱나무 숲..

선비들의 처소에 즐겨 심었다는 붉은 꽃..

100일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한결같이 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공부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마치 껍질을 벗겨 놓은 듯 매끄러운 줄기에게 청렴함을 배우고..

변함없는 붉은 꽃에서 일편단심을 새긴다..

 

 

<길평>

오늘의 코스는 아래 중앙에서 우측 노란길을 거치는 것이 핵심..14KM

청암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가늘고 긴 수변길에서의 여유..충분한 그늘..A급 코스..

 

 

이곳은 식당이 없으니 미리 간식거리와 물을 충분히 준비해서 걸어야 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찾아 간 곳은 옥산 파출소 앞 향촌국수

멸치국수를 기다리며 먹는 만두도 맛잇고..멸치국물에 말은 국수도 3천원의 착한 가격..

 

 

오늘 같은 날이면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임도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에서 사정리로 넘어가는 임도를 걷는다..

우선 사정리 종점유원지에 집결..

 

 

이 개울은 벌곡천으로 갑천의 상류..

이 맑은 물 피래미를 잡아 도리뱅뱅이를 해 먹기로 했다..

 

 

어항을 사서 떡밥과 된장을 넣고..

 

 

요렇게 돌틈에 신주 모시듯 모셔놓고..

 

 

총 4개의 어항을 담그고..

돈을 1천원씩 묻고 내기 한다..잡는 고기수 맞추기..40마리, 80마리, 85마리, 100마리 135마리..

 

 

요런 복선까지 깔고서야 68번도로을 따라가다가 거먹바위휴게소, 덕암팜스테이 마을을 지나자 우측 양촌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따라 덕곡리로 이동하여 좌측 호화주택 앞 삼거리에서 우측 소로로 들어가 임도 걷기를 시작한다..

입구에 분홍 꽃..꽃범의 꼬리..이름도 이쁘네..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소나무 밑으로 우리는 간다..

 

 

노란 마타리가 환영하고..

이쯤에선가 1차 휴식..

동행이 지난 주 아까 그 개울에서 어항으로 잡은 피래미 40마리를 장어양념으로 만든 도리뱅뱅이를 안주로 막걸리를 한잔..

기분이 오른다..

 

 

기분이 업되니 길도 덩달아 은근해진다..

 

 

적당히 구름낀 걷기 좋은 날..

전날 일기예보로는 비 온다고 했는데..비는 커녕 갈수록 화창해진다..

여름 일기 예보 대충 믿어라...

 

 

초록의 나라로 초대받은 기분..

이 아니 좋으랴..

 

 

"산이 푸르니 꽃이 더욱 붉다(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는 두보의 시가 거짓은 아니로구나..

 

 

길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유장한 곳에서 듣는 스마트폰 뮤직 "스마일 어게인"

그래 웃어서 남주나..

 

 

흰 꽃과도 눈인사를 나누고 간다..

 

 

오늘의 유일한 갈림길에서는 잠시 일행을 기다리고..

왼쪽으로 간다..우측은 출발지점 쪽으로 간다..

 

 

깊은 산속에서 당랑권을 연마중인 당선생..

지나는 객은 안중에 없네..

 

 

오동잎 한창때다..

추3월 지나야 한잎 두잎 떨어질 테니..

 

 

개울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맞춰 붉은 꽃이 노래하는 것은

가을 사랑이다..

 

 

단풍이 들면 찾아 오고 낙엽지면 떠나간다는 그대는.. 가을 아니던가..

 

 

사정리 임도 종점에 도착하여 개울물에 다시 풍덩..

 

 

여름을 열정적으로 보낸다..

 

 

출발전 우리 어항에 이렇게 피래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떠내려 가버리고 말았다는 허탈한 이야기..

 

 

그래도 맑고 시원한 물이 잇어 즐겁게 8월을 보낸다..

 

 

햇님도 8월의 끝자락을 요즘 잘가는 은빛으로 도금해주며 멋지게 환송한다..

 

 

나도 내방식으로 8월을 전송한다..

8월아! 잘 가거라...

 

평상에서 백숙을 기다리다 조급한 마음에 이 김치 저 김치 집적이며 막걸리를 한잔한다..

 

 

붉은 8월이 그렇게 저물어 간다..

 

<길평>

코스 :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 사정리 약14km

         완만한 오르막..물이 없으므로 물 준비..

평가 : 비포장..적당한 거리...A급..

 

 

추사가 다산에게

추사가 쓴 글씨의 일부.

 

 

다산이 추사와 함께 다산의 제자인 황상(1788~1870)이 머문 산방을 찾아 하룻밤을 지내는데,

황상은 두 사람에게 조로 지은 거친 밥에 아욱국을 끓여 아침으로 내놓는다.

 

청빈한 생활과 정성에 감동한 다산이  

남원노규조절(南園露葵朝折)
동곡황량야용(東谷黃梁夜용)

남쪽 밭 이슬 젖은 아욱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 누른 조를 밤에 찧네’는 시를 짓고

추사가 이 시구 중 露葵와 黃粱에다 社를 붙여 글을 썼다. 이는 ‘고결한 선비의 거처’라는 뜻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다산과 추사의 나이 차이나 유배생활 시기 등에 비추어 두사람이 함께 황상의 집을 방문한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훗날 황상의 청빈생활을 전해들은 추사가 이에 감동해서 다산의 제자에게 '노규황량사'를 써 주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 다산과 추사

 

다산과 추사는 24년의 나이 차이가 나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와추사가 동갑내기여서 아들처럼 여길 연령이다.

다산초당에서 다산에게 시를 배우고 글을 배웠던 제자 초의대사와 추사는 동갑이다..

추사가 다산에게 주역에 관하여 토론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고, 추사가 보낸 고려청자에 심은 수선화를 받은 다산이 쓴 시가 전한다.

 

<수선화>

 

신선의 풍채나 도사의 골격 같은 수선화가                          仙風道骨水仙花
30년을 지나서 나의 집에 이르렀다.                                  三十年過到我家
복암 이기양이 옛날 사신길에 가지고 왔었는데                    茯老曾携使車至
추사가 이제 대동강가 아문에서 옮기었다오.                       秋史今移浿水衙
외딴 마을 동떨어진 골짝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서             窮村絶峽少所見
일찍이 없었던 것 얻었기에 다투어 떠들썩하다.                   得未曾有爭喧譁
어린 손자는 처음에 억센 부추잎에 비유하더니                    穉孫初擬薤勁拔
어린 여종은 도리어 일찍 싹튼 마늘싹이라며 놀란다.            小婢翻驚蒜早芽
흰 꽃과 푸른 잎새 서로 마주 서 있으니                              縞衣靑相對立
옥 같은 골격 향그런 살결에서 향내가 절로 풍기는데             玉骨香肌猶自浥
맑은 물 한 사발과 바둑알 두어 개라                                  淸水一盌碁數枚
티끌조차 섞이지 않았으니 무엇을 마시는지.……                  微塵不雜何所吸 

   

 

**다산과 황상

그들 사제의 관계는 애뜻하다..

강진에 유배갔던 초기 주막에 임시 거쳐할 때 한양의 유명한 선생님 귀양왔다는 사실을 알고 15살의 황상이 찾아왔다고 한다.
황상이 글을 배운지 7일만에 다산 선생은 한 권의 책을 주었는데...
이 때, 제자 황상은 책을 받기를 꺼리며, 자신은 머리도 좋지 않고, 융통성도 없으며, 잘 배우지도 못한다며 걱정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다산선생은 편지 한통을 써주었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단점)을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첫째 ,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은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 , 글 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은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 , 이해력이 빠른 병통은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 데 있다.

이 가르침을 받은 황상은 말씀을 평생 잊을까 두려워 하며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학자이자 시인으로 성장한 황상..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난 후 가야산 백적동에 은거하며 다산초당(茶山艸堂)과 같은 원림인 일속산방(一粟山房)을 일궈냈다.

다산은 황상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에게 소식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토로할 정도였다.

이미 황상의 나이도 48세에 이르고, 정약용은 74세의 노인이 되어서 황상은 떠나간 스승을 마냥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스승을 뵙고자 찾아 나선다. 스승의 회혼례 축하와 죽기 전에 꼭 한번 뵈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열흘을 걷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한 것이다.

18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꿈 같은 해후를 만끽하고 황상은 다시 강진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귀향 중에 스승의 부음을 듣는다. 그는 길을 되돌려 마재로 돌아오고 상을 치른 후 강진으로 돌아간다.

후에 스승의 자제인 정학연 형제와 평생 의지하며 살았다.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 끝에서..  (0) 2011.08.30
세종대왕의 친필..  (0) 2011.08.30
선필  (0) 2011.08.27
제사조차 몸소 행하지 못하니..  (0) 2011.08.26
넘치는 것을 경계하여...  (0) 2011.08.26

 선필이라고 모두 명필은 아니다.

다만 독특한 체취를 띠고 있다.

선승들의 글씨는 법첩이나 교본에서 벗어나 있거나. 기예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있어도

걸림없이 자연스럽게 휘갈긴 멋과 맛과 기운이 살아 있어 볼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근대 불교의 중흥조 경허..

 天下覓醫人 灸猪左膊上 (천하멱의인 구저좌박상)

 천하의 명의를 찾았더니 돼지 왼쪽 어깨에 뜸을 뜨네.

 

글씨보다도 시에 더 관심이 간다..

원시는 이렇다..

 

懷州牛喫草(회주우끽초)
益州馬腹脹(익주마복창)
天下覓醫人(천하멱의인)
灸猪左膊上(구저좌박상)


회주 땅 소가 풀을 뜯어 먹는데

익주 땅 말의 배가 터질듯 불러

천하의 이름 난 의사를 찾았더니
돼지 왼쪽 어깨에 뜸을 떠주더라

 

당나라 두순선사의 계송..

무슨 뜻인줄 알겠는가?

뱁새가 대붕의 뜻을 다 짐작하려면 가랭이 찢어져 죽는다..ㅎㅎ

 

위 글씨는 경허의 무애행처럼 행서도 거칠 것이 없구나..

 

만공의 즉심시불

경허의 제자..허벅지 살이라도 베어 내어 시봉하고 싶다던 제자..

총독부 전국 주지회의에서 일갈의 사자후를 품던 기개는 그 스승에 그제자..

어째 글씨는 백범의 총알체를 연상케한다..

 

 

경봉 선사의 글씨

달마도를 그리고 뭐라 썼는데 해득하기 어렵다..

 

궁리 끝에 알아낸 것은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지허노호지  불허노호회

 

노호가 깨달음은 인정하지만 알음알이를 내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뱁새가 대붕의 뜻을 알려면 머리가 터진다..

한번 터져 볼까?

노호란 늙은 오랑캐라는 뜻이니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를 이름이다..

이글의 원전은 참선 공안집 무문관 9측이다..

 

흥양 양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대통지승불은 십겁의 오랜 세월을 좌선도량에서 공부하고도 불법이 나타나지 않아 성불을 못했다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양 선사가 말하였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스님이 말하였다.

“이미 도량에 앉았는데 무엇 때문에 불도를 이루지 못했습니까?”

양 선사가 말하였다.

“그가 성불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공안 아래 무문이 평창하기를,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凡夫若知, 卽是聖人. 聖人若會, 卽是凡夫.

노호는 다만 반야의 지혜로 깨달은 것은 인정하지만 알음알이를 내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범부도 깨달으면 곧 성인이라하고 성인도 알음알이를 내면 바로 범부인 것이다.

 

이어 송(頌)을 붙이되

몸을 가다듬음이 마음 깨침만 하겠는가

마음이 요득하면 몸에 근심 없는 것을

만약 몸과 마음이 더불어 요득하다면

신선이 무엇 하러 고관대작을 찾겠는가?

더 궁금하신가? 그러면 무산본각 저 무문관 강설을 보면 임제선사의 우는 애기 젖주며 달래는 듯한 자세한 설법이 나온다..

 

 

 

성철의 불..

5공시절..명실불상부..언행불일치의 시대..

이주일이 나와서 뭔가를 보여드린다면서 오리걸음을 걷고, 얼굴이 아니고 마음이라 외치며 웃겻지만..

모두 따라 웃을 뿐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표어로 눈을 가리고 마음보다는 돈을 쫓아 다녔던 시절..

산속의 한 선승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일갈한다..

너무 당연한 한마디에 사람들은 한 바가지 찬물을 마신양 시원해햇다..

물론 곧 잊고 갈증에 시달렸지만..

 

그렇게 간결한 그의 법어는 글씨도 간결하다..佛..부처..그 한마디..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대왕의 친필..  (0) 2011.08.30
추사가 다산에게  (0) 2011.08.28
제사조차 몸소 행하지 못하니..  (0) 2011.08.26
넘치는 것을 경계하여...  (0) 2011.08.26
여불비..  (0) 2011.08.26

 

 

스페인 문화산책 전시회에 갔다..

지난 6월 스페인 여행에 동행한 8명의 화가, 서예가, 사진작가 등의 작품 전시회..

 

위 제자는 같이 여행가기로 2년전부터 철석같이 약속하고 직전에 사정상 가지 못한 현강선생의 글씨.. 

 

 

화전 작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보지못한 달빛 속의 알함브라를 보고싶게 만드네..

 

 

 

한인수 작 모로코 인상

 

 

한인수 작 스페인 인상

알람브라 궁전의 분수 가는 길의 장면같다..

 

 

한인수 작

저 건물에 돈키호테 기념품을 샀었는데..

 

안경순 작 모로코 페스

염색공장 풍경..그림과 사진 상에서는 낭만적 색채로 보이나 실제론 지독한 악취로 괴로웠던 곳..

 

 

안경순 작 스페인 광장..

아름다운 세비야가 눈앞에 삼삼하다..

 

 

서재흥 작 황금의 탑..

세비야의 전성기..남미에서 들어오는 은금보화로 번성하던 유럽 최고의 도시엿던 시절의 상징

 

 

서재흥 작  구엘공원

여기는 바로셀로나 가우디의 구엘공원..동화 같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

한 사람의 상상력이 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서재흥 작 발코니 꽃길

누르끼리 코르도바 생각난다..유일하게 흰 건물에 붉은 꽃 그리고 종탑이 아름다운 길..

 

 

서제흥 작 라만차의 풍차

라만차의 광활한 평원의 언덕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박일미 작 구엘공원..

가우디의 구엘공원이 화가들에게 영감을 많이 준 모양이다..

 

 

박일미 작 소피라로렌과 해바라기..

세비야에서 지브로올터 가는 길에 펼쳐진 해바라기 들판을 형상화 했다..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를 느낌과 겹쳐 그린 모양이다..

 

 

박영선 작 해요바라기

그 들판에서의 느낌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네..

 

 

박영선 작 대성당..

스페인의 대성당을 얼마나 많이 갔던지..

장엄함에 놀라고 은금보화에 놀라고..

 

 

 

박선영 작 염원21 - I LOVE MIJAS

미하스의 인상을 그림으로 그렸다..당나귀 동상이 귀엽던 하얀 동네..

 

 

 

한인수 작 삽화

동행한 조성남 중구 문화원장께서 중도일보에  연재한 스페인 문화 산책에 삽입된 그림들.. 

 

 

이 모든 아름다운 여행에 대한 화전의 한마디..

예(藝)에서 노닐다..

 

단원 김홍도가 사천 이병연과 금강산을 유람한뒤 아름다운 금강산 그림이 탄생하였듯..

예에서 노닐다가 얻은 우아함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야자키 - 도깨비 빨래판  (0) 2012.02.28
미야자키 - 니치난의 꽃에 취하고..  (0) 2012.02.27
스페인을 떠나며  (0) 2011.07.22
스페인 - 구엘공원  (0) 2011.07.19
스페인 - 가우디, 성가족 성당  (0) 2011.07.16

 

유세차 병오 11월 을측 삭6일 갑오 국왕 금 감소고우

 

국왕 금(昑·영조의 이름)은 선빈(先嬪·돌아가신 어머니)의 영전에 고합니다.

아, 소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무술년(1718년) 이후로 세상 살 생각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사계절에 드리는 제사조차도 몸소 행하지 못하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영혼은 어두운 저승에서 반드시 서운해 하실 터입니다. 항상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한밤중에 눈물을 삼키곤 합니다

아, 오늘 이 술잔에 6년 동안 펴지 못했던 마음을 폅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지 2년째 되던 1726년 11월 6일 ‘숙빈최씨치제문초(淑嬪崔氏致祭文草)’를 직접 썼다

영조는 왕이라도 친어머니의 제사를 지내기도 어려웠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 일개 후궁의 제사를 직접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1670 ~1718)는 일곱 살에 궁에 들어와 숙종비 인현왕후 처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미천한 신분이었다. 1689년 인현왕후가 폐비된 후 왕비의 생일상을 차려놓고 혼자 눈물짓다가 숙종의 승은(承恩)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둘째 아들(영조)이 임금이 되기 전 49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무수리 충신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동생으로서 남인,노론, 소론의 당쟁 와중에 겨우 겨우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제사조차 변변히 올리지 못하더니 나중에는 아들 사도세자를 사사하는 아픔을 겪엇던 사나이..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사가 다산에게  (0) 2011.08.28
선필  (0) 2011.08.27
넘치는 것을 경계하여...  (0) 2011.08.26
여불비..  (0) 2011.08.26
다시 나가고 또 나가고...  (0) 2011.08.26

 

戒溢淸德(계일청덕)

넘치는 것을 경계해 맑은 덕을 지켜라..

 

노촌 이구영(老村 李九榮)

충북 제천 출신인 노촌은 명문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한학과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6·25전쟁 때 월북했다. 그 뒤 1958년 공작원으로 남파됐다가 검거돼 22년간 장기수로 복역 후 1980년 출소했다.

 

복역 17년 되던 해. 육사 교관이던 신영복씨가 1975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대전교도소에 들어왔다.

4년간 노촌과 한 방을 쓴 신영복씨는 그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는 한편 생활 모습과 생각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신영복 교수는 그의 저서 '강의'의 앞의 상당 부분을 '노촌과의 인연'에 할애했다. "당신이 그토록 괴로운 상황에서도 동료 재소자는 물론, 찾아오는 교도관에게까지 일일이 처방을 일러주고 침을 놓아주었는데 그 바늘은 언제나 국어사전 290쪽에 감춰 두었다. 선생님의 함자가 숫자로 '290'인 점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국어사전을 손에 들 때면 공연히 290쪽을 열어 선생님의 넉넉함을 떠올린다."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필  (0) 2011.08.27
제사조차 몸소 행하지 못하니..  (0) 2011.08.26
여불비..  (0) 2011.08.26
다시 나가고 또 나가고...  (0) 2011.08.26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0) 2011.08.26

 

 

 

1961년 '5·16'직전 박정희가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보낸 친필 서한 사본.

 

말미에

여불비 재배..

 

여불비는 餘不備禮로 예를 다 갖추지 못하였다는 뜻..

두서없이 써서 격식을 다 차리지 못했다는 편지글 상투어이지만 어째 저 편지에서는 상투어가 아닌 가장 진실한 3자같다..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사조차 몸소 행하지 못하니..  (0) 2011.08.26
넘치는 것을 경계하여...  (0) 2011.08.26
다시 나가고 또 나가고...  (0) 2011.08.26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0) 2011.08.26
모든 것을 공경하라..  (0) 2011.08.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