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가을 장마소리를 들으며 지나갔다.

뜨거운 햇살아래 찾으려 했던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을 9월에 온다.

노처녀 혼사날 등창난 격으로 벼르다 오는 날 아침에 엉뚱한 수다거리로 소진하다가 전용카메라를 놓고 왔다.

아풀사..

***

문의-미원- 청천을 지나는 길은 마지막 남은 국도 드라이브의 운치를 선사한다.

대야산 용추계곡 주차장은 이제 비수기로 접어들었다.

 

노늘 걸은 길은 주차장 - 용추폭포 - 월영대 - 밀재를 왕복하는 총 8km의 용추계곡길을 걷는다..

 

주차장에서 대야산장으로 가는 오솔길도 멋지다.

멀리 대야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간다..

 

대야산장 앞에서 계곡을 건너 오솔길을 따라 용추폭포로 간다..

 

8월 장마로 여름 시즌의 오염을 씻어내니 물이 끊없는 투명이다..

가는 여름은 늦게까지 계곡물에 들어가 환송하는  가족들도 맑아 보인다.

 

용추 비석이 보이는데, 폭포를 보려면 다시 계곡을 건너가야 한다.

 

하트가 선명한 용추..대야산의 심볼이다..

 

용추에서 월영대 가는 숲길은 정갈하다.

무한정 걸어도 좋은 길이다..

 

월영대 직전 삼거리..

우측으로 피아골을 지나 정상으로 가파르게 직진 코스..

좌측으로 월영대 - 밀재를 지나 완만하게, 길게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

좌측으로 간다..

 

삼거리에서 얼마 안가 월영대가 나온다.

아하..단소를 들고 왔어야 하는데..

저 바위에 올라 앉아 단소를 불면 폼날텐데..ㅎ

 

월영대 주변의 너럭바위로 옥같은 물이 흐른다..

금쟁반 위로 은구슬 구르는 듯하다고 할까??

 

이 계곡길의 장점..

밀재까지 4km 구간 내내 물소리 들으며 간다.

비가 내린 다음날 가면 금상첨화겠지..ㅎ

더구나, 그늘이 차일처럼 좋으니 여름에 걷기 좋은 길이다..

 

적당히 숨이 차는 오르막이 있으니, 정상 강박증 워커와도 타협이 가능하다...

 

오늘의 목적지 밀재에 앉아 간식을 먹고..

이제는 차가워진 바람에 속옷 젖을까 바람막이를 걸친다..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에 월영대 너럭바위에 섬섬옥발을 비단실같은 물결에 맡기고 

금년 여름과 작별한다..

아~ 다시 못올 2021년 여름이여..

잘가시게..ㅎ

 

 

 

버스는 대승사로 향한다..

일단 윤필암에서 점심공양을 하고..묘적암을 거쳐 사불산의 지명이 생긴 사불암에 올랐다가 대승사로 가는 코스..

 

 

윤필암과 대승사 갈림길 주차장에서 버스에 하차..

윤필암으로 오른다..

 

 

매발톱 꽃이 한창이다..

 

 

 

도착하여 또 공양간으로 직행..긴 줄을 기다리며 윤필암 관음보살님과 눈도장을 찍고..

 

 

점심공양은 부페식이다..

초파일이라고 잡채..전..참외.. 떡..푸짐하다..

도를 닦아도 비구니 스님들의 절은 먹여살리는 모성이 겉들여져 푸근하다..

 

 

 

풀밭위의 식사..

인상파 화가..마네의 작품못지 않게  아름다운 정경이다..

 

 

 고려 우왕시절 창건되엇다는 윤필암.. 수조에 웬 돌자라??

 전생에 잘생긴 중이 걸핏하면 남을 "네까짓게 뭘 알아?"하면서 타박하다가 파계하고 죽은뒤 윤회하여 박색의 여인되어

첫날밤에 소박맞고 비구니 중이 되어 절에 와서도 "네까짓게 무슨 공부야?"하면서 구박받다가 고생끝에 화두를 깨치고 전생을 아는 도인이 되었다는 선경스님의 일화가 전한단다...

 

 

윤필암 사불전에는 불상이 없고 유리창에 보이는 저 사불암 부처님을 경배한단다..

 

 

줌으로 당겨본 사불암..

 

 

이제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으로 간다..

 

 

 

머리 양쪽에 뿔모양의 상투가 특이한 마애 여래좌상..고려시대에 조성..

그러나 뿔은 아니고 연꽃 모양이란다..

저런 머리모습을 우리나라에서는 총각머리라 했는데..

총각여래이신가?

 

 

 

애기똥풀..아니 내가 전에 개명한 애기금풀 가득한 숲길을 걸어간다..

 

 

어디로 가느냐하면 묘적암이다..

 

려말 선초 고승 나옹선사가 처음 출가했다는 절이다..

 

 

 

일연여뢰(一然如雷)..인가?? 일묵여뢰(一默如雷)인가??

일묵여뢰로 봐야 맞는다...(2017. 8. 10. 수정)

침묵이 우뢰와 같다는 유마경의 유마거사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

 

서양 속담에도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는데,

부처님도 가끔 요상한 질문에는 양구(良久)로 대하셨단다..

바로 침묵..

 

 

묘적암에서도 사불암이 눈에 가득하다..  

 

 

 나옹화상 부도탑으로 가는 길..

 

 

행사 주관자 신정일 선생이 천남성을 들고 "첫남성"으로 잘못 들은 여자에 관한 유머 한마디로 여성들을 웃긴다..

독이 많은 천남성이 기억 속의 첫남성이나 비슷하긴 매한가지..ㅎ

 

 

 

여기는 나옹선사의 도력으로 요 샘물로 해인사의 불을 껐다는 일화를 간직한 약수터..

 

 

이제 윤필암에서 대승사로 넘어가는 오솔길을 걸어 사불암으로 간다

 

 

약 600미터 구간은 제법 가파르다..

 

 

누군가도 잠시 숨을 돌리며 돌탑을 쌓았나 보다..

 

 

 

신라시절 하늘에서 사불암이 보자기에 쌓여 이곳에 내려왔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세월에 마모되어 2군데만 형태가 남아 잇다..

사면불의 이름은 무엇일까?

서방 아미타불, 남방 석가모니불, 동방 약사여래불, 북방 미륵불.. 

 

 

사불암은 아직도 영험하게 생명을 품고 잇다..

이거야 말로 기적이다.!!

 

 

사불암에서 바라본 윤필암과 묘적암..

 

 

묘적암도 묘한 정적 속에 앉아있네..

 

 

다시 내려와 대승사로 간다..

 

 

그늘이 좋은 이길..아껴서 먹듯 걷는다..

 

 

 

 

 

대웅전 목각후불탱..보물..

원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던 것인데..1862년 화재로 대승사가 불탄뒤 중창하면서 가져다 후불탱으로 설치..

그러나, 부석사에서 반환을 요구하며 분쟁이 발생..1876년 부석사 조사전 수리비용을 대주고  화해했단다..

 

 

소녀의 정성어린 관불의식..이거이 불취어상(不取於相)의 지경이 아닌가?? 

 

 

 

이제 헌다회에서 보시하는 연꽃차를 한잔 마신다..

음..향기로운 초파일..

 

 

월인천강이 Moon River 아니겠는가?

 

 

이제 대승사 일주문을 나오면서 대승사 걷기를 마무리한다..

 

 

물레방아 돌듯이 오늘도 시간도..법륜도 돌아가겠쥐..

 

 

 

 

<오늘 걷기> 삼거리 주차장 - 윤필암- 마애여래좌상 -묘적암 - 윤필암 - 사불암 - 대승사- 삼거리 주차장

                약 6km

 

 

 

초파일에 봉암사 간다는 정보을 입수하고..앞뒤 재지 않고 신청했다..

연휴시작이라 서울행 고속도로도 지체되어 근 2시간 40분에 걸려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강남고속터미널에 당도..다시 9호선이냐 3호선이냐냐 헤깔리다가 3호선을 타고 9시 10분전에 집결장소 도착..그러나 다른 일행 기다리느라 서울에서 밤 9시 40분 경에야 버스 출발..

새벽 1시경에 문경부근 숙소에서 도착..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봉암사로 출발한다..

6시 30분까지 봉암사에 도착해야 아침공양이 가능하다기에..

 

 

그런데 새벽 5시 30분인데도 벌써 3km 직전에서 교통을 차단..셔틀버스로 가야한다..

날씨도 쌀쌀하여 셔틀버스 기다리기보다 걷기로 한다..거시기 땀나도록..

 

 

입구에 도착하여 둥근 희양산의 모습을 보자..마음이 조바심친다..

 

 

마음은 급하고..몸은 늦고..

이 지점에서 요 사진 찍으려고 내려서다 잔 자갈에 미끄러져 그대로 개천으로 2바퀴 굴럿다..

정신이 아찔..아이고 오늘 다 베리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양쪽 무릎만 까지고 사진기도 손 발 뼈도 다 무사하다...

그 와중에 정신집중하여 요 사진을 찍었다.. 몸바쳐서 찍은 이사진..어떠신가요?

동행분들이 봉암사 부처님이 법력으로 나를 받아준것이니 감사드리라 권한다..  

 

 

작년에 요기서 희양산을 바라보며 언젠가 봉암사를 방문하리라 맘 먹었는데 이리 일찍 이루어지다니..

꿈은 이루어진다... 상상한대로 된다는 법칙..나도 고수가 되어가나 보다..ㅎ

 

 

천년고찰답게 이 숲길에 천년의 솔향이 풍긴다.. 

 

 

 

봉암사는 현재 조게종에서 특별선원으로 지정..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초파일에만 일반에 개방한단다

(누구는 동짓날에도 개방한다는데 미확인)..

 

 

 

봉암사의 남훈루에 한동안 희양산을 바라본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희양산..여기서는 둥근 모습은 아니다..

 

여기에 봉암사가 들어선 내력..

지증대사 도헌은 국내에서 수도하였으나 중국 북종선 계통의 법맥을 이은 스승을 계승한 스님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심충(沈忠)’이란 거사가 “국사(國師)가 선(禪)의 정혜(定慧)가 넉넉하고 천지(天地)의 이치(理致)를 거울처럼 환히 들여다 본다”는 소문을 듣고 희양산의 배에 해당하는 봉암용곡(鳳巖龍谷)에 있는 자기 소유의 땅을 기부하면서 선사(禪寺)를 세우기를 청하자, 국사가 와서 보니 봉암(鳳巖)이 ‘갑옷을 입은 기사(騎士)가 앞으로 내달리는 듯한 형상' 을 하고 있는지라 그 자리에서 놀라 감탄하면서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고 말하고  봉암사를 창거하게 되었다.

 

 

절에 도착하자 우선 공양간에 가서 줄을 섰다..

다행히 아침공양을 넉넉히 맛잇게 먹엇다.. 

 

 

 

이절에는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하나로 유명한 지증국사 적조탑비와 지증대사 부도탑이 있다..

 

 

 

부도탑의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조사전의 저 글씨..

운간목마시풍..

 

井底泥牛吼月(정저니우후월)

雲間木馬嘶風(운간목마시풍)

把斷乾坤世界(파단건곤세계)

誰分南北西東(수분남북서동)

 

우물 밑에서 진흙 소가 달을 향해 울고

구름 사이 목마의 울음 바람에 섞이네

이 하늘 이 땅을 움켜잡고

누가 서쪽이라 동쪽이라 가름하는가.

 

  

이 구역이 태고선원이다..

 

1947년 성철, 청당 등이 봉암결사를 하여 전통방식대로 선수행하였다..

6.25로 중단되었으나 그 정신은 불교정화운동의 모테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현재 특별선원이 되었으리라..

 

 

 

 

 

대웅전에 들러 감사의 3배를 드린다..

 

 

 

대웅전 꽃살문이 아름답다..

 

 

백철쭉의 개화 공양으로 대웅전이 청정하다..

 

 

잠시후 절뒤 편 오솔길로 오른다..

 

 

 

길은 더욱 그윽해지더니..

 

 

 

마애불이 나타난다..

 

 

고려말기에 조성된 마애보살좌상..

주변의 바위와 어울려 참으로 신비감이 느껴진다..

 

 

 

오른 손에 연꽃을 든 모습..

불교는 꽃과 미소로 대표된다..

이 보살상을 보고 화난 표정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보살이 화날 일이 있으리오..

바라보는 사람이 화난게지..

 

 

 

옆의 돌문을 지나면..

 

 

 

 

백운세상이 전개된다..

 

 

최치원의 글씨라는 설이 있는 백운대(白雲臺) 글씨

 

 

돌아내려가는 길도 정겹다..

 

 

 

 

다시 온 봉암사...화강암의 기가 센 이 곳이야 말로 정진 수행의 전당답다..

 

참 멋진 산이다..내 마음의 산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근처 부도탑을 순례한다..

 

 

이 부도탑은 함허 득통선사의 부도탑이다..

 

함허 득통..

조선 정종 때 사람으로 무학대사의 제자..

그는 성균관에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21세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느낀바가 있어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했다..

나옹- 무학의 법통을 이었고, 금강경 오가해 설의를 집필하였는데..이 부도탑으로 보아 그의 만년 주석처는 봉암사인 것 같다.

 

그의 한마디..

 

梅花片白 足知天下春 梧桐一葉 可知天下秋

매화 흰 꽃잎만으로도 천하의 봄을 충분히 아는 것이요

떨어지는 오동잎 하나로 세상의 가을을 알 수있네

 

 

또 한마디..

春色 無高下 花枝 自長短

봄볕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지만, 꽃가지는 저절로 길고 짧다.

 

 

 

 

천년고찰답게 다양한 양식의 부도탑들이 시대별로 여기 저기 산재한다.. 

 

 

 

이 부도탑은 조게종 종정과 봉암사 조실을 지낸 서암선사를 기리는 것..

봉암사의 조실을 역임한뒤 1993년 종정에 취임한 서암선사는 서의현 총무원장 3선연임을 둘러싼 조계종내 분쟁 당시 140일 만에 물러나고 탈종까지 감행..그러나 그뒤 다시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었다..

 

그러한 그의 이력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한마디에 우려나는 자유를 좋아한다..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며 "누가 물으면 노장(老長) 그렇게 살다 갔다 해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당시 오도송을 읊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난 그런거 없어" 했다던가..

 

 

다시 산속을 간다..

 

 

정진대사 원오탑...

지증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 후삼국전쟁으로 페허화 되자, 정진대사가 고려 태조 당시 중창하였단다..

그는 중국으로 유햑하여 남종선의 법맥을 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고려태조, 헤종, 광종을 선문으로 이끌었다..

 

 

 

원오탑에서 내려오면 정진대사 원오비를 만난다..

고려 광종때 세운 비석이다..

 

 

 

내려오는 길..꽃을 보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은 봉암사 부처님의 덕분이다..

 

 

우리 일행이 셔틀버스를 타고 나온 오전 9시경..본격적인 참배객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저멀리 희양산..속에 봉의 알 같은 봉암사를 품고 있기에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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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갔다..여기는 고모산성..영남대로의 옛길이 있는 곳..

내비에 진남휴게소를 입력하고 도착한 곳..앞에 영강이 흐른다..물론 이 강은 낙동강의 상류다..

 

 

고모산성으로 오르는 길에 페철도도 있다..

 

 

송림이 우거진 길을 걷다보면 쭉쭉 빵빵 다리 사이로 성벽이 보인다..

 

 

고모산성의 익성 석현성의 진남루가 우리를 맞는다..

 

 

석현성을 끼고 토끼비리로 가는 길이 펼쳐진다..

 

 

토끼비리란 토끼벼랑길이라는 의미인데..

고려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 시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토천(兎遷)’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이길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반질 반질 윤이 나는 바위 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짚새기로 인해 닳고 닳은 바위런가.. 

 

 

전망좋은 바위에 앉아 거센바람을 안고 고모산성을 바라본다..

영강이 천연해자를 이루는 이곳이야 말고 천헤의 요지다..

 

 

문경은 새재로 대표되듯 서울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의 중간..

지금은 중앙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니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

 

 

지금도 아슬한 느낌이 나는데 예전에 어땠을까?

 

조선초 어변갑이 쓴 시다..

 

設險函關壯  (설험함관장)   험하게 만들어져 함곡관처럼 웅장하구나

行難蜀道奇  (행난촉도기)   가기 어려운 길이 촉도 같이 기이하네

顚隮由欲速  (전제유욕속)   빨리 가려 욕심내면 넘어져 떨어지니

跼蹐勿言遲  (국척물언지)   허리를 구부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더라도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나

 

 

 

 조선 성종 때의 서거정도 시 한수로 증언한다

 

屈曲羊腸路  굴곡양장로

逶迤鳥道奇  위이조도기

峯巒一一勝  봉만일일승

遮莫馬行遲  차막마행지

 

구불기는 양의 창자 같은 길이

구불구불 새 나는 것같이 기이하도다

봉우리 하나하나 모두 빼어났으니

그런데로 말 가기가 더디구나.

 

 

 

1744년 경의 토끼비리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권근(權近)은 견탄원(犬灘院) 기문(記文)에서,

"서울에서 경상도로 가려면 반드시 큰 재가 있는데, 그 재를 넘어서 약 백리 길은 모두 큰 산 사이를 가야 한다.  여러 골짜기의 물이 모여 내를 이루어 관갑(串岬)에 이르러 비로소 커지는데, 이 관갑이 가장 험한 곳이어서 낭떠러지를 따라 사다릿길로 길을 열어서 사람과 말들이 겨우 통행한다.  위에는 험한 절벽이 둘러 있고, 아래에는 깊은 시내가 있어 길이 좁고 위험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떨고 무서워한다.  몇 리를 나아간 뒤에야 평탄한 길이 되어 내를 건너는데, 그것이 견탄(犬灘)이다."라 썼는데..

즉 이곳 풍광을 말한 것이다..

 

 

 

석현성 남문안으로 들어서니 주막거리가 잇다..

정자에 누워 전날의 피로를 조금 떨치고..

 

 

당산 나무 아래 성황당 옆에 꿀떡고개라는 팻말이 붙었다..

험로에 고생해서 이 고개에 도착한 사람들의 요기를 위한 꿀떡고개이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꿀떡을 사먹으며 과거에 붙게 해달라고 주술적 기원을 했던 곳이 아닐지..

 

 

노란 소국과 누런 고모산성이 파스텔화처럼 어울린다..

 

 

 

오정산엔 가을이 가득하다..

 

 

 

고모산성 남문으로 나와 석현성루를 밟고 내려간다..

 

 

애기 단풍이 더 붉다..

 

 

 

단풍이 아롱지는 영강의 물결은 보석처럼 빛난다..

 

 

<오늘 걷기>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진남휴게소 - 석현성 - 토끼비리 - 관갑잔도 - 석현성 진남루 - 성황당 - 고모산성 - 고분군- 진남휴게소 약 5KM

 

 

돌아 오는 길..상주고속도로 속리산휴게소에 들어가는데 속리산의 단풍이 눈을 붙잡는다..

 

 

오늘 걷기의 소감을 말하라면 이 그림으로 대신한다..

 

 

 

선유동천 나들길 걷기에 나섯다..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운강 이강년 기념관에서 시작된다..

운강 이강년..조선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내다가 갑신정변때 낙향하여 은거..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을미의병을 일으켜 활동..

그후 정미년에 일제가 헤이그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강제퇴위시키자, 다시 의병을 일으켜 도창의대장에 추대된다..

문경 길평전투 등 40여차례 전투를 치뤘으나 작성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체포되어 순국..

 

일평생 이목숨을 아껴본 바 없거늘

죽음을 앞둔 지금에사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이 몸 비록 간다해도 넋마져 사라지랴..

 

 

그런데 100년전의 비분이 100년후에도 풀리지 않는다.. 요즘 독도를 둘러싼 일본 애들의 작태를 보면 더 쌓인다..

그런 강개한 기분으로 걷는다.. 

 

 

 

초입에서 만나는 징검다리..

엊그제 비로 제법 물이 흐른다..

 

 

벼가 익어가고..

 

 

이길은 칠우정 가는 길로 이어진다..

 

 

7우란 구한말 이 부근에 살던 유지 7명의 모임을 일컫는다..

벽에 7명의 이름을 새겻다..

그들이 위 절벽 옆 망화담위에 칠우정 정자를 짓고 7경을 감상하고 7곡을 즐겼단다..

 

7경은..

둔덕청풍(屯德淸風), 강복신월(降福新月), 봉암조양(鳳岩朝陽), 용추모우(龍湫暮雨),

주항낙조(舟項落照), 완계수석(浣溪水石), 고사송등(古社松燈)

 

둔덕산에서 부는 바람, 봉암산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 용추에 내리는 저녁비..

 

7곡은...

 칠리계(七里溪), 월파대(月波臺), 홍류천(紅流川), 와룡담(臥龍潭), 백석담(白石潭), 망화담(網花潭), 완심대(浣心臺)..

 

어리석을 우(愚)자를 돌림자로 썻던 그들은 망국시절의 죽림칠현을 자처했는가?

 

 

백석탄을 건너고..

 

 

와룡담을 바라본다..

 

 

 

홍류천엔 보라빛 쑥부쟁이가 피었고..

 

 

물소리 들으며 걷는 길이 좋지 아니하랴..

 

 

월파대는 달밤에 보아야겟지..

 

 

장군손바위..

도인의 손자국이란다..조선 시대에 이곳에 도인들이 은거하였단다..

 

 

이제 계곡은 선유9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산이름 옥녀봉 못지 않게..흔한 계곡이름이 선유동이다..

이곳 대야산의 선유동에서 좀 떨어진 곳에 괴산의 화양계곡에 인접한 선유9곡이 또 잇다..

그래서 택리지의 이중환은 문경 선유동을 내선유동, 괴산 유동을 외선유동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선유9곡은  옥하대, 영사석, 활청담, 세심대, 관란담, 영규암, 난생뢰, 옥석대라 이름이 붙었다..

 

 

비스듬이 누운 자부송 사이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9곡에서 1곡을 향해 걸어가는 길..

 

 

어느새 1곡 옥석대가 보인다..

 

 

전서로 쓴 옥석대 아래로 옥구슬이 흘러간다..

 

 

 

 

학천정..학의 샘..

 

이 정자의 주인공 도암 선생의 시 한귀절

 

晩識玆山面    늦게야 이 산의 좋은 경치 알았으니

若有前世期    전생의 인연이 있었던 것 같구나

 

 

학천정옆 바위에 산고수장(山高水長)..

산 높고 물 길다..

 

 

여기가 선유계곡의 입구다..

 

 

이제 길은 용추계곡 방향으로 이어진다..

 

 

길 물의 연원은 대야산 용추계곡이다..

 

 

이런 숲길은 너무나 정겹다..

 

 

며칠전의 비줄기가 이렇게 줄기찬 계류가 되어 힘차게 흐른다..

 

 

계류에 발을 딛고 건너기가 힘들 정도..시원하기 그지없다.

 

 

문경의 특산 오미자도 익어가고..

 

 

매미는 갈 날을 받아 놓은듯 풀이 죽었는데..

 

 

벼익기를 기다리는 참새의 심정은 설레는가 보다..

 

 

용추계곡입구에서 파전에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키고 돌아오는 길..

칠리계에 자리펴고 비옷을 베고 누웠다..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基中

반소사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이라..

 

 

 

 

계곡 한모퉁이에 쑥부쟁이 피었다..

지구의 각도가 살짝 기울고 햇살이 조금 비껴지면 꽃도 바뀐다..

꽃이 바뀌어 피면 사람 마음도 변한다..

 

 

<오늘 걷기>  이강년기념관 - 칠우정 - 칠곡 - 선유9곡 - 학천정 - 대야교- 용추계곡 입구..원점회귀 9km

<추천 걷기> 위 코스 + 용추계곡 트래킹을 더하면 13km 정도 적당히 즐거운 걷기가 되겠다..

 

 

문경 봉암사..

봉암결사로 유명한 곳..지금도 일반인 출입을 불허하고 수행정진하는 곳..

갑자기 그곳에 가보고 싶엇다..

문의를 거쳐 미원가도를 지나 미동산, 옥화, 달천을 지나고 화양계곡, 선유구곡, 대야산 용추계곡을 지나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그곳을 지나 봉암사에 가까워질 무렵..우뚝 솟은 화강암 산에 필이 꽃힌다..

바로 저 암반에서 나오는 기를 수행자들이 내공으로 축적하리라..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의 터전..

봉암사 입구는 출입통제중이다..

1년에 한번..사월초파일에만 개방된다..

하지만, 이 여름 봉암사 앞 계곡은 맑고 시원하여 탁족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희양산..

인왕재색도의 그림을 보는 듯하고, 북한산 인수봉과 진안 마이산을 합쳐놓은 것처럼 불쑥 솟은 암봉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햇빛 '희(曦)', 볕 '양(陽)'을 붙인 희양산은 글자 그대로 수행자들의 용맹정진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산이다.

 

고운 최치원은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봉암용곡이란 이름은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비문에 봉암과 같은 바위산에 용틀임을 하듯 맑은 계곡물이 철철 흘러내린 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절의 창건자인 지증대사는 나무꾼이 다니는 길을 따라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감탄을 하였다.

 

돌기둥 위에 돼지형상은 무엇인고? 

 

서당개 처럼

봉암사 잠자리도 돌탑에 앉아 하염없이 참선 수행하네..

 

나는 너러바회를 골라 오수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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