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봉산 트레킹이 늦어져 뱃시간을 걱정했는데, 신안 1004의 섬답게 다양한 배 선착장과 연륙교를 활용하는 주민들의 조언을 들으니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주민들의 조언은, 하의도 웅곡선착장으로 가는 배시간은 촉박하지만, 하태도 신의선착장으로 가는 배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신의 선착장에 내려서는 연륙교를 이용하여 하의도 웅곡항으로 이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초 하의도 모래구미에서 캠핑하 계획을 즉시 수정하여 하태도 금리해변에서 캠핑하기로 했다.

 

여유시간에 안좌도 김환기 고택을 찾았다.

1913년생인데, 기와집에서 태어낫나??

기와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생활을 하였으니 부유했을 것 같다.

그는 인생후반은 미국 뉴욕에서 생활하다가 1974년 사망했다.

 

그의 고택이라면서 그의 그림 복사판도 걸어놓지 않아 아쉽다.

 

그의 그림은 경매에서 85억에 낙찰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ttps://youtu.be/ky06dSjuwtU

 

 

그는 한국에서는  반추상화 그림을 그렸는데,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작품활동할 때는 동시대 화풍대로 추상화를 그렸다..

https://youtu.be/Bp8b02OPjY8

 

고택 방문의 의미도 못느끼고 돌아서는 기분을 달래는 옆집의 벽화..

김환기 작품 모사일까?

주변 담장이라도 그의 그림을 벽화로 그려놓으면 좋을텐데, 관광마인드가 부족하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하태도 신의선착장으로 가는 배를 탔다.

승객도 별루 없다.

 

하태도 신의선착장에 내리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얼릉 캠핑장소를 찾아야 한다.

 

금리해변을 향해 산길을 꼬불 꼬불 넘어가 어두운 해변에 도착했다.

데크는 낙후하고 수풀이 우거져 그냥 해변 모래밭에 텐트를 치기로 한다.

급하게 쉘터를 치고 고기굽고 와인 한잔하니 안도감이 든다.

 

일단 자고, 내일 아침 8시 배로 하의도 웅곡항에서 신도가는 배를 타기로 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다음날 눈을 뜨니 참 자그만 해변이다.

주변 산책할 시간도 없이 바로 텐트를 걷어 하의도로 간다.

 

 

좋은 세상이다.

다리하나 건너면 하의도다..

 

 

선착장에서 싫는 배는 우리 차 2대 밖에 없다.

선장의 허락하에 준비해간 아침식사를 선실해서 한다.

 

 

신도는 지척인데, 배가 5개 섬을 돌아가느라 2시간이 걸린단다..

식사후 선실에 대자로 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도착 10분전 소리에 깨어나 하선 준비를 한다.

드디어 신도에 도착한 것이다.

 

 

 

 

이미 큰봉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몸이 지쳤다.

비등구간에서 오버 페이스한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먼저 지친게 다행스럽게도 일행의 페이스 조절에는 도움이 되었다

폭염경보에 생각지도 않은 센 트레킹으로 힘드는 차에 내가 자주 쉬며 템포를 늦춰주니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되었다는..ㅎㅎ

 

승봉산이 요즘 게임을 좀 해본 모양이다.

올라가면 갈수록 경관을 보상으로 주면서 중독되도록 유도한다.

 

올라갈수록 더 멋져지는 풍광이 안전에 전개되니 폭염의 고통과 육체적 피로도 저절로 씻어지는듯..

 

더 큰 보상을 기대하며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려는게 인간의 심리이다.

보상없이 고통을 감수하려면 철학이나 종교가 필요하다.

 

무릉도원이 어디 계곡과 동굴 사이에만 있다더냐?

두개의 바위 사이에도 청춘처럼 존재한다.

 

뭬야!! 1004개를 보려면 어디까지 올라야 하는거야??

 

승봉산 정상에 서니 거짓말처럼 천사가 보인다.

다리 벌린 천사..

이름하여 천사대교..

 

 푸른 아름다움에 푸른 꽃을 더하니 7가지 푸름으로 치장한 "푸르디 푸른" 장엄이라..

 

쪽빛, 남색, 곤색, 군청, 감청, 인디고, 네이비, 청, 옥, 시안 중에 어느 푸름에 점을 찍을거요?

굳이 점을 찍어야 하는가?

단지 푸름 속에 물들을 뿐이네.

 

천사의 마중을 받고 만물상을 선물로 받으면 하산길은 풍족해진다.

 

면사무소 방향을 선택하여 내려간다.

푸름사이에 뻘이 불뚝 나선다.

푸름이 죽으면 누름이 일어선다는 황건의 외침 듣지도 못했는가?

 

창천과 황뻘이 싸우는 틈바구니를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하산을 재촉한다.

노닥거리며 걷는 사이 뱃시간이 촉박하다.

 

돌아보니, 승봉산이 전송한다.

고금생전에 언제 다시 보겠는가?

 

<오늘걷기> 노만사 - 마당바위 - 큰봉산 정상 - 수곡임도 - 승봉산 - 암태중학교  약 6KM

장마가 8.15.까지 이어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원래 목표는 강원도 선자령 캠핑인데, 비 예보가 잇어서 급히 장소를 서해 신안 섬 중 하의도 신도로 골랐다.

인연이란 씨앗에 비유되고, 파도에 비유된다.

조건이 맞으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기에..

당초엔 목포 - 하의도 - 신도로 계획되었는데, 카페리 수리라는 변수가 생겨 암태도 - 안좌도- 하태도 - 하의도 - 신도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암태도 승봉산이 스케줄에 들어왔다.

그런데, 대타가 역전 만루 홈런을 친 격이 되었다는..ㅎ

 

차가 신안 앞바다 압해도 입구 김대중대교를 지난다.

눈에 띄는 무화과를 한 가득 산다.

 

신안군은 관내 섬을 긁어 모아 1004개라고 선포하고, 천사의 섬으로 부른다.

그러더니, 은근히 엔젤의 형상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압해도 -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를 지난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서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자라도, 추포도, 박지도, 반월도 등 7개섬이 육지로 연결되었다..

이제 10개의 섬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연결한다는 프로젝트는 3개의 섬과 연결만 남았다.

 

오후 4시반에 안좌도 복호항에서 배를 타기까지 암태도 승봉산을 트레킹한다.

좀 수월하게 하려고 들머리를 노만사로, 날머리는 암태중학교로 잡는다.

 

노만사..이슬이 가득 모이는 절..

이절은 19세기 말에 세워졌는데, 절 뒤편 약수가 유명하다.

 

한옥 가정집같은 분위기의 법당..

 

법당 뒤로 돌아가면 약수천에 맑은 물이 가득하다.

정말 푸른 이끼에서 맑은 물이 이슬처럼 떨어져 가득 고인다.

한잔해!

이처럼 맑은 물 아니 마시고 어쩌리..

절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거북바위는 영락없이 거북이 모습이고, 와불은 법당이 좁아 밖에 누워계시고..ㅎ

 

영락없는 오리바위를 지나면 마당바위로 가야한다.

정말 마당이 기다리고 있다.

섬이 1004개인지 세어보기 좋은 곳이다..ㅎ

 

달개비의 바다를 향한 푸른 마음이 서리 맞은 이월화보다 더 찬란해 보인다.

 

마당바위를 지나 큰봉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

선두가 왔던 길로 돌아가 등산로로 가지 않고, 네이버 지도만 믿고 가더니 어렵쇼??

밀림이 나오네..

잘 다니지 않아 임도가 밀림이 되었나 보다..

 

결국 길을 놓치고 비등으로 정상으로 가는데, 폭염경보가 내린 날 할 짓이 아니었다는..ㅠ.ㅠ.

 

 

결국 등산로와 만났으나 염천폭염에 몸이 지쳤다.

 

그래도 눈을 즐겁다.

높고 낮은 저 섬들에게 우열이 무슨 상관이랴~

 

큰봉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저 앞 높은 산이 승봉산이란다.

산 하나만 가볍게 올랐다 내려가는 줄 알았더니, 이건 산 2개를 오르는 등산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간식을 챙기지 안았는데, 배도 고프고..ㅎ

 

 

마지막 하산을 마치면 수곡리 임도와 만난다.

승봉산 등산만 하려면 차를 이곳에 몰고와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진도 3일째

진도에 가면 글자랑, 그림자랑, 노래자랑하지마라고 한다.

노래에 대해서는 송가인 마을에서 실감했고, 그림에 대해 실감해보려고 진도 10군데의 미술관 중 

나절로 미술관으로 간다. 3번째 방문이다. 

첫날 갔으나 월요일로 휴관이었고, 3일째 8시 50분에 도착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인터넷엔 9시 개관이라고 되어 있어 인근 미르길 3코스를 탐방하려 했으나 입구를 찾지 못해 다시 3번째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삼고초려..ㅎ

9시 20분인데 문을 열리지 않았다. 대문에 쓰인 핸폰으로 전화하니 잠시후 이상은 관장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우선 그에게 송가인 집에서 만난 모자의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난다며 "다마내기"즙을 마시라고 햇다며 껄껄 웃는다.

그의 안내로 미술관의 그림을 보며 설명을 듣는다.

폐교를 인수하여 미술관을 만들고 개성있고 독특한 화법의 그림을 그린다.

마치 벽화를 보는듯하다.

 

이쁜 그림이 아니라 어린이가 그린 듯한 그림을 그린다.

추사 말년의 고졸한 글씨 같은 느낌..

 

 

그의 찻방에 들러 권하는 대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19세  나이에 나절로라는 시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나절로가 그의 호가 되고  미술관 이름이 되었다. 

그의 그림 속에도 인문학이 스며있단다.

 

그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붉은 배롱꽃이 그의 열정처럼 활짝 피어있다.

 

산다네 산다네

그냥 그냥 산다네

살아져서 사는거라네

 

미술관을 나와 신비의 바닷길의 현장으로 간다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과 앞섬 모도 사이에 길이 열린다.

1년에 2번, 음력 2월, 6월 사리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행사가 되었다.

 

전설의 시작은 뽕할머니로부터..

그래서 진도에서 트롯의 1인자가 나왓나??

 

 

과거에는 마마, 호환, 불법비디오가 3대재난이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부동산으로 재편되었나 보다. ㅎ 

 

진도의 구 명물인 진도개 테마파크로 간다.

왕년에 진도에 왔을 때 딸래미를 현혹시켰던  진도강아지가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아기들이 좋아한다.

천진함은 선의 극치이다.

 

진도개의 천진함이 800리를 달려 주인에게 향하게 만든다.

진도개 테마파크에는 송가인이 하루종일 노래 봉사를 하고 잇다.

진도개를 밀어내고 진도 대표가 된 이후, 진도개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일환인가??

 

진도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점심식사 별미를 찾앗더니 "듬북갈비탕"있단다.

듬북은 해초 모자반의 일종이다.

원래 전복듬북갈비탕을 시켰는데, 주인이 잘못듣고 전복을 빼고 주었네..ㅎ

 

듬북갈비탕을 듬북 먹고 이쑤시며 나오는데

그녀가 미소지으며 환송한다.

"진도 구경 잘했지라?  안전하게 잘 올라가쇼잉"

 

진도 2일째 진도 미르길 4코스를 걷기 위해 굴포리로 간다.

마을 입구에 사당에 보여 내려서 살펴보니 고려 삼별초 배중손 장군 사당이다.

숭의문..

의를 숭상하는 문..

의?? 대몽항쟁에는 그렇다고 치고.. 최씨 무신정권의 호위병 노릇한 업보는 어이하나?? 

 

배중손 장군은 남도진성에서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치르다가 이곳 포구 쪽으로 퇴각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바,

그의 전사 추정지에 사당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배중손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무신정권에 시달린 왕으로서는 대몽강화는 왕권회복 의도도 겸한 것이다.

한편, 무신정권의 호위병 노릇하던 삼별초로서는 끈 떨어지는 상황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이 대몽항쟁을 주장했지만,  원래 무신정권은 자신들의 강화도 방어만 치중햇을뿐 육지는 각자도생의 상황에 시달리고 잇었기에 왕의 결정에 반대하면서 까지 저항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배중손은 전사하고 김통정이 이끄는 잔여부대는 의신면 금갑리 해변에서 배에 타고 제주도로 퇴각한다.

우리는 진도 미르길 표지판을 찾으면서 포구를 걷는다.

방파제까지 가서야 미르길 안내표지가 있다.

미르..용..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실제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용이듯

미르길도 말은 무성한데, 입구찾기가 어렵다 어려워..

조금 올라오니 좌측은 사유지라, 우측 공유지로 우회하란다..

그런데, 이 길은 잡초가 무성하여 걷기 어려운 구간이 많다.

돌아올 때는 사유지를 통과하리라 맘먹는다.

잡초를 헤치고 나오니 사유로와 공유로가 만나는 길이다.

이제 글러벌 수준의 트레킹 길이 나온다.

1KM 남짓 가면 하얀 등대가 보인다.

 

파도는 세차고 바람은 거세다.

데크 벤취에 누워 그녀의 4단 고음 "정말 좋았네"를 듣는다.

진도의 바람 속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진도 아리랑도 진도 바람 속에서 불러졌기에 생명력이 긴 것이다. 

바람, 파도 그리고 노래 속에서 행복하다.

그리고 자유, 자유, 자유를 외친다.

자유는 자율, 자긍, 자적이고 자결과 자립, 자정을 좋아한다.

당연히 지시와 규제를 싫어한다.

 

미르길 4코스는 진도 자연휴양림 표시 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눈치껏 사유로를 지나간다.

평탄하고 금방이다. 이리 좋은 것을 ..

 

 

진도 미르길 당당자님!!, 접도 웰빙등산로 담당자님!!

제주 올레를 다녀 보시고 표지판 써비스 좀 개선하세요!!

남도진성으로 향했다.

입구가 보이지 않아 길가에 세우고 성벽을 따라 걷는다.

 

성벽 절반을 돌자 입구가 나온다.

차를 좀더 운전했으면 입구를 찾았을터인데, 성급히 주차를 한 것이다.

성안에서 보면 앞산에 막힌 궁벽한 곳인데, 왜 이곳에 성을 쌓았을까?

나중에 지나가면서 보니 우측 앞으로 바다로 이어진 선소와 포구가 있어 절묘한 장소에 축성한 것이다.

삼별초의 진도 최후의 항쟁지였고, 지도자 배중손도 여기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진도 팽목항에 들렀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시설들이 있다.

가슴아픈 사연은 세월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

낙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앵무리 송가인마을 들럿다가 숙소에 짐을 풀고 세방낙조로 향했다.

그러나, 흐린 날씨에 두꺼운 구름으로 붉은 낙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부근에 마땅한 식당이 없다는거..

진도읍이나 면소재지 부근에 가야 식당이 잇다..

 

작년부터 금년 여름휴가는 진도라고 공언해왔다.

세번째 진도 방문..

지난 2번은 울돌목, 이순신, 삼별초, 운림산방이 관심사였는데, 

이번에 송가인과 아리랑이 테마다.

 

2박 3일의 일정 중 첫날은 무안 회산 백련지를 구경후 점심을 하고, 진도대교를 넘는다.

진도대교에서는 코로나 발열체크하느라 차량이 길게 이어진다.

통과하자, 차를 바로 진도 남단 임회면 아리랑관광지로 향한다.

그런데, 월요일이라고 진도 아리랑 체험관과 아리랑 관광지는 문을 닫았다.

 

2번째 목표는 근처 진도 미르길 3코스( 귀성 - 중만)구간을 걸으려고 한 것인데, 

해변가 어디에도 표지판이 없다..헐

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좌측 언덕에 펜션도 보이기에 그곳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나중에 지도를 자세히 보니, 우측 해변끝에서 미르길이 시작되는 것 같으나 그곳에서도 길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진도 미르길은 준비가 덜 된 길이다)

 

나중에 보니 걷고 있는 이 길 이름이 아리랑 길이었다.

 

길은 산비알 펜션단지에서 끝난다.

하지만, 바닷가로 내려가는 서비스 코스가 있었다.

 

멀리 진도 아리랑체험관이 보인다.

 

참나리가 위로한다.

원래 여행이란게 그런거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도 나름 묘미가 있는 것이야.

파도처럼 솟구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돌아선다.

아예 아리랑체험관을 향해 걷는데, 이 길이 풍치가 있다.

 이길을 걸어 홍주촌- 아리랑관광지 - 체험관을 돌면 제법 그럴듯한 코스가 되겠다.

 

장구를 형상화한 아리랑 체험관을 다음날 방문으로 미루고 차를 주차한 귀성해변으로 돌아간다.

아리랑 마을이라는 벽화가 헛걸음은 아니라고 달래준다.

 

다음날 아리랑체험관을 다시 방문했다.

발열체크하고 주소쓰고 마스크도 쓰고 입장했다.

 

아리랑의 유래는 여러 설만 무성할 뿐이다.

 

진도 아리랑 유래도 여러 가지다.

1)설, 2)설에 따르면 구한말 19세기 말에 태동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가 유행하고, 민요가 진화하던 시기에 아리랑이 임금 귀에까지 들리게 되고,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자기 동네 고유의 사설과 리듬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와 민요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이유는 진화를 멈추고 정형화되고 고착되면,  그중 보존가치 잇는 것들을 골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다.

 

아리랑은 아직도 진화 중이다. 

영암아리랑, 홀로 아리랑, 엄마 아리랑 등 계속 신곡이 나오는 한 아리랑은 여전히 현역이다.

진도로 여름 휴가 가는 길에 점심을 먹을겸 해서 들린 무안의 회산 백련지..

이처럼 큰 연지는 처음보는 것같다..

백련은 무더기로 활짝 피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핀다는데 정말 그런가??

법정 스님의 한귀절이 보증한다.

왜 백련지를 보려고 왕복 이천리를 달렸던가?

백련이 피는 곳을 극락으로 보는 불교적 시각이 있다. 

그래서 여산 혜원의 백련결사 이후 불교계의 정진 수행의 상징이다. 

봉선화로 길을 내엇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피었다.

연꽃에 붉은 병이 생겼나 했더니 왕우렁이 알이란다.

7월 말경에 이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린다.

금년에는 코로나로 취소되었다.

작년 축제때 송가인이 연꽃처럼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감격해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연꽃밭 한귀퉁이에  봉선화, 해바라기, 백일홍을 불러 같이 꽃들의 잔치를 벌리는 배려..

뭐든지 독주는 재미없어..조화, 배려, 동행이 아름다운 것이여..

점심은 인근 연꽃 가든에서 시골밥상으로 푸짐하게 먹는다.

이것이 여행 최고의 성찬이 될 줄이야..

식당 입구에서 만난 잎새주..

남도에 왔음을 실감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