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현강연서회전에 출품된 현강 선생의 글씨..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제18회 현강연서회전에 출품된 현강선생의 작품

내 눈에는 마치 루오의 야수파적 작품같이 보인다..

 

글의 출전은 삼국사기』백제본기 시조 온조왕조..

온조왕이 건축한 궁궐에 대한 평인데..이는 그대로 백제 예술에 대한 총평이라 할만하다..

 

***


 

그 전시회 중에 내눈을 확 잡아댕기는 글..

내용이 정갈하고 정겹다..

차한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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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

 

옛 것을 법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장암 이곤순전...

 

내 첫 사부의 고교 동창..

내 둘째 사부의 사부..

 

글씨는 일중 김충현에게 배우고,

한문은 학산 조종업으로부터 배웠다..

 

글씨는 예서, 행서 초서, 한글까지 다양한 글씨가 가득하다..

 

서권기는 모르겟고, 그저 문자향만 가득 맡고 와서

여기에 좀 나누어 드린다..

 


우계 성혼의  우음이란 시를 장암 선생씀


 

반평생 산에 누워 한 일이 없으니

뉘라서 나를 보고 시비할손가

 

저런 경지에 언제 다다를까..


만해 한용운의 선시를 장암 씀


 

먹구름 거치고 고월이 드러나니

사방 멀리 나무까지 역역히 나타난다..

 

이는 얼마나 성성한 경지인가..

유교의 대가나 불교의 대가나 장군 멍군할 정도..



해불양수

 

바다는 물은 사양하지 않는다..

바다의 포용력을 누가 당하랴..

 

위 세글씨 중 공짜로 가지라면 어느 것을 가질까요?

 

 

 


(장암 서, 순천자흥 : 순리를 따르는자가 흥한다.)

 

“속기(俗氣)를 벗고 명리(名利)에 초연해지면 글씨는 맑아지는 법입니다.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 서예인 장암 이곤순 선생(60)은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성과 단순성”이라며 “어떤 예술이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적인 품격이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서예인으로서의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장암 선생은 대전 시립미술관에서 대전·충남 서예사에 큰 획을 그을 전시를 열고 있다. 40년 넘게 서도의 길을 꼿꼿하게 지켜온 장암 선생을 만나 굳건하게 정립한 ‘장암 풍’ 서예의 미학과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송신용 편집국장>

-서예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가 있을 텐데.

▲처음 붓을 잡은 인연이 된 것은 어린시절 천자문을 배울 때부터다. 작은 손으로 붓을 쥐고 저녁 때마다 아버지 앞에서 한자를 썼다. 천자문을 통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서예가 체질화가 됐다고 할까….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서예가 뭔지도 모르면서 틈틈이 습자를 썼다. 인연이 됐는지 스승이신 일중 김충현 선생님의 교본으로 습자를 했다. 충남대학교에 입학하고 1967년 동방연서회에서 주최하는 서예대회에 나가 상을 타게 됐다. 일중 선생님이 이사장으로 계셔서 그 뒤로 꾸준히 교분을 갖게 됐다. 자주는 못 가뵙고 방학 때 틈틈이 찾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자주 만나뵐 수 있었다.

-37년 만에 개인전을 열게 됐는데 그 동안 전시회를 갖지 않은 이유가 뭔가.

▲대학 시절에 한 번, 학교를 졸업하고 멋모르고 의기로 한 번, 전시회를 열었다. 그 이후부터 실력을 쌓기 위해 서예공부에만 전념했다. 개인전은 자신이 이룩한 작품 세계를 한번에 보여주거나 중간마다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데, (나는) 뭔가 하나를 크게 이뤄놓고서는 하고자 했던 바람이 있었다. 또 전시 때문에 제자나 주변사람이 고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개인전을 갖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명필인 추사도 작품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작품이 좋다면 후대에 자연스레 전해지게 되는 것이지 특별한 변화도 없이 전시회를 연례행사처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럼 다음 전시는 언제쯤 가질 생각인가.

▲기약은 없지만 용트림이라고나 할까. 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되겠지. 모든 것이 무르익고 성숙돼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예술이든 자연을 거역하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동양예술은 자연 친화적이다. 상형문자는 자연의 형태를 본뜬,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에 나온 문자를 가지고 서예를 하고 또 서예를 통해 다시 자연에 동화되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성과 단순성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것은 함축하고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것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속을 벗어나게 되면 초연해질 수 있고 글씨도 맑아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많은 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순도 99.9%를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글씨의 본질적인 것을 찾을 때 순수함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서예를 시작할 때 대전의 서예계는 어땠는가.

▲대전은 서예의 본 서법과 거리가 먼 불모지였다. 어린 마음에 제대로 서예의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해 (성서동인회)를 만들었다. 충남대 2학년 때인 1967년, 서예의 기본인 한자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충남대 서예연서회를 조직했다. 학산(鶴山) 조종업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회원들끼리 공부를 하고 한문도 배우고…. 훗날 충남대 서예연서회가 대전·충남 서예의 모체이자 핵이 됐다. 초대작가 10여 명 등 전국적으로 쟁쟁한 서예가인 야천 이동희, 송암 정태희, 염호택, 현강 박홍준 등 많이 배출해 냈다.

-그 당시 동양화 등 다른 미술가들과 교류가 있었나.

▲그림하고 글씨는 같다. 그림을 붓으로 힘있게 쓰면 서예가 되고, 글씨를 회화처럼 그리면 그림이 되는등 본류는 같다. 심향 박승무, 풍경화가 이동훈, 서양화가 이인영, 입립, 정명희, 도예가 이종수 등과 친분을 쌓고 교류를 했다. 대전에서 미술이나 서예분야가 활성화 된 것은 충청남도전이 생긴 1971년도부터다. 첫해 출품작 수가 충청남도 통틀어 17여 점밖에 안 됐다. 지금은 800여 점 나오니까 대단한 발전을 한 것이다.

-붓을 잡은지 50년이 넘고, 서예를 시작한 것은 40여년 됐다. 한 길을 걷는데 엄청난 고집이 필요했을 것이다. 서예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깔고 지행합일적인 품격이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서예인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논어 중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이면 不亦君子乎아’(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개념을 마음속에 명심해두고 서도의 길을 걷고 있다. 서예는 운명과 같다. 또 딴 재주가 없으니까.(웃음) 고통이 따라도 ‘이것이 나의 숙명이다’고 생각하고 붓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괴롭고 힘들어 잠시 쉬어도 며칠이 지나면 또 다시 붓을 잡게됐다.

-서예인을 많이 배출했다. 제자들에게 엄한 호랑이, 존경받는 스승으로 꼽히기도 한다. 제자 양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식을 정신과 육체의 계승자라고 본다면 제자는 정신과 예술의 계승자이다. 연령을 떠나서 내가 생각하는 서예인으로서의 비인부전(非人不傳)해 왔다가도 안 돼서 내쫓은 사람도 있고, 내가 싫어서 떠난 사람도 있고, 예술에 동화가 돼 같이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를 포함해 거쳐간 사람이 5000명 이상이 되지 않을까. 제자를 양성할 때 일중 선생이 나를 가르칠 때의 교수법을 그대로 한다. 국전 등에 작품을 낸다 하면 스승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쓰라는 것이 비일비재 하지만 나는 제자 스스로 작품을 하도록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세월이 쌓이면 능력있는 제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예는 향유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조명이 안된 부분이 많다. 부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대전은 공공 미술관, 서예학과도 많지만 서양화를 중심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주축이 돼, 그들만의 헤게모니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 나라, 제 민족의 미술을 제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 등 행정을 하는 사람은 서양문화가 최고인 줄 안다. 우리네 보석이 있는데 발견하지 못해 안타깝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고유 유산인 서예를 조금이라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누구나 쉽게 서예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전문적으로 눈을 뜨지 않는 한 깊이 있게 감상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붓으로 쓴 글씨에 대해서는 조금씩 향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글씨체가 힘있게 나갔다’라는 생각과 함께 획을 발견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감상이 될 수 있다. 서예는 격, 기운이 다르기 때문에 한자 등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공부를 하면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1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80세 이상의 연로하신 분들도 어린손자의 손을 붙잡고 서예를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문자는 몰라도 서예 속에서 어떤 기운을 느낀는 것 같다. <정리 김효숙·사진 장길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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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걷기에 나섯다..이번은 화양계곡에서 선유계곡까지 13km..

봄을 시샘하는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

 

 

화양계곡 주차장에서 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우산이나 우의를 챙기며 잠시 전열을 정비..

 

왜 화양계곡이냐? 고 자문하는 설명문을 읽는다..

회양목 즉 황양목이 많은 곳이라 자연스레 화양동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난 토요일 화창한 봄날씨에 피어난 버들강아지는 오늘은 찬 빗방울에 오돌오돌 떨고 있다..

 

 

 

포장길을 걸어 운영담에 다다른다..

20여년 전 쯤에 와본 곳..바위와 물색은 그대로다..

 

 

만동묘..화양서원을 스쳐간다..

우암 송시열..명나라 황제묘소..재조지은의 명분론과 소중화주의..

현실론..북학론 등이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이런 주제는 피해가자..

 

 

존사청(存事廳)..제향을 올리는 곳..

계곡 물이 흐르는 듯한 행서체가 자유롭다..

 

 

여기는 4곡 금사담 위에 위치한 암서재..

우암 송시열의 서재 역할을 한 정자..

이런 곳에서 한 일주일 책이나 읽으며 지내면 머리와 마음이 맑아 지려나..

 

 

암서재 부근의 풍광이 자유롭고 편안함을 준다..

 

왜 우리나라에 구곡이 많은가?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이상향은 교조인 주자가 살던 무이구곡인데..

주자는 스스로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주자를 흠모한 우리 성리학자들이 이를 따라 각종 구곡을 명명하고 풍광을 읊었다..

율곡의 경우에도 황해도 거주지 부근에 고산 구곡을 명명하고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이름이 좋아 들른 절..강가를 따라 올라가다 고라니를 발견했다..

물 먹으로 나왔다가 불이나케 산으로 줄행랑을 친다..

절 사람 말씀에 의하면, 절 텃밭에 상추 뽑으려하면 어찌 알고 전날 와서 뜯어 먹고 간다나..

 

 

 

 

 

여기는 7곡 와룡암이다..전서체를 큼직하게 새겼다..

누운 용..일어나 승천할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나..

 

 

 

호젓한 길을 걷는다..

가끔 덧는 빗방울 소리.. 푸른 빛 더해가는 솔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들으며..

 

 

9곡 파천..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뚫어 놓은 것 같다는 ..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을 읽고..

계곡으로 일삼아 내려가 우리도 여기서 소곡주를 나누어 마신다..

신선 기분을 내보자...

 

 

파천에서 선유동으로 가는 길은 더욱 운치가 있다..

잠시후 길은 왕복 2차선 차도로 이어지고 30-40분을 내쳐 아스팔트 가장자리를 걸어 선유동으로 향한다..

송면 삼거리에서 향 좋은 버섯찌게로 점심을 하면서 남은 소곡주로 얼굴에 단청공양도 올리고..

  

 

송면 삼거리에서 2km를 걸어 선유동에 도착했다..

입구는 작은데 속은 알찬 곳 ..

 

 

입구 바위에 새겨진 선유동문..신선들이 놀았다는 계곡..

화양동 9곡 파천에서 술잔을 나눈 신선들이 2차를 이곳에서 하면서 놀았는지..

 

안내판이 없어 선경만 감상하고 굳이 이름을 밝혀보지 않는다..

꽃처럼 이름몰라도 향기만 좋으면 그뿐..

 

 

선유동의 물소리..

세상을 감쌀 정도는 아니지만 머리의 잡념을 씻을 정도는 되네..

물소리에 청량감을 느낀다..

 

 

계곡의 거리는 짧다..1km 남짓 걸으니 차도가 나온다..

돌아서 나오는 길..다시 선경으로 들어간다..

 

 

봄비에 촉촉히 젖은 이 길..

햇살이 돋을 양이면 새싹이 가득 솟아 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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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수두리 - 호탄리..왕복 14m

양산8경의 관광지인 송호리 솔밭에서 출발한다..

 

 

 

송호리 솔밭에 있는 여의정 정자..

여의봉..여의주..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에 그런 희망을 담은 말들이 생겨났겟지..

그런 희망과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듯이 여의정에는 탑과 부처가 서잇다.. 

 

 

솔밭을 벗어나 잠깐 수다떠는 사이 갈대 들판으로 변신한다..

 

 

함벽정인가..

사대부 대접을 받으려면 문집과 정자가 필수요건이라.. 풍광좋은 곳엔 정자가 즐비한데..

시대를 따라 사대부는 떠나갔고 지친 로시난테처럼 정자만 덩그러니 홀로 남아 백로, 왜가리와 벗하며 지낸다..

혹 주인에게 배운 풍월이라도 읊는지도..

 

 

 

수두리 잠수교를 지난다..

봄날씨에 눈 녹은 옥 같은 물이 제잘 제잘 활기차게 흐르고..

 

 

금강의 아름다움은 전염성이 강하다..

세멘트 노깡 스타일의 구조물도 금강을 가로지르니 명품이된다.. 

 

 

버들강아지가 피었네..

봄이 옴을 알리는 전령..봄이 오네.. 봄이 와..소리 높이 외친다..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 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 꺼나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강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 

 

 

아지랑이 매복한 갈대 우거진 길을 앓는 듯이 걷는다는 호랑이의 보행속도로 어슬렁 덜렁 호탄교를 향해 간다..  

 

 

천렵하기 좋은 호탄교 아래는 호탄천과 금강이 합류하여 우측길로 우회하여 다리를 건너 제방을 따라 호탄리 작두골로 향한다..

 

 

호탄..범여울..같은 지명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곳의 유래는 범이 겨울에 부모를 위해 딸기를 구한 효자를 등에 태우고 건에 준 곳이라 하여 호탄이란다..

요즘에는 딸기 효자되기는 손쉬운 시대인데, 보호해주는 호랑이 씨가 말라서 효자도 드문건지..

 

 

호탄에서 겁도 없이 말이 갈기를 쳐밖고 물을 마신다..

하여 이름도 갈기산..

 

갈기산 바라보며 강변에 앉아 점심을 든다..

점심후에

강건너 봄이 오듯..읊조리는 노래가사에 귀 기울여본다..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 없이 그리움 말 없이 말 없이 흐르는 구나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 꺼나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물 흐르듯 나부끼네..

 

 

돌아오는 길..

강변에..갈대밭에..제방에..매복했던 아지랭이의 습격을 받았다..

어찔 어찔..눈을 현혹하는 봄 기운에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인다..

 

 

 

여강길에 걷기에 나섰다..

다시 찾은 강천마을 앞 풍경이 바뀌엇다..물억새..도꼬마리..강모래 아름다운 강길은 어딜 가고..

 

 

닷둔리 해돋이 산길을 걷는다..

처음 입구 찾느라 헤멨다..그러나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강변을 따라 걷는 벼랑길은 다시 걸어도 좋다..

 

 

이 장면이다..

저 왼편 바위쪽으로 붙어 가야하는데..우측 강변의 논뚜렁으로 가더니 모두 강변으로 내려섰다..

하도 자신잇게 가길래 오랜만에 다시온 나도 여강길에 새로운 코스가 신설된 줄 알앗다..

 

 

어찌되었건 강가를 걷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적어도 나에겐..

 

 

저 흥원창 앞 섬강의 물구비를 보고서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상상력과 투지로 자산 강모퉁이를 넘는다..

이곳에서 좌측의 섬강이 우측의 남한강 본류와 합류한다..이제 우리는 섬강을 따라 섬강교로 향한다.. 

 

 

흥원창 건너편 자산 아래를 지나고..

 

 

그래도 빙판길을 만나니 춤도 덩실 추어보고..

저기 보이는 섬강교를 향해 훠이 훠이 간다..

 

 

부랴 부랴 섬강교로 올라선다..후미는 아직도 섬강에서 룰루라라..

 

 

이 곳을 지나면 흥원창이다..

흥원창..조선시대 세곡을 모아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이른바 물류센타..

 

 

점심을 도리 마을회괸에서 부페식 아니 발우공양식으로 하고..여주 막걸리도 한잔 씩

 

 

도리에서 흔암리 넘어가는 아홉사리 과거길을 걷는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걷다보면

저도 모르게 흥얼 흥얼

아리랑 몇소절이 절로 나오고

어깨춤도 들썩거려지는

아홉사리 읍내 오일장길(임덕연 시인의 "아홉사리길" 중에서..)

 

시인의 예언대로 막걸리 기운에

우리도 노래가락이 절로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시인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강물 허리안고 도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아홉사리길 중에서) 이라 표현한다..

 

어찌보면 

여강 방어사령부에서 설치한 참호 속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아홉사리 길이 끝나는 내리막 길에서 방심하여 미끈덕하고 대자로 넘어졌다..

왕년에 배운 낙법덕분에 무사는 햇지만..

 

 

옆에서 본 장승이 껄껄 웃는다..

아직도 구만리같은 인생이 하초가 그리 부실해서야..

예끼..여보쇼..난 그래도 다리가 하나는 더 되오..

 

 

여기는 흔암리 쯤되는가..

따스한 봄날씨를 만끽하며 걷노라니 도보도 막바지를 향한다..

 

 

 

2월의 봄날을 상징하는 것들..말조개..빙편..십자가..솟데..

 

 

영동고속도로 다리밑을 통과하면 우만리 나루터..

 

다시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강이 되어 흐른다는 것은

작은 것들이 한데 얼려

낮은 곳으로 쭉 밀고 가는 것이다.

메마른 것들을 자꾸 가슴으로 안아 주는 일이다.

마침내 저 더러움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만리 나루터에 도착했다..

시인의 여드름 투성이 열일곱 시절을 안달나게 했던 소녀 같은 강물이 흐르던 그 나루터에..

 

우리도 지친 다리에 싱싱한 마음을 싣고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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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산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어득운리 어둔마을을 거쳐 안산동산성-우산봉-흔적골산-구암사로 돌아오는 6km의 산길..

 

魚得雲里..

아래 어득운리를 풀이한 문항 중 맞는 것을 고르시오? 

1) 운해에 노니는 고기를 잡는 동네라는 뜻의 장자적 의미의 지명이다..

2) 고기가 구름을 얻어 용으로 변한다는 풍수적 의미의 지명이다..

3) 단순히 산 밑에 있어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떠서 어둔 동네라는 순 우리말 어둔이를 한자로 표기한 뜻이다..

 

 

어둔이 마을의 소박한 모습..마침 대보름 직후의 넉넉한 풍광이 반사경에도 비쳐진다..

 

 

마을 뒷편 산성으로 가는 길..

 

 

이 산성은 공주, 연기, 유성의 접경지역에 위치..

백제의 성이니 유성지역이 무너지는 경우를 대비하여 공주 지역을 방어하기위한 산성이었으리라..

 

 

산성입구에 선 남녀 장승과 자녀 장승..자녀를 거느린 장승은 기발한 아이디어.

 

 

 

작은 산성을 휙 돌고 나오는 길..

눈 녹은 산길은 가을 낙엽이 그대로다..

 

 

 

 

이어 우산봉으로 향한다..솔 나무 고즈녁한 카펫 같은 길..

 

 

마지막 200여미터는 가파르다더니..우산봉 정상에 오르는 길..응달에 눈까지 남아 힘겹게 오른다..

정상에 앉아

유연히 앞산을 바라본다(悠然見南山)..

 

지난번 보지 못한 계룡산이다..

장군봉의 등줄기가 뚜렷하니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산 그림자..

 

꺽어들을 동녁 울타리의 국화는 어디에 잇는고?

 

 

우산봉을 내려오다..신선봉..갑하산으로 이어지는 식스팩같은 능선을 잠시 곁눈질한다...

 

 

흔적골산을 거쳐 구암사로 내려오는 길가...

동쪽 울타리에서 꺽인 국화가 오상고절로 존경 받으며 벽화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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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걷기..오늘은 정뱅이 마을에서 이어 걷기..

장승업표 매화 그림옆에서 카리스마 작열하는 이 누규..

 

 

 

언제보아도 멋진 정뱅이 벽화..

솔거표 소나무도 있다..새들의 비명횡사를 막기 위해 아래에 경고문 붙여놓도록..

  

 

오늘은 정뱅이-세편이-원정역- 원정교-무도리-삿갓집에 이르는 왕복 13km를 걸을 예정..  

 

 

두계천 상류를 향해 세편들을 걷는다..

세월의 수레바퀴 누가 세우랴..대지는 녹고 강물은 풀리고..

 

 

위왕산을 바라보고 원정역으로 가기위해 육교를 건넌다..

오늘의 포인트는 저기 보이는 위왕산..

 

 

원정마을로 가는 길..가로수와 교회첨탑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시대의 흐름을 어이 막으랴..원정분교도 폐교되엇다..

그 시절의 상징..승복이 어린이만 무심히 서잇다..애구..다리 아플텐데..그만 앉혀도 되겠구만..

 

 

 뒷골의 둥구나무..제법 동네의 연륜을 인증한다..

 

 

원정역도 문닫앗다..아예 입구도 막았다..역글씨의 영어 표기만 봐도 옛시절이 묻어난다..

 

 

 

 

원정역에서 돌아나오는 길..선로 무단금지에 걸려..

굴다리 아래 빙판을 이용해 선로를 통과한다..오리..꽥 꽥..

 

 

 두계천을 끼고 위왕산을 바라보며 오른편 구만이골을 지난다..

위왕산..

신도안의 수구막이 위치하여 신도안에 자리하고 있는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왕산(衛王山) 혹은 위왕산(爲王山)으로 부른다고 한다. 신도안 부근의 모든 산들이 신도안을 향해 굽히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이 산만은 신도안을 등지고 있는데 그것은 수구막이에서 호위 대장이 말을 탄 자세로 외곽을 경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던가.

 

 

구만이골 부근에서 두계천 보를 건넌다..개천따라 걷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고 호남선 철도도 지난다..

 

 

위왕산을 등지고 무도리를 향해 걷는다..

무도리..물이 돌아 나가는 곳이라 해서 무도리인가?

 

 

무도리 경로당에서 인심좋게 점심장소를 빌려주셧다..

따뜻한 방에서 콩나물라면 잘먹고..둘러보니..

방안에 고추 싹이 이쁘게 잘 자랐다..관광가는 날 손꼽아 기다리시고..

 

 

돼지 소 닭 단란하게 키우던 시골에..구제역으로 날벼락이니..

 

 

점심 식사후 또다시 보를 건너..호남고속도로 옆 계룡휴게소 쪽으로 간다.. 

 

 

 

오늘의 하일라이트..

이런 멋진 길이 숨어잇었다니..두게천의 갈대와 위왕산의 자태가 어우러진 환상의 포인트...

 

 

다시 호남고속도로를 지나..최종목적지 삿갓집에 도달하여..회군한다..

 

 

돌아나오는 길에 중미 마을을 지난다..

고목과 돌담..위왕산이 한세트로 이루어진 오래된 풍광..

 

 

다시 두계천을 되돌아 나와 세편이를 지나 정뱅이 마을로 향한다..

봄이 오기를 갈구하는 듯 합창하면서 걷는 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다시 돌아온 정뱅이..

난초 지초 홍매화와 어우러진다..

지초와 난초 그려진 벽에 서잇기만 해도 마치 향기와 더불어 동화되는 듯..

꽃은 향기로 비우고 나비는 춤으로 비운다던가..

오늘의 걷기 난향처럼 향기로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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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칠성수력발전소 부근 산막이 옛길..

주차장 출발길에 선 장승이 시 한수를 선사하네..

 

사오랭이 지나 괴강물은

물빛 산그림자로 흔들린다..

 

배암같은 길

산허리 감고 돌아 어디로 가는가?

 

 

얼마 걷지 않아 연리지 나무에 도착..

100번 방문하면 연리지 사랑된다고 상업성 멘트를 붙여놓았네..

 

백낙천이 당 현종과 양귀지의 사랑을 장한가로 읊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가지가 붙은 연리지..날개가 붙은 비익조..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란 신들의 질투로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아서 다치고 또 다친다..

 

 

그래도 사랑을 골백번 외치면 산다..

사랑..사랑..누가 말햇나..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어쨌거나 사랑..이 얼마나 따스하고 사랑스런 말인가..

나도 사랑해요..소리가 절로 나온다..

 

 

속리산에서 화양구곡 등을 거쳐 내려오는 달천을 이곳에 이르면 괴강이라 부르고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부근의 잘록한 허리를 막아 칠성댐 수력발전소를 만들었다..

이 바람에 원래 노수신 적소가 잇던 연하구곡 등은 물에 잠기고 주민들이 산중턱으로 개설한 통로가 산막이 옛길이 되었다는..

이 강물은 흘러 흘러 충주 탄금대 부근에서 충주호에 장기간 숙성된 영월의 동강, 서강 물과 합류하여 남한강 본류를 이룬다...

 

 

출렁다리에서 모처럼 아해들처럼 객기도 부려보고..공연히 비명도 질러 남정네 심기도 흔들어보고..

 

 

정갈한 흙길을 따라 룰루랄라..잘 간다..

강를 끼고 도는 흙길..젤루 좋아하는 길..

 

 

망세루에 선 사람..강..빙설..소나무..군선도(群仙圖)가 따로 없다..

 

 

망세루 부근에서  슬쩍 등산로로 향하네..제법 가파르게 오르는데..

 

 

시험문제가 출제된다..

힘들고 위험한 길이냐..편안하고 완만한 길이냐..

출제 의도에 보상이 제시되지 않았고, 종교시험이 아닌 고로..

당근 모두 우측 길로 간다..

 

 

등잔봉에서 땀을 식히고 바라본 달천의 물도리동..

달천과 군자산..등잔봉과 천장봉..

우리의 강..산은 서로 조화 타협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낸다..

등잔봉에서 잠시 괴강을 바라보며 꼬냑 한잔으로 마음의 등불을 밝혀본다.. 

 

 

강을 끼고 능선을 따라 천하를 아우르는 기분으로 걷는 느낌..조조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한반도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한반도 지형을 닮지 않았어도 한반도사랑을 담뿍 눈에 담고 간다..

 

 

등잔봉-전망대-천장봉을 지나 산막이옛길 표시 방향으로 내려가다..

정부인 묘소 앞에 널부러져 점심식사를 한다..

술이 몇가지 인지..매실주,오디주,왕주에다가 살인마주(살모사+인삼+마늘+석류+등등)에 취기만땅..

 

 

하산하니 저 멀리 기와집이 보이는데..

저곳이 노수신 적소라고는 생각못하고 우측 임도를 따라 가면 된다고 생각하여 알바를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노수신 적소는 연하9곡에 위치 하였는데 댐설치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이곳으로 옮겼단다..

 

 

어쨌거나 노수신 대감의 은공으로 기대하지 않앗던 좋은 임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노수신..그는 명종-선조연간의 선비로 명종시절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였고 선조연간에는 영의정에 이르렀다..

적소란 귀양처인데 웬 기와집인가 했더니

그의 10세손 노성도가 이곳을 기려 기와집을 짓고 수월정이란 현판도 달고 관리하면서 연하구곡의 경치를 즐겼단다..

 

 

산막이 마을 입구에서 회군한다..

이 임도의 끝이 어딘지는 다음 기회의 연구과제..꽃 필때 천장봉-삼성산 - 임도로 회귀 할 수도 잇고..

옛길-임도 끝 - 회귀-적소 나루터-도강-갈론게곡으로 짜도 좋을 것 같다..

 

 

다시 돌아온 노수신 적소 부근.. 이곳만의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부근 막걸리집에 들렀다..오뎅에 막걸리..젓가락장단..

웃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친절한 산막씨..

막거리에 배부른 사람 불러 세우네..여기좀 봐유~~

 

 

 

아름답고..아름다운지고..

그냥보아도 아름다운데..막걸리까지 도와주니 정말 아름다운지고..

 

 

지게위에 얹힌 시도 읽고..호랑이와 같이 웃어도 보고..앉은뱅이 약수도 마셔보고..

 

 

요즘의 대세는 나무데크인가 보다..어지간한 코스엔 다 설치되엇네..

 

 

19금이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사목..

에로틱하신가?

 

 

이게 로맨틱하다..괴강호를 바라보며 그대와 그네를 탄다면..

 

 

오늘의 기분을 시가 대변한다..

산이 내게 걸어온다..가쁜 숨소리를 내며..

 

 

오늘 걸은 길..

주차장-노루샘-등잔봉-천장봉-노수신적소 - 임도- 산막이 마을 입구 - 괴산호반 데크- 망세루-노루샘-주차장 12km

 

 

날 좀 봐유~ 웠뗬슈~~좋았슈?

껄껄 웃는 친절한 장승씨..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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