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투표소에 갔더니 아침 6시 반에도 사람들이 나라비를 섰다..
안전거리 두고 서서 비닐장갑 끼고 들어가 투표하는 풍경..역사적 유물이 될 것같다..
"지시경제"로 나라 경제를 꼬꾸라뜨린 정권이 코로나 정국에서는 "지시규제"가 강점이 되었네
이런 착시현상때문에 미래의 경제를 또 "지시경제"정권이 맡으면 나라의 장래는 어찌되려나..
"경기가 거지같다"는 서민들의 탄식은 해소될 수 있을까?
일찍 투표를 마치고 대청호로 향한다..
내비에 "관동묘려"를 치고 간다...
그러나 그 직전 삼거리 마산동 정자 앞에 차를 대고 은골길을 따라 관동묘려로를 거쳐 대청호 오백리 3구간을 걸을 예정이다..
산도화가 연두 신록과 어울린다..
새색시 옷 색깔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색깔이다..
노란 유채꽃을 바라보며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면 미륵원지에 닿는다..
고려말 조선초 1332- 1440 110년간 황씨 3대가 무료 사설 여관을 운영했단다..
현대적 여행 숙소가 없던 시절..길손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큰 공덕이다..
그러나 재원이 부족하면 문닫는 법..
그 뒤에는 남루를 지어 길손에게 더위를 잠시 피해가는 장소를 제공했단다..
지금은 출입구를 닫아 들어가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런 봉사활동을 꽃다운 행동이라고 한다..
적덕의 결과가 발복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몇백년이 지나니 잊혀지고 마는구나..
적어도 여행다닐때 날씨 복은 있겠지??
아스팔트 길이 아쉬울 뿐이다..
요런 걷기좋은 길을 포장할 때는 가장자리 1미터는 흙길로 시공하면 어떨까?
틈틈히 산도화가 나타나 2주뒤 복사꽃 걷기 잊지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네..
유조비 묘소 입구..
유씨할머니 묘라는 뜻..
은진 송씨는 중국 송나라 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들이란다..
그 후손 중 송대원이 회덕에 처음으로 들어와 입향조로 불린다..
유조비는 입향조의 5세손 송극기의 부인이고 쌍청당 송유의 모친이다.
회덕 송씨 집안의 현존 최고 어른 묘소인가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배달민족이라는 주장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 김씨는 흉노 휴도왕 김일제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김해 김씨 김해 허씨는 바다로 들어온 집안이고, 석씨도 해외에게 들어왔고, 화산 이씨는 베트남 왕족출신이고..공씨는 공자 후손이라고 하니..ㅎ
관동묘려에는 벚꽃이 지고 있었다..
왜 은진 송씨를 회덕 송씨라고 부르는가?
고려 공민왕때 송극기의 부인 고흥 유씨가 22살 때 남편이 죽자, 재가하라는 친정부모의 말을 거부하고
어린 아기를 업고 500리를 걸어 제발로 회덕 시댁을 찾아 와서 시부모 잘 모시고 아기를 잘 길렀으니
그 아기가 쌍천당 송유이다..
그래서 효종때 열려 정려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
이야기를 분석해보면, 어디서 들은 이야기와 비슷하다..
광산 김씨 사계 김장생의 7대조비 양천 허씨 할머니 스토리와 닮앗네..
그녀도 조선 초 개성에서 연산까지 아기를 업고 5백리를 걸어 제발로 시집으로 와 아들을 훌륭히 키웟단다..
(http://blog.daum.net/servan/6349929 참조)
요즘 시월드 싫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이야기다..
1. 고려시대는 남편이 죽으면 재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 조선 시대 들어오면서 유교가 국교가 되자, 여성들도 유교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햇다는 것이다.
이래서 이데올로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사람을 세뇌하고, 인간의 판단력을 몇백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제 옳은 것이 오늘도 옳다는 법은 없으며, 오늘 옳은 것이 내일도 옳다고 장담하지마라
하무라비 법전도 한때는 가장 진보적인 법률이엇다..
그녀가 빛난 것은 오백리를 업고 걸어와서 키운 아들 쌍천당 송유의 후손들이 번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 은진송씨는 회덕 송씨라고 불린다..
관동묘려는 회덕 송씨를 일으킨 고흥 류씨를 기리는 사당이다.
추원사로 가는 자부송길이 아름답다..
회덕 송씨들은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시절 대전 인근의 광산 김씨, 여흥 민씨 들과 연합하여 노론 최대 파벌을 형성하며
효종- 숙종 연간에 최고의 성세를 이룬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은 이때 생긴 말이다.
할먼네 식당 튤립이 이쁘다..
여기서 보니 식장산도 우람하다..
임도길로 올라간다..
그런데 대청호 오백리 길 표지가 없다..
잘 가고 잇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길은 좋다..
하지만 이 좋은 길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이리저리 방황하다 돌아선다..
표지판도 없고 관리도 안되고..그저 말만 요란한 대청호 오백리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관동묘려의 모든 벚꽃이 나와 엎드려 환송한다..
참 송구하다..
대청호 참 아름다운 호수다..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진다..
고로 대청(大淸)이다..
대청호 걷기 코스는
대전시가 주관하는 대청호반길과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대청호 오백리길이 있는데,
편의에 따라 서로겹치기도 한다..
대청호 오백리 3구간의 모습은
초창기에는 위 지도처럼 관동묘려- 마산동산성 - 양구례로 이어지는 노선이더니,
요즘 소개되는 것을 보면 아래 처럼 양구례 - 마산동 삼거리로 직선화되고, 마산동산성과 관동묘려는 각각 돌아 나오는 식으로 정리된 것 같다..
즉 관동묘려 - 마산동 산성 구간은 일부 매니아들만 입소문으로 가는 탐험로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