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바위(입암)을 지나 입암리 마을을 걸어 연오랑 세오녀 공원을 향해 간다..

 

입암리를 지나면 차도를 좀 걸어서 다시 해변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좀 성급하게 들어갔더니 길이 막혔네..그래서 넘어간다..

 

정자에 앉아 오이도 먹고..좀 쉬고..

내 스타일대로 하면 정자에서 한숨자고 가야 하는데..

 

연오랑 세오녀 공원이 보인다..

찔레꽃은 님그려 바다만 바라본다..

 

연오랑 세오녀 자세한 사연은 https://blog.daum.net/servan/6351870 를 참조하시라..

 

 

해당화도 피고 지고..

 

지난번에 왔었기에 오늘은 단호하게 일월대를 통과해 도구해수욕장으로 직행한다..

 

송가인의 장미꽃의 전설은 여기서도 아름답다..

 

도구해수욕장이 보인다..

 

하면된다..

박통1의 유명한 구호..를 만난다..

가정집 가훈인가하고 자세히 보니, 어촌계 사훈인가보다..ㅎㅎ

 

피곤하고 졸리니 그늘좋은 들마루만 눈에 들어온다..

 

 

오늘길은  접시꽃길로 명명되었다..

 

 

하면된다의 전설..포항제철이 보이는 테트라포트 위에 해태공들이 낚시삼매에 빠졌다..

 

 

임곡리를 지난다..

이 동네 소는 눈빛이 살아있네..ㅎ

 

 

옛날 옛적 신라 아달라왕 시절 알콩달콩 살아가던 연오랑과 세오녀..

 

어느 날 연오랑이 바위 타고 사라진다..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사라진다..

 

그들은 왜 땅에서 만나 행복하게 산다..

그러자 신라 땅에서는 해가 사라졌다..

 

그러자, 신라에서 왜로 사람을 보내 사정사정하니 세오녀가 짠 신비한 비단을 보내주어 도기야에서 제사를 지내니 해가 다시 나타났다.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연오랑을 불을 다루는 제철기술자, 세오녀는 섬유기술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의 왜국행은 집단 기술자 탈출사건이고, 그 바람에 신라는 곤경에 처하고, 다시 제철기술을 설명한 비단을 도면을 돌려보내 주자, 이를 연구해서 다시 제철 대장간의 불이 밝혀졌다..이런 야그 올시다..전설따라 삼천리~~ 오늘 구라는 여그까지 올시다..ㅎ

 

세오녀의 비단을 놓고 제사지내던 해변이 도기야인데, 도기야는 도구해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해를 맞이한다는 영일(迎日)의 지명이 생겨났다..

 

도구해수욕장이 나타나자 일행은 신을 벗고 맨발로 해변을 걸어간다..

 

하지만, 정식 코스는 해변이 아니라 이 솔숲길이다..

 

뭐..많이 걸었으니 보상으로 바닷가를 걸어가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운 것같다..

 

해를 다시 맞이한 포항 영일만에 제철기술을 새로 도입하는 용광로의 불을 지핀 포항제철이 들어선 것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날이다..

 

그렇게 도구해수욕장에서 오늘 걷기를 종료한다..

 

<오늘 걷기> 발산항 - 흥환해수욕장 - 먹바위 - 선바위 - 연오랑 세오녀공원 - 임곡리 - 도구해수욕장 약 9km

 

걷기 종료후 드림빌더가 서둘러 스페이스워크로 가자고 재촉한다..

가는 길에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만났다..

 

환호공원으로 가는 길에 차가 엄청 막힌다..

많은 차가 스페이스워크로 몰려드는 모양이다..

멀리서 보니 롤러스케이트 코스를 걸어가는 모양새다..아찔하겟다..

독일의 어느 제철도시가 제철소가 폐업한뒤  이런 철구조물을 세워 관광객을 끌어 모으며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데,

포항제철은 미리 앞당겨 117억을 들여 건설해서 시에 기부하여 인심을 쓴다..ㅎ

이런 것도 연오랑 세오녀의 나비효과일까??

 

그러나, 날도 기울고 차도 밀리고..해서, 다행히(??) 차를 돌려 죽도시장으로 향했다..ㅎ

 

수퍼맨도 아니고.. 오만데 다 다닐 군번도 아니고..ㅎ

죽도시장에서 먹거리 사들고 간다..

 

향화도선착장에서 고창 병바위까지는 50분거리..

내비에 "아산초등학교"를 치고 간다.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학교를 돌아가면 두암초당이 있는 두락암이 나온다..

 

 

암봉을 파고 지은 정자..두암초당은 신비함을 준다..

 

이길은 고창 질마재 100리길 2코스 복분자풍천장어길 도중에 있다.

 

그러나, 두암초당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물론 안내표지도 없다) 방황하다가, 

그냥 병바위부터 가기로 했다.

 

병바위로 가는 길은 짧지만 솔바람 좋은 오솔길이다..

 

여기서 보니 신선의 술병같이 보인다.

 

 

 

병바위에서 동네 탐방객을 만난 김에 두암초당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오솔길이 있다고 한다..

물론 병바위 - 소반바위 - 두락암- 두암초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는데, 초보자가 가기는 험하다고 한다.

내가 누구냐?

그래도 경력10년의 걷기꾼인데..ㅎ

 

병바위 건너편 특이한 봉우리가 눈에 밟힌다..

선운산 천마봉?? 아니 안장바위란다..

 

신선의 술병 옆에 주안상 격인 소반바위가 보인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가파르고 좁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소반바위에 올라서니 병바위는 병이 아니었다..

그냥 신선의 짱돌??  ㅎㅎ

신선이 술마실 떄 방해하면 집어던지기 딱 좋은 모습니다..ㅎ

 

고소공포증 몰려오기 전에 얼른 암릉을 따라 이동한다..

 

두락암(전좌바위)이 보인다.

두락암??

바위 모양이 쌀을 세는 말(斗)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말바위..

 

두락암 가는 길은 내리막에 미끄러워 조심해서 가야한다.

두락암 정상에 오르려면 줄잡고 힘좀 써야 한다.

 

정상에 서면 안장바위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다..ㅎ

 

두암초당으로 가려면 뒤로 다시와서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하산해야 한다..

 

볼때 마다 진기한 생각이 든다.

절벽를 파고 만든듯한 느낌..

 

두암초당..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 1872-1942)가 썼다.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인 1928년  병바위 실경을 "호암실경도"라는 제목으로 그린 사람이다.

 

 

두암초당 내력을 보자.

원래 조선 명종때 하서 김인후의 제자인 호암(壺巖) 변성온과 인천(仁川)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병바위(호암) 근처에 호암초당을 짓고 소요했다. 그 인연으로 근처 강이름도 주진천에서 인천강으로 바뀌었단다.   

 

<두암초당기>

 

그뒤 호암의 5대손 변동빈이 선조들을 기려 이곳으로 옮겨 두암초당을 짓고, 아래에는 영모정을 지엇다.  

영, 정조 때 사람 황윤석(1729-1791)이 지은 "두암초당기"를 보면,

 

(두락암) 정상은 방정하여 웅대하였으며 그 바닥은 곧 막히고 굽어져서 마치 자루 같았다. 이런 이유로 두락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락암의 허리에는 큰 굴이 있었는데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일찍이 두암에 대해 생각했는데 저울과 저울추가 있어 두 별이 옳음과 같구나! 웅대한 자루는 오히려 이 집과 격이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에 바위가 저울과 저울추와 함께 평형을 이루는구나! 사물이 정말로 이치에 맞다.

마음 또한 이러할지니 오직 사물에 응하여 얻어지는 평안함이 천하의 가장 큰 안락함이다.

고로 주자는 일찍이 사람의 마음을 논하면서 말하기를 마음은 저울추의 평평함과 같다고 했다.

이는 성인과 범인의 본지(本志)이고 전체 대용(全體大用)인고로 또한 당연한 일이다.

경(敬)으로써 본성을 보존하고 살피어서 어둠에서도 잃지 않은 연후에 평안이 있다

https://blog.naver.com/bsnmp/120031012388

 

건축당시 5대손 변동빈이 읊은 원운(原韻) 시 현판..

두락암(斗洛巖)에 초당 하나 있으니
오래된 버드나무 은밀하게 차가운 언덕을 지키네

 

구름 안개는 피어나 발우리를 만들고
초목을 거슬러 오르니 지팡이와 오두막집에는 향기 피어나는구나

 

그뒤 두암초당은 여러차례 중건되면서 1954년에 현재 모습으로 재건립되엇다.

 

산고수장(山高水長) 후학(後學) 김정회 보정(普亭)

 

산처럼 높고 물처럼 유유한 사람의 인품을 표현한 글이다.

이 글씨는 구한말 이 고장의 서예가 보정 김정회가 썼다.

그는 해강 김규진으로부터 서화를 배웠다..

해강 김규진은 고종 때의 서예가이자 최초의 어전 사진사였다..

***

산고수장이라는 말로 표현한 호암 변성온은 어떤 성격의 사람일까?

전하는 일화..

어느 날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발걸음을 오히려 더 중후하게 하여 평상시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변화에 대처할 줄 모른다며 나무랐다. 

이때 변성온이 말하기를 “비가 내리는데 인가(人家)까지 가려면 멀었다.

새처럼 빠르게 날아도 결국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비를 피하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발걸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보다는 평상시 태도를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두암초당 중건기..

산은 '호암'이고 물은 '인천'인데 호남의 명승지에 일찍이 양 선생이 사셧는데 형은 호암이요 동생은 인천으로 우리 동방에 은덕 군자이자 아울러 유림의 으뜸이었다

바위의 곁에 금반 모양의 땅이 있었는데 호암, 인천 양선생의 옛날 여묘살이 했던 곳이다. 

여묘가 헐어서 집이 되었는데 집의 이름은 영모였다. 이는 양 선생의 부모에 대한 효를 생각하는 집이다. 

이후 당이 철거되고 이내 무덤이 되었는데 호암선생의 옷과 신발을 묻었던 장소가 되었다.

선생의 오세 손 평암공이 말하기를 두락암으로 당을 옮기지 않음은 불가한 일이라고 하였다.

땅의 모양이나 산세는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제사지내고 수양하는 장소로는 옛날의 집과 같은 맥락이었다. 또 선생의 아버지 첨추공의 호가 두암인데 산과 바위 돌이 모두 함께 의탁하는 곳이었다. 

 

http://banam.invil.org/index.html?menuno=2313&lnb=30105

 

***

위 중건기 작성년이 공부자 2482년으로 서기로 환산하면 1931년이다..

그 내용을 보면, 원래 병바위와 두락암 사이 금반모양의 땅에  호암초당이 있었는데 유실되었고, 5대손 동빈이 두락암 현재 자리에 두암초당을 지었던 것이다.

 

두암초당 상량문..

1935년 3월 24일 작성..

 

스승 하서 김인후가 제자인 호암에게 준 시..

 

不覺春風入小桃 
淸晨植杖立東臯 
尊中有酒堪傳白 
紙上無詩可和陶

어느덧 봄바람이 복사꽃에 부는 시절이라
맑은 새벽 막대 짚고 동쪽 물가에 서성인다
술동이엔 이백에게 전할 술이 있으나
종이엔 도연명을 화답할 시가 없구나.

 

酒以深壺醉 
詩非淺興吟 
燈花簷外雨 
與子一時心

술이란 항아리 비우면 취하기 마련이지만
시는 얕은 흥으로 읊을 수 없네
등불아래 처마 밖 빗소리 들으며
그대와 함께 이 한 때의 회포나 풀어보세

 

***

스승이 제자 호암의 아호를 술병(壺)에 비유한 위트넘치는 시를 지어 주었다..

하서 김인후는 인종 때의 성리학자로 퇴계와 교유하였고, 인종 사후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참고 하서 김인후 관련 글  https://blog.daum.net/servan/6349861 )

 

 

퇴계 이황이 호암에게 준 시를 적은 현판..

호암의 스승인 하서 김인후 사망후 호암은 스승과 교유하였던 퇴계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河西蓬館舊同遊
欻去修文白玉樓
今日逢君門下士
話君終夕涕橫流

하서는 성균관에서 옛날 함께 교유했던 친구인데
글을 연구하다 홀연 백옥루로 가셨네
금일 그대 문하 선비를 만나
밤새 그대 이야기 하며흐르는 눈물을 닦았다오


佳山佳水日徘徊
仁智吾猶未竭才
敢叩師門有何訣
請將餘論賁江臺

아름다운 산과 좋은 물에 매일 노닐어도
어짐과 지혜는 내 재능으로 얻기 어렵네
감히 제자 되기를 청하나 무슨 비결이 있겠는가?
바라노니 장차 못다한 논의는 강대(천연대)에서 마무리하세

***

조선 시대 전기에는 영, 호남의 선비들이 자유로이 교류하며 지냈음을 알겠다..

 

 

조선말 철종, 고종때 성리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도 두암초당에 들리고 현판과 시를 남겼다.

 

桂樹之稠山色幽 
依然招隱琴中遊 
危梯優入三層壁 
滴霤平連九曲洲

계수나무 빽빽하여 산 빛이 그윽하니

의연히 은자(隱者)를 초대해 거문고를 퉁기며 노네
위험한 사다리 건너 삼층벽에 어렵지 않게 오르니

처마의 빗방울은 구곡주(九曲洲)에 떨어지네 

 

고산경행(高山景行)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나오는 “높은 산처럼 우러르고 큰 길처럼 따라간다. 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귀절에서 따왔다. 고인의 큰 덕행(德行)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정자의 뒷모습..

 

만정 김소희 명창이 15세 때인 1932년경 이 곳에서 노래 연습을 하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명창 송만갑에게 심청가와 흥보가를 배워 남원 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18세에는 정정열로부터 춘향가와 수궁가를 배워 소녀명창소리를 들었다. 

그의 제자는 안향련, 안숙선, 신영희 등이다.

 

두암정자에서 내려오면서 위 사진 바로 좌측에 오솔길이 있었다.

표시는 없다..

 

 

경관 관리 마인드가 있다면 적어도 전신주는 지하로 매설하기를..

 

<오늘 걷기> 고창 아산초등학교 주차장 - 병바위 - 소반바위 - 두락암 - 두암초당 - 주차장 약 2km

 

작지만 맵고, 좁지만 질 좋은  풍광을 만끽하니, 가성비 높은 경관이다..ㅎ

 

돌아오는 길에 병바위가 변한다.

사람모습이다..

이 동네 노인들은 이승만 얼굴을 닮았다고 이승만 바위라고 부른단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승만이 누군지 모르겠지??

이승기 형쯤으로 알려나?? ㅎㅎ

 

전체를 찍은 사진을 보니 금반옥호(金盤玉壺), 선인취와(仙人醉臥)의 명당 소리가 나올법 하다..

금 소반에 옥술병을 차려놓고 대취한 신선이 누워있는 형국..

요즘 화가의 눈에도 아래처럼 그려진다.

차제에 선운산  낙조대, 천마봉을 걷고, 질마재 2코스도 걷는 기회를 기약해봐야 겠다..

 

연하협구름다리 선착장에서 내려 바로 양반길 출렁다리를 건너 양반길 2코스를 걷는다.

옥녀계곡이나 선유대에서 회군할 생각이다.

 

멀리서 보면 그림같은 풍경이다.

가까이서 보면 심오하거나 심드렁하겠지..ㅎ

 

양반길 전망대 오르다가 돌아보면 연하협 구름다리가 더 멋지게 보인다.

 

 

충청도 양반길이라 하니, 어떤 사람들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보러가던 길이냐고 묻는다.

산막이옛길은 산으로 막혀있는 지형이라 길은 커녕 도주가 어려워 귀양가는 길이었다.

 

 

일방으로 통과할때는 몰랏는데, 다시 돌아올 걸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큰 업다운을 2-3번해서 옥녀계곡, 큰성골에 도착..

체력을 생각해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한다.

먼저 각시와신랑길을 걷고 왔다면 선유대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분은 왕년에 걸었던 블러그 참고하시라.

https://blog.daum.net/servan/6350595

 

 

연하협구름다리로 돌아와서 보니 산막이옛길 노래도 있나보다.ㅎ

https://youtu.be/rwuYHrGkvzo

각시와신랑길을 걷기위해 구름다리를 건너간다.

신랑바위 유람을 마친 배가 돌아오고 잇다.

여기서 왕복 3.2km

 

그런데, 예상외로 오솔길이 참 정겹고 좋다.

마치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기도 하다.

 

산막이옛길 노래 가사에도 등장하는 찔레꽃이 오늘 만개하였다.

역대 찔레꽃 노래 중에 제일 경쾌하다는..ㅎ

 

 

철판데크길도 잘 만들었다.

그때 멀리 각시바위가 보인다.

전에는 그냥 선유대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전에 걸었을 때 찍은 사진을 참고로 올린다.

 

 

갑자기 너덜길이 나타난다.

문득 어느 섬에 온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

배를 타고 와서 벼루길을 걷다가 너덜길이 나타나는..ㅎ

 

잘 빌지 않지만 여기서는 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러가지 소원을 마구 빌었다..ㅎ

 

원앙섬..

물이 적으면 백사장도 드러나는데, 오늘은 물이 가득//

 

신랑바위가 여기인가??하는 의구심을 잠재우는 한 단어...종점..

신랑바위 너머 풍경이 멋지다..

 

강 건너편 선유대 지역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좌측 신랑바위와 우측 각시바위가 한눈에 들어 온다.

명색이 신랑, 각시인데 둘을 만나게 하는 오작교나 노둣돌이라도 있어야 되는거 아닌겨~

노래로라도 만나게 해야겠다.

https://youtu.be/DQAU8t-HjK4

 

 

그때 유람선이 나타났다. 사진찍기 좋은 절묘한 시간에..

 

내마음 처럼 작약꽃이 활짝 피었다.

 

돌아온 연하협구름다리..

선착장에 줄선 인파..어차피 난 걸어간다..ㅎ

 

신랑바위- 연하협구름다리 - 산막이마을까지 3km 구간 충청도 양반길 1코스, 각시와 신랑길이다..

 

삼신바위가 삼신할매하고 같은겨~ 다른겨~

각시바위와 신랑바위가 맺어지지 못한 전설을 보면, 삼신할매 중매력이 별루 없는갑다..ㅎ

가만히 안내문을 읽어보니 삼신할매가 여기에 눌러 앉아 헤찰하다가 승천기회를 놓치고 바위로 강등되었다는 것 아님??

 

유람선이 연락부절로 다니는 길을 걷는 기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ㅎ

 

수월정에 도착..

산이 높다고 명산이 아니다.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다.

물이 깊다고 신령한 것이 아니다. 용이 살아야 신령하다.

 

그런 신선같고 용같은 인물이 노수신이다..

그는 명종 초기 문정왕후, 윤원형 집권기에 을사사화로 진도에 귀양가서 19년을 살았다.

정약용의 유배생활 18년보다 길었다.

그는 진도에서 오랜 세월동안 성리학과 양명학 등 학문에 매진하였다.

정약용과 달리 그에게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잇었다.

명종 20년 문정왕후가 죽자, 그는 이곳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된다.

선조가 즉위하자 복권되고, 선조 6년에는 우의정에 이르러 동서 분당을 막기위해 노력한다.

그의 나이 70세에 영의정에 임명된다. 

 

수월정 정자는 후손이 노수신의 적소생활을 기념하여 지은 것인데, 원위치는 연하협이지만, 괴산댐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산막이마을에 식당이 많다.

시원한 잔치국수로 허기를 달랜다.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타고 주차장이 있는 차돌바위선착장으로 돌아갈까 했는데..헐

사람이 엄청 줄섰다..

그래서 두다리로 해결하기로 했다..

 

오늘 배가 엄청 바쁘다..한번에 3척이 눈에 들어오네..ㅎ

 

처자도 개도 즐거운 길이다..ㅎ

흙아, 물아, 바람아

우리는 느그가 있은깨 안죽고 잘산다.

고맙다이~

 

이 시인할매를 삼신할매로 임명해야 쓰것다..ㅎ

 

<오늘 걷기> 연하협구름다리 - 양반길 출렁다리 - 양반길 2코스 옥녀계곡 왕복(2.5km) - 양반길 1코스 신랑바위 왕복(3.2km) - 수월정 - 산막이마을 선착장 - 입구 주차장  약 11km

 

 

전북순례길 2코스중 오늘은 <오도재 - 독촉골교> 까지 걸어야 하는데,

차량 편의상 차를 완주군 고산면 독촉골교 부근에 주차를 하고 거꾸러 걸어간다..

 

 

이길 햇볕 쨍쨍한 날 걷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마침 날이 흐리고 비온다는 예보가 있어 낙점..

 

오늘의 주제는 지천으로 핀 찔레꽃이다.

오기전에 미리 찔레꽃 노래 4곡이나 준비했다.

 

 

첫번째 넘버는 송가인 버전의 찔레꽃이다.

"찔레꽃 붉게 피이이는 남쪽 나아라 내 고오오향~"

소도 아는 노래다..

youtu.be/pgNo934yvIk

 

 

 

저멀리 오도재가 보인다..

 

 

이꽃은 해당화를 닮앗다.

육지에도 해당화가 피는가?

 

 

이제 독촉저수지에 가까워지자 길은 그윽해진다.

 

 

저수지를 감싸고 있는 찔레꽃

두번째 넘버는 이연실의 찔레꽃이다

https://youtu.be/uhL_-lQ78A8

 

배고파서 찔레꽃을 먹어본 세대는 아니다

보리고개 등 원초적 가난을 벗어나게 해준 선대에 감사드릴뿐이다.

 

달팽이 윙크하는 곳에 때죽나무 꽃이 오소소..

 

 

 

찔레꽃 3번째 넘버는 장사익의 찔레꽃이다..

https://youtu.be/dz_VM5UZVIM

 

찔레꽃은 왜 그리 서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삶이 힘들고 고달파서 그랬겠지..

 

 

4번째 넘버는 송문헌의 찔레꽃 피는 산길이다

youtu.be/LwSorXe8eGU

 

찔레꽃의 꽃말이 고독이란다.

그래서 노래들이 그리 슬펐나보다..

 

인근 벌통에 윙윙거리는 저넘들이 만드는 꿀은 찔레꿀이렸다.

맛이 궁금해진다.

 

 

오덕사가 가까워 오자 찔레꽃은 사라지고 금낭화가 주렁주렁 열렸다..

돈 주머니 찬듯 부티가 난다

 

 

잠시 오덕사에 들렀다가 절 입구 좌측에 있는 임도를 따라 오도재로 간다.

 

 

달팽이가 몰래 손짓하는 방향으로 올라 간다

 

 

가파른 계단 길과 잡초 우거진 길를 오르다 보면 금낭화가 지천이다.

 

 

여기가 금낭화의 고향인가보다

금낭화의 꽃말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돈주머니 들고 나를 따라 오겠다면 ok ㅎㅎ

 

 

비가 내려 더이상의 산행은 중단하고 하산한다.

 

빗속에서 찔레꽃 노래는 더 서럽게 들린다.

이제 찔레꽃에게도 웃음나는 노래 만들어 주자..

 

 

 

 

 

전북 지역 "아름다운 순례길" 걷기에 나섰다..

첫 출발을 완주 송광사로 잡앗다.

2구간이지만 잠벗을 위해 절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웅전을 향해가는데, 붉은 양귀비가 뜨겁게 환영한다..

 

송광사는 예전엔 백련사로 불렸단다..

순천 송광사를 중수한 보조국사 지눌선사가 지나가다가 대성지가 될 것을 예견하여 절이름을 송광사로 바꾸었고..

그 제자들이 대가람으로 키웠으나 불에 타고..이제는 아담한 절로..

 

 

 

보통..절에 가면 금강문이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여기는 금강문 천왕문이 다 있으니 격식을 제데로 갖춘 절이다..

금강문 글씨도 독특하다..

우관 김종범의 글씨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이분이 밀적금강역사이고, 왼쪽이 나라연금강역사이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는 문수보살을 수행않고 왜 여기 잇는가?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금강역사는 잡된 것을 깨부수는 역할이니

금강문을 지나면서 번뇌 망상의 삿된 기운을 깨부수고, 지혜로 불법을 배워가라는 교시를 주는 것이 아닐까?

 

 

 

포대화상도 동자들과 넉넉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염화시중에 미소..는 꽃을 보이자 꽃으로 응대한 것이다..

 

 

대웅전에 들어가 3배를 하며 장도의 축복을 기원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지??

일단 일주문을 나서니 바로 안내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달팽이가 가리키는 방향은  담장이어서 당황했다..

 

 

2코스는 송광사- 천호성지 27km..

보통사람이 걷기에는 먼 거리다..

더구나 나처럼 승용차를 주차하고 원점회귀하는 스타일에게는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왕복 10km 정도 걷고 원점회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연골 부상이후 많이 회복된 무릎에 감사할 뿐이다..

다친후에 절실히 깨달았다..

걷기야말로 축복인 것을!!

 

 

 

절 입구에 멋진 이팝나무를 보았다..

잘 가꾸면 이팝나무도 귀부인이 되는구나..

 

 

 

송광사 앞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2코스는 이어진다..

달팽이가 성의껏 안내한다...

 

 

길은 보도를 따라 3km를 가야한다..

땡볕에는 힘든 길이 되겠다..

 

 

 

 

그래도 장난감 자동차도 구경하면서 걸을 만하다..

 

 

딸바보집을 지나면 오성한옥마을 입구다..

 

 

갈 길이 머니 한옥마을 구경은 생략하고 외성정에 앉아 수분을 보충하고 숨을 돌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스갤러리가 묻는다..

 

 

그 물음이 건방져서(?) 우측 오스겔러리 쪽으로 가지 않고 좌측 오성제 둑방길로 간다..

농담이고..ㅎㅎ

우측은 차도이고, 좌측은 최근에 산책을 개설했기에..

 

 

참 시의절절하게 적재적소에 산책길을 잘 개설했다..

 

 

저멀리 오도재가 보인다..

 

 

 

호수 건너에 그 유명한 오스겔러리가 잇지만 나는 걷기 좋은 길로 가는게 좋다..

 

 

산책길 끝에는 좌측엔 전통찻집, 우측엔 베이커리가 유혹한다..

라온 베이커리로 간다..

 

 

 

서로 빵 하나씩 고르고 요구르트까지 시켜서 들고 좋은 자리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걷기에 여유와 낮잠을 생략하면 그것은 행군으로 전락한다..

난 걷는 도인이지, 행군하거나 국토행진자가 아니다..

 

 

요 좋은 자리 자지하고 한숨 잔다..ㅎ

오매 좋은거...ㅎ

 

 

 

오성한글다리 옆으로 오도재 올라가는 길이 있다.

오도재는 차가 못간다..

 

 

 

달팽이! 천천히 가란다..

지놈은 집을 지고 다니니 천천히 가다 해떨어져도 걱정이 없지만

걷기꾼은 해지기전 까지 임무를 완수해야한다..

 

 

 

더운거 빼고는 좋은 산길이 이어진다...

 

 

 

 

이 좋은 길을 달팽이처럼 느릿 느릿 걸어간다..

 

 

 

길은 점점 그윽해지고 고도는 올라간다

돌아보면 저 멀리 오성제가 아득하게 보이고

눈앞에는 오동꽃이 만개하였다..

 

 

 

임도 삼거리를 만나거든 달팽이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가라..

보수주의자라고 오른쪽으로 가면 개고생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ㅎ

 

 

요즘 갑천에서 보기 힘든 흰토끼풀이 지천이다..

 

 

마지막 구간은 오솔길..

오성제- 오도재 구간은 2.3km 정도..

오도재 고개마루에서 쉰다..

오도재??

이 산이 오두명산인데, 5개 머리의 까마귀 산이라는 뜻이란다..

이 오두명산에서 오두재 >> 오도재라는 말이 유래했단다..

 

 

여기서도 나무 표지판은 서래봉쪽을 가리키며 오덕사쪽이라 한다..

하지만, 달팽이는 다르다..달팽이 지시에 따라 내려가야 한다..

 

 

잠시 쉰뒤 나무에서 벌레들이 떨어지자, 얼릉 하산한다..

원상복귀..

돌아올 때 전통찻집에 들러 시원한 오미자 차를 주문하려다가 버스시간을 물어보니..3시간마다 다니는 버스가 30분뒤에 온다고 해서

주문않고 부리나케 호수산책길을 내려온다..

오성한옥마을 부근에서 네이버 지도로 검색하니 버스가 7정거장전 종점을 출발햇단다..

정말  포노사피엔스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오늘 걷기> 전북순례길 2코스 일부

 완주 송광사 - 오성한옥마을 - 오성제 산책길 - 라온카페 - 오도재 임도 - 오도재 - 오성한옥마을 약 8km 

 

<참고 관광용 걷기> 오성한옥마을 - 오성제 임도길 - 전통찻집 - 오도재 - 하산 - 라온카페 - 호수산책길 - 오스겔러리 - 오성 한옥마을  약 6km

 

<참고 임도 걷기>

라온카페 - 오도재 임도 - 오도재 - 하산시 첫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 서방산 임도로 하산 - 전통찻집 - 오성제 임도 - 오성한옥마을  <주의- 추후 답사 예정>

 



제주올레 걷기, 이번 주말 2,3코스를 걷는다..

올레 완주 끝무렵에 이곳을 걷는 이유는 길기 때문이다..

2코스 15km는 보통인데, 3코스 21km는 올레 시작 초기에는 나에게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꾸준한 걷기로 이젠 걷기 근육이 제법 붙었다..



2코스 시작은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한다..




시외버스 210번을 타고 광치기 해변에 내리자, 거세게 바람이 몰아친다..

그 바람속에 할망들이 감귤을 팔고 있다,..

좀 팔아주려는데 메고 가야할 무게를 생각해서 5000원짜리 절반을 3000원에 달라고 했더니, 6개를 빼고 다준다..

베낭이 묵지근해진다..



광치기??

물에 빠져 죽은 어부의 시체가 떠밀려오면 관에 넣는다...해서 관치기인데 발음이  광치기로 바뀌었다는..




광치기 해변 길 건너 통밭알 호수를 지나 식산봉으로 간다...



억새와 호수 그리고 일출봉...





식산봉 직전에 조랑말이 풀을 뜯고 있다..

조랑말과 일출봉은 제주 특허..




식산봉을 돌아 오조리로 간다..




남자, 여자 목욕하던 족지물..





오조리 기념비와 공적비..

그 중에 눈에 띄는 김평길 여사 기념비..

1925년 그는 35세 과부에 되어 50세까지 살면서 번 돈 200원을 유치원에 기부하엿단다..

가치가 천금보다 중하고 일대가 모두 헤택을 보고 있으니

그 이름을 영세토록 전하도록 이 돌을 훼손하지 말라..

200원의 현재가치를 따지면 약 1400만원 정도..


빛받는 마을 오조리에는 스스로 빛나는 사람들이 많다..





식산봉 황근은 보지 못했다..




일출봉 바라보며 억새 흐드러진 길을 걷는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만 제주로 모이는게 아니다..

철새도 제주에서 한철을 보낸다..



숙소 주인이 2코스 중간에 적당한 식당이 없으니 홍마트에서 김밥을 사가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될지 몰라 아예 출발지에서 김밥을 샀다..



가장 아름다운 올레 표지판..





감귤이 황금알처럼 주렁 주렁 열렷다..

감귤 수확도 한창이다..



오늘의 고지대..대수산봉 초입이다..

동백꽃이 피었다..

노래 한 소절 빠질 수가 없지..




베낭에 감귤을 가득 넣고 가는 길이라 무인판매대는 패스..



대수산봉에 오르니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출봉과 우도봉이 한 형제처럼 붙어있고..



섭지코지는 물방개들의 천국처럼 보인다..



돌아보면 한라산이 오름을 품어 안은 봉황의 나래를 펼치고 잇다..




대수산봉에서 내려와 가는 길에도 한라산이 계속 눈에 밟힌다..




혼인지 후문에 도착..






고.양,부 삼성과 혼인한 여인들의 고향 벽랑국은 어디일까?

벽랑?? 말 그대로 푸른 파도를 의미한다..

푸른 파도에 떠내려온 함..그 속에 여자..

전설이란 교묘한 수수께끼..





김종직의 탁라가..

김종직..그가 지은 조의제문은 항우가 의제를 죽인 사건에 빗대어 수양대군을 비판한 내용인데,  훗날 연산군에 의해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었다..

그가 제주에 온 적이 있었나??

아니다..그가 세조 11년(1465년, 35세 무렵) 2월 28일에 직산의 성환역참에서 숙박하다가 제주 토산물인 약품을 나라에 바치러 오는 김극수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날 밤에 제주의 풍토와 생산 물품에 대하여 이야기 듣고 감탄한 나머지 탁라가 14수를 지었다 한다..






사랑의 기다림..


추억, 기억 그리고

또 여행의 설레임을 그리워하다

만날 수 있어 약속하지 않아도..



제주 제2공항이 이곳 혼인지 부근에 예정된 모양이다..

땅이 수용될 사람들은 날벼락이겠지..

보상금으로는 대토를 구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제주땅 값 뒹국넘들이 천정부지로 만들어 났으니.. 



참 잘꾸어 놓은 집을 지나니 주인장의 맘씨에 웃음이 난다..

사랑과 화목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간새다리 담벼락 앞에서 주춤한다..

웬 담벼락??

아니 존엄한 환해장성이시다..




온평포구가 보인다..









온평포구 초입에 돌문어 볶음 광고에 필이 꽃힌 동행이 물어 물어 식당에 찾아갔다..


물엇다..어디서 왔느냐?

부산에서 왔단다..5년 임차해서..

해물볶음은 맛있다..

이 집의 장점 회 1인분도 판다..

상냥한 직원 말씀..8명이 와서 회 1인분 시켜 메뉴를 없애려고 한 적이 있단다..ㅎ

아니요.. 소신껏하세요..1인분 팔아야 혼자 걷는 올레꾼들 회맛을 볼수 있으니..

응원합니다!!

고기, 회..1인분 팔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식당의 변화를 선도하는 당신을..



식당의 글들이 맛깔난다..



"술을 멀리하라

술 먹는 친구를 멀리하라.."


술을 싫어하는 줄 알앗더니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자를 멀리하라"는 귀절이 잇으니 그런 것 아니고,,

"술먹구 남얘기 하는 자를 조심하라"

"술값 내일 준다는 자를 조심하라"는 것 보니

술을 적당히 매너있게 잘먹으라는 훈계..



식당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고 나니 아직 오후 3시..숙소가 3코스 5km를 걸어가면 길가에 있단다..

해서 더 걷기로 했다..


<2코스> 광치기 - 식산봉 -오조리 - 홍마트 - 대수산봉 - 온평포구  약 15km

거기다..3코스 5km 가면 <오늘 걷기>는 20k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