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바위에서 동네 탐방객을 만난 김에 두암초당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오솔길이 있다고 한다..
물론 병바위 - 소반바위 - 두락암- 두암초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는데, 초보자가 가기는 험하다고 한다.
내가 누구냐?
그래도 경력10년의 걷기꾼인데..ㅎ
병바위 건너편 특이한 봉우리가 눈에 밟힌다..
선운산 천마봉?? 아니 안장바위란다..
신선의 술병 옆에 주안상 격인 소반바위가 보인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가파르고 좁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소반바위에 올라서니 병바위는 병이 아니었다..
그냥 신선의 짱돌?? ㅎㅎ
신선이 술마실 떄 방해하면 집어던지기 딱 좋은 모습니다..ㅎ
고소공포증 몰려오기 전에 얼른 암릉을 따라 이동한다..
두락암(전좌바위)이 보인다.
두락암??
바위 모양이 쌀을 세는 말(斗)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말바위..
두락암 가는 길은 내리막에 미끄러워 조심해서 가야한다.
두락암 정상에 오르려면 줄잡고 힘좀 써야 한다.
정상에 서면 안장바위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다..ㅎ
두암초당으로 가려면 뒤로 다시와서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하산해야 한다..
볼때 마다 진기한 생각이 든다.
절벽를 파고 만든듯한 느낌..
두암초당..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 1872-1942)가 썼다.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인 1928년 병바위 실경을 "호암실경도"라는 제목으로 그린 사람이다.
두암초당 내력을 보자.
원래 조선 명종때 하서 김인후의 제자인 호암(壺巖) 변성온과 인천(仁川)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병바위(호암) 근처에 호암초당을 짓고 소요했다. 그 인연으로 근처 강이름도 주진천에서 인천강으로 바뀌었단다.
그뒤 호암의 5대손 변동빈이 선조들을 기려 이곳으로 옮겨 두암초당을 짓고, 아래에는 영모정을 지엇다.
영, 정조 때 사람 황윤석(1729-1791)이 지은 "두암초당기"를 보면,
(두락암) 정상은 방정하여 웅대하였으며 그 바닥은 곧 막히고 굽어져서 마치 자루 같았다. 이런 이유로 두락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락암의 허리에는 큰 굴이 있었는데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일찍이 두암에 대해 생각했는데 저울과 저울추가 있어 두 별이 옳음과 같구나! 웅대한 자루는 오히려 이 집과 격이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에 바위가 저울과 저울추와 함께 평형을 이루는구나! 사물이 정말로 이치에 맞다.
마음 또한 이러할지니 오직 사물에 응하여 얻어지는 평안함이 천하의 가장 큰 안락함이다.
고로 주자는 일찍이 사람의 마음을 논하면서 말하기를 마음은 저울추의 평평함과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