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째 밤 한 커플이 합류하여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 영실로 간다.

영실입구가 아닌 영실주차장에서 하차한다..

 

이런 철쭉천지를 만나리라고 생각했다..

영실주차장에서 영실까지 2km 를 걸어 간다.

싫으면 줄서서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고 가라..

 

영실에 서니 저 멀리 병풍바위가 반겨준다.

 

오늘은 영실- 윗세오름- 남벽 - 돈내코 약 13km를 걷는다..

 

오백나한..오늘도 무쟁삼매..

 

산사꽃도 이쁘게 피었다.

병풍바위로 많은 사람이 올라간다.

좋은 것은 광고하지 않아도 알아서 온다..

 

몇년전만 해도 한라산을 이리 자주 오리라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아이슬란드행이 막히자, 한라산이 대타로 떠올랐다.

그래서 인연이 어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실코스 장서는 날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부르는 철쭉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저 아래 영실이 아득하게 보인다..

 

외계인도 잘있는 것보니 이제는 귀화허가를 받았나 보다..ㅎ

 

이 아치는 어디 소속인가 했더니 백로담 남벽이었다는..그리고 실상은 아치도 아니고..

그러니 눈을 너무 믿지마시라..

어디 눈뿐인가?

유튜브도 함부로 믿지마라..

한강 청년의 죽음 둘러싸고 혹세무민하고, 거기에 휘둘려 헌금까지 하는 사람들 보면 "중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실제 눈으로 보면 능선따라 오르는 행렬이 장관이다.

재미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목숨을 건다.

하지만, 대의와 도를 위해서 목숨을 걸으라면??

 

고목나무에 꽃피었나??

 

이것?? 메갈의 효시인가??

메갈이 뭐냐고?? 모르면 넘어가구..ㅎ

 

 

윗세오름에 붉게 물들었다..

음...사진만큼은 아니네??

 

 

 

 

 

 

 

 

 

 

 

 

 

 

 

 

 

 

 

 

 

 

 

 

이 모습이다. 

철쭉과 남벽의 멋진 만남..

 

 

윗세오름, 선작지왓의 철쭉이 조릿대에서 밀려서 점차 줄어들고 있단다..

한라산 내에 말 방목을 금지하면서 조릿대가 번성하면서 고산지대까지 올라오고 있단다..

 

그러면 조릿대의 번성을 막고, 철쭉을 되살리기 위해 인간이 개입하여야 하는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둘러싸고 2가지 견해가 있다.

1) 자연 보호(conservation) 입장 - "인간과 자연"의 저자 조지 마시 같은 사람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지속가능한 균형을 주장했다. 적절히 자연 자원을 사용하고 균형을 위해 개입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2) 자연 보전(preservation) 입장 - 존 뮤어 등과 같이 철저히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거나 건딜지 않고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의 주장은 미국 국립공원의 설치와 기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입장은 1)번설 자연보호 입장인 것 같다. 그래선지 지나치게 자연개입이 많은 은 것 같다.

 

 

어리목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철쭉이 없네..

 

문리버의 생각은 이렇다

일단 자연은 자연에 맡겨라..

사람이 철쭉을 편애하여 조릿대를 벌채한다면 그것은 오만한 자연에 대한 개입이다.

조릿대가 한라산 토양에 맞고 침식을 막는데 기여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훔볼트적인 관점으로 조릿대의 번성과 철쭉의 쇠퇴가 어떤 현상에 기인하여 촉발되었고, 어떤 방안이 한라산의 보전에 유용한지 철저히 관찰, 검증을 거쳐 방안이 수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격물치지의 입장서서 훔볼트적 관찰과 검증을 하여 방안을 수립할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르면서 오만하기에 항상 문제를  악화시킨다.

자연도태된 황새를 복원한다고 다시 번성해 질수 없는 것과 같다.

 

왕년의 철쭉의 번성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운대로 두어라..

부처님도 석가족의 멸망을 아픔으로 바라보았다더라..

 

노루샘에서 물을 보충하고 간다.

이런 고지대에서 물이 나오니 신기하고 고맙다..

인간이 몰려오는 때인지라 노루는 숨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 12시 30분에 도착..

2시 컷오프를 여유있게 통과하고 간다..

 

모노레일..

관리용이지만, 가끔은 부상자를 실어나른다..

저녁 6시에 부상, 낙오자를 태워준단다..ㅎ

제주걷기를 위해 청주공항에 느긎하게 갔는데, 어렵쇼!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만원이네..헐..

항공요금이 싼  평일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드는 모양이다..

코로나 시국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 듯하다.

밤중에 시내 호텔G에 자고 다음날 일찍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걸으러 나선다. 

버스타러 가는 도중, 제주 햇마늘 직거래 장터를 보더니, 드림빌더가 필이 꽃혀 마늘 2자루, 햇감자 1박스를 사서 호텔에 맡기고 나서야 겨우 걸으러 간다.

 

버스를  붉은 오름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거기가 사려니 숲 입구다..

카툭으로 출입명부 신고를 하니 손목에 체온계를 붙여준다. 

 

예전의 사려니 숲은 사라지고, 관광지로 바뀐 느낌이다.

무장애 데크길이 이어지고, 붉은오름 출입구는 아예 없어졌다.

제주의 발전이란 것이 자연적인 것은 사라지고, 관광지화하거나 보호명목으로 폐쇄되는 중이다.

거기다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버스기사, 택시기사, 물건 판매원 등 서비스 종사자들 중 불친철한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

이제 "제주가 배 불렀다"고 생각한다.

대마도가 "한국인 많이 온다"고 불평하다가 요즘 한국사람이 가지 않아 거덜난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물찻오름은 사전예약제란다.

이미 전화예약은 끝났다..

제주구경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와중에 오솔길 구간을 걸으면서 좀 위로가 된다.

 

물찻오름 입구에서 미예약으로 툇자를 맞고 어디로 갈까하다가 성판악 가는 길이 개방된 사실을 알았다.

이런 것을 닭대신 꿩을 잡았다고 할까?

 

민미한 길이라고 기분이 가라앉은 동행이 성판악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자 돌연 활기를 찾는다. 

 

이 숲길은  비가 자주와서 그런지 습하고, 날파리 많은게, 원시림 분위기가 난다.

 

10년이상 제주를 매년 방문하면서 느끼는 마음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마음을 뺏겨 변심한 애인을 보는 듯하다는 거 

제주사람들은 알랑가??

 

 

이길의 끝은 성판악 주차장 직전 도로이다..

여기서는 출입금지표지가 살아있네..ㅎ

 

이 성판악에서 백록담 가는 길이 궁금하다면??

https://blog.daum.net/servan/6351722 를 참조하시라

 

<오늘 걷기> 사려니숲입구 - 물찻오름입구 - 성판악 주차장  약 10KM

 

걷기를 마치고 동문시장으로 간다.

이것 저것 구경하고 제주 갈치를 살까 말까하다 구매한 것은 붉은 우럭과 제주산 흑돼지 앞족발이다.

족발 1만원어치가 3일동안 효자노릇했다..ㅎ

 

제주에 사람은 넘쳐나는데, 돌하르방만은 마스크 쓰고 방역을 철저히 한다..

 

쇼핑을 마치고 새로 구한 숙소 에덴하우스로 짐을 옮기느라 택시를 탔다..

70대 택시기사 왈, 제주에 육지사람 많이 와봐야 렌트카나 이용해서 택시업계에 도움도 안된다.

자기도 부동산 값이 올라서 몇십억 재산이 있어서 아쉬운것 없으니 덜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시는가? 사람이 많이 와서 부동산 값도 오르고, 오다가다 택시도 이용하는 것이라는 걸..

요즘 제주 민심이 이정도로 배가 불렀나?? 

 

하여간, 제주산 햇감자에 흙돼지 앞족발을 먹으니 맛은 절묘하다..

이게 다 제주사람들 돈벌어주는 짓인데..

배부른 제주사람 푸념을 듣고 다니고 있으니..쯪..

향화도선착장에서 고창 병바위까지는 50분거리..

내비에 "아산초등학교"를 치고 간다.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학교를 돌아가면 두암초당이 있는 두락암이 나온다..

 

 

암봉을 파고 지은 정자..두암초당은 신비함을 준다..

 

이길은 고창 질마재 100리길 2코스 복분자풍천장어길 도중에 있다.

 

그러나, 두암초당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물론 안내표지도 없다) 방황하다가, 

그냥 병바위부터 가기로 했다.

 

병바위로 가는 길은 짧지만 솔바람 좋은 오솔길이다..

 

여기서 보니 신선의 술병같이 보인다.

 

 

 

병바위에서 동네 탐방객을 만난 김에 두암초당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오솔길이 있다고 한다..

물론 병바위 - 소반바위 - 두락암- 두암초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는데, 초보자가 가기는 험하다고 한다.

내가 누구냐?

그래도 경력10년의 걷기꾼인데..ㅎ

 

병바위 건너편 특이한 봉우리가 눈에 밟힌다..

선운산 천마봉?? 아니 안장바위란다..

 

신선의 술병 옆에 주안상 격인 소반바위가 보인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가파르고 좁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소반바위에 올라서니 병바위는 병이 아니었다..

그냥 신선의 짱돌??  ㅎㅎ

신선이 술마실 떄 방해하면 집어던지기 딱 좋은 모습니다..ㅎ

 

고소공포증 몰려오기 전에 얼른 암릉을 따라 이동한다..

 

두락암(전좌바위)이 보인다.

두락암??

바위 모양이 쌀을 세는 말(斗)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말바위..

 

두락암 가는 길은 내리막에 미끄러워 조심해서 가야한다.

두락암 정상에 오르려면 줄잡고 힘좀 써야 한다.

 

정상에 서면 안장바위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다..ㅎ

 

두암초당으로 가려면 뒤로 다시와서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하산해야 한다..

 

볼때 마다 진기한 생각이 든다.

절벽를 파고 만든듯한 느낌..

 

두암초당..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 1872-1942)가 썼다.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인 1928년  병바위 실경을 "호암실경도"라는 제목으로 그린 사람이다.

 

 

두암초당 내력을 보자.

원래 조선 명종때 하서 김인후의 제자인 호암(壺巖) 변성온과 인천(仁川)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병바위(호암) 근처에 호암초당을 짓고 소요했다. 그 인연으로 근처 강이름도 주진천에서 인천강으로 바뀌었단다.   

 

<두암초당기>

 

그뒤 호암의 5대손 변동빈이 선조들을 기려 이곳으로 옮겨 두암초당을 짓고, 아래에는 영모정을 지엇다.  

영, 정조 때 사람 황윤석(1729-1791)이 지은 "두암초당기"를 보면,

 

(두락암) 정상은 방정하여 웅대하였으며 그 바닥은 곧 막히고 굽어져서 마치 자루 같았다. 이런 이유로 두락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락암의 허리에는 큰 굴이 있었는데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일찍이 두암에 대해 생각했는데 저울과 저울추가 있어 두 별이 옳음과 같구나! 웅대한 자루는 오히려 이 집과 격이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에 바위가 저울과 저울추와 함께 평형을 이루는구나! 사물이 정말로 이치에 맞다.

마음 또한 이러할지니 오직 사물에 응하여 얻어지는 평안함이 천하의 가장 큰 안락함이다.

고로 주자는 일찍이 사람의 마음을 논하면서 말하기를 마음은 저울추의 평평함과 같다고 했다.

이는 성인과 범인의 본지(本志)이고 전체 대용(全體大用)인고로 또한 당연한 일이다.

경(敬)으로써 본성을 보존하고 살피어서 어둠에서도 잃지 않은 연후에 평안이 있다

https://blog.naver.com/bsnmp/120031012388

 

건축당시 5대손 변동빈이 읊은 원운(原韻) 시 현판..

두락암(斗洛巖)에 초당 하나 있으니
오래된 버드나무 은밀하게 차가운 언덕을 지키네

 

구름 안개는 피어나 발우리를 만들고
초목을 거슬러 오르니 지팡이와 오두막집에는 향기 피어나는구나

 

그뒤 두암초당은 여러차례 중건되면서 1954년에 현재 모습으로 재건립되엇다.

 

산고수장(山高水長) 후학(後學) 김정회 보정(普亭)

 

산처럼 높고 물처럼 유유한 사람의 인품을 표현한 글이다.

이 글씨는 구한말 이 고장의 서예가 보정 김정회가 썼다.

그는 해강 김규진으로부터 서화를 배웠다..

해강 김규진은 고종 때의 서예가이자 최초의 어전 사진사였다..

***

산고수장이라는 말로 표현한 호암 변성온은 어떤 성격의 사람일까?

전하는 일화..

어느 날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발걸음을 오히려 더 중후하게 하여 평상시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변화에 대처할 줄 모른다며 나무랐다. 

이때 변성온이 말하기를 “비가 내리는데 인가(人家)까지 가려면 멀었다.

새처럼 빠르게 날아도 결국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비를 피하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발걸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보다는 평상시 태도를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두암초당 중건기..

산은 '호암'이고 물은 '인천'인데 호남의 명승지에 일찍이 양 선생이 사셧는데 형은 호암이요 동생은 인천으로 우리 동방에 은덕 군자이자 아울러 유림의 으뜸이었다

바위의 곁에 금반 모양의 땅이 있었는데 호암, 인천 양선생의 옛날 여묘살이 했던 곳이다. 

여묘가 헐어서 집이 되었는데 집의 이름은 영모였다. 이는 양 선생의 부모에 대한 효를 생각하는 집이다. 

이후 당이 철거되고 이내 무덤이 되었는데 호암선생의 옷과 신발을 묻었던 장소가 되었다.

선생의 오세 손 평암공이 말하기를 두락암으로 당을 옮기지 않음은 불가한 일이라고 하였다.

땅의 모양이나 산세는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제사지내고 수양하는 장소로는 옛날의 집과 같은 맥락이었다. 또 선생의 아버지 첨추공의 호가 두암인데 산과 바위 돌이 모두 함께 의탁하는 곳이었다. 

 

http://banam.invil.org/index.html?menuno=2313&lnb=30105

 

***

위 중건기 작성년이 공부자 2482년으로 서기로 환산하면 1931년이다..

그 내용을 보면, 원래 병바위와 두락암 사이 금반모양의 땅에  호암초당이 있었는데 유실되었고, 5대손 동빈이 두락암 현재 자리에 두암초당을 지었던 것이다.

 

두암초당 상량문..

1935년 3월 24일 작성..

 

스승 하서 김인후가 제자인 호암에게 준 시..

 

不覺春風入小桃 
淸晨植杖立東臯 
尊中有酒堪傳白 
紙上無詩可和陶

어느덧 봄바람이 복사꽃에 부는 시절이라
맑은 새벽 막대 짚고 동쪽 물가에 서성인다
술동이엔 이백에게 전할 술이 있으나
종이엔 도연명을 화답할 시가 없구나.

 

酒以深壺醉 
詩非淺興吟 
燈花簷外雨 
與子一時心

술이란 항아리 비우면 취하기 마련이지만
시는 얕은 흥으로 읊을 수 없네
등불아래 처마 밖 빗소리 들으며
그대와 함께 이 한 때의 회포나 풀어보세

 

***

스승이 제자 호암의 아호를 술병(壺)에 비유한 위트넘치는 시를 지어 주었다..

하서 김인후는 인종 때의 성리학자로 퇴계와 교유하였고, 인종 사후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참고 하서 김인후 관련 글  https://blog.daum.net/servan/6349861 )

 

 

퇴계 이황이 호암에게 준 시를 적은 현판..

호암의 스승인 하서 김인후 사망후 호암은 스승과 교유하였던 퇴계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河西蓬館舊同遊
欻去修文白玉樓
今日逢君門下士
話君終夕涕橫流

하서는 성균관에서 옛날 함께 교유했던 친구인데
글을 연구하다 홀연 백옥루로 가셨네
금일 그대 문하 선비를 만나
밤새 그대 이야기 하며흐르는 눈물을 닦았다오


佳山佳水日徘徊
仁智吾猶未竭才
敢叩師門有何訣
請將餘論賁江臺

아름다운 산과 좋은 물에 매일 노닐어도
어짐과 지혜는 내 재능으로 얻기 어렵네
감히 제자 되기를 청하나 무슨 비결이 있겠는가?
바라노니 장차 못다한 논의는 강대(천연대)에서 마무리하세

***

조선 시대 전기에는 영, 호남의 선비들이 자유로이 교류하며 지냈음을 알겠다..

 

 

조선말 철종, 고종때 성리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도 두암초당에 들리고 현판과 시를 남겼다.

 

桂樹之稠山色幽 
依然招隱琴中遊 
危梯優入三層壁 
滴霤平連九曲洲

계수나무 빽빽하여 산 빛이 그윽하니

의연히 은자(隱者)를 초대해 거문고를 퉁기며 노네
위험한 사다리 건너 삼층벽에 어렵지 않게 오르니

처마의 빗방울은 구곡주(九曲洲)에 떨어지네 

 

고산경행(高山景行)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나오는 “높은 산처럼 우러르고 큰 길처럼 따라간다. 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귀절에서 따왔다. 고인의 큰 덕행(德行)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정자의 뒷모습..

 

만정 김소희 명창이 15세 때인 1932년경 이 곳에서 노래 연습을 하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명창 송만갑에게 심청가와 흥보가를 배워 남원 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18세에는 정정열로부터 춘향가와 수궁가를 배워 소녀명창소리를 들었다. 

그의 제자는 안향련, 안숙선, 신영희 등이다.

 

두암정자에서 내려오면서 위 사진 바로 좌측에 오솔길이 있었다.

표시는 없다..

 

 

경관 관리 마인드가 있다면 적어도 전신주는 지하로 매설하기를..

 

<오늘 걷기> 고창 아산초등학교 주차장 - 병바위 - 소반바위 - 두락암 - 두암초당 - 주차장 약 2km

 

작지만 맵고, 좁지만 질 좋은  풍광을 만끽하니, 가성비 높은 경관이다..ㅎ

 

돌아오는 길에 병바위가 변한다.

사람모습이다..

이 동네 노인들은 이승만 얼굴을 닮았다고 이승만 바위라고 부른단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승만이 누군지 모르겠지??

이승기 형쯤으로 알려나?? ㅎㅎ

 

전체를 찍은 사진을 보니 금반옥호(金盤玉壺), 선인취와(仙人醉臥)의 명당 소리가 나올법 하다..

금 소반에 옥술병을 차려놓고 대취한 신선이 누워있는 형국..

요즘 화가의 눈에도 아래처럼 그려진다.

차제에 선운산  낙조대, 천마봉을 걷고, 질마재 2코스도 걷는 기회를 기약해봐야 겠다..

 

2일째 아침일찍 어제 못걸은 윗머리길을 걷는다.

이길 2km를 걸어야 진다리둘레길을 완주한다.

 

길은 전부 포장되어있는 것 보니, 초기에 선착장에서 해수욕장까지 걷기코스로 개발된 것 같다.

 

이섬은 모래해변이 없어서인지 해당화는 드물고, 찔레꽃과 엉겅퀴가 제철이다.

 

자부송(自負松)이 보이길래, 시조 한수를 읊어준다.

 

청산(靑山) 자부송(自負松)아 네 어이 누웠는가?
광풍(狂風)을 못 이기어 부러져서 누웠노라.
가다가 양공(良工)을 만나거든 날 예있다 하거라.
 

 

전망대에서 새우잡이는 오늘도 바쁘다..

새우가 왜 인기인 줄 아나?

세우니까..뭐를?? ㅎ

부추도 곁들여 먹으면 좋다.

부추기니까..ㅎ

여기서 보니 해수욕장의 본명은 "큰갈마골"이구나..

대외용이 상낙월해수욕장이고..ㅎ

 

이미 해는 중천으로 올랐으나, 어제의 취기가 좀 남아있는듯..

 

엉겅퀴도 효능이 좋단다.

고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혈액순환, 당뇨개선, 염증제거, 항암작용..그야말로 성인병에 적합하네..

어린 순은 나물로 주로 먹으며 줄기와 잎, 뿌리는 건조시킨 이후에 약재 또는 차로 음용..

 

길은 금세 끝난다.

좌측으로 가면 선착장이 1Km, 우측으로 해수욕장이 몇백미터..

 

돌아온 해수욕장 캠프에서 아침먹고, 짐정리후 선착장으로..

 

갈매기들 진들(갯벌)에서 먹거리 찾느라 바쁘다..

부업으로 새우잡이 배에서 버리는 부식 챙기고..

 

그때 11시 배가 들어온다..

그런데, 차와 사람을 내리고 타기도 전에 가버린다..헐..

당황??

인근 송이도에 가서 사람태우고 1시에 다시 와서 태우고 간단다.. 

 

하여, 정자에 앉아 사발면로 점심해결..

 

1시 배로 향화도 선착장으로 간다.

배시간표만 보지말고, 항상 현지사람에서 뱃시간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섬여행에 필수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가면, 깐보인다는 것이 시중여론인바, 

오후 반나절 걷기를 위해 1시간 거리의 고창 병바위로 향한다..

하낙월도 바닷가 벼랑길 걷기는 계속된다.

여기는 아직 찔레꽃이 싱싱하다..

 

대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무성한 길은 당너매로 가라고 인도하고..

 

돌아보면 저런 벼랑 끝을 걸어왔다..

 

참사까미??

무슨 뜻일까?

 

마지막 코너를 돌면 상낙월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외양마지 전망대가 나타난다..

 

힘들어도 저 아래로 내려가본다..

 

이제 진월교로 내려가면 걷기는 마무리 단계로..

 

고양이는 졸고.. 아낙네들은 새우를 다듬고..

갈매기는 기다리고..

 

꽃은 무심하게 꽃시절을 즐기고..

 

상낙월선착장을 지나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웬 위령비??

낙월도에 새우잡이는 전국 새우젓시장의 50%를 장악했었다.

그때 바다 한곳에 닻을 내리고 몇개월동안 새우를 잡는데, 무동력 멍텅구리배 100여척이 동원되기도 했단다.

새우잡이 배에 고된 노동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인신매매자, 도망자 등도 숨어 들었다.

1987년 태풍 셀마로 12척의 멍텅구리 배가 침몰하고 5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위령비를 세웠다

큰 희생을 치른 후 안전과 인권문제 제기로 멍텅구리 배들은 보상절차를 거쳐 폐선되었다.

지금은 인구도 5000명에서 500여명으로 줄었다.

 

 

낙월도의 질 좋은 새우는 영광군 염산면의 천일염과 경합하여 전국의 새우젓시장을 석권했단다..

지금 새우 어획이 줄은 이유로 해수온도의 상승을 꼽는데, 그 원인 중에는 영광원전의 가동도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이 갈림길에서 우측이 둘레길이다.

우측 윗머리로 가면 해수욕장까지 2KM가 더 걸린다.

모두 지쳐서 내일 걷기로 하고 지름길로 해수욕장 캠프로 직행한다.

 

석양에 바라보니 해수욕 캠프가 고향처럼 아늑하게 보인다.

 

화로를 피우고 와인을 기울이며 노을을 바라본다.

관하재(觀霞齋) 선생, 오늘 호강하는 날이다..

 

낙월도의 지명 유래에 관하여,

안내판에는 영광 법성포에서 보면 달이 지는 곳이라 해서 낙월도라고 불렀다고 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있다.

이섬의 원래 이름이 진달이섬이라서 예전에는 진월(珍月)도라는 표기도 있단다.

그런즉 원뜻은 갯벌이 넓은 진들섬, 진다리섬이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진월도, 낙월도 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 걷기> 상낙월 해수욕장 - 당재고개 - 누에머리 - 쌍복바위 - 진월교 - 하낙월 마을정자 - 장버래쉼터 - 당너매 - 외양마지 - 진월교 - 상낙월 선착장 - 위령비 - 당재고게 - 해수욕장  약 10KM

상낙월해수욕장에서 출발한다..

당산- 진월교 - 하낙월도 쉼터 - 장버래쉼터 -  전망대 - 진월교 - 상낙월 선착장 - 상낙월해수욕장 약 10KM를 걸을 예정이다.

 

그런데, 둘레길이 정글 수준이다..

 

그 와중에 산딸기를 발견하니 한입 가득 기분이 좋다.

 

이섬에 엉겅퀴도 지천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하낙월도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 보이는 다리는 임자대교인가??

누에머리 표시를 따라면 계단이 나온다.

계단아래로 내려가니  모래밭에 달랑게의 만다라가 가득하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것은 물에 씻겨 사라진다.

인간의 재물이나 마찬가지..

시간의 조류에 따라 씻겨 사라질 것인데, 모두들 그토록 집착하는가?

 

 

저아래 면소재지 중심가?? ㅎ

 

쌍복바위..

길은 구비도는 곳이 보기 좋고

물은 소용돌이치는 곳이 승부처고

인생은 구비치는 곳에서 조심해야 한다. 

 

 

상낙월과 하낙월을 잇는 진월교가 보이는 곳..

금계국이 환영나왔다.

 

전봇대만 없으면 산토리니인데..ㅎ

 

섬에 사람은 안보이고

꽃피고 담쟁이만 무성하다.

 

마늘 산다고 집주인을 찾아도 대답이 없고..

 

상낙월 쉼터에서 바로 둘레길로 오른다.

 

수풀이 머리를 덮을 지경이다..

 

장버래 쉼터에서 내려다 보니 하낙월 해수욕장은 분통만하다..

텐트쳐도 데크에 치지 않으면 파도에 쓸려가겠다..ㅎ

 

계속 키높이 수풀을 헤치고 나간다.

바닷가의 두꺼비가 웃는다. 

"뭣하느라 그 고생이여~ "

 

낙월도의 멍텅구리배는 이런 동력선으로 진화했다.

갈매기 팬덤을 몰고 다닌다.

 

돈나무 꽃이 보석처럼 때깔난다..

돈타령 들으면서 걸어간다

https://youtu.be/A6RU1xRwuV8

 

(계속)

달이 지는 섬..낙월도 캠핑은 몇번 취소가 반복되다가 드디어 출발했다.

영광군 칠산타워 옆 향화도선착장에서 배가 떠난다.

오전 8시 배를 타려고 새벽 4시에 출발.. 

 

 

선착장에서 1시간 거리..

하루에 두편..배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배에 차량을 10대 정도 싣는다..

 

방파제 구멍에 살림을 차린 칠산양이로부터 본의 아니게 전송을 받는다..

 

주인과 깜딱지 댕댕이, 오늘은 섬여행가나보다..ㅎ

 

잠시 새벽잠을 보충하러 선실에 누웠는데, 등짝이 차서 선미로 앉아 햇빛쬐며 졸다보니 

멀리 낙월도가 보인다. 

좌측이 하낙월도, 우측이 상낙월도..

 

줌으로 당겨본 상낙월도 중심가.

파출소, 면사무소, 보건지소 다 모였는데, 마트나 슈퍼가 하나도 없다는..ㅎㅎ

하낙월도 선착장에 마트가 잇다는 말을 들었다..

 

 

새우의 고장, 멍텅구리배의 전설을 간직한 섬의 비밀은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일단 뻘의 그이(게)들한테 전입신고를 한다..

 

일단 우리는 차를 몰고 상낙월해수욕장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로 한다.

 

요런 좁은길을 지나서 도착한 상낙월 해수욕장..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

아무도 오지 않아 독채로 사용했다.

단지 흠이라면 화장실, 수도가 잠겨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를 끌고가 선착장 옆 화장실에서 가용가능한 많은 통에 물을 담아 싣고왔다.

 

캠프가 정리되자, 아침부터 고기를 굽고 와인을 꺼낸다.

트레킹을 시작하면 점심 먹을 새도 없기에 푸짐한 아점으로 때운다..

 

섬에 와서야 간만에 토종 토끼풀을 본다..

대전 천변엔 서양 붉은 토끼풀이 다 점령했는데..

 

메꽃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해수욕을 즐긴다..

참! 해수욕장 진입로 끝에 차량 출입 방지장치가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다행히 열려있었다.

처음 가는 사람은 차량보다 사람이 먼저 가서 열림상태를 확인하고, 잠겼다면 짐을 내라고 차를 돌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게 좋다..

 

트레킹가면서 보니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낙토(樂土)처럼 보이더니..

트레킹을 마치고 와서 보니 고향처럼 느껴진다..ㅎ

 

 

 

새로 장만한 화롯대 주변 테이블, 

고기 굽고 먹기 편리하다..

 

그때 노을이 진다..

술과 얼굴과 노을이 삼위일체가 되어간다.

 

족발을 굽는 것은 아니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 새우, 매운탕이다.

 

 

하늘도 우리 모임이 부러웠나??

베시시 웃는다.

가능하다면 술 한잔 권하고 싶었다..ㅎ

 

해는 졌는데, 달이 뜨지 않았다.

왜 낙월도일까??

영광 법성포에서 보면 이 섬으로 달이 진다고 해서 낙월도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진달".. 그래서 걷기 코스이름도 진달이 둘레길이다..

 

이 참에 노래로 달을 불러내기로 한다.

진달섬에서 뜬달을 불러낼 가수는 송가인밖에 없으리..

"다아알이 뜨으은다~ 다알이 뜨은다~ 영광 낙월에 달이 뜬다"

https://youtu.be/HjZzuvLjsoc 

 

 

2일째 아침 산책을 끝내고 오면서 보는 캠프는 여전히 황홀하다..

아침 식사는 짜장밥이다..

LPG 가스버너가 효부노릇한다.

 

 

 

모처럼 느긋하게 바다건너 송이섬을 보면서 커피 한잔 들었다..

 

이 편안한 분위기를 더욱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음악..

슬픈 로라..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만난 이후 나의 애청곡이 되었다.

 

 

 

나의 뒤태를 사랑해준 해변에게 감사한다.

달랑게도 행복하라..

 

탑정호 출렁다리 구경차 갔다.

출렁다리 가까운 제4주차장은 넓었다.

캠핑차량이 몇대 보인다. 플랭카드에는 야영금지라고 붙어있던데..ㅎ

그런데, 정작 메인인 출렁다리는 개통식을 안했다고 출입을 막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라는데, 세상에 제일 흔한 출렁다리를 유료로 하면 과연 이용할 사람이 있을까? 

 

어찌되었건 나는 계획대로 대명산을 오르기로 한다.

 

예상보다 길이 좋다.

 

전망대가 나타났다.

멀리 대둔산이 통채로 드러난다..정상 마천대, 낙조대 등등

 

 

정상에는 양반 묘자리가 있다.

생전 벼슬은 상의원 첨정인데, 죽어서 추증된 벼슬은 좌찬성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이다.

사후 자손이 영달을 했나??

 

 

소설가 박범신이 탑정호 주변에 사는 모양이다..

 

 

하산하면 딸기향농촌테마공원이 나오는데, 요즘 임시휴업중인 모양이다.

길 건너면 수변생태공원이다.

 

마가렛,샤스타데이지가 가득하고..

 

길은 수변데크길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보러 왔다가 허탕친 사람들의 발걸음을 달래주는 중이다..

 

바지런한 참새 열매하나 주워가고..

 

큰 가물치는 산란장소를 찾는다.

 

솔섬에서 오늘 걷기를 마무리 한다.

 

<오늘 걷기> 탑정호 4주차장 - 출렁다리 - 대명산 정상 - 딸기향테마공원 - 수변생태공원 - 수변데크길 - 주차장 약 5k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