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을 좇아서 백금정에서 읍내 가는 길을 복원해보기로 한다.

일단 백금정에서 서평교까지 몇백미터 다시 걸어 나와 다시 읍내방향인 서쪽으로 수로를 따라 걸어간다..

 

맞아..이런 길을 가다가 잠자리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부근에 반압이라 불리던 둠벙도 잇었던 것 같다.

 

 

밤도 익어가고..

 

소가 궁금한가보다

뭘 그리 찾는대유~

요 근방에 반압이 어디 있는지 아는감??

지는 몇살 안돼서 몰류~

 

 

수로의 끝은 경부선 철길과 만난다. 철길 건너편이 조천 연꽃공원이다.

길은 철길을 따라 좌우로 갈린다. 

좌측은 스물두강다리로 가고, 우측은 읍내로 간다.

어릴 적에 이길을 따라 스물두강다리로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길을 걷다가 철로에서 튄 돌이 머리를 때렸다.

어찌나 아프던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왓다.

그 사이 눈물은 말랐는데, 엄마를 보자 억울함을 알리려고 우는 소리만 내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이 길을 달려갔을 것이다.

분홍 메꽃이 모정처럼 피었다.

 

길은 네강다리 아래로 이어진다.

징검다리 없던 예전엔 어찌 건넜을까??

건기에는 냇가로, 우기에는 철교로 건넜을까? 

철교로 건넌 기억은 없다.. 

 

조천 뚝방도 세종시 경계둘레길 9구간, 10구간으로 정비되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읍내에서 쌀전거리- 남리를 거쳐 이쯤에서 조천을 건너고 경부선 철길을 따라 가다가 서평리 들판 수로를 따라 동평리 백금정까지 갔을 것이다.

애간장이 다 녹으면서..

우리 아들은??

다행히 아들은 살아잇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서  살려놓고 떠났단다..

 

 

어머니의 불심 덕이었을까? 아니면 이일로 불심이 깊어진 것일까?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는 연기설..

모든 인연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내비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조천 연꽃공원에 홍련이 만개하였다.

수렁에서도 물들지 않고 피는 꽃..

 

그래서 부처는 연꽃을 들어 제자들에게 보였다.

어디 부처뿐인가?

자연은 해마다 봄부터 꽃을 들어 우리에게 보인다..

그대 꽃 보면 웃는가?

 

경상도 골짝에서 올라온 어머니는 작은 집에 시모와 수두룩한 자식을 보살피며 틈나는 대로 비로봉 관음암(관음사)에 기도하러 다녔다.

아들이 우환에 시달릴 때는 계룡산 삼불봉에 쌀을 이고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어릴 적에 엄마따라 이 절에 처음 왔던 기억이 난다.

60년전이 아니었을까?

그 때 법당에 들어갔는데, 깜깜한데 눈이 부리 부리한 무서운 장군이 쳐다보고 잇어 

겁이 나서 시키는대로 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법당에 들어가 3배를 올렸다.

고개를 돌리자, 60년전에 나를 겁나게 했던 신장님이 칼을 들고 여전히 부리한 눈으로 쳐다보고 계신다.

 

 

주련이 설법하시길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
푸른 파도 깊은 곳에 그 자태 나투신다네..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 위태로운 배안에 있더라도

일심 삼매로 구한다면 얻는 것이 있으리라..

 

좌측의 이 주련은 무슨 말씀인지 알아 들을 수 없다

오직 모를뿐..

누군가 법보시를 바랍니다..

 

 

그때 요사채에서 스님이 차공양하자고 부르는데, 나는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비로봉가는 산길로 올라간다.

그러나, 얼마가니 산길은 무슨 시설로 개발되어 막혀있엇다.

다시 돌아와 스님과 커피를 나누며 환담한다.

스님이 오방염주를 선물하신다..

어머니 돌아가신후 이절에서 49재를 지냈고, 이절이 생사 기로에 섰을 때 또  맺어진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인연은 중중무진 이어지고, 사라진다.

인연이 있는한 덧 없는 것은 없다.

그러니 깨어있고, 정진하라는 말씀..

 

돌아오는 길에 조치원 복숭아 한 박스 사와서 금년 첫맛을 나눈다..

 

 

<오늘 걷기>

조천연꽃공원 - 번암 - 비로봉 정자 - 스물두강다리 - 동평리 백금정 - 서평리 수로길 - 네강다리 - 연꽃공원 약 9km

 

"그때 내 애간장이 다 탔어.."

언젠가 어머니는 말했다.

그때??

50몇년전..

냇가로 놀러간 형제 중에 동생이 헐레벌떡 와서 하는 말이 형이 백금정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쌀전거리, 남리를 지나 조천 제방에 올라섰다.

서평리 들판 저멀리  백금정 까지는 아직도 오리 넘게 더 가야하는데..

그 사이에 물에 빠진 아들은 살아있을까???

 

****

 

1주전 조천연꽃공원을 방문하여 지척거리의 스물두강다리를 보자, 추억 속의  백금정 이야기가 또 떠올랐다.

백금정의 위치는 네이버와 구글 지도에 나오지 않아 가는 길을 몰랐는데, 다음지도를 검색하다 단서를 얻게 되었다.

 

장마전선이 올라 올라와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는 날..

오전 일찍 조천연꽃공원으로 향햇다.

계획은 조천 - 번암바위 - 비로봉 - 관음암 - 스물두강다리 - 백금정, 이런 순으로 탐방하기로 했다.

 

조천 우안길로 출발한다.

 

조천이 미호천과 합류하자, 길도 미호천 자전거 길과 합류한다.

 

저곳이 번암(磻岩)인가??

번암은 강바위라는 뜻이다.

조천과 미호천 합수 지점부근의 넓고 펀펀한 바위에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곳이라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 지류 반계(磻溪, "반" 또는 "번"으로 읽음)에서 따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고개길을 오르면 저멀리 스물두강다리가 보이고..

조천을 포용한 미호천은 금강과 합류하기 위해 합강리로 향한다..

 

비로봉 앞 정자..

산세가 마치 백로가 하늘로 나르려는 듯한 형상이라 해서 비로(飛鷺)봉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번암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미꾸지 마을 쪽으로 더 가서 관음암가는 길을 찾았으나 시간상 찾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관음암은 걷기 종료후에 차로 이동하기로 한다.

 

복숭아는 익어가고

기차는 달려가고

강물은 흘러가고 

나는 걸어간다..

 

미호천 자전거길로 걸어 조천연꽃공원으로 간다.

 

연꽃공원의 백련은 이제 피기 시작한다..

 

 

이 미호천 길을 400리 달리면 금강을 거쳐 하구둑까지 이른다.

스물두강다리..

경부선 철교 교각이 22개라 붙은 이름..

 

여름철 갈수기도 이 교각 아래는 물이 고였다..

해마다 1-2명이 익사한다는 이곳은 읍내 아이들의 수영장이었다.

51년전인가? 나도 친구따라 이곳에 물놀이하러 왔다.

수영은 맥주병급이라 그냥 친구가 건네준 매트리스형 튜브를 타고 놀앗다.

그러다가 누군가 장난치는 바람에 강물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내 두눈에 파란 하늘과 푸른 강물이 동시에 들어왔다.

두번이나 들락 거리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강가로 나왔다.

한참을 물을 토해내면서 교각을 바라보았다.

그후 나는 물놀이 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1순위가 '강에 물놀이 가지말라"였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교각을 바라보았다

내가 직면한 죽음의 순간에 보인 파란 하늘..

그래서 내가 하늘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백금정으로 가기로 한다.

지도 앱으로 위치 지정해서 검토해보니 여기서 1.5km는 걸어가야 한다.

청주시 강외면 서평리, 동평리 찻길과 들판을 지난다.

 

가는 길에는 무궁화도 피었고, 능소화도 피었다.

능소화..

요즘 젊은이는 능소화를 보면 휴가시즌이 가까워 졌다고 반가워하지만,

예전 늙은이는 장마가 온다고 걱정하기 시작한다던가??

 

복숭아 붉게 익어간다..

 

여기 서평교에서 우측으로 수로길로 접어든다..

어릴 적 기억에 수로를 따라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압이라고 부르던 둠벙을 거쳐서 갔던 것 같은데..

 

백금정..

서평리, 동평리 들판의 젖줄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이 곳에서는 꽃도 벌도 잠자리도 행복하다.

 

 

그때 한 떼의 오리들이 우측 논에서 좌측 백금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두둥실 건너간다.

 

엄마 오리와 새끼들..

그런데 도대체 몇마리야??

17마리??

 

갑천변을 수년간 걸어다니면서 관찰해본 결과 

어미 오리들은 장마 직전에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며 훈련시키더라.

장마가 오면  먹거리가 풍성해지기 때문에 새끼를 키우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위기가 바로 기회인셈이다..

 

어미 오리와 새끼를 보다가 문득 형제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는 평생 8명을 낳은 거지??"
"아니, 12을 낳았대"

"그럼 반타작하거야??"
" 경상도 고향에서 자식 6명을 낳앗는데, 5을 잃고 1명만 남아서, 하나라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대. 그런데, 여기서 아들 5명을 2년 터울로 내리낳고 40이 넘어서 또 애가 들어섰대나.."

 

오리 가족 중에 막둥이를 찾아본다..

한꺼번에 부화했으니 저넘들에겐 그런 개념이 없겠구나..ㅎ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자식을 그렇게 많이 낳았어요?"

"그때는 피임이라는 말도, 방법도 몰랐어"

 

박통시절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외쳤는데, 이제는 출생률이 세계 최하위다.. 

그 만큼 우리 젊은이들의 생각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다..

 

가을날 감이 주렁 주렁 열린 작은 감나무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났다.
나훈아 노래 홍시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졌다.

오늘 오리 가족을 보니 또 어머니 생각이 나고 눈가가 젖는다..

오늘 엄마를 만났다..

추억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한다.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인생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할 수도 있고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 살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뭐라고??

그런데 백금정에 빠진 아들은 어찌되었냐고??

아참!!

오리 가족 보다가 까먹었네..

<다음편에 계속>

계룡산 걷기를 상신리에서 출발한다..

사실, 이 코스에는 안 좋은 추억이 맴돈다.

1) 십수년전, 왼쪽 무릎 인대 다친후 6개월의 재활을 거쳐 이곳에 와서 상신리 - 배재- 남매탑 - 금잔디 고개- 큰골3거리 - 상신리로 하산하는 도중 오른쪽 근육통으로 엄청 고생하였던 기억이 있었고,

2) 2년전 다시 도전하다가 배재고개 직전에서 피로와 졸음이 쏟아져 회군한 기억이 있다..

다시 컨디션 좋은 날, 커피까지 한잔 하고 나름 대비를 거쳐 출발한다.

나, 천왕봉 갔다온 사람이야!!

그런데도 쫄리는 곳이 있다니..ㅎㅎ

 

상신리 초입에 새로 생긴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슬슬 걸어간다..

용산구곡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1932년생이니 구곡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구곡 붙이기 뭣한 이런 곳에도 구곡 명칭을 붙여 놓았다.

남송 주자가 무이산에 무이구곡을 설정한 이래 이를 모방한 성리학도들이 조선천지를 휩쓸더니 이곳에서 목숨을 다했다고나 할까??

다만, 이 곳의 구곡은 용을 주제로 하여 모두 용자가 붙은 작명으로 보아 성리학적 세계관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이곳에 용산구곡을 설정한 사람은 취음 권중면이다.

그는 을사5적으로 불리는 권중현의 동생인데, 형과 의절하고 1916년 이곳 상신리에 은거하며 살앗다.

그의 아들이 봉우 권태훈이다.

 

 

소설 단에 등장하는 봉우 권태훈 송덕비가 보인다.

마침 오늘 그를 기념하여 동네 노인들에 점심 보시한다고 풀랭카드가 붙어있더라..

그는 선도수련, 단군교, 기수련, 단수련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며 한 때를 풍미햇다.

그가 1994년 95세로 생을 마감한 곳이 이곳이다.

 

 

봉우의 예언..

그는 생전 소련의 분열, 중국의 분열, 한국의 통일 그리고 황백전환론을 주장했다.

소련의 분열은 실제 일어났다.

중국은 향후 북중국, 남중국으로 갈라진다는 것이고, 한국은 통일이 되어 만주지역으로 진출한다는 예언인데, 탄허의 예언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황백전환론은 미래에 미국이 쇠퇴하고, 남중국- 인도 - 한국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주장이다..

 

https://youtu.be/iVen9HWuqwk

 

** 새 대통령과 대도인 출현에 관한 예언  

새대통령은 남북 통일을 이룩할 사람이고, 대도인은 향후 5000년 정신세계를 이끌 지도자인데, 1953년생  - 1958년생으로 남한에서 수행중이고 새대통령 취임 3년후 등장한단다..

https://youtu.be/_q6cg1WZK3k

 

***  홍익학당 윤홍식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 단을 읽고 크게 발심한다. 대학 1학년부터 봉우 선생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그이후 호흡수련과 양심철학, 양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https://youtu.be/lmefj_NeOSA

 

 

 

상신리 유래비..

이곳에 신소라는 둠벙이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위를 상신리, 아래를 하신리라고 불렀단다.

 

모기장 텐트치고 자며 단체 행사를 하나보다..

아직은 새벽에 춥지 않을까??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구호..

동성애, 이슬람에 반대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5.18, 세월호 등 표현의 자유를 막는 입법들의 행진들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

 

소처럼 묵묵히 살아가라는 것인가??

접시꽃 당신도 할말 다하고 살아가는데..

 

원래 계획은 상신리 - 큰골3거리 - 금잔디 고개 - 배재 - 상신로 가려고 했는데, 

동행의 권유로 배재- 신선봉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계곡 따라 가는 이길, 숲 그늘이 좋아 여름에  걷기 좋은 길이다.

 

큰골삼거리가 나왓다. 남매탑 방향으로 직진이다.

지난번에 수인사 나누었던 거시기 바위와 재회하고..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 같다..

그러니 천천히 쉬면서 가시라..

 

영화 300에 등장했던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이 살라미스 패전후 출가했나 보다..

 

 

계시대로 천천히 쉬엄 쉬엄 올라와 배재고개에 도착했다..

동학사에서 올라오는 사람으로 북새통이다..

 

얼릉 장군봉 방향으로 오른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멋진 휴식처가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오름길, 소나무가 용을 틀고, 쇠다리가 손을 내미는 곳..

동행왈 "자기가 온다는 소문 듣고 철책을 만들어 놨네" 

 

돌양지꽃이 웃는다.

그리움이 행복의 열쇠랍니다.

 

신선봉에 오르면 무엇이 보이나??

삼불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봉우 권태훈처럼 유,불, 선, 기를 통합하여 선도수련하기 좋은 곳이다..

 

천왕봉(천황봉) 옆으로 쌀개봉이 보인다.

 

삼불봉 정상에 무엇이 보인다..

자연성릉으로 이어지는 그곳에서 한숨 돌리는 사람들..

 

신선봉에서 삼불봉과 천왕봉을 바라보는 마음..신선 못지 않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 다리를 담근다..

달궈진 무쇠가 물에 잠기면서 내는 쉬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산길에 이태리 피자집에 들려 신선봉 바라보며 치즈맛을 음미한다..

 

신선봉에는 신선이 항상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신선을 만날 수 잇는가?

신선이 노는 선유당(仙遊堂)으로 가라..ㅎ

 

오늘의 내마음은 접시꽃처럼 붉을까? 수국처럼 하얄까?

수국은 토양 성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수국 꽃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알루미늄 성분이 많은 산성 흙을 만나면 푸른색을 띠고,

알루미늄 성분이 적은 알칼리성 흙을 만나면 붉은색 계열을 띤다.

흰색 수국은 안토시아닌 성분을 제거한 경우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다양한 색감의 수국 원예종을 만들어낸다.

 

아니다. 둘다 아니다.

산수국을 파고드는 이넘..

허벌나게 탐닉하는 벌, 그 모습은 오늘의 나를 닮앗다..

 

봉우 선생이 말했단다.

강산풍류 한자주인(江山風月 閑者主人)이라.

강산의 풍류는 한가로운 사람이 주인이라고..

 

오늘은 내가 강산풍류의 주인이 되었다..ㅎㅎ

 

 

<오늘 걷기> 상신리 주차장 - 큰골3거리 - 배재 - 신선봉  왕복 약 8km 

 

성묘를 마치고, 조천 연꽃공원으로 간다.

이제 연꽃시즌이다.

 

수렁에서 피는 꽃..

번뇌에서 발현하는 보리..

시름 속에서 발견하는 지혜..

연향을 찾아 10리 밖에서 찾아온 벌..

 

꽃을 보는 이유는

꽃다이 살면서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 때문아닐까?

 

식물이 꽃피우는 것을 보고

중생은 부처를 꿈꾸었다..

 

맑고 밝고 지혜롭게...꽃피우려면

그저 고요하고 고요하라..

 

조천 제방의 벚꽃길이 여름에는 그늘길이네..ㅎ

 

 

담주 홀로가는 날 새벽 일찍 이 길을 걸으리.

22강다리 - 비로봉을 돌고, 백금정을 찾아 추억의 길을 완성하리..

장고도에서 고대도는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다.

배에서 내리니 "신이 사랑한 섬"이란다??

그 의문을 품고 둘레길을 찾는다..

우리가 2시배로 들어와서 5시배로 대천으로 나가니 3시간 정도 고대도에 머물며 걷기를 마쳐야 한다..

 

길가에 못보던 화려한 꽃이 궁금해 찍었더니..조화란다..에구..

 

여서도 다육이랑 같다고 사진 찍으란다..

 

섬에서 돈주고 쓰는 사람들..거의 외국인이다.

우리나라가 드림랜드가 된 것을 우리만 모른다.

천국에 사는 것을 아는 방법은 지상이나 지옥으로 가봐야 안다..

 

 

우리가 드림랜드라는 증거..

이런 작은 섬에도 콘크리트로 외각 순환다리를 놓은 것을 보면 돈도 많고 국력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날이 맑아 멀리 원산대교가 생생하다..

여기서 둘레길이 시작되는데, 뱅부여를 보기 위해 더 걸어간다..

 

아하! 이곳이 귀츨라프라는 목사가 선교하러 상륙한 곳이란다.

계신교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자란다.

 

뱅부여??

여는 여자가 아니고 암초라는 뜻이다..

뱅부는 무슨 말인고?? 

 

 

다시 돌아가 둘레길로 올라간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테가 역력하다..

 

 

전망대에 의자가 고문용처럼 보여 오싹하다..

 

저 멀리 네모 반듯한 섬은 삽시도에 딸린 면삽지다..

 

뱅부여 면삽지를 사모는가??

 

여기서 보니 우측 끝에 아스라이 외연도도 보인다..

 

산길에 들어서자 드림체이서의 발걸음이 날아간다.

뒤에서 소리친다..

'너무 그렇게 빨리 가면 전생 들통난다" ㅎ

 

 

이 둘레길은 조망이 없는 작은 산을 넘어가야 끝이 난다..

 

길이 끝나나 싶은데 바닷가 데크길이 유혹한다.

저 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나??

 

그런데 이 데크길 바위가 떨어져 내려 부서지고 해서 조심해야 한다..

 

 

조심 조심 모퉁이를 돌아서니..끝..

길의 정체는 갯바위 낚시를 위한 통로...

 

뱃시간을 기다리다가 문득 귀츨라프 박물관이 있어 들어간다..

 

독일에서 목사자격을 취득한 귀츨라프가 로드 암허스트호를 타고 1832년 7월 25일 고대도에 도착했다.

당시 29살의 중국어 통역겸 의사였던 그는 홍주목사 이민회를 면담하고 무역청원서와 한문성경 등 26종의 서적을 전달했다.

그러나, 순조는 통상을 거부하였고, 귀츨라프와 암허스트호는 20일만에 떠난다.

그 사이 귀츨라프는 섬에 머무는 동안  주민들에게 한문성경과 의약품 등을 나누어주었고, 가난하여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았던 섬을 위해 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과 포도주 제조법까지 전파했다고 한다.

특히 주민들로부터 한글을 배워서 주기도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가르쳐주는가 하면, 자신이 익힌 한글자모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훗날 그는 동아시아 항해기를 저술하였고, 홍콩과 마카오 등을 오가며 선교사역을 계속하였는데, 1851년에 48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3월 1일 서울에서 귀츨라프학회가 창립되었다.

 

 

캠핑 3일째  장고도 탐방로 2구간을 걷는다..  

 

이 표지판을 보고 달바위 쪽에 주차를 하고..

달바위를 찾는다..

 

달바위가 어딘가??

쑥대머리 귀신형용 춘향이 바위라고 하는게 낫겠다..ㅎ

 

이섬도 둘레길 표지는 인색하다..

염전저수지를 지나고, 젓갈 냄새가 코를 찌르는 창고건물을 지나면 탐방로가 시작된다.

 

 

여기까지 찾아오기가 힘드니 달바위 진입로 부근에 한개더 세워놓으면 좋을 것을...

 

길은 오붓 조붓 걷기 좋다..

 

1.5KM 짧은 길이라 아끼면서 걸어야 한다..

 

짧은 길에 갖출것 다 갖추었다.

작은 키에 오목 조목 글래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급이다..

 

짧다고 서운해 할 사람이 있을까 저어하여 만든 해변길..

 

거기서 동해 감포 수중릉에 필적할 서해 수중릉의 명당자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서해 용왕자리를 급모했다.

동행 1인이 손을 번쩍 들어 응모했다..

응모했다 1위가 안되면 2위 자리는 이무기 자리다..ㅎㅎ

 

 

그래 누군가 서해 용왕이 되어 시진핑의 야욕을 막아주면 좋으련만...

동해는 이미 용왕이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ㅎ

뭐라고??

용왕의 아들 이경규나 이수근이 하면 된다고??

 

1.2KM 남짓 짧은 걷기를 마치고 캠프로 돌아와 

명장섬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하면서 작별인사를 한다.

 

앞으로 명장섬이 그림같고, 뒤로 화장실이 좋으니 배산임수 명당터라..

가을에 다시 와서 노을을 다시 즐기리라..

 

이번엔 차곡 차곡 짐을 정리해 싣고 장고도를 떠나 고대도로 간다..

 

대멀항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백로 사령관 휘하의 갈매기 군단이 도열하여 환송한다..

대대 차렷!

산수지락 폐하에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선착장 부근 정자에서 앉아 점심을 먹는데, 바람부는 그늘 속에는 서늘하다.

날은 맑아 멀리 원산대교도 뚜렷이 보인다.

 

해당화는 인제 가면 언제 오냐고 아쉬워하는데, 저멀리 연락선이 다가온다.

 

앞으로 고대도가 코앞이고, 뒤로 장고도가 지척이다..

 

그사이로 돛단여가 그림같다..

그림 속에 우리가 간다..

 

명장섬 해수욕장 캠프에서 휴식을 취한후 둘레길 걷기에 나선다.

 

개념은 대멀항 선착장에서 명장섬 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1.5km 해안탐방로 1구간을 중간에 치고 들어가서 조인한뒤 명장섬 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치고들어가는 입구를 찾다가 농부에게 제지 당하고 우회하여 가능성이 높은 길을 찾아간다.

실제는 길이 없지만, 우격다짐으로 갈려는 것이다..

 

그래도 이 길로 가면 해안탐방로 1구간과 조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논두렁 지나고 악어나오는 수풀을 지나니 제1해안 탐방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려서 못해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 늙어서야 한다고 투털거리며 따라간다..ㅎ

 

다행이다. 길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 주니..

 

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명장섬을 향해 간다.

 

중간에 백패킹 텐트치면 좋을 자리가 나온다.

잠시 쉬면서 수다배틀 한판..

 

이 숲길 참 좋다.

 

엉겅퀴..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꽃말을 무시하고 동행이 꺽어들었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저 긴 섬은 안면도란다..

 

명장섬이 보이고, 무슨 보좌처럼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 안면도를 거침없이 바라본다.

장고도가  장구치고 북치고 파수를 서주어 편히 자는 섬이라 안면도인가??

 

썰물 때라 명잠섬 모세의 기적이 진행 중이다.

모세처럼 황해를 걸으리라..

 

 

 

동행이 엉겅퀴를 물병에 담아놓았는데, '자신을 꺽지말라"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금방 시들어 버린다..ㅜ.ㅜ

 

드디어 황해가 갈라졌다!!

 

명장섬 가는 길이 대로처럼 벌려졌다..

십계 영화처럼 물이 양쪽 벽을 만들어 주지 않아 스릴은  떨어진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6시간 뒤면 다시 사라지니..

 

그길에서 나의 진면목을 찾았다.

나는 모세가 아니라 차돌이라는 것을..ㅎ

 

모세의 길은 해안에서 1km 남짓, 왕복 2.5km(명잠섬 한바퀴 포함) 잡으면 되시겠다. 

 

 

명장섬 우측은 노랑배, 좌측은 종두레라고 불린다..

 

 

가까이 가보니 좌측 종두레는 2개의 섬이네..ㅎ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온다..

먼저 귀가하는 2사람을 위해 매표하고 오는 드림체이서..

 

노랑배 앞에 서있는 거시기 바위도 보고..

 

 

 

모세의 기적을 보고..미련없이 돌아가야 한다.

물시간이 있고, 배시간도 기다린다..

돌아갈 때도 조심해야 한다.

홍해를 건넌 모세가 방심하여 좌측길로 접어 들었다.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았지만, 석유가 나오는 땅으로 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suv가 들이 닥친다.

다리가 부실한 사람인가 보다..

이어 승용차 1대도 겁대가리 없이 달려 간다..

 

<이번 걷기> 명장섬 해수욕장 - 해안탐방로 1구간 중간 - 전망대 - 명장섬 일주 - 해수욕장 캠프  약 5km 

 

2사람을 배웅하고 베이스 캠프에 앉아 명장섬의 노을을 바라본다.

관하재(觀霞齋) 선생에겐 노을은 천지조화의 기적이다..

볼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은 워즈워드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노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노라

아침 노을은 계시요, 저녁 노을은 병풍이라

아침놀은 아들에게, 저녁놀은 딸에게 헌정하리니

가슴 뛰는 이것이 없다면 산 것이 아니로세

비오나니, 이 기적을 만나는 날마다 축복하게 하소서!!

 

-수암, 노을-

 

삽시도 일주 걷기를 마치고, 고기굽고 소폭 수면제를 먹고  푹자고 난 아침..

거멀너머 해변을 걷는다..

 

거기서  어제밤에 놓친 반달의 형 온달을 만났다..

 

 

오후 배로 장고도로 건너가기로 어제 약속한터라 드립커피나 하면서 아침 망중한을 즐겨볼까 했는데...

드림빌더가 갑자기..8시 배를 타고 나가자고 제안한다..

현재 시간 6시..될까?? 

부랴 부랴 짐싸고 개고, 접고하여 처에 싣고 시간상 차가 왕복할 수 없어서 사람도 다 타고 선착장으로 가기로 하는데..

마치 작은 차에 15명이 타는 미션처럼 되어 버렸다..

실제 그 많은 짐을 싣고 6명까지 타고 갔다는..

역대급 추억이 되었다.. 

 

하여간 드림체이서의 호통 한방에 몽땅 때려 싣고 타고 무사히 8시 배에 올랐다..

 

잠시후 장고도 대멀항 선착장에 도착한다..

 

 

장고도..

섬모양이 장구같단다..

 

해당화도 졸고 고냥이도 조는 섬..

 

명장섬 해수욕장에 도착..

정탐해보니..화장실이 깨끗하고 물도 잘나오고 ..최에고..ㅎ

솔밭에 명장섬을 바라보는 곳에 텐트를 치니..최고의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장고도 등바루 놀이 장소..

4월 해당화 만발하는 날  동네 젊은 처녀들이 놀이하기에 좋은 날을 잡는다. 그리고 하루 전에 미리 명장섬 백사장으로 나아가 부지런히 돌을 날라 ‘돌방’을 쌓고, 등불을 밝히고 편응 나누어 굴캐기 경연을 벌인다.

 

명장섬과 모래톱은 말이 없이 갈매기만 쓰다듬고 있다..

 

텐트를 치고..아점으로 컵라면을 먹고 일단 휴식모드 돌입.. 

 

컵라면 먹다 문득 물었다.

"어제 먹다 남은 삼겹살 어쨌나??"

"급히 떠날 때 다 처분하고 왔는데"

"음..그 삼겹살, 안부 물어주는 사람있어서 서운하지 않겠다.."

ㅎㅎ

"다음엔 소고기로 태어나라.."

ㅋㅋ

 

저녁 거리로 감자와 오징어를 손질해놓고..

 

송가인 컵에 드립커피 내려서 마시며 바다멍 때린다..

멍에서 깨어나면 단소 꺼내 어부의 노래을 부른다..

검은 물결 춤추고 

갈매기 때 넘나드는 곳..

 

야침에 누워 딩굴 딩굴하다가 장고도 걷기에 나선다..

 

걷기를 마치고 일행 중 2명은 5시배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일찍 취침..

 

2일째 아침 명장섬의 감수하에 소세지 굽고 된장 끓여서 아침식사를 마친다.

 

모세의 신화는 1년에 1번 벌어지면 명소가 되는데, 여기처럼 매일 벌어지면 신화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아침노을과 저녁 노을이 천지공사의 기적인데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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