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면에 잇는 바람재에 갓다..

우연히 알게된 길..

집에서도 20분 거리에 잇어 언제든지 다녀 올 수잇고 알려 지지않아 호젓하니 좋다..

 

 

바람재 공원의 정자 이름은 해민정..고민을 없애주는 정자..

하긴 이 정자에서 저멀리 쳐다 보노라면 고민은 저절로 사라질 것 같다..

 

 

입구에 현수막이 쳐잇다..심심유곡에서나 존재할 줄 알앗던 멧돼지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다니..

멧돼지가 늘은 건지...산에서는 먹구 살  것이 없어 사람을 찾아 찾아 온 것인지.. 

 

 

백주 대낮에 멧돼지가 출몰하겟나 싶지만, 그래도 호젓한 길에 혼자 몸이라..약간 캥겨서 차 트렁크에 든 스틱을 꺼네 최대한 길게 빼서 집고 간다..

정말 호젓한 길에 먼데서 확성기 노래 소리가 분위기를 망친다..

 

 

오늘 걷다가 제일 맘에 드는 곳..

잠벗과 말다툼하고 늦게 혼자 나온 길이라 1시간 걸으니 해가 떨어진다..

후일을 기약하고 돌아 나오는 길..싸우고 씅이 들 풀릴 때 걷기 좋은 길이다..

 

 

 

이 길은 산악자전거팀에게 잘 알려진 길인가 보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한무데기 지나간다..

한 무데기 지나가는 것이 또 잇다..

송전선..

저 송전선에 도르래 걸고 신나게 하강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1번 올빼미 하강" 외치며..

 

근데..아직도 씅이 안풀린다..해민정에 한참 앉았다 가야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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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행사를 일요일로 당겨 치르기 하였다..

걷기 약속을 모두 물리고 고향 선영에 형제들이 모였다..

따뜻한 햇살아래 잡초를 뽑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

 

저 묘소 아래 우리 형제들 자리도 준비는 해놓았는데..

그뒤에 아들..조카 시대에도 이런 한식모임이 이루어 질까도 생각해본다..

 

퇴계선생의 유언 중 절차는  "지금 실정에 맞도록 하되 옛법도에 멀어져서도 안된다" 말씀<의어금이(宜於今而) 불원어고지(不遠於古)>..변화하는 시대 속에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지..

 

 

묘소 정비후 제사를 올리고 음복을 한다...

사업이 안되면 조상묘소가 잘못되었나 돌아보러 온다는 사람 얘기도 들었지만..

그저 형제끼리 집안 땅가지고 소송안하고 서로 음복하며 덕담하는 것이 그야말로 조상의 큰 음덕이다..

 

(소동파의 황주한식시첩)

 

송나라 문인 소동파..

그는   황주에 좌천된 후 3년째 되던 해의 한식날 인생에 대하여 느낌을 시로 썼다...

시는 처량하면서 다정하게 썼고, 소식의 슬프고 고독한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시로서 뿐만 아니라 행서체로서도 3대 걸작에 들어가는 글씨다..

 

 自我來黃州 已過三寒食

年年欲惜春 春來不容惜

今年又苦雨 兩月秋蕭瑟

臥聞海棠花 泥汚燕指雪

暗中偸負去 夜半眞有力

何殊病少年 病起頭已白

 

내가 황주에 온 이래로 세 번째 한식이 지나가는구나.

해마다 봄을 아끼려고 하지만

봄은 그냥 지나가버릴 뿐, 나의 아끼는마음을 용납해주지않내 그려.

올해도 또 괴롭게 내리는 비는 계속되어

벌써 두 달 째 가을 못지않는 소슬한 날씨

시름에 젖어 자리에 누운 채로 듣자니 벌써 해당화가 다 지고 있다는데

진흙탕 위에 떨어진 그 꽃잎은 연지 색갈많큼이나 붉으리라

한 밤중에 진짜 큰 힘을 가진 자가(自然)

어둠 속에서 봄과 꽃을 업어 가 버린다면

꽃잎이 떨어져버린 해당화와 병든 소년과 그 무엇이 다르랴?

병상에서 일어나 보면 머리가 이미 세어 버렸을 텐데.

 

春江欲入戶 雨勢來不已

小屋如漁舟 濛濛水雲裏

空庖煮寒菜 破竈燒濕葦

但見烏銜紙 君門深九重

墳墓在万里 那知是寒食

也凝哭窮途 死灰吹不起

 

불어난 강물이 집안으로 들이닥치려하는데도

비의 기세는 꺽이지 않고

내 작은 집은 이미 고기 배인 양

희뿌연 비와 물 속에 잠기어있네.

텅 빈 부엌에서 찬 나물을 데우려

갈라진 부뚜막에 젖은 갈대로 불을 지펴보는데

오늘이 한식날인줄은 어떻게 알겠는가

한식날이라고 사람들이 날려보낸 지전(紙錢)을 물고다니는 까마귀를 보고서 알았지.

임금 계신 곳은 구중궁궐 깊어서 내 마음을 알릴 길이 없고

조상님들의 분묘가 있는 고향은 만리 밖이어서 가 볼 길이 없네.

그 옛날 완적(阮籍)이 그랬던 것처럼 길 다한 곳까지 갔다가

길이 끊기면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지만

내 마음은 이미 스러져 죽어버린 재인가?

아무리 불어도 살아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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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걷기에 나섰다..일요일 집안 한식 행사로 장거리 도보를 포기하는 대신으로..

운동부족으로 뱃살이 붙는 아들도 조련할 겸..

직동에 도착하여 새로 만든 표지판을 보고 새로 만든 길로 웃피골을 지나쳐 보호수 옆 표지판을 보고 산성길로 오른다..

조금 올랐는데 벌써 대청호가 파르라니 보인다..

 

 

제법 업다운을 하느라 아들놈도 숨이 찬가본다..

내가 걷기 시작하기 전.. 저 녀석 살 붙기전에는  내가 그꼴이었는데..이제는 뒤바뀌었다..

천리행군의 보람이 느껴진다..

 

 성치산성 오르기 전에 망칙한 모양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을 붙여야하는데..뭐라해야하나..

19금 나무..포르노 나무..ㅎㅎ

 

 

성치산성을 가는 능선 사이 사이 좌우에 대청호가 버티컬 커튼 처럼 펼쳐진다..

아름다운 길.. 다벗은 것 보다 50% 가린것이 더 색시하다던가..

오늘은 저 망칙한 나무땜시로 계속 이상한 이야기로 빠진다..ㅎㅎ

 

 

 

성치산성의 모팅이에 앉아 대청호를 바라본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 산성이다..

이 지역은 백제-신라의 접경이었던 시절..금강을 따라 수십개의 산성이 얼키고 설키고..서로 뺏앗고 뺐기는 혈전의 현장..

1000년의 세월이 지나 이젠 고요의 호수 속에 침잠하였지만..산성의 흩어진 돌들이 아물지 않은 그때의 상처처럼 뚜렸하게 남아 잇다..  

 

 

산성을 내려오자 비로소 걷기 편한 흙길이 전개된다..

석양에 걷는 소나무 숲길은 그저 편안한 평화와의 대화..

 

 

 

한참을 길에 취해 걷다가 지팡이를 붙잡는 것이 있어 비틀거리며 언덕을 보다 놀란다..

언덕위에서 괴수가 큰 팔을 휘두르며 쫒아오는 것 같다..

안목을 정돈하여 발밑부터 살피니 스틱이 돌틈에 걸려 잘 빠지지 않는다.. 

 

 

 

 이 봄에 처음으로 만나는 개나리..진달래..살구꽃..이름모를 꽃들..구름꽃같은 산버섯도..

걷기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보물창고다..보물창고를 열고 보물을 헤아리는 기분 아시겠는가??

 

 

이봄의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죽은 등걸에 싹띄운 잡초..생명의 약동을 찬양하는 나같이 생긴 피리부는 사나이.. 

 

 

이 마을은 가을에 허수아비 축제로 유명하다..마을 입구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가족이 모두 나와 환송을 해준다..

언제든지 오셔유..스트레스 확 땡길땐 와서 걷구 막걸리 팍~ 마시고 고래 고래 노래 부르다 승이 풀리거든 가셔유~~

 

 

인근 장어식당에 앉아 아들과의 술한잔..아들이 여행때 사온 이집트산 싸구려 양주도 먹으니 취한다..

취한 눈으로 문득 벽을 보니

부러운 사내가 노를 젓고 잇다..

농암의 어부가가 들려온다..

 

이중에 시름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를 만경파에 띄워두고

인간세상을 다 잊었거니 날가는 줄 아는가.

 

산머리에 구름이 일고 수중에 백구가 나니라

무심코 다정하니 이 두 것이로다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노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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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 육사기념관에서 본 시 한귀절..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광야)

 

그런데..다음날 봉화 닭실마을에서 그 닭을 만났다..

청량산 앞을 흐르는 낙동강의 물결을 옆에 끼고 명호를 달려 봉화에 당도하였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의 4대 길지로 꼽았다는..경주의 양동, 안동의 천전, 풍산의 하회, 봉화의 유곡(닭실)..

그중 양동과 하회는 가보앗다..

 

 

 

닭실마을은 중종-명종조시대 사람 충재 권벌이 자리잡은 이후 500년간의 집성촌..

이른바 암닭이 알을 품고잇는 형상이라는 금계포란의 명당..

과연 동네는 야트막한 산에 감싸여 포근한 느낌이 든다..

아울러 동네 앞으로 국도, 철도등이 지나는데도 고요한 옛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과연 길지답다..

충재 고택을 들여다보앗으나 여기도 아직 봄꽃은 피지 않았다..

길지라해서 꽃이 먼저 피는 것이 아니구나..   

 

 

이제는 닰실 한과마을로 자력갱생을 도모하는..

동네 끝자락에 충재가 지었다는 청암정이 잇다..

이곳에서 바람의 화원 촬영도 있었다..동네 입구에 촬영장 가는 곳이라는 간판이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청암정의 글씨는 퇴계 이황의 글씨다..퇴계..농암..충재는 동시대인으로 서로 친인척으로 연결되고 지역적으로 가깝고 조정에 벼슬을 한 전직이라는 인연들이 작용하여 서로 교유하고 풍류도 나누었던 모양이다..

 

 

청암정에 잇는 또하나의 글씨는 청암수석이라고 전서체로 쓴 숙종때의 사람 미수 허목의 글씨가 있다..

노론의 송시열의 맞수 남인의 영수..

그의 글씨가 왜 여기에 잇을까?

허목의 당파는 남인..그의 글씨는 그의 뿌리라고 할수 있는  이황-유성룡으로 이어지는 동인-남인의 어른들 고택에 글씨를 올려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따라서 하회의 유성룡의 고택에 가면 당연히 미수허목의 전서를 볼 수 있다..

대전에 있는 송준길의 동춘당..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에 가면..당연히 미수의 글씨는 없다..서인-노론계열 인사의 글씨로 가득..  

 

 

 

잠시 청암정 정자의 모서리..바람은 미치지 않고 햇살만 가득한 가득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소나무의 속사임에 귀 기울여 본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 법이다..

이렇게 속삭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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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면 가송리에서 단애를 끼고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명호 쪽으로 3Km정도 달리자 아름다운 풍광에 끌려 청량산에 들어선다..

우리는 입석으로 곧장 올라가 차를 세우고 등산로를 걷는다..

등산로를 가다가보면 갈레길이 나오는데,  좌측은 평탄한 길이고, 우측은 가파른 길이다..

농암종손은 우측의 가파른 길을 가면 10배의 멋진 풍광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조언한다.

우리네 삶도 그런 구석이 잇다..

과연 그 길은 가파르지만 멋진 풍광이 발을 잡아 쉬게하니 힘드는 줄도 모르겟다..

그 길 끝에 멀리 응진전이 보인다..

의상대사가 창건햇다는 응진전..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절의 설화대로 한다면, 우리나라 절은 거의 의상, 원효, 도선대사 등과 연결되니..이 세분은 절만 짓고 다니는 건축업자엿나??

 

 

응진전 기단턱에 앉아 반가부좌를 하고 숨을 고른다..

전각 처마의 풍경도 꽤나 수도하였는지 이젠 잡고 있던 붕어도 창공에 방생하고 무소유다..

 

 

응진전 건너편에 성벽과 누각이 보인다..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난을 피해 이곳까지 와서 산성을 개축했다는..멀리도 피난왔다..

자세히 보니 산의 응달에 아직 눈이 가득..

 

 김생굴로 갈라지기전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퇴계선생은 10대에 공부하러 청량산에 들어와 절경에 반하여 오가산(나의산)이라 하였고, 후엔 오산당(吾山堂)를 지엇다..

 

 

청량사로 내려가는 길에 천덕꾸러기 응달눈을 만났다..혹시 심술이라도 부려 발을 걸까봐 조심 조심 걷는다..

 

 

이절의 본전인 유리보전에 당도했다..유리보전은 모든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전각 기단턱에 걸치고 앉아 단전호흡을 한다..

앞에 바라보는 풍광이 참 아름답다..

돌아보니 절기둥 주련에 "오고 감도 머무름도  또한 없다" (無去無來亦无住 무거무래역무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이 유리보전의 글씨 공민왕의 친필이다..그는 그림도 잘그리고 글씨도 잘썼다..하지만 아들 낳는 기술은 서툴렀는지.. 

 

 

유리보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한동안 바라보고 앉앗다..그대로 돌이 되도 좋을듯..

 

 

내려오는 길..석가모니 고행상 같은 등산길을 밟고 오기가 미안하다..

 

 

 

 봄에 만난 상징,.때이른 초파일 연등과 데이트하는 장독들..청량산 식당에서 다시 만난 바우솔체 글씨..메주형상의 등..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다람쥐..

 

 

청량산 입구 까치소리식당에 들어가 안동간고등어 정식을 시킨다..딸려나온 된장이 맛잇다..이젠 우리나라 제1의 멋진 길이라는 명호길을 간다..

4대길지 중 하나라는 봉화닭실 마을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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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을 걷고 도산온천에서 목요재계후 숙소인 농암종택으로 향한다..

면사무소에서 택시로 1만원..

택시기사 말..전에 한덕수 국무총리도 와서 묵고 갔다나..원래  이 종택은 도산서원 아래 낙동강가 분강촌에 자리잡고 잇었는데, 안동댐의 담수로 종택과 분강서원이 여기저기 흩어졌다가..현재 종손이 이곳에 땅을 마련한뒤 안동시의 문화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서원과 종택을 모두 재복원하엿단다..  

그 바람에 이곳은 다른 한옥과는 달리 내부 시설은 전기난방, 수세식화장실 시설을 갖추고 신세대를 위한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잇는 여건을 갖추엇다..

 

 

 

 

 애일당 아래 복원한 농암 각자..우측은 우리가 묵은 명농당 건물이다..종택과 서원 사이에 위치하여 조용하게 묵기 좋앗다..

 농암은 세조에서 명종때 사람으로  중종말년 정계은퇴를 상신하여 조선시대 유일하게 왕의 재가를 받아 조정을 떠나 낙향하여 만년을 강호지락(江湖之樂) 속에 보낸다..

스스로 어부가를 지어 불럿고  동시대인으로 족질인 퇴계 이황은 도산12곡을 지었고, 인근 봉화 닭실마을의 충재 권벌 등과 교유하며 조선 중기의 영남의 강호문화 기풍을 일으켰다..  

이는 그뒤 명종, 선조연간의 호남 담양의 송순, 정철 등의 가사문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지방의 풍류문화를 이끌었다..

이런 문화는 효종 년간은 동춘당, 우암의 회덕 선비문화, 정조 연간의 연암, 박제가, 이덕무 등의 진경시대 풍류문화로 면면히 이어졌다.. 

 

 

 

 명농당 마루에 있는 효빈가 서판..

효빈가는 농암이 정계은퇴식후 한강에서 배를 타고 고향으로 가면서 그 소회를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떠서 지은 노래..

 

歸去來 歸去來 말뿐이오. 가는 이  없어

田園이 將蕪하니 아니가고 어쩔고

草堂에淸風明月이 나명 들명 기다리나니

 

 

명농당 현판..

 농암이 귀거래도를 벽에 붙이고 귀거래의 의지를 다잡던 집..

전서체의 글씨가 아름답다..

 

 

 

 

 명농당에서 짐을 풀고..

방안에 비치된 다구를 차리고 찻물을 끓여 녹차를 마신다..음..좋구나..

원래는 보름 무렵이라 달밝은 강가에 나가 단소라도 한번 불어 보려고 하였으나,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불어 그냥 방안에 앉아 단소 한곡 불어본다..

온종일 걸어 피곤하여...금침을 깔고 누었더니 방바닥이 따뜻하다..모처럼 등 좀 지지고 갈수 있게 되었다..

 

 

 

독서는 언제하는가?

삼여가에 한다..

삼여가란..한해의 여가인 겨울..하루의 여가인 밤..낮의 여가인 비바람 불어 공치는 때..

지금이 자려고 이불깔고 누웠을 때가 책읽을 여가다..

하여 두리번 거리니 2가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때때옷의 선비..그림의 인물이 농암선생이다..그의 별명이 소주도병..질그릇에 담기 소주같은 사람..

때때옷의 선비란..나이 70에 90부모의 생신을 맞아 색동옷을 입고 즐겁게 해드렷다는 일화에서 나왓다..

 

우측의 책은 농암의 종손으로 종택의 주인인 이성원씨가 쓴 책..

젊어서 종손이 되기 싫어 방황하다가 세원이 흘러 어느새 보니 퇴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어려서 싫어하던 라훈아, 이미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고향을 지키고 사랑하게 되엇단다..

그의 책엔 안동 선비문화의 정신은 "부끄러움(염치)을 아는 것"이고 규정한다..조선 후기 세도정치이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늘어낫다는 것..

부끄러움을 알기에 구한말에 순국하거나 의병운동이 안동에서 많이 일어난 것이라 한다..

 

좀 읽다보니..꽤 괜찮은 수면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고산정을 향해 걸어간다..  여명에 저멀리 가송협이 눈을 뜬다..

강변에 깔린 돌들도 무척 다양하다..그 강돌을 뒤적거리다가 나를 발견하다..

차돌..ㅎㅎ

 

 

 

고산정에 다다랗다...건너편 고산을 바라보는 고송은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시인 묵객 관강객을 기억할까..

 

 

 

종택의 아침 식사 시간은 8시..그 시간에 대가려고 돌아선 길...강건너 가사리 마을에서 아침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시장하다..

 

 

 

종택의 안채 대청에 한식뷔페가 차려져 잇다..종택애서 묵은 손님들 20여명이 모여 같이 식사한다..

손님중에 시댁 부모형제, 친정 부모형제 같이와 묵은 분도 있다..

골고루 접시에 담아 방에 앉아 먹는데..책장에 눈이 갓다..

책장에는 각종 역대 문집들이 즐비하다..

 

종택의 3대요건이 불천위..문집..정자란다..

덕행이 있어 영원히 제사지내기로 추존되고 학문과 문학적 소양이 깊어 문집이 잇어야 하고 정자를 지을 정도로 경제적 기반이 있는 분을 중시조로 하여 종가(종택)이 형성된다..현존하는 종택의 과반수 이상이 안동지역에 분포한다..

그러니 문집들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터다..

호기심에 살펴보다가 수암문집을 발견했다.. 

 

 

 

 정갈한 아침식사에 흐뭇하게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 장독대를 발견했다..

종택의 정갈한 음식은 정갈한 장독대에 기인하는 거겠지..

한가한 틈을 타서 대청에 비치된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란 책을 구입하여 저자인 주인장께 싸인을 부탁했다..

웃으며 서재로 들어오라 하며 싸인하면서 덕담한마디를 보너스로 써준다..

"인생의 행복은 충고하지 않는 것!!"

부부,형제, 부자, 친구간에도 함부로 충고하지마라..굳이 해야한다면 정성과 최선의 방법으로 하라..하지만 가급적 하지마라..

이를 철저히 지킨 분이 퇴계선생이란다..제자에게도 충고보다는 격려를 통한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단다..

그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우리는 흔히 충고가 미덕으로 알고, 충고의 홍수 속에 산다..

숙고 끝에 나오는 정성없이 습관적인 입발린 충고는 간섭이고 강제이며 갈등이다..

 

 

 

종택의 주축 건물은 긍구당이다..전세 긍구당이 용트림하는 기상이다..

긍구당(肯構堂)이란  '조상의 업적을 길이길이 이어받는 집'이라는 의미..농암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귀천했다..

 

《서경(書經)》 〈대고편(大誥篇)에 보면...

대고는 주나라의 성왕이 점을 쳐서 은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하려는 뜻을 고하고 천명이 불변함을 주장한 내용..
그 가운데 정치를 집짓는 일에 비유하여 "만약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고 이미 땅을 다지는 법을 정해 두엇거늘, 그 아들이 당(토대)를 만들려고도 하지 않고 하물며 가옥을 지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 아버지가 "내게 좋은 후계자가 있어서 나의 계획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는 귀절..

그래서 긍구긍당(肯構肯堂)은 조상의 유업을 잇는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가 되었고, 서원이나 사대부가의 단골 명귀가 되었다.. 

 

 

.. 

 

 

종택 입구에서 바라본 긍구당..

 

 

 

 

종택 대문에 입춘방 치고는 특이하게  "국가흥망 필부유책."이란 글이 쓰여있다..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데는  평범한 필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

종택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이 글은 백범 김구선생 이 휘호로 쓴 적도 잇다..

 

 청대의 고증학의 대가 고염무가 "천하흥망 필부유책"이라 한 것이 원전인 것 같다.. 

케네디가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바라지 말고,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달라"는 말이 오버랩된다..

 

 

 

 

짐을 정리하여 나와 올미재길을 향해 가서 학소대 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오른다..

능선에서 바라본 종택과 서원의 모습..

 

 

 

학소대 부근 벼랑에 낙낙 장송이 멋진 솔가지를 펼치고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장송 사이로 흐르는 낙동강과 종택이 기백년의 지기처럼 조화롭다..

 

 

 

안동 도산으로 가다가 도산서원표시를 보고 우회전해 들어 갔다..

아..환상의 드라이브길이 펼쳐진다..

서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서원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낙동강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빼앗겼다..

 

 

서원이 강변에 자리잡아 경관이 수려하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경관이 뻬어난 곳에서 준재도 나오나보다..

 

성리학을 배우는 도학자들도 위트가 잇다..도산서당의 글씨..산(山)자만 애교잇게..

이 도산서당이야 말로 생전에 학생을 가르치던 곳이다..

나도 제대로 관람포인트를 모르고 주마간산으로 보고 지나간 것이 아쉽다..

 

 

안을 기웃거리다 보다..전교당 대청에 유림인사들이 가득하다..

살금 살금 접근하여 무엇하나 보니..무슨 종이를 정성껏 접고 잇다..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다음날(3.28.)이 퇴계선생 기일이란다..

그리하여 유림인사들이 모여 준비하는 모습이다..

 

 

대청 아래 고무신 중에 멋진 신이 하나 눈에띈다..불랙앤화이트의 세련된 다자인..

 

이 도산서원 현판의 글씨는 한석봉의 글씨라고 안내문에 써잇다..

과연 불끄고 떡썰던 어머니의 손 솜씨에 각고의 노력이 덧붙혀졌으니 글씨에 공력이 보인다..

 

 

이 글씨는 서고격인 광명실의 현판인데..퇴계선생의 친필이다.. 

 퇴계가 고인이라 추모하는 영원한 사부..주자의 "만권서적이 은혜롭게 나를 밝혀준다(萬券書籍 惠我光明)"는 귀절에서 인용..  

 

  

 

서원의 부억에선 점심준비가 한창이다..무슨 밥상이가 보앗더니 단촐하고 정갈하다..

우측은 퇴계선생이 쓰시던 흑단연의 벼루..아래는 책을 읽던 경상..

 

강변 시사단.. 정조때 퇴계선생을 기려 도사별과의 과거시험을 치렸던 장소를 기념하여 세운 곳..안동댐으로 인해 그자리에 높이만 올렸다..

 

 

 퇴계선생의 제자는 300여명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남에게 함부로 충고하지 않앗다..제자에게도..그저 격려하고 자득(自得)하게 하는 교수방법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공자와 제자와의 대화를 기록한 논어가 잇는 것 처럼..그에게도 제자와의 대화를 다룬 언행록이 잇다..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의 가르침이 낙동강을 따라 지금껏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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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걸으러 나섯다..

새로 뚫린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주ic에서 문경-안동-도산-가송리로 이어지는 3시간 반의 드라이브..

퇴계선생이 집을 나서 청량산까지 걸어 가면서 아름답다 찬탄하며 걷던 길..

일단 가송리 입구에 위치한 가송협을 보는 순간..백문이 불여일견..을 실감..

 청량산은 여기서 부터 3킬로 정도 더가면 된다..다음날 가기로 하고..

 

 

가송협 옆댕이에 서 있는 고산정(孤山亭).. 퇴계선생의 제자 성재 금난수가 공부하던 정자..

이런 곳에서는 공부가 저절로 되겟다..아님..술과 풍류를 즐기던지..

 

 

이 강물은 태백에서 내려오는데..강을 끼고 가는 이길은 예전 길은 아니란다..예전 길은 강쪽으로 잇었는데 근래에 만든 길이다..

가송협에서 1.5킬로 남짓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 농암종택이 있다..

퇴계의 선배격인 농암 이현보의 종택.. 걷기를 마치고 묵을 집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흙길이 시작되고 걸을 만하다..종택의 애일당(愛日堂) 옆을 지나가는 길..

매일 매일을 아끼는 마음으로 살리라는 집.. 그런 심정으로 산다면 날마다 소풍을 나온 것 처럼 즐겁게 살리라..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다.." 이런 말은 왜 교도소 같은 곳에 써있는지..

그러나, 여기서 그리고 이길을 걷는 순간 저절로 이말을 실행하는 것이리라.. 

 

 

좌측으로 보이는 돌이 경암이다..지금은 별루여두 예전에 강복판에 크게 버티고 잇었나보다,,

 

 

경암을 지나며 되돌아본 정경..좌측으로 종택이 보이고 강물은 유유하다..

녹수청산리..녹수가 청산속에 누웠다..

 

학소대..아래서 사진을 찍으니 바위만 보이지 별거 없다..

그래서..경공술을 써서 훌쩍 뛰어 올랐더니..

 

짠~~ 이광경이다..

눈이 시원하고 가슴이 탁터진다..

(경공술의 비밀은 다음날 올라가는 것..ㅎㅎ)

 

학소대 정상 가는 길에서 보는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의 전모를 파악한다..뭐 대청호 주변의 절경도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

 

 

힉소대를 지나고 공룡발자국을 지나니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사유지 주인과의 트러블이 잇나보다..

이를 무시하고 들어가니 길은 잇다가 사라지고..헤메다가 다시 찾고..

길없는 길을 걸어간다..

그길을 걸어간 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와 땅주인의 분쟁 덕에 철리을 깨닫는다..

 

 

이 좋은 길에서 만난 연인나무..자세가 애로틱..물오른 버들 강아지..

 

 

우뚝한 바위 아래 푸른 물은 예안 유림들의 시퍼런 기개를 나타내는듯..

이런 비경이니..농암선생이 어부사를 지을만하다..

 

굽어보면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강산

십장홍록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에 월백하거든 더욱 무심하여라..

 

녀던길 전망대..농암종택에서 여기까지 3km의 흙길이 끝난다..

전망대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여기서 건지산과 삽재를 거쳐 학소대-올미재-농암종택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돌아가는 코스도 있으나 우리는 퇴계종택으로 향한다..

 

 

퇴계오솔길을 단장한다고 한 단천교에 이르는 길..포장길이 시대의 길이니..뭐라 불평하기도..

그저 걸을 뿐..강을 따라 걷는 길..찬 바람이 등을 밀어준다..

 

 

강변에 앉아 술한잔 하면서 퇴계선생의 도산12곡 한귀절을 읊어본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하리라..

 

萬古常靑..그가 원햇던 정신세계를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

그도 50세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숙성단계를 거쳤다니..우리도 주야로 긋지 말면.. 

 

 

 

단천교 앞에 세운 녀던길 비석..우리는 저 표지판에서 무턱대고 좋아보이는 직진 제방길로 걸어갓다..한참을 가다 동네분에게 육사기념관 가는 길을 물었더니 동네를 거쳐 큰길로 나가란다..다시 아스팔트 길을 걸어 당도한 이육사기념관..

이육사도 퇴계의 후손이다..

 

전망대- 이육사기념관 -퇴계종택까지 5KM..아스팔트길로 걷는 것 쉽지 않다..

물론 우리는 도산온천 폐장시간에 맞추느라 마음이 조급해  축지법을 좀 섰다..

축지법..별개 아니다..지나가는 근두운 세워 타면 된다.. 

 

퇴계종택..

퇴계선생이 서당을 아직 열지 않고 이곳에 터를 잡기전에  동네에  백수 비슷하게 지낼적에 동네 노인이 무슨 일 하는냐고 물엇던 모양이다..

그의 답..

노인이 웃으며 나의 일을 묻기에

몸써서 밭가는 대신에 혀로써 갈려하오..

(山翁笑問溪翁事 只要躬耕代舌耕)

 

그는 50의 나이에 이곳에 집을 짓고 토계 건너편 계상서당을 짓고 설경(舌耕) 농사를 짓기 시작햇다..

대풍이었다..

 

 

 

퇴계종택의 현판..추월한수정..가을달이 비치는 강물 같은 집이라..

위 편액의 이름은 퇴계와 논쟁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의 " 선생의 마음은 마치 물에 비친 가을달과 같다(先生之心 如秋月寒水)에 따왓다..

물론 위 글도 따지고 들어가면 주자의 "천년을 전해 내려온 마음이 마치 물에 비친 가을 달과 같다(恭惟千載心 秋月照寒水)"에서 취한것..

그런데..18세기초 종택은 불타고 터만 남은 자리에 모금을 하여 종택을 다시 짓고 이런 멋진 편액을 달아 놓았단다..   

 

 

 

종택을 지나 도산서원 갈림길에서 도산온천 2km라는 표지를 보고 우습게 생각하고 걸었다가 생고생을 한다..온천주인이 표지판에 에누리 좀 한 것 같다..

그래도 가는 길에 토계천을 만낫다..

퇴계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결심하고 이곳에 왔을 때 토계를 퇴계로 개칭하고 자신의 호로 삼앗다는 그 토계다..

 

 

어찌해서 도산온천에 도착하여 목욕을한다..온천수는 끝내준다..시설이야 시골이니 그러려니하고..

목욕후에 택시를 불러 근처식당으로 간다..

기사에게 먹을 만한 식당을 문의하니.."그런디 없는데.."

그래서 점심을 먹은 몽실식당으로 다시 갔다..이름이 정겨워서..

술도 한잔하고 얼큰한 마음에 택시를 불러 농암종택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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