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입구)

 

선운사를 출발하여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고창읍내의 중심가를 지나 산을 등지고 성이 있다..

성의 입구는 서울의 동대문처럼 옹성으로 되어있다..

 

고창읍성하면 떠오르는 것은 돌을 머리에 인 부녀자들이 성벽을 밟는 행사인 "모양성 답성놀이"다..

돌을 이고 성벽 주위 1.6km를 3번 돌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당연하지..그 정도 체력이면 성를 돌지 않아도 건강할테니..

 

이성을 모양성으로 부르는 이유는 백제 시대의 지명 "모량부리"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단다..   

 

(성벽)

 

주차장에서 성벽을 바라보자니 

영국에서 본 요크셔의 성을 연상시킨다고할까?

 

이 성안은  산을 등지고 평지를 향하고, 그안에 동헌, 객사, 관아 등이 들어 있으며, 비상시에만 백성이 성안으로 피난들어 온단다..규모나, 위치  등이 진주성과 같은 요새의 형국이다..

이 성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잇는지 궁금해진다..

이성을 둘러싼 공방전은 역사상 없었던 것 같다..

  

(풍화루 현판)

 

성 한복판에 작은 연못이 잇고, 부근에 약수터도 있다..

연못은 유사시 식수역할을 하였을 것이니, 물걱정은 없었던 성이었으리라..  
연못 지나 누각이 있는데, 이름이 풍화루다.

 

풍년과 평화를 기원한다는 이름..

악필(握筆)의 대가 석전 황욱이 92세에 쓴 글씨란다..

 

석전 황욱 (1898~1993)은  고창 출신으로 호는 石田, 金剛山人, 白蓮山房, 太平老人, 平和老人, 七峰居士, 母岳山人, 20여가지의 호를 사용 하였으며 한국서단을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70세전까지는 해서,행서,초서를 즐겨썼으나 수전증이오면서 악필로 전환하게된다.

송곳을 쥐듯이 붓을 쥐는 악필법은 일체의 기교가 배재된,마음과 손이 서로 호응하지않으면 안되는 [심법]의글씨이다. 

 다른 서예가들과는 달리 석전은 90세 이후에 특히많은 작품을남기고 있다..

 

(동헌)

 

이곳의 건물은 1988년경에 원래 자리에 복원을 하였단다..

동헌은 고을 원님이 집무하는 곳이다..

고을 원님의 권한은 5가지..행정,치안,징세, 군사,사법..

동헌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듯하다..

"네죄는 네가 알렸다! 이실직고하라.."

 

(동헌 현판)

 

동헌의 현판은 복원하면서 석전 황욱이 쓴 글씨이다..

 

"평근당(平近堂)"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평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란다..

 


(내아)

 

동헌 바로 옆에  원님의 숙소인 내아가 잇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부러울 정도..

주방이 없어 궁금하였는데, 성 중앙부에 "관청"이라는 주방건물이 따로 있어 거기서 음식을 조리하여 운반해오는 것 같다..



(작청)

 

작청은 이방 등 육방관속의 집무실이다..

명칭도 특이하다..

작청(作廳)이면 일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인지..

 


(현판)

 

조선시대 아전들은 공식 급여가 없었단다..

그러니 작청에 앉아서 공무 수행보다는 자신들의 월급 만드는 일에 더 골몰하였는지 모르겟다..



(옥)

 

성문 가까이 감옥이 있다..

들여다보니 나무 창살, 칼이 잇고, 좁고 창문도 없다..

그 곳에 칼을 목에 쓰고 쭈구리고 앉아 잇으면 답답하여 저절로 죽을 것 같다..


 

성안에 s라인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홍송..

이런 나무가 커서 낙락장송이 되고 경복궁의 대들보가 된다..

일제시대 왜놈들이 이런 소나무 다 베어쓰고 산에다 왜송(리끼다 소나무)만 심엇다..

이젠 그마저 재선충에 시달리고 잇으니..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듯한 소나무의 기상"은 어디에서 보려나 했는데..이곳에서 그 편린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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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입구에 위치한 비석)

 

추석 다음날..고창 선운사를 향해 달린다..

해미 i.c에서 군산까지 상행선은 차가 나래비 선다..

하행선을 씽씽 달리며 쾌감마저 느낀다..

 

선운사에 도착하여 좀 걸으니 입구 공원에 비석이 보인다..

선운산가..

백제 때 장사(長沙) 사람이 정역을 나가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선운산에 올라가 못내 그리운 심정을 읊은  노래라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유래만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등에 전한다.

 

이 비는 시의 내용을 전하지 못하니 노래 비라기 보다는 이곳이 오랜 터전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 같다..

 

 

(꽃무릇)

 

9월에 선운사는 꽃무릇이 한창이다..

상사화라고 하는데, 꽃이 지고 잎이 피어나므로 서로 만나지 못함을 그리워한다하여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다던가..

멋진 작명이다..그러면 목련도 상사화라 불러야 할껀데..

 

선운사 입구부터 도솔암에 이르는 길에 붉은 꽃무릇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잇다..

 

(대웅전)

 

대웅전 앞에 만세루라는 강당이 잇는데..

강당의 마루에 다구를 진설하고 녹차공양을 한다..

고옥에 반가부좌를 하고 발효녹차를 들면서 대웅전을 바라본다..

조주 고불(古佛)이 "끽다거"(차나 드시게)라고 하는 말이 들리는듯..

집에서 가져온 송편을 곁들여 즐기는 녹차로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차를 마시고 다구를 깨끗이 닦아 놓고 잔돈으로 보시하고,

모처럼 법당에 들어가 온가족이 3배를 올린다..

 

(도솔암 미륵마애불)

도솔암까지 2km 남짓..

나무그늘과 계곡 물소리가  어우러진 환상의 산책길이다..

 

 도솔암 뒷편에 13미터 높이의 미륵 마애불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이다..

미륵불은 도솔천에 계시니 도솔암이라 명명한 이유가 분명하다..

 

마애불 중상부에 흰네모 표지가 있는데..

동학교도인 손화중과 그 일행이 그 부분을 부수고 그 안에 들어잇던 비결을 가져갔던 흔적이란다..  

 

(내원궁)

 

 

마애불 옆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도솔천 내원궁이 있다..

여기에 고려후기 양식의 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잇다..

지장보살은 다른 불상들과 달리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도솔천의 의미는 지족(知足), 희락(喜樂)을 의미하는데, 그 도솔천 내원궁에는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살고, 흔히 미륵보살이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지옥에서 중생제도를 하리라 서원한 지장보살을 모신 것은 어인 이유인지..




(사자암과 투구바위)

 

내원궁에서 사자암과 투구바위를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선경이다..

이런 선경을 대하니 여기가 기쁨과 즐거움, 만족감을 주는 도솔천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

풍천장어와 복분자

 

선운사를 나오면서 길가 노점에서 고창의 명물 복분자쥬스를 한잔 사 마셨다..

풍천장어와 복분자 술이 제격이라는데, 운전 때문에 술은 먹지 못할테니 미리 쥬스라도 마셔둔다..

 

장어를 먹기 위해 입구에서 가까운 식당에 갔더니  너무 불친절하여

건너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에 인터넷으로 원조식당을 검색하고 오는데, 이번엔 깜박하였다..

 

하여간 그 식당은 자연산은 1인분 25,000원, 양식은 15,000원을 받는데..

반씩 시켜놓고 먹으며 검증하여보니.."자연산"이 더 굵고 맛이 있더라..

헌데, 문득 의심이 간다..자연산이라면 좀 맛은 있겠지만 더 굵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에...

 

돌아와 검색을 하여보니 원조격으로 추천된 "신덕식당"의 경우 15,000원에 팔고 있더라..

 

하여간, 풍천장어라고 불리는 이유는 고창 선운사 앞 인천강에 하루 2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風" "내川"이란 글자를 써서 풍천장어라고 한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바다 부근에 염도가 높고 고기가 오염되지 않아 육질이 뛰어나서 고창에서 나는 풍천장어를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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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걷기에 나섰다..

이번에 서산 아라메길 1코스..용현계곡-마애삼존불-일락산-상왕산 개심사- 해미읍성 13km..

차에서 내려 몸을 풀고 바로 계단을 오르니 불이문이 나타난다..

불이문(不二門)..둘이 아닌 도리..

색과 공이 둘이 아니고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행복과 불행이 둘이 아니라는 말씀..

그 문을 통해 삼존불을 알현한다.. 

 

 

중앙에 현세를 주관하는 석가모니불..좌측엔 제화갈라보살입상..우측은 미래불인 미륵반가사유상..

천년의 미소를 머금고..

과거와 현재가 둘이 아니고..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라도..

 

예전에 찾아왔을 때 건물 속에 잇엇는데..지금은 원래 모습대로 노천에 서있다..

 

 

알현을 마치고 내려간다..

용현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보원사지 발굴공사 현장이다..

 

 

천년의 세월 속에 서잇는 석탑너머로 노란 봄볕이 찾아들고 있다..

 

 

일락산(日落山)을 오른다..호젓한 임도를 걸어 개심사로 향한다..

일락서산(日落西山)..해가 서산에 진다..하니 서산에 일락산이 있는 것은 당연하겟지..

 

서산에 해진다고 눈물겨워마시게..

日落西山月出東(일락서산월출동)..

해가 서산에 지면 달은 동산으로 오르더라.

 

 

 

일락산 쉼터에서 불소주와 막걸리로 취기까정 느끼고 걷다보니 어느덧 개심사..

안양루..현판이 눈에 가득..

안양..불교의 이상세계..아미타불의 정토를 이르는 말..

부석사의 안양루도 유명하다..

 

 

해탈문을 통해 바라본 대웅전..

해탈문의 기둥은 그야말로 해탈한 자유 그자체..

 

 

 

상왕산 개심사..현판..

위는 안양루 뒷편에 쓰인것..아래는 일주문에 쓰인것..

위 글씨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고종 때의 서예가...최초의 어전 사진사..

아래 글씨는 구당 여원구의 글씨..

두 사람 다 코끼리 상자 쓸때 코끼리 코를 연상시키는 점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절마당 기와 불사에 쓴 글씨..

대하무성(大河無聲)..큰 강은 소리가 없다..

빈 깡통은 요란하지만 지구 돌아가는 소리 듣는 사람이 있다던가..

 

 

개심사 내려가는 길..장송이 로마의 열주처럼 아름다운 길이다..

 

 

점심은 절앞 식당에서 더덕구이백반으로 먹는다..물론 면천막걸리로 반주하면서..

밥먹다가 보니 JP의 글씨가 걸려있네..

천고지홍..하늘은 높고 땅은 넓고..

 

 

그옆엔 포대화상이 보따리를 메고 웃고잇다..

뚱뚱한 몸매에 웃는 얼굴..포대를 메고 다니다..아이들에게 주전부리 꺼내 주던..동양의 산타..

가르침을 청하면..포대를 내려 놓는다.."그대도 짐을 내려 놓게.."

 

 

그러나..우리는 점심을 마치자 마자..짐을 둘러매고 길을 걷는다..

나무다리을 건너고..

 

 

또 다리를 건너고..

 

 

황무지를 지나서..

 

 

임도를 따라 걷는다..

아라는 바다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고..뫼는 산..

아라메길이란 바다와 산을 끼고 걷는 길이다..

 

 

내일 새처럼 나르는 자유를 꿈꾸지만..

 

 

오늘은 무작정 걷는다...

 

 

길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남의 이정표 노릇을 하다보면..

 

 

언젠가 밝은 깨닭음과 마주할 날이 있을까??

 

 

봄이 오면 꽃은 절로 피어나듯..

우리의 삶도 꽃같은 시절을 거처가리라..

 

 

해미읍성으로 가는 여정의 막바지..

 

 

태종 때 아곳에 축성하기 전엔 가야산 넘어 덕산에 성이 있었는데..왜구의 노략을 근절할 의지로 이곳에 성을 쌓앗다..

당시에 이곳이 해안이 이었단다..

이순신 장군이 근무한 적도 잇다던 곳..

 

 

 

동문의 이름이 잠양루...잠양은 해미의 옛지명에서 따온 것..

 

 

해미읍성에서 간월도로 향한다..

밀물시간이라 간월암은 섬이 되었다..

간월암은 섬중의 섬인데 오늘 처음 그 현장을 본다..

 

 

거룻배에 따서 줄을 당겨 도선하는데..

썰물이 되어 배가 좌초한다..일행이 바다에 내려가 밀어 겨우 건너간다..

 

 

간월암..달을 보는 절..

무학대사가 이 암자에서 달을 바라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현장..

서산대사는 닭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앗다고 한다..

고승 중에는 대나무에 기왓장 부딛치는 소리에..뺨을 얻어 맞다가..꽃 향기를 맡다가..깨달음을 이루었다는 기연이 전하는데...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가운데 길이 있음이라...

 

무학(無學)이란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니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겟지..배움이 없는 무식한 사람이란 뜻은 아닐터..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더 배울 것 없어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사람은 망상을 없애려 애쓰지 않고 참됨을 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불이문(不二門)에 들어갔다 한다..

 

 

간월암 너머의 망망한 바다..

이 간월암의 고요 속에서 둥근 달이 둥드렷이 돋아오를제 파도의 해조음을 들으며 참선하기 딱 좋으리라..

 

 

근세엔 수덕사의 만공이 이곳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한다..

만공의 스승은 근세 불교의 중흥조 경허인데, 경허의 오도지는 해미 부근의 천장암이다..

이 부근 지역이 불교의 중심축이었다는..

 

 

간월암에서 나오니 썰물이 완연하여 거룻배 필요없이 징검다리로 바다를 건넌다..

눈앞에서 서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벌어진다..

래도 믿음이 약한 중생은 아무 생각없이 귀향만 서두른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의과대학의 한 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게임에 빠져 예과 과정에서 이미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은 학생이었다. 지도교수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필자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학생은 당시 유행하던 리니지를 고3 때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우연히 시작했다가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하게 되어 최고수급에 오르게 됐고, 학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대인공포증까지 갖고 있었던 그 학생은 게임을 줄이고 학업에 충실하여 좋은 의사가 되겠다며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고사까지 잘 치르고 열심히 학업을 해나가던 그는 기말고사가 가까워지면서 다시 게임에 몰입하게 됐고, 결국 세 번째 학사경고를 받아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 학생이 퇴학당한 후 필자는 교수로서, 의사로서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인터넷중독 청소년을 위한 치료와 재활 연구를 한다면서 정작 자기 제자 한 명을 돌보지 못한 자책에서였다. 그 후로도 "잃어버린 내 가족과 내 인생을 찾고 싶다"던 30대 여성, 부모와 갈등 끝에 주먹을 휘두르는 등의 폭력으로 강제 입원을 해야만 했던 고등학생, "게임은 사업이고 돈벌이"라고 했던 전국 랭킹 안에 들던 게임 고수 중학생, 경상남도 지방도시에서 천릿길을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하러 왔던 여고생을 비롯한 수많은 게임 중독 학생과 성인을 만나고 치료해왔다. 그러면서 게임 중독은 병(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십수 년 전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이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 문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유는 명확지 않지만 전문가 중엔 컴퓨터 게임이 본드 흡입을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청소년에겐 컴퓨터 게임이 본드에 의한 쾌락이나 환각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 게임이 본드보다 훨씬 접촉이 쉽고 잠재 중독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중국·대만 등의 학자들이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의 뇌영상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게임 중독 청소년의 뇌가 약물 중독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것과 유사한 신경회로의 이상(異常)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국내 연구자는 최근 금연보조제로 쓰이는 약을 이들에게 투여하여 신경회로의 이상을 호전시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인터넷 게임 중독을 약물 중독의 기준에 맞추어 진단하는 기준이 제시되고 있으며, 아울러 정신질환 진단 기준의 개정 작업에서 게임 중독을 하나의 독립된 정신질환 항목으로 추가하려는 시도도 있다.

요즘의 청소년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은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이 일상적인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져 밀착돼 있다. 그런가 하면 IT와 게임이 중요한 성장산업으로 정책적 지원을 받으며 급성장하는 추세다. 이런 급성장의 그늘에서 100만명의 청소년이 중독자로 전락하여 마치 술과 도박에 영혼과 육체가 망가지듯 사이버 세계의 좀비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 너무 미흡하다. 더 강력하고 적극적이며 효과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일례로 청소년에 대한 심야 시간의 인터넷 게임 공급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같은 정책이 조속히 도입되어야 한다.

 

안동현 한양대 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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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론사에 다니는 선배의 부인이 암환자였습니다. 암 진단 당시 유방암 3기에 갑상선에도 아주 작은 암세포가 있었답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몇 차례 받은 뒤, 가톨릭 신앙의 힘에 의지하며 투병 중인 분이었습니다.

2008년 9월 제가 암 수술을 받을 당시 그분은 3년차였는데, 갑상선에 여전히 암세포가 남아 있는데도 별 두려움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위로하며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좀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푹 쉬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낫게 될 거니까요."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는 암에 걸렸는데 감기라고 생각하라니! 그분은 지금 '암이란 감기'에서 완쾌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투병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정보를 구하던 중 '월간 암'이라는 책자에 나온 어느 환자 투병기의 한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암아, 고맙다.' 암에 고마움을 느끼다니요? 그때까지의 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암은 저주, 절망, 고통일 뿐 고마움의 대상은 될 수 없었습니다.

휴직 후 '아빠 주부'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나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자정 넘어 잠들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이 매일 되풀이되는 신문기자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덕분입니다. 좋은 먹을거리를 챙기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명상과 기도에 의지해 제 몸만을 위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은혜입니다.

'아빠 주부'로 두 딸과 부대끼며 보낸 2년6개월의 시간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제 남은 인생에서도 다시 얻기 어려운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워 정성 들여 지은 밥을 챙겨 먹이고, 저녁 잠자리를 돌봐줄 때까지 하루 24시간의 3분의 2를 두 딸과 함께 보냈습니다. 직장에 출근한 아내 대신 둘째 딸이 다니던 유치원 행사에 참석, 다른 일본인 엄마들과 어울린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가족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쯤 해서 네 몸과 가족을 한 번 돌보렴' 하고 암이 내게 선물을 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업주부로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살림살이가 서투르다고 아내에게 구박받고, 두 딸의 사소한 투정에 속이 상했던 일도 꽤 있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순하게 반복되는 집안일, 가족 누구도 아픈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서운함으로 혼자 속앓이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저 자신을 비우려 애썼습니다.

일본의 어느 의학자가 쓴 책에 따르면 암 환자 중에서 완벽주의자, 마음이 착한 사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그런 성격 탓에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은 데다 잘못된 생활습관까지 겹쳐 암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법정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목표가 100이었다면 70 정도로 줄이고, 눈높이를 낮추고, 현재 순간에 만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뒤지기 싫어했고, 늘 좋은 평판에 목말라했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던 제 성격이 금방 바뀔 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뜯어고치는 훈련을 쉴새 없이 했습니다. 아내가 퉁명스럽게 대하면 '오늘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군' 하며 비위를 슬쩍 맞춰줬습니다. 언어가 불편해 일본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지 못하는 둘째 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신나게 숙제하는 모습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맛없다고 큰딸이 외면하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아빠에게 양보하는구나" 하고 한마디 한 뒤 제가 즐겁게 먹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비우기'에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암을 꺾고 빨리 복직하겠다는 생각, 회사에서의 내 존재가 희미해질 것이라는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한참만에 돌아온 직장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뀌었습니다. 일은 즐겁고 능률적으로 하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애씁니다. 제 생각을 고집하거나 앞세우기보다는, 먼저 저를 비우려고 마음먹습니다. 제가 스트레스받는 일,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이전보다 훨씬 줄었습니다. 암이 없었다면 이런 제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암이 고맙습니다.

 

홍헌표 디지털뉴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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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쓴 오수당.. 낮잠자는 집..

혜곡 최순우가 위 글씨가 좋아 편액을 만들어 성북동 자신의 집에 붙이고..자신을 오수노인이라 칭하고 유유자적 살기로 맘을 먹엇다

낮잠에서 깨어나면 어떤 마음이 었을까?

 

 

매심(梅心)이란다..

매화를 바라보는 마음..매화를 가꾸는 마음..매화같은 마음..어느 마음이던 좋겠지..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제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그 마음..

 

추사가 쓴 매심사의 글씨..혜곡의 성북동 집에 걸었다..

 

 

그리하여 그의 집은 문만 닫아 걸면 바로 깊은 산골이 되는 곳이라 하여..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 택호를 정하엿다...

 

언제 성북동 혜곡 선생의 집에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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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애월리 숙소에서 8시에 출발한다..

아침바다를 바라보며 해변따라 걷는 길 상쾌하기 그지 없다..

숙소에서 조금 걸으니 고내포구가 나오고..차길에서 벗어나 올레길이 바닷가로 이어지니 더욱 좋다..

 

 

아침바다 갈매기..금빛은 버리고 푸른 빛을 실었다..

 

 

벼랑가로 담을 쳐놓았다..추락방지용인지..

 

 

고래다..자세히 보시라..

없음 말구..ㅎㅎ

 

중엄리 새물..

한라산 중턱에서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해안가에서 솟아난다는 용천수 중 하나..

새물 샘터로 내려가 쳐다보니 올레가 벼랑길이네..

 

 

구엄포구를 바라보고 걷는다..빈 해변을 걸으며 느끼는 자유.. 

 

 

구엄포구 돌염전..소금빌레..빌레는 암반지대를 뜻하는 제주말..

바닷가 암반위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천일염을 만든다..

 

 

여기 구엄포구에서 일행 중 한분은 방파제로 낚시하러 가고..

우리 선두 일행 5분은 16코스 대로 내륙으로 향한다..

후발 팀들은 찻길따라 이호해수욕장까지 가서 17코스로 용두암까지 가기로..

 

구엄리 마을...봄빛을 가꾸는 들밭..

하얀 너울 쓰고 오는 봄처녀 보이시나..

 

 

마을에 인상적인 집 대문이 보인다..

이런 풍류가 잇는 집은 대개 인심도 넉넉한 법이다..

 

 

 

보랏빛 꽃이 말없이 반기는 올레 길..

만화방창해도 말한마디 없지만

진정한 즐거움은 말이 없는 가운데 잇다는 것을 그 누가 알리요..(誰知眞樂在無言)..

 

 

 

요즘 제주 유채축제가 한창이라는데..이곳에서 드물다..

길가에 어쩌다 보니 반갑기까지..

 

 

수산봉 아래 당도하니 제법 너른 유채밭이 잇다..

봄과 노랑은 잘맞는 궁합이다..

 

 

수산봉 언저리를 지나 경치 좋은 곳에서 쉬마하다가 참지못하고 숨을 돌리고 요기하고 조금 오니..

멋진 풍광을 만난다...수산저수지와 곰솔

400년 묵은 풍채 좋은 소나무..눈이 내려 덮히면 흰곰같다 하여 곰솔이란다..

 

 

 

 

수산..물뫼..

아름다운 지명의 저수지 제방에는 이뿐 꽃이 피엇다..

흰나비를 보면 슬픈 일이 생긴다고 동행이 말하자마자 노랑나비도 나타난다..

꽃과 나비..너울 너울 춤을 추는 물뫼..

 

 

이 길이 오늘 내 마음에 자리잡는다..

 

 

좋은 일은 겹으로 온다고 목련이 아름답게 핀 멋진 저택을 만낫다..

 

 

대문에 녹운당..초록 구름의 집이라고 써잇네..

일행이 주인장에게 섭외해서 잠시 들러 커피한잔 마시게 되엇다..

당호에 대해 물으니 보랏빛 안개가 자욱한 날 감흥이 일어 녹운당이라 작명하였단다..

친지에게 보랏빛 안개 이야기를 하엿더니 화학자인 그분이 "곧 산성비 오겠군.."하더라면서 웃는다..

참 넉넉한 안주인이다..

 

 

 

집안에 수선화는 한창이고..목련은 소담한 몽오리를 가진 사춘기 소녀 같다..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멀티비젼이 따로 없다..

윤증고택에서 본 와이드 티비화면 능가하는 최첨단 설비랄까? ㅎㅎ

 

 

 

집안 곳곳의 창이 그대로 풍경화 액자..

동네이름답게 물뫼의 풍경..지대로 보여준다..

 

 

현관에서 바라보는 정원도 그대로 작품아닌가?

이건물을 설게한 건축가가 가평에도 똑같은 건물을 지었는데 건축상을 받았다고 하니 명품집이다..

더구나 원두커피는 찐하면서 구수한 안주인의 인심을 닮앗으니 또한 거주하는 분들도 명품이다..

 

 

 

감사드리며 나오는 정원에 매화는 흐드러지고..붉은 명자꽃은 싱그럽다..

紅紅白白自天眞

붉은 것은 붉고 흰 것은 희니 스스로 하늘의 참됨이라..

 

4월의 예고편을 여기서 만끽한다..

 

 

커피향이 가슴에 남아 저절로 고개가 돌려져 바라보니..정말 아름답지 아니하랴..

 

 

커피마시느라 지체되어 수산리 올레를 도르멍 갓당..

 

 

이제 우리는 수산리 밭길 사이로 걸어간다..귤나무에서 귤은 거의 수확이 끝나..

귤을 사먹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집에서 가져온 한라봉을 까먹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바닷가 소풍에 며루치 반찬 싸온 셈이다..

 

 

매화가 가득 피엇다..

선암사나 섬진강변에 가서 봐야할 매화 여기서 다보니..

 

화개화락축년신(花開花落逐年新)

꽃은 피고 지고 해마다 새롭구나..

 

 

드디어 나무에 달린 귤을 만낫다..

주인장이 보이지 않으니 차마 따먹지 못하고  침만 삼키며 달랜다..

 

 

이제 항파두리로 가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올래표시와 돌하르방이 정겹다..

이번 코스를 걸으며 올래 길안내 표시한 분들의 노고 감사드린다..

너무나 정성스럽게 잘 보이게 적절하게 표시해놓아 조그만 불편없이 코스를 완주하엿다..

걷기열풍의 원조 다운 솜씨다..

 

 

항파두리로 가는 길에서 누가 광릉수목원 길같다고 한다..

솔향이 가득한 길을 차도옆 잔디로 걸으니 양탄자를 걷는 기분..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에 도착햇다..

몽고의 30년에 걸친 침략의 막바지..무신정권을 몰아낸 조정에서 원에 항복을 결정하자..

삼별초 부대가 반발하여 대몽항쟁을 이어간다..

완도가 함락되자 김통정 장군 일행이 제주도로 후퇴..이곳에서 2년 6개월 항쟁을 이어가다..결국엔..함락된 비운의 유적지...

 

 

이곳에도 730년후엔 봄이 되니 무심한 개나리만 가득피엇다..

 

 

반사경에 비치는 올래 풍경도 이국적이다...

 

 

제주의 잘난 말도 보고..

잘난 말은 주인이 드는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린다는데..

이넘 제법 의젖하게 포즈도 취해준다..

 

 

고성숲길과 고성천길을 지난다..

돌담이 어우러지는 제주다운 소담한 길..

 

 

문득 귤이 가득한 귤밭을 만나자 잠벗이 귤을 사겟다고 주인을 찾아갓다가 공짜 귤만 한보따리 얻어왓다..

제주 귤은 배에서 먹는 활어회 처럼 신선하고 맛있다..

 그러는 사이 이제 광령1리로 가는 막바지..청화마을에 도착햇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림사 입구에 도착하니 비바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오젠허난 폭삭 속아수다..(통역)..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뭐..저 좋아서 하는 것인디..ㅎㅎ

 

오늘 걸은 길..

고내포구-중엄 새물 - 구엄포구 - 수산봉- 곰솔-수산저수지- 예원동 -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고성천길- 숭고당- 청화마을- 향림사-광령1리사무소  17.8km를 아침 8시 출발하여 12시 30분까지 4시간 30분에 주파..3시 배를 타려고..

 

 

광령1리사무소 앞에 마침 택시가 대기중이다..

입심좋은 기사님..여자 4명을 거느리는 솜씨가 제법이라나..

"6명까지 통솔 가능합니다..ㅎㅎ"

 

일행분이 특이한 제주시 가로수에 대해 물으니  구실잣밤나무라고 한다..

이것도 밤나무라 꽃냄새는 끝내준다는..

 

항구옆 물항식당에 갔다..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깔끔한 갈치국으로 마무리.. 

 

 

돌아오는 배..갈 때의 반만한 크기..

공연장도 없고..안마기도 승객의 침대용으로 쓰이는 바람에..할 일없어 배난간에 기대다..

푸른 바다에 매혹된다..

깊고 푸른 바다..

 

 

추자도를 지나자 일몰쇼가 진행된다..

어디서나 맞는 일몰은 가을 만큼이나 심금을 울린다..

해가 내일 다시 떠오른다는 당연한 전제가 잇더라도..

바다는 저녁 요기를 탐스런 홍시로 맛나게 하겠구나..

따스하게 잠들게나..  

 

제주로 향한다..큰배를 타고..

비행기로 가기 복잡해  부산 앞바다만 즐기다가 모처럼 인연이 닿은지라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떠났다..

 

 

제주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만덕기념관에서 반겨주는 동백아가씨..

서로 그리움에 지칠 사이는 아니지만 꽃잎은 여전히 빨갛게 멍이 들었소..

 

 

기념관을 말타고 먼산 보듯 지나쳐 나오다가 입구에 선 글씨에 필이 꽃힌다..

은광연세..누가 잘쓰긴 했는데 뭔 뜻이랴??

나중에 제주박물관에 들려서 비로소 알게 된다..

 

 

제주항 등대 뒷산 별도봉 산책코스로 갔다..

초입에 만나는 보림사의 개나리 처녀..

종달새 울제 이팔청춘 가슴에 불지를  봄바람.. 그 바람타고 온 누리에 노란색 가득하겠지..

 

 

내일의 올레 코스에 대비해서 오픈 경기라 생각해서 맛보기로 걷는다..

 

 

그런대로 바다 바라보며 걸으니 속이 툭터진다..

 

 

별도봉 정상에 올라 한라산에 문안 인사하고.. 다시 원점 회귀하여 가는 길..항구 옆 등대가 보인다...

 

 

제주박물관에 들럿다..설핏 지나치는 전시물 속에 눈에 띄는 글씨들..

멋들어진 청풍(淸風)..

 

 

여기 은광연세(恩光衍世)의 글씨를 다시 만난다..

역시 추사의 글씨..

은혜의 빛이 세상 널리 퍼지네..

추사가 귀양왔을 당시 김만덕은 이미 돌아가신뒤라 만나지는 못해도 흉년에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도민을 구제했다는 미담을 듣고 어울리는 글씨를 남겼다..

 

 

제주 서귀포 출신의 소암 현중화가 쓴 예서체..

 

仰面靑天遠(앙면청천원)  올려다보면 앞에는 아득한 하늘,

夜鳥啼早秋(야조제조추)  밤새 이른 가을을 알리고

銀河花外轉(은하화외전)  꽃처럼 펼쳐진 은하수 사이로

時有一星流(시유일성류)  때때로 한줄기 별이 흐르네

 

 

귀양왔던 우암 송시열의 글씨도 만난다..

落盤踞雖(낙반거수)..

제갈공명의 무덤 앞에 있던 오래된 측백나무를 노래한 두보의 시 고백행(古柏行)의 한 귀절..

 

落落盤踞雖得地(낙낙반거수득지)  낙락히 살아 땅을 차지한다해도
冥冥孤高多烈風(명명고고다렬풍)  아득히 높아서 강한 바람이 많구나

 

제주도에는 때가 되면 고명한 분들이 타의로 찾아와 글씨도 남기고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

 

 

애월읍 숙소로 향하다가 해녀의 집에 들려 문어..갈치회..해삼..멍게와 쎄주 한잔..

숙소에 짐을 풀고 불이나케 바로 앞 바다로 나간다..

 

 

석양을 바라보면 16코스 일부를 걸어본다..

석양의 해녀는 물질 잘하고 한보따리 들고 나서는듯..

 

 

 

숙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몰을 감상하러 나왔더니..

해는 이미 잠수하고 붉은 여운만 가득하다..

바다는 뜨거운 것을 삼키고도 호호 불지도 않고 꿈적 않네..

 

 

다시 해변을 걸어 내일 걸을 올래일부를 걷다가 돌아와 수면용 폭탄주 서너잔 마시고 베낭베고 잠을 청한다.. 

오늘 밤엔 붉은 마음과 노란 마음 중에 어느 마음에 안겨 잠을 잘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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