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입구)
선운사를 출발하여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고창읍내의 중심가를 지나 산을 등지고 성이 있다..
성의 입구는 서울의 동대문처럼 옹성으로 되어있다..
고창읍성하면 떠오르는 것은 돌을 머리에 인 부녀자들이 성벽을 밟는 행사인 "모양성 답성놀이"다..
돌을 이고 성벽 주위 1.6km를 3번 돌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당연하지..그 정도 체력이면 성를 돌지 않아도 건강할테니..
이성을 모양성으로 부르는 이유는 백제 시대의 지명 "모량부리"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단다..
(성벽)
주차장에서 성벽을 바라보자니
영국에서 본 요크셔의 성을 연상시킨다고할까?
이 성안은 산을 등지고 평지를 향하고, 그안에 동헌, 객사, 관아 등이 들어 있으며, 비상시에만 백성이 성안으로 피난들어 온단다..규모나, 위치 등이 진주성과 같은 요새의 형국이다..
이 성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잇는지 궁금해진다..
이성을 둘러싼 공방전은 역사상 없었던 것 같다..
(풍화루 현판)
성 한복판에 작은 연못이 잇고, 부근에 약수터도 있다..
연못은 유사시 식수역할을 하였을 것이니, 물걱정은 없었던 성이었으리라..
연못 지나 누각이 있는데, 이름이 풍화루다.
풍년과 평화를 기원한다는 이름..
악필(握筆)의 대가 석전 황욱이 92세에 쓴 글씨란다..
석전 황욱 (1898~1993)은 고창 출신으로 호는 石田, 金剛山人, 白蓮山房, 太平老人, 平和老人, 七峰居士, 母岳山人, 20여가지의 호를 사용 하였으며 한국서단을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70세전까지는 해서,행서,초서를 즐겨썼으나 수전증이오면서 악필로 전환하게된다.
송곳을 쥐듯이 붓을 쥐는 악필법은 일체의 기교가 배재된,마음과 손이 서로 호응하지않으면 안되는 [심법]의글씨이다.
다른 서예가들과는 달리 석전은 90세 이후에 특히많은 작품을남기고 있다..
(동헌)
이곳의 건물은 1988년경에 원래 자리에 복원을 하였단다..
동헌은 고을 원님이 집무하는 곳이다..
고을 원님의 권한은 5가지..행정,치안,징세, 군사,사법..
동헌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듯하다..
"네죄는 네가 알렸다! 이실직고하라.."
(동헌 현판)
동헌의 현판은 복원하면서 석전 황욱이 쓴 글씨이다..
"평근당(平近堂)"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평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란다..
(내아)
동헌 바로 옆에 원님의 숙소인 내아가 잇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부러울 정도..
주방이 없어 궁금하였는데, 성 중앙부에 "관청"이라는 주방건물이 따로 있어 거기서 음식을 조리하여 운반해오는 것 같다..
(작청)
작청은 이방 등 육방관속의 집무실이다..
명칭도 특이하다..
작청(作廳)이면 일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인지..
(현판)
조선시대 아전들은 공식 급여가 없었단다..
그러니 작청에 앉아서 공무 수행보다는 자신들의 월급 만드는 일에 더 골몰하였는지 모르겟다..
(옥)
성문 가까이 감옥이 있다..
들여다보니 나무 창살, 칼이 잇고, 좁고 창문도 없다..
그 곳에 칼을 목에 쓰고 쭈구리고 앉아 잇으면 답답하여 저절로 죽을 것 같다..
성안에 s라인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홍송..
이런 나무가 커서 낙락장송이 되고 경복궁의 대들보가 된다..
일제시대 왜놈들이 이런 소나무 다 베어쓰고 산에다 왜송(리끼다 소나무)만 심엇다..
이젠 그마저 재선충에 시달리고 잇으니..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듯한 소나무의 기상"은 어디에서 보려나 했는데..이곳에서 그 편린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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